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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atos

 

 

 

 

 

 

 

사람이 아니었다고 해도, 나는 괜찮았다. 너도 나처럼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고 숨을 쉬니? 딱히 물어보고 싶지도 않아. 아무렴 어때. 상관 없어. 속이 공허함으로 텅 비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괜찮았다. 그래. 나는 네가 사람이 아닌, 짐승도 아닌 그 어떤 것이라도 상관이 없었다.

“……민아.”

빛 한 조각 없는 어두운 날에 너는 나타났다. 슬픈 표정을 하고 한숨 아닌 웃음을 지었다. 나는 네가 위태로워보여. 굉장히, 약해보여. 손을 뻗어 잡아도 너를 속박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나는 너를 꽉 안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금방 온다고 했잖아. 3년이 어떻게 금방이야.

윤호의 목덜미에 얼굴을 갖다 대고 나는 울었다. 윤호는 울지 않았다. 다만 나를 토닥여주었다.


“난 너랑 가까이 지낼 수 없어……”

“윤호야.”

“……”


윤호의 목덜미에 얼룩진 내 눈물은 축축했다. 나는 힘겹게 고개를 들고 윤호를 바라보았다. 변함없는 얼굴, 눈, 코 입. 그래. 너는 10년 전부터 같았다. 시간이라는 거, 세상사람들 다 맞으며 건널 때 너 혼자만 빗겨갔나보다. 윤호야. 너를 불렀다.


“창민아. 나는 내가 너를 더 깊게 생각하는게 두려워. 그래서 미안해.”

“왜 그래. 왜 미안해. 내가 원하는 건데……”

“…너는 내가 뭐라고 생각해?”

“사랑, 내 사랑. 내 심장.”

 

그래. 네가 심장이 없다면…… 내 심장을 줄게. 내 몸에 흐르는 피 한방울까지 모조리 다 너에게 줄게.

그러니까 제발 곁에 있어줘.

그제서야 윤호는 울었다.

 

 

1

 

슬픈 냄새가 유난히도 짙은 날이 있었다. 윤호가 내게 오는 날이 그랬다. 아침에 눈을 뜨면, 흐릿한 외로움의 냄새에 나는 미소 지었다. 샤워를 하면서 늘 그렇듯 너를 생각했다.


해가 다 떨어져 노을만 걸쳐진 하늘 아래서, 그 빈 공터에서 너는 혼자 앉아있었다. 나는 그네를 타고 있었다. 귓가에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데 어쩐지 집중할 수 없었다. 내 외로움의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나에게로 왔기 때문이었다. 그 냄새는 내가 아닌, 너에게서 났다. 나는 힘차게 그네를 밀고 있었지만 시선은 오로지 너에게로만 두고 있었다. 나 뿐만 아닌, 인적 드문 그 곳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모두 다 너를 두세번씩 돌아보고는 했다. 그도 그럴것이 때는 여름이었는데, 너는 갈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추워보였던 걸까.


나는 너에게로 가서 말을 걸었다.


“형, 뭐해?”


너는 소름끼치도록 말간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섬뜩할 만큼 단정한 눈매 아래 있는 두 눈동자가 나를 보았다.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어떤 교향곡이 귓가를 울리는 듯 했다. 이상한 소리였다. 상투스?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신성했다. 나는 침이 꼴깍 넘어가는게 느껴졌다.

“난……기다리고 있어.”

“형도 엄마 기다려?”

“아니.”

“그럼 누구?”


너는 자칫하면 내가 놓칠 만큼, 아주 작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너무 예뻐서 나까지 따라 웃게 만들었다.


“친구를 기다려.”

“친구?”

“응.”


나는 네 옆에 앉았다. 흙덩이가 나뒹구는 그 적막한 공터에서, 나는 네 곁에 앉았다. 너는 내게 이름을 물어왔다. 나 역시도 너의 이름을 물어보고, 네가 기다리는 그 친구…… 내가 되어주겠다고, 그래도 되냐고 물었다. 너는 아무런 표정 없이, 고개만 저었다.


