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 남사친과 능구렁이 남친 사이 2
04 (너랑 하고 싶은 일)
"……."
오전 11시를 갓 넘인 시각이었다. 어젯밤은 정말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설렘과 떨림으로 가득한 마음속은 쉽게 진정될 리가 없었고, 눈을 감아도 김종인의 모습이 아른거리듯 보여왔다. 자꾸만 녀석이 해온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정스레 느껴지던 목소리 또한 귓가를 간질였다. 결국 새벽 네 시가 되어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고, 이렇게 늦은 시각에 기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어제 펑펑 눈물을 쏟아낸 탓에 눈이 팅팅 부어있었으니 말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김종인은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다. 유독 헤어짐이 아쉽던 어제였지만, 돌아서자마자 전화를 걸어오는 녀석 탓에 잠시나마 느껴졌던 아쉬움마저 싸악 사라지고 말았다. 제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만 통화를 하자며 제법 어리광을 부려오는 녀석의 모습에, 내 심장은 한시도 진정될 수가 없었다.
[일어나라]
침대에 살짝 걸터 앉곤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화면엔 오전 9시 40분쯤 도착한 문자 메시지가 조그맣게 띄워져 있었다. 발신인은 김종인이었고,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다시금 어제의 떨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 친구가 아닌 남자친구…. 김종인이 내 남자친구…. 김종인이 내 애인…. 아직까지도 믿기지가 않았다. 자꾸만 지금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확인하게 되었다. 볼도 꼬집어 보고, 허벅지도 꼬집어 보았다.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걸 보니 꿈은… 아니네.
[이제 일어났어...]
천천히 자판을 누르며 답장을 전송했다. 고작 한 문장 입력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느라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곤 직게 웃음을 지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요란한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해 다시 휴대폰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화면엔 '종인이'라는 세 글자가 띄워져 있었고, 크게 심호흡을 한 뒤에야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그리곤 천천히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 잠꾸러기.
"… 늦게 잤어."
- 자랑이다.
"……."
- 오늘도 놀러 갈까, 네 자취방.
"지금…?"
- 넌 언제가 편해.
"으음…, 그냥 내가 이따 연락할까? 준비 좀 하게…."
- 무슨 준비.
휴대폰 너머로 김종인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괜히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도 같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이것 저것…. 아씨, 몰라…! 너 편한 대로 해."
- 그럼 지금 갈게.
"아, 지금은…."
- 나 편한 대로 하라며.
"……."
- 알았어. 준비 끝나면 연락해.
끝까지 웃음을 흘리며 말을 하던 김종인이 먼저 통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긴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다 멋쩍게 웃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는 고팠지만, 일단 녀석을 맞을 준비부터 시작해야 할 듯했다. 후딱 샤워도 하고, 머리도 감고, 집 정리도 좀 하고…. 맛있는 거라곤 아무 것도 없는데 근처 빵가게에서 빵이라도 좀 사다놓을까….
*
간단히 샤워를 하곤 덜 마른 머리를 수건으로 톡톡 두드려 닦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본 냉장고 안은 역시나 텅텅 비어 있었다. 잠깐 나가서 먹을 거라도 사다 놓을까 생각하며 시간을 확인했지만, 그랬다간 꽤나 늦어질 것만 같아 아쉽게도 마음을 접어야 했다.
황급히 방 안으로 들어가 로션을 바른 뒤 머리를 가지런히 정돈했다. 그리곤, 간단히 입술에만 생기를 주고자 틴트를 발랐다. 집 안에서 풀메이크업을 하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천천히 방 안과 거실, 부엌을 둘러보았다. 그리곤 소파 위의 쿠션을 깔끔히 정돈해놓은 뒤 느긋하게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하얀 메시지 창을 보자마자 머릿속도 하얗게 변하는 것만 같았다. 뭐라고 하지. 뭐라고 보낼까…. 고작 문자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신중을 가하게 됐다. 그런 내 모습이 조금은 우스웠지만, 사실 기분은 좋았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의 심리란 이러하구나.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하루 아침에 내가 느끼게 될 줄이야. 정말이지 기분이 묘했다.
