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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김남길 몬스타엑스 강동원 이준혁 엑소
뇽안 전체글ll조회 2432l 3



"토평고등학교 나오지 않으셨어요?"





찾았다, 내 첫사랑.





NCT 도영 첫사랑 리퀘스트

뇽안 씀





:::





"엄마, 김치 떨어졌엉."





이번주 내로 김치를 보내겠다는 엄마의 말에 겨우 안심하고 전화를 끊었다. 자취 1년차. 아직도 변변찮은 반찬으로 끼니를 겨우 때우는 게 나의 일상이다. 침대를 제외하면 앉아 있을 공간이 전부인 그 좁은 자취방에서 그럭저럭 잘 버티고는 있다.

매리트 없는 경기권 전문대학서 방송 관련과 졸업하고 나서 이렇다할 경력도 없던 내게 찾아온 막내 작가 일은 세기의 행운이었다. 알랑방구를 잘 떨어서 그른가. 평소 날 예뻐하던 선배가 친척 빽으로 여차저차 잘 꽂아줬다. 브이앱이라고 요즘 아이돌이 하는 인터넷 방송 같은 건데, 꽤 수요가 좋고 네이버 소속인지라 막내 작가치곤 '나름' 대우가 좋았다. 어디 가서 안 맞으면 다행인 직군이지만서도 그랬다. 아직은 고정팀이 없어서 신인 아이돌 방송 스케줄이 잡히는 대로 급하게 대본을 집필하곤 하지만, 1년 반째 존버 중이던 입사 동기가 얼마전 1.5군 걸그룹 고정팀 작가로 들어갔으니 나도 곧...





"여주 씨 맞죠? 잠깐 나 좀 볼까요?"

"네!"




나도 곧 고정팀 들어가지 않을까. 그랬음 좋겠는데... 활기차게 대답하며 탕비실에 들어섰다. 지나가며 몇번 마주친 조감독님과 마주앉아 직접 타 주신 라떼를 마셨다. 여기저기 떠도는 저를 대체 무슨 일루...? 그것도 조감독님이? 눈치만 보며 눈동자를 도륵도륵 굴리자 인자한 표정으로 허허 웃으시더니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서류 뭉치를 건네신다. 오다가다 보면서 인사를 너무 잘하길래 현장 알바생이나 신입인 줄 알았더니 내일이면 입사한 지 1년 조금 넘더라구요? 하하, 예예. 그래서 일을 좀 같이 해 볼까해요, 우리가.

우리가? 우리가 누군데요? 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입을 꾹 다물고 종이를 펼쳐봤다. 'NCT 정기 예능 SEOUL CITY 계획안' 헉. 크흡 소릴 내며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엔시티면 에스엠 아니야? 내가 아무리 중소 아이돌만 맡은 지 한참이라 대형 아이돌 멤버들 이름은 잘 모른다고 해도... 그룹 이름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아이돌 고정팀에 들어간다고? 내가?





"정기 예능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방송할 거거든요, 이게. 물론 컴백해서 바빠지면 좀 쉬어갈 수도 있는 거고... 작가 자리 빼고 제작진은 거의 다 정리됐고, 여주 씨만 하고 싶다고 하면 바로 결재 올릴 수 있는데. 제작진 명단 한번 볼래요? 감독님 이름 읊어봐봐. 결재 올리면 바로 촬영 들어갈 수 있는 수준으로다가 빵빵하거든. 지금 세전으로 하면 일반 중소기업 경리만큼 받더만. 며칠씩 밤새가며 받을 돈은 아니지. 우리 팀에 들어오면 적어도 임금 10%은 거뜬히 해 줄 수 있어요."





서류 뭉치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탕비실 테이블에 쿵 소리나게 머리도 박았다. 당황하신 조감독님이 어이구 하시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고정팀이다. 진짜 꿈에 그리던.... 부르면 새벽에도 나가던 내가 정기 출근이라니.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저 이거 할래요... 하면서 계속 끅끅댔다.

집에 와서도 웃음이 안 멈췄다. 씻으면서, 후라이 하나에 저녁을 먹으면서, 핸드폰 하면서, 침대에 누우면서. 종일 입꼬리가 올라가 경련이 일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며칠 후 고정팀을 빌미로 단톡방이 하나 만들어졌다. 결재 끝났으니 당장 3일 뒤에 촬영 잡았다고. 뭐가 이렇게 급한가 싶지만서도 이미 티저 영상을 올렸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어때. 내 고정팀인데.





촬영 당일이었다. 누구보다 들뜬 마음으로 대본을 몇 번씩 체크하고 소품에도 신경 썼다.





"여주 씨, 곱게 데려와 놓고 이런 거 부탁해서 미안한데 대기실에서 멤버들 좀 데려와 줄 수 있어요? 잠깐 회사랑 연락한다고 나가시더니 매니저분이랑 연락이 안되네. 곧 스탠바이인데."

"3층 대기실 맞죠? 금방 모셔올게요."

"부탁 좀 할게요."





아이돌을 직접 데려온다니. 긴장된 마음으로 터덜터덜 복도를 걸었다. 출연진 대기실. 침을 꿀꺽 삼키고 문을 열었다. 허, 헐. 다 나 쳐다봐. 소파에 누워 핸드폰 게임 하고, 메이크업 수정 보던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본다. 거울로도 눈 마주쳤다. 숨 못 쉬어 죽으면 어떡하지.





"그... 매니저분이랑 연락이 안 된다구 해서... 10분 뒤에 스탠바이라 지금 들어가실게요."