왜 안돼?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냥 입이……떨어지지가 않았다. 친구를 기다린다는 너의 하염없는 시간 속에, 그 외로움에 내가 낄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그 기다림은 너무나도 견고해서…… 고작 기다림 주제에.


하지만 나 역시 누군가를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슴이 아렸다. 우습게도 나는 너를 공감하고 있었다. 너를 안아주고 싶었고, 너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또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난 너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너에게서는 나와 같은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고독한 냄새, 고질적인 그 외로움의 냄새. 나 아닌 사람이 네 주위를 돌며 코를 아무리 킁킁거려도 절대로 맡을 수 없는, 오로지 나만 알 수 있는 너의 그 슬픈 냄새.

그걸 내가 맡았기 때문이다. 난, 너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다. 네가 나처럼, 오지도 않을 그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싫었다.

 


그래. 그래서 이제는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

샤워콕이 물줄기를 멈췄을 때, 나는 더는 웃을 수 없을 만큼 활짝 웃으며 욕실 문을 열었다. 그 문 앞에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네가 서 있었다.

 

“윤호야. 잘 왔어.”

“옷 부터 입어.”


장난스레 미간을 찌푸리고 말하는 너를 안았다. 지금도 여름이다. 너는, 이제서야 흰 티를 입고, 면 바지를 입는다. 여름의 옷이었다.


“나 많이 보고싶었어?”

“응.”

“나도, 나도 윤호야.”

“그래. 창민아.”


네 눈 안에 내가 있다. 네가 나를 담고 있다. 나는 물기어린 손으로 네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너는 물기를 잔뜩 머금어 얼굴에 붙어대는 내 머리카락들을 다정히 쓸어주었다. 너무나도 따뜻한 손길이었지만, 소름이 돋을 만큼 차가웠다. 너를 꽉 안는다. 그래, 윤호야. 너로구나. 정말로 네가 내게 왔구나. 나는 기뻐서 눈물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일년 만이네…… 너 왜 이렇게 말랐어.”


귓가에 조용히 울리는 그 목소리에 나는 머리가 멍해질 만큼 황홀했다.


“네가 안와서 그랬어.”

“…….”

“나 안쓰러워? 그럼 네가 옆에서 챙겨주면 되잖아.”

 


헛으로 한 말이 없는 투정에, 너는 내 품을 벗어났다. 나는 머쓱해져 잔뜩 눕혀져 있는 뒷머리를 헤집으며 너에게서 한발 떨어져나왔다.


“옷부터 입고, 응?”

“왜. 섹시해?”

“응. 섹시해.”


익살스러운 내 표정에 금새 또 웃는 윤호를 보며 다시 한번 안았다.

“…… 너 감기걸려.”


너 안아주는게 더 중요해.


얼음장같은 네 몸을 그렇게 몇번이고 안았다. 너의 눈을 보고 싶어서 너를 잠시 놔주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또 다시 너를 안고. 계속해서 안았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지만 내 심장 만큼은 누군가가 불을 지핀 듯 뜨겁기만 했다.


 
나는 옷을 입었고 너는 소파 위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숨김없는 애정이 너무 사랑스럽다.

 

“다 입었어.”

“잘했어.”

“칭찬해줘.”

“……어떻게 해줘?”

“뽀뽀.”

“그래.”


너는 그 차가운 손을 내 목에 둘렀다. 그 고요한 움직임에 시간이 멈춘 듯 했다. 곧이어 촉촉한 입술이 촉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뺨에 부딪혀 떨어졌다.


“순 애구나. 창민이는.”

“……”

“예뻐. 말도 잘 듣고.”


너는 물기가 조금은 마른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 손을 조심히 잡고, 너를 보았다. 그리고서 네 입술에 내 입술을 대었다.


윤호야. 나는 더이상 어린 애가 아니야.

네 아랫 입술을 혀로 핥았다. 차가워. 하지만 네 입 안은, 너무나도 따뜻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너는 한참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결국에는 내게 함락해주었다. 조심히 새어나오는 그 틈에 나는 허겁지겁 들어가 안을 온통 휘저었다.

