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발이 '국가시스템연구소'로 향한다. 당당한 발걸음 뒤로 조금은 위축되어 소심한 보폭으로 걷는 남자가 따라온다. 앞서 걷던 자가 문 앞에 서서 파란 버튼을 누른다. 버튼 가운데가 갈라지고 나오는 빛이 그 남자의 가슴팍에 달려있는 배지를 훑는다. "S"라고 써져있는 글자를 따라 스캔하던 빛은 사라지고 '확인'이라는 말과 함께 문이 열린다.
큰 컨테이너 박스로만 보이던 건물은 안으로 들어오니 온갖 최첨단 장비들이 즐비했다. 남자는 허공에 떠도는 디지털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고개를 숙이자 앞에 있던 자도 멈춰 섰다. 눈으로 살짝 흘겨 보니, 자신의 앞잡이가 되어주던 발 앞에 신발이 하나 더 늘었다.
"상황 종료한지 언제 적인데 이제 와?"
"내가 능력자를 찾아왔다, 이거야!"
민규가 지칭하는 '능력자'는 자신을 얘기하는 듯한 뉘앙스의 말이 나오자, 고개를 들어 그들을 응시했다.
흔들리는 눈빛, 떨리는 손. 필시 그는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이다.
"이름이 뭐예요?"
"이석민이요…."
이름을 물어보던 그녀는 '반갑다'는 인사를 형식적으로 내뱉고는 다시 민규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래서, 능력은?
"아무래도 'Revival' 같아."
"그거 알아내느라 늦었어? 그래도 너무 늦었는데."
"말도 마! 거기 수습하느라 얼마나 애먹었다고! 요즘 그 자식 문어에 관심 있는지 죄다 문어로 만들어서 먹물 치우느라 허리가 지금 끊어질 것 같단 말이야."
"하…."
"일단 저 사람 눕혀놓는 게 좋겠지?"
"응. 미리 약 넣어 줘."
석민은 등골이 오싹했다. 낯선 장소 안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눕히네 마네 얘기하고 있는 것이 정상인가. 약은 또 뭐고. 혼미해지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 석민은 고개를 세차게 저어본다.
"저… 꼭 여기 있어야 하나요?"
"당연하죠. 제가 발견 안 했으면 당신 아주 끔찍한 사람들한테 붙잡혔을 거라고요."
"……."
"일단 가서 얘기하시죠. 당신 몸 상태 곧 최악으로 치달을 걸."
"그걸… 어떻게…."
"능력을 최초로 쓰게 되면 그 여파로 며칠은 좀 아플 거예요."
"……."
"온몸에 열꽃까지 펴서 좀 괴로울 거……."
이미 쓰러졌네. 자신이 능력자를 발견했다는 것이 신이 나는지 눈까지 감아가며 열변을 토해내던 민규가 눈을 뜨자, 이미 석민은 온몸을 후끈하게 하는 열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쩝, 입맛을 다시던 민규는 머리를 긁적이곤 숨만 새근새근 쉬고 있는 석민의 어깨에 손을 넣어 몸을 일으킨다.
"아유, 무거워!"
허몽(虛夢)
"오늘은 찾았어요?"
한솔이 높은 위치에서 자신을 등지고 한없이 아래만 내려다보는 지훈에게 하는 말이다. 처음 나설 때 '무언가를 찾고 있다'고 했던 그는, 몇년이 지난 지금도 모든 상황을 다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서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다 들어가곤 한다. 등 뒤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그들이 차고 있는 완장을 살랑살랑 건드렸다. 그 덕에 완장이 머금고 있던 붉은빛이 은은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데려갔어."
"네? 누구를요?"
"핏덩어리."
"아…."
"안 뺏어?"
"네, 뭐…. 굳이 필요 없는 것 같아서요."
"다른 애들은 뺏으려고 난리던데."
지훈은 뒤를 돌아 한솔을 바라봤다. 그는 이제 막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된 사람을 '핏덩어리'라고 표현했다. 완장을 간질이던 바람이 지훈의 머리칼을 다 뒤집는다. 한솔은 슬쩍 지훈의 눈을 피했다. 꼭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 먼저 간다. 이번에도 별 소득이 없었는지 지훈은 미련 없이 한솔을 두고 유유히 사라졌다. 지훈과 대화하고 있는 사이 떠나간 그들의 자리를, 한솔은 눈을 감고 그대로 느꼈다. 그 불쌍한 존재의 능력이 무엇인지 파악이 되자 별안간 작은 탄식을 내뱉는다. 아쉽게 됐네. 여러모로.
"당신을 조금만 더 빨리 만났으면 좋았을걸."
머리가 너무 지끈거린다. 석민은 쿵쿵대는 머리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간신히 작게 뜬 눈으로 여기저기 둘러보니, 병원인 마냥 자신의 손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고 옆에는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거슬리게 끄트머리에서 돌아다니던 검은 옷의 사나이까지 눈동자에 들어왔다.
"어? 깨어났네?"
"……."
"Revival 능력인데, 정작 자신한테는 못 쓰는 건가. 안타깝네."
"그게 뭐예요…?"
"아까 당신도 봤잖아. 당신 능력이야. 쉽게 말하면 치유 능력인 거지."
"……."
열은 아직 있네. 민규가 큰 손으로 석민의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석민은, 편하게 들으라며 간단하게 세이비어의 생활을 읊어준 민규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한순간에 갑자기 능력이 발현되었고, 얼떨결에 세이비어에 들어왔다. 결국엔 'EP'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석민은 아직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 현장에서 아니, 훨씬 전부터 그들이 어떠한 말을 듣고 생활하는지 자신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자세한 건 나중에 다 천천히 설명해줄 테니, 일단 낫고 봅시다."
"아까 거기서 다 들었어요. 사람들 얘기."
"……."
방을 빠져나가려던 민규의 발이 우뚝 멈춰 섰다. 애써 잊으려 납작하게 밟았던 잡초들이 하나둘씩 다시 일어나 맘을 어지럽혔다. 민규는 잘게 입술을 깨물었다.
'괜찮으세요? 제 손 잡고 일어나세요.'
'허, EP… EP다…! 이 더러운 괴물들!'
뭐가 좋은 거라고 그걸 또 기억하고 있대…. 민규는 방향을 틀어 벽에 기대었다. 대화를 하고 있지만 상대방은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못마땅한 민규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 내리는 순간, 이불 위로 무언가 후두둑 떨어진다. 서서히 짙어지는 이불. 석민은 울고 있었다.
"저는… 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한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
"숙명인 거야.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도망칠 곳도 없어."
"……."
"그건 지금까지 일반인으로 살아온 당신이 더 잘 알겠지. 내 앞에서 발현된 걸 고맙게 생각해. 킬러한테 발견되었으면 당신-"
"……."
"이미 죽었어."
더 자. 이따 다시 올 테니까. 민규는 식탁에 있던 곽휴지를 석민의 앞에 두었다. 크게 들썩이는 어깨를 두 어번 두들겨준 민규가 방문을 열고 나가자, 이윽고 굳게 다문 석민의 입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져 나온다. 석민은 제풀에 지쳐 잠에 들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알면 더 좋은 정보*
- 세이비어(Savior)는 배지를 차고 다닌다.
- 킬러(Killer)는 완장을 차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