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국, 3대 왕 원종 제 12 년
만 월 서 각 (滿月書閣)
사람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면 가끔 이렇게 해괴망측한 상황에 들이닥쳐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 지금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에서도 내게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이다. 여자애는 아까부터 뭐가 그렇게 좋은지 머리를 배배 꼬았다가 치마를 들췄다가 펼쳤다가 세자 예찬론을 펼쳐대다가 이내 제 본분을 깨달은 듯 화닥닥 물어왔다.
"아가씨, 떨리지 않으십니까?"
"음... 떨려... 요...?"
어찌 제게 존댓말을...! 혹시나 해서 조심스럽게 덧붙인 존댓말에 여자애가 기겁하는 걸 보니 확실히 자매 사이는 아닌 것 같고, 양반집에 떨어진 게 맞기는 맞는 것 같다. 개이득.
"근데..."
"예, 아가씨. 혹시 편찮으신 것이어요?"
"네 이름이 어떻게 되지...?"
"밀화입니다, 아가씨."
여자애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납작 조아렸다. 크고 동그란 눈동자에 어떻게 제 이름을 까먹을 수 있냐는 섭섭함이 여실히 드러나서 괜히 아프지도 않은 머리를 한 번 짚으며 돌아누웠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정보들이 차곡차곡 정리된다. 쟤 이름은 밀화, 내 몸종 같고, 나는 굉장히 부잣집 아가씨로 보이며, 그리고... 굉장히 중요한 걸 하나 까먹었던 것 같은데. 뭐였더라?
"아가씨! 아가씨!"
아, 맞다.
"세자 저하께서 당도하셨습니다!"
나 세자랑 결혼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간은 적응의 동물, 최대한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해 봤다. 현생에 지친 내게 드라마 한 편 찍으라고 그 분이 내려주신 은총인가 보다. 아멘, 주님. 최고 시청률이 천국 뚫을 만큼 재미있게 찍어드릴게요. 밀화는 세자가 왔다는 소리에 제가 더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며 내 옷맵시를 만져준다, 장신구를 꽂아준다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 패션 고자인 나도 지금 입고 있는 옷이 굉장히 정교하면서도 우아하게 잘 꾸며졌다는 건 알겠다. 얼굴은 제대로 못 봤지만 옷을 이 정도로 입혔는데 당연히 영혼을 갈아넣어서 분칠했겠지. 이런 옷을 입히고 집안 사람들 모두가 고대하는 만남이라면 내게 몸을 빌려준 사람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세자랑은 완전 초면이라는 뜻이 된다. 드라마 보면 결혼할 때는 왕궁에서 하던데 세자가 집으로 오는 걸 보면 그것도 개썅초면.
"밀화야, 아직이냐?"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세자한테는 의심을 살 일이 없다는 말이다. 어떤 이미지로 메이킹해야 이 시대 남성들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아주 우아하고 고상한 목소리가 창호지를 타고 날아들어왔다.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면 고운 비단에 산들바람이 넘실거리는 듯한 그런 목소리. 아닙니다, 마님! 밀화가 쩌렁쩌렁하게 대답하고는 서둘러 나를 일으켜 세운 뒤 후닥닥 달려가 문을 열어젖혔다.
"저하께서 기다리신다, 어서 가자."
목소리만큼이나, 어쩌면 목소리보다 더 우아하고 품위 있게 생긴 온화한 귀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아까 밀화가 마님이라고 한 걸 보면 이 몸 주인의 엄마겠지? 저 우아한 입에서 튀어나오는 이 년이 돌았나,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최대한 정상적으로 떨리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사근사근 걸음을 떼었다.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걸으니 치렁치렁 늘어지는 옷이 불편해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세자가 기다리겠다면서 또 길은 엄청나게 빙빙 돌아가지, 한 번 걸을 때마다 실밥 뜯어지는 소리가 들려오지... 이 의상을 만드신 분께 미리 죄송. 매번 아디다스 풀세트에 삼선만 신고 다녔던 나에게는 이런 옷을 입고 정상적으로 걷는 일이 굉장히 고문처럼 느껴졌다. 결국 당근을 갈망하는 당나귀처럼 겅중대며 뛰다 걷다를 한 열 번쯤 반복하고 있을 때 드디어 앞서 가던 두 사람이 멈춰섰다. 아까 있던 방의 창호문과는 클라스가 달라 보이는 크고 웅장한 문 앞에 얼빵하게 서 있는 나를 위해 귀부인은 친히 문을 열어주는 수고까지 보여준다.
