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경직된 노크 뒤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거실에 앉아있던 나와 전정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피스와 정장으로 다른 날과 다르게 격식을 차려 입은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무섭다."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나도 모르게 뱉어버린 말이었다.
공기마저 무겁던 조용한 차안에서 나의 말에 전정국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고 눈을 마주쳤다.
〈sub>
〈/sub>
"쫄보."
퉁명스러운 말투와 표정과는 다르게 한 쪽 손을 내 어깨에 올리며 살짝 토닥여주는 전정국이었다.
그게 뭐라고 어깨에 느껴지는 따듯한 온기가 내 마음을 조금씩 안정시켰다.
우리는 19년간 이런 일을 함께 겪어왔다.
그렇게 싸우고 투닥될지라도 지금 이 순간 서로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안녕하셨어요?"
나의 시댁. 전정국의 집.
이 곳은 어렸을 때부터 나에겐 공포와 같았다.
유럽의 궁궐을 연상하게하는 아름다운 큰 저택을 보며 어린 나는 이 집에 잡아먹힐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였었다.
지금도 다른 건 아니다.
오늘 시아버님이 출장으로 자리를 비우셔서 시어머님, 전정국 그리고 나의 셋의 식사였고,
시아버님이 안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불안한 마음은 더 커져갔다.
시아버님이 안계시단 건 시어머님으로부터 날 보호해줄 사람이 없다는 걸 의미했으니깐.
여러 식기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큰 식당에 울려퍼졌다.
이 곳의 분위기가 너무나 엄숙해서 그 소리는 더 내 귀에 더 크게 울려퍼졌다.
"너희 집 식구들은 잘 계시니?"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 아픈 사람인데 걱정하는 게 당연하지."
나의 시어머니, 즉 전정국의 어머니의 가시박힌 말투에 나는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익숙한 일이었고, 그래서 이 정도는 거뜬히 참을 수 있었다.
전정국의 어머니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날 많이 미워했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약혼을 하게 된 것.
그것은 분명 기업의 많은 어른들의 결정이었음에도 나의 시어머니는 그 탓을 나에게로 돌렸다.
시어머니는 이제 막 태어난 전정국을 끌어안고 '그딴년'에게 아들을 주기 싫다고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를 '그딴년' 인 나에게 직접 해주셨다.
아끼는 아들에게 태어나자마자 배우자가 정해졌다는 기구한 운명에 엮이게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나의 친엄마가 정신병에 걸렸다는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기업 중 하나인 우리 아버지의 회사 '탄탄기업'의 안사람이 제정신이 아니었음은
세상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일이었고, 전정국의 어머니도 잘 알고 있었다.
전정국의 신부로 결정 된 나는 자라오면서 전정국의 집을 우리 집 만큼이나 자주 드나들었다.
이 곳에서 어린 전정국과 어린 나는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여러가지 장난을 치곤했다.
어렸을때부터 나는 전정국과 함께 노는 게 정말 좋았고, 전정국의 집에는 우리의 추억이 참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을 무섭게 느꼈던 이유는 전정국의 어머니때문이었다.
전정국의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음식이나 간식의 양을 적게 준다거나, 은근슬쩍 밀친다거나, 작게 욕설을 읊는 등의 행동들을 보였다.
그런 행동들이 어린 나는 그냥 당연한거다 싶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참 무서운 행동들이었다.
직접 남편이나 기업의 사람들에게 전정국의 약혼을 파혼시켜달려는 요구는 할 수 없었겠지만, 어리고 약한 나를 괴롭히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흐윽- 너네 엄마는 마녀야! 나만 보면 화를 내! 흐엉"
"맞아, 우리 엄마는 마녀야. 그러니깐 뚝해"
"왜 뚝해!! 안뚝해!! 맨날 나만 미워하고 무서워어 흐으윽"
"내가 평생 마녀한테서 지켜줄 테니깐 뚝해."
"정말?"
"응. 약속해."
생각해보면 날 잡아먹을 듯한 큰 집에서 날 버티게 해준 건 언제나 전정국이었다.
오늘도 여전히 무서운 이 집에서의 문득 어린 날의 전정국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미친년."
그런 날보고 시어머님은 작게 읊조렸다.
그 소리에 나는 놀라 경직되었다.
"미안.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나왔네.
이해할게 너가 미친건 너네 엄마 닮아서 그런거니깐."
눈물이 나올 것같아서 더 고개를 숙이고 꾹 눈을 감았다.
어서 이 악몽에서 깨길 바라면서,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면서.
"진짜 미친 건 본인이겠지"
전정국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나는 처음에 잘못들은 건가 싶었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놀란 토끼눈이 그 소리가 진짜 전정국 입밖에서 나온 소리임을 깨닫게 했다.
"미안.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나왔네. 이해하세요. 나도 우리 엄마 닮아서 그런거니깐."
"정...정국아..."
"나이 드시고 쪽팔린 줄 아세요.
아들인 나는 매일 아내한테 이런 엄마 둔게 쪽팔리니깐."
전정국은 그대로 내 손목을 잡고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뒤에서 시어머님의 '저 년이 내 아들을 망쳐놨네'하는 곡소리가 들렸지만 우리는 그렇게 손을 잡고 그 곳을 벗어났다.
난 정신없이 끌려나왔고, 전정국이 나를 차에 밀어넣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말을 꺼냈다.
"너 어쩌려고 그래? 당장 들어가서 사과해."
"먼저 잘못한건 저쪽인데 왜 내가 사과해?"
"그래도 너네 어머니잖아."
"저런 엄마 둔 적 없어."
전정국은 차에 시동을 걸고 직접 차를 끌며 그 큰집에서 벗어났다.
뒤돌아 큰 집을 바라보았다.
이 후폭풍을 어떻게 해야하나 싶었지만 우선 이 집을 벗어난 다는 점에서 숨통이 확 트였다.
시아버지가 없는 오늘 이 집에서 날 구원해준 건 전정국이었다.
"엄마 대신해서 사과할게. 이미 백 번은 넘게 사과한 것 같지만."
"니가 사과할 일 아니라고도 백 번은 말했어."
"하여간, 내 성격 더러운 건 우리 엄마 닮아서야."
"넌 어머님이 아니라 아버님을 더 닮았어."
내 말에 전정국은 날 보더니 피식 웃었다.
내가 그 큰 집에서 버틸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버팀목.
언제나 다정하시고, 친절하셨던 전정국의 아버지. 나의 시아버지.
그 분을 떠올리자 마음이 다시 따듯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전정국에게서 그 분의 따듯함이 느껴짐에 살짝 놀랐다.
"이제 가자. 진짜 우리 집으로."
"그래."
"밥 먹다 말고 뛰쳐나왔으니 밥은 너가 다시 해줄거지?"
"걍 치킨 시켜먹자."
"좋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진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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