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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사귀고 헤어진 전 애인 갑을로 재회하는 썰



w. 랑데부



1.



"지금 가면 끝이야"



 나 하나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작아지고 닳아가는 모습을 외면하기 위해 더욱 타인에게 사랑을 갈구 하겠지. 그게 진정한 사랑일까?

ㅇㅇ는 고개를 털어 내고 파운데이션을 덜어냈다. 전보다 꼼꼼한 손길로 잡티를 가렸다. 가끔 ㅇㅇ는 말을 잃은 사람처럼 굴었다. 웬만해선 입을 잘 열지 않았다. 입만 잘 열지 않았을 뿐이다. 전처럼 웃었고 전처럼 행동했다. 진심으로 가까운 이가 아니라면 알아채기 어려운 변화였다. 



"아, 아야"



뷰러에 찝힌 속살이 눈물을 뽑아냈다. 에이씽 뽑혔어 속눈썹. ㅇㅇ는 화장솜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 뷰러를 들었다. 


- 전화 좀 받아줘 07:44


ㅇㅇ는 진동을 부르르 떨어내는 휴대폰을 뒤집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님 아주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ㅇㅇ의 변화를 알아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날 이후 ㅇㅇ는 단 한 번도 영현을 마주 하려 하지 않았다. 영현은 끊질기게 전화기를 붙들었다. 영현의 속을 태우던 신호음은 더이상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로 넘어가며 차단을 상기 시켰다.


ㅇㅇ는 꼼꼼하게 립스틱을 바른 뒤 가방에 넣었다. 이크, 늦겠다. 시계는 여덟시를 간신히 넘어 달리고 있었다. 신발장에서 가장 굽이 높은 힐을 꺼내 올라탔다. 더이상 뒷꿈치가 까지지 않는 것을 보니 어느정도 굳은 살과 협의점을 찾은 듯 했다. ㅇㅇ는 가디건을 손에 쥔 채 힘차게 문을 열고 밖으로 향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ㅇ대리 왔어? 아, 윤팀장님 찾으셔. 2회의실로 가봐"



아침부터? ㅇㅇ는 가방을 놓을 새도 없이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번에 급하게 펑크낸 패널도 제대로 바꿔 섭외했는데 꼬투리 잡힐 일이 또 있나 헤아려 보았다. ㅇㅇ는 어색하게 자른 머리를 매만지며 문을 열었다.



"아 ㅇ대리 왔어?"


"네. 부르셨,"


"안녕하세요"



상석에 앉은 윤팀장 옆으로 영현이 보였다. 살이 퍽 빠져보였다. 특히 작품할 때는 잘 좀 챙겨 먹으라니까 말을 듣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ㅇㅇ는 영현과 마주해 자리에 앉았다. 들어올 때부터 영현의 간절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ㅇㅇ는 곧잘 윤팀장만 바라 보았다.



"일찍부터 불러서 미안, 자기가 이번에 썸머 테크니컬 디자이너 인터뷰 대타 들어갔지?"


"네. 안 그래두 이번 주에 인터뷰 진행 하기로 했는데..,"


"그거 정대리한테 토스하고 강작가 프로젝트 들어와"


"네?"



소형 프로젝트인데, 강작가 이번에 우리 측이랑 미니 계간지 해보기로 한 거. 자기도 들어와서 도와줬음 좋겠어. 

꼼꼼한 윤팀장 성격만큼 미리 기획안을 뽑아 ㅇㅇ에게 내밀었다. 아무래도 자기가 강작가 잘 알기두 하고, 강작가도 ㅇ대리 많이 봐줄 수 있고 특히 글 부분. 도움 많이 될 거야. ㅇㅇ는 기획안 앞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 기획안을 다시 윤팀장쪽으로 밀어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대타지만 결국엔 제 업무로 진행된 인터뷰이고 잘 마무리 짓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프로젝트 팀엔 들어갈 수 없지만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퇴근 후 보충을 해서라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강작가님, 죄송합니다"



ㅇㅇ는 간결하고 견고한 말투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진심으로 윤팀장과 영현에게 사과를 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에 윤팀장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해봤자 대리 따위가 무슨 반기냐고? 그것까지 고려한 반항이었다. 어떤 답이 돌아오든, 영현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팀장님 ㅇ대리님과 잠깐 둘이서 이야기 해도 될까요"


"어어, 당연하지. 나가있을게요"



윤팀장은 선뜻 고개를 끄덕이고 제 몫의 커피를 챙겨 들었다. 웬만하면 좋게 이야기 해봐, ㅇ대리. 좋은 사람이잖아. 윤팀장은 ㅇㅇ의 어깨를 다독이곤 밖으로 향했다.



"커피 줄까?"


"ㅇㅇㅇ"


"미안한데, 빨리 끝내줘. 할 일이 좀 많아서"

"자기야 나 좀 봐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였다. 한 번만, 봐주라 ㅇㅇ야. 
영현의 부름에 뜨거운 불덩이 같은 것이 가슴팍에서 소용돌이쳤다. ㅇㅇ는 급하게 손을 거둬 무릎에 내려 놓았다. 더이상 뜯을 것도 없는 손톱을 괴롭히기라도 해야 숨이 쉬어질 것 같았다. 새하얀 책상을 마치 저라도 된냥 노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찾아 오지마. 부르지도 마, 엄연히 여기 내 직장이야"


"미안해"


"알면 더이상 연락 하지도 마. 네 입으로 그랬잖아, 끝이라고"



차라리 이 상황에서 영현이 저를 미워하면 조금은 정리가 빨라지지 않을까. 영현이 되도록 오랫동안 이 관계에서 헤매지 않길 바랐다. ㅇㅇ는 가방을 챙겨 들었다. 더 할 말 없어, 갈게.



"잠깐만, ㅇㅇ야 잠깐만"



다급하게 ㅇㅇ를 붙잡았다. 영현은 빠르게 제 가방에서 무언가를 뒤져 찾아냈다. 



"가서 발라. 밴드 안 붙이는게 더 빨리 나을거야"



뜨거운 온기가 ㅇㅇ의 손을 열어 후시딘을 쥐어주었다. ㅇㅇ는 제 손에 들린 약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왜 따라와?"


"..어?"


"아까부터 왜 따라오고 있냐구"


"이거,"




방금까지 죽을 것만 같았다. 조그만 이 손을 조금만 더, 너를 좀 더. ㅇㅇ는 영현의 손을 밀어내고 말없이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영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주저 앉았다. 홧김에 헤어지자고 말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과거로 가 제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패고 싶었다. 그렇게 ㅇㅇ를 잃어 보고도 또 실수를 저지를 정도로 등신. 시팔 강영현. 



*



"미안한데 나도 아직 ㅇㅇㅇ 본 적 없으니까 아무리 하소연해도 해줄 수 있는게 없다"



방금 들은 말을 의심했다. 원필은 ㅇㅇ와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였다. 어떤 다툼이었든 아무렇지 않게 털어내고 마주했던 두 사람이었다. 영현은 의심의 눈초리로 원필을 바라보았다. 시팔 내 번호도 차단했어. 너처럼 회사 찾아가는 개진상은 차마 못 돼서 안 갔다, 됐냐? 원필은 퉁명스럽게 답하곤 술잔을 들이켰다.

홧김에 한 말이었다. 그저 ㅇㅇ가 다시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어찌보면 그 애도 많이 힘들어서 나한테까지 숨겼겠지. 진짜 못 버티겠음, 아니 정말 누군가 필요하면 찾아올 거야. 믿는 거지. 걔가 나한테 그랬으니까.



"넌 아직도 무모하게 ㅇㅇㅇ를 사랑해?"


"뭐?"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모든 순간에서 너 최선이었냐고"



물론 그랬겠지만, 이번엔 나도 진짜 감이 안 와서 물어보는 거야.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영현은 말이 없었다. 불을 꺼버린 것처럼 묵직한 적막을 가졌다. 



"항상 ㅇㅇ가 우선일 수 없는게, 잘못된 걸까"


"아니지. 이건 니 삶이야, 당연한 소리지"



아, 두 병 시키지 새끼. 이모- 참이슬 한 병 더 주세요. 원필은 남은 맥주를 털어 마시곤 입가를 닦았다.



"근데"


"..."


"왜 그 말이 나왔을까. 네 입에서"



그 말이 잘못된 건 아닌데, 그 말이 나올 상황이 잘못된 거지. ㅇㅇㅇ가 그걸 몰라? 네가 글 쓰는 순간만큼은, 너에게 중요한 일을 하는만큼은 존중해야 한다는 그 당연한 걸 몰라서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겠냔 이야기야.  원필은 팔꿈치로 병바닥을 퍽퍽 치며 말했다. 맥주가 남은 영현의 잔에 조용히 술을 따랐다. ㅇㅇ만큼은 아니지만 영현도 안타까웠다. 물론 ㅇㅇ가 힘들어진게 순전히 강영현 때문이라면 넌 내 손에 뒤졌지만.



"...좀 예민했어 ㅇㅇ가"


"그러니까 왜 예민했냐고"



영현은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낸 다툼들을 상기시켰다. 시팔 왜 싸웠는지 기억도 안 나. 모든 다툼을 기억할 순 없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간절하게 그 당연한 순간들이 필요했다.



"안아달라고 보채서,"


"얼씨구"


"그래서 다퉜어. 그 날은"



참 오그라들어서 좆되는 이유로도 싸웠네. 못 들을 걸 들어버렸다. 원필은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귀를 후볐다. 



"자다가 깨면 워낙 투정이 많으니까. 나도 웬만하면 안아주고 그럴텐데 그 날은 너무 바빴어"


"그럼 투정이었으니까 그렇게 치면 싸울 일이 못 되잖아. 걔가 그런 걸로 싸움도 걸어와? 그건 걔가 잘못했네. 그건 패쓰"


"그때 왜 우리가 같이 버틴 시간을 부정하려 했을까"


"에이씨 그럼 그 날이 잘못된 거 맞네. 다시 불러와봐"



원필 나름에도 머리가 터질 거 같았다. 그 단순한 이유로 ㅇㅇ가 기가 죽어 갑자기 영현을 신경쓴다고? 보여지는 겉모습이 자꾸 못나 자신을 미워한다고? 



"자꾸 사랑해라고 말해보라고 그랬었는데"


"니네 시팔 자꾸 그딴 이유로 싸울래? 듣는 사람 손발 오그라들어서 잘라버리고 싶게"


"끝까지 들어. 싸운게 아니고 자꾸 보챘다니까"



ㅇㅇ를 외롭게 만들 강영현이 아니란 것쯤은 원필도 잘 안다. 지금 영현 태도로 봐선 제가 아는 강영현이라면 사실 누구의 잘못인지 모호했다. 괜히 나왔어. 아 오늘 어벤져스 예약했는데. 원필은 대학 논문보다 답이 없는 유추에 머리를 박았다. 안해 안해. 


-땅콩


"야야야 너 조용히 해봐. 한 마디라도 하면 죽어. 어?"



갑작스러운 전화에 원필은 멍청하게 벌떡 일어났다. 땅콩 알러지가 있는 원필이 땅콩보다 좆같은 애라며 지어준 ㅇㅇ의 별명이었다. 어어어, 에이씨 우선 받자.



"여보세요?"


"으이씨 이거 왜 안 따져어.. 어? 김연필!"


"취했냐?"


"취하긴 무스은, 야 니네 집 비밀번호 뭐냐? 아니이 야 너 언제 다시 열쇠로 바꿔써. 어? 이 누나한테두 말 안 하구, 섭섭하다!"



열쇠는 개뿔. 술 먹었네 먹었어.
원필은 조용히 병을 비우고 있는 영현을 한 번 보고 지갑을 챙겼다. 나 간다. 영현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손을 흔들었다. 꽐라가 되도 알아서 집에 잘 들어갈 놈이었다. 하지만 원필은 아마 연락을 하지 않은 기간동안 급격하게 술버릇이 바뀌지 않는 이상 ㅇㅇ의 만취는 곧 숙면이었다. 원필은 급하게 택시를 세워 올라탔다.



"아저씨 스카이빌, 스카이빌 앞 교차로로 가주세요"


"에? 너 언제 이사해써? 야 김연필 너 칭구 그르케 어? 언제 인사 아니 아니 이사했냐구!"


"뭐래 지금 거기서 몇 녀.. 야 너 어디야"


"니네 집!"



아저씨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원필은 무언가 아다리가 맞지 않는 말에 급하게 택시에서 내렸다. 대체 어디가 우리집이야, 야 너 어디냐니까? 급하게 뒷머리를 헤집었다. 



"야아 니네 집 올라오다가 나 다리 나갔으니까아 빨리 문 열어어. 근데 진짜 여긴 야경 죽인다, 졸려 끄너 이제"


"야야야 안돼. 끊지마 끊지마! 잠깐만 기다려"



다리가 나가? 야경? 원필은 재빠르게 ㅇㅇㅇ의 말을 퍼즐 삼아 조각을 맞추기 시작했다. 에이씨 설마. 알콜이 들어가 팔과 다리는 원필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원필은 여전히 잔을 채우고 있는 영현의 옆에 있는 가디건을 뒤졌다. 



"뭐하냐?"


"닥치고 차키 내놔. 아니다 너 빨리 대리 불러, 야 ㅇㅇㅇ. 자지 말고 계속 말해. 어어어, 뭐 보인다고? 아 잠들지 말라니까?!"



영현은 삼초간 이 새끼가 무슨 말을 쏟아 부었는지 생각했다. LTE급 속도였다. 영현은 통화 기록에서 빠르게 대리 번호를 찾아 불렀다. 



"어 지붕이 많다고? 당연하지 높은데 있으면! ..아니 뭐? 지붕이 많아? 야 대리 불렀어?"


"응. ㅇㅇ야? 바꿔줘"


"넌 가만히 있어. 야 거기 지금 사람 살아 빨리 안 내려와?"



원필은 영현의 손을 무섭게 내쳤다. 너 있는 거 알면 어디로 튈지 몰라서 그래, 가만히 있어. 그때부터 원필은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뺨을 두어대 쳐 술기운을 깨웠다. 정신 없는 원필을 챙기는 건 영현이었다. 대리가 도착하고 영현은 원필을 끌어 당겨 차에 태웠다. 같이 가기만 할게, 차에 있음 되잖아. 원필은 영현의 애원에 일일이 답해줄 여유가 없었다. 그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휴대폰을 가까히 귀에 가져다 댔다.



"아저씨 장충 체육관 사거, 아니아니. 장충파출소로 가주세요"


"혼내지마"


"지랄"



유난히 캄캄한 골목이었다. 가로등은 희미하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원필은 단숨에 옥탑으로 달렸다. 토기가 수없이 밀려 올라왔지만 뛰는 다리를 멈출 생각은 없었다. 딱 계단, 그래 거기서 원필은 주저 앉았다. 하 존나 높네. 구역질을 하는 원필 옆으로 영현이 스쳐 지나갔다. 미친, 야야야! 소리를 죽여 영현을 불렀지만 영현은 숨도 차지 않는 모양인지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ㅇㅇㅇ!"


"김원필"



알았어. 

영현의 재치에 원필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저앉아 있는 ㅇㅇ에게 다가갔다. 대체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새근새근 잠에 들어버린 ㅇㅇ를 업기 위해 팔을 둘렀다. 기척에 금방 깬 건지 음절이 뭉개지는 신음이 들렸다.



"너 진짜 싫어. 알아? 야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고. 간 떨어질 뻔 했네"


"..흐으"


"...너 울어? 뭐야 왜 울어. 미안해, 야 미안해"


"강, 흐윽, 강영현 향수우"


"뭐?"



영현의 향이었다. ㅇㅇ는 원필이 말릴 새도 없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에이씨. 원필은 그제야 제가 걸치고 있는 것이 영현의 가디건임을 알아챘다. 차키를 꺼내고 저도 모르고 입은 걸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알아챘는지 ㅇㅇ는 숨이 넘어가게 울어댔다. 급하게 가디건을 벗어 원필은 영현의 품에 던졌다. 



"허어어엉"


"울지마. 야 ㅇㅇㅇ! 울지 말라고. 어?"


"니가아 향ㅅ, 향수, 강영현 끅, 흐어, 냄새"



영현의 차에 내려서도 울지 않았다. 찾아온 영현에게 모질게 굴 때도 울지 않았지만 그 냄새 하나에 ㅇㅇ는 화장이 다 지워질 때까지 울었다. 다가가면 더 울까봐. 울어버릴까봐 영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ㅇㅇ를 바라봤다. 그냥 기다린다 할 껄.  점차 숨을 헐떡이며 울음을 멈추지 않는 ㅇㅇ는 지쳐보였다. 울지 말라고, 야아 ㅇㅇㅇ.원필은 결국 손짓했다. 시발 니가 해봐. 실신하면 어떡해. 영현은 머뭇거렸다.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빨리 강영현!



"ㅇㅇ야"


"으흑, 끅, 으 으흐어"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ㅇㅇ야"


"허어엉 끅, 어어"



ㅇㅇ는 습관적으로 양팔을 벌려 영현을 껴안았다. 영현의 티셔츠가 눈물에 축축하게 젖어갔다. 영현은 ㅇㅇ의 뒷통수를 꼭 끌어 안고 남은 손으로 등을 쓸어주었다. 아무 말도 없이. ㅇㅇ의 눈물이 그칠 때까지 끌어 안았다.


너무 많은 추억이 여기에 남아 있었다. 영현과 함께한 수없는 시간, 나눈 숨. 여름이 되면 옥탑에 누워 보이지도 않는 별을 세었다. 옆옆집의 쌍욕을 들어먹을 정도로 크게 다투기도 했고, 또 끌어안고 키스했다. 현실이고 문제고 운명이고  단 한 번도 우리는 입 밖에 꺼낸 적이 없었다. 이 옥탑에선 강영현과 나. 나와 너. 그 둘 그게 전부였다. 우리는 참 많은 추억을 여기 두고 나아가버렸다.




7.




-보고싶어 01:07



"나 먼저 간다"


"뭐? 너 나랑 간다며"


"괜찮아. 간다"


"야 지금 택시 할증 붙어 임마!"



같이 타고 가서 택시비 나눠내면 얼마나 좋아. 원필은 입을 삐죽댔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카페인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지만 아메리카노 넉잔을 족히 마신 것처럼 잠이 오지 않는 날이 꼭 있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강영현이 보고 싶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난다고 들었으니 지금쯤 2차 갔으려나?  

무료하게 휴대폰을 딸깍거렸다. 한 시 이십 분, 이십사 분, 삼십 분. 누군가 현관문을 쾅쾅 두드렸다. 시발 도둑? 아니 도둑이 노크하고 들어오진 않을 거 아냐. ㅇㅇ는 슬그머니 매트리스에서 내려왔다. 슬금슬금 걸어 문꼬리를 쥐었다.



"누구, 어?"



문을 열자마자 ㅇㅇ는 회오리바람처럼 영현에게 빨려 들어갔다. 영현의 옷이 온통 땀으로 축축했다. 목도, 팔도 전부 다 마찬가지였다.



"뭐야 너 어떻게 왔어?"



거친 숨을 몰아 쉬느라 한동안 답이 없었다. 빠르게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내리길 반복했다. 거친 숨소리가 현관을 메웠다. ㅇㅇ는 영현의 뒷목을 쓸었다. 땀 엄청 나네, 뛰어왔어?



"응"


"너 학교 앞에서 술 먹는다고.., 거기서부터 뛰어왔어?"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자기야 나 좀 봐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였다. 한 번만, 봐주라 ㅇㅇ야. 
영현의 부름에 뜨거운 불덩이 같은 것이 가슴팍에서 소용돌이쳤다. ㅇㅇ는 급하게 손을 거둬 무릎에 내려 놓았다. 더이상 뜯을 것도 없는 손톱을 괴롭히기라도 해야 숨이 쉬어질 것 같았다. 새하얀 책상을 마치 저라도 된냥 노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찾아 오지마. 부르지도 마, 엄연히 여기 내 직장이야"


"미안해"


"알면 더이상 연락 하지도 마. 네 입으로 그랬잖아, 끝이라고"



차라리 이 상황에서 영현이 저를 미워하면 조금은 정리가 빨라지지 않을까. 영현이 되도록 오랫동안 이 관계에서 헤매지 않길 바랐다. ㅇㅇ는 가방을 챙겨 들었다. 더 할 말 없어, 갈게.



"잠깐만, ㅇㅇ야 잠깐만"



다급하게 ㅇㅇ를 붙잡았다. 영현은 빠르게 제 가방에서 무언가를 뒤져 찾아냈다. 



"가서 발라. 밴드 안 붙이는게 더 빨리 나을거야"



뜨거운 온기가 ㅇㅇ의 손을 열어 후시딘을 쥐어주었다. ㅇㅇ는 제 손에 들린 약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왜 따라와?"


"..어?"


"아까부터 왜 따라오고 있냐구"


"이거,"




방금까지 죽을 것만 같았다. 조그만 이 손을 조금만 더, 너를 좀 더. ㅇㅇ는 영현의 손을 밀어내고 말없이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영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주저 앉았다. 홧김에 헤어지자고 말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과거로 가 제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패고 싶었다. 그렇게 ㅇㅇ를 잃어 보고도 또 실수를 저지를 정도로 등신. 시팔 강영현. 



*



"미안한데 나도 아직 ㅇㅇㅇ 본 적 없으니까 아무리 하소연해도 해줄 수 있는게 없다"



방금 들은 말을 의심했다. 원필은 ㅇㅇ와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였다. 어떤 다툼이었든 아무렇지 않게 털어내고 마주했던 두 사람이었다. 영현은 의심의 눈초리로 원필을 바라보았다. 시팔 내 번호도 차단했어. 너처럼 회사 찾아가는 개진상은 차마 못 돼서 안 갔다, 됐냐? 원필은 퉁명스럽게 답하곤 술잔을 들이켰다.