오우, 조심하세요. 하학. 급하게 나가려다 문틈에 발을 부딪힌 내게 누군가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아, 괜찮아요. 하하하... 작가님이세용? 저는 마크. 아, 네! 맞아요. 에엥. 디게 어려보이시는데엥. 멋쩍게 웃으며 스튜디오로 향하자 뒤에서 마크 형! 하는 소리가 났다. 놀라서 뒤돌아보자 동글동글 강아지 같이 생긴 분이 다가왔다. 형만 새 친구 사귀어? 안녕하세용. 127 비주얼 담당 햇쨔니예용. 하하하, 밝으시네요...

어색한 분위기 속에 스튜디오까지 도착했으나 멤버 한 명이 없었다. 현장은 정적이었다. 감독님의 한숨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누가 없는 거야, 지금? 도영? 아. 나 진짜 미치겠네. 이거 생방송이었으면 어쩔 뻔했어. 매니저는 아직도 연락 안 돼요? 리더가 한번 찾으러 가볼래요?"
"그... 막내니까 제가 다녀올게요. 한 명 빠진 거면 잠깐 화장실 다녀온 걸로 넘길 수 있지 않을까요? 어차피 팬들이 보는 거라... 리더분도 빠지시면 화면이 비어보일 것 같아서요."





재빨리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도영 씨! 도영 씨 어디 계세요! 부르기엔 왠지 조금 찝찝한 그 이름. 하지만 흔한 이름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계속해서 건물을 누비며 뽈뽈댔다. 도영 씨이... 상체를 숙인 채 무릎을 부여잡고 헥헥거렸다. 대체 이 좁은 건물 어디에 숨어 있는 거야. 촬영 싫어서 도망간 거야?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한적한 복도 끝에 길쭉한 실루엣이 아른거렸다. 도영 씨? 지금 스탠바이 해야 되는데 대체 어딜 다녀오신...





"..."

"..."





눈이 마주친 순간 서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아... 죄송합니다, 화장실에 좀 다녀오느라. 나란히 서서 말없이 스튜디오를 향해 걸었다. 나는 손을 꾹 쥐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괜히 부르기 찝찝한 게 아니었다. 혹시 내 착각은 아닐까 하고 아무렇지 않게 걸어 보려 했지만 잘 안 됐다.

스튜디오 문 앞에 다다랐다. 문을 열기 전에 까치발을 하고 흐트러진 김도영의 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늦으심 안 돼요... 꼭이요. 눈도 못 마주치고 그랬다. 별안간 말이 없었다. 둘 중 하나는 문을 열어야 하는데. 서로 눈도 못 마주친 채로 벽과 천장만 바라봤다.

한순간이었다. 그 큰손을 내 머리위에 얹더니 상체를 숙여 눈을 마주했다. 그러더니 입을 떼는 거다. 작가님, 죄송한데. 그 말을 듣자마자 정서 불안인 사람마냥 눈을 필사적으로 피했다. 착각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져서 그랬다. 그런데도 잘만 마주치는 거다. 얼마나 뚫어져라 내 시선을 따라왔으면.





"토평고등학교 나오지 않으셨어요?"

"... 도영 씨는 2학년 겨울에 이민 가신다면서요."

"그러는 당신은 그럼 헤어져 주겠다면서요. 아무렇지도 않다면서요."

"... 아무렇지도 않았거든요."

"그럼 지금은 왜 또 울어요."





김도영의 가슴팍을 퍽퍽 아프게 내리쳤다. 흰 셔츠에 구김이 생겼다. 곧 스탠바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찔끔찔끔 울었다. 나쁜놈. 이민 간다는 놈이 왜 연예인이 돼 있는 건데? 진짜 나빠. 나빠, 너. 김도영은 날 말리지도, 달래지도 않은 채 그 솜주먹을 다 받아냈다.

그렇게 5년 동안 잊고 살던 첫사랑과 조우했다. 깊은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눈물을 닦고 김도영을 촬영장으로 들여보냈다. 속이 안 좋았다며 싹싹하게 사과를 구하고 스튜디오에 들어선 김도영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남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 놓고 양심이 있어, 없어?

멤버들 앞에 앉아 스케치북을 들고 '쟈니 씨, 진행 조금만 빠르게!' '유타 씨 화면 비니까 허리 조금만 세워주세용' 같은 것들을 적으며 김도영을 째려봤다. 김도영은 아랑곳않고 깔끔히 진행과 촬영을 마쳤다. 얄밉고 잘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촬영 중간, 잠깐의 쉬는시간 동안 나는 자리를 피해 있었다. 다시 눈 마주치면 진짜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기분 들 것 같아서였다.

괜히 구석에 쭈그려 앉아 핸드폰으로 nct 도영 같은 것들을 검색했다. 도영의 연습생 비화. 이민 간다고 거짓말하고 자퇴 후 입사했다더라. 진짜 미쳤네, 미쳤어. 첫사랑 이민 보내는 심정을 네가 알어? 그것보다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느라 첫사랑이 연예인으로, 그것도 대형 기획사 아이돌로 데뷔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던 나 스스로가 억울하고 분해서 주먹을 꼭 쥐다가 그냥 홀드키를 잠가 버렸다.

뭘 그렇게 검색해. 김도영은 내게 종이컵을 건네며 아빠다리 했다. 나는 쭈그려 앉아 그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다 마셨다. 커피 그렇게 마시고 싶었어? 한 잔 더 타다 줘? 다정한 목소리에 더 열받았다.





