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온 주위가 부서질 듯 새하얗게 되었을 때, 내가 딛는 자리마다 검은 자국이 꾹꾹 새겨졌다.
그것은 마치 검은 것이 자기를 알아달라는 듯 몸부림치는 것 같아서, 나는 발을 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닿는 자리마다 새까맣게 물들었다. 딛으면 딛을 수록 새하얀 것이 새까맣게 물들 줄을 알면서도, 나는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온종일을 머무른 너에게서 내가 잊혀진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002
온 주위가 사라진 듯 새까맣게 되었을 때, 내가 딛는 자리에는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너에게서 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 나는 발을 떼어 낼 수가 없었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너에게서 날 완전히 잊게하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내가 딛는 자리에는 검은 자국이 새겨졌다. 어째서인지, 아무런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너에게서 완전히 잊혀졌다. 너에게서 나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003
마치 검은 땅 위, 검은 발자국 이었다. 나는 너에게 스며들었지만,
너는 나를 발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