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창밖을 보고 있으면 무언가 나타나기라도 하는 듯이.
처음에는 정말 꿈인가 싶었다. 눈을 떴을 때 달라진 것 하나 없이 현실로 와 있었으니까. 잠시 꿈을 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자꾸만 무언가 잊고 있는 듯한 이 느낌이 이상했다. 분명 누군가가 기억이 날 것 같은데 생각해 내려고만 하면 가슴이 시큰거리는 게 이상한 느낌이었다.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생각해내지 못 한 것이 꽉 뭉쳐진 덩어리를 삼킨 듯 답답했다.
방학식 하루 전, 온통 자습 뿐인 반에서 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노트를 펼쳤다. 일단 이 답답함부터 풀고 보자는 마음에 생각나는 단어는 모두 적었다.
한복
궁궐
달밤
달밤. 달밤. 뭔가 이상했다. 분명 일상적인 단어인데 뭐가 그렇게 걸리는지. 그리고 다음 단어를 생각해 냈을 때
토끼풀.
이동혁.
네 이름을 찾았다.
놀란 마음에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펜을 쥔 손을 떨고 있었다. 달밤, 토끼풀, 장갑, 담요. 입궁, 그리고 혼인식. 노란 국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떠올랐다.
한국을 떠나 청나라로 가려고 했을 때 챙긴 하나의 장갑.
짙은 남색이었다.
*
한 시간을 푹 자고 나면 마음이 진정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전과 다를 바 없었다. 갑자기 입을 틀어막고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는 나를 본 짝꿍은 어디 아프냐 물었고, 대충 배가 아프다 둘러대자 보건실에 가 한숨 자고 오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잘못 들어왔다.
"책 펴."
"아, 선생님 솔직히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맞아요!!"
"펴세요."
문학이었다. 삼일 쯤 전부터 본인은 이 책을 꼭 끝내야만 하겠다고 수업을 하던 문학선생님의 시간이었다. 망했다 망했어. 심지어 오늘은 두 개의 작품을 나간다는 말에 애들은 야유를 보냈고, 그럼에도 꿋꿋하게 칠판에 글씨를 적는 선생님이셨다.
p87. 전에 건너 뛰고 안 했다는 작품이었다. 아니 무슨 저렇게 안 한 작품을 귀신같이 잘 알아? 현주는 뒷자리에서 욕 섞인 말을 하며 누웠고, 난 그저 책만 볼 뿐이었다.
億故人(억고인)- 이 매창.
온통 한자로 써져 있는 시였다. 선생님께서는 한번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해 보라며 칠판에 한자풀이를 하기 시작하셨고 난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에 몸을 움츠렸다.
春來人在遠(춘래인재원)
對景意難平(대경의난평)
鸞鏡朝粧歇(난경조장헐)
瑤琴月下鳴(요금월화명)
看花新恨起(간화신한기)
聽燕舊愁生(청연구수생)
夜夜相思夢(야야상사몽)
還驚五漏聲(환경오루성)
"수업 시작한다. 자는 애들 다 깨우고~"
하나도 모르겠는 한자에 책상에 엎드리려다 수업 시작도 안 했는데 반절이 엎드려 있는 반을 한 번 둘러본 후 한숨을 쉬었다. 눈치가 보여서 못 눕겠네. 하필이면 전 시간에 보건실에 누워 자고 온 후라 눈도 감기지 않았다.
"강우가 목소리가 좋으니까 읽어 보자."
맨 앞에 앉아 있던 반장이 일어났고, 녹색 칠판에 흰 분필로 적힌 풀이를 낭독했다. 그런데
"봄이 왔다지만 님은 먼 곳에 계셔
경치를 보아도 마음이 편치않아요"
봄이 왔다지만 님은 먼 곳에 계셔 …. 로 시작한 시의 풀이는
"난새 거울에 아침 화장을 마치고
달 아래서 거문고를 뜯지요
꽃을 볼수록 새로운 설움이 일고
제비 우는 소리에 옛시름 생겨나니
밤마다 그대 그리는 꿈만꾸다가
새벽 알리는 물시계소리에 놀라 깬답니다,"
임이 없는 봄에 꽃을 봐도 설움이 생기고 임을 그리는 꿈만 꾸다 새벽을 알리는 소리에 깬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임이 없는 봄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시인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없는 그 세상에 다시 봄이 온다면 아니, 오겠지.