[준비 끝났어! 이제 와도 돼..♡]
입술을 꾸욱 깨문 채 전송 버튼을 눌렀다. 사실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엄청난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순 없는 것이었다. 꽤 오랫동안 붙일까 말까를 고민하다 결국 문장의 끝에 하얀 하트를 붙여 버렸다. 하트의 앞에 있는 점 두 개 탓에 살짝 이상한 느낌을 주는 것도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전송을 한 것이긴 한데… 왠지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답장을 기다리는 게 이렇게 떨리긴 처음이었다. 답장… 와도 되는데, 웬만하면 안 왔음 좋겠다. 창피하니까….
그러나, 간절한 내 바람을 가볍게 무시라도 하듯 곧이어 녀석의 답장이 도착했다. 문자가 왔다는 걸 알리는 진동 소리가 느껴짐과 동시에 심장은 더더욱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답장을 확인하기도 부끄러워 작게 심호흡을 한 뒤에야 휴대폰을 집어들 수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키읔'을 남발하며 답장을 보내온 김종인에, 창피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역시 괜히 붙였나. 많이 당황했겠지. 하트를 왜 붙인 거야, 난…. 애꿎은 쿠션을 꼬옥 끌어안으며 괴로워하다 다시 휴대폰 홀드를 열었다. 왜 웃는 거냐며 제법 삐진 티를 내볼까…. 아니지, 삐진 티를 내는 게 아니라 난 정말 삐졌어. 나름 용기 내서 보낸 하튼데…. 다시 휴대폰 홀드를 닫곤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쁜 김종인.
*
나쁜 김종인, 미운 김종인… 이라며 녀석에 대한 이런 저런 짜증을 부리긴 했지만, 녀석이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자 다시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것도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밖에선 발소리가 들려왔고, 괜히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그냥 평소처럼 행동하자.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평소처럼. 속으로 작은 다짐을 하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이어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인터폰 화면엔 녀석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쩌지, 어쩌지…. 발을 동동 구르며 꼴깍 침을 삼키곤 서둘러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왔…"
살며시 문을 열곤 김종인에게 인사를 건네고자 환히 웃어보였다. 그러나, 문이 열리자마자 내게 다가와 나를 꼬옥 안아오는 녀석 탓에 순간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인사말을 끝맺지도 못한 채 그저 어정쩡한 자세로 녀석에게 안겨만 있자니 숨이 턱- 하고 막혀버릴 것만 같았다. 가만히 있는 팔이 무안해서라도 녀석의 허리에 팔을 둘러야 했지만, 쑥쓰럽고 민망해 차마 그럴 순 없었다. 딱딱한 나무라도 된 양 가만히 안겨있기만 할 즈음, 뒤쪽에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작게 숨을 내쉬곤 조심스레 김종인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런 나를 흘끗 내려다보던 녀석이 천천히 제 품에서 나를 놓아주었다. 그리곤 살며시 작은 꽃다발을 건네온다. 부스럭거리던 소리는 다름 아닌 포장지의 소리였다. 분홍 장미가 군데군데 박혀있는 꽃다발을 건네며 씨익 웃어보이는 녀석을 바라보다 어색하게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오는 길에 마침 꽃집이 있길래, 하나 샀어."
"……."
"여자친구한테 꽃다발 선물 같은 거 해보고 싶었어."
"……."
"꼭 기념일이어야 선물 주는 건 아니잖아."
슬쩍 시선을 내려 예쁜 꽃다발을 바라보았다. 예쁜 색 만큼 향기도 고왔다. 그저 배시시 웃어보이며 녀석을 올려다 보았다.
"고마워. 완전 예뻐. 꽃 선물 받아보는 거 처음이야."
씨익 웃으며 내 머리를 두어 번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던 김종인이 부엌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을 따라 덩달아 부엌으로 향했고, 허기가 지는지 배를 통통 두드리는 녀석을 보며 물었다.
"밥 먹었어?"
"아니, 아직. 넌 먹었냐."
"나도 아직…. 배고프지?"
