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김남길 몬스타엑스 강동원 이준혁 엑소
깔로레 전체글ll조회 1709l

 

 

[B.A.P/대영] - 이상한 나라. 上 | 인스티즈

 

[B.A.P/대영] - 이상한 나라. 上 | 인스티즈

 

 

[B.A.P/대영] - 이상한 나라. 上 | 인스티즈

 

 

 

 

  

 

 

 

[대영] - 이상한 나라. 上

 

 

 

W. 깔로레(Calore)

 

 

 


검은 무리들 사이에서 혼자 동 떨어져 서있었다. 내가 지금 무얼 보고 있는지 눈앞은 그저 흐리기만 했다. 머릿속은 공허했다. 마음도 공허했다. 사람은 많았지만 주변은 아무도 없었다. 이때까지 나는 무얼 하다가 여기 서있으며 나는 왜 여기 계속 서 있는 걸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잿빛 같은 곳을 빠져 나왔다. 내가 어딘가에 들어 설 때서야 자신이 지금까지 있었던 곳이 실외였다는 것을 자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큰 깨달음은 아니었다. 긴 복도 같은 곳을 한 참을 걸었다. 빈 복도에 걸을 때마다 발걸음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계속 되는 걸음이 지쳤는지 조금 어지럼증이 왔다. 이내 다리는 중심을 잃고 휘청 거렸다. 차갑고 까슬한 벽을 손으로 짚어 중심을 잡았다. 그대로 벽을 짚으며 계속 걸었다. 까슬한 벽에 손바닥이 쓸리면서 생채기가 나는 듯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당장 어디에 눕고 싶었다. 잠에 들고 싶었다. 그렇게 걷다가 곧, 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마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물을 갈구하는 사람처럼 조금은 흥분한 상태로 문을 향해 걸었다. 문을 열자 눈에 보이는 것은 그토록 찾는 침대였다. 안식처를 찾자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힘이 풀린 다리를 질질 끌며 침대로 향했다. 이윽고 침대위에 몸을 뉘였다. 포근하고 따스한 향이 났다. 안정감을 느끼고 온 몸에 힘을 풀고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영재야]

 

 

 

잠에 빠져든 지 얼마나 됐다고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깊은 잠에도 빠지지도 못한 체 막 일어난 몸 치곤 굉장히 가벼운 느낌이었다. 오히려 아까보다 정신도 맑았다. 눈을 끔벅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나는 실외에서 실내로 들어와 잠을 청한 것 같은데 눈앞에 보이는 것은 천장이 아니라 푸른 하늘이고 뺨에 닿는 것은 보드라운 시트가 아니라 까슬한 잔디였고 실내 벽 대신 빽빽한 나무들. 상체를 급히 일으켜 세웠다. 내가 있는 곳은 울창한 숲 한 가운데 이었다. 여긴 어디지?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혼자 외딴 곳에 동 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에 누구라도 있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몸을 웅크리고 무릎을 모았다. 두려움에 몸이 자연스럽게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이곳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아름답지만 생기가 없었다. 당장 일어나 사람을 찾아야 봐야하는데 몸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거의 울기 직전까지 갔을 때 어디선가 사사삭 하는 인기척이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어떠한 인영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저게 무엇일까 하는 두려움도 잠시 잡아야 된다는 순간적으로 드는 강한 생각에 몸이 거짓말처럼 움직였다. 인영이 눈앞에서 사라지기 전에 따라 잡아야만 했다.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그 인영은 아주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잠깐만! 잠시 만요!!"


내가 큰 소리를 내자 나무며 풀이며 꽃들이, 숲 전체가 파르르 떨었다.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마치 내 소리에 반응 하 듯이 말이다. 그것에 잠깐 눈을 뺏긴 사이 작은 인영이 사라져갔다. 좀 더 발을 굴렸다. 간발에 차로 그 인영이 풀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가까이 가보니 방금 누가 지나 간 것을 알려주는 듯 풀덤불에는 작은 터널이 생겼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풀을 헤치며 기어갔다. 제발 멀리가지 않았기를 빌며 덤불을 빠져 나왔을 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잘 정돈된 넓은 정원이었다. 잘 깎여진 나무들은 클로버 모양으로 각 잡힌 병장들처럼 일렬로 나열돼 있었다. 완전히 몸을 빼내고 일어서려는데 팔 근처에 뭔가 쓸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보니 제가 나온 곳은 흑장미 밭이었다. 팔에 조심조심 가시에 닿지 않게 주의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앞에 있는 장엄한 정원에 넋을 잃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어느새 정원 한 가운에 서 있었다. 정원에는 고혹적인 흑장미들이 곳곳에 굉장히 많았다.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아름다웠지만 여기 또 한 그림 같았다. 그 인영은 이 안으로 들어 온 것 일까? 하지만 사방이 탁 트인 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또 다시 혼자가 되었다. 어쩌면 좋지.. 깔끔한 잔디 위를 저벅저벅 걷다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
    
아무도 듣는 이 없는 곳에서 나 홀로 빌었다. 어쩐지 기분 나쁜 이 숲을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 또 다시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 그곳을 주시했다. 저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까 본 인영과는 아예 다른 존재 같았다. 처음에는 한 명만 보이는 가 싶더니 그 한명을 중심으로 검은 무리를 꼬리처럼 달고 왔다. 그것이 내 코앞까지 가까이 올 때까지 나는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무리는 정원에 핀 흑장미 같은 검은 제복을 입고 있었고, 제복의 왼쪽 가슴에는 저마다 스페이드, 클로버의 문양이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에서 가장 앞 장선 남자는 흰 제복에 한 쪽 팔에는 검은 완장을 차고 있었다. 검은 완장에는 스페이드 에이스의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사람은 나를 차갑고 딱딱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 기에 눌려 나는 눈썹을 휘었다. 허리께에 찬 칼을 빼들고 날로 내 턱을 들어 올렸다. 놀라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너냐? 숲에서 소란을 피우고 여왕님의 정원에 함부로 발을 들인 자가?"


"..네?"


"잡아다가 감옥에 가둬라 어떻게 처분 할지는 여왕님께 보고 후 결정하겠다."


칼을 거둔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은 제복의 남자들이 양쪽에서 나를 포박했다.

 

"잠깐만, 난 잘 못 한 거 없어요! 어쩌다가 이 숲에 들어 온 것 뿐이에요 이거 놔요!!"


"시끄럽다!"


남자의 호통에 나로 인해 소란스러워진 주변은 얼어붙은 것처럼 다시 조용해 졌다. 나를 포박하던 제복군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이 이상 여왕님의 정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은 용서치 않겠다."


저를 경멸하는 듯 한 눈으로 쳐다보고 몸을 돌려 가버렸다. 나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그들의 의해서 끌려갔다.

 


끌려 들어온 곳은 정말로 감옥이었다. 좁은 공간 안에 덩그러니 갇혀버렸다. 빛이라곤 감옥 밖에 걸어진 횃불 그리고 감옥 안의 아주 조그만 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뿐이었다. 이러다가 정말 영문도 모르는데서 억울하게 죽는 것은 아닐까. 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되었지? 아..그러고 보니, 순간 무언가 커다란 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있어 기억은 내가 침대로 걸어와 잠을 청하기까지의 기억밖에 없었다. 내가 이때까지 무얼 하던 사람인지 내 주변엔 누가 있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는 것은 고작 내 이름 석자였다. 어째 서지? 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거지? 갑자기 이런 곳에 와 버린 것도 그렇고.. 나는 실은 정말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 걸까? 급기야는 내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꿈일까?


"꿈인 걸까.."


