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대망상/선수없음]겨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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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오는 날이였다.겨울에 눈대신 비가 오는 것은 있을까 말까한 일이였고 더더군다나 비는 여름날의 장맛비처럼 많이 내렸다.조용하기만 한 집 안에 천둥이 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여자는 잠에 쉽게 빠져들지를 못했다.남자는 잠에 쉽게 빠져들지를 않았다.여자가 목까지 덮은 이불을 꼭 움켜줘고 번쩍번쩍 내리치는 번개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건너방의 남자는 짐을 싸고 있었다.잘때 문을 열어놓고 자는 여자가 방문틈새로 삐져나오는 불빛을 혹여 보기라도 할까봐,불도 못 켜고 남자는 짐을 싸고 있었다.본래 자신의 집이 아니였기에 남자가 가지고 있는 짐은 간소했다.하나둘 가방 속 빈공간은 없어지고 담아야 할 물건들은 없어져 갔다.침대 옆 협탁에 놓아둔 액자가 내리치는 번개 덕에 보였다.앉은 몸을 일으켜 액자를 집었다.환히 웃는 여자와 남자였다.이상하게도 남자는 비집고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애써 손바닥으로 눈을 꾹꾹 누르다 한숨을 쉬었다.떠나자니 사진 속 웃고 있는 여자가 걸렸다.목에 걸린 생선가시마냥 아리고 넘어가지 않았다.
"아저씨,자요?"
자신이 베고 있던 베개를 들고와 여자가 방문을 열었다.남자가 급히 액자를 내려놨다.불을 꺼놓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안 그랬다면 벌겋게 충혈된 눈을 들켰을 게 뻔했다.못 볼걸 알면서도 괜히 웃으며 남자가 말을 했다."왜,잠이 안와?"남자의 말에 여자가 껴안은 베개를 더 꼭 껴안고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남자가 팔을 들어 양옆으로 펼쳤다.여자가 쪼르르 달려와 안겼다.여자가 쓰는 바디로션 향이 올라왔다.항상 맡던 향인데 남자는 괜히 코가 찌르르해지는 것만 같았다.그런 남자가 여자를 더 쎄게 껴안았다.그럼 여자도 더 쎄게 안겼다.
"재워줄게,자자."
남자가 침대 위로 여자를 눞혔다.여자는 방글방글 웃으며 남자에게 안겼다."웃지마,정들어."남자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여자가 고개를 빠끔 들고는 남자를 올려다봤다."어짜피 정든 거 더 들라고 하는 거죠."남자가 피식 웃곤 자자,하며 등을 쓰다듬었다.등을 쓰다듬는 손이 따뜻했지만 여자는 잠이 더 오질 않았다.아까 내려친 번개 덕에 이미 잠은 달아난지 오래였다.남자가 몇 분을 말 없이 등만 두들기던 손을 멈췄다.깊게 한숨을 뱉었다."자냐."말을 꺼냈다.속이 다시 쓰리기 시작했다.
"자나보네.안 자더라도 그냥 들어.나 없어도 잘 지낼거라고 믿고 가는 거야.아침에 빵먹지 말고,밥 챙겨먹고.배 아프면 꼭 약 먹고.설거지한답시고 칠칠맞게 그릇 깨먹지말고.또,아무한테나 웃어주지 말고,남이 하는 말 곧이곧대로 다 믿지말고.남 함부로 껴안지 말고.나 하나 없다고 울지말고.누가 사탕 준다고 꼬여내도 따라가면 절대 안되.그리고 고마웠어,나란 사람 옆에 있어줘서,행복했어,널 만나서.맨날 밤마다 울 수 있어.늘 그립겠지.근데 너도,나도 그냥 그리운 채로,그냥 그런 채로 살자."