따뜻해. 질척이는 그 안이 너무나도 따뜻해서 감격이라도 한 듯 심장이 주체없이 떨려왔다. 말랑한 살 그 구석구석을 핥으며, 고개를 빼끔 들어오는 너의 혀를 물고 빨면서 쾌감에 눈이라도 먼 것 같을 때, 네가 한발자국 떨어졌다.


“……”

아무 표정 없는 얼굴. 너는 정말 아름답지만……저 얼굴은 너무나도 밉다.


“나 첫키스야……”

윤호야. 하고 네 뺨에 손을 뻗었다. 너는 내 손을 쳤다.


“……나 갈게.”

“넌 첫키스 아니지.”

“심창민. 이러지마.”

“그래도 상관없어. 가지만 마. 응?”

“……”

 

네가 한숨을 쉰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나를 알고 있니. 너는 도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아무 표정이 없는 너 조차도 나지 않은 화가, 내게서 났다.

 


“윤호야.”

“……”

“여기 있어. 오늘은, 응?”

 

너는 고개를 몇번 끄덕였다.

숨길 수 없는 적막에 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오후 1시. 문득, 너에게 줄 선물이 생각났다.

 

“윤호야. 매번…… 너, 아무것도 안먹고 가잖아.”

“……”


네가 물끄러미 내 얼굴을 본다. 나는 자신에 찬 얼굴로, 하지만 손 끝이 떨리는 걸 느끼고 있는 채로 너를 일으켜세운다. 너의 눈썹은 살짝 찡그러져있다. 나는 너를 주방으로 안내했다. 은색의 냉장고가 보이고, 네 앞에서 나는 그걸 열었다.


너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정말 그야말로 모든 걸 다 잃어버린 사람처럼. 내 얼굴을 보았다.

시원한 그 안에는, 너를 위해 준비한 내 선물이 잔뜩 담아져있었다. 어쩌면 네 혀보다 더 붉을수도 있는 그것들……

 

“……이래서 내가, 너를……”

 

도대체 너는 얼마나 존재했을까. 수백년? 수천년? 어디서부터 너라는 존재가 세상에 서 있었을까. 너는 곧 표정을 지웠다. 아무것도 담기지않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넌 정말 하나도 안 컸어. 넌 너무 어려, 창민아.”


차가워.


“……난 너를 감당할 수 있어. 윤호야.”

“내가 너한테 원하는게 고작 이딴걸로 보여?”

“적어도 나는 원하잖아.”

“창민아.”

“나 이제 어리지않아. 네가 얼마나 살았든…… 나도 이제 다 커버렸어.”


차라리 울어, 윤호야. 너는 터벅터벅 걸어가 식탁 위에 앉았다.


“이러면 내가 너를 볼수가 없어.”

“그냥 가지말고 내 곁에 있으면 되잖아. 매번 기다리는거 지쳐. 너도 알잖아. 기다리는 게 얼마나 힘든건지……. 이제 네가 필요한 거 내가 줄게. 얼마든지 줄 수 있어.”


너의 숨소리는 매우 규칙적이었고, 표정도 드러낸 게 없을 만큼 온화했지만 나는 알았다. 너는 그 어느때보다도 내게 화가 나 있었다.


“창민아.”

“사랑해.”

“너는 내 집이야.”

“사랑해, 윤호야.”

“내가 유일하게 돌아갈 수 있는 곳이야.”

“윤호야. 정말…… 널 사랑해.”

 

나는 목이 메이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그거 아니.”

“제발, 윤호야……”

“너라는 집은 곧 허물어질거야. 너도 알잖아? 너는 사라져. 곧 죽어버려.”