"맞아 꿈이야"


갑작스런 음성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쇠창살 너머로 아까 보았던 검은 완장의 남자가 서있었다. 여전히 무서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여왕님께서 선처를 베푸셔서 아무 벌 없이 너를 놓아주라고 하셨다. 내일 날이 밝으면 내 보내줄 테니 허튼 짓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여왕님께는 나중에 경의를 표하는 것도 잊지 말고"


"감사합니다. 근데 죄송하지만 여기가 어디죠? 길을.. 잃었어요."


"여기는 그 어느 곳도 아니야"


"그 어느 곳도 아니라고..요?"


"이미 네가 말했잖아 꿈이라고. 여긴 꿈이야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고 주변은 아름다운 생물들뿐, 그리고 조용하고 평화롭지 아무도 건드는 이 하나 없어"


"..."


"그만큼 허망한 곳이야"


말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남자에 나는 황급히 무릎으로 기어가 쇠창살을 부여잡고 남자를 불렀다. 다행히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아봐 주었다. 여기서 나가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간절한 눈으로 남자에게 말했지만 그는 잠깐 나를 쳐다 볼 뿐 아무 말 없이 가버렸다. 한 숨을 폭 쉬고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여기서 나가도 그 다음이 문제인데. 누군가 도와줬으면 좋겠다. 혼자서는 무리야. 심신이 무기력해져 흙바닥에 그대로 몸을 눕혔다. 혹시 이렇게 다시 잠이 들면 깨어났을 땐 원래 있던 곳에 있지 않을까.. 그런 작은 기대를 걸고 불편한 자리에서 잠을 억지로 청했다.

 

 


넓은 잔디 위 나무 밑동에 앉아 멍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였다. 어디를 가도 보이는 하늘이지만 어딘가 익숙하다. 고개를 내리고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땐 푸른 하늘에서 거뭇한 하늘로 변해 있었다. 검은 융단에 보석을 깔을 듯 했다. 주변은 어두웠다. 나는 왜 이 곳에서 혼자 있는 거지? 무언가를 기다리는 건가? 일어서서 다른 곳으로 가볼까? 하지만 몸은 굳은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멍하던 눈에 슬금슬금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슬프지 않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잠시 후 뿌연 시야에 무언가 아른거렸다. 그리고 그것이 곧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눈물을 닦아도 가까이 있는 사람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얼굴도 표정도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입 만 뻐금 데었지만 그 사람이 나를 걱정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그 사람은 나를 품 안에 가두었다. 누굴까 이 사람은.. 누군데 나를 이리도 다정히 안아주는 거지?

 


[어디 갔었어?]

 


또 다시 음성이 들리는 과 동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 난 곳은 내가 잠들었던 감옥 안이었다. 돌아오지 못했구나. 그런 상실도 잠시 방금 전 꿨던 꿈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묘한 꿈이네. 그런데 그 남자가 여기가 꿈이라고 했는데 나는 꿈에서 또 꿈을 꾸는 건가? 스스로 말하면서도 참 기묘했다. 창문을 보자 밝은 햇빛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영롱한 달빛이 비춰 들어오고 있었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한 참 멀었구나. 갈 곳은 없지만 어서 여기서 나가고 싶다.


"나가고 싶어?"


낯선 이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누구야?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가게 해줄까? 다시 한 번 텅 빈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완장의 남자라고 생각 했지만 목소리는 전혀 다른 이의 것이었다. 창살을 잡고 두발로 섰다. 나가게 해줘? 목소리가 나에게 재차 물어왔다. 나는 무섭고 얼떨떨했지만 어쩐지 목소리에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머뭇거리다 이내 나는 나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큭큭 장난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뭔가 보드라운 털 같은 것이 목덜미를 지나는 느낌이 들었다. 소름이 돋아 으흑..! 이상한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켰다. 창살 쪽에서 쇳소리가 났다. 자물쇠가 두어 번 흔들리더니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이 풀렸다. 챙, 하며 무거운 자물쇠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문을 마치 누가 열어준 것처럼 감옥의 문이 스르륵 열리였다. 망설임도 잠시 나는 문을 활짝 열고 감옥을 빠져 나갔다. 허공에 대고 나는 감사합니다. 라고 외쳤다. 뒤를 돌아 가는 순간 등 뒤에서 아까와 같은 개구진 웃음소리가 옅게 들려왔다.

 


지하에서 올라오자 호화로운 긴 복도가 나왔다. 높은 벽에는 왼쪽에는 스페이드, 오른쪽에는 클로버가 새겨진 깃발이 교차되면서 걸어져 있었다. 어떠한 왕국의 문양 같은 것도 곳곳에 있고 완장의 남자가 계속해서 여왕님을 입에 올리던데 여기는 왕실인가? 멋모르고 돌아다니다가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에 급히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얼굴을 살짝 빼내어 보니 설상가상 완장의 남자였다. 어떻게 안 틀기고 나가지? 여긴 너무 넓어서 출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러다가 걸리면 평생 감옥에서 못 나올 텐데. 다른 곳으로 가볼까 하고 뒤를 도는데 코앞에 서있는 누군가에 의해 너무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여기는 대체 왜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좋아하는 거야? 정말 심장 마비가 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다. 제 앞에 서있는 사람은 조금 앳돼 보이는 얼굴이었다. 훤칠한 키에 정장차림 이었지만 무릎까지 오는 짧은 정장바지에 흰 양말 신어 조금 발랄한 느낌을 줬다. 한 손에는 회중시계를 들고 외눈안경을 착용하고 있었다. 선한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흰 피부와 같은 백발을 하고 있었고 그 머리카락 사이에 솟아난 토끼귀가 의심스러웠지만 거기까지는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고 했다.


"저기 실례지만 여왕님의 직무실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아니요 여기 사람이 아니라서.."


"왕실 사람이 아니세요?"


"네, 어쩌다가 들어 와서.. 다시 나가야 하는데 출구가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혹시 길을 잃으셨어요? 제가 출구는 아는데 거기로 안내해 드릴까요?"


"정말요? 그래주시면 감사드릴게요."


"여기가 워낙 넓어야지요 저도 이렇게 종종 길을 잃는 답니다. 자, 저를 따라오세요."


회중시계를 열어 한 번 보더니 다시 닫고는 포켓에 집어넣었다. 토끼 귀남이 앞장서자 나는 그의 등을 바라보고 뒤를 쫓았다. 그런데 저 귀는 진짜인가? 소리를 감지하는 것처럼 커다란 귀가 자꾸 팔랑팔랑 거렸다. 토끼 귀남을 따라가다가 앞에서 검은 제복 무리가 반대편에서 다가 오자 최대한 벽에 붙어서 얼굴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다행히 나를 모르는 듯 그냥 지나쳐갔다. 그런데 대체 얼마나 넓은 곳인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곧 다와 갑니다. 내가 지친것이 들리기라도 했던 것인지 토끼 귀남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렇게 말했다. 키 큰 남자의 등 뒤에 숨어 내내 앞을 안 보고 있었는데 느낌이 이상해 까치발을 하고 어깨 너머로 복도의 끝을 보았다. 출구를 향하고 있는 것 치고는 빛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숙하고 어눅한 곳으로 들어가고 있는 듯 했다. 정말 출구로 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 고개가 갸웃거렸다. 신뢰를 갖고 따랐던 걸음이 순간의 불신으로 삐걱댔다. 그러자 토끼 귀남은 우뚝 멈추더니 나를 향해서 몸을 돌렸다. 저를 보더니 눈을 접으며 얄상하게 웃었다.


"왜 그러세요?"  