수업 듣긴 글렀네. 결국 다시 밀려오는 눈물에 엎드리고 말았다.
…동혁아, 혹시 내가 없는 너의 봄은 이런 봄일까.
*
"미친. 벌써 졸업이야!!!"
"춥다."
"그니까."
오랜만에 들어온 강당에서 자리를 찾아 앉기 전에 한 번 빙 둘러 보았다.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강당은 우릴 위한 축하로 가득차 있었다. 많은 학부모님들이 오셨고, 또한 많은 후배들이 참석을 했다. "고3이 졸업하면 고2는 무조건 참석."이라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툴툴거리는가 싶더니 졸업식이 시작할 기미가 보이자 모두들 자신의 미래를 그리는 듯 들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네가 보였다.
3학년의 뒷쪽, 2학년 석에 앉아 있는 네가 내 시야에 가득 찼다. 그 자리에 멈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옆에서 왜 그러냐는 현주의 말에 그녀의 팔을 잡고 말을 꺼냈다.
"… 쟤. 뭐야?"
"누구 말하는 거야?"
내 말에 현주는 누굴 말하는 거냐며 내게 다시 한 번 물었고, 난 현주에게 이동혁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쟤 말이야. 저기 앉아있는 애."
현주는 내 말을 듣더니 한 번 인상을 찌푸리고는 내게 말했다. "아, 전학 왔다는 애?"
"……전학생이야?"
"아마도? 2학년에 누구 전학 왔다고 그러던데. 잘 생겨서 인기 진짜 많대."
대체 왜. 네가 여기 있는 것일까. 잘못 본 것일까. 혹여나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정말, 꿈이 아니라면 네가 맞을까. 정신 없이 가만히 서 있는 내 팔목을 현주가 잡았다. "추우니까 빨리 가서 앉자." 그제서야 정신이 좀 든 나는 앞에서 두 번째 줄 자리에 오들오들 떨며 착석했고, 그와 동시에 허벅지에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아 화장실 가고 싶은데. 아까부터 중얼거리던 현주가 결국 교장선생님의 졸업식을 거행하겠다는 말씀에 내게 물었다. "너 4분의 4박자 알지." 현주의 말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그런 내게 잘 부탁한다며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아니 그러니까,
네가 할 애국가 지휘를 나더러 하라고?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 도중 현주는 학생부장 선생님꼐 뭐라 말 한 뒤 배를 부여잡고 강당을 나갔고, 난 내게 오는 학생부장 선생님에 의해 무대 옆쪽으로 이동했다.
심란했다. 내게 지휘를 맡겨서가 아닌 너 때문에. 꽉 차 있는 강당 안에서 너만 보였다.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발 끝만 보다가 "애국가 제창하겠습니다."라는 학생부장 선생님의 말에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무대를 보는 너였다.
"…"
그리고, 허공에서 시선이 맞닿았다.
애국가 제창을 하기 위해서 지휘자가 올라와야 하는데 아무도 무대에 모습을 비추지 않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서로 시선이 맞닿아 있는 상태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였다.
'가야지.'
"……?"
'앞으로.'
날 응시하고 있던 네가 조금 약간의 미소를 얼굴에 띄우며 입모양으로 내게 건넨 말이었다. 가야지, 앞으로. 분명히 그렇게 보았다. 그리고 그는 눈짓으로 무대 중앙을 가리켰다. 안 그래도 심란했던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정말 온 몸이 다 굳어버린 것만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발은 무대 중앙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어서 애국가의 시작을 알리는 노래가 나왔고, 정말 어떻게 지휘를 했는지 모르겠다. 박자를 맞춰 지휘를 하긴 했는지, 그 뒤 부터는 생각이 안 난다. 지휘하는 내내 이동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역시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애국가를 따라 부를 뿐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지휘를 마친 후 자리에 가기 전에 강당 준비실로 향했다. 다리에 힘이 다 풀려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저 아까 내가 본 사람이 이동혁이 확실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확신을 내리기 급했다.