"거짓말했던 거 후회했어, 엄청. 그땐 내 앞이 더 중요해서 그랬는데, 연습할 때도 데뷔하고 나서도 네 생각 많이 나더라. 싫어서 헤어진 게 아니었잖아. 네 입으로 아무렇지 않다고 하긴 했어도 진심 아닌 걸 내가 제일 잘 아는데."

"그래서? 그래서 어떡하자는 건데. 우리가 아쉬워한다고 시간이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 ... 어떻게 그 좁은 구리에서 한번을 못 마주칠 수가 있어?"

"아침에 연습 가기 전에 항상 너희 집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갔어. 너 학교 가는 거 보려고."





웃기지도 않다. 촬영 시작할게요. 그 말에 나는 김도영의 손에 빈 종이컵을 쥐어주고 쿵쿵거리며 카메라 쪽으로 갔다. 김도영은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를 버리고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스튜디오로 쏙 들어갔다. 열심히 해. 그 말도 잊지 않은 채로 말이다.

싱숭생숭해졌다. 연예인 다 돼서 나타난 주제에 다시 만나자는 것도 아니고 왜 저렇게 굴어. 그 시절의 나를 겪은 김도영이라면 누구보다 더 잘 알잖아. 내가 자길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렇게나 많이 좋아해서 5년 지난 지금도 보자마자 엉엉 울 수 있는 거란 것도. 아무것도 안 했는데, 토평고 나오지 않았냐 물어보고, 스타벅스도 아닌 고작 맥심 믹스커피 한잔 타준 걸로도 흔들린다는 것도.

입에서 커피의 단맛이 맴돌았다. 혀로 입천장을 꾹꾹 눌러가며 겨우 촬영을 마쳤다. 혹시 또 마주친다면 다시 말걸까봐 급하게 정리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그래. 그냥 잊자. 5년 전 남자 친구가 뭐라고. 고딩 때 풋사랑 어디 가겠냐고. 다음부터 마주치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하자고 마음먹었다. 쟤도 나도 그냥 지금 이대로 흘러가면 되는 거지. 반가운 마음에 그냥 아는 척한 걸 거야, 김도영도. 나도 반가워서 운 거지, 뭐. 그렇게 합리화하며 한숨을 폭폭 내쉬었다. 진동과 함께 카톡 알림이 두어번 울렸다.





[제작진 분한테 연락처 받았어. 불편하면 연락 안 할게.]

[나 도영이.]





하나도 안 불편해서, 합리화하면서도 연락 오길 내심 바라고 있었던지라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괜찮아. 종종 연락해. 무미건조한 답장을 보내고 나서 맥이 탁 풀렸다. 우리가 여기서 뭐라도 하면. 그땐 진짜 어떻게 되는데? 아이돌이랑 막내 작가가 하면 뭘 할 수 있는 건데?





도영아.





[NCT/김도영] 첫사랑 리퀘스트 1 | 인스티즈



"토평고등학교 나오지 않으셨어요?"





찾았다, 내 첫사랑.





NCT 도영 첫사랑 리퀘스트

뇽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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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김치 떨어졌엉."





이번주 내로 김치를 보내겠다는 엄마의 말에 겨우 안심하고 전화를 끊었다. 자취 1년차. 아직도 변변찮은 반찬으로 끼니를 겨우 때우는 게 나의 일상이다. 침대를 제외하면 앉아 있을 공간이 전부인 그 좁은 자취방에서 그럭저럭 잘 버티고는 있다.

매리트 없는 경기권 전문대학서 방송 관련과 졸업하고 나서 이렇다할 경력도 없던 내게 찾아온 막내 작가 일은 세기의 행운이었다. 알랑방구를 잘 떨어서 그른가. 평소 날 예뻐하던 선배가 친척 빽으로 여차저차 잘 꽂아줬다. 브이앱이라고 요즘 아이돌이 하는 인터넷 방송 같은 건데, 꽤 수요가 좋고 네이버 소속인지라 막내 작가치곤 '나름' 대우가 좋았다. 어디 가서 안 맞으면 다행인 직군이지만서도 그랬다. 아직은 고정팀이 없어서 신인 아이돌 방송 스케줄이 잡히는 대로 급하게 대본을 집필하곤 하지만, 1년 반째 존버 중이던 입사 동기가 얼마전 1.5군 걸그룹 고정팀 작가로 들어갔으니 나도 곧...





"여주 씨 맞죠? 잠깐 나 좀 볼까요?"

"네!"




나도 곧 고정팀 들어가지 않을까. 그랬음 좋겠는데... 활기차게 대답하며 탕비실에 들어섰다. 지나가며 몇번 마주친 조감독님과 마주앉아 직접 타 주신 라떼를 마셨다. 여기저기 떠도는 저를 대체 무슨 일루...? 그것도 조감독님이? 눈치만 보며 눈동자를 도륵도륵 굴리자 인자한 표정으로 허허 웃으시더니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서류 뭉치를 건네신다. 오다가다 보면서 인사를 너무 잘하길래 현장 알바생이나 신입인 줄 알았더니 내일이면 입사한 지 1년 조금 넘더라구요? 하하, 예예. 그래서 일을 좀 같이 해 볼까해요, 우리가.

우리가? 우리가 누군데요? 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입을 꾹 다물고 종이를 펼쳐봤다. 'NCT 정기 예능 SEOUL CITY 계획안' 헉. 크흡 소릴 내며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엔시티면 에스엠 아니야? 내가 아무리 중소 아이돌만 맡은 지 한참이라 대형 아이돌 멤버들 이름은 잘 모른다고 해도... 그룹 이름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아이돌 고정팀에 들어간다고? 내가?