 
"저..저기가 어디인가요? 저는 그냥 밖을 나가고 싶은데요."


"출구입니다"


토끼 귀남은 애매한 대답을 했다. 뒷걸음을 치자 그는 웃는 얼굴을 하면서 한 발자국 다가섰다. 뭔가 크게 잘 못되고 있는 거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았다. 어서 가시죠? 시간이 없습니다. 토끼 귀남이 손을 내밀자 흠칫 놀라며 더 뒤로 물러섰다. 토끼 귀남은 저를 잡으려는 듯 성큼 내 앞으로 다가 왔다. 내 어깨에 손을 올리려 팔을 뻗다가 무슨 이유인지 손을 멈추었다.


"이런 이런, 제가 시간이 없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손을 거두더니 내가 아닌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니 멀리서 완장의 남자가 보였다. 우리를 발견 한 뒤 망설임 없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우리 앞에 섰을 때 나를 한 번 스윽 보더니 바로 시선을 토끼 귀남에게 고정시켰다.


"아무리 너라도 왕실 안을 함부로 돌아다니는 건 주제 넘는 짓이야"


"저는 그저 이분의.."


"네 볼일은 여왕님의 직무실에 있을 텐데"


"이분이 길 을 잃으셨다 기에 출구를 알려 드리고 있었을 뿐 입니다"


"네가 말하는 건 어떤 출구지?"


"..."


"네가 장난질 치려고 하던 이 사람은 잠시나마 죄인이었지만 여왕님의 선처를 받은 몸이다. 네가 함부로 다룰 사람이 아니야"


"장난질이라뇨? 말씀 드렸다 시피 전 길을,"


완장남이 재빠르게 칼집에서 칼을 꺼내 들고 날을 토끼남의 목덜미에 들이댔다. 덕분에 토끼남의 말은 도중에 끊겨버렸다. 여유로웠던 그의 모습에서 조금 긴장이 서렸다. 매섭게 토끼 남을 보던 완장남은 목에서 칼을 거두더니 칼끝으로 복도 반대쪽으로 가리켰다.


"직무실은 저쪽이다."


두 남자 사이에서 짧은 기싸움이 있었지만 한 풀 접고 토끼남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길을 알려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하며 팔랑팔랑 걸어갔다. 토끼남이 사라지자 당연히 완장남의 신경은 내게 돌아왔다. 남자의 기에 또 다시 눌려 몸을 움츠렸다. 남자가 칼을 다시 집어넣었다.


"어떻게 빠져나왔지? 그 자물쇠는 보통 자물쇠가 아닌데"


"누가 열어줘서 나왔어요."


"열어줘?"


"목소리가 들리더니 자물쇠가 저절로 풀렸어요."


남이 들으면 정신나간사람의 소리였지만 사실이었기에 나는 그대로 완장남에게 말했다. 가만히 나를 보더니 감옥에서처럼 말없이 돌아섰다. 따라와. 그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완장남이 걷자 그 옆에 붙어 걸었다. 내 말을 믿어주는 건가? 완장남의 눈치를 보았다. 꿈은, 그때 완장남이 갑자기 운을 떼었다.


"원하는 것을 실현 시켜주지"


"..."


"자기도 모르는 새에 꿈으로부터의 유혹에 빠져있어. 꿈은 빠지면 빠질수록 심연으로 들어가"


"..."


"나중에 깨어나려고 해도 깨어날 수 없어"

 

그가 말을 멈추자 걸음도 멈추었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저에게 해줘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그 말을 잊지 않으려 속으로 다시 한 번 말을 되새겼다. 토끼 귀남과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몽퉁이를 돌니 커다란 문이 나왔다. 그곳에서 멈추더니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올곧게 나를 바라보았다.


"여왕님께서 저녁만찬을 함께 하길 원하신다."


"여왕님께서요?"


"데리러 가봤더니 있으라는 곳엔 없고 어이없는 녀석에게 놀아나고 있더군."


"죄송합니다.."


"들어가"


완장님이 신호를 주자 커다란 문이 양쪽으로 자연스럽게 열렸다. 문이 열리자 꽃향기가 지독하게 났다. 높은 천장과 넓은 내부에는 흑장미가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넓은 테이블에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많았지만 음식냄새보다 꽃향기가 더 강하게 났다. 가운데 앉은 여성은 결 고운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올리고 그 위에는 보석으로 휘어감은 왕관을 쓰고 있었다. 깊게 파인 검은 드레스가 수려했다. 저 분이 여왕님이 인 듯 완장남이 경례를 하자 나도 따라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으라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여왕님은 내게 앉으라고 손짓하였다. 집사 같은 분이 의자를 꺼내주자 나는 쭈뼛쭈뼛 자리에 앉았다. 완장남은 여왕님의 곁에 각 잡힌 자세로 서 있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나랑 왜 저녁을? 그것도 여왕님 이라는 사람이.. 마냥 즐길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처지도 아니었기 때문에 눈앞에 음식도 별로 당기지 않았다. 여왕님이 볼 때마다 먹는 시늉만 하였다. 그러다 음식은 입에 맞냐는 여왕님의 물음에 나는 선뜻 맛있다고 대답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검은 물이 담긴 잔을 들어 올렸다.


"흑장미를 우려낸 술이에요. 어때요? 한 번 마셔보시겠어요?"


"아, 저..술은 좀.."


여왕님의 제의에 나는 나도 모르게 완장남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나를 무미건조하게 쳐다 볼 뿐이었다. 머뭇거리다가 나는 결국 여왕님이 주시는 잔을 거절 했다. 그런데 의외로 아무렇지 않게 내 거절을 받아 들이셨다. 술잔을 기울려 한 모금 마시고는 잔을 얌전히 내려놓았다.


"실은 이 나라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뒤 늦게 알았습니다.. 저희 병사가 실수했던 것은 제가 사과드릴게요. 결례가 많았습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셨지요?"


"네, 방법이 있을까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은 이 나라가 여왕인 저 조차도 종잡을 수 없는 곳이라 굉장히 위험한 곳이 많습니다. 당신의 안전도 보장 해 줄 수 없는데다가 꼭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리라는 보장도.."


다소 부정적인 내용에 나는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고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여왕님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럴 바에는 이렇게 된 거 그냥 저희 왕실에서 지내시는 게 어떠실렸는지요? 아무리 외부사람이라고 한 들, 제 영토 안에 들어왔다는 것은 곧 제 백성이라는 소리입니다. 저는 제 백성을 그런 위험한 곳에 보내는 것에 크게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지내라는 말씀이신가요?"


"이곳에서 계속 살라는 말은 아니에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안전한 방법을 찾을 때 까지 지내시라는 거예요."


"그게, 저는.."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 어때요?"


내가 아닌 완장남에게 고개를 살짝 돌려 물었다. 격식을 차려 살짝 고개를 숙여 목례를 하더니 입을 열었다.


"여왕님의 의견도 현명한 판단이십니다만, 왕실자원을 외부사람한테 낭비 할 수 는 없습니다. 이분은 원래 있던 곳으로 빠른 시일에 돌려 보내드리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당신다운 견해네요"


빙빙 돌려 말했지만 저것은 여왕의 의견에 대한 명백한 반대였다. 얼굴에서 미소는 거둬지지 않았지만 어쩐지 분위기 아까처럼 유순하지는 않았다. 완장남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다시 한 번 잔을 들어 잔에 남은 술을 한 번에 다 마셨다. 그리고 한 잔을 더 채우고 다시 잔을 비웠다. 흰 냅킨으로 입술을 닦더니 여왕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왕님은 내게 천천히 식사를 더 하라고 하였고, 완장남을 향해서 뭐라고 작게 소곤거리곤 다시 밝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전 먼저 실례할게요. 오늘 직무실에 일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네요."