결국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 한 채 다시 자리로 향해 뒤를 돌아보았을 때에는, 그가 없었다. 헛 것을 본 건가. 아닐 텐데…,갑자기 사라져버린 이동혁 때문에 당황한 내게 애국가 제창 도중에 들어온 현주는 꽃을 건넸다.
"무슨 꽃이야?"
"몰라? 아까 걔가 너 주라고 하고 갔어."
"걔?"
"아까 네가 물어본 전학생."
역시, 헛 것을 본 게 아닌가 보다. 그녀가 건네는 그 꽃을 얼떨결에 받아 품에 안았다. 그런데,
"걔는 대체 겨울에 이런 걸 어디서 구해온 거야? 벚꽃이 피긴 해?"
"……"
"뭐야, 너 울어?"
벚꽃. 벚꽃이었다. 문득 후궁을 만나러 갔던 날을 떠올려 본다. 혹시나,
그 때 네가 내게 주지 못 했던 꽃을 지금에서야 주는 것일까.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강당을 박차고 나왔다. 그러나, 애국가 제창 후 보이지 않았던 넌 역시나 졸업식 후에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렇게 허무하게 우리의 만남이 끝나버린 것일까.
*
“벚꽃은, 봄이 지나가서 잠시 진 거야.”
“..”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나면,”
.
*
졸업식을 한 지 두 달이 지나버렸다. 넌 그 후로 볼 수 없었고, 두 달 전의 네 모습이 내겐 마지막 너의 모습이었다.
"거기 조금만 있으면 갈게!"
대체 얘는 자꾸 어디서 알바자리를 구해오는 건지, 이번에는 도서관 사서 알바 자리를 구했다. 대학교에서 꽤 많이 떨어져 있지만 시급이 쎄다는 현주의 말에 공강인 날마다 알바를 하기로 했고 오늘은 그 알바의 첫 날이었다. 수강신청을 폭망해버리는 바람에 금공강을 못 한게 망했지만 돈이나 많이 벌자 싶었다.
"여기는 … 문학."
현주와 친하다던 사서 언니는 정말 딱 현주와 비슷한 성격이었다. 친화력 하나는 끝내주는 미정이 언니는 내게 책들이 어떻게 분류 되어 있는 지 알려주었고, 나는 하나하나 다 머리 속에 집어넣었다.
"그럼 잘 부탁해~"
"네!"
언니는 도서관 문을 열고 나갔고, 나는 가만히 앉아 아까 언니에게 들은 말들을 되새기는 중이었다.
AM10:30. 오전이지만 토요일이라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일까. 오십 개쯤 돼 보이는 자리들 중 벌써 반절 이상이 찼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많이 없는 것 같았다. 대부분이 공부하는 학생들이었고, 그 덕에 도서관 안은 연필이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적막 속에서 울릴 뿐이었다.
아무래도 사서 자리가 문과 가까이 있다보니 자꾸만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빼앗기기 일쑤였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을까. 문이 열리자 이젠 자동적으로 고개가 돌아갔고
붉은 색 옷을 입고 책가방을 멘 네가 들어왔다.
그렇게 또 한 시간이 흘렀다. 네가 맞다면 내게 아는 척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그저 넌 내게 6번 자리요. 하고는 무정히 날 지나쳐 6번 자리로 향할 뿐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붉은 색은 잘 어울리네.
이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말할 수 없었다. 이젠 현실과 꿈마저 구분되지 않았다. 네가 내게 건넨 꽃다발이 현실이었는지, 아니면 이것마저 모두 꿈이었는지. 혼란스러웠다.
계속 보고만 있어 봐야 눈물만 자꾸 고여, 켜져 있는 컴퓨터로 시선을 옮겼다. 오랜만에 보는 컴퓨터가 익숙하지 않았다.