홧김에 한 말이었다. 그저 ㅇㅇ가 다시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어찌보면 그 애도 많이 힘들어서 나한테까지 숨겼겠지. 진짜 못 버티겠음, 아니 정말 누군가 필요하면 찾아올 거야. 믿는 거지. 걔가 나한테 그랬으니까.



"넌 아직도 무모하게 ㅇㅇㅇ를 사랑해?"


"뭐?"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모든 순간에서 너 최선이었냐고"



물론 그랬겠지만, 이번엔 나도 진짜 감이 안 와서 물어보는 거야.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영현은 말이 없었다. 불을 꺼버린 것처럼 묵직한 적막을 가졌다. 



"항상 ㅇㅇ가 우선일 수 없는게, 잘못된 걸까"


"아니지. 이건 니 삶이야, 당연한 소리지"



아, 두 병 시키지 새끼. 이모- 참이슬 한 병 더 주세요. 원필은 남은 맥주를 털어 마시곤 입가를 닦았다.



"근데"


"..."


"왜 그 말이 나왔을까. 네 입에서"



그 말이 잘못된 건 아닌데, 그 말이 나올 상황이 잘못된 거지. ㅇㅇㅇ가 그걸 몰라? 네가 글 쓰는 순간만큼은, 너에게 중요한 일을 하는만큼은 존중해야 한다는 그 당연한 걸 몰라서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겠냔 이야기야.  원필은 팔꿈치로 병바닥을 퍽퍽 치며 말했다. 맥주가 남은 영현의 잔에 조용히 술을 따랐다. ㅇㅇ만큼은 아니지만 영현도 안타까웠다. 물론 ㅇㅇ가 힘들어진게 순전히 강영현 때문이라면 넌 내 손에 뒤졌지만.



"...좀 예민했어 ㅇㅇ가"


"그러니까 왜 예민했냐고"



영현은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낸 다툼들을 상기시켰다. 시팔 왜 싸웠는지 기억도 안 나. 모든 다툼을 기억할 순 없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간절하게 그 당연한 순간들이 필요했다.



"안아달라고 보채서,"


"얼씨구"


"그래서 다퉜어. 그 날은"



참 오그라들어서 좆되는 이유로도 싸웠네. 못 들을 걸 들어버렸다. 원필은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귀를 후볐다. 



"자다가 깨면 워낙 투정이 많으니까. 나도 웬만하면 안아주고 그럴텐데 그 날은 너무 바빴어"


"그럼 투정이었으니까 그렇게 치면 싸울 일이 못 되잖아. 걔가 그런 걸로 싸움도 걸어와? 그건 걔가 잘못했네. 그건 패쓰"


"그때 왜 우리가 같이 버틴 시간을 부정하려 했을까"


"에이씨 그럼 그 날이 잘못된 거 맞네. 다시 불러와봐"



원필 나름에도 머리가 터질 거 같았다. 그 단순한 이유로 ㅇㅇ가 기가 죽어 갑자기 영현을 신경쓴다고? 보여지는 겉모습이 자꾸 못나 자신을 미워한다고? 



"자꾸 사랑해라고 말해보라고 그랬었는데"


"니네 시팔 자꾸 그딴 이유로 싸울래? 듣는 사람 손발 오그라들어서 잘라버리고 싶게"


"끝까지 들어. 싸운게 아니고 자꾸 보챘다니까"



ㅇㅇ를 외롭게 만들 강영현이 아니란 것쯤은 원필도 잘 안다. 지금 영현 태도로 봐선 제가 아는 강영현이라면 사실 누구의 잘못인지 모호했다. 괜히 나왔어. 아 오늘 어벤져스 예약했는데. 원필은 대학 논문보다 답이 없는 유추에 머리를 박았다. 안해 안해. 


-땅콩


"야야야 너 조용히 해봐. 한 마디라도 하면 죽어. 어?"



갑작스러운 전화에 원필은 멍청하게 벌떡 일어났다. 땅콩 알러지가 있는 원필이 땅콩보다 좆같은 애라며 지어준 ㅇㅇ의 별명이었다. 어어어, 에이씨 우선 받자.



"여보세요?"


"으이씨 이거 왜 안 따져어.. 어? 김연필!"


"취했냐?"


"취하긴 무스은, 야 니네 집 비밀번호 뭐냐? 아니이 야 너 언제 다시 열쇠로 바꿔써. 어? 이 누나한테두 말 안 하구, 섭섭하다!"



열쇠는 개뿔. 술 먹었네 먹었어.
원필은 조용히 병을 비우고 있는 영현을 한 번 보고 지갑을 챙겼다. 나 간다. 영현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손을 흔들었다. 꽐라가 되도 알아서 집에 잘 들어갈 놈이었다. 하지만 원필은 아마 연락을 하지 않은 기간동안 급격하게 술버릇이 바뀌지 않는 이상 ㅇㅇ의 만취는 곧 숙면이었다. 원필은 급하게 택시를 세워 올라탔다.



"아저씨 스카이빌, 스카이빌 앞 교차로로 가주세요"


"에? 너 언제 이사해써? 야 김연필 너 칭구 그르케 어? 언제 인사 아니 아니 이사했냐구!"


"뭐래 지금 거기서 몇 녀.. 야 너 어디야"


"니네 집!"



아저씨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원필은 무언가 아다리가 맞지 않는 말에 급하게 택시에서 내렸다. 대체 어디가 우리집이야, 야 너 어디냐니까? 급하게 뒷머리를 헤집었다. 



"야아 니네 집 올라오다가 나 다리 나갔으니까아 빨리 문 열어어. 근데 진짜 여긴 야경 죽인다, 졸려 끄너 이제"


"야야야 안돼. 끊지마 끊지마! 잠깐만 기다려"



다리가 나가? 야경? 원필은 재빠르게 ㅇㅇㅇ의 말을 퍼즐 삼아 조각을 맞추기 시작했다. 에이씨 설마. 알콜이 들어가 팔과 다리는 원필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원필은 여전히 잔을 채우고 있는 영현의 옆에 있는 가디건을 뒤졌다. 



"뭐하냐?"


"닥치고 차키 내놔. 아니다 너 빨리 대리 불러, 야 ㅇㅇㅇ. 자지 말고 계속 말해. 어어어, 뭐 보인다고? 아 잠들지 말라니까?!"



영현은 삼초간 이 새끼가 무슨 말을 쏟아 부었는지 생각했다. LTE급 속도였다. 영현은 통화 기록에서 빠르게 대리 번호를 찾아 불렀다. 



"어 지붕이 많다고? 당연하지 높은데 있으면! ..아니 뭐? 지붕이 많아? 야 대리 불렀어?"


"응. ㅇㅇ야? 바꿔줘"


"넌 가만히 있어. 야 거기 지금 사람 살아 빨리 안 내려와?"



원필은 영현의 손을 무섭게 내쳤다. 너 있는 거 알면 어디로 튈지 몰라서 그래, 가만히 있어. 그때부터 원필은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뺨을 두어대 쳐 술기운을 깨웠다. 정신 없는 원필을 챙기는 건 영현이었다. 대리가 도착하고 영현은 원필을 끌어 당겨 차에 태웠다. 같이 가기만 할게, 차에 있음 되잖아. 원필은 영현의 애원에 일일이 답해줄 여유가 없었다. 그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휴대폰을 가까히 귀에 가져다 댔다.



"아저씨 장충 체육관 사거, 아니아니. 장충파출소로 가주세요"


"혼내지마"


"지랄"



유난히 캄캄한 골목이었다. 가로등은 희미하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원필은 단숨에 옥탑으로 달렸다. 토기가 수없이 밀려 올라왔지만 뛰는 다리를 멈출 생각은 없었다. 딱 계단, 그래 거기서 원필은 주저 앉았다. 하 존나 높네. 구역질을 하는 원필 옆으로 영현이 스쳐 지나갔다. 미친, 야야야! 소리를 죽여 영현을 불렀지만 영현은 숨도 차지 않는 모양인지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ㅇㅇㅇ!"


"김원필"



알았어. 

영현의 재치에 원필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저앉아 있는 ㅇㅇ에게 다가갔다. 대체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새근새근 잠에 들어버린 ㅇㅇ를 업기 위해 팔을 둘렀다. 기척에 금방 깬 건지 음절이 뭉개지는 신음이 들렸다.



"너 진짜 싫어. 알아? 야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고. 간 떨어질 뻔 했네"


"..흐으"


"...너 울어? 뭐야 왜 울어. 미안해, 야 미안해"


"강, 흐윽, 강영현 향수우"


"뭐?"



영현의 향이었다. ㅇㅇ는 원필이 말릴 새도 없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에이씨. 원필은 그제야 제가 걸치고 있는 것이 영현의 가디건임을 알아챘다. 차키를 꺼내고 저도 모르고 입은 걸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알아챘는지 ㅇㅇ는 숨이 넘어가게 울어댔다. 급하게 가디건을 벗어 원필은 영현의 품에 던졌다. 



"허어어엉"


"울지마. 야 ㅇㅇㅇ! 울지 말라고. 어?"


"니가아 향ㅅ, 향수, 강영현 끅, 흐어, 냄새"



영현의 차에 내려서도 울지 않았다. 찾아온 영현에게 모질게 굴 때도 울지 않았지만 그 냄새 하나에 ㅇㅇ는 화장이 다 지워질 때까지 울었다. 다가가면 더 울까봐. 울어버릴까봐 영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ㅇㅇ를 바라봤다. 그냥 기다린다 할 껄.  점차 숨을 헐떡이며 울음을 멈추지 않는 ㅇㅇ는 지쳐보였다. 울지 말라고, 야아 ㅇㅇㅇ.원필은 결국 손짓했다. 시발 니가 해봐. 실신하면 어떡해. 영현은 머뭇거렸다.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빨리 강영현!



"ㅇㅇ야"


"으흑, 끅, 으 으흐어"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ㅇㅇ야"


"허어엉 끅, 어어"



ㅇㅇ는 습관적으로 양팔을 벌려 영현을 껴안았다. 영현의 티셔츠가 눈물에 축축하게 젖어갔다. 영현은 ㅇㅇ의 뒷통수를 꼭 끌어 안고 남은 손으로 등을 쓸어주었다. 아무 말도 없이. ㅇㅇ의 눈물이 그칠 때까지 끌어 안았다.


너무 많은 추억이 여기에 남아 있었다. 영현과 함께한 수없는 시간, 나눈 숨. 여름이 되면 옥탑에 누워 보이지도 않는 별을 세었다. 옆옆집의 쌍욕을 들어먹을 정도로 크게 다투기도 했고, 또 끌어안고 키스했다. 현실이고 문제고 운명이고  단 한 번도 우리는 입 밖에 꺼낸 적이 없었다. 이 옥탑에선 강영현과 나. 나와 너. 그 둘 그게 전부였다. 우리는 참 많은 추억을 여기 두고 나아가버렸다.




7.




-보고싶어 01:07



"나 먼저 간다"


"뭐? 너 나랑 간다며"


"괜찮아. 간다"


"야 지금 택시 할증 붙어 임마!"



같이 타고 가서 택시비 나눠내면 얼마나 좋아. 원필은 입을 삐죽댔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카페인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지만 아메리카노 넉잔을 족히 마신 것처럼 잠이 오지 않는 날이 꼭 있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강영현이 보고 싶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난다고 들었으니 지금쯤 2차 갔으려나?  

무료하게 휴대폰을 딸깍거렸다. 한 시 이십 분, 이십사 분, 삼십 분. 누군가 현관문을 쾅쾅 두드렸다. 시발 도둑? 아니 도둑이 노크하고 들어오진 않을 거 아냐. ㅇㅇ는 슬그머니 매트리스에서 내려왔다. 슬금슬금 걸어 문꼬리를 쥐었다.



"누구, 어?"



문을 열자마자 ㅇㅇ는 회오리바람처럼 영현에게 빨려 들어갔다. 영현의 옷이 온통 땀으로 축축했다. 목도, 팔도 전부 다 마찬가지였다.



"뭐야 너 어떻게 왔어?"



거친 숨을 몰아 쉬느라 한동안 답이 없었다. 빠르게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내리길 반복했다. 거친 숨소리가 현관을 메웠다. ㅇㅇ는 영현의 뒷목을 쓸었다. 땀 엄청 나네, 뛰어왔어?



"응"


"너 학교 앞에서 술 먹는다고.., 거기서부터 뛰어왔어?"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자기야 나 좀 봐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였다. 한 번만, 봐주라 ㅇㅇ야. 
영현의 부름에 뜨거운 불덩이 같은 것이 가슴팍에서 소용돌이쳤다. ㅇㅇ는 급하게 손을 거둬 무릎에 내려 놓았다. 더이상 뜯을 것도 없는 손톱을 괴롭히기라도 해야 숨이 쉬어질 것 같았다. 새하얀 책상을 마치 저라도 된냥 노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찾아 오지마. 부르지도 마, 엄연히 여기 내 직장이야"


"미안해"


"알면 더이상 연락 하지도 마. 네 입으로 그랬잖아, 끝이라고"



차라리 이 상황에서 영현이 저를 미워하면 조금은 정리가 빨라지지 않을까. 영현이 되도록 오랫동안 이 관계에서 헤매지 않길 바랐다. ㅇㅇ는 가방을 챙겨 들었다. 더 할 말 없어, 갈게.



"잠깐만, ㅇㅇ야 잠깐만"



다급하게 ㅇㅇ를 붙잡았다. 영현은 빠르게 제 가방에서 무언가를 뒤져 찾아냈다. 



"가서 발라. 밴드 안 붙이는게 더 빨리 나을거야"



뜨거운 온기가 ㅇㅇ의 손을 열어 후시딘을 쥐어주었다. ㅇㅇ는 제 손에 들린 약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왜 따라와?"


"..어?"


"아까부터 왜 따라오고 있냐구"


"이거,"




방금까지 죽을 것만 같았다. 조그만 이 손을 조금만 더, 너를 좀 더. ㅇㅇ는 영현의 손을 밀어내고 말없이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영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주저 앉았다. 홧김에 헤어지자고 말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과거로 가 제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패고 싶었다. 그렇게 ㅇㅇ를 잃어 보고도 또 실수를 저지를 정도로 등신. 시팔 강영현. 



*



"미안한데 나도 아직 ㅇㅇㅇ 본 적 없으니까 아무리 하소연해도 해줄 수 있는게 없다"



방금 들은 말을 의심했다. 원필은 ㅇㅇ와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였다. 어떤 다툼이었든 아무렇지 않게 털어내고 마주했던 두 사람이었다. 영현은 의심의 눈초리로 원필을 바라보았다. 시팔 내 번호도 차단했어. 너처럼 회사 찾아가는 개진상은 차마 못 돼서 안 갔다, 됐냐? 원필은 퉁명스럽게 답하곤 술잔을 들이켰다.

홧김에 한 말이었다. 그저 ㅇㅇ가 다시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어찌보면 그 애도 많이 힘들어서 나한테까지 숨겼겠지. 진짜 못 버티겠음, 아니 정말 누군가 필요하면 찾아올 거야. 믿는 거지. 걔가 나한테 그랬으니까.



"넌 아직도 무모하게 ㅇㅇㅇ를 사랑해?"


"뭐?"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모든 순간에서 너 최선이었냐고"



물론 그랬겠지만, 이번엔 나도 진짜 감이 안 와서 물어보는 거야.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영현은 말이 없었다. 불을 꺼버린 것처럼 묵직한 적막을 가졌다. 



"항상 ㅇㅇ가 우선일 수 없는게, 잘못된 걸까"


"아니지. 이건 니 삶이야, 당연한 소리지"



아, 두 병 시키지 새끼. 이모- 참이슬 한 병 더 주세요. 원필은 남은 맥주를 털어 마시곤 입가를 닦았다.



"근데"


"..."


"왜 그 말이 나왔을까. 네 입에서"



그 말이 잘못된 건 아닌데, 그 말이 나올 상황이 잘못된 거지. ㅇㅇㅇ가 그걸 몰라? 네가 글 쓰는 순간만큼은, 너에게 중요한 일을 하는만큼은 존중해야 한다는 그 당연한 걸 몰라서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겠냔 이야기야.  원필은 팔꿈치로 병바닥을 퍽퍽 치며 말했다. 맥주가 남은 영현의 잔에 조용히 술을 따랐다. ㅇㅇ만큼은 아니지만 영현도 안타까웠다. 물론 ㅇㅇ가 힘들어진게 순전히 강영현 때문이라면 넌 내 손에 뒤졌지만.



"...좀 예민했어 ㅇㅇ가"


"그러니까 왜 예민했냐고"



영현은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낸 다툼들을 상기시켰다. 시팔 왜 싸웠는지 기억도 안 나. 모든 다툼을 기억할 순 없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간절하게 그 당연한 순간들이 필요했다.



"안아달라고 보채서,"


"얼씨구"


"그래서 다퉜어. 그 날은"



참 오그라들어서 좆되는 이유로도 싸웠네. 못 들을 걸 들어버렸다. 원필은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귀를 후볐다. 



"자다가 깨면 워낙 투정이 많으니까. 나도 웬만하면 안아주고 그럴텐데 그 날은 너무 바빴어"


"그럼 투정이었으니까 그렇게 치면 싸울 일이 못 되잖아. 걔가 그런 걸로 싸움도 걸어와? 그건 걔가 잘못했네. 그건 패쓰"


"그때 왜 우리가 같이 버틴 시간을 부정하려 했을까"


"에이씨 그럼 그 날이 잘못된 거 맞네. 다시 불러와봐"



원필 나름에도 머리가 터질 거 같았다. 그 단순한 이유로 ㅇㅇ가 기가 죽어 갑자기 영현을 신경쓴다고? 보여지는 겉모습이 자꾸 못나 자신을 미워한다고? 



"자꾸 사랑해라고 말해보라고 그랬었는데"


"니네 시팔 자꾸 그딴 이유로 싸울래? 듣는 사람 손발 오그라들어서 잘라버리고 싶게"


"끝까지 들어. 싸운게 아니고 자꾸 보챘다니까"



ㅇㅇ를 외롭게 만들 강영현이 아니란 것쯤은 원필도 잘 안다. 지금 영현 태도로 봐선 제가 아는 강영현이라면 사실 누구의 잘못인지 모호했다. 괜히 나왔어. 아 오늘 어벤져스 예약했는데. 원필은 대학 논문보다 답이 없는 유추에 머리를 박았다. 안해 안해. 


-땅콩


"야야야 너 조용히 해봐. 한 마디라도 하면 죽어. 어?"



갑작스러운 전화에 원필은 멍청하게 벌떡 일어났다. 땅콩 알러지가 있는 원필이 땅콩보다 좆같은 애라며 지어준 ㅇㅇ의 별명이었다. 어어어, 에이씨 우선 받자.



"여보세요?"


"으이씨 이거 왜 안 따져어.. 어? 김연필!"


"취했냐?"


"취하긴 무스은, 야 니네 집 비밀번호 뭐냐? 아니이 야 너 언제 다시 열쇠로 바꿔써. 어? 이 누나한테두 말 안 하구, 섭섭하다!"



열쇠는 개뿔. 술 먹었네 먹었어.
원필은 조용히 병을 비우고 있는 영현을 한 번 보고 지갑을 챙겼다. 나 간다. 영현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손을 흔들었다. 꽐라가 되도 알아서 집에 잘 들어갈 놈이었다. 하지만 원필은 아마 연락을 하지 않은 기간동안 급격하게 술버릇이 바뀌지 않는 이상 ㅇㅇ의 만취는 곧 숙면이었다. 원필은 급하게 택시를 세워 올라탔다.



"아저씨 스카이빌, 스카이빌 앞 교차로로 가주세요"


"에? 너 언제 이사해써? 야 김연필 너 칭구 그르케 어? 언제 인사 아니 아니 이사했냐구!"


"뭐래 지금 거기서 몇 녀.. 야 너 어디야"


"니네 집!"



아저씨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원필은 무언가 아다리가 맞지 않는 말에 급하게 택시에서 내렸다. 대체 어디가 우리집이야, 야 너 어디냐니까? 급하게 뒷머리를 헤집었다. 



"야아 니네 집 올라오다가 나 다리 나갔으니까아 빨리 문 열어어. 근데 진짜 여긴 야경 죽인다, 졸려 끄너 이제"


"야야야 안돼. 끊지마 끊지마! 잠깐만 기다려"



다리가 나가? 야경? 원필은 재빠르게 ㅇㅇㅇ의 말을 퍼즐 삼아 조각을 맞추기 시작했다. 에이씨 설마. 알콜이 들어가 팔과 다리는 원필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원필은 여전히 잔을 채우고 있는 영현의 옆에 있는 가디건을 뒤졌다. 



"뭐하냐?"


"닥치고 차키 내놔. 아니다 너 빨리 대리 불러, 야 ㅇㅇㅇ. 자지 말고 계속 말해. 어어어, 뭐 보인다고? 아 잠들지 말라니까?!"



영현은 삼초간 이 새끼가 무슨 말을 쏟아 부었는지 생각했다. LTE급 속도였다. 영현은 통화 기록에서 빠르게 대리 번호를 찾아 불렀다. 



"어 지붕이 많다고? 당연하지 높은데 있으면! ..아니 뭐? 지붕이 많아? 야 대리 불렀어?"


"응. ㅇㅇ야? 바꿔줘"


"넌 가만히 있어. 야 거기 지금 사람 살아 빨리 안 내려와?"