"조금. 밥 있어?"
"밥 있지. 같이 밥 먹을까?"
내 물음에 김종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녀석을 따라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식탁 의자 하나를 꺼내 주었다.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 말하자, 녀석이 피식 웃으며 털썩 자리에 앉았다.
"뭐 먹지? 아! 볶음밥 먹자, 볶음밥!"
"볶음밥 만들 줄 아냐."
"아, 당연하지…."
인상을 찡그린 채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런 내 모습에 작게 웃음을 짓던 녀석이 가만히 턱을 괸 채 나를 뚫어져라 바라봐오기 시작했다. 그게 조금은 부담스러워 작게 헛기침을 하곤 서둘러 볶음밥 재료들을 준비했다. 오늘 점심은 야채 볶음밥…. 필요한 재료로는 양파랑… 당근이랑…
"또 그 바지 입었네."
"응?"
"손바닥 바지."
"손바닥 바지라니…."
"내 손바닥 크기만 해."
"… 그 정도는 아닌데…."
"나중엔 잠옷을 사줘야겠네. 위 아래 분홍색으로."
"나 그런 취향 아니야…. 내가 너 사줄까? 뽀로로 잠옷으로 귀엽게-"
"절대 안 입어."
"쳇."
가벼운 장난을 주고받으니 살짝 무겁던 분위기가 조금은 풀린 것도 같았다. 바지가 짧다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해오는 녀석이 신경 쓰여, 조심스레 앞치마를 둘렀다.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던 녀석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내 옆에 나란히 서 식칼로 재료들을 다듬기 시작한다. 칼질이 안정적이진 않았지만, 이렇게나마 김종인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설렜다. 무엇보다, 이렇게 둘이 무언갈 함께 만든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손 조심해. 알지?"
"내가 넌 줄 아냐."
"… 나 그렇게 덜렁대?"
"그래."
꽤나 단호하게 답을 하는 김종인을 살짝 흘기곤 다시 내 일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녀석 쪽에서 작은 탄성 소리가 들려와 금세 그만둬야 했지만….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나를 놀리던 녀석이 제 검지손가락을 부여잡고 있었다. 피가 줄줄 흐르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칼에 베인 듯했다.
"… 이럴 줄 알았어."
황급히 거실로 향해 구급상자 속에서 연고와 데일밴드를 꺼낸 뒤 녀석에게 달려갔다. 급한 와중에도 데일밴드는 뽀로로 그림이 그려진 것으로 골랐다는 게 조금은 웃겼지만, 일단은 빨리 치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녀석의 검지손가락을 잡아 대충 피를 닦아내곤 적정량의 연고를 발라 주었다.
"내가 한 거 아니야. 칼이 내 손가락을 찔렀어."
"…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살짝 정색을 해보이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김종인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그게 조금은 무섭게만 느껴져 어색히 웃음을 짓곤 서둘러 뽀로로 데일밴드를 붙여주었다. 제 손가락에 붙여진 데일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녀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 이게 뭐야. 다른 거 붙여줘."
"왜…. 이거 귀엽잖아. 뽀로로 잠옷 안 입어줄 거면 이거라도 붙여."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김종인을 애써 타이르듯 말하곤 배싯 웃어보였다. 꽤나 유아틱한 데일밴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녀석은 한참이나 제 손가락을 들여다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밥을 볶으면서도 힐끔, 식탁 위에 수저를 놓으면서도 힐끔, 밥을 먹으면서도 힐끔….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인진 모르겠지만, 김종인의 손가락에 붙여진 데일밴드 만큼이나 녀석의 행동이 귀엽게 보였다. 그러나, 저를 보며 몰래 웃기만 하는 내게 녀석은 작게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
식탁에 마주보고 앉아 점심 식사를 같이 한다는 건 정말이지 로맨틱한 것이었다. 어색하고 쑥쓰러워 밥이 잘 넘어가지 않으면 어쩌지… 라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밥은 술술 잘만 넘어갔다. 이건 모두, 뽀로로 데일밴드가 마음에 들지 않는 탓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김종인 덕분이었으리라.