이젠 그곳에 익숙해져, 스마트폰 중독자 같이 굴던 내가 스마트폰을 잘 찾지도 않게 됐고, 현대 음식보단 너와 먹던 저자거리 밥이 더 입에 맞았었는데. 마치 오래 전부터 그곳에 살았던 것처럼 이젠 그곳 생활이 더 익숙한 나였다. 그리고
너 하나면 충분했던 나의 삶이었는데.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랑을 받은 덕에 이정도 고통은 내가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면, 받아 들여야 한다.
혹시나 네가, 전 기억을 다 안고 있다면.
잠시 네가 사랑했던 내게 못 주었던 꽃을 준 것이고, 이젠 더 이상 아프기 싫어 날 모른 척 하는 것이라면.
“말 하지 말지 그랬어.”
“..”
“차라리 말하지 말고, 끝까지 숨기고 가지 그랬어.”
널 이해 해야만 했다.
“이미 국왕의 물건으로 가득찬 교태전을 보고도, 밤 산책 하는 국왕과 네 모습을 보고도,”
“..미ㅇ..”
“네 머리 뒤에 꽂힌 비녀를 보고도 애써 모른 척 하려고 했어.”
내게 네게 준 아픔이 무엇인지 잘 알기 때문에. 그런데, 자꾸만 내 마음은
"저기."
"?"
"…ㅁ…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 알려줄게!!"
익숙해진 너를 찾았다.
*
내가 미쳤다고 그랬지.
난 공부를 그리 잘 하는 편이 아니었다. 혹시나 정말 물어보기라도 한다면? 그랬는데. 내가 모르는 거라면?. 끔찍했다.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그는 왜 그러냐며 묻지도, 인상을 지푸리며 싫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공부에 집중하는 너였다. 그래, 사람이 끝난 후 후회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 때 그 곳에서 네 머리 한 번 쓰다듬어본 적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야. 지금에서야 공부하는 널 보니 자꾸만 머리로 가는 손을 억제하려 애썼다.
그 때였다. 나를 자책하며 한숨을 쉬고 있었을 때. 네가 갑자기 일어나 내게 책을 들고 다가왔다. 설마 진짜 물어보려는 건가.
"이거. 모르겠어요."
3616 이동혁. 네 이름이 정갈하게 쓰여진 책을 펼쳤다. 고전 문학. 그래, 국어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존나 다 한자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주. 아니 시발 요즘 책들은 왜 해설을 옆에 안 써 줘? 이제 와서 모른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눈을 조금 돌려 그를 쳐다보니
"…"
오랜만에 가까이서 보는 네 얼굴에 코끝이 찡해질 뻔 한 걸 겨우 참았다. 담담히 펜을 쥐고 일단 아는 대로 해석해 나가려는데, 자꾸만 손이 떨렸다. 옆에 있을 때 풍기는 네 향기가, 그대로였다.
자꾸만 집중을 하지 못 하는 나를 너는 알기라도 한 듯이, 내게 말한다.
"월요일 다섯 시. 뭐 해요?"
"어?"
월요일 다섯 시에 내가 뭘 하더라. 아마 강의는 4시에 끝날 듯 싶다. 그러면,
"할 거 없어."
"그럼 그 때 나 만나요."
"…?"
"만나서 알려줘요. 문제. 제가 지금 가야 돼서."
분명 문제를 알려달라는 목적으로 만나자는 말인 텐데. 왜 가슴이 뛰는 지 모르겠다.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이동혁은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고, 나는 뭐냐는 듯 그를 가만히 쳐다 보고 있었다.
"공부하기 좋게 막힌 카페 내가 알아요. 어딘지 카톡 할게요."
그런 네게 폰 번호를 찍어 건네주자, 너는 "월요일 날 봬요." 하며 가방을 멘 채 도서관을 빠져나갔고, 나는 멍하지 네가 남기고 간 책만 바라봤다.
이제 나는, 널 만날 월요일만 죽어라 기다리겠지.
*
아무것도 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월요일이 밝았다. 토요일 밤, 그리고 오늘까지 네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그 곳에서의 너와 나. 마치 회상하듯.
‘이동혁 바보. 진짜 얄미움.’
‘손이 예쁜 이동혁은 밥이 맛있는 곳을 안다.’