죽음이 두렵지 않은 나조차도 듣기 싫은, 그 말들을 너는 아주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를 찾아가는 것, 너를 보는 것, 너를…… 사랑하는 것. 그게 어떤 사랑이든. 이 모든 게 다 나를 갉아먹을거야. 나는 너처럼 어리지않아. 다 알고 있어. 너를 보면 볼수록 나는 너를 더 사랑할테고…… 그런데 너는 사라져. 순식간에. 그러면 나는, 나는 얼마나 슬퍼해야 해? 도대체 얼마나 아파해야 해? 너는 몰라. 죽으면 끝인 네가 뭘 알아.”

“윤호야.”

" 넌 내게선물이야. 널 만난 건…… 네가 없이 흘러갈 수천년도 더 기억할, 내게는 큰 행복이야. 창민아.”


나를 설득하려고 하지마. 세월에 때묻지 않고, 수면 위를 걷듯 그 숱한 시간을 견뎌낸 네게 난 이길 자신이 없어.


“셀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내 가슴 안에서 죽었어. 너를 만나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 사람들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있어. 나, 너무 아파. 하루하루가 아파. 그런데 너도 그렇게 날 아프게 만들거야. 나는…… 내가 너를 만나는건…… 앞으로 내가 숨을 쉬는 그 모든 시간을 아프게 만들거라는 걸 알아. 그런데도 내가 널 사랑해. 그래도 너를 만나, 창민아.”

“……”

“이걸로 만족해주면 안돼? 내가 없으면…… 넌 기껏해야 백년동안 나를 기다리며 아파하겠지만 나에게는 너의 평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긴 시간의 아픔이야. 창민아.”

“……바보같아. 너…… 그럼 왜 날 사랑해. 그렇게 아플거면 나 찾아오지말지. 내가 널 평생 기다리든, 아파하든…… 내 평생은 너에게 순식간이라며. 그럼, 조금만 참지. 왜 나타나…… 왜 널 아프게 해?”

“사랑하니까……. 응? 내가 너 사랑하니까. 창민아.”

“……”


숨 소리 하나 가빠지지않고, 내게서는 눈물이 났다. 생경하게 흐르는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발 밑도 아닌, 끝없이 추락해서 다시는 올라올 수 없을 만큼 어두운 곳으로 떨어진다.

 

“잘 지내.”


눈을 떴다가, 뜨는 순간에 너는 사라졌다. 나는 하염없이 서 있다.

 

 

 


네가 돌아온 게 꿈만 같아.

그냥 가버린 것은, 더 꿈만 같아.


 

그 한적한 공터에서, 우리는 두번째로 만났다. 2년이 흐른 뒤였다. 나는 너를 꿈 속에서 만난 것 처럼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너를 만나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너를 기다렸다는 걸. 나는 밝게 웃으며 너에게 안겼다. 너는 나를 안아주었다.


형, 보고 싶었어.

나도 그래. 창민아.

 

이미, 그때의 나는 오지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않았다. 네 어머니는…… 오지 않을 거란 거. 사실 알고 있었다. 너와의 첫만남 이후, 나는 그것을 아무런 생각없이 깨달아버렸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네가 내게 마법이라도 건 것일까. 비가 오던 눈이 오던 몇년을 기다렸던 나의 그 맹목적인 믿음을…… 안타까울 만큼 슬픈 어린아이의 어리석음을, 너는 깨트려주었다.


두번 째의 너는 가을하늘 아래 있었다. 너는 나를 몇번이나 토닥이고, 쓰다듬어주면서 기다림이라는 얘기를 했다. 기다리는 건 기다리는 사람에 따라 행복한 것과 행복하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돌아올 사람을 기다리는 건 행복이라고 했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조금이라도 기다리는 건, 아주 아픈 일이라고 했다.


나는 그 아픔을 뼈저리게 느꼈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또 영원에 대해 말했다. 세상에는 영원함이 없다고 했다. 모든 게 다 변한다고……, 그래. 모든게 다 변해버리고 만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래도 하나쯤은, 영원한게 있지않을까. 나는 여전히 찾고 있다. 네가 틀렸다는 걸 알려주고, 너를 위로해주고 싶다. 네가 영원하지 않은 것들에게 아팠던 만큼…… 네 옆에서 영원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알려주고 싶었다.

