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엠 들으면 참 좋은데,., 모바일에선 안나옴..ㅠㅠㅠㅠ
눈을 뜨자 메케한 공기와 함께 두통이 몰려왔다. 머리엔 끈적하니 말라붙은 게 피도 약간 흘린 것 같았다. 차라리 기억이 나지 않는 게 나으련만, 매일 도지던 해리성 기억상실증은 뭐하고 있는지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순간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은 분명 다음날 만들 케이크의 재료를 사고 집에 가려던 참이었다. 이래 봬도 첨가물을 전혀 쓰지 않는 곳으로 유명한 제과점의 파티시에였으니, 자부심 또한 대단해 재료 하나하나를 직접 공수하고 다녔다. 그날도 평소 같이 직접 농사지어 빻았다던 밀가루를 가지고 집 골목을 지나고 있을 참이었다. 남자라는 마음에 안심해서 그런 건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무심히 넘겼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밀가루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그것이 쓰러지기 전, 마지막 기억이었다.
온통 회색의 시멘트로 둘러싸인 정사각형의 방. 그저 눈앞에 존재하는 나무로 된 갈색 문이 자신을 반겨주고 있었다. 쓰러지자마자 온 것인지 몸 곳곳에서 흰색 얼룩과 밀가루 냄새가 났다. 허탈이 앉아있던 다리에 힘을 주고는 천천히 일어나는데, 순간 띵- 하고 울리는 머리에 벽을 짚었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문 앞에 다다라 구릿빛 문고리를 잡아 돌리지만 역시나. 쉽게 열릴 리 없었다. 포기함과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하고 주저앉았다. 아아- 이대로 죽는 건가. 연애도 못해봤는데. 눈에 눈물이 글썽하게 차오를 때쯤, 문틈으로 작은 쪽지가 끼워져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쪽지를 잡아 채 급하게 펼쳤다.
"…이게 뭐야…?"
「The woman is dead. When?
S - M - T - W - ? - F - S
-Limbering up」
준비운동. 살면서 매우 많이 들은 단어지만, 오늘따라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디선가 많이 본 알파벳들. 머리를 굴려 풀어도 얼마 걸리지 않는 문제지만, 그전에 이미 이러한 문제는 인터넷상에 떠돌고 있었다. Thursday. 목요일.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을 흘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달칵- 하고 쇠붙이가 움직이는 소리에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스르륵- 하며 문이 열렸다. 당황함에 문 밖으로 나가니, 저와 비슷한 상황인 것 같은 약 여덟 명 좀 넘는 사람들이 자신을 반기고 있었다. 어 나왔네? 심상치 않은 분위기 속에서, 얼떨떨한 자신을 그나마 밝은 목소리로 맞아주는 남자. 특이하게도 그는, 의사 가운을 입고 있었다.
* * *
"우와- 무슨 외국인 특집이야?"
"시끄러워요. 아까부터 그쪽만 나불거리는데."
자신이 나오고 약 10분 뒤, 12개의 문 중에 11개의 문이 열렸고 사람은 총 11명이었다. '그' 순간을 기억하든 안 하든, 상황이 상황인지라 적막감이 감도는 가운데, 처음 자신을 반겨준 의사 가운의 남자 혼자서 나오는 사람 족족 반겨주며 말을 걸었다. 그에 심기가 불편했는지 그를 제지하는 한 남자. 그의 목에 버스카드와 함게 걸려있는 학생증에는, 서울대라는 글씨가 너무 정확히 박혀 있었다.
"다 나온 것 같은데, 통성명 먼저 할까요? 전 소설 번역가, 대니 애런즈라고 합니다. 마지막 기억은 뭐… 출판사에 원고를 가져다주던 길이었어요. 집에 컴퓨터가 고장 나서."
아까부터 아무 말없이 침묵을 지키던 남자였다. 얼굴에서 두려움과 공포 따윈 찾아볼 수 없었고, 뒤이어 들리는 '러시아에서 왔어요' 라는 말이 뇌리를 스쳤다.
