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금은 자동재생 입니다.
어색하면 어떡하지 했던 내 걱정들은 국왕 덕분에 다 날아가 버렸다. 윷놀이부터 시작해서, 방 안에서 딱지 치기. 지금은 구슬 치기까지. 아주 쉴 틈 없이 달려왔다. 게임으로만. 벌써 밤이 좀 많이 지난 것 같은데,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을 계속해 나갔다. 그리고
총 세 번의 게임 끝에, 내가 이겼다. 질 때마다 딱밤 맞기를 했는데, 첫 번째에도, 두 번째에도 내 결과는 패배였다. 아니 무슨 사람이 윷을 그렇게 잘 던져? 그는 처음부터 '모' 로 시작해서, 나는 몇 번 던지지도 못 하고 게임이 끝나버렸다. 여자라고 봐 주는 것도 절대 없었다. 완전 딱지치기는 힘으로 하는 것 같았다. 어떤 누가 딱치지기는 기술이라고 했어? 나보다 큰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힘으로, 딱치는 손쉽게 넘어갔다. 덕분에 내 이마는 아직까지도 빨갛고.
세 번째 게임인 구슬치기. 알까기와 비슷했는데, 내가 상대의 구슬을 맞추면 이기는 것이다. 마침내 하늘 색 구슬이, 빨간 색 구슬을 톡-. 하고 건드렸고, 게임은 나의 승리로 돌아왔다.
"대세요."
"억."
승리에 눈이 멀어버린 나는,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국왕의 이마를 때린 사람이. 그가 이마를 보이자마자 빡 소리나게 이마를 떄렸고, 그는 악. 도 아닌 억. 소리를 내며 자신의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다.
미친. 내가 지금 무슨 짓을.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고, 그는 생각보다 충격이 컸는지 잠시동안 자신의 이마 위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큰일났다. 나 존나 끌려가서 곤장 맞는거 아니냐고 엉엉. 혼자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그가 고개를 들었고
다행인건지, 호탕하게 웃으며 내게 물었다.
"중전, 술 하실 줄 아십니까?"
*
술?. 술이라는 단어에 자동적으로 고개가 끄덕여졌고, 나 자신을 말릴 새도 없이 그는 밖의 신하들에게 상을 대령하라 일렀다. 국왕이 존나 대단하긴 한가 보다.. 지금 시간이 아마 열두 시가 훌쩍 넘었을 것 같은데. 밖에서는 거절의 소리 없이 곧바로 술과 먹을 것들이 가득 차려진 상을 대령했다.
이곳에 있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인데, 그는 참 자상하다. 아까 놀이가 끝난 후, 치우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자신이 하자고 한 놀이이니, 본인이 치우겠다며 같이 치우자는 나를 기어이 앉혀놓고 결국 혼자 다 치웠다.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본 술 덕에 미친 것인지, 그에게 게임을 또 하나 제안했다. 그리고 그 게임은
"..가위바위보 아세요?"
이곳에서 그런 걸 할 리가 없었다. 다행히도 그는 익숙치 않은 게임에 해보자며 웃었고, 나는 그에게 룰을 설명했다.
"이게 가위. 전하께서는 방금 알려드린 보를 내셨으니까, 가위가 보자기를 자를 수 있잖아요?"
내가 살다살다 가위바위보의 룰을 설명하고 이걸 술게임으로 쓰는 날이 오다니.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췄다. 뭔가 여기 사람들은 어딘가에 노출되지 않은 깨끗한 사람들 같아서. 가위, 바위 , 보. 를 하나씩 다 설명 후에야 그와 게임이 가능해졌고, 서로의 술잔에 술이 가득 따라진 채 서로의 입에서 외쳤다. 가위 바위 보.
".."
첫 잔은 나였다. 나는 주먹을 냈고, 국왕은 내 손 바로 앞에서 손바닥을 보인 채 보를 내고 있었다. 혹시나 본인이 이긴 줄 모를까봐, 가만히 그를 보고 있자니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보를 냈고, 중전께서 바위를 내셨으니,"
".."