"들어가 보거라. 배웠던 것들 잊지 말고."
음... 뭘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열심히 해 볼게요. 어색한 웃음을 남겨두고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문이 닫혔다. 방 안에 몇 명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뒤돌아 있는 내 등짝에 시선을 붙박고 있다는 건 알겠다. 뒤돌아보기 전 마음의 준비를 위해 크게 심호흡 한 번 해 주고 그 분께 초스피드로 기도를 올렸다. 그런데 주님, 자고로 드라마는 남자주인공인 거 아시죠. 이왕이면 이준기로 부탁. 믿습니다, 아멘.
"늦어서 죄송..."
"오셨습니까?"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무릎 갈릴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현실로 돌아가는 날에 반드시 그 분께 장기를 팔아서라도 감사헌금을 바치겠다고. 벌이 꿀을 좇는 것도 잊는다던 밀화의 말이 확실하게 거짓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부족한 표현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정도로 세자의 목소리는 꿀이 넘쳐흘렀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대신 무리들을 애써 외면하며 벌은 물론이고 바퀴벌레까지 홀릴 것 같은 그런 엄청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눈동자를 바쁘게 굴렸다. 아, 찾았다. 세자는 목소리에 걸맞게 가장 볕이 잘 드는 따뜻한 곳에 파란 곤룡포를 입고 서 있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175 는 거뜬히 넘어 보이는 키에 탄탄하게 벌어진 어깨, 떨어지는 어깨선과 대흉근이 몽유도원도보다 매혹적이었다. 꿈보다 더 꿈 같은 상황에 얼빵하게 서 있기만 하다가 아까보다 한층 더 사나워지는 대신들의 눈초리에 서둘러 사과의 말씀을 입에 담았다. 존나 눈치 준다 진짜; 자기들은 저 뒷태 맨날 본다 이거지;?
"죄, 죄송합니다. 제가 기절을 해서..."
"기절? 어디 편찮으십니까?"
꿀이 담뿍 묻어나던 세자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걱정으로 가라앉았다. 아까부터 좀만 더 크게 뜨면 튀어나올 듯한 눈알로 유난히 나를 노려보던 대신은 할 수만 있다면 눈알을 빼서 던져버리고 싶다는 표정으로 부들대고 있다. 사과하래서 했더니 진짜 어쩌라는 걸까... 초면에 굉장히 도전적이시네요? 또 이런 일로 자존심에 스크래치 나는 건 못 참는 성격이라 같이 두 눈을 부릅뜨고 대신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은 항상 앞뒤 생각 안 하고 저지른 일에 후회하기 마련이다. 그냥 먹금하고 마저 미안하다는 말을 했어야 했다. 그리고 우아하고 청순하고 가련하고 내조 잘 할 것 같은 이미지로 예의 바르게 세자를 맞을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괜찮습니까, 날짜를 미룰까요?"
대신과 눈싸움하느라 세자가 돌아선 것도, 내 쪽으로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도 몰랐고,
"... 부인?"
"으ㅏㅣㄴㄻㄴ이;ㅏ런ㅁ이ㅏ러빚다ㅓㄼㅈㄷ래ㅑㅓ ㅆ비ㅏㄹㅇ누 쒸ㅏㅂㄹ!!!!! 쒸발!!!!!!!!! 아!!!!!!!!!!!!!!!"