"I'm Julian Quintart! 정신과 의사였는데, 소아과로 바꿨어요! 마지막 기억은… 하하, 생각이 나질 않네요!"
"타일러 라쉬에요. 서울대 국제정치학과 학생이구요, 마지막 기억은 도서관에서 논문을 쓰고 있었어요."
줄리안의 표정에는 해맑음이 담겨 있었다면, 타일러의 표정에는 피곤함이 절여져 있었다. 그 이후로도 쭉 계속되는 자기소개에, 외우는 게 오래 걸리긴 했지만 얼추 정리된 머릿속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어, 로빈 데이아나에요. 프랑스에서 왔고, 파티쉐입니다. 마지막 기억이… 글쎄요, 밀가루를 사서 집에 가던 길이었어요."
"흠… 그런가. 그럼 린데만씨! 경찰이랬죠? 아닌가… 어쨌든- 뭐, 어떻게 해줄 수 없어요? 이것도 범죄에 일종인데!"
"경찰이 아니고 형사입니다. 저도 지금 상황에서는 피해자라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네요."
다니엘 린데만. 현직 형사라는데, 과연 납치범은 무슨 생각으로 형사를 부른 것일까. 다시 끔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처음 이름을 소개했을 때, 타투 이스트라는 스눅스와 이름이 겹쳐 성을 부르기로 했다. 11명의 각기 다른 국적과 다른 직업. 전혀 연관성 없는 사람들. 머리 좀 굴린다는 직업의 사람들도 해탈한데, 고작 파티시에인 자신이 머리를 굴려봤자 얼마나 굴릴까. 이내 포기하고 바닥에 앉으려는데, 치지 직- 하며 날카로운 기계음 소리가 들렸다. 뭐야-!! 자기소개 후, 정적이 오가던 공간에서 당황과 공포로 물든 소리가 터져 나왔다.
번쩍- 하고 아무런 무늬 없는 회색빛 천장에 빛이 비쳤다. 얼굴 따위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사람 형태의 그림자가 11명을 반겨 주었다. 음성변조를 사용한 것인지 갈라지는 여려 개의 목소리. 소름 돋음에 귀를 막으려는데 그가 뱉는 말에 모든 사람의 동작이 멈춰졌다.
[- 안녕하십니까, 10명의 초대 손님들.]
"뭐? 10명?"
"목소리 마음에 안들어…."
의문에 저도 모르게 외친 말. 10명이라니. 누가 봐도 11명인데? 뒤이어 따라오는 스눅스의 낮은 중얼거림이 그의 기분을 나타내 주었다.
[- 제 말에 집중 해 주시죠, 두분.]
"…뭐?"
[- 좋습니다. 제 말이 들리지 않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꾸웅-!!
목이 꺾여라 천장을 바라보는 11명의 앞에 크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천장이 뚫림과 동시에, 훅- 하고 끼치는 역한 냄새. 사람모형, 아니 사람일수도 있는 것에 잔뜩 붙은 것은 아무리 봐도 석고였다. 딱딱한 흰색의 울퉁불퉁한 면들. 떨어지는 묵직함과 이 역한 냄새는 분명, 상상도 하기 싫지만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 아주 아름다운 석고상이죠? 그 속에 있는 그분 역시 아주 아름다우신 분입니다.]
"설마…!"
[- 네! 알려드릴 수는 없지만, 아마도 당신들중 누군가가 아주 사랑하는 사람 이겠죠?]
설마 하던 일이 벌어졌다. 사람. 역함에 헛구역질이 나왔다. 누군가가 사랑하는 사람. 석고상 안에는 사람. 결론은 사람. 소름이 돋곺 허리가 숙여졌다. 끝내 비위가 약해져 구역질이 나왔지만, 먹은 게 없어 위액만 뱉어냈다. 그에 천천히 제 등을 쓸어주는 손길에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일본에서 왔다 했나, 전화 상담원이라던 타쿠야였다. 저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위치했었는데, 그의 눈도 불안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괜찮으냐고 물어오는 말엔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 그분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얼굴과 석고 사이에 아주 약간의 틈을 만들어 놓았거든요.]