"보자기가 바위를 이렇게."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자신의 손으로 내 주먹을 감싸쥐며 물었다 "맞죠?". 따듯한 온기가 손을 통해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보기보다 큰 그의 손이 내 주먹을 덮었다. 예고 없이 손에 닿는 온기에 놀라, 화들짝 놀라며 손을 뺴낸 후 그의 말에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술잔을 입에 털었다. 갑자기 손을 잡으면 어떡해. 국왕은 그런 나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왜요."
"술 그렇게 마시는 여인은 처음 봅니다."
"진짜요? 저 사가에 있을 때는 대접에 막 부어서 먹고 사발에 마셨는데요?"
"..진짜요?"
"당연히 거짓말이죠."
술이 한 모금만 들어가도 취하진 않아도 일단 신부터 나는 성격이라, 그의 앞에서 장난도 툭툭 내뱉었다. 내 장난에 그는 허-. 하고 기가 찬 듯이 웃더니 나를 바라봤다.
"국왕 앞에서 거짓을 고하면 대역죄ㄱ.."
"저 곤장 맞아요?"
"네."
"아 오바."
이민형이 평소에 쓰던 말이 입에 붙었는지, 툭-. 하고 입밖으로 나왔다. 내 말에 그는 그건 또 무슨 말이냐며 웃기 시작했다. 이거 완전 권력남용 아니냐고.
다시 한 번 내 입에서 가위 바위 보. 가 외쳐졌다. 가위와 보자기. 나의 승리였다. 그는 나보다 조금 큰 술잔에 가득 담긴 술을 자신의 입에 털어넣었고,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술잔을 내려놨다. 술 못 하시나 봐요?. 잘 걸렸다 싶었다. 국왕은 내게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뭔가 그가 취한 모습이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가위 바위 보!!"
".."
"늦게 내셨네요!! 완전 반칙. 한 잔 마시셔야겠네."
"아니 이ㄱ.. 후."
가위바위보를 외치며 바위와 보를 외치는 사이에 내가 일찍 내놓고, 국왕이 늦게 내서 반칙을 한 것처럼 몰고 갔다. 내가 이 시대의 선동자. 어그로꾼이다. 속으로 그가 술을 한잔 두잔 털어넣을 때마다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결국 계속된 나의 반칙 몰아가기에
"후."
그가 취했다. 입에 조금 묻은 술을 닦아내며 더는 안 되겠다며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입을 우물거리며 내게 말을 한다.
"부인, 너무하십니다."
'부인' 이라는 소리에 심장이 쿵-.
중전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그저 그러려니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아무 느낌 없었는데.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부인' 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무슨 감정인지 모를 감정에, 심장이 뛰었다. 불규칙하게. 대체 왜냐고 내게 속으로 물었지만, 들려오는 답이 없어 결국 국왕에게 물었다.
"무엇이요?"
"자꾸 저를 반칙자로 몰고 가심이.."
어차피 국왕도 고개를 숙이고 있겠다, 마음껏 웃었다. 물론 소리는 내지 않고. 귀여워서. 얼굴이 조금 붉어진 채 내게 자신을 반칙자로 몰고 간 것이 너무하다고 하는 것이 왠지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들고는 내게 거의 소리치다시피 말한다.
"부인도 반칙이십니다!"
"아닌데요..!"
"자꾸 그렇게 혼자 예쁘시ㅁ..!읍!"
뒷말은 잘렸다. 누구에 의해? 나에 의해. 아니 이 분이, 사람 부끄럽게... 밖에 있는 누군가가 듣고 국왕이 팔불출이라며 자신들끼리 웃을까봐, 그의 입을 급하게 손으로 막았다. 물론 다시 현실의 위치를 자각하고 바로 손을 뗐지만. 사람 놀라게 이 분께서 왜 이래.