"정기 예능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방송할 거거든요, 이게. 물론 컴백해서 바빠지면 좀 쉬어갈 수도 있는 거고... 작가 자리 빼고 제작진은 거의 다 정리됐고, 여주 씨만 하고 싶다고 하면 바로 결재 올릴 수 있는데. 제작진 명단 한번 볼래요? 감독님 이름 읊어봐봐. 결재 올리면 바로 촬영 들어갈 수 있는 수준으로다가 빵빵하거든. 지금 세전으로 하면 일반 중소기업 경리만큼 받더만. 며칠씩 밤새가며 받을 돈은 아니지. 우리 팀에 들어오면 적어도 임금 10%은 거뜬히 해 줄 수 있어요."





서류 뭉치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탕비실 테이블에 쿵 소리나게 머리도 박았다. 당황하신 조감독님이 어이구 하시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고정팀이다. 진짜 꿈에 그리던.... 부르면 새벽에도 나가던 내가 정기 출근이라니.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저 이거 할래요... 하면서 계속 끅끅댔다.

집에 와서도 웃음이 안 멈췄다. 씻으면서, 후라이 하나에 저녁을 먹으면서, 핸드폰 하면서, 침대에 누우면서. 종일 입꼬리가 올라가 경련이 일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며칠 후 고정팀을 빌미로 단톡방이 하나 만들어졌다. 결재 끝났으니 당장 3일 뒤에 촬영 잡았다고. 뭐가 이렇게 급한가 싶지만서도 이미 티저 영상을 올렸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어때. 내 고정팀인데.





촬영 당일이었다. 누구보다 들뜬 마음으로 대본을 몇 번씩 체크하고 소품에도 신경 썼다.





"여주 씨, 곱게 데려와 놓고 이런 거 부탁해서 미안한데 대기실에서 멤버들 좀 데려와 줄 수 있어요? 잠깐 회사랑 연락한다고 나가시더니 매니저분이랑 연락이 안되네. 곧 스탠바이인데."

"3층 대기실 맞죠? 금방 모셔올게요."

"부탁 좀 할게요."





아이돌을 직접 데려온다니. 긴장된 마음으로 터덜터덜 복도를 걸었다. 출연진 대기실. 침을 꿀꺽 삼키고 문을 열었다. 허, 헐. 다 나 쳐다봐. 소파에 누워 핸드폰 게임 하고, 메이크업 수정 보던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본다. 거울로도 눈 마주쳤다. 숨 못 쉬어 죽으면 어떡하지.





"그... 매니저분이랑 연락이 안 된다구 해서... 10분 뒤에 스탠바이라 지금 들어가실게요."





오우, 조심하세요. 하학. 급하게 나가려다 문틈에 발을 부딪힌 내게 누군가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아, 괜찮아요. 하하하... 작가님이세용? 저는 마크. 아, 네! 맞아요. 에엥. 디게 어려보이시는데엥. 멋쩍게 웃으며 스튜디오로 향하자 뒤에서 마크 형! 하는 소리가 났다. 놀라서 뒤돌아보자 동글동글 강아지 같이 생긴 분이 다가왔다. 형만 새 친구 사귀어? 안녕하세용. 127 비주얼 담당 햇쨔니예용. 하하하, 밝으시네요...

어색한 분위기 속에 스튜디오까지 도착했으나 멤버 한 명이 없었다. 현장은 정적이었다. 감독님의 한숨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누가 없는 거야, 지금? 도영? 아. 나 진짜 미치겠네. 이거 생방송이었으면 어쩔 뻔했어. 매니저는 아직도 연락 안 돼요? 리더가 한번 찾으러 가볼래요?"
"그... 막내니까 제가 다녀올게요. 한 명 빠진 거면 잠깐 화장실 다녀온 걸로 넘길 수 있지 않을까요? 어차피 팬들이 보는 거라... 리더분도 빠지시면 화면이 비어보일 것 같아서요."





재빨리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도영 씨! 도영 씨 어디 계세요! 부르기엔 왠지 조금 찝찝한 그 이름. 하지만 흔한 이름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계속해서 건물을 누비며 뽈뽈댔다. 도영 씨이... 상체를 숙인 채 무릎을 부여잡고 헥헥거렸다. 대체 이 좁은 건물 어디에 숨어 있는 거야. 촬영 싫어서 도망간 거야?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한적한 복도 끝에 길쭉한 실루엣이 아른거렸다. 도영 씨? 지금 스탠바이 해야 되는데 대체 어딜 다녀오신...





"..."

"..."





눈이 마주친 순간 서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아... 죄송합니다, 화장실에 좀 다녀오느라. 나란히 서서 말없이 스튜디오를 향해 걸었다. 나는 손을 꾹 쥐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괜히 부르기 찝찝한 게 아니었다. 혹시 내 착각은 아닐까 하고 아무렇지 않게 걸어 보려 했지만 잘 안 됐다.

스튜디오 문 앞에 다다랐다. 문을 열기 전에 까치발을 하고 흐트러진 김도영의 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늦으심 안 돼요... 꼭이요. 눈도 못 마주치고 그랬다. 별안간 말이 없었다. 둘 중 하나는 문을 열어야 하는데. 서로 눈도 못 마주친 채로 벽과 천장만 바라봤다.

한순간이었다. 그 큰손을 내 머리위에 얹더니 상체를 숙여 눈을 마주했다. 그러더니 입을 떼는 거다. 작가님, 죄송한데. 그 말을 듣자마자 정서 불안인 사람마냥 눈을 필사적으로 피했다. 착각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져서 그랬다. 그런데도 잘만 마주치는 거다. 얼마나 뚫어져라 내 시선을 따라왔으면.





