너와 나만의 시간
3부
9.
“근데 이건 진짜 노동이다...”
“뭐가?”
“네 과제 말이야.”
못 믿는다고 단정 지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 애의 옆에 꼭 붙어 앉아있는 나도 참 어쩔 수가 없다. 그냥, 이런 느낌이 오랜만이라서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내가 그 애를 못 믿는 건 잠시 미뤄도 괜찮지 않을까. 안 괜찮을 지라도 지금은 모든 걸 미뤄두고 그냥, 나를 향한 그 눈빛과 그 손길을 다 받아낼래. 복잡하고 심각한 건 잠시 내려놓고서. 그냥, 오로지 너 하나만 봐야겠다.
바보 같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가.
“팔 안 아파?”
“왜에? 아프다고 하면 네가 쓰려고?”
내 과제를 대신 해주겠다고 두 팔을 걷고 열심히 펜을 쥔 손을 움직이는 종인이를 보면 그저 웃음밖에 나오질 않는다. 한자를 써내려가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팔이 아픈 듯 자꾸만 손목을 돌리는 걸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더니 내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하며 되묻는다. 그래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거 아닌가? 내 숙제니까 내가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됐네요. 이런 거라도 열심히 해서 잘 보여야지.”
“..누구한테?”
“너요, 너.”
“..나?”
“응. 그럼 너 말고 누구 있어?”
“…나한테 왜 잘 보여?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내 물음에 종인이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꼭 잘못한 게 있어야, 잘 보이고 싶어지나?”
“그런 건 아니지만...그냥, 갑자기 이러니까 이상하잖아.”
아무것도 아닌 척 하려고 애를 썼다. 괜한 말 한마디에 이 좋았던 분위기마저 다 흐려질 까봐. 별 뜻이 없었다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어색하게 웃으며 녀석에게 대답했다. 그랬더니 쥐고 있던 펜을 놓으며, 종인이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한다.
“미안해서 그렇지... 요즘 바쁘다고 연락도 자주 못하고, 얼굴도 못 봤으니까... 그거 만회하려고.”
“미안하기는….”
“섭섭했던 거 다 알아.”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모르면 누가 알아.”
“뭐라고?”
“내가 니 마음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냐고…. 나 도덕후잖아. 도덕후.”
“…….”
“아잉.”
정말 미안하긴 했던지, 숙인 고개를 내 쪽으로 들이밀면서 애교 있게 말하는 그 행동에 어쩔 수 없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김종인이 애교라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더 귀엽다. 처음엔 미안하다며 슬쩍 운을 던지는 그 말에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넘어가려고 했지만 나를 너무 잘 아는 김종인 때문에 실패했다. 그래서 괜찮다는 말로 넘기려고 했는데. 우와, 김종인이 진짜 미안하긴 미안했나보다.
그 사과 한 마디에 마음 한 구석으로 밀어놓았던 모든 걱정들이 한 방에 사라졌다. 이쯤 되면 나 호구인가? 이렇게 쉽게 풀려도 되는 거냐고요.
“웃으려면 웃고, 정색하려면 정색하든지 하나만 합시다. 네?”
“아잉이 뭐냐, 아잉이. 진짜 안 어울려, 너.”
“한 번만 봐달라고 그런 거지, 뭐. 안 어울린다면서 좋아 죽네, 어? 너 입술 하트모양 됐어, 벌써.”
“야, 하나도 안 좋거든. 징그럽거든?”
“징그러운데 왜 그렇게 웃고 있어~?”
“나 안 웃어!”
“거짓말.”
“내가 언제 웃었어!”
“지금!”
웃는 표정을 안 보여주려고 두 손으로 입술을 막았다. 억울하잖아. 이렇게 쉽게 풀리다니. 아, 근데 진짜 안 어울리게 아잉은 뭐야. 아무튼, 귀엽다니까. 김종인, 진짜. 웃기 싫은데. 진짜, 이런 걸로 풀어주는 거 안 되는데. 마음은 굳게 먹으려 하고 있지만, 사실 풀린 지 벌써 오래 전이다. 그래서 결국 입술을 막고 있던 두 손을 내렸다. 지겹도록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 종인이를 향해 참지 못하고 끝내 웃어버렸더니 그 애도 나를 따라 또 웃는다.
“좋다….”
“좋기는, 뭐가...”
“니가 웃으니까 좋다고.”
“…난 니가 좋다.”
“내가 더 좋아할걸?”
“으, 오글거리게 이게 뭐하는 짓이야.”
“알았어, 몰랐어.”
“아, 뭘!”
“내가 너 더 좋아한다고.”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오글거린다는 둥, 소름이 다 돋는다는 둥, 질색을 하며 가까이 다가오는 네 얼굴을 밀어버렸지만 그래도, 나는 참 좋았다.
“과제 다 써가?”
“두 장 남았어..”
“그럼 그건 그냥 둬. 내가 할게.”
“아니야, 그냥 내가 다 해 줄래.”
“착한 척 하지말지?”
“착한 척 아닌데? 담에 니가 내 과제 대신 해줄 거잖아. 그치?”
“내가?”
“그럼, 아니야?”
침대에 엎드려서 마지막 남은 두 장을 열심히 써내려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그 옆자리에 아주 자연스럽게 누워선 내 과제에 열을 올리는 녀석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누구 애인인데 이렇게 잘생겼지?”
짧은 머리카락을 조심조심 쓸어내리며 물었다. 그 말에, 그 애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오글거리는 거 싫다더니?”
“내가 언제.”
“네가 방금.”
“기억 안나는 데?”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뻔뻔한 것 같아. 그치, 종인아. 네 생각도 똑같지?
“됐다, 내가 널 어떻게 이겨.”