토요일 밤에는 이동혁과의 만남 초반의 이야기가 꿈 속에 나왔다. 너를 처음 만난 날, 그리고 네 마음을 들었던 달밤 아래의 우리.
일요일 밤에는,
.
“울지 마.”
.
“혼인, 안 할게.”
“…어?”
“그러니까 울지 마. 제발.”
네 혼인 소식을 들은 내가 네게 찾아간 날이었다. 미칠 지경이었다. 네가 나온 꿈이니 행복한 꿈이라 해야 하는 건지, 이젠 더 이상 이러지 않는 우리이니 악몽이라 해야 하는 건지. 결국 해답을 내리지 못 한 채 네가 내게 건네준 문제집은 꺼내 보지도 못 하고 이틀을 보냈다.
그리고 진동이 한 번 울렸다. 아무 것도 없는 프로필. 그리고 너의 이름 '이동혁'. 카페의 주소가 찍힌 카톡이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좀 든 나는 전공책 대신에 3616 이동혁. 네 이름이 적힌 문제집을 들고 학교로 향했다.
'상사몽-황진이'
네가 내게 물어본 시였다.
*
내가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국문학과 교수님이셨다. 그 곳으로 간 게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 해석해 주셨으니, 결과적으로는 잘 찾아간 것 같다.
네가 보낸 카페의 주소를 따라 와 보니, 정말 칸막이가 쳐져 있는 카페였다. 어쩌면, 이건 시를 해석하고 난 후의 나를 위한 너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뻥 뚫리고 사람 많은 곳에선 맘 편히 눈물을 보일 수가 없으니.
"저 왔어요."
곧이어 네가 칸막이를 걷고 들어와 내 앞에 앉았고,
"…다 해석 해 왔어."
"…했어요?."
"…이동혁."
난 다짜고짜 이동혁에게 가서 안겼다. 그 익숙한 향이 코 끝을 간지럽혔다. 그의 품에 안기니 불편했던 응어리가 다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장시간 반응이 없던 그가 불안해 마음을 졸이자, 그의 손이 내 등을 토닥였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
"모르면 어쩌나 했네."
그런 그의 말에 서러웠고 미안하고, 또
사랑하는 모든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토해냈다. 동혁아, 미안해. 이제야 알아서.
"일부러 모른 척 비슷하게 했더니, 아는 척도 먼저 안 하고."
"…"
오랜 시간을 울었다. 아무 것도 못 하고. 그저 엉엉 울기만 했다. 마치 잃어버렸던 소중한 감정을 되찾기라도 한 듯이.
"다 울었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원없이 말했다. 사랑한다고. 늘 고마웠고, 앞으로도 고마울 거라고.
내 말을 듣고 한 번 웃어보이는 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동혁아, 근데."
"어?"
"내가 누나야."
늘 우리의 시간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
황진이-상사몽
相思夢 - 黃眞伊
相思相見只憑夢(상사상견지빙몽)
儂訪歡時歡訪儂(농방환시환방농)
願使遙遙他夜夢(원사요요타야몽)
一時同作路中逢(일시동작로중봉)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내가 님 찾아 떠났을 때 님은 나를 찾아왔네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
같이 떠나 오가는 길에서 만나기를
*
햇살이 창문을 통해 내 방으로 걸어들어왔고
기분 좋은 바람에 눈 앞의 풀들이 흐드러졌다.
꽃봉우리가 제 꽃을 피우려는 듯 가지마다 매달려 있었고
흰 눈은 자취를 감추었다.
새들이 속삭이는
봄이었다. 꽃이 필 차례였다.
! 작가의 말 ! |
안녕하세요 니퍼입니다 ! ! ㅠㅠ 사실 동혁이 편이 제일 술술 잘 써질 줄 알았는데 마음대로 안 돼서 조금 힘든 부분이 있었네요 흑흑. 동혁이 완결을 쓰게 될 줄이야 T^T.. 늦으면 일요일, 빠르면 이번 주 내로 스핀오프나 한 번 올까 하는데 어때요!!!!!!!!
오늘도 좋은 꿈 꾸세요 '_'
♥ 늘 부족한 제 글 좋아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