여왕님이 우아한 걸음으로 만찬장을 걸어 나갔다. 완전히 방에서 나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문이 굳게 닫히자 그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방으로 데려다 줄게 따라와"

 

 


완장남을 따라 빈 방으로 들어갔다. 손님용 방이라던데 호화스럽기는 매 한가지였다.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나는 맘 놓고 의자에도 침대에도 앉지 못했다. 나는 결국 어떻게 되는 건지, 방금 전 여왕님이 그에게 무슨 말을 했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봐왔을 때 완장남은 내가 먼저 물어보지 않는 이상 먼저 말 해 줄 것 같지 않았다.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그가 나가버리기 전에 붙잡고 물었다.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올곧은 눈으로 나를 쓸었다. 그리곤 내일 숲에 들어 갈거야 라고 가만히 대답했다.


"이 숲 반대에 있는 다른 숲을 넘으면 붉은 여왕의 궁이 나와"


"붉은 여왕?"


"이 나라에는 두 여왕이 있어, 이곳에 검은 여왕과 반대편의 붉은 여왕. 그 붉은 여왕이 차원 넘는 힘이 있다는 소리가 있지"


"그 여왕님께 부탁드리면 돌아 갈 수 있나요?"


"그 여왕이 검은 왕국에서 온 우리의 부탁을 들어줄지는 미지수지. 거기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그 후로 내가 아무 말이 없자 무심히 방을 나갔다. 침대 위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역시나 돌아 갈 수 있다는 확실한 보장은 없었지만 일단은 여기서는 나갈 수 있다는 것에 한시름 놓았다. 여왕님께서 좋은 호의로 말씀 하신 거지만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만약 거기서 완장남이 반대를 해주지 않았다면 분위기에 휩쓸려 왕실에 지내게 됐을 것 같다. 최악의 상황을 넘은 지금은 이 작은 희망이라도 걸어 볼 수밖에 없었다. 내일 숲을 넘는다고 하면 아마도 굉장히 고될 것이다. 일단 일찍 자고 머리 아픈 근심은 내일로 미뤄두기로 했다.

 

 

 

어딘가의 방안에 홀로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책의 구절들이 눈으로 읽혀 들어가고 있었지만 정작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책을 많이 읽었지? 내 옆에는 상당한 양의 책들이 쌓여져 있었다. 반복되는 구절을 몇 번이고 읽었을까 나는 갑자기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물건과 술병이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고 한 여성이 등을 보이고 앉아있었다. 나는 다가가 불렀다. 어머니.. 내가 그 여성을 보고 어머니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기분이 좋은 듯 나를 보며 웃었다. 따라서 나도 밝게 웃었다. 여전히 얼굴도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뻐금거리는 입을 통해 감정이 전달되었다. 그런데 올라갔던 입 꼬리가 서서히 내려오더니 어머니는 내게 화를 내었다. 내게서 입을 뻐금거릴 때 마다 가슴이 아팠다. 나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어머니는 잔에 담긴 술을 내 얼굴에 뿌리더니 멱살을 잡고 바닥으로 내팽겼다. 짐짝처럼 방에서 빠져 나왔다. 얼굴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다시 원래 있던 방으로 돌아갔다. 어서 이 슬픈 꿈이 깨길 바라며 멍 하니 서 있었다. 뚝뚝. 눈물인지 술인지 모를 물이 턱을 타고 떨어졌다. 톡톡. 무언가 얼굴을 두드렸다. 한 남자가 젖은 얼굴을 자기 옷소매로 닦아주었다. 나를 걱정하며 위로 하듯 다정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져버렸다. 남자가 애써 닦아준 얼굴을 다시 젓이었다. 저번 꿈에서도 그렇듯 남자는 나를 안아주었다.      

 
    
 


[울지마]
 

 


역시나 음성을 마지막으로 꿈에서 깨어났다. 여기와서부터 꾸는 묘한 꿈이다. 그리고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두 번 연속으로 나오는 남자. 맨 처음에 잠에서 깼을 때 내 이름을 불렀던 것도 그 남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노크소리가 들렸다. 얌전히 대답을 하자 완장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나를 우두커니 서서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와 내게 손을 뻗었다. 그 손은 예상치 못하게도 눈가에 닿았다. 흠칫 작게 몸을 떨었다.

 

“왜.. 우는 거지?”

 

그가 내 눈가에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쳐주었다. 꿈에서 울더니 실제로도 눈물을 흘렸을 줄이야. 나는 손등으로 축축한 눈가를 말렸다. 꿈을 꿨는데 거기서 울었거든요. 그가 거둔 눈물을 엄지로 쓸어 없앴다. 그러고 보니 완장의 남자는 꿈에 대해서 뭔가 많이 아는 듯 내게 알려주었지? 이 사람에게 물어 보면 혹시 어떤 꿈인지 알려주려나? 저기, 혹시..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대화의 허락을 받고 여기에 와서 꾼 꿈 내용을 알려주며 뭘 의미하는 꿈인지 물어 보았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뒤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에게도 너무 어려운 것이려나? 허리에 찬 칼집을 매만지던 완장남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꿈이 자꾸 익숙하다고 느끼는 것은 기억에 없는 과거회상이기 때문일 수도 있어"


"여기에 오기 전에 기억이 거의 없는데 그 부분의 기억일까요?"


"글쎄"

 

완장남자는 마치 궁금증을 풀어 줄 실마리만 던져 주는 듯 하고 서둘러서 나오라는 말과 함께 나갔다.

 

 


여왕님의 배웅을 받으며 완장의 남자와 함께 성 밖으로 나섰다. 반 나절 만에 성안에서 나오니 숲의 모습이 낯설어 보였다. 숲을 건너가야 할 우리 둘의 몸은 생각보다 너무 가벼웠다. 나야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 없으니 그렇다 치는데 완장남도 특별 무엇을 챙기기 않고 항상 가지고 다니는 칼만 소지했다. 우리 둘만 가나요? 숲으로 들어서면서 물었다. 그는 길게 뻗은 나무줄기를 넘으며 그렇다. 라고 짧게 대답했다.


"저기, 제가 그쪽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아직까지 이름을 듣지 못해서"


"그냥 스페이드라고 부르면 돼"


남자의 완장에 새겨진 스페이드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이름은.. 아니죠?"


"여긴 이름 같은 것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 없으면 없는 대로 살지. 있다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붙여진 별명 같은 거야"


"그럼 그 토끼귀남자는 뭐라고 불러요?"


"시계토끼라고 많이들 부르는 것 같더군"


토끼귀남자가 들고 있던 회중시계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남자도 완장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거겠지. 아마도 완장의 스페이드 에이스는 직급 같은 것인 모양이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의 왕실에서 행동과 저 스페이드 에이스 자체로도 남자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려 주기에는 충분했다. 스페이드가 잘 걷다가 나에게 꽃을 밟지 않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발을 내딛으려는 곳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나는 얼른 발을 치우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 사이에 조금 멀어져 멈춰 서 있는 스페이드를 따라 잡았다. 스페이드는 자리에 서서 나무 위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뭐하는 거지? 그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녀석이 길을 알려 주길 기다리고 있어"


"녀석?"