"미친새끼-!!"
"대체 저사람 어디 있는 거죠?!"
[- 워워 진정. 석고는 그냥 뜯어내면 큰일 나죠! 제가 내는 퀴즈를 맞추시면 섞고 액을 깔끔하게 녹이는 액체를 드릴게요! 대신 제한시간은 1시간. 더 주고 싶은데- 그분이 죽으면 문제 내는 이유가 없잖아요?]
그림자 형태의 이미지가 사라지더니 1:00:00이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1시간. 혼란에 휩싸여 침묵이 도는 가운데 석고상이 요동쳤다. 이 안에 사람은 살아있다. 그 말이 너무 소름 돋게 들렸다. 석고가 온몸 전체에 발라져 있어 움직임이 원활하지 못하니 움찔 움찔거리는데, 모두 경악해 무슨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띠의- 하는 소리와 동시에 타이머가 움직였다.
[- 그럼 문제 드리겠습니다-.]
뚫린 천장에서 팔랑거리며 작은 종이 한장이 떨어졌다.
* * *
「
죽음이 말했다. "엄마가 올 거 같니?"
어린 소녀가 물었다. "엄마는 와요, 우리 엄마는 언제 오나요?"
죽음이 말했다. "엄마는 오지 않아, 피를 흘리고 눈이 없어 너를 찾지 못할 꺼란다."
어린 소녀가 말했다. "우리 엄마는 나를 찾아요, 우리 엄마는 언제 오나요?"
죽음이 말했다. "엄마는 백발 마녀가 돼서 올 거야. 그래도 겁내지 않는다면 알려주마."
어린 소녀가 말했다. "겁내지 않을께요, 울지도 않을께요. 엄마는 언제 오나요?"
죽음이 말했다. "오딘의 아들이 천둥을 치면 엄마가 올 거란다."
어린 소녀가 말했다. "그럼 엄마는 물음표의 날에 오나요?"
죽음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소녀가 울었다.
」
문제지가 떨어지고, 소녀가 왜 울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끝으로 더 이상 그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움찔대는 석고상을 바라보기만 한 채로 그 어떠한 해답도 찾을 수 없었다. 소아과이긴 해도 의사라는 줄리안이 석고를 살펴보지만, 얼마나 두텁게 발라 놓았는지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이젠 이십분도 채 남지 않았다. 40분을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불안감에 휩싸인 침묵 끝에 위안이 고개를 들었다.
"이러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거에요? 십분이에요, 저 사람.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
"그럴 몰라서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학원 강사랬죠? 뭐, 해답이라도 찾았어요? 우린 풀기 싫어서 이러고 있냐구요."
"어어- 싸우지들 마세요-!"
위안이 말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 타일러가 받아쳤다. 날카로워진 분위기에 종이를 살펴보던 알베르토가 둘을 제지했다. 무슨 방법이 있겠죱! 분위기를 풀어보려 밝게 말하는 알베르토를 도와 줄리안도 둘을 말리기 급급했다. 물음표의 날….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제지를 하고 말려도 점점 악화되어가는 두 사람에, 다른 사람들도 끝내 말리기에 동참했다. 그러나 자신들도 남자라고 말리면 말릴수록 커져가는 목소리에, 조용히 있던 대니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 이야기야."
"…네?"
"어머니 이야기. 여기 나오는 죽음과 어린 소녀. 안데르센 동화 어머니 이야기라고. 저번에 번역 한 적 있어."
"그걸 왜 지금 말해요!"
"지금 생각 났으니까."