설거지도 사이 좋게 같이 했다. 내가 하겠다며 거실로 가 TV를 보고 있으라는 말에, 녀석은 굳이 같이 하겠다며 고무장갑을 꼈다. 나란히 서 설거지를 하기엔 부엌이 살짝 좁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따분하기 그지 없는 설거지가 달콤하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곤 나란히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했다. 재미없는 프로그램들만 방영을 해주는 시간대라 따분하긴 했지만, 옆에 김종인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따분함 따윈 쉽게 떨쳐낼 수가 있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녀석을 바라보았다. 슬슬 잠이 오기 시작하는 건지, 녀석의 눈꺼풀은 살짝 내려와 있었다. 하여간 잠이 많아서 탈이라니까. 개강하면 어떻게 버틸까 걱정이네….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며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녀석이 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그리곤, 옆에 놓여있던 쿠션을 집어들어 저번과 같이 내 무릎 위로 올려둔 채 조심스레 손을 잡아오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녀석의 행동에 다시금 가슴이 떨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 떨리는 마음을 잠시라도 잊어보고자, 애꿎은 쿠션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거… 바지가 짧아서 그래?"
"자꾸 눈이 가서."
"……."
"……."
"갈아입을까?"
"아니, 됐어."
됐다는 김종인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사실 TV 프로그램은 눈에도, 귀에도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녀석의 큼지막한 손에 꼬옥 잡힌 작은 손,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 녀석의 손으로부터 전해져오는 온기…. TV는 있으나 마나였다.
"재미 없다."
가만히 화면을 응시하고 있던 김종인이 리모콘으로 전원을 껐다. 어차피 집중하고 있지도 않던 텔레비전이지만, 순식간에 팟- 하고 꺼져버리니 약간은 아쉬웠다. TV가 꺼져 그나마 시끌시끌하던 분위기가 추욱 가라앉게 되었고, 무거운 침묵만이 나와 녀석 사이를 맴돌기 시작했다.
"향수 뿌렸어?"
"응."
"이 향수는 계속 맡아도 향이 엄청 좋은 것 같아. 내 안목 멋지지?"
"안고 있을까."
"응?"
"향 좋다며. 더 잘 느껴지게 좀 안고 있을까."
"… 아니…. 쑥쓰러워."
꽤나 능글맞게 들려오는 멘트와 목소리에 얼굴을 붉히곤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런 나를 보며 푸스스 웃어버리던 녀석이 잡고 있던 손에 더욱 힘을 줘왔다. 그리곤 잠시 뜸을 들이는 듯싶더니 천천히 입술을 떼 말을 건네오기 시작한다.
"아직 어색하지, 이렇게 손 잡는 거."
"… 조금."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손을 맞잡고 있는 게 아직은 많이 낯설고 어색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친구,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던 녀석이 하루 아침에 남자친구가 되었다. 애인이 되었다. 연인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녀석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기본적인 스킨쉽 중 하나인 '손잡기'가 어려웠다. 스킨쉽도 스킨쉽이지만, 남자친구가 된 녀석을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애매했다. 그냥 예전처럼 대하기엔 내가 너한테 느끼는 감정들이 너무 달라졌는데….
"자고 일어났는데도 안 믿겨서, 오기 전에 볼도 몇 번 꼬집어보고 나왔어."
"……."
"많이 어색하고 낯설지. 너처럼 나도 그래."
"……."
"점차 익숙해질 거야. 네가 어색함 느끼지 않게 내가 노력할게."
천천히 말을 끝맺은 김종인이 씨익 웃어보였다. 그리곤 잡고있던 손을 풀어 깍지를 껴오기 시작한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녀석의 온기가 느껴졌다.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것도 같아 고개를 떨구곤 애꿎은 다른 쪽 손을 바라보았다. 그런 나를 보며 피식 웃어버리던 녀석이 다시금 입술을 뗐다.
"나랑 하고 싶은 거 있냐."
"하고 싶은 거?"