별로 믿을 만 한 놈은 아니지만.. 스페이드가 말끝을 흘리며 손을 뻗었다. 손등을 위로 향하게 한 다음 가로로 눕혔다. 내 손에 맞춰서 액자 모양을 만들어 봐. 스페이드의 말에 나는 손을 뻗어 스페이드에 손에 맞춰 사각형 액자 모양을 만들었다. 한 쪽 눈을 감고 액자를 통해 보자 신기하게도 그 안에는 보라색 줄무늬 고양이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나뭇가지위에 누워있었다. 손 액자가 아닌 그냥 그곳을 보았을 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액자 속에는 분명히 고양이가 보였다. 너무 신기해 입을 벌리고 스페이드를 쳐다보았다.


"내키지 않으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성가신 놈이야"


"저 고양이가 길을 알려주는 거예요?"


'길을 알고 싶어?'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이런 적이? 목소리도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저번에 감옥에서 말을 걸었던 게 너야?"


"허?! 내 목소리를 기억해?"


그러자 갑자기 보라색 줄무늬 고양이의 얼굴이 내 앞에 나타나 둥둥 떠다녔다. 고양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 꼬리를 한껏 찢으며 씨익 하고 웃었다. 기뻐, 내 목소리를 기억해 주다니. 고양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몸통, 꼬리, 발, 그리고 귀를 순서대로 뿅뿅 하고 생겨났다. 고양이가 말하는 것도 놀라운데 몸이 따로 놀고 공중에 떠다니기 까지 했다. 두둥실 허공에서 헤엄치더니 내 뒤에서 목을 감싸며 어깨에 안착했다. 그런 모습을 스페이드는 무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고양이는 갸르릉 데며 내 얼굴에 부비더니 스르륵 내려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고양이를 안았다. 붉은 여왕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니? 고양이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나는 스페이드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스페이드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고양이에게로 눈을 돌렸다.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야, 넌 내게 빚진 게 있을 텐데?"


스페이드의 말에 고양이의 웃는 얼굴이 조금 경직 되었다. 그 상태로 약 5초간 스페이드를 보더니 내 품안에서 뿅, 하고 사라졌다. 따라와.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둘의 앞에 고양이 발자국이 퐁퐁 생겨나기 시작했다. 고양이의 발자국을 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빚이라니요?"


"시계토끼와 시합했을 때 내가 조금 도움을 주었거든"


"어떤 시합이었는데요?"


"누가 더 오래 말하나"


"네?"


황당한 시합주제에 나는 풋, 하고 웃음을 뱉었다. 스페이드가 나를 슬쩍 돌려보고는 다시 고양이를 따라가는 데에 집중했다.


"고양이한테도 별명이 있어요?"


"체셔! 체셔체셔!"


스페이드와 나 사이에 고양이가 갑자기 나타나 스페이드 대신 열심히 나에게 대답했다. 고양이는 두둥실 내 앞으로 자리를 옮겨 허공에서 몸을 거꾸로 뒤집었다. 살랑거리는 꼬리가 생겼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보라색 줄무늬가 없다가 생기기도 했다.


"체셔? 그건 무슨 뜻이 있는 거야?"


"글쎄에~? 그러는 너는 그 이름에 뜻이 있어?"


"내 이름을 알아?"


체셔는 또 씩 웃더니 사라져 버렸다. 저게 무슨 뜻일까요? 스페이드에게 물었지만 스페이드도 고개를 흔들었다. 분명 내 이름을 안다는 듯 한 말투였는데 그냥 실없는 장난이었나?


"젠장"


갑가지 스페이드의 욕지거리에 놀라 댕그랗게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좀처럼 표정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던 스페이드가 제법 짜증이 난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이로 깨물었다. 빨리 걸어. 스페이드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손에 이끌려 발을 열심히 굴렸다. 그런데 밑을 보니 고양이의 발자국이 갑자기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저 발자국을 놓진 다면 길을 알 수 없기에 빨리 움직여야 했다. 나는 뒤늦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스페이드의 손을 더 꽉 잡고 달렸다. 나뭇가지를 피하랴 고양이 발자국 보랴 정신이 없었다. 달리고 달려 사라져 가는 고양이 발자국의 끝이 보이자 어지러웠던 숲에서 빠져 나왔다. 숲에서 빠져나오자 알색달색한 꽃들이 핀 넓은 들판이 보였다. 스페이드가 잡은 손을 놓고는 앞으로 두어 발 나가더니 칼을 빼들고 땅을 향해 내리 꽂았다. 그러자 미야아옹! 하는 고양이 비명소리가 들리는 과 동시에 체셔가 나타나 칼날 바로 옆에서 배를 까고 나뒹굴었다.


"개수작 부리지마! 땅이 아니라 네 목에 박아 넣어 줄 수도 있어"


나는 놀라서 달려가 스페이드를 말렸다. 스페이드는 한 동안 체셔를 노려보더니 이내 칼을 땅에서 뽑아 칼집에 넣었다. 체셔는 털을 세우더니 다시 사라져 버렸다. 체셔.. 체셔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나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장난치길 좋아해서 그렇지 나쁜 뜻은 없었을거에요. 진정을 시켜 보았지만 여전히 스페이드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누구든 좋은 사람이라고 쉽게 생각하는 버릇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아무나 믿는 것도."


스페이드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스페이드는 체셔가 아니라 나에게 화난 건가.. 성이 난 스페이드의 등을 보며 나는 울상을 지었다. 나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 거니 적어도 폐는 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다. 스페이드가 지나간 곳을 그대로 밟고 뒤따랐다. 바스락 거리는 꽃잔디가 계속 이어지더니 발 끝 앞에 웬 탁자 다리가 보였다. 고개를 드니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테이블이 있었다. 그 테이블 위에는 세트가 맞춰지지 않은 티포트와 찻잔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긴 테이블 끝에는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스페이드도 그곳을 향해 시선을 두는 듯 먼 곳을 보다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저기 있는 건 모자장수야"


"모자장수?"


"모자장수가 붉은 왕궁으로 가는 지름길을 알려 줄 거야 그렇기 위해서는 네가 모자장수와 대화를 해야 해. 네가 해야만 할 일이야"


"제가요? 할 수 있을까요?"


"의심부터 할 일은 아니지"


"그렇지만 정말 자신이 없어요.."


"돌아가고 싶은 거잖아? 네가 돌아가고 싶다고 바라고 있는 거잖아, 누구한테 의지 말고 네 스스로 해야 되. 조금이라도 너를 믿고 해봐. 할 수 있지?"


스페이드와 깊게 눈을 맞춘 뒤 나는 결국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면을 바라보고 여전히 희미하게 보이는 모자장수의 인영을 보았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은 가까이 좀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두어 번 입을 뻐금거리다가 소리 내었다. 저기! 하지만 건너편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너무 목소리가 작았나? 이번엔 더 크게 말하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누구야?"


분명 모자장수가 그렇게 말했다. 크게 들이 쉰 숨이 풍선에서 빠지는 바람처럼 힘없이 세어 나왔다. 잠깐 벙 쪄 있다가 재빨리 대답했다.


"자리에 좀 앉아도 될까요?"


"앉도록 해"


"그런데 모자장수씨가 너무 멀어서 그러는데 가까이 와주실 수 있으세요?"


"왜? 자리를 앉고 싶다고 해서 허락해 줬잖아? 내가 가까이 갈 이유는 없는데?"


"그게.. 모자장수와 같이 앉고 싶어서"


"이 상태로도 충분히 같이 앉을 순 있어 넌 거기서 난 여기서."


"어.. 그러니까 얼굴을 가까이 마주보고 싶어요."


"그래, 이제야 말이 맞는구나. 방금 전에 네가 한 말에 내가 가까일 갈 이유는 찾을 수 없었어."