술을 마신 그는 불도저나 다름 없었다. 그냥 시도때도 없이 낯간지러운 말을 막 내뱉었다. 물론 술을 안 마셨다고 해서 그가 안 그랬던 것은 아니었던 것도 같지만, 그는 자꾸만 내게
"예뻐요."
"예쁩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예쁘다는 소리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니 이 사람이 왜 이래. 그의 입에서 마구잡이로 튀어나오는 예쁘다는 소리에 정말 몸둘 바를 몰라서 눈동자만 굴리며 하하. 하고 웃고 있으면, 그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병풍 뒤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서 내게 건네며 말한다. "선물입니다."
내가 상자를 받자마자 내 옆에 털썩 하고 앉더니, 급기야 내 무릎을 베고 누워버린다. 깜짝 놀라서 무릎을 뺄 뻔 했지만, 다행히도 그의 머리는 땅에 박히지 않았다. 내 무릎을 베고 잘도 자고 있는 그를 보다가, 그가 건넨 상자에 시선을 옮겼다. 붉은 색 비단으로 감싸진 상자. 그 상자를 조심스럽게 여니,
그 안에는 비녀가 들어있었다. 초가을을 알리는 듯 붉은 색과 노란 색의 동그란 장식이 단아하게 달려있는 비녀.
잠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는지 그는 말을 흐리다 결국 정말 잠들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고민을 하다가, 결국
비녀를 뻈다. 이동혁이 준 벚꽃 모양 비녀를. 내 손으로 뺐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내쉰 뒤, 국왕이 준 비녀를 꽂았다. 이렇게 내게 배려해 주는 사람이 준 선물을, 안 하고 져버리는 것은 너무 아니다 싶었다.
그의 말대로 봄은 지나가고, 가을이 왔다. 가을이.
이동혁 생각을 또 접으려 하는데, 눈 앞에 술상이 시야에 꽉 찼다. 내가 이곳에 와서 술을 처음 먹었던 날. 이만큼 친해질 줄 몰랐던 이민형과 이태용의 집에서, 술을 마신 날. 그리고,
국왕에게 시집 오기 싫다며 엉엉 울던 그 날. 이동혁네 집에 가서 도포를 건네주고 그곳에서 잠들어버려서, 이동혁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잠든 날.
결국 생각의 종점은 이동혁인가 싶어, 억지로 생각을 안 하는 짓은 그만하기로 했다. 오늘만, 딱 오늘만 하기로 했다. 네 생각을.
아직도, 널 처음 만난 순간이 떠오르고, 같이 있던 매 순간들이 떠오르는데 , 네가 채워준 토끼풀 팔찌가 잔상으로 남아 아직까지 아른거리고, 함께 하던 식사마저 그리운데. 미안해. 내가 지금 네 곁이 있지 못해서.
생각을 하나 할 때마다 술이 한 잔씩 입으로 들어갔다. 쓰다. 역시나.
찬찬히 곱씹었다.그에게 처음으로 고백을 받았던 날, 비가 오는 날 저자거리에서 그를 만나 내 진심을 고백한 날, 몽이를 보러 가고, 하루종일 같이 있던 날.
이곳에서 처음 만나고 처음 친해진 사람. 그리고 처음 마음을 준 사람. 이동혁이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가 힘들고, 점점 쳐진다. 이젠 온통 슬픈 생각들 뿐이라서. 한 잔, 두 잔. 입으로 들어가다 보니, 점점 취기가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떨어지는 눈물이, 들썩거리는 몸이, 무릎에서 자고 있는 그에게 방해가 될까 최대한 자제했다.
동혁아, 내가 지금 너에게 미안한 이유는, 너의 옆에 있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가끔씩 국왕에게 느끼는 감정이 네게 미안할 감정이라서 그런 것일까.
동혁아, 나도 잘. 모르겠어.