시선을 돌렸을 때는 꽃잎 한 장도 나부끼기 어려울 만큼 가까운 거리에 세자가 얼굴을 들이밀고 있을 것도 몰랐고, 너무 놀라서 순식간에 들린 내 단단한 대가리에 세자가 얼굴을 박을 거라는 것도 몰랐으니 말이다.
잡소리와 암호닉 |
만월서각이 먼저 올라온 이유는 우아한 가족사가 곧 완결날 거라서 기가 빨렸기 때문에... 저는 빠른 전개병이 있어서 여주를 적응력 어벤져스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시험은 다들 잘 보고 계신가요? 지금 보고 계신 분들, 보고 계실 분들 모두 화이팅... 진짜 만월서각 있으면 제가 닥 일 등 먹고 폐쇄시킬 거예요... [암호닉은 최신 화에서만 받고 있습니다. 중복 및 누락 확인 꼭 부탁드려요.] ♥ 거짓말 / 러빈 / 땅위 / 김말이야 / 동글아미 / 뿌이뿌이 / 쿠크바사삭 / 뉴이 / 사쿠라 / 김 / 수저 / 비비탄 / 천상계 / 스케치 / 가짓 / 바게트 / 융봄 / 진진츄 / 국산비누 / 앙 / 끌로에 / 짐고 / 바다코끼리 / 사랑해 / 달슈가 / 희48 / 대추차 / 과수밭 / 빛나무 / 염치 / 단잠 / 청포도 / 꾸꾸쓰 / 예화 / 코코링 / 혜향 / 침침이 / 구루메 / 태태 / 0428 / 미남과야수 / 얏빠리윤기 / 메리진 / 착한공 / B612 / 찡긋 / 오빠아니자나여 / 짐니어무니 / 미미미 / 델리만쥬 / 슝아 / 인연 / 윤맞봄 / 우유 / 피치 / 딸기 / 해말 / 예삐침뀽 / 태썸 / 나무야나무 / 뿡쁑 / 아모 / 삐삐걸즈 / 슙달 / 잘자네아무것도모르고 / 그레이스 / 너지 / 김까닥 / 봄아 / 지은쟁이 / 토끼 / 덮빱 / 보라보석바 / 갤3 / 감나무밑입쩍상 / 버츠비자몽 / 한우밭 / 시금치 / 전정국 / 습기 / ㄱㅎㅅ / ♥알루미늉기♥ / 모찌섹시 / 까꾹 / 핑쿠판댜 / 첫사랑 / 가위바위보 / 마일 / 망개구름 / 망개꽃 / 뀨쮸 / daydream / 유뇽뇽 / 망개와나 / 기억 / 다람이덕 / ♡구기 / 보보 / 0831 / 코코넛워터 / 자몽사탕 / 0501 / 딸기우유 / 우봄봄 / 전봇대 / 데스페 / 도로시 / 봄소서 / 붕어 / 다홍빛 / 레몬사탕 / 새벽 / 금잔화 / 벌스 / 짜근 / 너지 / 정꾸 / 냥꽁 / 무네큥 / 흑설탕융기 / 1225 / 탄둥이 / 코튼캔디 / 구리부리 / 헤몬 / 침침이 / 진진자라 / 두부 / 정국어 / 빛세 / 꾹푸린 / 1978 / 청멍 / 우유메 / 은아 / 흥흥 / 설한화 / 알루미슙 / 만두짱 / 그럴거야 / 쀼뀨쀼 / 이땡글 / 물결잉 / 보노보노 / 방울이 / 룰루랄라 / 초코틴틴 / 망개침침 / 정국왕자 / 자몽탍 / 꾸꾸뀨 / 빈반 / 봄플 / 1158 / 봉석김 / 우와탄 / 뷔스티에 / 비트윈티 / 알파카 / 롸아미 / 핀아란 / 1101 / 핑쿠판댜 / 캔디 / lunatic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