 

 

세번째는 2년 뒤였다. 그 때는 겨울이었다. 처음 봤던, 그때의 코트를 입은 너는 학교의 운동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얀 눈 위에 하얀 너…… 이건 꿈으로도 설명이 안되었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때의 너는, 내게 사랑을 들려주었다. 사랑은…… 이 세상에 수백만가지가 존재한다고. 그 때 처음으로 윤호는 내게 사랑한다 말했다. 창민아, 나는 너를 사랑해. 나 역시도 그랬다. 형, 저도 형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내 말에 윤호가 웃었다.

 

그리고 3년 뒤에…… 너를 단 한순간도 잊은 적 없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 찾아온 너는 내게 와서 꽃다발을 건내주었다. 그 날은 고등학교 입학식이었다. 수 없이 빽빽한 사람들의 웃는 얼굴 뒤로, 홀로 서 있어 숨 죽이고 고개마저도 숙였던 내게 너는 환한 꽃을 들고, 그보다도 더 환한 미소를 가지고 내게로 찾아왔다. 나는 그제서야 이게 하늘의 떠다니는 구름을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내면에 깊게 잠식하는 무거운 사랑임을 느꼈다.


창민아, 입학 축하해.


너도 나를 잊지 않고 있었던 걸까? 내가 3년 동안, 단 한 순간도 너를 잊지 않은 것 처럼. 여름이든, 가을이든, 겨울이든. 심지어 너를 만나지 않았던 봄에서 조차 너를 그려했던 걸…… 너도 그랬을까?

 

너는 내게 손을 꺼내보라고 했다. 교복 속에, 추움에 떨며 깊숙하게 감춰져있던 손을 끼거이 너에게 건냈다. 너는 미안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차가울 거야.


그때는…… 매섭게 치는 바람이 차가울 것이라는 줄 알았다. 하지만 네 하얀 손이 조심히 내 손을 감싸잡았을 때.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키가 크고, 목소리가 굵어지고, 어깨가 넓어지는 동안. 단 한번도 변하지 않던 네 이유를.

너의 손은 죽은 사람보다 더 차가웠다. 나는 놀란 눈을 했고, 나 조차도 모르게 너의 손을 쳐냈다. 너무 놀란 탓이었다. 순식간이었다. 너는 쳐내진 손을 가만히 들어 내 눈 앞에 보였다.


많이 차가웠니?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 하지만, 넌 상처받았으리라. 나는 허공에 흩날리는 눈 같은 그 손을, 다시 잡았다.


제가 녹여줄게요.


너는 웃었다.

네가 준 꽃이 시들어버릴 만큼, 너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그 다음에는…‥ 1년 뒤 였다. 늦은 밤 산책을 하고 있던 도중에, 가로등이 있는 담벼락 아래에서 나를 보고 있는 너를 알아차리자마자 나는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네가 오지 않았던 그 동안, 난 아플 만큼 너무나도 간절히 너를 그리고 있었기에. 그 날도 그랬던 날인데, 네가 거짓말 처럼 내 눈 앞에 있어서. 그래서 힘이 빠졌다. 너는 당황한 얼굴로 내게 뛰어왔다.


형. 보고 싶었어요.

그러고서 너를 와락, 하고 껴안았다. 너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 조차도 듣지 못하게 하려는 듯, 조근히 말했다. 나도.

그 날은 너를 내 집에 초대했다. 나는 고아원을 나와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너는 내 방에서, 나와 함께 후끈한 아랫목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이 샜다. 작은 창가 위로 짙은 푸른색이었다가, 이내 검게 변하는 그 하늘을 너와 함께 지켜보았다. 너와 나는 새벽이 뜰 때 까지, 산새가 지저귈 때 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또 이년 뒤에, 너는 작은 선물상자를 들고 자취 집 앞에 나타났다. 사실 네 방문 자체가 내게는 선물이었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잠에서 덜 깬 그 상태 그대로 문을 열었을 때, 거짓말 처럼 네가 있었으니까.