"응, 아무거나."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물어오는 목소리에, 잠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거야 많지…. 분명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막상 이렇게 물어오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꼭 이런 식이었다. 어떤 것에 대해 풍부하던 생각도, 누군가 갑작스레 물어오면 머릿속이 도화지마냥 새하얗게 변해 아무 것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이건 시험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교과서와 문제집을 보며 달달 외웠던 부분들이 시험지를 마주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싸악- 잊혀져 버렸으니 말이다. 이건 정말이지 신기한 섭리와도 같았다.
"으음…."
어떻게든 생각을 끌어내 보고자 신중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일단 사소하게나마 해보고 싶은 건…
"아! 있어."
"뭐."
"엄청 사소한 건데…. 페이스북에 있잖아…, 연애 중 띄워보고 싶어."
"그게 뭐야. 나 페이스북 안 하잖아."
"이참에 계정 하나 만들면 안돼?"
"……."
"… 안돼?"
SNS라곤 카카오톡밖에 하지 않는 김종인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참에 페이스북 계정 하나 만드는 게 어때? 내 물음에 녀석은 그저 입술만 만지작거리며 말을 아낄 뿐이었다. 귀찮다는 이유로 카카오톡을 제외한 SNS는 일체 하지 않는 녀석이었던지라, 어찌 보면 망설이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지나치게 사소한 것이었지만, 정말이지 해보고 싶었다. 페이스북 '연애 중' 띄우기. 간간이 다른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곤 했는데, 이젠 그걸 내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남자친구가 김종인이다, 내 애인은 김종인이다, 나는 김종인이랑 사귄다… 이런 사실을 동네방네 알리고 싶어서는 물론 아니었다. 그냥 사소하게나마 작은 흔적을 새겨놓고 싶었다.
"근데 난 그거 어떻게 하는지 몰라. 가입해도 뭐… 유령회원 될 걸."
별로 내키지 않은가 보다 생각하며 다른 걸 생각해 내고자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할 즈음, 김종인이 휴대폰을 꺼내들며 말했다. 그런 녀석의 행동에 신이 나 환히 웃어보이며 답했다.
"나 할 수 있어! 계정 만들 거야?"
"일단 만들어보고, 재미 없으면 바로 탈퇴할 거야."
틱틱대듯 말하는 김종인의 한 쪽 손을 붙잡곤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기댔다. 그런 나를 흘끗 바라보며 작게 웃음을 짓던 녀석이 곧이어 '페이스북'을 다운받았다. 어색한 손길로 필수 항목들을 천천히 입력하기 시작하는 녀석의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이렇게 작은 부분까지 내게 맞춰주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좋았다. 겉으론 틱틱대면서도 하나하나 맞춰주며 이것저것 챙겨주는 건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았다.
"만들었어."
"나한테 친구 신청 했어?"
"했어."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김종인'이라는 이름으로 친구 신청이 왔다는 알림이 상태 표시줄에 떠있었다.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곤 이것저것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제법 손쉽게 녀석과 내 이름으로 '연애 중'을 띄울 수 있었다.
"으으, 됐다."
"됐어? 아, 이런 거구나."
"어? 벌써 오세훈이 댓글 달았어."
설렘과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곧이어 댓글이 달렸음을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상대는 오세훈이었다. 가만히 내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던 김종인이 작게 미간을 좁혔다.
"너 오세훈이랑 친구 맺었어?"
"응, 왜?"
"끊어버려."
"… 에이…."
"오세훈이 뭐래. 확인해봐."
꽤나 꺼림칙하다는 듯 김종인이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말을 내뱉었다. 그런 녀석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오세훈이 남긴 댓글을 꾸욱 눌렀다. 어느새 열네 개로 늘어나 있는 댓글들…. 주인은 모두 오세훈이었다.
- ???????????????????????????????
- 김종인? 내가 알고 니가 아는 김종인?
- 와................................
- 아니 잠깐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겁나 충격인데?
- 김종인이 페이스북을ㄹ 시작했다는 것부터가ㅏ 일단 충격
- 아 둘이 사귄다고?!?!?!?!?!?!?!??!?!?!?!?
