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01 ; Nonsummit
탕탕, 시끄러운 총 소리가 온 건물 내를 울리는 데도 모두 개의치 않는 듯 과녁의 한 가운데에 정신을 집중시킨다. 이 건물이 시내에 있었다면 주민 민원이 폭주했을 거야. 그렇지, 알베? 실없는 농담을 건네도 사실 이 건물은, 지구에서 가장 방음이 잘 되는 건물 중에 하나였다. 아니, 아마 최고로 방음이 잘되는 건물일걸. 망할 정부소재의 건물들을 빼고 말이다.
"줄리안, 넌 왜 사격 연습 안해?"
"어제 몽땅 10점 맞췄거든. 오늘은 쉬는 날이야."
"……."
알베르토는 불만스럽다는 얼굴로 그럼 얼른 이 사격장 안에서 꺼져, 그렇게 말했고, 줄리안은 늘 그렇듯이 능글맞은 얼굴로 그럼 먼저 들어갈게요, 선배! 발랄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테러가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간절히 바라며 시작된 하루였다.
Geek in the Black
글. 봄 그리고 lilly
서기 이천오백년, 지구가 하나의 나라로 통합됐다. 세계 삼차대전과 지독한 대공황의 몸살 뒤 벌어진 일이었다. 그 이전에 있었던 나라의 개념은 구역과 도시가 대신하게 되었고 세상의 모든 여권과 국경선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구가 태어난 이후 가장 아름답다고 전해지는 이 시기는, 무척 불행하게도, 테러가 일어나기 완벽한 세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의 설거지 당번은?"
"저요."
"해커팀 애들 지뢰찾기만 하지 말고 사격연습 좀 시켜야 돼. 너랑 나랑 장이랑 셋이 방을 쓰는데 네가 장보다 사격을 못하다니……."
"그 전에 사격으로 설거지 당번 정하는 건 아주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선배…."
그래서 만들어진 조직이 nonsummit이었다. 비정상. 한마디로, 그들은 정부조직이 아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정부가 가장 의지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에 몇 남지 않은 이런 친환경적 산을 훈련공간과 숙소로 제공할 리가 없잖아? 뻔뻔하게 사격왕의 자격으로 받은 치킨을 뜯으면서, 줄리안은 오늘의 설거지더미를 쳐다보았다.
"싫으면 열심히 해. 위안보다 사격을 못하는 블레어군."
"기냥 선배랑 방 같이 안쓰는 날을 기다리는 게 빠를 것 같은데요."
아무리 블레어가 불만을 드러내도, 낄낄 웃는 줄리안의 얄미운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 선명한 금발을 가진 백인계열 남자는, 이 방 뿐만 아니라 논써밋 멤버들 중에도 가장 사격에 천재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니 분명 전 지구적인 실력임에도 부인할 바가 없을 것이다. 출신 지역은 7구역. 삼백여년 전까지 벨기에로 불렸던 곳. 평화로운 지역이나 어째서 남자가 그런 사격실력을 갖추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뭐, 난 설거지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힘든진 잘 모르겠네."
재수없어…. 블레어는 정말 짜증나지만 거짓말이 아닌 것이 분명한 남자의 말에 결국 숙소를 벗어나기로 결정하고 해커실로 향했다. 타쿠야랑 게임 한 판만 해야지. 비록 일이 없는 날마다 최신 슈퍼컴퓨터를 낭비하는 것으로 나날을 보내지만서도 그에 동지가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참 기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테라다! 해커실의 문을 열자마자 어김없이 보이는 바로 저 남자 말이다. 테라다 타쿠야, 4구역 출신의 그는, 누가 보면 모델이라고 생각할 지도 몰랐으나 엄연히 최고급 실력을 가진 해커였다. 혹은,
"기욤 선배… 너무한 거 아니에요?"
"타쿠야, 너 진짜 못한다!"
: 게임 좆병신이기도 하고… 블레어는 행동팀의 기욤과 게임을 하는 타쿠야를 보면서 말 없이 혀를 쯧쯧 찼다. 어, 블레어 안녕? 행동팀 주제에 알 수 없을 정도로 게임을 잘하는 기욤이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블레어는 그제야 어색한 웃음과 함께 이 공간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블레어는 이 조직에서 가장 유순하다는 남자를, 그가 웃으며 망치로 사람 머리를 깨부수는 장면을 본 이후 아주 무서워했으니까.
