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남들은 내신 미리 준비하겠다고 난리 칠 그 시기에 남들보다 오픈 마인드라고 자부하는 우리 엄마는 내게 한 가지 제안을 했어. 너, 캐나다 한 달 안 가볼래? 엄마랑 같이 가자. 나? 뭐라고 했냐고? 당연히 YES지. 써머 캠프에 한 달 들어가서 공부하는 거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해외 여행인거잖아. 한 껏 들떠있던 나는, 써머 캠프 첫 날 부터 다리 아래에서 좀 이상한 애를 봤어. 모자는 눌러썼지, 콧잔등에는 반창고에 제멋대로 볶은 듯한 금발 파마머리. 등 하나 없는 다리 아래를 묵묵히 걸어서 지나가는 그 모습이 누가봐도 양아치라서 눈이 안 떨어지더라. 캐나다에도 노는 애는 있겠지 뭐. 근데 문제는 걔가, 나랑 같은 썸머 캠프, 같은 반에 들어와 앉았다는거지. 늦게 들어왔는데도 아무도 신경을 안 쓰더라? 선생님만 마크, 유인물 받아가 라고 말했을 뿐이었어. 쉬는 시간에도 그 애에게 말을 걸거나 하는 애는 하나도 없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 나중에 보니까 걔랑 대화하는 애가 없길래 그 날도 그랬거니 싶어. 나는 새로 온 애라고 주목 받느라 정신 없었거든. 알 유 프롬 코리아? 소리만 몇 번을 들었는지. 그리 어려운 영어도 아닌데 머리가 빙빙 돌더라니까. #1 아 그런데 이게, 골 때리는 게 캐나다라고 인종차별이 없는게 아니더라. 하루 좀 다가와서 관심 가지더니 그 후로는 싹 쌩까고 가끔은 삿대질도 하더라고. 그게 얼마나 싸가지 없는 행동인줄도 모르고. 야, 쟤야. 새로운 동양인 쯤의 말을 하면서 낄낄 거리는데 내가 안 들릴 줄만 알았나봐. 나 다 들었어. 알아? 나도 한 성깔 하는데, 인터폴 부를까봐 참았다 진짜. 아무튼 그 있어,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숨을 쉬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차별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그 공기. 좀 답답하더라. 근데 또 캠프 수업 끝나고 혼자 다운타운 놀러가는 건 즐거워서 스트레스가 쌓이기만 하지는 않았어. 내가 친한 친구 하나 안 만들었다는게 아쉬운 순간은, 캠프 첫 주 주말에야 다가왔지. 중학생도 아니고, 열일곱 짜리 아차 그러니까 걔네 나이로는 열여섯짜리 애들 모인 캠프에서 웬 동물원을 간대.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들뜨는.. 소풍지는 아니었어. 벤쿠버 동물원이라고 뭐 다르겠어? 싶었던 거지. 근데 와, 한국에서 겪는 일이 여기서도 있더라. 버스는 보통 둘씩 짝 지어 앉는 거 알지? 내가 좀 애매하게 일찍 버스에 도착해서 미리 셔틀에 타 있는데 하나 둘씩 들어오면서도 내 옆은 아무도 안 앉더라고. 눈길은 흘깃 주면서도 그냥 지나치는 거야. 아 됐다 그래. 나 혼자 앉을래. 하고 그냥 창 밖이나 보고 있었지. 그런데 집합 시간에 딱 맞춰서 좀 뛰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가 하나 더 올라타고 그렇게 탄 애가 내 옆으로 앉는거야. 미친 거 아냐? 놀라서 옆을 쳐다봤더니 -아 이때 포커 페이스 했어야 하는건데 - 마크가 있더라. 그것도 태연한 얼굴로 하이- 하면서. #2 어떡해 어떡하지 하고 고민을 하고 있는데 내가 인사를 받아주기도 전에 주머니에서 MP3를 꺼내서 제 귀에 꽂고는 눈을 딱 감더라. 시대가 어느 때인데, 나 아직도 그렇게 조그만 화면 들어있고 통통한 MP3 쓰는 사람 진짜 오랜만에 봤잖아. 나도 그냥 핸드폰에 저장해둔 노래 들으면서 갔어. 뭐, 뻘줌하게 나만 멍 때리고 있기도 좀 그렇잖아. 내리기 전에 소풍 설명을 듣는데, 전체 자유시간이래. 도착해서 다시 출발 할 때까지 알아서 다니고, 대신 점심시간에만 모여서 밥 먹자는거야. 와 아메리칸 스타일 이라는게 이런건가. 벙져 있었어. 동물원은 한국이랑 비교도 안되게 커다랗지, 아니 사실상 동물원이라기엔 들판 같은 느낌이었지만. 이걸 어째야 하나 싶어서 일단 애들이 가는 루트를 따라 가는데, 뒤에서 누가 Hey 하더니 내 팔을 턱 잡는거야. “Are You from Korea?” 지겹도록 들은 그 말을 하면서. 이제 내 국적을 모르는 애가 없지 않나 싶어서 뒤를 훽 돌면, 마크가 거기 또 있었어. 급하게 집어 넣었는지 주머니에서 이어폰이 달랑거리는 채로. #3 나는 걔가 그렇게 수줍은 표정 지을 수 있는지 처음 알았어. 볼도 살짝 발그레한 게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랑 너무 달라서 두뇌회전이 다 멈추더라니까. 나도 모르게 또 레이시스트 인가 싶은 얼굴로 그 애를 바라보고 있었나봐. 당황하더니 서툴게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나도 한국어 조금 해. 라고 한국어를 막 쏟아내더라고. 거기서 마음이 탁 풀리더라 오랜만에 한국어를 들어서 그랬나봐. 한국어는 어떻게 알아? 혼자 공부했어? 나도 모르게 다급하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 그러니까 또 수줍게 웃으면서 Just a little bit. 하더니 자연스럽게 나를 앞으로 이끌어서 걷게했어. 그 애가 가는대로 따라서 앞으로 걸으면서 이런 저런 질문을 마저 하니까 또 솔직하게 다 대답해주더라고. 한국에 공부하러 가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언어를 공부했고, 써머 캠프는 진짜 오기 싫은데 억지로 오게 된거라고 그래서 맨날 대충 하고 왔었는데 오늘은 소풍이라고 하니까 부모님이 더 들떠서 이것저것 준비해주시길래 좀, 꾸미고 왔다고. 제 입으로 말하니까 부끄러웠던 건지 입을 가리고는 막 웃는데 진짜 , 여태까지 그 양아치 이미지가 와장창. "근데 왜 다른 애들이 너한테 말 안 걸어?" "아, 그건. 그냥 내가, 음." 머리를 긁적이더니 많이.. 놀러다녀서. 라고 대답하는 거야. 얘, 지금 스스로 양아치라고 말한 거 아닌가 싶어서 보고 있으려니까 또 스스로 해명을 줄줄줄 하더라. 본인이 길거리 농구를 좋아하는데 그거 같이하는 형들이 좀 무서워서 그런 것 같다고. 나 막 싸우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어우야 그렇게 말 많은 줄 알았으면 걔한테 말 안 걸었을걸. 아 근데 솔직히.. 걸었을 것 같아. 잘생겼거든. **** 가볍게 써보는 캐내디언 마크 썰 입니다! 암호닉은 조만간,, 오늘 내일 내로 제가 정리해서 이 아래로 붙일테니 신청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