원필은 영현의 손을 무섭게 내쳤다. 너 있는 거 알면 어디로 튈지 몰라서 그래, 가만히 있어. 그때부터 원필은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뺨을 두어대 쳐 술기운을 깨웠다. 정신 없는 원필을 챙기는 건 영현이었다. 대리가 도착하고 영현은 원필을 끌어 당겨 차에 태웠다. 같이 가기만 할게, 차에 있음 되잖아. 원필은 영현의 애원에 일일이 답해줄 여유가 없었다. 그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휴대폰을 가까히 귀에 가져다 댔다.



"아저씨 장충 체육관 사거, 아니아니. 장충파출소로 가주세요"


"혼내지마"


"지랄"



유난히 캄캄한 골목이었다. 가로등은 희미하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원필은 단숨에 옥탑으로 달렸다. 토기가 수없이 밀려 올라왔지만 뛰는 다리를 멈출 생각은 없었다. 딱 계단, 그래 거기서 원필은 주저 앉았다. 하 존나 높네. 구역질을 하는 원필 옆으로 영현이 스쳐 지나갔다. 미친, 야야야! 소리를 죽여 영현을 불렀지만 영현은 숨도 차지 않는 모양인지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ㅇㅇㅇ!"


"김원필"



알았어. 

영현의 재치에 원필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저앉아 있는 ㅇㅇ에게 다가갔다. 대체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새근새근 잠에 들어버린 ㅇㅇ를 업기 위해 팔을 둘렀다. 기척에 금방 깬 건지 음절이 뭉개지는 신음이 들렸다.



"너 진짜 싫어. 알아? 야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고. 간 떨어질 뻔 했네"


"..흐으"


"...너 울어? 뭐야 왜 울어. 미안해, 야 미안해"


"강, 흐윽, 강영현 향수우"


"뭐?"



영현의 향이었다. ㅇㅇ는 원필이 말릴 새도 없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에이씨. 원필은 그제야 제가 걸치고 있는 것이 영현의 가디건임을 알아챘다. 차키를 꺼내고 저도 모르고 입은 걸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알아챘는지 ㅇㅇ는 숨이 넘어가게 울어댔다. 급하게 가디건을 벗어 원필은 영현의 품에 던졌다. 



"허어어엉"


"울지마. 야 ㅇㅇㅇ! 울지 말라고. 어?"


"니가아 향ㅅ, 향수, 강영현 끅, 흐어, 냄새"



영현의 차에 내려서도 울지 않았다. 찾아온 영현에게 모질게 굴 때도 울지 않았지만 그 냄새 하나에 ㅇㅇ는 화장이 다 지워질 때까지 울었다. 다가가면 더 울까봐. 울어버릴까봐 영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ㅇㅇ를 바라봤다. 그냥 기다린다 할 껄.  점차 숨을 헐떡이며 울음을 멈추지 않는 ㅇㅇ는 지쳐보였다. 울지 말라고, 야아 ㅇㅇㅇ.원필은 결국 손짓했다. 시발 니가 해봐. 실신하면 어떡해. 영현은 머뭇거렸다.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빨리 강영현!



"ㅇㅇ야"


"으흑, 끅, 으 으흐어"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ㅇㅇ야"


"허어엉 끅, 어어"



ㅇㅇ는 습관적으로 양팔을 벌려 영현을 껴안았다. 영현의 티셔츠가 눈물에 축축하게 젖어갔다. 영현은 ㅇㅇ의 뒷통수를 꼭 끌어 안고 남은 손으로 등을 쓸어주었다. 아무 말도 없이. ㅇㅇ의 눈물이 그칠 때까지 끌어 안았다.


너무 많은 추억이 여기에 남아 있었다. 영현과 함께한 수없는 시간, 나눈 숨. 여름이 되면 옥탑에 누워 보이지도 않는 별을 세었다. 옆옆집의 쌍욕을 들어먹을 정도로 크게 다투기도 했고, 또 끌어안고 키스했다. 현실이고 문제고 운명이고  단 한 번도 우리는 입 밖에 꺼낸 적이 없었다. 이 옥탑에선 강영현과 나. 나와 너. 그 둘 그게 전부였다. 우리는 참 많은 추억을 여기 두고 나아가버렸다.




7.




-보고싶어 01:07



"나 먼저 간다"


"뭐? 너 나랑 간다며"


"괜찮아. 간다"


"야 지금 택시 할증 붙어 임마!"



같이 타고 가서 택시비 나눠내면 얼마나 좋아. 원필은 입을 삐죽댔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카페인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지만 아메리카노 넉잔을 족히 마신 것처럼 잠이 오지 않는 날이 꼭 있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강영현이 보고 싶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난다고 들었으니 지금쯤 2차 갔으려나?  

무료하게 휴대폰을 딸깍거렸다. 한 시 이십 분, 이십사 분, 삼십 분. 누군가 현관문을 쾅쾅 두드렸다. 시발 도둑? 아니 도둑이 노크하고 들어오진 않을 거 아냐. ㅇㅇ는 슬그머니 매트리스에서 내려왔다. 슬금슬금 걸어 문꼬리를 쥐었다.



"누구, 어?"



문을 열자마자 ㅇㅇ는 회오리바람처럼 영현에게 빨려 들어갔다. 영현의 옷이 온통 땀으로 축축했다. 목도, 팔도 전부 다 마찬가지였다.



"뭐야 너 어떻게 왔어?"



거친 숨을 몰아 쉬느라 한동안 답이 없었다. 빠르게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내리길 반복했다. 거친 숨소리가 현관을 메웠다. ㅇㅇ는 영현의 뒷목을 쓸었다. 땀 엄청 나네, 뛰어왔어?



"응"


"너 학교 앞에서 술 먹는다고.., 거기서부터 뛰어왔어?"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비디오 태그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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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영현은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미련곰탱이야, 올 거면 말도 하구 택시 타고 왔어야지! ㅇㅇ는 영현을 집 안으로 잡아 끌었다. 어어어. 영현은 밀리지 않고 다시 ㅇㅇ를 끌어 당겼다. 맨발이 신발장의 찬기를 그대로 맞닿아 추위가 올라왔다. ㅇㅇ는 영현의 발 위에 올라섰다.



"바보야"


"아니야"



아니긴. 세 정거장을 내리 달려오는 바보가 세상 천지에 어디있겠는가. 물이라도 마시게 해주고 싶었지만 영현은 ㅇㅇ를 놓아주지 않았다. 쪽쪽. 이마부터 뺨을 타고 콧망울, 귓볼, 짧은 턱까지 뽀뽀를 퍼부으며 파고 들었다. 생긴 건 덩치 큰 늑대처럼 생겨 하는 짓은 대형견 한 마리가 따로 없었다.



"내일 보면 되잖아"


"나도 보고 싶었어"


"그러니까 내일 보면,"


"지금"



보고싶었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미치도록 숨이 찼지만 눈 앞에 그려지는 건 ㅇㅇ뿐이었다. 지금 당장 보지 않으면 미치도록 후회할 것만 같았다. 웬지 아주 오래오래, 후회할 것만 같았다. 영현의 입술이 ㅇㅇ를 간지럽히자 ㅇㅇ는 양 손으로 영현의 얼굴을 붙잡고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 우응,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붙어 먹었다. 



"..자고 가"


"자고 가. 강영현"


"진심이야?"


"너보다 진심이야"



맞다. 나 너 못이기지. 영현은 ㅇㅇ를 번쩍 들어 입을 맞추었다.



"알았어"



*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락바락 월세를 올려달라는 재촉이 하루가 멀다하고 날아왔다. 못 주겠음 나가든가. 지갑에서 여유가 나오듯이 털어봤자 푸른 지폐 몇 장, 동전 두어 개가 전부인 청춘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정식으로 회사에 입사를 했다 하더라도 그저 사회에 무지한 햇병아리였다. 영현이 전화를 받고 달려왔을 때 ㅇㅇ는 은행 앞 분수대에 주저 앉아 있었다. 바람이 모두 빠져버린 풍선처럼 힘이라곤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읏차"



영현은 ㅇㅇ를 업었다. 구두를 손가락에 걸고 영현은 천천히 걸었다. 뭐가 힘들었는지, 많이 지쳤는지. 그건 나중에도 물어볼 수 있으니까.
습한 바람이 발에 척척하게 들러 붙었다 날아갔다. 영현의 등이 젖어갔다. 영현은 여전히 말 없이 걸었다. 가는 떨림이 느껴졌지만 말 없이 걸었다. ㅇㅇ는 영현의 옷자락을 꼬옥 쥐고 숨 죽여 울었다. 내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해서 다 내 탓인 거야. 영현의 빌라 보이기 시작했다. 영현은 발걸음을 돌렸다. 한 바퀴 더. 다시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ㅇㅇ야"


"...응"


"아이 착하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자 영현은 웃음기를 잔뜩 머금고 답했다.



"처음부터 잘하면 우리는 열심히 할 이유가 없잖아"


"우리도 처음인데. 일하는 것도, 월셋방 계약하는 것도,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다 처음인데 실수 할 수도 있는 거야"



처음이니까 실수 하고 그러는거야. 누가 뭐래도 넌 잘 가고 있는 거야. 넘어졌다고 뒤처지는게 아니란 거 지금 몰라도 돼. 다 괜찮아. 영현은 ㅇㅇ를 고쳐 업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네 잘못은 없어"


"넌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네 일에서도 너 자신한테도, 그리고 나한테까지"



주저 앉으면 나도 거기 앉아 있을 거야. 내가, 네가 일으켜주는게 아니라 우리 둘이 손잡고 힘을 써서 일어날 거야. 근데 ㅇㅇ야



"나한테 이미 너는 너무 충분히 잘하고 있어. 주말에도 아이템 구상하고 문장 고치고, 고민하고. 그러면서 너는 나를 놓은 적도 없어. 너는 이미 너무 잘 하고 있어, 멀리 보려 하지 않아도 돼. 느리게 걷는다고 그 누구도 널 두고 가지 않아"



ㅇㅇ가 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영현은 아무 말 없이 ㅇㅇ가 우는대로 내버려 두었다. 한바탕 울고 나면 가볍게 웃을 수 있을테니까.


영현은 단지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었다. 지쳐 관두려하면 그 자리에서 손을 움켜쥐었고 서툰 부분을 하나하나 차근히 알려주었다. 어쩌면 참 많은 것이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서로가 아니면 안 되는 그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이 끊임 없이 이끌고 스며들었다. 


네가 내 하루의 전부인 이유는, 아마 그래서였을까. 



8.



ㅇㅇ씨 다리 괜찮아? 네 괜찮아요.
발목 보호대를 하고 구두를 신은 ㅇㅇ를 못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 보았다. 분위기가 조금 변한 것 같기도 하고. 그녀는 여전히 밝았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에서 차마 보이지 않는 무언가. 그래 묵직한 안개 같은 것으로 쌓여 있는 것 같았다. 



"깜박했네. ㅇㅇ씨 2회의실에 일정표 두고 왔는데 좀 가져다 여기 놔줄래? 나 과장님 콜"


"아, 네. 알겠습니다"



ㅇㅇ는 곧장 2회의실로 향했다. 누군가 회의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니 프로젝트 진행인 것 같았다. ㅇㅇ는 불투명한 창을 기웃거리다 이내 문을 열고 살그머니 들어갔다.



"죄송합니다아"



살금살금 끝까지 가려했으나 의자들에 밀려 좀처럼 손이 닿질 않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에 걸쳐진 건 다름아닌 일정표였다. 와 그쪽 천..,


영현이었다.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ㅇㅇ는 일정표를 안고 돌아섰다. 어깨 위로 뜨겁다 못해 데일 것만 같은 온기가 닿았지만 ㅇㅇ는 빠르게 떼어내고 회의실을 나섰다.

 골치가 아팠다. 요즘따라 여유라는 것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월셋방의 리모델링로 나와 지내는 것만 이주째였다. 더 걸릴 것 같다니, 진짜 어디서 자라구. 평소 그리 얼굴을 자주 비추지 않았던 대학 동창의 집에서 머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찜질방 혹은 모텔. 멀쩡한 집 놔두구 개고생이다 정말. 또 대타지만 ㅇㅇ가 맡은 인터뷰는 진전이 없었다. 강영현의 두, 아니 세배는 까칠했다. 섭외부터 인터뷰에선 욕을 먹기 부지기수였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ㅇㅇ는 결국 골머리를 앓으며 비상구로 향했다.



"어후"



발목이 대체 나에게 왜 이러냐며 아우성이었다. 미안하다 좀만 참아주라. ㅇㅇ는 뻣뻣하게 굳은 다리를 억지로 주물렀다. 화장은 왜 이렇게 무너진 건지, 요즘 푸석한 피부를 가리려다보니 온갖 귀찮은 것을 올려 발랐더니 악효과만 줄줄이 소세지였다. 머리도 까치집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하나하나 건들기에 ㅇㅇ는 손하나 까딱 기운조차 없었다.



"...아"


"...어,"



영현은 들고 있던 담배를 그대로 숨겼다.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은 하나뿐이었으니, 하지만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다. ㅇㅇ는 말도 안 되는 몰꼴로 마주하는게 싫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ㅇㅇ는 구두에 발을 밀어 넣었다. 윽, 억눌린 신음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ㅇㅇ는 입을 꼭 막고 부들거리며 계단에서 내려왔다. 



"ㅇㅇ야"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가 ㅇㅇ를 붙잡았다. 때마침 어색한 두 사람을 가르는 진동이 울렸다. 어, 여보세요? ㅇㅇ는 휴대폰을 귀에 딱 붙인 채 비상계단을 빠져 나갔다. 또 모든 게 빠져 나가버린 것처럼 공허하고 외로웠다.



*




"네?"


"진짜 미안해. 그냥 병가인줄 알았는데 어떡해. 물혹이라고 하긴 하지만.., 자기야 부탁할게. 응?"



 왜 워크샵을 강영현과 같이 가야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정대리 대신 프로젝트에 들어가 영현과 일을 해달라니. 우선 영현을 픽업부터 하란다. 아마 작품 팬싸인회 중일 거라고.
ㅇㅇ는 회사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삼십분 내내 고민한 끝에 ㅇㅇ는 꽤 마음에 드는 복장으로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연보라색 블라우스에 하얀 치마는 지난 주에 드라이를 맡겨 구김이 없었고 맞추어 산 힐도 오늘따라 깨끗했다. ㅇㅇ는 머리를 질끈 묶고 나아갔다. 이렇게 해서 강영현과 아예 마주치지 않을 것도 아니고. 익숙함만이 숨을 쉴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어? ...김원필"


"어 웬일이야?"


"..너는?"


"이 백화점에 우리 가게 입점해 있잖아. 점주님 만나서 뭣 좀 확인하느라. 머리 잘랐네?"



아, 어.
원필은 더운지 손부채질을 하며 ㅇㅇ를 내려다 보았다. 여전히 발목에 보호대를 한 채 구두를 신고 있었다. ㅇㅇ는 원필에게 어떤 말부터 먼저 꺼내야 할 지 블랙아웃 상태였다. 어떤 말을 해야 변명이 되지 않을까. ㅇㅇ는 어색하게 가방을 매만졌다.



"점심은"


"어? 아직"


"같이 먹을래?"



아 나, 다이어트 중인데. ㅇㅇ는 그 말을 꿀떡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필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ㅇㅇ를 대했다. 아무렇지 않게 디스하고 아무렇지 않게 영현의 이야기를 꺼냈다. 맞다, 얜 헤어진 거 모르겠지. ㅇㅇ는 입가에 국물을 닦아냈다. 화장이 지워져 옅게 묻어났다. 곧 싸인회도 끝이 날 시간이었다. ㅇㅇ는 지갑에서 제 몫의 돈을 꺼내 올려 놓았다.



"됐어. 내가 살게"


"아냐. 야 그리고..."


"미안해"



어? 내가 미안하다고. 원필은 찰랑이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데 화부터 내서 미안하다고. 네가 어련히 이야기 할 텐데 그냥 니가 힘들어 보이는게 싫었어. 좀 서운하기도 했고, 너나 나, 그 하나 빼면 우리 사이에 뭐가 남냐. 남들은 남여 친구 죽어도 안 된다고 하는데 그 뭣 같은 말 다 무시하고 진짜 친구됐잖아. 아 솔직히 넌 나한테 가족만큼 가깝다고 생각했어.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꼭 어른처럼 굴지 않아도 된다고"


"...그게"


"그게 더 어색해보여. 그냥, 너답게 돌아와. 아 물론 이건 내가 사정을 모르니까 막말하는거야. 알아서 걸러 들어"



그리고 나한테 진짜 말할 수 있을 때 그때 점심 사라. 
원필은 그대로 가방을 챙겨 카운터로 걸어나갔다. 하고 싶은 말의 반의 반도 하지 못했지만 개운했다. 묵은 체증이 순식간에 내려간 것만 같았다. 


ㅇㅇ가 현장에 갔을 땐 아직 싸인회가 진행 중이었다. 아무래도 현장 분위기상 딜레이가 된 게 분명했다. 영현은 그 사람들 속에서 빛났다. 제 책에 하나하나 싸인을 해주며 그는 웃었다. 아마 영현과 이렇게 끝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나는 불안에 떨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ㅇㅇ는 파우치에서 거울을 꺼내 제 모습을 점검했다. 그래 오늘은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것 같아. ㅇㅇ는 영현의 곁으로 다가가 적어둔 메모를 보여주었다.



-정대리님이 병가 내셔서 워크샵은 나랑 가야할 것 같아



영현은 크게 놀랐다. ㅇㅇ가 곁에 와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영현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ㅇㅇ는 움츠려 있었다. 꼭 영현의 눈을 쳐다보지 않아도, 시종일관 시선을 땅바닥에 처박아 두고 있었다. 퍽 기가 죽어있었다. 



"작가님"


"어, 강대리님"


"저두 살짝 끼어 왔어요. 워크샵 오신다면서요? 출발하기 전에 차 한 잔 할 수 있을까요?"


"예? 아 네"



싸인회가 끝나고 영현은 팔을 주무르며 카페로 향했다. ㅇㅇ는 아무 말 없이 영현의 곁에서 걸었다. 이미 커피를 시켜둔 강대리 앞에 영현은 앉았다. ㅇ대리가 대타로 왔구나, 으이 윤팀장님은 나 시키지. 괜히 자기 고생하게. ㅇㅇ는 옅은 웃음과 함께 손사래쳤다. 뭐 위에서 까라면 까는거죠, 별 수 있나요. ㅇㅇ의 목소리가 원래 이렇게 작았나, 영현은 커피를 홀짝였다. 



"강작가님 언제 시간 되시냐구요. 우리 저녁 한 번 먹기로 한 거 기억 안 나요?"


"아직은 시간이 안 나서, 곧 연락 드리겠습니다"



ㅇㅇ는 괜히 머리를 묶었다고 생각했다. 괜히 꾸밀줄도 모르는데 꾸민 것 같았다. 엉성하고 여유 없는 모습. ㅇㅇ는 잘 마시지 않는 아메리카노를 빨았다. 강대리는 화사했다. 영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적절한 반응과 애교가 사근사근하니 예뻤다. 곧 여름이 오는데, 이미 여름이 오고 있는데 괜시리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으며 추웠다. 근데 강작가님이랑 ㅇㅇ씨는 대체 무슨 사이야? 되게 가까운 것 같은데. 강대리에 물음에 ㅇㅇ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무슨 사이긴 무슨 사이에요. 그냥 제가 강작가님 섭외 맡았으니까 그게 다죠"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알았어"



*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락바락 월세를 올려달라는 재촉이 하루가 멀다하고 날아왔다. 못 주겠음 나가든가. 지갑에서 여유가 나오듯이 털어봤자 푸른 지폐 몇 장, 동전 두어 개가 전부인 청춘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정식으로 회사에 입사를 했다 하더라도 그저 사회에 무지한 햇병아리였다. 영현이 전화를 받고 달려왔을 때 ㅇㅇ는 은행 앞 분수대에 주저 앉아 있었다. 바람이 모두 빠져버린 풍선처럼 힘이라곤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읏차"



영현은 ㅇㅇ를 업었다. 구두를 손가락에 걸고 영현은 천천히 걸었다. 뭐가 힘들었는지, 많이 지쳤는지. 그건 나중에도 물어볼 수 있으니까.
습한 바람이 발에 척척하게 들러 붙었다 날아갔다. 영현의 등이 젖어갔다. 영현은 여전히 말 없이 걸었다. 가는 떨림이 느껴졌지만 말 없이 걸었다. ㅇㅇ는 영현의 옷자락을 꼬옥 쥐고 숨 죽여 울었다. 내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해서 다 내 탓인 거야. 영현의 빌라 보이기 시작했다. 영현은 발걸음을 돌렸다. 한 바퀴 더. 다시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ㅇㅇ야"


"...응"


"아이 착하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자 영현은 웃음기를 잔뜩 머금고 답했다.



"처음부터 잘하면 우리는 열심히 할 이유가 없잖아"


"우리도 처음인데. 일하는 것도, 월셋방 계약하는 것도,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다 처음인데 실수 할 수도 있는 거야"



처음이니까 실수 하고 그러는거야. 누가 뭐래도 넌 잘 가고 있는 거야. 넘어졌다고 뒤처지는게 아니란 거 지금 몰라도 돼. 다 괜찮아. 영현은 ㅇㅇ를 고쳐 업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네 잘못은 없어"


"넌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네 일에서도 너 자신한테도, 그리고 나한테까지"



주저 앉으면 나도 거기 앉아 있을 거야. 내가, 네가 일으켜주는게 아니라 우리 둘이 손잡고 힘을 써서 일어날 거야. 근데 ㅇㅇ야



"나한테 이미 너는 너무 충분히 잘하고 있어. 주말에도 아이템 구상하고 문장 고치고, 고민하고. 그러면서 너는 나를 놓은 적도 없어. 너는 이미 너무 잘 하고 있어, 멀리 보려 하지 않아도 돼. 느리게 걷는다고 그 누구도 널 두고 가지 않아"



ㅇㅇ가 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영현은 아무 말 없이 ㅇㅇ가 우는대로 내버려 두었다. 한바탕 울고 나면 가볍게 웃을 수 있을테니까.