너는 내 볼에 입술을 맞추었다. 창민아, 성년이 된 거 …… 축하해.¨너는 로맨틱했다. 나 조차도 잊고 있었던 성년의 그 날을, 너는 나를 위해 기억해주고 있었다.

네가 가져온 그 선물 상자에는 은은한 향이 나는 향수가 있었다.


윤호야, 고마워.


나는, 그때 처음으로 너의 이름을 불렀다.

그 날도 역시 우리는 함께 했다. 꼬박 하루를 함께 살을 부딫히며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조심스레 네가 오지 않을 그 시간동안 생각했던 말들을 뱉어냈다.


같이 살면 안돼?


너는 처음 만났을 때 처럼, 친구가 되면 안되냐고 물었던 그 때 처럼,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창민아.

대신 나를 품에 안아주었다. 차가운 살갖이 따뜻하기만 했다. 나는 그 따스함에 용기를 얻어서 말했다.


네가 뭐든 난 상관 없어.

……

사랑해. 응?

……

네가 사라지면, 다시 찾아올 그 시간동안 나 너무 아파…… 어렸을 때 엄마를 기다렸던 것 처럼 나 매일을 너를 기다리는데……

그래서 너한테 돌아오잖아. 응?

윤호 네가 그랬잖아. 다시 돌아올 사람을 기다리는 건 행복이라고. 그런데 아니야. 나 그냥 너무 아파. 너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아.


한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네 생각이 유난히도 많이 나던 날이면, 펑펑 울기까지 했다. 그러지않으려고 해도 바보처럼 계속해서 눈물이 나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 구석에 틀어박혀 혹시라도 네가 문을 두드리며 내 앞에 나타날까봐. 그런 기적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또 되새기며 너를 기다렸다.

 

너는 한참동안 아무런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괴물이야.


너는 너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말했다. 나는 숨이 턱 막혀버려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아니야, 넌 괴물이 아니야. 하지만 나 역시 내가 내뱉으려는 말은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 윤호야. 너는 괴물이야.

 

창민아.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끔찍해. 당장 네 앞에서 좋은 사람인 척 하지만 나 말이야……

 

너는 웃었다. 처연했다.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어오르는 걸 느끼며 침을 삼켰다.


사람이 아니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그 말을, 너의 입에서 듣는 순간 나는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

 

상관없어.

나, 정말로 사람이 아니야. 창민아.

네가 뭐든 난 상관없어. 윤호야.

……

사랑해.

죄악이야.

……그렇지만 널 너무 사랑해. 너도 그렇잖아. 날 사랑하잖아.

……

날 사랑하지않는다면 떠나.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마.

 

고함을 치듯 끓어오르는 순간적인 감정에 못 이겨 내뱉은 말에 너는 그대로 내게서 등을 보였다. 정말 가는 거야? 눈 앞이 아득해질 만큼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하지만 너는 한마디를 남겼다.


만약에 네가 나를 사랑하듯 나도 너를 사랑하면…… 다시 올게.

 

나는 울었다. 잡을 수가 없어서. 내가 너무 원망스러워서. 그래서 울었다.

 

금방 와, 윤호야.

 

 

그리고 너는 3년의 시간이 흐르고 내게 돌아왔다.

그 때즘에는 나 역시도 너에 대해 많은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3년의 시간은 너무나도 길어서 모든 것들을 다 생각해도 남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너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긴 시간동안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너는 나에게 무엇일까? 나에게서가 아닌. 네 존재 자체로서의 너는 과연 무엇일까?

 

 

하지만

네가,


사람이 아니었다고 해도 나는 괜찮았다. 너도 나처럼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고 숨을 쉬니? 딱히 물어보고 싶지도 않아. 아무렴 어때. 상관 없어. 속이 공허함으로 텅 비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괜찮았다. 그래. 나는 네가 사람이 아닌, 짐승도 아닌 그 어떤 것이라도 상관이 없었다.

……민아.