남자는 말을 하는 내내 목이 막혀와 말을 제대로 하지를 못했다.여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도피였다.사랑해서 떠나는 거라 합리화 시키기로 했다.남자가 침대에서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나갔다.여자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생전 느껴보지 못한 복잡한 감정이였다.머리가 순간 어질했다.방문 밖으로 거실을 걸어가는 남자의 발소리가 들렸다.아무생각도 들지 않았다.그저 잡아야겠다 그 마음 하나였다.방문을 벌컥 열고 현관에 서있는 남자를 향해 여자가 달려가 안겼다.
"갈거면 간다하지 왜 몰래가,사람 더 힘들게 왜 몰래 가."
"...힘들지 말라고 몰래 가려던 건데,"
"어디가는데요.왜 가는데,왜 가는데."
"너 위해서 가는 거야."
"아저씨,생각 바뀔 맘 없어요?"여자가 울음끼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남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방금까지도 남자를 꽉 안았던 팔이 힘 없이 떨어졌다."금방 돌아와요.제발."여자가 남자에게 말했고,남자는 말이 없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곤 작게 중얼거린 후 현관을 나왔다.번개는 아직도 내리쳤다.비도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날씨도,기분도 을씨년스러웠다.
*
남자가 중얼거리고 간 3글자 말에 여자는 주저앉아 울수밖에 없었다.자신이 이기적으로 굴어 돌아오는 벌이라 생각하기로 했다.눈물에 막혀 하지 못한 말을 끈임없이 그 자리에서 되풀이 했다.혹여라도 들어주기라도 할까봐.부모 잃은 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비도 따라 울었다.생각해 보니 이상하기 그지없는 날이였다.남자가 했던 말들이 새록새록 머리에 각인되는 것 같았다.아직도 자신에게 웃어주던 남자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져 더 아팠다.
현관문을 나간 남자는 그대로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았다.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서러운 울음소리가 자신의 발목을 잡는 듯했다.그냥 자신의 몸만 밖으로 나온 기분이였다.쓸모없기 그지없는 영혼은 아직 그 여자 옆에 앉아 어르고 달래주고 있는 듯 했다.집 밖에 나오자 한 없이 후회됬다.그깟 놀이동산 같이 갈걸,그깟 사랑한단 말 더 해줄걸,조용한 겨울밤.시린 겨울밤이였다.
*
더보기 계절이 몇번 바뀌었다.여자 혼자 지낸 겨울은 어느새 5번이였다.혹여라도 내일이면 돌아올까,하는 마음은 이미 접은지 오래였다.헛된 바램은 더 아프가만 했기 때문이다.밤이면 울음을 터트렸다.밥먹을 때도,잠잘때도 그리웠다.어린 감정이 감당하기엔 컸다.유독히 아픈 날에는 편지를 썼다.못 부칠걸 알면서도 그냥 썼다.처음엔 원망도 많이 했다.욕을 하면서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그럴때마다 돌아오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이였다.자신이 더 잘해줬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도 하기도 했다.남자가 돌아올까 이사도 가지 않았다.비밀번호도 바꾸지 않았다.안 돌아오더라도,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 생각했다.
여느 날처럼 추운 날이였다.몇일 전 슈퍼를 가다가 본 꽃집에 있는 꽃이 아름다워서였다.꽃을 사는 내내 남자에 대한 생각도 떠나질 않고 계속되었다.한 아름 꽃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날이 제법 추웠다.감기는 걸리지 않았으려나 걱정되었다.익숙하게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현관의 신발이 눈에 띄었다.심장이 뛰었다.한 발짝 한 발짝 조금 열린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열린 문틈 새로 보이는 뒷모습은 그토록 바라던 사람이였다.문을 열고 조심스레 다가갔다.매일 밤 다녀가 환영마냥 없어져버릴 것 같았다.조심스레 껴안았다.
"아무나 이렇게 막 껴안지 말라그랬는데."
나는 분명 뇌물 줬어.빤낭 와.
아 디셈버 노래 느므 좋다 눈물나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