영현은 단지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었다. 지쳐 관두려하면 그 자리에서 손을 움켜쥐었고 서툰 부분을 하나하나 차근히 알려주었다. 어쩌면 참 많은 것이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서로가 아니면 안 되는 그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이 끊임 없이 이끌고 스며들었다. 


네가 내 하루의 전부인 이유는, 아마 그래서였을까. 



8.



ㅇㅇ씨 다리 괜찮아? 네 괜찮아요.
발목 보호대를 하고 구두를 신은 ㅇㅇ를 못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 보았다. 분위기가 조금 변한 것 같기도 하고. 그녀는 여전히 밝았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에서 차마 보이지 않는 무언가. 그래 묵직한 안개 같은 것으로 쌓여 있는 것 같았다. 



"깜박했네. ㅇㅇ씨 2회의실에 일정표 두고 왔는데 좀 가져다 여기 놔줄래? 나 과장님 콜"


"아, 네. 알겠습니다"



ㅇㅇ는 곧장 2회의실로 향했다. 누군가 회의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니 프로젝트 진행인 것 같았다. ㅇㅇ는 불투명한 창을 기웃거리다 이내 문을 열고 살그머니 들어갔다.



"죄송합니다아"



살금살금 끝까지 가려했으나 의자들에 밀려 좀처럼 손이 닿질 않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에 걸쳐진 건 다름아닌 일정표였다. 와 그쪽 천..,


영현이었다.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ㅇㅇ는 일정표를 안고 돌아섰다. 어깨 위로 뜨겁다 못해 데일 것만 같은 온기가 닿았지만 ㅇㅇ는 빠르게 떼어내고 회의실을 나섰다.

 골치가 아팠다. 요즘따라 여유라는 것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월셋방의 리모델링로 나와 지내는 것만 이주째였다. 더 걸릴 것 같다니, 진짜 어디서 자라구. 평소 그리 얼굴을 자주 비추지 않았던 대학 동창의 집에서 머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찜질방 혹은 모텔. 멀쩡한 집 놔두구 개고생이다 정말. 또 대타지만 ㅇㅇ가 맡은 인터뷰는 진전이 없었다. 강영현의 두, 아니 세배는 까칠했다. 섭외부터 인터뷰에선 욕을 먹기 부지기수였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ㅇㅇ는 결국 골머리를 앓으며 비상구로 향했다.



"어후"



발목이 대체 나에게 왜 이러냐며 아우성이었다. 미안하다 좀만 참아주라. ㅇㅇ는 뻣뻣하게 굳은 다리를 억지로 주물렀다. 화장은 왜 이렇게 무너진 건지, 요즘 푸석한 피부를 가리려다보니 온갖 귀찮은 것을 올려 발랐더니 악효과만 줄줄이 소세지였다. 머리도 까치집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하나하나 건들기에 ㅇㅇ는 손하나 까딱 기운조차 없었다.



"...아"


"...어,"



영현은 들고 있던 담배를 그대로 숨겼다.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은 하나뿐이었으니, 하지만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다. ㅇㅇ는 말도 안 되는 몰꼴로 마주하는게 싫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ㅇㅇ는 구두에 발을 밀어 넣었다. 윽, 억눌린 신음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ㅇㅇ는 입을 꼭 막고 부들거리며 계단에서 내려왔다. 



"ㅇㅇ야"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가 ㅇㅇ를 붙잡았다. 때마침 어색한 두 사람을 가르는 진동이 울렸다. 어, 여보세요? ㅇㅇ는 휴대폰을 귀에 딱 붙인 채 비상계단을 빠져 나갔다. 또 모든 게 빠져 나가버린 것처럼 공허하고 외로웠다.



*




"네?"


"진짜 미안해. 그냥 병가인줄 알았는데 어떡해. 물혹이라고 하긴 하지만.., 자기야 부탁할게. 응?"



 왜 워크샵을 강영현과 같이 가야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정대리 대신 프로젝트에 들어가 영현과 일을 해달라니. 우선 영현을 픽업부터 하란다. 아마 작품 팬싸인회 중일 거라고.
ㅇㅇ는 회사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삼십분 내내 고민한 끝에 ㅇㅇ는 꽤 마음에 드는 복장으로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연보라색 블라우스에 하얀 치마는 지난 주에 드라이를 맡겨 구김이 없었고 맞추어 산 힐도 오늘따라 깨끗했다. ㅇㅇ는 머리를 질끈 묶고 나아갔다. 이렇게 해서 강영현과 아예 마주치지 않을 것도 아니고. 익숙함만이 숨을 쉴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어? ...김원필"


"어 웬일이야?"


"..너는?"


"이 백화점에 우리 가게 입점해 있잖아. 점주님 만나서 뭣 좀 확인하느라. 머리 잘랐네?"



아, 어.
원필은 더운지 손부채질을 하며 ㅇㅇ를 내려다 보았다. 여전히 발목에 보호대를 한 채 구두를 신고 있었다. ㅇㅇ는 원필에게 어떤 말부터 먼저 꺼내야 할 지 블랙아웃 상태였다. 어떤 말을 해야 변명이 되지 않을까. ㅇㅇ는 어색하게 가방을 매만졌다.



"점심은"


"어? 아직"


"같이 먹을래?"



아 나, 다이어트 중인데. ㅇㅇ는 그 말을 꿀떡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필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ㅇㅇ를 대했다. 아무렇지 않게 디스하고 아무렇지 않게 영현의 이야기를 꺼냈다. 맞다, 얜 헤어진 거 모르겠지. ㅇㅇ는 입가에 국물을 닦아냈다. 화장이 지워져 옅게 묻어났다. 곧 싸인회도 끝이 날 시간이었다. ㅇㅇ는 지갑에서 제 몫의 돈을 꺼내 올려 놓았다.



"됐어. 내가 살게"


"아냐. 야 그리고..."


"미안해"



어? 내가 미안하다고. 원필은 찰랑이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데 화부터 내서 미안하다고. 네가 어련히 이야기 할 텐데 그냥 니가 힘들어 보이는게 싫었어. 좀 서운하기도 했고, 너나 나, 그 하나 빼면 우리 사이에 뭐가 남냐. 남들은 남여 친구 죽어도 안 된다고 하는데 그 뭣 같은 말 다 무시하고 진짜 친구됐잖아. 아 솔직히 넌 나한테 가족만큼 가깝다고 생각했어.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꼭 어른처럼 굴지 않아도 된다고"


"...그게"


"그게 더 어색해보여. 그냥, 너답게 돌아와. 아 물론 이건 내가 사정을 모르니까 막말하는거야. 알아서 걸러 들어"



그리고 나한테 진짜 말할 수 있을 때 그때 점심 사라. 
원필은 그대로 가방을 챙겨 카운터로 걸어나갔다. 하고 싶은 말의 반의 반도 하지 못했지만 개운했다. 묵은 체증이 순식간에 내려간 것만 같았다. 


ㅇㅇ가 현장에 갔을 땐 아직 싸인회가 진행 중이었다. 아무래도 현장 분위기상 딜레이가 된 게 분명했다. 영현은 그 사람들 속에서 빛났다. 제 책에 하나하나 싸인을 해주며 그는 웃었다. 아마 영현과 이렇게 끝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나는 불안에 떨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ㅇㅇ는 파우치에서 거울을 꺼내 제 모습을 점검했다. 그래 오늘은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것 같아. ㅇㅇ는 영현의 곁으로 다가가 적어둔 메모를 보여주었다.



-정대리님이 병가 내셔서 워크샵은 나랑 가야할 것 같아



영현은 크게 놀랐다. ㅇㅇ가 곁에 와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영현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ㅇㅇ는 움츠려 있었다. 꼭 영현의 눈을 쳐다보지 않아도, 시종일관 시선을 땅바닥에 처박아 두고 있었다. 퍽 기가 죽어있었다. 



"작가님"


"어, 강대리님"


"저두 살짝 끼어 왔어요. 워크샵 오신다면서요? 출발하기 전에 차 한 잔 할 수 있을까요?"


"예? 아 네"



싸인회가 끝나고 영현은 팔을 주무르며 카페로 향했다. ㅇㅇ는 아무 말 없이 영현의 곁에서 걸었다. 이미 커피를 시켜둔 강대리 앞에 영현은 앉았다. ㅇ대리가 대타로 왔구나, 으이 윤팀장님은 나 시키지. 괜히 자기 고생하게. ㅇㅇ는 옅은 웃음과 함께 손사래쳤다. 뭐 위에서 까라면 까는거죠, 별 수 있나요. ㅇㅇ의 목소리가 원래 이렇게 작았나, 영현은 커피를 홀짝였다. 



"강작가님 언제 시간 되시냐구요. 우리 저녁 한 번 먹기로 한 거 기억 안 나요?"


"아직은 시간이 안 나서, 곧 연락 드리겠습니다"



ㅇㅇ는 괜히 머리를 묶었다고 생각했다. 괜히 꾸밀줄도 모르는데 꾸민 것 같았다. 엉성하고 여유 없는 모습. ㅇㅇ는 잘 마시지 않는 아메리카노를 빨았다. 강대리는 화사했다. 영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적절한 반응과 애교가 사근사근하니 예뻤다. 곧 여름이 오는데, 이미 여름이 오고 있는데 괜시리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으며 추웠다. 근데 강작가님이랑 ㅇㅇ씨는 대체 무슨 사이야? 되게 가까운 것 같은데. 강대리에 물음에 ㅇㅇ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무슨 사이긴 무슨 사이에요. 그냥 제가 강작가님 섭외 맡았으니까 그게 다죠"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알았어"



*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락바락 월세를 올려달라는 재촉이 하루가 멀다하고 날아왔다. 못 주겠음 나가든가. 지갑에서 여유가 나오듯이 털어봤자 푸른 지폐 몇 장, 동전 두어 개가 전부인 청춘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정식으로 회사에 입사를 했다 하더라도 그저 사회에 무지한 햇병아리였다. 영현이 전화를 받고 달려왔을 때 ㅇㅇ는 은행 앞 분수대에 주저 앉아 있었다. 바람이 모두 빠져버린 풍선처럼 힘이라곤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읏차"



영현은 ㅇㅇ를 업었다. 구두를 손가락에 걸고 영현은 천천히 걸었다. 뭐가 힘들었는지, 많이 지쳤는지. 그건 나중에도 물어볼 수 있으니까.
습한 바람이 발에 척척하게 들러 붙었다 날아갔다. 영현의 등이 젖어갔다. 영현은 여전히 말 없이 걸었다. 가는 떨림이 느껴졌지만 말 없이 걸었다. ㅇㅇ는 영현의 옷자락을 꼬옥 쥐고 숨 죽여 울었다. 내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해서 다 내 탓인 거야. 영현의 빌라 보이기 시작했다. 영현은 발걸음을 돌렸다. 한 바퀴 더. 다시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ㅇㅇ야"


"...응"


"아이 착하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자 영현은 웃음기를 잔뜩 머금고 답했다.



"처음부터 잘하면 우리는 열심히 할 이유가 없잖아"


"우리도 처음인데. 일하는 것도, 월셋방 계약하는 것도,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다 처음인데 실수 할 수도 있는 거야"



처음이니까 실수 하고 그러는거야. 누가 뭐래도 넌 잘 가고 있는 거야. 넘어졌다고 뒤처지는게 아니란 거 지금 몰라도 돼. 다 괜찮아. 영현은 ㅇㅇ를 고쳐 업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네 잘못은 없어"


"넌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네 일에서도 너 자신한테도, 그리고 나한테까지"



주저 앉으면 나도 거기 앉아 있을 거야. 내가, 네가 일으켜주는게 아니라 우리 둘이 손잡고 힘을 써서 일어날 거야. 근데 ㅇㅇ야



"나한테 이미 너는 너무 충분히 잘하고 있어. 주말에도 아이템 구상하고 문장 고치고, 고민하고. 그러면서 너는 나를 놓은 적도 없어. 너는 이미 너무 잘 하고 있어, 멀리 보려 하지 않아도 돼. 느리게 걷는다고 그 누구도 널 두고 가지 않아"



ㅇㅇ가 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영현은 아무 말 없이 ㅇㅇ가 우는대로 내버려 두었다. 한바탕 울고 나면 가볍게 웃을 수 있을테니까.


영현은 단지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었다. 지쳐 관두려하면 그 자리에서 손을 움켜쥐었고 서툰 부분을 하나하나 차근히 알려주었다. 어쩌면 참 많은 것이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서로가 아니면 안 되는 그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이 끊임 없이 이끌고 스며들었다. 


네가 내 하루의 전부인 이유는, 아마 그래서였을까. 



8.



ㅇㅇ씨 다리 괜찮아? 네 괜찮아요.
발목 보호대를 하고 구두를 신은 ㅇㅇ를 못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 보았다. 분위기가 조금 변한 것 같기도 하고. 그녀는 여전히 밝았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에서 차마 보이지 않는 무언가. 그래 묵직한 안개 같은 것으로 쌓여 있는 것 같았다. 



"깜박했네. ㅇㅇ씨 2회의실에 일정표 두고 왔는데 좀 가져다 여기 놔줄래? 나 과장님 콜"


"아, 네. 알겠습니다"



ㅇㅇ는 곧장 2회의실로 향했다. 누군가 회의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니 프로젝트 진행인 것 같았다. ㅇㅇ는 불투명한 창을 기웃거리다 이내 문을 열고 살그머니 들어갔다.



"죄송합니다아"



살금살금 끝까지 가려했으나 의자들에 밀려 좀처럼 손이 닿질 않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에 걸쳐진 건 다름아닌 일정표였다. 와 그쪽 천..,


영현이었다.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ㅇㅇ는 일정표를 안고 돌아섰다. 어깨 위로 뜨겁다 못해 데일 것만 같은 온기가 닿았지만 ㅇㅇ는 빠르게 떼어내고 회의실을 나섰다.

 골치가 아팠다. 요즘따라 여유라는 것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월셋방의 리모델링로 나와 지내는 것만 이주째였다. 더 걸릴 것 같다니, 진짜 어디서 자라구. 평소 그리 얼굴을 자주 비추지 않았던 대학 동창의 집에서 머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찜질방 혹은 모텔. 멀쩡한 집 놔두구 개고생이다 정말. 또 대타지만 ㅇㅇ가 맡은 인터뷰는 진전이 없었다. 강영현의 두, 아니 세배는 까칠했다. 섭외부터 인터뷰에선 욕을 먹기 부지기수였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ㅇㅇ는 결국 골머리를 앓으며 비상구로 향했다.



"어후"



발목이 대체 나에게 왜 이러냐며 아우성이었다. 미안하다 좀만 참아주라. ㅇㅇ는 뻣뻣하게 굳은 다리를 억지로 주물렀다. 화장은 왜 이렇게 무너진 건지, 요즘 푸석한 피부를 가리려다보니 온갖 귀찮은 것을 올려 발랐더니 악효과만 줄줄이 소세지였다. 머리도 까치집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하나하나 건들기에 ㅇㅇ는 손하나 까딱 기운조차 없었다.



"...아"


"...어,"



영현은 들고 있던 담배를 그대로 숨겼다.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은 하나뿐이었으니, 하지만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다. ㅇㅇ는 말도 안 되는 몰꼴로 마주하는게 싫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ㅇㅇ는 구두에 발을 밀어 넣었다. 윽, 억눌린 신음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ㅇㅇ는 입을 꼭 막고 부들거리며 계단에서 내려왔다. 



"ㅇㅇ야"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가 ㅇㅇ를 붙잡았다. 때마침 어색한 두 사람을 가르는 진동이 울렸다. 어, 여보세요? ㅇㅇ는 휴대폰을 귀에 딱 붙인 채 비상계단을 빠져 나갔다. 또 모든 게 빠져 나가버린 것처럼 공허하고 외로웠다.



*




"네?"


"진짜 미안해. 그냥 병가인줄 알았는데 어떡해. 물혹이라고 하긴 하지만.., 자기야 부탁할게. 응?"



 왜 워크샵을 강영현과 같이 가야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정대리 대신 프로젝트에 들어가 영현과 일을 해달라니. 우선 영현을 픽업부터 하란다. 아마 작품 팬싸인회 중일 거라고.
ㅇㅇ는 회사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삼십분 내내 고민한 끝에 ㅇㅇ는 꽤 마음에 드는 복장으로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연보라색 블라우스에 하얀 치마는 지난 주에 드라이를 맡겨 구김이 없었고 맞추어 산 힐도 오늘따라 깨끗했다. ㅇㅇ는 머리를 질끈 묶고 나아갔다. 이렇게 해서 강영현과 아예 마주치지 않을 것도 아니고. 익숙함만이 숨을 쉴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어? ...김원필"


"어 웬일이야?"


"..너는?"


"이 백화점에 우리 가게 입점해 있잖아. 점주님 만나서 뭣 좀 확인하느라. 머리 잘랐네?"



아, 어.
원필은 더운지 손부채질을 하며 ㅇㅇ를 내려다 보았다. 여전히 발목에 보호대를 한 채 구두를 신고 있었다. ㅇㅇ는 원필에게 어떤 말부터 먼저 꺼내야 할 지 블랙아웃 상태였다. 어떤 말을 해야 변명이 되지 않을까. ㅇㅇ는 어색하게 가방을 매만졌다.



"점심은"


"어? 아직"


"같이 먹을래?"



아 나, 다이어트 중인데. ㅇㅇ는 그 말을 꿀떡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필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ㅇㅇ를 대했다. 아무렇지 않게 디스하고 아무렇지 않게 영현의 이야기를 꺼냈다. 맞다, 얜 헤어진 거 모르겠지. ㅇㅇ는 입가에 국물을 닦아냈다. 화장이 지워져 옅게 묻어났다. 곧 싸인회도 끝이 날 시간이었다. ㅇㅇ는 지갑에서 제 몫의 돈을 꺼내 올려 놓았다.



"됐어. 내가 살게"


"아냐. 야 그리고..."


"미안해"



어? 내가 미안하다고. 원필은 찰랑이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데 화부터 내서 미안하다고. 네가 어련히 이야기 할 텐데 그냥 니가 힘들어 보이는게 싫었어. 좀 서운하기도 했고, 너나 나, 그 하나 빼면 우리 사이에 뭐가 남냐. 남들은 남여 친구 죽어도 안 된다고 하는데 그 뭣 같은 말 다 무시하고 진짜 친구됐잖아. 아 솔직히 넌 나한테 가족만큼 가깝다고 생각했어.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꼭 어른처럼 굴지 않아도 된다고"


"...그게"


"그게 더 어색해보여. 그냥, 너답게 돌아와. 아 물론 이건 내가 사정을 모르니까 막말하는거야. 알아서 걸러 들어"



그리고 나한테 진짜 말할 수 있을 때 그때 점심 사라. 
원필은 그대로 가방을 챙겨 카운터로 걸어나갔다. 하고 싶은 말의 반의 반도 하지 못했지만 개운했다. 묵은 체증이 순식간에 내려간 것만 같았다. 


ㅇㅇ가 현장에 갔을 땐 아직 싸인회가 진행 중이었다. 아무래도 현장 분위기상 딜레이가 된 게 분명했다. 영현은 그 사람들 속에서 빛났다. 제 책에 하나하나 싸인을 해주며 그는 웃었다. 아마 영현과 이렇게 끝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나는 불안에 떨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ㅇㅇ는 파우치에서 거울을 꺼내 제 모습을 점검했다. 그래 오늘은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것 같아. ㅇㅇ는 영현의 곁으로 다가가 적어둔 메모를 보여주었다.



-정대리님이 병가 내셔서 워크샵은 나랑 가야할 것 같아



영현은 크게 놀랐다. ㅇㅇ가 곁에 와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영현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ㅇㅇ는 움츠려 있었다. 꼭 영현의 눈을 쳐다보지 않아도, 시종일관 시선을 땅바닥에 처박아 두고 있었다. 퍽 기가 죽어있었다. 



"작가님"


"어, 강대리님"


"저두 살짝 끼어 왔어요. 워크샵 오신다면서요? 출발하기 전에 차 한 잔 할 수 있을까요?"


"예? 아 네"



싸인회가 끝나고 영현은 팔을 주무르며 카페로 향했다. ㅇㅇ는 아무 말 없이 영현의 곁에서 걸었다. 이미 커피를 시켜둔 강대리 앞에 영현은 앉았다. ㅇ대리가 대타로 왔구나, 으이 윤팀장님은 나 시키지. 괜히 자기 고생하게. ㅇㅇ는 옅은 웃음과 함께 손사래쳤다. 뭐 위에서 까라면 까는거죠, 별 수 있나요. ㅇㅇ의 목소리가 원래 이렇게 작았나, 영현은 커피를 홀짝였다. 



"강작가님 언제 시간 되시냐구요. 우리 저녁 한 번 먹기로 한 거 기억 안 나요?"


"아직은 시간이 안 나서, 곧 연락 드리겠습니다"



ㅇㅇ는 괜히 머리를 묶었다고 생각했다. 괜히 꾸밀줄도 모르는데 꾸민 것 같았다. 엉성하고 여유 없는 모습. ㅇㅇ는 잘 마시지 않는 아메리카노를 빨았다. 강대리는 화사했다. 영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적절한 반응과 애교가 사근사근하니 예뻤다. 곧 여름이 오는데, 이미 여름이 오고 있는데 괜시리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으며 추웠다. 근데 강작가님이랑 ㅇㅇ씨는 대체 무슨 사이야? 되게 가까운 것 같은데. 강대리에 물음에 ㅇㅇ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무슨 사이긴 무슨 사이에요. 그냥 제가 강작가님 섭외 맡았으니까 그게 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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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다는 아닌데"



ㅇㅇ는 홱 고개를 돌려 영현을 바라보았다. 언제 그녀를 걱정했냐는듯 영현은 어느새 싸늘한 표정으로 ㅇㅇ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대리는 이미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듯 눈을 반짝였다. 한 마디만 더해 강영현.