"토평고등학교 나오지 않으셨어요?"

"... 도영 씨는 2학년 겨울에 이민 가신다면서요."

"그러는 당신은 그럼 헤어져 주겠다면서요. 아무렇지도 않다면서요."

"... 아무렇지도 않았거든요."

"그럼 지금은 왜 또 울어요."





김도영의 가슴팍을 퍽퍽 아프게 내리쳤다. 흰 셔츠에 구김이 생겼다. 곧 스탠바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찔끔찔끔 울었다. 나쁜놈. 이민 간다는 놈이 왜 연예인이 돼 있는 건데? 진짜 나빠. 나빠, 너. 김도영은 날 말리지도, 달래지도 않은 채 그 솜주먹을 다 받아냈다.

그렇게 5년 동안 잊고 살던 첫사랑과 조우했다. 깊은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눈물을 닦고 김도영을 촬영장으로 들여보냈다. 속이 안 좋았다며 싹싹하게 사과를 구하고 스튜디오에 들어선 김도영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남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 놓고 양심이 있어, 없어?

멤버들 앞에 앉아 스케치북을 들고 '쟈니 씨, 진행 조금만 빠르게!' '유타 씨 화면 비니까 허리 조금만 세워주세용' 같은 것들을 적으며 김도영을 째려봤다. 김도영은 아랑곳않고 깔끔히 진행과 촬영을 마쳤다. 얄밉고 잘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촬영 중간, 잠깐의 쉬는시간 동안 나는 자리를 피해 있었다. 다시 눈 마주치면 진짜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기분 들 것 같아서였다.

괜히 구석에 쭈그려 앉아 핸드폰으로 nct 도영 같은 것들을 검색했다. 도영의 연습생 비화. 이민 간다고 거짓말하고 자퇴 후 입사했다더라. 진짜 미쳤네, 미쳤어. 첫사랑 이민 보내는 심정을 네가 알어? 그것보다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느라 첫사랑이 연예인으로, 그것도 대형 기획사 아이돌로 데뷔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던 나 스스로가 억울하고 분해서 주먹을 꼭 쥐다가 그냥 홀드키를 잠가 버렸다.

뭘 그렇게 검색해. 김도영은 내게 종이컵을 건네며 아빠다리 했다. 나는 쭈그려 앉아 그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다 마셨다. 커피 그렇게 마시고 싶었어? 한 잔 더 타다 줘? 다정한 목소리에 더 열받았다.





"거짓말했던 거 후회했어, 엄청. 그땐 내 앞이 더 중요해서 그랬는데, 연습할 때도 데뷔하고 나서도 네 생각 많이 나더라. 싫어서 헤어진 게 아니었잖아. 네 입으로 아무렇지 않다고 하긴 했어도 진심 아닌 걸 내가 제일 잘 아는데."

"그래서? 그래서 어떡하자는 건데. 우리가 아쉬워한다고 시간이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 ... 어떻게 그 좁은 구리에서 한번을 못 마주칠 수가 있어?"

"아침에 연습 가기 전에 항상 너희 집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갔어. 너 학교 가는 거 보려고."





웃기지도 않다. 촬영 시작할게요. 그 말에 나는 김도영의 손에 빈 종이컵을 쥐어주고 쿵쿵거리며 카메라 쪽으로 갔다. 김도영은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를 버리고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스튜디오로 쏙 들어갔다. 열심히 해. 그 말도 잊지 않은 채로 말이다.

싱숭생숭해졌다. 연예인 다 돼서 나타난 주제에 다시 만나자는 것도 아니고 왜 저렇게 굴어. 그 시절의 나를 겪은 김도영이라면 누구보다 더 잘 알잖아. 내가 자길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렇게나 많이 좋아해서 5년 지난 지금도 보자마자 엉엉 울 수 있는 거란 것도. 아무것도 안 했는데, 토평고 나오지 않았냐 물어보고, 스타벅스도 아닌 고작 맥심 믹스커피 한잔 타준 걸로도 흔들린다는 것도.

입에서 커피의 단맛이 맴돌았다. 혀로 입천장을 꾹꾹 눌러가며 겨우 촬영을 마쳤다. 혹시 또 마주친다면 다시 말걸까봐 급하게 정리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그래. 그냥 잊자. 5년 전 남자 친구가 뭐라고. 고딩 때 풋사랑 어디 가겠냐고. 다음부터 마주치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하자고 마음먹었다. 쟤도 나도 그냥 지금 이대로 흘러가면 되는 거지. 반가운 마음에 그냥 아는 척한 걸 거야, 김도영도. 나도 반가워서 운 거지, 뭐. 그렇게 합리화하며 한숨을 폭폭 내쉬었다. 진동과 함께 카톡 알림이 두어번 울렸다.





[제작진 분한테 연락처 받았어. 불편하면 연락 안 할게.]

[나 도영이.]





하나도 안 불편해서, 합리화하면서도 연락 오길 내심 바라고 있었던지라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괜찮아. 종종 연락해. 무미건조한 답장을 보내고 나서 맥이 탁 풀렸다. 우리가 여기서 뭐라도 하면. 그땐 진짜 어떻게 되는데? 아이돌이랑 막내 작가가 하면 뭘 할 수 있는 건데?





도영아.





[NCT/김도영] 첫사랑 리퀘스트 1 | 인스티즈



"토평고등학교 나오지 않으셨어요?"





찾았다, 내 첫사랑.





NCT 도영 첫사랑 리퀘스트

뇽안 씀





:::





"엄마, 김치 떨어졌엉."