모자장수의 말이 끝나자 기다린 테이블이 밀가루 반죽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들더니 작은 원테이블로 바뀌었다. 모자장수는 영국신사가 쓰는 긴 모자를 머리에 쓰고 얇게 째진 눈을 접으며 여유롭게 커피 잔을 들고 있었다. 모자장수는 앉으라고 밝게 말했다. 나와 스페이드는 의자에 앉았다. 뭘 어떻게 하면 되요? 옆에 앉은 그에게 물었다. 이 자리를 끝내면 돼. 그는 그렇게 말했다. 간단한 말이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테이블은 작아졌지만 찻잔의 수는 줄지 않은 느낌 이었다. 붉은 기가 도는 차가 담긴 찻잔이 의자 수에 비해서 다소 빽빽이 놓여 있었다. 어떤 것을 집어야 할지 모른 체 데굴데굴 눈만 굴렸다. 어째서 마시지 않아? 모자장수가 말했다.


"잔이 너무 많아서 뭘 집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없어서 못 집는 건 아니라는 말이잖아"


"아무거나 집어도 된다는 말인가요?"


"주인이 있을 수도 있지"


"..왜 의자수보다 잔이 더 많아요?"


"마실 사람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아.. 그럼 혹시 모를 사람들을 위해 준비해두신 거네요? 친절하네요. 모자장수씨는"


모자장수는 들이키려던 찻잔을 입가에 멈추고 나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혹시 내가 말실수라도 했나.. 아차, 했지만 이미 뱉고 난 후 이었다. 잠깐의 시선의 얽힘 끝에 모자장수는 내게 까마귀와 책상이 왜 닮은 지 알아? 라고 말한 뒤차를 들이켰다. 당최 알 수 없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페이드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잘하고 있는 거예요? 스페이드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영 찝찝했지만 조금 안심했다. 이해하기 힘든 말로 내 말을 맞받아치는 모자장수는 정말로 아리송했다. 차를 다 마셔야 이 자리를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모자 장수는 잔을 집는 것조차 허락해 주지 않았다. 아무거나 집어도 되냐는 말에 주인 있을 수도 있지 라고 했고, 그렇다면 왜 의자 수 보다 잔이 더 많냐는 질문에 마실 사람을 정하기 않았다고 했다. 모순에 모순을 더했지만 결국에는 맘대로 잔을 들어도 된다는 소리는 아니다. 뭘 어찌해야 될지 모르고 차가 담긴 찻잔들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직도 잔을 고르고 있니?"


"아, 음.."


나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찻잔을 건드릴지 않고 티타임을 끝낼 수 있을지. 차가 맛없다..고하는 건 말이 안 되겠지? 찻잔도 못 건드리는 상황에 차를 입에도 못 댔으니까. 찻잔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할까? 아냐, 여기에는 너무 여러 가지 찻잔들이 많아.. 손가락을 입에 대고 찻잔들을 유심히 보았다. 붉은기의 맑은 티의 찌꺼기가 갈아 앉아 있는 것을 보다가 살짝 찻잔에 손을 댔다가 때었다. 찌꺼기도 많이 갈아 앉아 있고 무엇보다도 차가 식어 있었다.


"어서 마셔 그렇지 않으면 차가 몽땅 식어 버릴 거야"


"차는 원래부터 식어 있었는데요?"


"뭐어!?"


모자장수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테이블을 두 손으로 쾅! 내리치는 바람에 찻잔과 티포트가 요란스럽게 흔들렸다. 모자장수는 정신없이 찻잔을 들어 마셔 보고 테이블 위에 부어 보고 티포트 뚜껑을 닥치는 대로 집어 열어 안을 확인해 보았다. 그 덕분에 잔들이 밀려 테이블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리다가 두어 개가 떨어졌다. 붉은 차들이 하얀 식탁보를 젓이여 다소 섬뜩한 모습을 자아해 냈다. 당황스러운 모습에 내가 무슨 큰 잘 못을 한 건 아닌지 스페이드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말없이 모자장수가 하는 모습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이윽고 모자장수는 내 앞에 있는 잔에 있는 차를 잔디 위에 부었다. 바로 내 옆 서 있는 모자장수에 조금 긴장했다. 모자장수의 얼굴에서 울상과 심각함이 엿보였다. 손에 들고 있던 잔을 잔디위에 툭 떨어트리더니 내 티타임이 엉망이 됐어..라고 어깨까지 축 늘어 트리며 크게 상실했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차를 다시 데울 순 없어요?"


"차를 어떻게 다시 데워..오! 그래 다시 따뜻하게 하면 되겠구나! 그런데 어떻게 다시 데우지?"


모자장수와 나는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그거야 불로 데우면 간단히 해결 될 일 아닌가요? 라고 물었지만 모자장수를 보아하니 그런 상식적인 방법은 통하지 않은 것 같다. 이 나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 그 외에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 할 수 없었다.


"붉은 장밋잎"


스페이드가 불쑥 입을 열었다. 자리에 앉은 체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들고 거꾸로 뒤집자 붉은 물줄기가 땅으로 짧게 쏟아졌다. 모자장수가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더니 짝! 하고 두 손을 맞대어 소리 냈다.


"맞아! 붉은 왕궁 정원에 있는 붉은 장밋 잎을 넣으면 차가 따뜻해져"  


"붉은 왕궁으로 가는 길을 아세요?"


"그럼 알고말고. 저기 앞에 보이는 언덕을 넘으면 되"


"..그곳이 지름길 인가요?"


"지름길이라곤 말 하지 않았어."


"그럼 지름길은 어디예요?"


"지름길이 아닌 길이 지름길이겠지"


모자장수는 모자챙을 두어 번 까닥이며 모자를 고쳐 썼다. 무언가 더 대화를 유도해야 하나 싶었지만 스페이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을 떠나려는 듯 스페이드는 말없이 그저 테이블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모자장수와 스페이드를 번갈아 보다가 스페이드를 향해 몸을 돌렸다. 갈 거야? 모자장수가 그렇게 말했다. 걸음을 멈추고 다시 몸을 틀었다. 모자장수는 식탁보를 쥐더니 천천히 그것을 끌어내렸다. 쨍, 쨍, 시끄러운 유리 소리를 내며 티포트와 잔이 서로 부딪혀 넘어졌다. 천과 함께 끌려 내려온 티세트들이 폭신한 잔디위에 떨어지면서 깨졌다. 


"조심해 그곳의 장미는 조금 따갑거든"


모자챙 사이로 보이는 눈이 좀 매서웠다. 그 모습을 멍청하게 쳐다보다 누군가 내 손목을 붙잡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빨리 와. 스페이드가 되돌아왔다. 그대로 내 손목을 끌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스페이드에게 끌려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모자장수와 테이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모자장수가 사라졌어요."


"신경 쓰지 마. 길은 알았으니까"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았는데요?"


"어차피 지름길보다는 위험한 길이 어디인지 알려고 했었던 거야"


"처음에 모자장수가 알려 준 길이 위험한 길이였어요?"


"이제서야 말하는 거지만 그 놈을 상식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마 '미친' 모자장수 니까"


"미..네?"


"자신이 붉은 장미를 사용해 찻잔에 든 티의 색이 붉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놈은 우리한테 차를 데우는 방법을 물었지, 이것만 봐도 정신상태가 온전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잖아"
 

스페이드의 말이 이해가 가면서도 사실은 조금 멍했다. 말부터가 조금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정말로 미..그런 사람이었다니.. 아까 그럼 큰일 날 뻔했던 거 아닌가? 방금 전 모자장수와 단둘이 남았을 때를 생각하면서 뒤늦게 소름이 돋았다.