"그게 다에요. 제가 강작가님을 어떻게 알겠어요"


"ㅇㅇㅇ"


"작가님"



ㅇㅇ는 으득, 이를 갈았지만 눈웃음으로 무마하고 몸을 일으켰다. 이따 워크샵에서 뵙겠습니다. 
영현은 그런 ㅇㅇ를 뒤따랐다. 하마터면 걸릴 뻔, 아니 걸릴 것도 없지만. ㅇㅇ는 분을 삭히며 엘레베이터를 잡았다. 이렇게 영현과 강릉까지 갈 수 있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얘기 좀 해"


"사람 많은 곳에선 안 해요. 강작가님"


"ㅇㅇㅇ"



어느샌가 변해 있었다. 어느샌가 공개적인 곳에서 저를 부정해버렸다. 한치의 서러움이었다. 애써 참아냈었지만 영현은 화가 났다. 미안한, 그런 마음도 없이 아주 아무 일도 없던 이처럼 아주 남처럼 치부하고 이야기하는 ㅇㅇ에게 화가 났다. 우리가 언제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하물며 그렇게까지 말할 건 아니었잖아. 영현은 엘레베이터에 타자마자 따져 물었지만 ㅇㅇ는 주먹을 꽉 쥐고 입을 다물었다. 주차장까지만 조용히 가자 강영현. 뱉어내는 한숨이 칼날처럼 서로를 베어 버릴 것 같았다.



"타서 얘기해"


"야"



ㅇㅇ는 영현의 말을 더 듣지도 않고 차에 올라탔다. 영현 역시 조수석 문을 열고 탔다. 영현의 시선은 온갖 실망과 분노가 뒤엉켜 있었다. 애초에 헤어짐조차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끝을 보자고 했다. 영현은 답답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럼 제가 강영현 전 애인이에요. 이래?"


"왜 전 애인이야. 너 진짜 나랑 끝낼 거야? 너 혼자 정리해서 나한테 던지고 가면 그럼 난, 아 그랬구나. 네가 가는구나 하고 거기 서 있어?"


"네가 끝내자며!"


"네가 먼저 그렇게 시작했잖아!"



분을 삭히기는커녕 불을 지펴 아주 활활 타올랐다. 맞다, 이게 우리지. 잊고 있었던 우리.



"난 너랑 떨어져 있기 싫었어. 이미 떨어져 있는 시간동안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든 네 손은 잡고 있고 싶었다고. 알아? 근데 넌 그렇게 헤어짐이 쉬워? 왜 이런 상황만 오면 끝부터 외치고 보는 건데. 왜!  ...넌 항상 우리 관계에서 나는 없고 너만 있냐? 어?"



나만 있다고? 정말 내가 나만 생각했을까? 이렇게 쉬운 제 마음 하나 모르면서 우리가 대체 계속 갈 수 있긴 한 거야? ㅇㅇ는 붉은 눈시울로 영현을 노려 보았다.



"너만 생각하는 건 너야 강영현 이 나쁜새끼야"


"내가 대체 언제. 넌 항상 일방적이었어, 나한테. 내가 너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또 나만 진지했지. 나만 진심었다고!"


"야!"



이게 듣자듣자하니까. 서러움이 폭발했다. 내가 진심이 아니었다면 나는 강영현을 영영 떠나지 않았을꺼다. 내 욕심만 그득그득 채우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영현의 곁에서 영현을 빛내줄, 영현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될 자신이란 거.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너는 더 위로 아니 더 멀리 도망치고 네 주위 사람들은 나를 의심해. 내가, 정말? 네 옆에? ㅇㅇ는 하고 있던 목걸이를 빼 영현에게 던졌다. 달랑거리던 귀걸이도, 걸리적거렸지만 하고 다니던 레이어드 링들도 다 던져 버렸다. 



"그만해 ㅇㅇㅇ"


"야 ㅇㅇㅇ"



"...진짜 그만하자. 계속 이렇게 싸우는거 질렸어. 너도 알잖아 내가 너한테 사랑,"



사랑. 손으로, 타이핑으로 치면 일초도 걸리지 않고 서로에게 미쳐 버렸을 땐 수백번 해도 부족했던 그거. 목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 말을 뱉어야만 진짜 우리가 끝날 수 있어 ㅇㅇㅇ. 



"...사랑해라고 말 못하고 있잖아 내내"



노력해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기는커녕 더 좋고 대단한 사람들이 나를 가지처럼 가로 막는데, 적어도 너는 날 기다렸어야지. 적어도 넌, 나에게 시간을 줘야만 했어. 이 가식적인 액세사리가, 옷이 얼마나 나를 포장해 줄 수 있는데. 그 어떤 것이든 이 내가 날보는 거지 같은 자존감 같은 거 해결해준다고 하면 나는 거기에만 매달렸을 거야. 또 나는 그렇게까지 하는 내가 못나 보였겠지. 매순간 너를 볼 자격을 내가 뜯어 버렸겠지. 툭툭 떨어지던 눈물은 금새 홍수처럼 불어나 ㅇㅇ는 핸들을 쥐고 엉엉 울었다. 영현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나 자신이 가장 거지 같았다. 



"ㅇㅇㅇ"


"...제발, 제발 ㅇㅇ야"


"너한테까지 스트레스 받는 기분이야 그만해"



아주 찰나였으나 질린 영현의 두 눈을 보았다. ㅇㅇ는 그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넌 이런 내가 좋니?"


"... ..."



강영현과 그토록 끝을 내야만 한다고 하면서도 모순적으로 대답하지 못하는 강영현이 미웠다.



"너는 이런 나를 사랑할 수 있냐고"


"ㅇㅇ야"


"대답해봐. 할 수 있어? 있냐고!"


"나 좀 그만 외롭고 싶어. ㅇㅇㅇ.
불안해 미치겠어. 네가 이럴 때마다 심장이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고 눈 앞이 캄캄해져"



탄식과 함께 뱉어진 진심은 뱃 속을 가르고 공허한 빈 자리를 만들었다. 다, 이건 전부 내 잘못인데. 지금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내 욕심인데 영현아. 우리 이제 정말 볼 수 없게된다면 한 번만 이기적일게. ㅇㅇ는 뚝뚝 흘렀던 눈물을 짓이겨 닦아냈다. 눈가가 발갛게 부어 올라 쓸리는 촉감이 날카로운 단면을 비비는 것만 같았다.



"...내가 그랬어도 넌 끝까지 붙잡았어야지"


"... ...."


"내 다릴 붙잡고서라도 애원했어야지"


"...날 놓지 말았어야지"



기다렸어야지. 날, 너는 기다렸어야지.
ㅇㅇ는 영현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네가 한 번만 내 손을 잡아줬다면, 아주 잠깐의 시간이 있었다면. 


ㅇㅇ는 가방을 챙겨 내렸다. 끝내 영현의 고개가 떨구어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고요한 주차장은 또각거리는 그녀의 구두 소리만 남아 맴돌았다.


실망하고 싶은만큼 실망하고 미워하고 싶은만큼 미워해. 우리는 애초에 이해의 폭이 달랐어. 달라졌다면, 그것도 맞겠지. 널 안을만큼 큰 사람이 못 되나봐. 여기까지가 한계야.



*



"신세"


"얼씨구"


"방값"



ㅇㅇ는 냉장고 안으로 사온 술들을 진열해 넣었다. 옥탑에서 빠져 나오면 시달리지 않을 줄 알았지. 그래 내 생각이 짧았네 짧았어.

원필은 비워두었던 방에 이불을 던져두며 ㅇㅇ가 챙겨온 가방을 바라보았다. 공사가 한창이랬으니 아마 이걸 질질 끌고 여러 곳을 옮긴 흔적이 보였다. 자취방 공사에 대해 영현은 아예 듣지 못했으니 꽤 오랫동안 혼자 버텨야 했을 것이다. 좀 일찍 너를 찾을껄. 원필은 맥주캔을 시원하게 따 이미 한모금 마시고 있는 ㅇㅇ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른. 그딴게 뭐라고. 가족 간에 어른이고 아이가 어딨어. 원필은 ㅇㅇ의 손에서 맥주캔을 빼앗아 들고 벌컥 벌컥 들이켰다.



"술김이야. 에이씨 우리 누나도 안 안아주는데"



원필은 ㅇㅇ를 일으켜 꼬옥 안아주었다. ㅇㅇ는 원필의 어깨에 고개를 박았다. 이게 강영현 네 품이었으면, 그랬으면 진짜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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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아 ㅇㅇㅇ"



ㅇㅇ는 울음을 삼켰다. 괜찮아 ㅇㅇㅇ. 




나, 진짜 괜찮아.




*



"저 진짜 그 분 마음에 들었어요"


"그랬으니까 네가 찾아왔겠지"


"한 번만, 다시 만나면 안 될까요?"


"네가 전화 씹었다던데? 아니야?"



영현은 ㅁㅁ을 향해 물었다. ㅁㅁ는 영현의 아카데미 동기였다. 대학도 졸업 전에 끼어서 선배며 나이는 찰대로 찬 이들의 텃세를 받으면서도 당찬 친구였다. 한없이 여렸지만 또 정말 할 말은 하는 친구. 영현은 그녀에게서 ㅇㅇ가 보여 진심으로 잘해주곤 했다. 



"딱 너같은 그런 애 있었어" 



그런데 김원필이라니? 작품 발표회를 뒷풀이였나, 그 다음 날 뜬금없이 원필에 대해 물었다. 그그 오빠, 되게 다람쥐 닮구 어 어어 눈 왕 크고 되게 잘생긴 친구 누구에요? 영현은 그 질문에 진심으로 골몰했다. 나한테 그런 친구가 있었나. 너무 간절해 보여 결국 영현은 카톡을 뒤져가며 물었었다.



"...어"


"얘야?"



ㅁㅁ은 도리질쳤다. 뭐야 반응. ㅁㅁ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르킨 건 -술 먹자. 라고 짧은 카톡을 날린 원필이었다. 얘? 되게 다람쥐 닮고 눈 왕 크고 되게 잘생긴 친구라며.  ㅁㅁ은 엄청난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렌즈낀다며, 렌즈를 두고 왔나. 영현은 재차 물었다. 잘 생각해봐 이 새끼 맞아? ㅁㅁ은 올망졸망한 눈으로 끄덕였다.



"...여자친구 있으세요?"



있을리가. 



제가 전화를 안 받은 건 맞는데...
ㅁㅁ은 우물쭈물했다. 손톱도 딱딱 뜯어가며 할 말을 고르는 것 같았다. 영현은 가만히 앉아 아메리카노를 빨았다. 



"...그러니까 그 그 분은 회사도 다니시구"


"응"


"또 잘생겼구"


"응?"



영현은 진심으로 반문할 뻔했다. 아니야 계속 말해.



"근데 저는 아직두 학교 다니고 있잖아요오"


"그게 왜?"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좋은 사람이 왜 절 만나겠냔 말이에요.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얘기 해보니까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분이었어요.

영현은 ㅁㅁ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면 만나면 되는 거지 뭘 망설이는가. 영현은 다시 아메리카노를 빨며 ㅁㅁ을 바라보았다. ㅁㅁ 역시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뭐, 보는 눈은 영 아닌 것 같지만.



"그냥 안 어울리니까.. 작가님이야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이 뭐라구 하겠어요"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럼 안 중요해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건 두 사람이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 부족하고 자신이 없을 게 뭐란 말인가. 남들에게 휘둘릴만큼이면 많이 좋아하지 않는 거겠지. ㅇㅇㅇ. 너처럼.



"작가님은 그럼, 연애 어떻게 했어요? 특히나 작가님은 진짜루 잘 나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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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이해 못해서 헤어졌다. 됐어?"



근데 아직도 내 탓 하더라, 걔. 진짜 지금도 보고싶은데 내가 잘못한 걸 모르겠어. 그냥 버려진 섬 같은 거지. 아직도 끝이 났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단 한 순간만이라도 다시 ㅇㅇ를 보고 싶었다.



"아무리 내 앞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괜찮다구 해도,"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거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생각해봐요 작가님. 그, 그 분은 안정적이고 멋지고 그렇잖아요. 그 사람을 질투하는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안을 폭이 안 된다는 거죠. ...나보다 큰 사람이니까. ㅁㅁ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같이 걸으면 내가 먼저 뒤쳐질 거에요"


"가서 일으켜주면 되지"


"매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같이 걷는 거지만 동시에 내가 걷는 길인데. 매번 일으켜줘야 한다면 그건 내 힘으로 가는게 아니라 그 사람만 보고 의지하는 거잖아요. 사랑하는 사람만 바라보고 의지 한다는 거, 생각보다 진짜 미안하고 내 자신이 용납 안 돼요. 나는 왜 이 사람을 일으켜 줄 수 없지? 나를 의심하게 되니까"



그렇게 놓아버릴 수 없으니까. 그건 그 사람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는 것밖에 더 되는 일이니까 시작하기 두려운 거에요. 아웅 작가님은 하나도 모르넹.
ㅁㅁ은 제 앞에 놓인 파르페를 빨대로 떠먹기 시작했다. 영현이 딱딱하게 굳은 것을 보니 저엉말 몰랐던 모양이다. 근데 여기 파르페 맛집이네. ㅁㅁ은 순간 원필을 머릿 속에서 떠올렸다. 에이 우선 그 분은 머릿 속에 지워보자 ㅁㅁㅁ.



"제가 그래서 헤어졌었거든요. 기다린다고 했는데 언젠가 질릴까봐. 설령 그런 일이 아주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너무 나약해져버려서 '하지만, 어쩌면, 그럴수도' 그 세 개에 메여 살았어요. 그렇게 사랑 받았는데 불안, 아니 외로움 속에서 살았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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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솔직하게 얘기 안 했어? 얘기 했으면 극복할 수도 있었잖아. 물론 네가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을 못 믿었어? 신뢰 관계에서부터 어긋난 건 아니고?"


"작가님"


"어"


"그건 사람 나름이에요. '나를 못 믿어?'라는 말은 반대로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떠나겠단 상대를 못 믿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에요"



아주 무거운 돌로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믿음'을 운운하는 그 사람이, ㅁㅁ의 말은 이 상황에서 정답이었다. 영현은 ㅁㅁ이 그랬듯 손톱을 망가뜨렸다. 너 김원필이랑 잘 맞겠다.



"아니요. 연애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였어요. 작가님두 저두 아주 실패했네용"



김원필이 그랬나? 영현은 원필의 정확한 의사를 물어보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했다. 



"작가님이 말했던 그 분은 왜 작가님과 헤어졌을까요"


"내 다릴 붙잡고서라도 애원했어야지"


"...날 놓지 말았어야지"



기다렸어야지. 날, 너는 기다렸어야지.



"내가 널 놓았다고 생각해?"


"ㅇㅇㅇ"


"넌 죽어도 모르겠지만,"


"ㅇㅇ야"


"날 놓은 건 너야"



그제서야 ㅇㅇ가 바라본 두 눈이 기억났다.



9.



"이 얘기 혹시라도 강영현한테 하면 그땐 진짜 가족이고 뭐고 없어"


"나도 이제 그정도 눈치는 있어. 내가 애야?"



넌 아직 하는 짓이 따악 애새끼야. 아직도 개나리반 김연필 같다고.
원필은 발을 뻗어 ㅇㅇ를 소파에서 밀어냈다. 나가, 나가 땅콩 알러지 새끼. 하하 시발 집주인이라고 텃세부리는 것 좀 봐.


원필은 그제서야 ㅇㅇ를 바라 보았다. 네가 왜 머리를 잘랐는지, 아프다며 평소 하지도 않던 그 가방 속에 수많은 귀걸이를 들고 다녔는지, 발목이 나가고도 힐을 신었는지. 이제 다 보였다. 그러나 제가 나설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어쩌면 두 사람의 첫 번째 이별보다 중요할테니까. 아무리 두 사람을 원필이 사랑한다한들, 이번만큼은 방관자를 자처했다.



"그리고 난 너 아니어도 머리가 아주 아프니까 찡찡대지마"


"아니 지가 다 캐물어 놓고 뭘 찡찡댔대. 왜? 무슨 일 있어?"


"아 별 거 아니야"



그냥 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어.


 
"여자네"


"자리 깔아라"



강영현 보기 불쾌하다며? 내가 보기엔 당장 회사 관두고 자리 까는게 연봉 더 높을 거 같다, 야.
원필은 안경을 벗어 연거푸 마른 세수를 했다. 별 거 아니니까 넌 니 일이나 알아서 잘 해결해. ㅇㅇ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원필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풀었다. 아- 이 사람이야? 원필은 필사적으로 휴대폰을 빼앗아드려 했다. 알 거 없다니까? 팔을 휘적대며 휴대폰을 낚아채려던 손길은 그 시끄러운 두 사람을 뚫고 울린 벨소리로 일단락 되었다.



"...전화 왔네. 받아"


"강영현이야?"



몰라. 니가 봐.

ㅇㅇ는 원필의 품에 휴대폰을 안겨준뒤 곧장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자창에서 언성이 높인 후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워크샵은 사정을 모른 채 다음 달로 밀려 있었다. 어, 왜 전화했어. 방문 밖으로 원필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미친 새끼야. 넌 또 왜 그래? 뭐? 우리 집? 야야 안돼. 나 집에 없어. 뭐 엘레베이터?"



환장하겠네. 정말 환장하기 직전이었다. 원필은 급하게 안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 나 지금 밖이라니까? 왜 니 맘대로 찾아와. 친구? 어 씨발 친구 안해 그러니까 다시 집 가. 새끼야"



그때였다. 머리가 산발이 되어버린 원필의 앞으로 조용히 다가온 ㅇㅇ는 휴대폰을 내밀었다. 



-내가 나갈게. 걔한테 그만 화내고 그냥 들어줘


"...지금 엘레베이터래. 어떻게 나가려고, 됐어. 내가 알아서 보내""


"계단 있잖아. 내일 퇴근하고 다시 올게"



야야. 야 ㅇㅇㅇ! 최대한 목소리를 죽여 ㅇㅇ를 붙잡았지만 그녀는 안방 문을 굳게 닫아버리고 현관으로 향했다. 너 여기 있으라니까? 오늘 또 어디서 자려고. 기어이 원필은 따라나와 그녀를 붙잡았다. 



"모텔 가면 돼. 조용히 나갈테니까 저 방 들어가지만 않게 잘 해줘라"



ㅇㅇ는 끝내 원필을 만류했다. 현관에 벗어두었던 힐을 찾아 그녀는 잔뜩 뭉친 발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찰나의 기계음은 부산스러웠던 두 사람을 모두 멎게 만들었다.



"대신 술 사왔,"



열린 문 틈새로 밀고 들어온 찬바람이 세 사람을 휘감았다. 그 정적 속에서 영현의 눈에 제 앞에 서있는 ㅇㅇ와 원필을 지나 그의 뒤로 미처 정리 하지 못한 ㅇㅇ의 캐리어가 들어왔다. 영현은 그새 저를 피해 고개를 떨군 ㅇㅇ와 캐리어를 번갈아 바라 보았다.



"김원필 다시 전화 할게"



그 미칠듯한 정적에서 도망친 건 ㅇㅇ였다. 얼어붙은 영현을 지나 걸었다. 마주쳐서 뭐하려고. 이제. 그냥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내일 퇴근하면서 짐만 가지고 나오면 되는 거야 ㅇㅇㅇ. 

갖잖은 합리화라도 해야만 다리에 겨우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분명 이건 벌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다신 받지 못할만큼의 사랑을 주는 강영현을 내팽겨치고 버린 것에 대한 벌이 분명했다. 영현을 안아줄만큼의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핑계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내가 못난 사람이라는 것을 포장하기 위한 핑계 중 일부.



"따라 오지마"


"ㅇㅇ야,"


"말도 걸지마"



당장이라도 꺾여버릴 것처럼 지쳐보였던 영현을 다시 마주하면 아주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가서 영현에게 꽂았던 비수를 다 뽑아내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너무 짧은 시간에 저지른 실수와 그 짧은 시간 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두 글자가 목구멍에서부터 치솟았다.



"따라 오지마"


"오지 말라고. 스토킹으로 신고할 거야"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다 안 할게"



등 뒤로 물기 서린 영현의 목소리가 ㅇㅇ를 끌어 안았다. 



"말도 안 걸고 따라가지도 않을게. ...더 이상 너 안 붙,"


"...안 붙잡을게. 그러니까 ㅇㅇ야"


"..."


"지금 딱 한 순간만 나 봐줘. 일분도 아니고 진짜 딱 한 순간이어도 돼. 바로 뒤돌아 가도 정말 안 잡을게. 앞으로 너 불편하게 하지도 않을 거야. 그러니까 정말 한 번만"



네 얼굴 보여주라. ㅇㅇ야.



*



"같이 한다며. 프로젝트"



떨어져 지내보니까 어때?
원필은 부드럽게 핸들을 돌리며 물었다. 이렇게 퇴근길을 함께 한 것도 어엿 한 달이 막 지나고 있었다. 스튜디오와 대본 작업을 번갈아 하다보니 ㅇㅇ는 대부분 영현의 차에 실려 가다시피 퇴근하곤 했다. 원필이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런 퇴근길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뭘 어때. 뭐가 꼭 어때야 해?"


"넌 꼭 그렇게 꽈서 듣더라. 됐어, 가면서 맥주나 사.. 잠깐만. 어 여보세요?"


-"퇴근해?"


