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대망상/선수無]사과향립밤
근데 요즘 이청용이 조트라..아 아니다 손흥민도..
어색한 침묵만 감돌았다.마주앉은 시간이 불편한 너와 나의 감정이란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하릴없이 없어져만 갔다.창밖에 때아닌 봄비는 축축했다.창가에 앉은 탓인지,내 앞에 마주앉은 네 덕인지.따스하던 카페마저 축축해져만 가는 것 같았다.텅빈 왼손을 들어 빗방울이 맺힌 창가를 쓸었다.따뜻한 내 손과 대조적이게 차가웠다.이질감에 황급히 손을 떼었다.유리창이 마치 너라도 되는 듯이.
다시 시선을 내려 무릎 위에 올려둔 양손을 바라보았다.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왼손엔 항상 너와 내가 나눠끼던 반지가 있었고,오른손엔 나와 마찬가지로 따스한 네 손이 있었다.속절없이 가버린 시간이 야속하기도 밉기도 했다.허나,그 시간을 그저 놓아버린 내가 더 야속했다.살짝 고개를 들었다.내 앞의 너는 시켜놓은 라임티가 식어가는 것을 아는 지 마는 지 예전과 같이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그 눈길이 없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몇 달 전만해도 네 그런 눈길이 좋아 몸을 베베 꼬던 나였는데,이젠 예전의 우리를 상기시키기라도 하려는 듯한 네 눈길이 거북했다.
괜히 오른쪽 검지손가락을 들어 책상의 무늬를 쓸다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커다란 우산 하나 나눠들곤 서로를 바라보고,서로 웃고,서로 손을 맞잡고 가는 연인들을 바라봤다.빨간 우산에 유독히 비를 좋아하던 너와 내가 생각나 괜히 목울대가 울렁댔다.속 깊은 곳에 움켜두었던 한숨을 꺼내 내뱉었다.네가 나를 따라 창밖을 쳐다보다 말을 건냈다.
"잘 지냈어?"
안 어울렸다.똑같이 진한 크림색의 니트를 입고 말없는 풋풋한 연인마냥 앉아있던 우리에겐 안 어울리는 말이였다.아이보리색을 닮은 진한 크림색은 우리 둘이 좋아하던 색이였다.겨울이 되면 같은 색의 니트를 입고,같은 곳에서,같은 노래를 들으며,같이 잠에 들었던 우리이다.옷장을 뒤적거리며 크림색 니트를 찾았던 내가 생각났다.그것에 꼬릴 두듯 오늘따라 왜 멋을 부리냐며 자신의 앞을 지나가며 웃음을 흘리던 같이 사는 룸메이트가 떠올랐다.이걸 입은 자신이 한 없이 미웠다.
"잘 지냈으니까 너랑 마주하지 않을까."
조곤히 속삭이듯 말했다.책상 밑에 내려놓은 두 손을 꽉 쥐었다.기다란 손톱에 손바닥 여린 살이 찍히도록 말이다.거짓말이다.잘 지내지 않았다.나 혼자인 몇 달동안 날 떠나간 너를 이해하려,나를 외면하던 너를 이해하려 24시간 내내 머리를 쥐어뜯고 난리를 펴도 이해되지 않았다.슬픔은 더 커져만 갔다.하얀 이불이 깔린 침대 위에서 무릎을 모으고 앉아 엉엉 울기라도 하면 하얀 이불이 마치 내가 있는 곳의 전부가 되어버린 듯이 어지러웠다.밥을 먹으려 하면 내 숟가락에 반찬을 놓아주던 네가 생각나 먹을 수 없었다.쇼파에 앉아 티비를 봐도,둘이 앉으면 그렇게 비좁던 쇼파였는데,혼자 웅크려 앉으니 너무나 커져버린 쇼파를 원망했다.아무리 슬픈 사랑영화를 봐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그래,내 옆엔 네가 없었다.
-우린,'사랑해'란 이 말 한마디가 너무 부족해.-
과거 속에 잠식해버린 나를 느낀다.네가 떠날 때 그랬다.'사랑해'란 말 한마디가 부족했다고.과거를 되짚다 느낀다.차갑던 네 눈빛,변한 내모습,내 마음따윈 모르던 너,이기적인 나,사랑해란 말이 부족했던 너,사랑해란 말이 듣고 싶었던 나.엇갈려만 가던 우리,그리고 끝을 맺은 과거.창밖의 빗소리를 따라 듣다 다시 내 앞에 너를 마주본다.예전과 달리 많이 희미해진 네 감정,그에 비해 더 진해진 네 눈빛에.가만히 빗소리를 느끼다 사과향이 떠오른다.네가 자주 쓰던 사과향립밤이.
아 엄마 밉다.짜증나. 그냥 다 짜증나,재수없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