 

 


   
숲을 들어서 걷다가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 졌다. 울창한 나무에 갇혀 더욱 더 주변은 어두웠다. 스페이드도 더 이상을 길을 걷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걸음을 멈추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쉬어갈 안전할 장소를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았다. 숲 속에 무성한 풀과 다르게 잘 정돈된 잔디와 그곳을 원으로 키 큰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아마도 여기서 노숙을 하고 날을 밝으면 다시 출발 할 것 같았다. 스페이드가 잠시 어디를 갔다 온다고 말하고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스페이드가 멀어지자 체셔의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리만이 나타나 살랑거리면서 내 주변을 돌더니 몸 전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체셔, 아까 일은 괜찮아?"


"으흥? 내가 상처 받았을 거라 생각해?"


"그야 스페이드 엄청 화냈으니까.."


"그렇다면 너는 왜 화를 내지 않아? 같은 일은 당했잖아"


"난.."


"그는 자신의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체셔가 내 앞에 식빵자세로 앉아 눈빛을 밝혔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그 미소도 잊지 않았다.


"체셔는 뭔가 알고 있는 거야? 전부터 그런 느낌이야"


"알고 싶어?"


"..있잖아 체셔의 그, ~싶어? 참 찝찝하단 말이지."


"알려 줄까?"


"됐어"


어쩐지 체셔의 꾀에 넘어 갈 것 같아 단칼에 건절했다. 보드라운 잔디위에 몸을 옆으로 뉘였다. 잔디에 이슬이라도 맺혔다면 앉아서 잘 뻔 했을 것이다. 풀 사이사이 흐릿한 시야에 체셔의 얼굴이 다시 가득 찼다. 잘 거야? 체셔가 물었다. 지금 조금이라도 자둬야 내일 안 힘들겠지? 그러자 체셔가 내말에 수긍한다는 듯 동그란 얼굴을 작게 끄덕였다. 어둠 속에서 체셔의 동공이 밝게 빛났다. 어두운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체셔의 눈 때문에 괜찮은 것 같아. 체셔가 키득 데었다. 스페이드는 어딜 갔을까? 내 질문에 체셔는 그닥 뜸들이지 않고 글쎄. 라고 대답했다. 체셔와의 대화 속에 고된 피로가 몰려왔다. 눈꺼풀이 무거워져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체셔가 선명하게 말했다. 붉은 왕궁까지 별로 안 남았다는 말인가..? 물어 보려 했지만 갑자기 무섭게 쏟아져 오는 잠에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도 힘이 들었다. 체셔의 작고 동그란 발을 보는 것으로 끝으로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눈이 떠진다고 생각했을 때 느낌이 평소와 다른 것이 또 다시 꿈속인 모양이다. 책을 읽던 방에 침대위에 앉아있었다. 천장을 보며 눈을 굴리다가 활짝 열린 방 문 너머로 초인종소리가 들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나는 다리가 불편한지 한 쪽 다리를 쩔뚝거리며 방을 나왔다. 빨리 걷고 싶은데 그게 안 돼 답답한 듯 했다. 초인종은 계속해서 울렸다. 계단아래 바로 보이는 현관 때문인지 쩔뚝거리는 다리를 더 급하게 굴렸다. 삐그덕삐그덕 나무계단이 낡은 소리를 냈다. 계단을 내려가는 다리가 꾀나 위태로웠다. 난간을 잡고 겨우겨우 내려왔지만 계단을 다 내려와서 현관 앞에서 고꾸라지고 말았다. 저는 다리가 아픈 듯 했지만 금방 일어섰다. 현관을 열자 남자가 서있었다. 이제는 내가 먼저 그를 향해 달려들어 안겼다. 그가 나를 안은 체 집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 와중에 절뚝, 절뚝거리며 집안으로 뒷걸음치 쳤다. 남자가 그것을 발견하고 나에게서 떨어졌다. 
 

또 그 사람이 그랬어?


이번 꿈에서는 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란 와중에 나 자신은 잠깐 남자를 쳐다보다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가만히 서있던 남자는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아주 짧은 거리를 이동했다. 계단에 나를 앉히더니 아픈 다리를 쥐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제 보니 발목이 상당히 부어있었다.            
          

많이 아파?


왜 보자마자 말 안했어?


언제 이런 거야?


남자의 이런저런 걱정스런 질문에도 시종일관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답했다. 꿈속에 나는 그저 남자가 있는 것에 기분이 좋은 듯했다. 그에게 두 팔을 뻗으며 안아달라는 신호를 줬다. 남자는 확실한 답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다시 안아주었다. 꿈속이지만 내 자신이 그 품에서 굉장히 안심하고 편안함을 느낀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일까 나는 그 안정감 속에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눈물로 남자의 어깨가 무섭게 젖어 들어갔다. 남자가 품에서 나를 놓아주고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 쥐었다.


울지 마 네가 울면 내 마음이 아파.


입술을 말아 울음을 삼키려 애썼다. 흐릿한 남자의 얼굴에서 내 시선이 어깨 너머로 초점이 맞춰졌다. 굳게 닫혔던 현관문이 덜컹거리며 천천히 열리었다.

 

 

천천히 정신이 돌아왔다. 이번 꿈은 목소리 없이 꿈에서 깨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눈을 비비자 축축한 것이 묻어 나왔다. 맞다, 꿈에서 울었지.. 두 손으로 눈을 문질러 눈물을 지웠다. 기억이.. 조금 씩 돌아 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매번 기억이 우울한 이유는 뭘까? 나뭇잎 사이로 내리 쬐는 햇볕이 조금 눈부셨다. 주위를 둘러보니 체셔는 없었고 스페이드는 내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무기둥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다. 자고..있는 거겠지? 스페이드는 좀처럼 미동이 없었다. 스페이드가 깰 동안 주변을 조금 걸어 보려 자리에서 일어나 이곳을 빠져 나왔다. 너무 멀리만 안가면 되겠지? 뒤를 한 번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숲은 여전히 조용했다. 어쩜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꿈 때문에 심란한 마음을 정리하려 한 번 나와 본 건데 이 그림 같은 숲때문에 더 심란해 질 것 같았다. 저벅저벅 걷다가 화려한 꽃이 모여 핀 곳을 발견했다. 여긴 그나마 좀 나았다. 한 가지 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종류의 꽃이 모여 있었다. 그 안에서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가 보였다. 저 열매는 먹어도 될까?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다. 언뜻 보기엔 체리 같아 보였다. 딱히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해 하나 톡, 하고 땄다. 그리고 이어 두어 개를 연이어 땄다.


"그건 내 장신구인데?"


갑자기 들려오는 말소리였다. 열매를 딴 나무의 가지가 흔들렸다. 물론은 바람은 불지 않았다. 살짝 뒤로 물러나 나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나무가 말 하는 건가?


"열매를..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죄송해요 저는 그냥 먹는 열매 인줄 알고.."


"뭐 너 같은 귀여운 아이에게 두어 개쯤 줘도 괜찮겠지 선물이야 가져가"


나무에게서 긴 넝쿨줄기가 뻗어 나오더니 열매를 든 손을 내 쪽으로 밀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나무가 하하 호호 웃었다. 나무의 웃음소리가 끊기고 다시 숲에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곧 다시 속닥거리는 소리로 정막은 깨졌다. 이번엔 꽃들이 말을 했다. 그 아이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검은 여왕의 그.. 맞아 맞아.. 꽃들이 열심히 소곤거렸다. 나는 다시 나무를 쳐다보았다.


"너 검은 완장의 남자랑 같이 다니는 아이 아니니?"


"스페이드를 아세요?"