담담히 내뱉는 말에 아디 선가 허- 하는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다시 조용해진 상황. 누구 이 동화에 관련된 사람 없어? 느지막이 묻는 대니의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그때, 이거 동화라고 했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게 말을 하는 알베르토. 자기소개를 할 때 줄리안 못지않게 밝은 모습에 하는 일이 '차장수' 라고 해서 작음 웃음을 주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아까의 밝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그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동화야, 내용이 좀 그렇지만."
"아… 아무런 관계 없겠지만- 일 년 전쯤에 제 딸아이한테 이 동화를 사준 적이 있거든요, 사 달라 해서…."
"왜 사준 건데?"
"영화 보러 가는 길에 서점이 있었어요. 그때 토르라는 영화가 개봉해서…."
"잠깐, 토르요?"
조용히 이 상화을 지켜보던 기욤이 끼어들었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도축가 라고 했다.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말이라 목소리가 커져 본인도 놀라 주위에 죄송합니다- 를 연발하고서는 또렷이 물었다. 토르라고 했죠? 영화 토르. 짐짓 진지하게 물어오는 기욤의 얼굴에 알베르토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토르는 북유럽신화에 나오는 천둥의 신인데요, 오딘의 아들 중 하나에요. 목요일인 Thursday랑 천둥을 뜻하는 Thunder도 다 토르에서 기원 됐어요!"
"Thursday? 목요일 이요?"
"네! 제가 신화 같은데 관심이 많아서!"
그리스 로마신화도 좋아해요! 해맑게 말하는 기욤을 뒤로하고 로빈은 생각에 휩싸였다. 분명 목요일, 물음표에 날. 다 어디서 들어 본 건데. 아파오는 머리에 인상을 찡그리자 맞은편에서 괜찮냐는 입 모양의 줄리안이 보였다. 괜찮아요. 자신도 입 모양으로 말했다.
"목요일. 문제는 어린 소녀가 왜 울었냐, 인데요?"
"빨리 아무나 생각해요! 이제 십분도 안 남았어요."
"아까부터 말 없는 거기 골프선수. 그쪽은 뭐 아는 거 없어요?"
"죄송하지만 청소년 시절부터 한건 공부가 아닌 골프라서요오-"
"…여인이 죽었다. 언제?"
"응? 로빈? 뭐라고요?"
대니가 의문을 던지자 타일러가 재촉하였다. 그에 샘에게 아는 것이 있냐 묻는 대니지만, 샘은 무언가를 알리가 없었다. 여인이 죽었다, 언제. 순간적으로 로빈의 머리를 강타해오는 문구에 재빨리 자신이 있던 방으로 달려가는 로빈이었다. 역시나, 문 주위에 아무렇게 버려져 있던 종이쪽지. 목요일과 죽은 여인. 로빈은 떨리는 손으로 구겨진 쪽지를 펼쳤다.
"제가 있던 방 문틈에 있던 쪽지에요."
"여인이 죽었다, 언제?"
"네, 답은 T. Thursday."
"빨리요! 1분 남았어요!"
"오딘의 아들 천둥의 신 토르. 물음표의 날. 아이가 울었던 건…."
"엄마는 물음표의 날에 와요, 여인이 죽은 날. 아마도 이 여인은 아이의 엄마…."
"엄마가 죽어서 운 거겠군요…."
띵동-
맑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액체가 가득 담긴 병이 떨어졌다. 남은 시간은… 3초도 채 되지 않았다. 병을 받아든 줄리안이 조심스럽게 석고에 액체를 부었다. 부글부글- 거품이 일더니 이내 고등학생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여자아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이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오… 아가…!"
알베르토가 울며 아이를 안아들었다.
_____
혹시 나는 문제를 맞췄다 하시는분???ㅋㅋㅋㅋㅋㅋㅋ
아...11명이라 그런가 분량없는 샘572 미안해 사랑해..
이거 썼는데 반응 없으면 재미 없다는거니까.. 다음편은....
(이래놓고선 내일 다음편 구상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