이번주 내로 김치를 보내겠다는 엄마의 말에 겨우 안심하고 전화를 끊었다. 자취 1년차. 아직도 변변찮은 반찬으로 끼니를 겨우 때우는 게 나의 일상이다. 침대를 제외하면 앉아 있을 공간이 전부인 그 좁은 자취방에서 그럭저럭 잘 버티고는 있다.

매리트 없는 경기권 전문대학서 방송 관련과 졸업하고 나서 이렇다할 경력도 없던 내게 찾아온 막내 작가 일은 세기의 행운이었다. 알랑방구를 잘 떨어서 그른가. 평소 날 예뻐하던 선배가 친척 빽으로 여차저차 잘 꽂아줬다. 브이앱이라고 요즘 아이돌이 하는 인터넷 방송 같은 건데, 꽤 수요가 좋고 네이버 소속인지라 막내 작가치곤 '나름' 대우가 좋았다. 어디 가서 안 맞으면 다행인 직군이지만서도 그랬다. 아직은 고정팀이 없어서 신인 아이돌 방송 스케줄이 잡히는 대로 급하게 대본을 집필하곤 하지만, 1년 반째 존버 중이던 입사 동기가 얼마전 1.5군 걸그룹 고정팀 작가로 들어갔으니 나도 곧...





"여주 씨 맞죠? 잠깐 나 좀 볼까요?"

"네!"




나도 곧 고정팀 들어가지 않을까. 그랬음 좋겠는데... 활기차게 대답하며 탕비실에 들어섰다. 지나가며 몇번 마주친 조감독님과 마주앉아 직접 타 주신 라떼를 마셨다. 여기저기 떠도는 저를 대체 무슨 일루...? 그것도 조감독님이? 눈치만 보며 눈동자를 도륵도륵 굴리자 인자한 표정으로 허허 웃으시더니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서류 뭉치를 건네신다. 오다가다 보면서 인사를 너무 잘하길래 현장 알바생이나 신입인 줄 알았더니 내일이면 입사한 지 1년 조금 넘더라구요? 하하, 예예. 그래서 일을 좀 같이 해 볼까해요, 우리가.

우리가? 우리가 누군데요? 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입을 꾹 다물고 종이를 펼쳐봤다. 'NCT 정기 예능 SEOUL CITY 계획안' 헉. 크흡 소릴 내며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엔시티면 에스엠 아니야? 내가 아무리 중소 아이돌만 맡은 지 한참이라 대형 아이돌 멤버들 이름은 잘 모른다고 해도... 그룹 이름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아이돌 고정팀에 들어간다고? 내가?





"정기 예능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방송할 거거든요, 이게. 물론 컴백해서 바빠지면 좀 쉬어갈 수도 있는 거고... 작가 자리 빼고 제작진은 거의 다 정리됐고, 여주 씨만 하고 싶다고 하면 바로 결재 올릴 수 있는데. 제작진 명단 한번 볼래요? 감독님 이름 읊어봐봐. 결재 올리면 바로 촬영 들어갈 수 있는 수준으로다가 빵빵하거든. 지금 세전으로 하면 일반 중소기업 경리만큼 받더만. 며칠씩 밤새가며 받을 돈은 아니지. 우리 팀에 들어오면 적어도 임금 10%은 거뜬히 해 줄 수 있어요."





서류 뭉치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탕비실 테이블에 쿵 소리나게 머리도 박았다. 당황하신 조감독님이 어이구 하시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고정팀이다. 진짜 꿈에 그리던.... 부르면 새벽에도 나가던 내가 정기 출근이라니.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저 이거 할래요... 하면서 계속 끅끅댔다.

집에 와서도 웃음이 안 멈췄다. 씻으면서, 후라이 하나에 저녁을 먹으면서, 핸드폰 하면서, 침대에 누우면서. 종일 입꼬리가 올라가 경련이 일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며칠 후 고정팀을 빌미로 단톡방이 하나 만들어졌다. 결재 끝났으니 당장 3일 뒤에 촬영 잡았다고. 뭐가 이렇게 급한가 싶지만서도 이미 티저 영상을 올렸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어때. 내 고정팀인데.





촬영 당일이었다. 누구보다 들뜬 마음으로 대본을 몇 번씩 체크하고 소품에도 신경 썼다.





"여주 씨, 곱게 데려와 놓고 이런 거 부탁해서 미안한데 대기실에서 멤버들 좀 데려와 줄 수 있어요? 잠깐 회사랑 연락한다고 나가시더니 매니저분이랑 연락이 안되네. 곧 스탠바이인데."

"3층 대기실 맞죠? 금방 모셔올게요."

"부탁 좀 할게요."





아이돌을 직접 데려온다니. 긴장된 마음으로 터덜터덜 복도를 걸었다. 출연진 대기실. 침을 꿀꺽 삼키고 문을 열었다. 허, 헐. 다 나 쳐다봐. 소파에 누워 핸드폰 게임 하고, 메이크업 수정 보던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본다. 거울로도 눈 마주쳤다. 숨 못 쉬어 죽으면 어떡하지.





"그... 매니저분이랑 연락이 안 된다구 해서... 10분 뒤에 스탠바이라 지금 들어가실게요."





오우, 조심하세요. 하학. 급하게 나가려다 문틈에 발을 부딪힌 내게 누군가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아, 괜찮아요. 하하하... 작가님이세용? 저는 마크. 아, 네! 맞아요. 에엥. 디게 어려보이시는데엥. 멋쩍게 웃으며 스튜디오로 향하자 뒤에서 마크 형! 하는 소리가 났다. 놀라서 뒤돌아보자 동글동글 강아지 같이 생긴 분이 다가왔다. 형만 새 친구 사귀어? 안녕하세용. 127 비주얼 담당 햇쨔니예용. 하하하, 밝으시네요...