“너 누군데 이렇게 잘생겼냐고.”
“나 잘생겼어?”
“응. 근데 나보단 아니야.”
“뭐야...”
“내가 너보단 잘생겼지.”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랬더니, 그 애가 웃는다. 비웃는 거 말고 왜, 진짜 그냥 웃는 거. 어이가 없어서 웃는 건가? 아니면 내가 귀여워서? 사랑스럽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고 막.
“응, 도경수가 나보단 잘생겼지.”
“역시, 네가 사람 볼 줄 아는구나.”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안 예쁜 구석이 하나도 없지.”
“예뻐 죽겠지?”
“응.”
그렇게 장단을 맞춰주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과제를 써내려간다. 그러면서도 내가 웃긴지 자꾸만 웃고 있다.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기도 하면서. 어? 뭐지, 저 반응은? 근데 나 잘생긴 거 맞을 텐데. 귀엽고, 잘생기고. 성격까지 좋아. 와, 나 어떡해? 생각해보니까 내가 좀 아깝다. 김종인한테.
“넌 좋겠다.”
“뭐가?”
“너보다 잘생기고, 귀엽고, 성격 좋은 내가 애인이라서.”
기분이 좋다. 종인이가 내 장단에 맞춰주니까 그냥 너무 좋다. 신이 나서 그 애의 얼굴 쪽으로 내 얼굴을 들이밀면서 조용히 속삭였다. 그랬더니, 김종인은 여전히 나를 보지도 않고 또 웃는 얼굴 그대로 고개를 끄덕인다.
“대답.”
“했잖아.”
“고개 끄덕이는 거 말고, 말로.”
“너~무 좋아요. 도경수가 내 애인이라서.”
“진짜?”
“응.”
“근데 왜 내 얼굴 안보고 말해?”
녀석의 얼굴을 한 손으로 잡아 돌렸다. 내가 네 옆에 있는데. 응? 물론 내 과제 대신해준다고 정신없는 건 이해하겠는데. 일단, 내가 네 옆에 있잖아. 너보다 잘생기고 귀엽고 성격까지 좋은 내가. 그럼 날 좀 봐야 되는 거 아닌가?
억지로 잡아 돌린 김종인의 얼굴이 내 얼굴 쪽으로 따라 온다. 볼을 잡고 돌려서 그런지, 입술이 삐죽 튀어나와있기에, 그게 또 너무 귀여워서 그 입술에다 뽀뽀를 하고 말았다.
“…종인아.”
“응….”
볼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렸다.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한 시선이 반짝거린다. 나는 너를 보고, 너는 나를 보고. 너는, 나만…, 보고.
아무런 걱정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네가 옆에 있다는 사실에 행복에 겨워하던 것도 잠시.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한 네 얼굴이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아마도, 누나에게 들었던 그 말 때문일까.
“나….”
“응, 말해.”
아니면, 내가 너를 못 믿어서 일까.
“왜…, 나한테 할 말 있어?”
이렇게나 많이 좋아하는데….
“경수야.”
“…….”
“…경수야?”
가까이에서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네 눈을 믿을게.
지금 이 순간의 너를, 믿을게.
一
“짠.”
오세훈을 향해 자랑스럽게 노트를 꺼내보였다. 녀석이 시큰둥하게 이걸 나더러 어쩌라고, 뭐 이런 눈으로 내 노트를 받아든다. 휙휙 넘기더니 과제를 끝낸 걸 알아차린 듯 잠시 놀란 기색을 비추며 다시 내게 노트를 건넨다.
“뭐냐, 너.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거 언제 다 쓰냐고 빌빌거리더니.”
“장난 아니지? 내 능력이 이 정도야.”
“뭐라는 거야, 베껴 쓰는 거 누가 못해. 손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지 않나?”
“그래서 넌 다 썼냐?”
“나도 몇 장 안 남았거든?”
아, 오세훈 보다 더 빨리 끝냈어! 빨리 끝냈다고! 그 사실이 나를 너무 기쁘게 했다. 신이 나서 얼굴에 웃음꽃이 다 폈다. 노트를 다시 가방으로 집어넣으며 계속 헤실 거렸더니 오세훈이 기분 나쁘다고 웃지 말래. 헐. 이제 웃는 것도 내 맘대로 못하냐. 나보다 과제도 늦게 한 주제에.
“그거 김종인이 대신 써줬지?”
“아니?”
태연한 척 하려고 그랬는데 움찔거리고 말았다. 내 반응을 살피던 오세훈이 혀를 차며 말한다.
“아무튼 도덕후 새끼, 못 말려요. 지가 보모야? 과제를 대신 왜 써줘. 넌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유치하게, 서로 과제 대신해주고. 작작하라니까 니들?”
“왜. 부럽냐? 과제 대신 해줄 사람 없어서 심술 나서 그러지?”
“내가 너냐?”
괜히 부러우면서 거 되게 심술부린다니까. 짜증이 나서 벽을 발로 툭툭 차는 걸 보면서 웃었다. 이런 걸 승자의 여유라고 하는 거지.
“에이, 시발. 커플 지옥 솔로 천국이요. 너 나중에 헤어지고 나 찾아서 질질 짜지 마라. 알겠냐?”
“그럴 일 없을걸?”
“왜?”
“안 헤어질 거니까.”
그 말에 오세훈이 오만상을 다 찌푸리며 내게 세 번째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꺼져.”
약 올리려고 그랬던 건 아닌데, 내가 자랑할 데가 너밖에 없잖아. 너도 알잖아, 오세훈이.
***
굉장히 애매한 곳에서 끊어버렸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오랜만에 찾아와선 흐름 이상하게 끊어버리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죄송해요ㅠㅠㅠ죄송함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