"그럼, 이 나라에서 유명하지. 누구보다 현명하고, 똑똑하고, 강하고.."


"잘생겼어!"


마지막은 말은 꽃들이 한 입 모아 소리쳤다. 튤립이며, 장미며, 민들레며, 너나 할 것 없이 꽃잎을 털며 꺄르르 웃었다. 다들 여성분들 이시구나..


"그가 한 소년을 데리고 다닌다는 소문이 숲에 퍼졌어. 아마도 옆 나라도 알지 않으려나?"


"하루정도 밖에 안 지났는데?"


"귀염둥아, 너는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 되지 않나 보구나?"


"아니, 아니에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여러 번 도움도 받았구요.."


"그렇게 당황할 필요까지야.. 아니, 어쩌면 대단한건 너 일지도 모르겠구나."


"네? 제가요?"


"...그가 널 찾고 있는 모양이구나."


찾고 있어. 찾고 있어. 찾고 있어. 꽃들이 나무를 따라서 말을 빠르게 재잘 데었다. 나무와 대화를 하다 보니 조금 시간이 지체되었는지 스페이드가 깨어난 모양이다. 더 늦기 전에 어서 빨리 돌아가야겠다. 나무는 내게 돌아가는 길은 아냐고 물었다. 물론 거기서 그냥 앞으로만 걸었기 때문에 딱히 길을 알고 모르고도는 필요가 없었다. 나무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물론 작별인사도 잊지 않고 말이다. 두 손에 열매를 담고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스페이드와 있던 장소가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네? 길을 잃을 리가 없는데..


"길을 잃었나봐.."


가던 길에서 멈춰 섰다. 길을 물어보려 다시 말하는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보려다가 더 길이 꼬일 것 같아서 관두었다. 어떡하지? 내가 여기 있다고 알릴 방법도 없는데. 주변을 조금씩 걸어 다니며 둘러보았다. 하지만 온통 나무들과 풀뿐이라 길을 구분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어째 이곳에 처음 왔을 때로 돌아간 느낌이다. 혼자는 조금 무서운데.. 어쩐지 싱그러웠던 나무들도 공포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나무들에게서 뒷걸음을 주춤주춤 쳤다. 그러다가 어딘가에 돌부리에 걸렸는지 탁, 하고 몸이 뒤로 넘어갔다.


"으악!"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몸이 땅에 떨어지는 느낌은 받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어딘가에 기댄 느낌이 났다.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보았다. 내 뒤에는 내 몸을 받쳐주고 있는 스페이드가 있었다. 놀람 반 반가움 반으로 몸을 고쳐 세우고 스페이드와 마주섰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반가웠던 것도 잠시, 혼날 생각이 앞섰다. 화났겠지?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냥 솔직히 아무생각 없이 돌아다녔다고 말할까? 스페이드에게 혼날 생각에 속으로 끙끙 앓았다.


"죄송해요 그냥.."


"어디 갔었어?"

 

[어디 갔었어?]

 

순간 꿈속에 남자와 말과 스페이드의 말이 오버랩 되었다. 시간이 멈춘 듯 멍해지면서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감돌았다. 꿈속의 남자와 너무나 비슷한 감정과 느낌을 받았다. 왜 그래? 스페이드가 벙 쪄있는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나는 초점을 바로 잡고 어깨 위에 올라와 있는 손에서 스페이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혹시 우리.. 전에 만났었던 적 있어요?"

 

 

 

 

 

 

 

 

 

 

우왕..ㅋㅋㅋㅋㅋㅋㅋㅋ 많이 기네요 ㅋㅋㅋㅋ

판타지를 써보는 건 처음인데 재밌네요 ㅎㅎ

모티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입니다 많은 분들이 픽으로 패러디를 하셨죠?

저도 그 계보?를 밟게 되네요 ㅋㅋㅋ

이거는 이미 다 쓴 상태입니다 ㅋㅋㅋ 중장편으로 다음편이면 끝날 아이ㅎㅎ

영재는 순수하고 많이 여린아이로 표현을 했는데 쓰면서도 너무 귀여월ㄴ얼니얼내얼;ㄴ어ㅣ나ㅓ어ㅣ;ㅣ

ㅋㅋㅋㅋㅋ그럼 다음 편에서 뵈어요 ㅋㅋ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습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

 
독자1
분량 짱이에요bb진짜 영재가 앨리스역인 판타지 영화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ㅋㅋㅋㅋㅋ다음편 기대할게요ㅎㅎ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
      
      
      
      
      
B.A.P [BAP/리얼물] 그렇게 다시 손을 잡았다 (부제:당랑거철) 완결5 NOYB 09.15 19:11
B.A.P [BAP/리얼물] 그렇게 다시 손을 잡았다 (부제:당랑거철) 073 NOYB 09.14 22:47
B.A.P [BAP/리얼물] 그렇게 다시 손을 잡았다 (부제:당랑거철) 062 NOYB 09.14 13:24
B.A.P [BAP/리얼물] 그렇게 다시 손을 잡았다 (부제:당랑거철) 053 NOYB 09.13 17:08
B.A.P [BAP/리얼물] 그렇게 다시 손을 잡았다 (부제:당랑거철) 049 NOYB 09.11 11:39
B.A.P [BAP/리얼물] 그렇게 다시 손을 잡았다 (부제:당랑거철) 036 NOYB 09.11 11:16
B.A.P [BAP/리얼물] 그렇게 다시 손을 잡았다 (부제:당랑거철) 026 NOYB 09.09 02:41
B.A.P [BAP/리얼물] 그렇게 다시 손을 잡았다 (부제:당랑거철) 013 NOYB 09.07 01:38
B.A.P [B.A.P/대현] 살인자의 시선 01 찮너구리 08.11 20:33
B.A.P [B.A.P/대현] 살인자의 시선 001 찮너구리 08.11 20:24
B.A.P [B.A.P/젤현] Spring bunny 07 11 중독자 01.29 21:49
B.A.P [방용국/대현] Shadow of love 011 맥날감튀 12.30 15:14
B.A.P [방용국/대현] Shadow of love 00 6 맥날감튀 12.15 01:08
B.A.P [B.A.P/대총] 대총 단편집그는 가끔4 대총단편집 12.06 19:55
B.A.P [B.A.P/영대] 여우전022 대총대총해 11.15 18:25
B.A.P [B.A.P/젤로/영재/대현] 캐논 총주곡 02 얀세 09.06 02:45
B.A.P [B.A.P/젤로/영재/대현] 캐논 총주곡 011 얀세 08.31 02:39
B.A.P [B.A.P/대총] VICMIT _014 0212 08.17 01:34
B.A.P [B.A.P/영대] 여우전013 대총대총해 08.01 11:57
B.A.P [B.A.P/대영] 즐거운 편지 017 DF 04.25 22:41
B.A.P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5 아브 01.31 01:28
B.A.P [ZE:A/B.A.P/IKON/임시완/정대현/김진환] 임대리와 정대현과 김화가 : 술 마신건 기억나는..13 대총대총해 12.18 18:26
B.A.P [유영재×최영재] 스쿨 로맨스3 yahwa 11.24 16:39
B.A.P [B.A.P/대총] 지구정복하러왔슴다 : 프롤2 마토행성 11.13 19:02
B.A.P [B.A.P/영대] 너의 의미 中1 대총대총해 10.19 13:27
B.A.P [B.A.P/영대] 너의 의미 上5 대총대총해 09.28 10:33
B.A.P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5 비원 09.06 17:19
팬픽 인기글 l 안내
1/1 8:58 ~ 1/1 9:00 기준
1 ~ 1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