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동우는 그런 애였다.
우리 엄마도 청소해라, 청소해라 잔소리를 하다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내 모습에 이젠 포기하신 내 방을, "여자애 방이 이게 뭐야-."라고 한 마디만 내뱉고 묵묵히 방 안 여기저기에 널부러진 내 옷가지를 주섬주섬 주워들기 시작하며 방청소를 하기도 하는 정도의, 그런 애.
착해 빠져가지곤.
남우현은 그렇게 말하곤 했다. 카페에서 살짝 삐딱하게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스트로우를 입에 물고. 정확하게는, 착해 빠아-져가지곤, 하는 발음으로. 너 동우한테 진짜 잘 해줘라? 음료를 가지러 가는 동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내게 흘끔 시선을 던지며 그렇게 말했다.
알아. 나도 동우한테 잘 해야하는 거. 내가 더 잘 해야하는 거. 동우는 나를 많이 사랑한다. 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많이 사랑해, 하고 나즈막히, 그리고 애잔하게 속삭인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만큼, 나를 아낀다. 이러면 어쩌나 저러면 어쩌나, 내가 물가에 내놓은 아이라도 되는 마냥 전전긍긍하며 나를 바라본다. 나는 내 마음 만큼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동우에게 늘 항상 미안할 따름이다.
여기, 딸기요거트.
동우는 웃으며 내게 건냈다. 진짜 착해 빠져가지곤. 왠지 그런 동우를 보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상하게 미안한 것도 없는데 미안해, 동우야. 나는 스트로우를 통해 입 안으로 들어온 음료와 함께 목울대까지 차오른 그 말을 꿀꺽, 삼켰다.
동우는 나 말고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여자, 착하고 예쁜, 그리고 감정표현도 잘 하는 살뜰한 여자를 만났어야 했어.
나는 그리고 울었다. 내 앞에 마주앉은 남우현은 난감하고 가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소주잔은 입으로 가야할지, 다시 테이블 위에 놓여야할지 갈피를 못 잡은 채로 어정쩡한 위치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울지 마, 그 따위 위로의 말이 우리 사이에 오가는 일은 없었다.
지랄.
남우현은 들릴 듯 말 듯한 한숨과 함께 그 말을 내뱉고는 그 투명한 액체를 입 안에 털어넣었다.
네가 동우한테 더 잘 해주면 되잖아. 왜 안 하고 미안하다고 지랄이야.
하여튼 남우현은 언제나 옳게 보았고 그걸 말했다. 내가 알면서도 모른 척, 눈 감을 뿐이었던 일을 수중으로 끄집어냈다. 그나저나 나무 저 새끼 저거 빠른 91이면서 90년 3월 생인 나한테 막 저따위로 막하는 것 봐.
지랄 청승 떨지 말고 당장 동우한테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말해줘. 좋아할 거야.
그리고 나는 술이 깬 듯한 기분으로 동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응, 동우야. 아니, 무슨 일은.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응. 아, 알았어. 잘 자-. 아! 동우야, 사랑해.
남우현의 말대로 그는 정말 좋아했고, 그게 끝이었다. 내가 남우현과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던 날 새벽, 그는 나와의 통화를 마지막으로 사고로 죽어버렸다. 그게 스물한 살,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울어재꼈고, 남우현은 내가 질리지도 않는지 묵묵히 지켜봐주었다. 내가 한참을 울다 너 왜 여기 있어, 하고 물으면 너 울다가 그치면 목 매달 것 같아서, 하고 억양의 변화도 없이 답했다. 스물한 살의 여름은 전부 회색, 잿빛이었다. 나도, 그 때의 배경도, 남우현도. 우리는 그 잿빛에 점점 잠식 당하고 있었다.
동우, 사고도 사고지만 병 있었어. 심장병. 어렸을 때부터 있었는데,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좀 위험한 거였나 봐.
왜 나한텐 말하지 않았던 걸까. 그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마 함께 듣고 있던 나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나는 고2 때 동우와 알게 되었다지만 나무 저 녀석은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바로 알게 돼서 둘이 굉장히 친했으니까.
그리고, 가끔씩 널 부탁했어. 만에 하나 자기가 생각치도 못하게 죽게 되면 널 부탁한다고.
그 남자는 대뜸 나타나 우리의 잿빛을 파랑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선명하고, 산뜻한 새파랑.
우리는 어쩌면 그를 동우 대신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동우가 사라져 버리고 그의 빈 자리를 채우려, 그리고 나를 동우처럼 돌봐주러 나타난 동우의 대신. 지금에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에게도 미안해졌다. 동우는, 이런 식으로도 나에겐 항상 미안한 존재이다. 그리고, 그도.
몇 년 생이랬지?
91 3월.
아... 애매하네.
이게 다 쓸데없이 사교성 좋은 장동우 그 자식 때문이야.
족보브레이커인 너는 좀 입 좀 다물어라, 새꺄.
나무는 장난스레 말했고 나도 장난스레 받아들였지만 전혀 장난스럽지 못했다. 동우가 생각났다.
아, 호원이랬나?
그냥 호야라고 불러.
시원하게 미소지으며 답했다. 억양에서도 느꼈지만 호야, 하는 애칭에서 경상도 출신이라는 걸 느꼈다. 동우는 경기도 출신인데, 둘이 어떻게 알았을까.
그래, 호야. 넌 동우랑 어떻게 알았어?
나 고등학교 자퇴하고 서울 올라와서 춤췄거든. 그 때 공연하다가 동우가 보고 뭐, 그런 식으로.
아마 심장병 때문에 춤을 출 수 없는 동우는 이호원에게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 그리고 말 트면서 그랬겠지. 나, 11월 생이니까 그냥 말 놔. 어차피 4개월 차이 밖에 안 나는데. 예의 그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며.
동우야, 네가 보고 싶어. 나는 고개를 돌리며 그 말을 삼켰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