어색한 분위기 속에 스튜디오까지 도착했으나 멤버 한 명이 없었다. 현장은 정적이었다. 감독님의 한숨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누가 없는 거야, 지금? 도영? 아. 나 진짜 미치겠네. 이거 생방송이었으면 어쩔 뻔했어. 매니저는 아직도 연락 안 돼요? 리더가 한번 찾으러 가볼래요?"
"그... 막내니까 제가 다녀올게요. 한 명 빠진 거면 잠깐 화장실 다녀온 걸로 넘길 수 있지 않을까요? 어차피 팬들이 보는 거라... 리더분도 빠지시면 화면이 비어보일 것 같아서요."





재빨리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도영 씨! 도영 씨 어디 계세요! 부르기엔 왠지 조금 찝찝한 그 이름. 하지만 흔한 이름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계속해서 건물을 누비며 뽈뽈댔다. 도영 씨이... 상체를 숙인 채 무릎을 부여잡고 헥헥거렸다. 대체 이 좁은 건물 어디에 숨어 있는 거야. 촬영 싫어서 도망간 거야?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한적한 복도 끝에 길쭉한 실루엣이 아른거렸다. 도영 씨? 지금 스탠바이 해야 되는데 대체 어딜 다녀오신...





"..."

"..."





눈이 마주친 순간 서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아... 죄송합니다, 화장실에 좀 다녀오느라. 나란히 서서 말없이 스튜디오를 향해 걸었다. 나는 손을 꾹 쥐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괜히 부르기 찝찝한 게 아니었다. 혹시 내 착각은 아닐까 하고 아무렇지 않게 걸어 보려 했지만 잘 안 됐다.

스튜디오 문 앞에 다다랐다. 문을 열기 전에 까치발을 하고 흐트러진 김도영의 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늦으심 안 돼요... 꼭이요. 눈도 못 마주치고 그랬다. 별안간 말이 없었다. 둘 중 하나는 문을 열어야 하는데. 서로 눈도 못 마주친 채로 벽과 천장만 바라봤다.

한순간이었다. 그 큰손을 내 머리위에 얹더니 상체를 숙여 눈을 마주했다. 그러더니 입을 떼는 거다. 작가님, 죄송한데. 그 말을 듣자마자 정서 불안인 사람마냥 눈을 필사적으로 피했다. 착각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져서 그랬다. 그런데도 잘만 마주치는 거다. 얼마나 뚫어져라 내 시선을 따라왔으면.





"토평고등학교 나오지 않으셨어요?"

"... 도영 씨는 2학년 겨울에 이민 가신다면서요."

"그러는 당신은 그럼 헤어져 주겠다면서요. 아무렇지도 않다면서요."

"... 아무렇지도 않았거든요."

"그럼 지금은 왜 또 울어요."





김도영의 가슴팍을 퍽퍽 아프게 내리쳤다. 흰 셔츠에 구김이 생겼다. 곧 스탠바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찔끔찔끔 울었다. 나쁜놈. 이민 간다는 놈이 왜 연예인이 돼 있는 건데? 진짜 나빠. 나빠, 너. 김도영은 날 말리지도, 달래지도 않은 채 그 솜주먹을 다 받아냈다.

그렇게 5년 동안 잊고 살던 첫사랑과 조우했다. 깊은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눈물을 닦고 김도영을 촬영장으로 들여보냈다. 속이 안 좋았다며 싹싹하게 사과를 구하고 스튜디오에 들어선 김도영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남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 놓고 양심이 있어, 없어?

멤버들 앞에 앉아 스케치북을 들고 '쟈니 씨, 진행 조금만 빠르게!' '유타 씨 화면 비니까 허리 조금만 세워주세용' 같은 것들을 적으며 김도영을 째려봤다. 김도영은 아랑곳않고 깔끔히 진행과 촬영을 마쳤다. 얄밉고 잘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촬영 중간, 잠깐의 쉬는시간 동안 나는 자리를 피해 있었다. 다시 눈 마주치면 진짜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기분 들 것 같아서였다.

괜히 구석에 쭈그려 앉아 핸드폰으로 nct 도영 같은 것들을 검색했다. 도영의 연습생 비화. 이민 간다고 거짓말하고 자퇴 후 입사했다더라. 진짜 미쳤네, 미쳤어. 첫사랑 이민 보내는 심정을 네가 알어? 그것보다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느라 첫사랑이 연예인으로, 그것도 대형 기획사 아이돌로 데뷔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던 나 스스로가 억울하고 분해서 주먹을 꼭 쥐다가 그냥 홀드키를 잠가 버렸다.

뭘 그렇게 검색해. 김도영은 내게 종이컵을 건네며 아빠다리 했다. 나는 쭈그려 앉아 그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다 마셨다. 커피 그렇게 마시고 싶었어? 한 잔 더 타다 줘? 다정한 목소리에 더 열받았다.





"거짓말했던 거 후회했어, 엄청. 그땐 내 앞이 더 중요해서 그랬는데, 연습할 때도 데뷔하고 나서도 네 생각 많이 나더라. 싫어서 헤어진 게 아니었잖아. 네 입으로 아무렇지 않다고 하긴 했어도 진심 아닌 걸 내가 제일 잘 아는데."