"어? 어"



차에 연결된 통화음은 그대로 ㅇㅇ에게도 들려왔다. 잔뜩 목소리가 잠긴 걸 보니 아마 꼴딱 새고 오후까지 작업을 한 뒤 쪽잠을 잔 것 같았다. 프로젝트 들어가기 전에 술 한 잔 하자. 네 집으로 갈게.



"우리집? 뭘 내 집에서 봐. 그냥 밖에서 봐"


"피곤해. 신세 좀 지자"



원필은 전방과 ㅇㅇ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왜 답이 없냐는 영현의 재촉이 원필을 짓눌렀다.



"...ㅇㅇ랑 같이 있어?"


"핸즈프리 아니야. 그냥 말해"



넌 꼭 그렇게 거짓말을 해야겠냐. ㅇㅇ는 원필을 흘낏 노려보았다. 그럼 뭐 이 상황에서 어색하게 끊으라고? 원필은 억울한 표정으로 맞대응했다. 어어어 야 빨간불, 빨간불!!



"...괜찮아?"


"아씨 아, 뒷골. 죽을래? 그 눈 뒀다 뭐할래? 진짜 내일 병원으로 출근할 뻔,"



차는 급정거하며 ㅇㅇ를 앞으로 훅 밀었다 끌어당겼다. 바짝 놀라 따발총처럼 원필에게 쏘아댄 뒤에야 ㅇㅇ는 다시 상황을 파악했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어. 끊지도 끊기지도 못한 전화는 여전히 '강영현'이란 이름 세 글자를 정직하게 띄어 놓고 있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정적을 끊어낸 것은 원필이었다. 내 집은 안 돼고 내가 갈테니까 기다려. 원필은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불편한 상황을 유지할 순 없었다. 특히나 영현과 프로젝트가 확정된 이상 이 애매한 상황을 정리할 필요성이 다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이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또 괜히 불쑥 이렇게 영현이 일상에 비집고 들어오면 목 안이 꽉 막혀 답답했다.



"내가 심했지"


"말이라고"


"상처 받았겠지?"


"끝에서 서로에 대한 예의를 안 지키긴 했지. 아 물론 니가"



원필은 객관적으로 답했다. 근데 그래도 괜찮아. 너는 뭐 못돼고 싶어서 못 됐었냐. 병주고 약주네 이 새끼.


원필의 시각에서 영현의 상처가 깊은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ㅇㅇ가 이렇게까지 될 때까지 몰랐던게 괘씸했지만, 그에 배로 영현은 많이 힘들어했다. ㅇㅇ가 어떤 마음인지 읽을 수 없었지만 영현은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해 서 있다는 것쯤은 너무 잘 읽혔다. 



"네가 지금 강영현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없어. 진짜 미우면 미운 거야. 너 못났다고 안 해"



주차장에 차를 세우며 원필이 말했다. 근데 이제와서 서로에 대한 예의 차리려고? 옛정 때문이면 그럴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 그건 진짜 못난 짓이니까.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고. ㅇㅇ는 엘레베이터 앞에서 마른 세수를 반복했다. 원필까지 떠난 퇴근길은 너무 차가웠다. 무감각하게 버튼을 누르고 무감각하게 문이 열렸다. 집에 들어왔을 때 그녀를 반기는 시린 온도가 못마땅했다.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너한테까지 스트레스 받는 기분이야 그만해"



아주 찰나였으나 질린 영현의 두 눈을 보았다. ㅇㅇ는 그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넌 이런 내가 좋니?"


"... ..."



강영현과 그토록 끝을 내야만 한다고 하면서도 모순적으로 대답하지 못하는 강영현이 미웠다.



"너는 이런 나를 사랑할 수 있냐고"


"ㅇㅇ야"


"대답해봐. 할 수 있어? 있냐고!"


"나 좀 그만 외롭고 싶어. ㅇㅇㅇ.
불안해 미치겠어. 네가 이럴 때마다 심장이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고 눈 앞이 캄캄해져"



탄식과 함께 뱉어진 진심은 뱃 속을 가르고 공허한 빈 자리를 만들었다. 다, 이건 전부 내 잘못인데. 지금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내 욕심인데 영현아. 우리 이제 정말 볼 수 없게된다면 한 번만 이기적일게. ㅇㅇ는 뚝뚝 흘렀던 눈물을 짓이겨 닦아냈다. 눈가가 발갛게 부어 올라 쓸리는 촉감이 날카로운 단면을 비비는 것만 같았다.



"...내가 그랬어도 넌 끝까지 붙잡았어야지"


"... ...."


"내 다릴 붙잡고서라도 애원했어야지"


"...날 놓지 말았어야지"



기다렸어야지. 날, 너는 기다렸어야지.
ㅇㅇ는 영현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네가 한 번만 내 손을 잡아줬다면, 아주 잠깐의 시간이 있었다면. 


ㅇㅇ는 가방을 챙겨 내렸다. 끝내 영현의 고개가 떨구어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고요한 주차장은 또각거리는 그녀의 구두 소리만 남아 맴돌았다.


실망하고 싶은만큼 실망하고 미워하고 싶은만큼 미워해. 우리는 애초에 이해의 폭이 달랐어. 달라졌다면, 그것도 맞겠지. 널 안을만큼 큰 사람이 못 되나봐. 여기까지가 한계야.



*



"신세"


"얼씨구"


"방값"



ㅇㅇ는 냉장고 안으로 사온 술들을 진열해 넣었다. 옥탑에서 빠져 나오면 시달리지 않을 줄 알았지. 그래 내 생각이 짧았네 짧았어.

원필은 비워두었던 방에 이불을 던져두며 ㅇㅇ가 챙겨온 가방을 바라보았다. 공사가 한창이랬으니 아마 이걸 질질 끌고 여러 곳을 옮긴 흔적이 보였다. 자취방 공사에 대해 영현은 아예 듣지 못했으니 꽤 오랫동안 혼자 버텨야 했을 것이다. 좀 일찍 너를 찾을껄. 원필은 맥주캔을 시원하게 따 이미 한모금 마시고 있는 ㅇㅇ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른. 그딴게 뭐라고. 가족 간에 어른이고 아이가 어딨어. 원필은 ㅇㅇ의 손에서 맥주캔을 빼앗아 들고 벌컥 벌컥 들이켰다.



"술김이야. 에이씨 우리 누나도 안 안아주는데"



원필은 ㅇㅇ를 일으켜 꼬옥 안아주었다. ㅇㅇ는 원필의 어깨에 고개를 박았다. 이게 강영현 네 품이었으면, 그랬으면 진짜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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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아 ㅇㅇㅇ"



ㅇㅇ는 울음을 삼켰다. 괜찮아 ㅇㅇㅇ. 




나, 진짜 괜찮아.




*



"저 진짜 그 분 마음에 들었어요"


"그랬으니까 네가 찾아왔겠지"


"한 번만, 다시 만나면 안 될까요?"


"네가 전화 씹었다던데? 아니야?"



영현은 ㅁㅁ을 향해 물었다. ㅁㅁ는 영현의 아카데미 동기였다. 대학도 졸업 전에 끼어서 선배며 나이는 찰대로 찬 이들의 텃세를 받으면서도 당찬 친구였다. 한없이 여렸지만 또 정말 할 말은 하는 친구. 영현은 그녀에게서 ㅇㅇ가 보여 진심으로 잘해주곤 했다. 



"딱 너같은 그런 애 있었어" 



그런데 김원필이라니? 작품 발표회를 뒷풀이였나, 그 다음 날 뜬금없이 원필에 대해 물었다. 그그 오빠, 되게 다람쥐 닮구 어 어어 눈 왕 크고 되게 잘생긴 친구 누구에요? 영현은 그 질문에 진심으로 골몰했다. 나한테 그런 친구가 있었나. 너무 간절해 보여 결국 영현은 카톡을 뒤져가며 물었었다.



"...어"


"얘야?"



ㅁㅁ은 도리질쳤다. 뭐야 반응. ㅁㅁ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르킨 건 -술 먹자. 라고 짧은 카톡을 날린 원필이었다. 얘? 되게 다람쥐 닮고 눈 왕 크고 되게 잘생긴 친구라며.  ㅁㅁ은 엄청난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렌즈낀다며, 렌즈를 두고 왔나. 영현은 재차 물었다. 잘 생각해봐 이 새끼 맞아? ㅁㅁ은 올망졸망한 눈으로 끄덕였다.



"...여자친구 있으세요?"



있을리가. 



제가 전화를 안 받은 건 맞는데...
ㅁㅁ은 우물쭈물했다. 손톱도 딱딱 뜯어가며 할 말을 고르는 것 같았다. 영현은 가만히 앉아 아메리카노를 빨았다. 



"...그러니까 그 그 분은 회사도 다니시구"


"응"


"또 잘생겼구"


"응?"



영현은 진심으로 반문할 뻔했다. 아니야 계속 말해.



"근데 저는 아직두 학교 다니고 있잖아요오"


"그게 왜?"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좋은 사람이 왜 절 만나겠냔 말이에요.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얘기 해보니까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분이었어요.

영현은 ㅁㅁ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면 만나면 되는 거지 뭘 망설이는가. 영현은 다시 아메리카노를 빨며 ㅁㅁ을 바라보았다. ㅁㅁ 역시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뭐, 보는 눈은 영 아닌 것 같지만.



"그냥 안 어울리니까.. 작가님이야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이 뭐라구 하겠어요"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럼 안 중요해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건 두 사람이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 부족하고 자신이 없을 게 뭐란 말인가. 남들에게 휘둘릴만큼이면 많이 좋아하지 않는 거겠지. ㅇㅇㅇ. 너처럼.



"작가님은 그럼, 연애 어떻게 했어요? 특히나 작가님은 진짜루 잘 나가잖아요!"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그거 이해 못해서 헤어졌다. 됐어?"



근데 아직도 내 탓 하더라, 걔. 진짜 지금도 보고싶은데 내가 잘못한 걸 모르겠어. 그냥 버려진 섬 같은 거지. 아직도 끝이 났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단 한 순간만이라도 다시 ㅇㅇ를 보고 싶었다.



"아무리 내 앞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괜찮다구 해도,"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거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생각해봐요 작가님. 그, 그 분은 안정적이고 멋지고 그렇잖아요. 그 사람을 질투하는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안을 폭이 안 된다는 거죠. ...나보다 큰 사람이니까. ㅁㅁ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같이 걸으면 내가 먼저 뒤쳐질 거에요"


"가서 일으켜주면 되지"


"매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같이 걷는 거지만 동시에 내가 걷는 길인데. 매번 일으켜줘야 한다면 그건 내 힘으로 가는게 아니라 그 사람만 보고 의지하는 거잖아요. 사랑하는 사람만 바라보고 의지 한다는 거, 생각보다 진짜 미안하고 내 자신이 용납 안 돼요. 나는 왜 이 사람을 일으켜 줄 수 없지? 나를 의심하게 되니까"



그렇게 놓아버릴 수 없으니까. 그건 그 사람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는 것밖에 더 되는 일이니까 시작하기 두려운 거에요. 아웅 작가님은 하나도 모르넹.
ㅁㅁ은 제 앞에 놓인 파르페를 빨대로 떠먹기 시작했다. 영현이 딱딱하게 굳은 것을 보니 저엉말 몰랐던 모양이다. 근데 여기 파르페 맛집이네. ㅁㅁ은 순간 원필을 머릿 속에서 떠올렸다. 에이 우선 그 분은 머릿 속에 지워보자 ㅁㅁㅁ.



"제가 그래서 헤어졌었거든요. 기다린다고 했는데 언젠가 질릴까봐. 설령 그런 일이 아주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너무 나약해져버려서 '하지만, 어쩌면, 그럴수도' 그 세 개에 메여 살았어요. 그렇게 사랑 받았는데 불안, 아니 외로움 속에서 살았다는 거죠"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왜 솔직하게 얘기 안 했어? 얘기 했으면 극복할 수도 있었잖아. 물론 네가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을 못 믿었어? 신뢰 관계에서부터 어긋난 건 아니고?"


"작가님"


"어"


"그건 사람 나름이에요. '나를 못 믿어?'라는 말은 반대로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떠나겠단 상대를 못 믿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에요"



아주 무거운 돌로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믿음'을 운운하는 그 사람이, ㅁㅁ의 말은 이 상황에서 정답이었다. 영현은 ㅁㅁ이 그랬듯 손톱을 망가뜨렸다. 너 김원필이랑 잘 맞겠다.



"아니요. 연애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였어요. 작가님두 저두 아주 실패했네용"



김원필이 그랬나? 영현은 원필의 정확한 의사를 물어보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했다. 



"작가님이 말했던 그 분은 왜 작가님과 헤어졌을까요"


"내 다릴 붙잡고서라도 애원했어야지"


"...날 놓지 말았어야지"



기다렸어야지. 날, 너는 기다렸어야지.



"내가 널 놓았다고 생각해?"


"ㅇㅇㅇ"


"넌 죽어도 모르겠지만,"


"ㅇㅇ야"


"날 놓은 건 너야"



그제서야 ㅇㅇ가 바라본 두 눈이 기억났다.



9.



"이 얘기 혹시라도 강영현한테 하면 그땐 진짜 가족이고 뭐고 없어"


"나도 이제 그정도 눈치는 있어. 내가 애야?"



넌 아직 하는 짓이 따악 애새끼야. 아직도 개나리반 김연필 같다고.
원필은 발을 뻗어 ㅇㅇ를 소파에서 밀어냈다. 나가, 나가 땅콩 알러지 새끼. 하하 시발 집주인이라고 텃세부리는 것 좀 봐.


원필은 그제서야 ㅇㅇ를 바라 보았다. 네가 왜 머리를 잘랐는지, 아프다며 평소 하지도 않던 그 가방 속에 수많은 귀걸이를 들고 다녔는지, 발목이 나가고도 힐을 신었는지. 이제 다 보였다. 그러나 제가 나설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어쩌면 두 사람의 첫 번째 이별보다 중요할테니까. 아무리 두 사람을 원필이 사랑한다한들, 이번만큼은 방관자를 자처했다.



"그리고 난 너 아니어도 머리가 아주 아프니까 찡찡대지마"


"아니 지가 다 캐물어 놓고 뭘 찡찡댔대. 왜? 무슨 일 있어?"


"아 별 거 아니야"



그냥 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어.


 
"여자네"


"자리 깔아라"



강영현 보기 불쾌하다며? 내가 보기엔 당장 회사 관두고 자리 까는게 연봉 더 높을 거 같다, 야.
원필은 안경을 벗어 연거푸 마른 세수를 했다. 별 거 아니니까 넌 니 일이나 알아서 잘 해결해. ㅇㅇ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원필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풀었다. 아- 이 사람이야? 원필은 필사적으로 휴대폰을 빼앗아드려 했다. 알 거 없다니까? 팔을 휘적대며 휴대폰을 낚아채려던 손길은 그 시끄러운 두 사람을 뚫고 울린 벨소리로 일단락 되었다.



"...전화 왔네. 받아"


"강영현이야?"



몰라. 니가 봐.

ㅇㅇ는 원필의 품에 휴대폰을 안겨준뒤 곧장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자창에서 언성이 높인 후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워크샵은 사정을 모른 채 다음 달로 밀려 있었다. 어, 왜 전화했어. 방문 밖으로 원필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미친 새끼야. 넌 또 왜 그래? 뭐? 우리 집? 야야 안돼. 나 집에 없어. 뭐 엘레베이터?"



환장하겠네. 정말 환장하기 직전이었다. 원필은 급하게 안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 나 지금 밖이라니까? 왜 니 맘대로 찾아와. 친구? 어 씨발 친구 안해 그러니까 다시 집 가. 새끼야"



그때였다. 머리가 산발이 되어버린 원필의 앞으로 조용히 다가온 ㅇㅇ는 휴대폰을 내밀었다. 



-내가 나갈게. 걔한테 그만 화내고 그냥 들어줘


"...지금 엘레베이터래. 어떻게 나가려고, 됐어. 내가 알아서 보내""


"계단 있잖아. 내일 퇴근하고 다시 올게"



야야. 야 ㅇㅇㅇ! 최대한 목소리를 죽여 ㅇㅇ를 붙잡았지만 그녀는 안방 문을 굳게 닫아버리고 현관으로 향했다. 너 여기 있으라니까? 오늘 또 어디서 자려고. 기어이 원필은 따라나와 그녀를 붙잡았다. 



"모텔 가면 돼. 조용히 나갈테니까 저 방 들어가지만 않게 잘 해줘라"



ㅇㅇ는 끝내 원필을 만류했다. 현관에 벗어두었던 힐을 찾아 그녀는 잔뜩 뭉친 발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찰나의 기계음은 부산스러웠던 두 사람을 모두 멎게 만들었다.



"대신 술 사왔,"



열린 문 틈새로 밀고 들어온 찬바람이 세 사람을 휘감았다. 그 정적 속에서 영현의 눈에 제 앞에 서있는 ㅇㅇ와 원필을 지나 그의 뒤로 미처 정리 하지 못한 ㅇㅇ의 캐리어가 들어왔다. 영현은 그새 저를 피해 고개를 떨군 ㅇㅇ와 캐리어를 번갈아 바라 보았다.



"김원필 다시 전화 할게"



그 미칠듯한 정적에서 도망친 건 ㅇㅇ였다. 얼어붙은 영현을 지나 걸었다. 마주쳐서 뭐하려고. 이제. 그냥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내일 퇴근하면서 짐만 가지고 나오면 되는 거야 ㅇㅇㅇ. 

갖잖은 합리화라도 해야만 다리에 겨우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분명 이건 벌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다신 받지 못할만큼의 사랑을 주는 강영현을 내팽겨치고 버린 것에 대한 벌이 분명했다. 영현을 안아줄만큼의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핑계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내가 못난 사람이라는 것을 포장하기 위한 핑계 중 일부.



"따라 오지마"


"ㅇㅇ야,"


"말도 걸지마"



당장이라도 꺾여버릴 것처럼 지쳐보였던 영현을 다시 마주하면 아주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가서 영현에게 꽂았던 비수를 다 뽑아내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너무 짧은 시간에 저지른 실수와 그 짧은 시간 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두 글자가 목구멍에서부터 치솟았다.



"따라 오지마"


"오지 말라고. 스토킹으로 신고할 거야"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다 안 할게"



등 뒤로 물기 서린 영현의 목소리가 ㅇㅇ를 끌어 안았다. 



"말도 안 걸고 따라가지도 않을게. ...더 이상 너 안 붙,"


"...안 붙잡을게. 그러니까 ㅇㅇ야"


"..."


"지금 딱 한 순간만 나 봐줘. 일분도 아니고 진짜 딱 한 순간이어도 돼. 바로 뒤돌아 가도 정말 안 잡을게. 앞으로 너 불편하게 하지도 않을 거야. 그러니까 정말 한 번만"



네 얼굴 보여주라. ㅇㅇ야.



*



"같이 한다며. 프로젝트"



떨어져 지내보니까 어때?
원필은 부드럽게 핸들을 돌리며 물었다. 이렇게 퇴근길을 함께 한 것도 어엿 한 달이 막 지나고 있었다. 스튜디오와 대본 작업을 번갈아 하다보니 ㅇㅇ는 대부분 영현의 차에 실려 가다시피 퇴근하곤 했다. 원필이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런 퇴근길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뭘 어때. 뭐가 꼭 어때야 해?"


"넌 꼭 그렇게 꽈서 듣더라. 됐어, 가면서 맥주나 사.. 잠깐만. 어 여보세요?"


-"퇴근해?"


"어? 어"



차에 연결된 통화음은 그대로 ㅇㅇ에게도 들려왔다. 잔뜩 목소리가 잠긴 걸 보니 아마 꼴딱 새고 오후까지 작업을 한 뒤 쪽잠을 잔 것 같았다. 프로젝트 들어가기 전에 술 한 잔 하자. 네 집으로 갈게.



"우리집? 뭘 내 집에서 봐. 그냥 밖에서 봐"


"피곤해. 신세 좀 지자"



원필은 전방과 ㅇㅇ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왜 답이 없냐는 영현의 재촉이 원필을 짓눌렀다.



"...ㅇㅇ랑 같이 있어?"


"핸즈프리 아니야. 그냥 말해"



넌 꼭 그렇게 거짓말을 해야겠냐. ㅇㅇ는 원필을 흘낏 노려보았다. 그럼 뭐 이 상황에서 어색하게 끊으라고? 원필은 억울한 표정으로 맞대응했다. 어어어 야 빨간불, 빨간불!!



"...괜찮아?"


"아씨 아, 뒷골. 죽을래? 그 눈 뒀다 뭐할래? 진짜 내일 병원으로 출근할 뻔,"



차는 급정거하며 ㅇㅇ를 앞으로 훅 밀었다 끌어당겼다. 바짝 놀라 따발총처럼 원필에게 쏘아댄 뒤에야 ㅇㅇ는 다시 상황을 파악했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어. 끊지도 끊기지도 못한 전화는 여전히 '강영현'이란 이름 세 글자를 정직하게 띄어 놓고 있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정적을 끊어낸 것은 원필이었다. 내 집은 안 돼고 내가 갈테니까 기다려. 원필은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불편한 상황을 유지할 순 없었다. 특히나 영현과 프로젝트가 확정된 이상 이 애매한 상황을 정리할 필요성이 다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이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또 괜히 불쑥 이렇게 영현이 일상에 비집고 들어오면 목 안이 꽉 막혀 답답했다.



"내가 심했지"


"말이라고"


"상처 받았겠지?"


"끝에서 서로에 대한 예의를 안 지키긴 했지. 아 물론 니가"



원필은 객관적으로 답했다. 근데 그래도 괜찮아. 너는 뭐 못돼고 싶어서 못 됐었냐. 병주고 약주네 이 새끼.


