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마크랑 나랑 손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그 근처 벤치에 앉아서 가벼운 얘기를 했어. 마크가 자기 얘기를 꽤 술술 하더라고. 나는 가만히 들어주는 쪽이었는데, 들어보니까 마크가 공부가 싫어서.. 라는 이유가 없지는 않지만 썸머 캠프를 싫어하는 이유는 따로 있더라고. 클래스 애들이 입이 많이 가볍고, 좀 그렇더라. 마크한테 별별 소문을 다 붙였더라고. 한국에서 일이 있어서 캐나다에 강제로 보내진거다. 사실 밤만 되면 돌아다니면서 사고치는 걸 누가 봤다더라 하는 소문들.
“너 웃을 때는 하나도 안 무서운데, 그걸 애들이 몰라서 그런가봐.”
“.. 나 안 웃을 때는 무서워?”
“아,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나는 마크가 나를 눈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지 말아줬으면해.. 이럴 때마다 바로 대답할 수 없다는 게 정말 너무 죄책감이 든다고. 서둘러서 대화 화제를 돌렸어. 아까부터 주머니 속으로 만지작 거리고 있던 키링을 꺼내서 마크한테 내밀었지.
“What is this?”
“It’s for you. 선물이야.”
“선물?!”
눈이 초롱초롱해서 내 손에 들린 농구공 모양 키링을 바라보는데 그게 너무 고양이 같아서 웃으면서 마크 손에 넘겨줬어. 내 손에 들려있을 때는 꽤 괜찮은 크기였는데, 마크 손에 가니까 좀 작아보이기도 하더라.
“토요일에 일일 가이드 해줘서 고맙다고.”
사실 농구공이길래 보자마자 마크가 생각나서 집어든 것도 있지만, 선물은 의미가 있을수록 좋으니까.
#29
밤이 늦으면 위험하다고 또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마크가 분명, 나한테 인사를, ‘내일 보자.’ 고 했는데. 왜, 오늘은 신호등 앞에 없는 걸까? 원래도 지각을 종종 하던 애니까 싶어서 아침 햇빛을 맞으면서 좀 기다려봤어. 그런데 더 기다리면 내가 지각할 것 같더라고 그래서 서둘러 뛰었어. 간간히 뒤를 돌아보면서.
역시나. 먼저 와 있을 리는 없더라. 마크의 빈 자리를 살짝 확인하고는 내 자리에 앉았어. 근데 그런 느낌 있잖아. 공기 중의 분위기자체가 평소랑 다른 것다는 그, 육감. 그게 딱 드는 순간, 짝이 나한테 말을 걸더라.
“Is the rumor true?”
“Rumor?”
그리고는 하는 말이, 가관이야.
주말에 루시가 다운타운에 갔다가 너랑 마크를 봤대. 마크랑 같이 노는 양아치 무리가 너를 둘러싸고 욕을 하고 때릴 것처럼 굴고 야유를 하고 있는데 마크가 웃고 있었다며. 너 괜찮은 거 맞아? 같은 한국 출신이라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역시 질 나쁜 애는.
그런데 저 편에서 책상에 대충 걸터앉은 남자애가 낄낄거리면서 말을 덧붙이더라고.
내가 아는 소문이랑은 다른데. 피터가 그러는데 여주 쟤 주말에 마크랑 데이트를 했다고?
이게 다, 무슨 말들이야. 뭘 어디서부터 해명해야 하는거야. 말을 고르고 있는데 내 대답을 기다리는가 싶던 애들이, 가만히 있던 다른 애들까지 포함해서 말을 더하더라. 평소엔 안들리기도 하던 영어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잘 들리는지, 안 좋은 소리가 나를 둘러싸고 교실에서 붕 띄우는 느낌이었어.
마크야, 오늘은 오지 마. 아니면, 빨리 와서 나랑 같이 있어줘.
#30
선생님이 들어와도, 말만 줄어들었을 뿐 분위기 자체는 바뀌지 않더라고. 앞에 서서 수업하는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수업을 듣는 인간은 하나도 없이 다들 나를 자꾸 힐끔 거리더라. 나는 오히려 수업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어. 이 애들한테 책 잡히기가 싫어서.