"그래서? 그래서 어떡하자는 건데. 우리가 아쉬워한다고 시간이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 ... 어떻게 그 좁은 구리에서 한번을 못 마주칠 수가 있어?"

"아침에 연습 가기 전에 항상 너희 집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갔어. 너 학교 가는 거 보려고."





웃기지도 않다. 촬영 시작할게요. 그 말에 나는 김도영의 손에 빈 종이컵을 쥐어주고 쿵쿵거리며 카메라 쪽으로 갔다. 김도영은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를 버리고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스튜디오로 쏙 들어갔다. 열심히 해. 그 말도 잊지 않은 채로 말이다.

싱숭생숭해졌다. 연예인 다 돼서 나타난 주제에 다시 만나자는 것도 아니고 왜 저렇게 굴어. 그 시절의 나를 겪은 김도영이라면 누구보다 더 잘 알잖아. 내가 자길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렇게나 많이 좋아해서 5년 지난 지금도 보자마자 엉엉 울 수 있는 거란 것도. 아무것도 안 했는데, 토평고 나오지 않았냐 물어보고, 스타벅스도 아닌 고작 맥심 믹스커피 한잔 타준 걸로도 흔들린다는 것도.

입에서 커피의 단맛이 맴돌았다. 혀로 입천장을 꾹꾹 눌러가며 겨우 촬영을 마쳤다. 혹시 또 마주친다면 다시 말걸까봐 급하게 정리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그래. 그냥 잊자. 5년 전 남자 친구가 뭐라고. 고딩 때 풋사랑 어디 가겠냐고. 다음부터 마주치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하자고 마음먹었다. 쟤도 나도 그냥 지금 이대로 흘러가면 되는 거지. 반가운 마음에 그냥 아는 척한 걸 거야, 김도영도. 나도 반가워서 운 거지, 뭐. 그렇게 합리화하며 한숨을 폭폭 내쉬었다. 진동과 함께 카톡 알림이 두어번 울렸다.





[제작진 분한테 연락처 받았어. 불편하면 연락 안 할게.]

[나 도영이.]





하나도 안 불편해서, 합리화하면서도 연락 오길 내심 바라고 있었던지라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괜찮아. 종종 연락해. 무미건조한 답장을 보내고 나서 맥이 탁 풀렸다. 우리가 여기서 뭐라도 하면. 그땐 진짜 어떻게 되는데? 아이돌이랑 막내 작가가 하면 뭘 할 수 있는 건데?





도영아.





[NCT/김도영] 첫사랑 리퀘스트 1 | 인스티즈비디오 태그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입니다






5년 만에 나타나 놓고 왜 사람을 흔들어.





:::





어떻게 입맛에 좀 맞으실까요...?

너무 짧은가... ㅎㅎ

좋아해 주시는 분 있다면 암호닉 받을게요! 혹시 모르니까! ㅎㅎ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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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72.106
헉 작가님ㅜㅜㅜㅜ 벌써 대작의 기운이ㅜㅜㅜ 앞으로 기대할게용~~~!!
아 참 저는 [또잉이]로 암호닉 신청할게요~~!!

5년 전
독자1
아니 자까님 너무 재미지네요
5년 전
독자2
허걱 작가님... 너무 재밌어요 으어어엉... 다음편도 기대할게요ㅠㅠㅠ!!!
5년 전
독자3
와 미챴다 미쳤어요 작가님 진짜류....
5년 전
독자4
작가님 대박 ㅠㅠㅠ [윤54랑] 암호닉 신청이여
5년 전
독자5
대박 너무 좋아요 작가님 이건 대박이에요ㅠ
5년 전
독자6
대박 진짜 다음 내용 완전완전 기대되요!!!!! 암호닉 뿌꾸로 신청이용ㅎㅎ
5년 전
비회원188.187
대받대박대박 ㅜㅜㅜㅜㅜㅜㅜㅜ기다릴게요
5년 전
독자7
입맛이 맞냐고요? 맞다 못해 최고예요....!! 이런 글 너무 좋잖아요ㅠㅠ 작가님ㅠㅠ
5년 전
독자8
안 울게 생겼냐!!!!!! 기임도영!!!!!!!!!!!! (과몰입) 작가님만 괜찮으시다면 이 글을 사랑하겠습니다..❤ 암호닉 신청하고싶어요 [리링]으로요! 앞으로도 잘 뷰탁드려요💚💚
5년 전
비회원231.197
WOW... 굿입니다
5년 전
독자9
헐ㅜㅜㅠㅠ 너무설레요ㅠㅠㅠ또잉아ㅜㅜㅜㅜㅜ
5년 전
독자10
작가님ㅠㅜㅠㅠ으어 대박이에요ㅠㅠㅠ최고최고
5년 전
비회원95.15
아ㅠㅠㅠㅠㅠㅠ 토평고ㅠㅠㅠㅠㅠㅠ 구리 근처 살아서 그런지 너무... 너무.... 이입이 잘되네요ㅠㅠㅠㅠㅠ 토평고가 이렇게 아름다운 단어였나요ㅠㅠㅠㅠ 이름만 들어도 설레네요ㅠㅠㅠㅠ 참고로 구리가도 또잉이 본 적은 없ㅠㅠ어유유ㅠㅠㅠㅠㅠ
5년 전
독자11
아후 작가님 너무 좋아요 ~~~~ㅠㅠㅠㅠㅠ❤️❤️❤️❤️❤️❤️❤️ 몽글몽글..... 너무 좋습니다...... 암호닉 [밀키스] 신청할게요ㅠㅠㅠㅠㅠㅠ
5년 전
비회원106.17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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