원필의 시각에서 영현의 상처가 깊은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ㅇㅇ가 이렇게까지 될 때까지 몰랐던게 괘씸했지만, 그에 배로 영현은 많이 힘들어했다. ㅇㅇ가 어떤 마음인지 읽을 수 없었지만 영현은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해 서 있다는 것쯤은 너무 잘 읽혔다. 



"네가 지금 강영현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없어. 진짜 미우면 미운 거야. 너 못났다고 안 해"



주차장에 차를 세우며 원필이 말했다. 근데 이제와서 서로에 대한 예의 차리려고? 옛정 때문이면 그럴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 그건 진짜 못난 짓이니까.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고. ㅇㅇ는 엘레베이터 앞에서 마른 세수를 반복했다. 원필까지 떠난 퇴근길은 너무 차가웠다. 무감각하게 버튼을 누르고 무감각하게 문이 열렸다. 집에 들어왔을 때 그녀를 반기는 시린 온도가 못마땅했다.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너한테까지 스트레스 받는 기분이야 그만해"



아주 찰나였으나 질린 영현의 두 눈을 보았다. ㅇㅇ는 그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넌 이런 내가 좋니?"


"... ..."



강영현과 그토록 끝을 내야만 한다고 하면서도 모순적으로 대답하지 못하는 강영현이 미웠다.



"너는 이런 나를 사랑할 수 있냐고"


"ㅇㅇ야"


"대답해봐. 할 수 있어? 있냐고!"


"나 좀 그만 외롭고 싶어. ㅇㅇㅇ.
불안해 미치겠어. 네가 이럴 때마다 심장이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고 눈 앞이 캄캄해져"



탄식과 함께 뱉어진 진심은 뱃 속을 가르고 공허한 빈 자리를 만들었다. 다, 이건 전부 내 잘못인데. 지금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내 욕심인데 영현아. 우리 이제 정말 볼 수 없게된다면 한 번만 이기적일게. ㅇㅇ는 뚝뚝 흘렀던 눈물을 짓이겨 닦아냈다. 눈가가 발갛게 부어 올라 쓸리는 촉감이 날카로운 단면을 비비는 것만 같았다.



"...내가 그랬어도 넌 끝까지 붙잡았어야지"


"... ...."


"내 다릴 붙잡고서라도 애원했어야지"


"...날 놓지 말았어야지"



기다렸어야지. 날, 너는 기다렸어야지.
ㅇㅇ는 영현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네가 한 번만 내 손을 잡아줬다면, 아주 잠깐의 시간이 있었다면. 


ㅇㅇ는 가방을 챙겨 내렸다. 끝내 영현의 고개가 떨구어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고요한 주차장은 또각거리는 그녀의 구두 소리만 남아 맴돌았다.


실망하고 싶은만큼 실망하고 미워하고 싶은만큼 미워해. 우리는 애초에 이해의 폭이 달랐어. 달라졌다면, 그것도 맞겠지. 널 안을만큼 큰 사람이 못 되나봐. 여기까지가 한계야.



*



"신세"


"얼씨구"


"방값"



ㅇㅇ는 냉장고 안으로 사온 술들을 진열해 넣었다. 옥탑에서 빠져 나오면 시달리지 않을 줄 알았지. 그래 내 생각이 짧았네 짧았어.

원필은 비워두었던 방에 이불을 던져두며 ㅇㅇ가 챙겨온 가방을 바라보았다. 공사가 한창이랬으니 아마 이걸 질질 끌고 여러 곳을 옮긴 흔적이 보였다. 자취방 공사에 대해 영현은 아예 듣지 못했으니 꽤 오랫동안 혼자 버텨야 했을 것이다. 좀 일찍 너를 찾을껄. 원필은 맥주캔을 시원하게 따 이미 한모금 마시고 있는 ㅇㅇ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른. 그딴게 뭐라고. 가족 간에 어른이고 아이가 어딨어. 원필은 ㅇㅇ의 손에서 맥주캔을 빼앗아 들고 벌컥 벌컥 들이켰다.



"술김이야. 에이씨 우리 누나도 안 안아주는데"



원필은 ㅇㅇ를 일으켜 꼬옥 안아주었다. ㅇㅇ는 원필의 어깨에 고개를 박았다. 이게 강영현 네 품이었으면, 그랬으면 진짜 좋았을텐데.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괜찮아"


"괜찮아 ㅇㅇㅇ"



ㅇㅇ는 울음을 삼켰다. 괜찮아 ㅇㅇㅇ. 




나, 진짜 괜찮아.




*



"저 진짜 그 분 마음에 들었어요"


"그랬으니까 네가 찾아왔겠지"


"한 번만, 다시 만나면 안 될까요?"


"네가 전화 씹었다던데? 아니야?"



영현은 ㅁㅁ을 향해 물었다. ㅁㅁ는 영현의 아카데미 동기였다. 대학도 졸업 전에 끼어서 선배며 나이는 찰대로 찬 이들의 텃세를 받으면서도 당찬 친구였다. 한없이 여렸지만 또 정말 할 말은 하는 친구. 영현은 그녀에게서 ㅇㅇ가 보여 진심으로 잘해주곤 했다. 



"딱 너같은 그런 애 있었어" 



그런데 김원필이라니? 작품 발표회를 뒷풀이였나, 그 다음 날 뜬금없이 원필에 대해 물었다. 그그 오빠, 되게 다람쥐 닮구 어 어어 눈 왕 크고 되게 잘생긴 친구 누구에요? 영현은 그 질문에 진심으로 골몰했다. 나한테 그런 친구가 있었나. 너무 간절해 보여 결국 영현은 카톡을 뒤져가며 물었었다.



"...어"


"얘야?"



ㅁㅁ은 도리질쳤다. 뭐야 반응. ㅁㅁ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르킨 건 -술 먹자. 라고 짧은 카톡을 날린 원필이었다. 얘? 되게 다람쥐 닮고 눈 왕 크고 되게 잘생긴 친구라며.  ㅁㅁ은 엄청난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렌즈낀다며, 렌즈를 두고 왔나. 영현은 재차 물었다. 잘 생각해봐 이 새끼 맞아? ㅁㅁ은 올망졸망한 눈으로 끄덕였다.



"...여자친구 있으세요?"



있을리가. 



제가 전화를 안 받은 건 맞는데...
ㅁㅁ은 우물쭈물했다. 손톱도 딱딱 뜯어가며 할 말을 고르는 것 같았다. 영현은 가만히 앉아 아메리카노를 빨았다. 



"...그러니까 그 그 분은 회사도 다니시구"


"응"


"또 잘생겼구"


"응?"



영현은 진심으로 반문할 뻔했다. 아니야 계속 말해.



"근데 저는 아직두 학교 다니고 있잖아요오"


"그게 왜?"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좋은 사람이 왜 절 만나겠냔 말이에요.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얘기 해보니까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분이었어요.

영현은 ㅁㅁ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면 만나면 되는 거지 뭘 망설이는가. 영현은 다시 아메리카노를 빨며 ㅁㅁ을 바라보았다. ㅁㅁ 역시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뭐, 보는 눈은 영 아닌 것 같지만.



"그냥 안 어울리니까.. 작가님이야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이 뭐라구 하겠어요"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럼 안 중요해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건 두 사람이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 부족하고 자신이 없을 게 뭐란 말인가. 남들에게 휘둘릴만큼이면 많이 좋아하지 않는 거겠지. ㅇㅇㅇ. 너처럼.



"작가님은 그럼, 연애 어떻게 했어요? 특히나 작가님은 진짜루 잘 나가잖아요!"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그거 이해 못해서 헤어졌다. 됐어?"



근데 아직도 내 탓 하더라, 걔. 진짜 지금도 보고싶은데 내가 잘못한 걸 모르겠어. 그냥 버려진 섬 같은 거지. 아직도 끝이 났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단 한 순간만이라도 다시 ㅇㅇ를 보고 싶었다.



"아무리 내 앞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괜찮다구 해도,"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거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생각해봐요 작가님. 그, 그 분은 안정적이고 멋지고 그렇잖아요. 그 사람을 질투하는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안을 폭이 안 된다는 거죠. ...나보다 큰 사람이니까. ㅁㅁ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같이 걸으면 내가 먼저 뒤쳐질 거에요"


"가서 일으켜주면 되지"


"매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같이 걷는 거지만 동시에 내가 걷는 길인데. 매번 일으켜줘야 한다면 그건 내 힘으로 가는게 아니라 그 사람만 보고 의지하는 거잖아요. 사랑하는 사람만 바라보고 의지 한다는 거, 생각보다 진짜 미안하고 내 자신이 용납 안 돼요. 나는 왜 이 사람을 일으켜 줄 수 없지? 나를 의심하게 되니까"



그렇게 놓아버릴 수 없으니까. 그건 그 사람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는 것밖에 더 되는 일이니까 시작하기 두려운 거에요. 아웅 작가님은 하나도 모르넹.
ㅁㅁ은 제 앞에 놓인 파르페를 빨대로 떠먹기 시작했다. 영현이 딱딱하게 굳은 것을 보니 저엉말 몰랐던 모양이다. 근데 여기 파르페 맛집이네. ㅁㅁ은 순간 원필을 머릿 속에서 떠올렸다. 에이 우선 그 분은 머릿 속에 지워보자 ㅁㅁㅁ.



"제가 그래서 헤어졌었거든요. 기다린다고 했는데 언젠가 질릴까봐. 설령 그런 일이 아주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너무 나약해져버려서 '하지만, 어쩌면, 그럴수도' 그 세 개에 메여 살았어요. 그렇게 사랑 받았는데 불안, 아니 외로움 속에서 살았다는 거죠"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왜 솔직하게 얘기 안 했어? 얘기 했으면 극복할 수도 있었잖아. 물론 네가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을 못 믿었어? 신뢰 관계에서부터 어긋난 건 아니고?"


"작가님"


"어"


"그건 사람 나름이에요. '나를 못 믿어?'라는 말은 반대로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떠나겠단 상대를 못 믿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에요"



아주 무거운 돌로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믿음'을 운운하는 그 사람이, ㅁㅁ의 말은 이 상황에서 정답이었다. 영현은 ㅁㅁ이 그랬듯 손톱을 망가뜨렸다. 너 김원필이랑 잘 맞겠다.



"아니요. 연애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였어요. 작가님두 저두 아주 실패했네용"



김원필이 그랬나? 영현은 원필의 정확한 의사를 물어보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했다. 



"작가님이 말했던 그 분은 왜 작가님과 헤어졌을까요"


"내 다릴 붙잡고서라도 애원했어야지"


"...날 놓지 말았어야지"



기다렸어야지. 날, 너는 기다렸어야지.



"내가 널 놓았다고 생각해?"


"ㅇㅇㅇ"


"넌 죽어도 모르겠지만,"


"ㅇㅇ야"


"날 놓은 건 너야"



그제서야 ㅇㅇ가 바라본 두 눈이 기억났다.



9.



"이 얘기 혹시라도 강영현한테 하면 그땐 진짜 가족이고 뭐고 없어"


"나도 이제 그정도 눈치는 있어. 내가 애야?"



넌 아직 하는 짓이 따악 애새끼야. 아직도 개나리반 김연필 같다고.
원필은 발을 뻗어 ㅇㅇ를 소파에서 밀어냈다. 나가, 나가 땅콩 알러지 새끼. 하하 시발 집주인이라고 텃세부리는 것 좀 봐.


원필은 그제서야 ㅇㅇ를 바라 보았다. 네가 왜 머리를 잘랐는지, 아프다며 평소 하지도 않던 그 가방 속에 수많은 귀걸이를 들고 다녔는지, 발목이 나가고도 힐을 신었는지. 이제 다 보였다. 그러나 제가 나설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어쩌면 두 사람의 첫 번째 이별보다 중요할테니까. 아무리 두 사람을 원필이 사랑한다한들, 이번만큼은 방관자를 자처했다.



"그리고 난 너 아니어도 머리가 아주 아프니까 찡찡대지마"


"아니 지가 다 캐물어 놓고 뭘 찡찡댔대. 왜? 무슨 일 있어?"


"아 별 거 아니야"



그냥 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어.


 
"여자네"


"자리 깔아라"



강영현 보기 불쾌하다며? 내가 보기엔 당장 회사 관두고 자리 까는게 연봉 더 높을 거 같다, 야.
원필은 안경을 벗어 연거푸 마른 세수를 했다. 별 거 아니니까 넌 니 일이나 알아서 잘 해결해. ㅇㅇ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원필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풀었다. 아- 이 사람이야? 원필은 필사적으로 휴대폰을 빼앗아드려 했다. 알 거 없다니까? 팔을 휘적대며 휴대폰을 낚아채려던 손길은 그 시끄러운 두 사람을 뚫고 울린 벨소리로 일단락 되었다.



"...전화 왔네. 받아"


"강영현이야?"



몰라. 니가 봐.

ㅇㅇ는 원필의 품에 휴대폰을 안겨준뒤 곧장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자창에서 언성이 높인 후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워크샵은 사정을 모른 채 다음 달로 밀려 있었다. 어, 왜 전화했어. 방문 밖으로 원필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미친 새끼야. 넌 또 왜 그래? 뭐? 우리 집? 야야 안돼. 나 집에 없어. 뭐 엘레베이터?"



환장하겠네. 정말 환장하기 직전이었다. 원필은 급하게 안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 나 지금 밖이라니까? 왜 니 맘대로 찾아와. 친구? 어 씨발 친구 안해 그러니까 다시 집 가. 새끼야"



그때였다. 머리가 산발이 되어버린 원필의 앞으로 조용히 다가온 ㅇㅇ는 휴대폰을 내밀었다. 



-내가 나갈게. 걔한테 그만 화내고 그냥 들어줘


"...지금 엘레베이터래. 어떻게 나가려고, 됐어. 내가 알아서 보내""


"계단 있잖아. 내일 퇴근하고 다시 올게"



야야. 야 ㅇㅇㅇ! 최대한 목소리를 죽여 ㅇㅇ를 붙잡았지만 그녀는 안방 문을 굳게 닫아버리고 현관으로 향했다. 너 여기 있으라니까? 오늘 또 어디서 자려고. 기어이 원필은 따라나와 그녀를 붙잡았다. 



"모텔 가면 돼. 조용히 나갈테니까 저 방 들어가지만 않게 잘 해줘라"



ㅇㅇ는 끝내 원필을 만류했다. 현관에 벗어두었던 힐을 찾아 그녀는 잔뜩 뭉친 발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찰나의 기계음은 부산스러웠던 두 사람을 모두 멎게 만들었다.



"대신 술 사왔,"



열린 문 틈새로 밀고 들어온 찬바람이 세 사람을 휘감았다. 그 정적 속에서 영현의 눈에 제 앞에 서있는 ㅇㅇ와 원필을 지나 그의 뒤로 미처 정리 하지 못한 ㅇㅇ의 캐리어가 들어왔다. 영현은 그새 저를 피해 고개를 떨군 ㅇㅇ와 캐리어를 번갈아 바라 보았다.



"김원필 다시 전화 할게"



그 미칠듯한 정적에서 도망친 건 ㅇㅇ였다. 얼어붙은 영현을 지나 걸었다. 마주쳐서 뭐하려고. 이제. 그냥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내일 퇴근하면서 짐만 가지고 나오면 되는 거야 ㅇㅇㅇ. 

갖잖은 합리화라도 해야만 다리에 겨우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분명 이건 벌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다신 받지 못할만큼의 사랑을 주는 강영현을 내팽겨치고 버린 것에 대한 벌이 분명했다. 영현을 안아줄만큼의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핑계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내가 못난 사람이라는 것을 포장하기 위한 핑계 중 일부.



"따라 오지마"


"ㅇㅇ야,"


"말도 걸지마"



당장이라도 꺾여버릴 것처럼 지쳐보였던 영현을 다시 마주하면 아주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가서 영현에게 꽂았던 비수를 다 뽑아내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너무 짧은 시간에 저지른 실수와 그 짧은 시간 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두 글자가 목구멍에서부터 치솟았다.



"따라 오지마"


"오지 말라고. 스토킹으로 신고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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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안 할게"



등 뒤로 물기 서린 영현의 목소리가 ㅇㅇ를 끌어 안았다. 



"말도 안 걸고 따라가지도 않을게. ...더 이상 너 안 붙,"


"...안 붙잡을게. 그러니까 ㅇㅇ야"


"..."


"지금 딱 한 순간만 나 봐줘. 일분도 아니고 진짜 딱 한 순간이어도 돼. 바로 뒤돌아 가도 정말 안 잡을게. 앞으로 너 불편하게 하지도 않을 거야. 그러니까 정말 한 번만"



네 얼굴 보여주라. ㅇㅇ야.



*



"같이 한다며. 프로젝트"



떨어져 지내보니까 어때?
원필은 부드럽게 핸들을 돌리며 물었다. 이렇게 퇴근길을 함께 한 것도 어엿 한 달이 막 지나고 있었다. 스튜디오와 대본 작업을 번갈아 하다보니 ㅇㅇ는 대부분 영현의 차에 실려 가다시피 퇴근하곤 했다. 원필이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런 퇴근길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뭘 어때. 뭐가 꼭 어때야 해?"


"넌 꼭 그렇게 꽈서 듣더라. 됐어, 가면서 맥주나 사.. 잠깐만. 어 여보세요?"


-"퇴근해?"


"어? 어"



차에 연결된 통화음은 그대로 ㅇㅇ에게도 들려왔다. 잔뜩 목소리가 잠긴 걸 보니 아마 꼴딱 새고 오후까지 작업을 한 뒤 쪽잠을 잔 것 같았다. 프로젝트 들어가기 전에 술 한 잔 하자. 네 집으로 갈게.



"우리집? 뭘 내 집에서 봐. 그냥 밖에서 봐"


"피곤해. 신세 좀 지자"



원필은 전방과 ㅇㅇ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왜 답이 없냐는 영현의 재촉이 원필을 짓눌렀다.



"...ㅇㅇ랑 같이 있어?"


"핸즈프리 아니야. 그냥 말해"



넌 꼭 그렇게 거짓말을 해야겠냐. ㅇㅇ는 원필을 흘낏 노려보았다. 그럼 뭐 이 상황에서 어색하게 끊으라고? 원필은 억울한 표정으로 맞대응했다. 어어어 야 빨간불, 빨간불!!



"...괜찮아?"


"아씨 아, 뒷골. 죽을래? 그 눈 뒀다 뭐할래? 진짜 내일 병원으로 출근할 뻔,"



차는 급정거하며 ㅇㅇ를 앞으로 훅 밀었다 끌어당겼다. 바짝 놀라 따발총처럼 원필에게 쏘아댄 뒤에야 ㅇㅇ는 다시 상황을 파악했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어. 끊지도 끊기지도 못한 전화는 여전히 '강영현'이란 이름 세 글자를 정직하게 띄어 놓고 있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정적을 끊어낸 것은 원필이었다. 내 집은 안 돼고 내가 갈테니까 기다려. 원필은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불편한 상황을 유지할 순 없었다. 특히나 영현과 프로젝트가 확정된 이상 이 애매한 상황을 정리할 필요성이 다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이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또 괜히 불쑥 이렇게 영현이 일상에 비집고 들어오면 목 안이 꽉 막혀 답답했다.



"내가 심했지"


"말이라고"


"상처 받았겠지?"


"끝에서 서로에 대한 예의를 안 지키긴 했지. 아 물론 니가"



원필은 객관적으로 답했다. 근데 그래도 괜찮아. 너는 뭐 못돼고 싶어서 못 됐었냐. 병주고 약주네 이 새끼.


원필의 시각에서 영현의 상처가 깊은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ㅇㅇ가 이렇게까지 될 때까지 몰랐던게 괘씸했지만, 그에 배로 영현은 많이 힘들어했다. ㅇㅇ가 어떤 마음인지 읽을 수 없었지만 영현은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해 서 있다는 것쯤은 너무 잘 읽혔다. 



"네가 지금 강영현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없어. 진짜 미우면 미운 거야. 너 못났다고 안 해"



주차장에 차를 세우며 원필이 말했다. 근데 이제와서 서로에 대한 예의 차리려고? 옛정 때문이면 그럴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 그건 진짜 못난 짓이니까.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고. ㅇㅇ는 엘레베이터 앞에서 마른 세수를 반복했다. 원필까지 떠난 퇴근길은 너무 차가웠다. 무감각하게 버튼을 누르고 무감각하게 문이 열렸다. 집에 들어왔을 때 그녀를 반기는 시린 온도가 못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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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갔어?"


"응. 지금"


"많이 졸려?"


"아니 그런게 아니구 씨, 몰라"



영현의 나직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빵 사다놨어, 배고프면 좀 먹고 자.
ㅇㅇ가 출근하고 다녀간 모양이었다. 잔뜩 어질러놨던 침대 위엔 블라우스와 스커트, 스타킹들이 곱게 접혀 올려져 있었다. 어두운게 싫을까봐. 퇴근 후엔 영현의 작업이 한창이었으니 영현은 꼭 ㅇㅇ의 집에서 나서기 전에 불을 켜두고 떠났다. 



ㅇㅇ는 어두운 거실을 가로 질러 방 문을 열었다. 여름이잖아. 이제. 계절 구분 없이 쌀쌀한 공기가 잔뜩 들러 붙었다. ㅇㅇ는 화장을 지울 새도 없이 허물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침대 위로 파묻혔다. 떨어져 있어보니 어떠냔 원필에 말에 답하지 못했던 건 그럴 자격이 없어서였다. 매일 매일 울었다. 예의 같은 것도 없이 절단해 버린 관계에서 영현의 상처 앞에서 이미 울 자격 같은 것은 없었다. 