차라리 수업이 계속 됐으면 좋았을텐데. 선생님이 화장실에 다녀오라며 브레이크 타임을 주며 나가자, 애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데, 그게 너무 섬짓하고 무섭더라. 해명을 요구하는 건지 또다른 가십거리를 제시해주기를 원하는 건지. 그 눈빛들이 너무 끔찍해서 차라리 엎드릴까 고민하고 있는 타이밍에.
“What’s going on?”
마크가 나타났어. 평상시랑 다를 거 없이 등교한 거기는 한데 분위기 자체가 너무 다르니까 마크도 이상한 걸 눈치챈 모양이더라고. 가방은 대충 제 자리에 던져놓고 쎄한 표정을 지으면서 교실 애들을 쭉 둘러보는데, 그런 표정은 처음이라 나도 좀 무서웠어. 그런데 웃긴다. 얘들도 무서운 건 무서운건지 마크한테는 한마디도 못하더라.
무슨 일이야<<
>>별 일 아냐. =)
거짓말<<
말해줘<<
>>나중에 말해 줄게. 수업 들어.
평소라면 안 했을 말을 하고 수업을 듣는 척 하는 나를, 마크가 의아하게 쳐다보는게 내 시야 끝자락에 걸리더라. 제대로 쳐다볼 수는 없었어. 나랑 마크를 향하는 시선들이 너무 많아서. 이 교실 안에, 원숭이 둘이 된 기분이었어.
#31
그 다음 쉬는 시간은, 어이 없게도 애들이 나한테 말을 못 걸더라고. 저기 엎드려 있는 마크 덕인게 훤해서 이럴 때는 마크한테 붙은 안 좋은 소문에게 아주 조금의 덕을 보는구나 싶었어. 물론 그런 소문이 없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들고 싶은 애들은 둘셋씩 모여서 복도로 나가더라고. 다른 교실에서 떠들 모양이지. 정말, 두시간만에 지긋지긋해졌어.
“Are you okay?”
수업시간에 짝이 작게 물어보는데, 정말 대답할 마음이 들지를 않더라. 정말 내가 안 좋아보여서, 걱정되서 물어보는게 아니라, 본인이 다른 아이들보다 나에게 더 말을 쉽게 걸 수 있다는 약간의 우월감과 가십거리가 옆에 있다는 즐거움에 가득찬 표정이어서, 역겨웠어. 수업시간만 아니었더라도 나는 욕을 퍼부었을지도 몰라. 김여주 성깔 좀 있거든. 그래도 지금은 그러면 안되니까 그냥 대충 고갯짓하고 계속 수업듣는 척했어. 속으로 재수없는 년이라고 욕할 지도 모르지만, 알 바 아냐. 이미 소문은 많은 것 같으니까.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여자애들이 하나같이 나를 쳐다보더라. 나에게 말을 걸고,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할 생각인게 너무 빤히 보이더라고. 내가 어떤 말을 할 지가 너무들 궁금하신 거지.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도저히 이 상황에서는 뭘 먹을 수가 없겠다 싶어서 건물에서 뛰쳐나왔어. 그리고 핸드폰을 확인하니까 메시지가 하나 와있더라고.
도넛 먹으러 가자. 먼저 가 있을게.<<
수업 중간 쯤에 도착해 있는 마크의 메시지가, 내 숨통을 트여주는 기분이었어. 그러고보니까 얘는, 언제 나간거지? 점심시간은 꽤 넉넉하지만 그래도 나는 서둘러서 팀 홀튼 쪽으로 걸었어. 빨리 저 숨막히는 건물에서 벗어나고 싶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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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탄하지 않은.. 두 사람.. 연애는 할 거니?
개강, 개학 모두 화이팅 하시고 기분 좋은 한 주 보내신 후에 다음주에 만나요!
댓글 답글과 사진 등록은 천천히.. 하겠습니다..
암호닉 : 동쓰 베리 딸랑이 하라하라 혀긔 메리 슈비두바 작결단1호 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