빛 한 조각 없는 어두운 날에 너는 나타났다. 슬픈 표정을 하고 한숨 아닌 웃음을 지었다. 나는 네가 위태로워보여. 굉장히, 약해보여. 손을 뻗어 잡아도 너를 속박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나는 너를 꽉 안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금방 온다고 했잖아. 3년이 어떻게 금방이야.

윤호의 목덜미에 얼굴을 갖다 대고 나는 울었다. 윤호는 울지 않았다. 다만 나를 토닥여주었다.


난 너랑 가까이 지낼 수 없어……

윤호야.

……


윤호의 목덜미에 얼룩진 내 눈물은 축축했다. 나는 힘겹게 고개를 들고 윤호를 바라보았다. 변함없는 얼굴, 눈, 코 입. 그래. 너는 10년 전부터 같았다. 시간이라는 거, 세상사람들 다 맞으며 건널 때 너 혼자만 빗겨갔나보다. 윤호야. 너를 불렀다.


창민아. 나는 내가 너를 더 깊게 생각하는게 두려워. 그래서 미안해.

왜 그래. 왜 미안해. 내가 원하는 건데……

…너는 내가 뭐라고 생각해?

사랑, 내 사랑. 내 심장.

 

그래. 네가 심장이 없다면…… 내 심장을 줄게. 내 몸에 흐르는 피 한방울까지 모조리 다 너에게 줄게.

그러니까 제발 곁에 있어줘.

그제서야 윤호는 울었다.

 

 

너를 내 품에 안은 순간 모든 혼란이 완전히 끝났다. 사랑. 그래 너는 내 사랑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네게 사랑이었다.

 

그 날 밤 너는 내게 말해주었다. 너의 존재를. 나는 피를 마셔. 불멸의 삶을 살아. 그건, 부러울 것도 좋을 것도 없는 일이야. 죽지도 못해. 은으로 된 총알이 내 심장에 박혀도 나는 살아 창민아.

 

나는 담담히 너의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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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자까님 뽀뽀 나랑 겨론할래여? ㅇㅅㅇ 캬 좋다 ㅎㅅㅎㅎㅎㅅ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다음편으느????ㅎㅎㅎㅎㅎㅎ
9년 전
독자2
ㅠㅠㅠㅠㅠㅠ미친 개좋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야 키스하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와 개발린다 레아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야 사랑해..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9년 전
독자3
잒야 나 뭐라고 댓글을 달아야 할지 모르겠다 헐 대박 이게 레알이네 진 ㅏ와 ......... 그니까 윤호는 뱀파이어인거고 심창민은 인간인거지? 와 이런 판타지물을 겁나 아련하게 쓴건 진짜 오랜만이다ㅠㅠ ㄹㅇ 감동이야ㅠㅠㅠㅠ 너 사랑함ㅠㅠㅠㅠ 처음엔 뭘 말하는 건지 몰랐는데 읽을수록 눈치채고 더 읽을수록 겁나 아련해짐ㅠㅠ 왜 정윤호는 자꾸 떠나는건데ㅠㅠㅠㅠㅠ 엉 ㅇ엉엉어어엉엉엉ㅇ 자까야 뽑뽀? 어딜 원해ㅠㅠㅠㅠㅠ
9년 전
독자4
ㅠㅠㅎㅅㅎ?ㄱ뽀뽀?ㅜㅜㅜㅜㅜㅎㅅ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ㅅㅎㅎㅎㅎㅎㅎ후ㅜㅜㅠㄱ좋다ㅠㅠㅠㅠ
9년 전
독자5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자까 딥키스 조아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싫어도 할수없어 내가 뽀뽀할꺼니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담편 언제니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와씨 파워흑화 와우 미친 아 와씨 후억후억 이게뭐리고 내가 숨을 못 수ㅣ.......(숨진다)
9년 전
독자6
헐...개좋ㅠㅠㅠㅠㅠㅠㅠ왜이렇게슬프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다음편있어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또보고싶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9년 전
독자7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런거좋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개아련아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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