"옛정 때문이면 그럴 생각 추호도 하지 마. 그건 진짜 못난 짓이니까"

"...씨이"



ㅇㅇ는 킁 코를 먹고 오른 팔을 집어 넣어 눈가를 문질렀다. 의지할 사람이, 아니 세상에 온전한 내 편이 없다는 것은 참 지치는 일이었다.



*



"작가님 이거"


"아, 네"



강작가 연애한다며? 어 맞아. 윤팀장님 아니야? 요즘에 계속 칼퇴하구 강작가님이랑 엄청 붙어 있던데. 와 역시, 인연은 따로 있네 있어. 윤팀장님 좋겠네 강작가님 진짜 괜찮잖아.


ㅇㅇ는 영현에게 건넨 글 앞에서 공손하게 양손을 모았다. 그 서류에 집중만 하면 된다. 타인들이 영현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든간에, 그냥 일에만 집중하면 되는 거다. 영현은 ㅇㅇ가 건넨 글을 꼼꼼하게 검토했다. 아니, ㅇㅇ 몰래 ㅇㅇ에게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볼 때마다 말라가는 것 같았다. 생기가 사라진 ㅇㅇ는 온전히 제 탓이었다.



"ㅇ대리. 이것 좀!"


"네"



ㅇㅇ는 정신없이 영현에게 인사를 건네고 회의실을 빠져 나갔다. 오 오늘도 야근인데. 오 망했는데. ㅇㅇ는 쌓인 잔업들을 보고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언제 다하고 가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하필 차도 안 가져왔는데. 원필에게 기다려하기도 염치 없었다. 



"ㅇㅇ씨. 저녁 먹으러 가자, 강작가가 쏜대"


"네? 아 저는 오늘 진짜 일이 많아서.. 맛있게 드시구 퇴근하세요"


"왜애. 일 많아? 어어, 그럼 쉬엄 쉬엄 해. 우리 갈게"



저녁이 어디있어. ㅇㅇ는 간단한 눈인사를 마치고 다시 폐인처럼 작성중이던 페이지로 넘겼다. 영현이 체크한 부분에 대한 수정도, 나머지 일들도 이유 없는 워크토네이도였다. 배에선 제발 아무거나 좀 처먹으란 신호가 진상을 피워댔다. 니네들이 야근을 알어? 가만히 있어. ㅇㅇ는 꼬르륵 대는 배를 찰싹 때렸다. 카페인이 간절했다.



-김원필 19:05


-한 잔만... 19:05


-ㅇㅇ. 5700원 19:08



나와. 원필은 간결한 답장을 남겼다.
처음엔 제가 바리스타라도 되냐며 팔팔 뛰어대더니, ㅇㅇ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금방 커피를 타 내려온 원필은 문 앞에 기대어 서 있었다. 아 골이야. 사원증을 찍기 위해 허리를 숙이니 머리가 핑 돌았다. ㅇㅇ가 잠시 고꾸라지니 원필은 반사적으로 그녀의 팔을 잡았다.



"이거 말고 밥 먹어. 가자"


"아 됐어. 바빠, 이걸로 충분해"


"다이어트 충분히 성공했어. 이제 진짜 피골이 상접하겠다고. 가자"



니가 다이어트를 알아? ㅇㅇ는 고개를 설레 설레 젓고 원필의 손에 있는 커피를 받아 들었다. 나 오늘 야근이야 너 먼저 가. 너 어떻게 가게. 버스 타고 갈 수 있어, 빨리 가 너 만날 사람도 있잖아. 원필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ㅇㅇ를 바라보았다. 진짜 괜찮아? 



"ㅁㅁ씨한테나 가"


"오늘 약속 없어"


"그럴 때 가는 거야. 아 미리 언질은 하고"


"나도 연애 해봤어. 훈수는 조용히 접어둬라 좀"



알았으니까 가세요. 나 진짜 일 해야 돼. 시계를 번갈아 바라보던 원필은 결국 손을 흔들었다. 커피랑 딴 것도 먹으면서 해. 네, 가세요 쭉 가세요. 


대충 열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막 영현이 보내준 피드백을 기반으로 수정을 마쳤으니 새로운 잔업을 집어 들어야 했다. 엥, 다 마셨네. ㅇㅇ는 똑 떨어진 커피에 잔을 미뤄두고 스탠드를 켰다. 안경을 가져오지 않아 시야가 뿌옇게 보였다. 야 김원필 나 벌써 늙었나봐.



"ㅇ대리이-!"


"팀장님? 왜 안 가시고,"


"우리 ㅇ대리 보고 싶어서 왔지! 일루와바 내가 제일 많이 아끼느은-"



경비가 해제 됐다는 음성과 함께 윤팀장은 도도도 달려왔다. 꽤 취한 것 같았다. ㅇㅇ는 저를 와락 끌어 안는 윤팀장을 얼결에 끌어 안고 그녀의 짐을 찾았다. 가방 두고 가셨구나. 내가 ㅇ대리 제일 아끼는 거 알지이-? 술김에 아주 많은 애정을 쏟아내는 윤팀장 뒤로 영현이 보였다. 그녀의 짐을 찾는 것 같았다. ㅇㅇ는 윤팀장을 지탱해 영현에게 다가갔다.



"여기, 가방"


"아 네"


"같이 가자아. 우리 삼차 가자 응? 끅, ㅇ대리이"



영현의 품에 풀썩 쓰러져 끝내 ㅇㅇ에게 애원하는 윤팀장을 웃으며 놓기는 정말 어려웠다. 제가 업을게요. 결국 영현의 등에 업는 것까지 도와주고 나서야 ㅇㅇ는 떨어질 수 있었다. 아 머리야. 어질한 시야에 휘청대던 ㅇㅇ는 습관적으로 내민 영현의 손 옆으로 벽을 짚어 일어섰다. ㅇㅇ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두 사람에게 어쩡쩡하게 허리를 굽혔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 네"


"ㅇ대리 빨리 퇴근해애. 내일 봐!"



영현은 윤팀장을 고쳐 업고 ㅇㅇ를 빠르게 훑었다. 어디 아픈가.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가 자꾸 발걸음을 묶으려했다. 두 사람은 ㅇㅇ가 잡아준 엘레베이터에 탔다. 문은 순식간에 닫혔다. 



* (과거)



"..야아 강영, 현. 나 토할 거 같애"


"많이 울렁 거려?"


"나 내려, 우욱"



영현이 지상에 내려주기도 전에 울렁이던 속이 쏠려 뱉어냈다. 으웩, 아 정과장 개새끼.. 우욱. 전봇대를 짚고 솓구치는 속을 모두 게워낸 뒤에야 ㅇㅇ는 주저 앉았다. ㅇㅇ야 나 봐봐. 영현은 반쯤 맛이 간 ㅇㅇ를 붙잡고 남방 소매로 입가를 닦아주었다. 



"아 드러워.. 하디, 마아요"


"뭐가 더러워. 봐봐, 응?"



힘을 주어 고개를 팩팩 돌리는 ㅇㅇ를 간신히 붙잡은 영현은 튀어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볼이 빨갛게 상기된 것이 이리 귀여울 수 있을까. 영현은 ㅇㅇ의 뺨을 쥐고 짧게 입술을 맞췄다. 



"집 가자. ㅇㅇ야"


"오빠"


"응 집에 가면서 뭐, ...어?"


"오빠아"



안아조.
비식비식 웃으며 영현의 품을 갈구했다. 빨리이 안아조. 빨리. 영현은 잠시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어어, 이리와. 엉겹결에 ㅇㅇ를 끌어 안고 등을 토닥였다. 주황색 가로등이 영현의 귀를 발갛게 물들였다.  잘 안겨 있는가 싶던 ㅇㅇ는 대번 고개를 홱 처들어 영현을 올려다 보았다.



"안 드러?"


"어? 어"


"지짜?"



당연하지. 
아무렇지 않은 영현의 답이었다. ㅇㅇ는 영현에 품에 무게를 싣고 겨우겨우 일어났다. 업어줄게 ㅇㅇ야. 넘어져. 



"빨리 갈래"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그래 빨리 가자"


"아니이, 끅"



양치하고 싶어. 영현은 ㅇㅇ를 고쳐 업다 그대로 웃음이 터졌어. 그래 빨리 가자.



"아니이.."


"응?"


"양치하구"


"응"


"한 번 더 할래"



*



"...미쳤어. 왜 울어"



아무래도 집에 가야했다. 영현의 등에 업힌 윤팀장에게서 파생된 과거는 염치 없게 눈물을 뽑아냈다. 미쳤어 미쳤어. 집 가자 ㅇㅇㅇ. 

ㅇㅇ는 가방을 쥐고 출입카드를 경비 시스템에 띡 찍었다. 엘레베이터를 기다리기까지 자꾸 베어나오는 눈물에 ㅇㅇ는 손톱을 잘근거리며 눈가를 문질렀다. 염치없게 뭐하는 거야 ㅇㅇㅇ. ㅇㅇ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엘레베이터에서 내렸다. 다들 회식이 겹친건지 여전히 로비는 시끌벅적했다. 자꾸 문지른 눈가가 따끔거렸다. 



"..아"



영현이었다. 정신을 못 차리는 윤팀장 키에 맞추어 서 숙취제를 내미는 영현이 보였다. 그냥 그대로 가려고 했는데, 정말 그러려고 했다.



[데이식스/강영현] 리퀘스트: 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만나는 썰 中 | 인스티즈

"...ㅇㅇ,"



영현의 두 눈을 마주치자마자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


下편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무작정 下편에 몰아 넣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끝, 할 수가 없더라구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제 글을 읽어주시고 기다려주시는 모든 분들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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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선댓이요ㅠㅠㅠㅠㅠㅠㅠㅠ눈물나게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2
ㅠㅠㅠㅠㅠㅠ미친다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넘 좋아여 최고..
4년 전
독자3
엉엉엉엉ㅜㅜㅡㅜㅜㅜㅜㅜㅜㅜㅜ흐윽 너무 좋아요ㅜㅜㅡㅜㅜㅜㅡㅜㅜ진짜 악ㅜㅜㅜㅡㅜㅡㅜㅜㅜㅜㅜㅜㅜㅠㅠㅜㅜ믿고보는랑데부..ㅜㅜㅡㅜㅜㅜㅜㅜㅜㅠ선생님 진짜 만수무강 백년해로 무병장수 로또당첨 꽃길만 걸으시길..후하후하 너무 좋아여어어ㅜㅡㅜㅜㅜㅜㅜㅜㅜㅠ흑 사랑함다ㅜㅡㅜㅡㅜㅜㅠ
4년 전
독자4
제 데식 입덕 계기 중 8할은 선생님 글 덕분입니당..랑데부 님 글로 처음 데이식스 접해서 현 입덕했어요ㅜㅜㅠ글 너무 잘쓰셔징차ㅜㅜㅜㅠ
4년 전
독자5
와 ㅜㅜㅜㅜㅜ 작가님 진짜 작가님 글은 항상 너무 공감가는 말이 많은것같아요
4년 전
독자6
으아아아ㅏㅏ 글 너무 좋아요ㅠㅠㅠㅠ 작가님 오늘도 글 잘보고갑니다ㅠㅠ
4년 전
독자7
작가님 글 진짜 정말 좋아요ㅠㅜㅜ 읽을 때마다 눈물이 주르륵 펑펑펑이에요;-;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다음에 또 보러올게요 작가님 이번편도 감사해요
4년 전
독자8
작가님 울어도되죠ㅠㅠㅠㅠㅠ 증말 너무 좋다구요... 글 써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ㅠㅠㅠㅠ 작가님 최고..👍👍
4년 전
독자9
작가님 진짜 항상 말씀드리지만 너무 최고십니다ㅠㅠㅠㅠㅠㅠ이 밤에 또 울었어요😭😭글이너무너무 좋아요❤️❤️ 항상 응원합니다
4년 전
독자10
이번 영현이 진짜 여주 너무너무 좋아하는게 잘 보여서 마음이 찢어져요..원피리..피리는 보살인가요 대단한 친구..여주도 아직 좋아하는데 메몰차게 하고 참는게 눈물 나올 뻔 했습니다
작가님 하고 싶으신거 다 하세요
작가님 뭘 하시든 띵작이 그냥 막 그냥
작가님은 띵작메이커.

4년 전
독자11
아ㅠㅠㅠ 오늘도 안타까운 영현과 여주ㅠㅠㅠㅠㅠ 그래도 원필이와 잘 풀은것같아 다행이네요ㅠㅠ 오늘도 미친분량!! 미친 필력!!! 작가님은 역시ㅜㅠㅠㅠ 금손이세뇨ㅠㅠㅠㅠ 사랑해요 작가니뮤ㅠㅠ
4년 전
독자12
눈물난다 진짜,,,몰입도 최강ㅜㅠ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13
작가님 ㅠㅠㅠㅠㅠㅠ 해피엔딩이 시급합니다ㅜㅜㅜㅜ 하루하루ㅠㅠㅠㅠ 행복해야ㅠㅠㅠㅠ
4년 전
독자14
작가님 사랑합니다❤❤❤❤ 꿀 떨어지는 해피엔딩 기대해봐도 좋을까요?ㅠㅠㅜㅜㅜㅜㅜㅠㅠ 잘 읽고 있습니당 명작이에요!!! 작가님 다음 글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당..... 그저 눈물만...... 흑흑😭😭😭😭😭
4년 전
독자15
작가님 진짜 최고에요ㅠㅠㅠㅠㅠㅠㅠ영현이랑 여주 얼른 행복해지길ㅠㅜ🙏 글 너무좋아요 잘 읽었습니당❤
4년 전
독자16
진짜 랑데부작가님 체고ㅜㅜㅜㅜㅜ 진짜 읽는 내내 심장이 몽글몽글해지고ㅠㅠㅠㅠ 엉엉ㅠㅠㅠ
4년 전
비회원182.233
오늘도 진짜 재밌게 읽었습니다ㅜㅠ
서로 얼른 행복해져라....ㅜㅜㅜㅠ행복해라

4년 전
독자17
최고ㅠㅠㅠㅠㅠㅠ너무 마음 아파요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18
작가님ㅠㅠㅠ 너무너무 기다렸고 기다린만큼 또 웃음과 눈물을 주고 가시네요ㅠㅠ 작가님 항상 좋은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4년 전
독자19
여주와 영현이 서로 너무 힘들어하는 게 보여서 마음이 아프네요ㅠㅠㅠ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4년 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4년 전
랑데부
여주의 꿈은 작가가 맞지만 일찍 현실과 타협을 보고 찾은 긍정적 최선이 잡지사 취직이었습니다! 독자님들께서 아리송한 의문으로 헷갈린지 않게 노력하는 랑데부가 되겠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찾아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윗식스한 밤 되세요:)
4년 전
독자21
작가님 너무 기다렸고! 글 너무 재밌게 보고 있어요!!ㅠㅠ 심장이 저릿하게 아프고 막 마음 아프고 그러네요ㅠㅠ둘이 얼른 행복해지길...
4년 전
독자22
아아아아ㅏ 징짜류ㅠㅠ퓨ㅠㅠㅠㅠ 영혀뉴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23
진짜 ㅠㅠㅠㅠㅠ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4년 전
독자24
와ㅜ진짜ㅠㅠㅠㅠㅠㅠㅠ 너모 좋은ㄱ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25
작가님 진짜 제 인생은 이 글을 읽기 전과 후로 나뉩니다 ㅠㅠㅠㅠㅠㅠ 둘 다 너무 안타깝고 ㅠㅠㅠㅠ 너무 좋아요 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26
선댓하고 읽어요ㅠㅠㅜㅠㅜㅠㅜㅜㅠㅜㅠㅠ 아 밑분 말씀처럼 눈물나게 좋기도 ㄴ한데 또 슬퍼서 눈물도 나오고...ㅠㅠㅠㅜㅠ
4년 전
비회원107.249
두달 전에 우연히 발견하고 몇번씩 읽고 또 읽었는데 이렇게 돌아와서 너무 조아여 ㅠㅠㅠㅠ 마지막편 기다리규 있을게여!!
4년 전
독자27
이 새벽에ㅠㅠㅠㅠ또 눈물쏟아내고ㅠㅠㅠㅠㅠㅠㅠㅠ작가님 진짜 상편도 그렇지만 이 시리즈는 새벽에 봐야 진또배기에요ㅠㅠㅠㅠ너무 마음아프고 막 시큰거리고ㅠㅠ둘이 빨리 화해해라ㅠㅠㅠㅠ
4년 전
독자28
글 속의 내가 무슨 기분인 지 너무 이해가 되어서 글을 읽는 동안 한참 울었어요
작고 초라한 나를 보고 내 가수를 보면 내가 더 한없이 초라해져보여서 근데 사실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다 내가 너무 약하고 못난 걸 알기에 꾹꾹 담아뒀었어요 아무리 팬이라지만 가수에 맞는 부끄럽지 않은 팬이 되고 싶어서 그래야 할 거 같아서 꾸며도 보고 했지만 포장지 안에 나를 발견하면 그땐 정말 우울해서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구요 글을 읽으면서 원필이가 해주는 말이 너무 위로가 되어서 한구절에서 펑펑 울어버렸네요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할게요

4년 전
독자29
ㅠㅠㅠㅠㅠㅠ 기다릴게요 작가님 ㅠㅠ
4년 전
독자30
헐ㄹ 작가님 다시 읽으러 왔어요ㅠㅠ너무 현실적이라 눈물 나고 빨리 다음편 알림 뜨면 바로 올게요ㅠ!!!
4년 전
독자31
미친다 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최고에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32
미친ㅠㅠㅡ작ㅈ갓님 최고임니다ㅠㅠㅠㅠㅜㅡ
4년 전
독자33
진짜 최고입니다 ... ㅠㅠㅠㅠㅠㅠㅠㅠ 그저 갓 .... ㅠㅠ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34
원필이가 해주는 말들 하나 하나가 저한테 위로해주는 거 같아서 내 잘못이지만 아닌 거 같고 그렇지만 또 맞는 거 같기도 하고 ㅜ 복잡한 마음이 드네요 결론은 여주 영현 원필 모두 행복하자 ㅜㅜ
4년 전
독자35
데이식스 포장 들으면서 다시 읽으니까 또 다르네요 여주의 말이나 생각들이 너무 다 와닿고 이해되어서 울뻔했어요 여주나 영현이나 다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작가님도요!
4년 전
독자36
ㅇ..언제...ㅇ..오세요... 작가ㅣ님....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보고싶어요 ㅠㅠㅠ 미치겠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37
작가님 잘 지내시나요 ? 입덕한지 얼마 안돼서 이 글 최근에 봤는데 필력이 어후 . . 최고십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작가님 보고싶어요! 날도 추운데 감기 조심하시고 계신지! 보고싶어요 작가님 돌아와주세요 ㅜㅜㅜㅜ
4년 전
독자38
여주가 영현을 안을 사람이 못되어서 더 좋은사람 만나라고 헤어져주려고 하는과정이 너무 슬퍼요. 영현인 그냥 여주만 있음 되지만 여주는 그런 영현에게 자신이 너무 부족하게 느껴지는게 안타까워요.......한 사람이 너무 잘나머려서 이런상황이 된건가ㅠㅠㅠ그냥 둘이 사랑하면 안되나요ㅠㅠ
4년 전
독자39
왠지 모르게 여주 현실이 공감가서 더 슬프네요ㅜㅜ 어서 둘이 행복한 게 보고 싶어요ㅠㅠ 작가님 그저 갓...
4년 전
비회원9.209
진짜 이 글 엄청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와 진짜 다시봐도 여운도 엄청 오래가고 진짜 미치겠습니다... 너무 재밋고 너무 좋아요.. 진짜 글 너무 잘쓰세요... 빨리 하 편도 보고 싶네요.. 기다리겠습니다 ㅠㅠ 오랜만에 작가님글 다 정주행중인데 너무 행복해요!! 글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4년 전
랑데부
생일에 이렇게 좋은 선물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편 제작중에 있구 이렇게 기억해주셔서 정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찾아뵙겠습니다❤️
4년 전
독자40
작가님 처음 댓글 남기네요!!! 갑을썰을 두번이나 정독할정도로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이제 회원이되서 작가님 신작 알림도 신청하고, 이렇게 댓글도 다네요 :) 앞으로도 작가님 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4년 전
랑데부
안녕하세요. 랑데부입니다. 부족한 글 열심히 또 두번씩이나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회원이 되셔서 이렇게 다시 만나뵙게되니 제가 더 행복하네요:) 좋은 글로 찾아뵈어야 하는데 답글로 먼저 인사를 드리게 됐네용ㅎㅎ 느린 발걸음으로 작업 중이지만 기다리시는 독자님들 기대에 미칠 수 있게 더욱 열심히 하는 랑데부 되겠습니다. 글을 사랑해주시는 마음 오늘 밤 다시 돌아볼 추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년 전
독자41
헐 저 성덕된건가여...(감출 수 없는 기쁨) '작가님 글=좋은 글' 은 불변 법칙이니 부담 갖지 마시고 작업해주세여 ㅎㅎㅎㅎㅎㅎ 독자의 작은 바람이랍니다..☆
4년 전
독자42
진짜 너무너무 맘아프다 ㅠㅠㅠㅠㅠ 빨리 재회했으면 ㅠㅠㅍㅍㅍㅍㅍ
3년 전
독자43
읽다가 눈물 ㅠㅠㅠㅠㅠ줄줄 ㅜㅜㅠㅠㅠㅜㅜ필력 대박,,
3년 전
독자44
아프더라도 이런 사랑 해보고 싶어요 ㅠㅠㅠㅠ 모든게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너무 사랑하기에 아픈 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요 : )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겠죠?
3년 전
비회원.
올해부터 보던 독자입니다 ㅜㅠ작가님 글 실력 완벽..
여주 다이어트 너무 무리하는데 저러다 큰일나는 거 아닌가요 ㅜㅠㅠㅜㅠㅠ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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