다음 타깃은 식당이었다. 이쯤이면 블레어와 친한 로빈이 운동 후 식사를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데이아나! 이번에도 역시 크게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었지만 식당 안에 있는 사람은 로빈 한명 뿐만이 아니었다. 냠냠 평소대로 닭가슴살을 먹는 새하얀 로빈의 옆에는, 그와 상당히 대조되는 색감의 피부를 가진 흑인, 사무엘이 앉아있었다. 분명 입만 다물면 간지철철일게 분명한 그도 실실 웃으며 로빈의 다이어트 식단을 방해하는 꼴은 익숙하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아서, 블레어는 로빈에게 다가가며 어느 쪽에 앉아야 샘이 저에게 말을 걸지 않을지 고민해야만 했다.
"블레어, 온 김에 나도 토스트 하나만 구워줘!"
… 사실 그딴게 소용없는 시도였음은 물론이다.
"블레어한테 일 시키지마여~ 쟤 나 보러 온걸걸?"
선배가 구워 드세여…. 그렇게 대답하지 못한건 짬밥없는 자의 설움이니, 블레어는 로빈에 대한 마음 속 애정도를 상승시킨 채 주방으로 향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리고 주방에서 남자, 다니엘을 만난건 어쩌면 블레어에게 아주 좋은 일 일지도 몰랐다. 폭탄 해체 계에서 가장 유망한 엘리트인 남자는 그의 전공부류와 썩 다르게도 아주 다정하고 배려심깊은 선배였으니까 말이다.
"어, 윌리엄스? 웬 일이야?"
"안녕하세요- 저 오취리 선배가 토스트 구워 오래요."
"마음까지 새카맣게 못된 선배네."
표표하게 띄우고 있는 미소는, 금방이라도 그의 고향인 11구역에서 여느 클래식이라도 듣는 듯한 기분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순간, 블레어는 그가 던진 '농담'에 반응조차 하지 못할 뻔했다. 농담인지 아닌지 알아차리고 일일히 반응해야 한다는건, 후배로써 때때로 어려운 일이다. 블레어는 정확히 두장이 남은 식빵을 토스터기에 집어넣곤,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있는 선배에게 말을 걸었다. 새카만 커피만큼, 늘 웃고있는 남자의 속은 알기가 어렵다.
"근데 알베르토 선배는요?"
"아, 알베는 지금 장 데리고 폭탄팀 신입 교육중."
"그 불교신자요? 아니 그보다… 선배 말고 위안형이랑요?"
응. 그치만 신입이, 불교신자가 아니라 힌두교신자래. 언제보아도 남자의 미소는 너무나 상냥해서, 블레어는 차마 뒷 말을 잇지 못하고 퐁, 튀어나온 토스터기 속 식빵들과 함께 주방을 빠져나왔다. 장, 2구역 출신의 남자는 블레어의 룸메이트였다. 소위 말하면 천재로 부류되는 인간. 혹은… 예상할 수 없는 사람? 그렇지만 정말 폭탄에 관해 엘리트 코스를 착착 밟은, 심지어 알베르토와 더 친한 다니엘을 놔두고 위안과 함께 신입교육을 하는건 조금 이상했다. 블레어는 샘에게 토스트를 내밀고 그의 앞에 앉아, 실로 폭탄같은 조합의 세 사람을 상상했다.
이 말도 안되는 조직의 리더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동양인, 그리고 은근 허당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넉넉한 성격의 신입.
"이름이 수잔이라고 했나?"
"응?"
"폭탄팀 신입 말이여. 너 위안형이랑 룸메니까 봤을 줄 알았는데. 위안형이 직접 교육한다고 하길래."
"아, 아니. 안봤어."
"수잔… 여자인 줄 알고 기대했습니다아."
"36구역 출신이던데?"
"그럼 성이?"
"샤키아. 수잔 샤키아."
특이하네. 블레어는 로빈의 무심한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더이상 자신이 속해 있는 이 지리한 조직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지나치게 소규모라곤 하지만, 복작복작한 남자들의 신상을 다 기억해내는건 블레어에게도 그닥 재밌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일단 블레어에게 중요한건, 눈 앞에 있는 제 친우 로빈과 오늘 하기로 한 사격 내기를 하는 것이었다.
아, 정말인지 테러도 해킹도 없는, 평화로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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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릴레이소설 입니다.
02. 분량조절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