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더러웠다. 옆에있던 수건을 낚아채 샤워실로 들어갔다. 한적한 샤워실에서 옷을 벗으니 내 타투로 시선이 닿았다. 왜인지 다들 꺼려하던 내 타투. 이런 내 타투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누군가가 내게 있다면, 행복할텐데. 헬스장에서 대여한 옷은 대충 사물함에 넣었다. 그러곤 샤워 부스에서 물을 틀어 몸을 식혔다. 에네스가 날 안 미워했으면. [에니엘] 체육 선생님 옷을 입고 나오자 사물함 쪽에서 옷을 벗는 에네스와 마주쳤다. 여기가 한국이라면 볼 수 있을텐데 유럽이라 수건으로 가려진 에네스의 것이 아쉬웠다. 내가 언젠가 저걸 보고 말거라는 다짐을 하고 샤워실을 나왔다. 젠장. 보고싶다. 윽, 머리도 아프고 토할것 같다. 학교를 가야하는데 교복이 어디갔는지 안 보인다. 그러다 건조대에 걸려있는 와이셔츠 세벌을 보았다. 아마 어제 줄리안과 로빈이랑 술이 떡이 되도록 쳐 마시고 한 짓일거다. 사이즈를 보니 내것만 두벌이다. 한벌은 로빈것 같아 줄리안을 찾자 화장실에서 머리를 털며 나오는 줄리안이다. “야, 내 와이셔츠-.“ “아~ 그거 어제 로빈이 새벽에 세탁기 돌리는거 봤어. 수저도 넣고 책도 넣던데.“ 미친새끼가...! 건조대를 살펴보니 잡지는 물론 어제 안주로 먹었던 새우깡 봉지도 걸려있다. “야 이 새끼야 일어나봐.“ “우욱...!“ “이 ㅆㅂ...!” 너보다 밴딧이 낫다. 씨불롬아. 밴딧은 왜 안빨았냐? 침대를 독차지 하는 것도 모자라서 토까지 하는 로빈을 보니 가관이다. 이 개색기. 넌 정말 개색기야. 에네스만도 못한놈...! 왠지 모를 눈물이 갑자기 나와 눈가를 비비고 로빈을 마저 찼다. 결국 줄리안의 여벌로 있는 좀 많이 큰 와이셔츠를 하나 빌리고 등교를 했다. 다만 그날따라 유난히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고 느껴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하필 오늘은 금요일이다. 체육이 있는 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체육복도 없다. 기분도 좆같은데 그냥 빠져야지. 수업을 멋대로 빠지긴 엘리트로서 양심에 찔려서 교무실로 찾아가 에네스를 찾았다. “다니엘? 여긴 무슨 일?“ “아...“ 생각이 안 난다. 내가 뭘 말하려 왔는지. 하필 그때 내 눈에 에네스가 네번째 손가락에 낀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그, 선생님.“ “응.“ “여자친구 진짜 없어요?“ 시팔, 이게 다 로빈 때문이야. 아침부터 로빈이 이상한 짓거릴 해서 내 뇌에 이상이 온거야. 에네스의 표정에 황당함이 적나라하게 비쳤다. 나 같아도 당황하겠네. “아...! 말 실수예요! 저 오늘 아파서 양호실에 좀 누워 있겠다고요.“ “어? 어! 그래. 다니엘 매일 아픈 것 같아.“ 이제라도 생각 안 났으면 자살하려했다. 나 정말 미쳤나? 술이 덜 깼나? “아...몸이 약하게 태어나서요.“ 에네스는 여전히 얼떨떨한 눈으로 날 본다. 저번에 헬스장에서 마주쳤던 그때 그 눈으로. 갑자기 울컥하고 뭔가 목까지 찼다. 툭, 하고 에네스의 바지 위로 눈물을 떨어뜨렸다. 병신같이. “다니엘?“ “죄송합니다.“ 그대로 교무실을 도망치듯 나왔다. 많이 아파서 울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주면 다행이겠지만 물어보면 내가 어떻게 말해. 내가 지금 첫 사랑을 하고있는거 같은데 그 대상이 날 싫어한다고. 그리고 그 대상이 당신인것 같다고. 처음 해보는 짝사랑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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