*
이름이 결국 뻗어버렸다. 이름이 제가 마신 술에 이기지 못해 잠들어버린 후,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재현이 깼다. 느릿하고 부드럽게, 눈을 떴다. 자신이 어디서 자고 있는지에 대해 자각을 하기 위해서였다. 재현이 눈을 떴을 때, 이름이는 그녀의 등 뒤에 있던 장에 머리를 기댄 채 앉아서 자고 있었다. 물론 그가 잠들어 있던 곳은 이름이의 무릎이었고.
그것을 자각한 뒤, 재현은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나다 앞에 있는 상에 머리를 박기까지 했다. 내가 왜 여기에.. 그는 일단 밖에 있는 신하들에게 상을 치우라 명한 뒤, 고민했다. 그녀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리고 그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재현이 그녀의 목 뒤와 무릎 뒤쪽으로 손을 넣어 그녀를 들었고, 침대에 내려놓으려 할 떄였다.
"아 추워. 진짜 개추워. 여름 아닌 듯."
그녀가 갑자기 입을 열더니 이상한 말을 내뱉으며 자신의 뒷목을 끌어안았다. 그 덕에 그는 무게중심이 흐트러져 버렸고, 이름을 안은 채로 넘어졌다. 물론 그가 넘어질 때 몸을 돌리는 바람에, 재현이 먼저 넘어지고 위에 이름이 넘어졌다.
자신의 아픔은 생각도 안 하는지, 일단 이름이 안 다친 것을 본 재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이름이의 손을 가만히 보다가 그의 손가락으로 한 번 콕 찔렀다. 그러자, 아이가 어른 손 잡듯 그의 손을 잠시 잡더니 또 놓아버리고는 자버리다. 그런 이름을 보며 웃던 재현이, 촛불도 자신의 손바람으로 꺼버린 후 그녀의 옆에 조심스럽게 누웠다.
나란히 천장을 보고, 누워있다가 힐끗. 하고 옆에서 잠든 그녀를 보았다. 조그맣게 들어오는 달빛에 얼굴이 조금 보이는 이름을 보는 재현이다. 기분이 좋은지 자면서 웃는 이름을 보자, 괜히 마음 한 쪽이 쿵쾅거리는 느낌에 다시 시선을 천장으로 두고 한 번 숨을 크게 내쉰 재현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리고는 다시 놓았다.
이제 조금 이름이 자신에게 터놓고 다가오고 있는데, 합궁이라니. 국왕으로서 미루고 싶었다. 어명이었다. 허나, 성격급한 신하들 때문에 결국 오늘로 지정되어 버렸고 이름이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 매우 미안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자신은, 다시는 그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리.
그리고, 그녀보다 앞서 품은 마음이라고, 앞서 없앨 마음이 아니니 이름이 마음을 온전히 다 여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재현이 눈을 감았다. 바람 부는 소리 하나 없는 조용한 밤이었다. 잠을 청했다.
달과 별이 서로 속삭이는 밤이었다.
! 작가의 말 ! |
일단 죄송하다는 말부터 드리고 시작할게요 ㅠㅠㅠㅠ죄송해요 많이 늦었죠 제가 T^T 해야 할 일이 좀 바빠지는 바람에 헝헝.. 요즘 미세먼지랑 꽃가루 장난 아니던데 다들 잘 관리하고 계시죠? ㅠㅠ 꼭 마스크 쓰고 다니세요! 아, 그리고 혹시 어제 제가 올린 글 보신 분 계세요..? 없길 바라면서.,.애몽 올려 봅니다 헝헝. 많이 쪽팔린 글이라 지워 버렸어요 ㅋㅋㅋㅋ주륵. 또 하나 죄송해요 ㅠㅠ 저번 화 댓글을 일일이 다 못 달아 드린 것에 대해서 ㅠㅠㅠㅠㅠ 초심 잃은 거 아니에요 헝헝 항상 모든 댓글들 다 읽고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또 열심히 하는 니퍼 될게욧... ♥ 오늘도 많이 부족한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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