- 아니 진짜야 가짜야.... 김종새끼얔ㅋㅋㅋㅋㅋㅋㅋㅋ 너 나와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핵충격
- 근데 김종인 놈은 왜 나한테 친구 신청을 안 함
- 솔직히 불어라
- 니네 지금 같이 있지
- 답할 가치도 없다는 거니?
- (훈무룩)
비록 텍스트였지만 왠지 오세훈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댓글 창은 어느새 오세훈의 독백으로 가득 찼고, 혼자 댓글의 수를 늘려가면서도 좋아요 버튼을 꾸욱 누른 녀석의 센스에 감탄하며 배싯 웃어보였다.
"얘 차단해버려. 말 너무 많아."
"오세훈한테 말 안 했었어? 사귀는… 거."
"안 했었어."
"제일 먼저 오세훈한테 말했을 줄 알았는데…."
"피곤해질까 봐."
작게 하품을 하곤 제 앞머리를 쓸어넘기는 김종인을 바라보며 살짝 웃어보였다. 그리곤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다시 녀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휴대폰에선 자꾸만 진동 소리가 울렸다. 포기를 모르는 오세훈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대단한 놈인 듯했다.
"또."
"응?"
"나랑 하고 싶은 거."
"음…, 놀이동산 가고 싶어. 그냥 카페에서 소소하게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고, 심야영화도 보고 싶고…."
"……."
"이렇게 집 데이트도 해보고 싶고, 커플 아이템도… 맞춰보고 싶어."
"……."
"사실 뭐 하나를 콕 집어서 말할 수가 없어. 그냥…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어."
웅얼거리듯 말하곤 배싯 웃어보였다. 쑥쓰럽긴 했지만 사실이었다. 무엇을 하든 김종인과 함께라면 즐겁고 행복할 듯했다. 따분하고 지루한 책을 읽더라도, 그게 김종인과 함께라면 스릴 넘치는 추리소설을 읽는 마냥 재밌게 느껴질 듯했다. 굳이 어떠한 것을 해야 행복한 게 아니라, 단지 김종인과 함께라면 뭐든 행복할 것만 같았다.
"나도."
"……."
"그냥 이렇게 나란히 앉아만 있어도 좋다."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음을 짓던 녀석이 잡고 있던 손을 풀곤 내 어깨에 팔을 둘러왔다. 그리곤 다시 입술을 떼 말을 건네오기 시작한다.
"약속 하나 하자."
"무슨 약속?"
"별거 아닌데,"
"……."
"서로 숨기는 게 없었음 좋겠어."
"……."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제일 먼저 말해야 하는 거 알지."
"… 응."
"대답 크게 해야지."
"네에."
"옳지."
예쁘다- 작게 내뱉곤 몰래 부끄러워하는 김종인을 힐끔 바라보며 어색히 웃어보였다. 워낙 표현이라는 걸 잘 하지 않는 녀석이었기에 예쁘다는 말이 꽤나 낯설 법도 했지만, 그보단 마음이 설렜다. 예쁘다니. 예쁘다고 해줬어. 예쁘대….
남자친구로서의 김종인, 아직 많이 어색했지만 걱정은 없었다. 어색함은 시간이 지나면 점차 나아질 테지. 단지 녀석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든든하고 기뻤다. 앞으로 있을 녀석과의 나날들을 하나씩 그려볼 수 있다는 게 너무도 행복했다. 머릿속, 그리고 마음속에선 각양각색의 폭죽들이 예쁜 그림을 그리며 하나둘 터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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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도 초록글에 올랐더라구요..☆ 정말 감사한데.. 감사하다는 말론 제 마음이 다 표현이 안 되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항상 아쉬워요.. 또륵.. 소중한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살짝쿵 추천 버튼 누르고 가시는 추천요정 분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정말 감사드려요♡ 지난 화는 울음바다더군요.. 다들 같은 마음이셨으리라 믿어요..! 저도 십 년 묵은 체증이 쑤욱 내려가는 느낌이었으니..☆ 먼 길을 돌아온 만큼 우리 그에 몇 배는 달달해야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참.. 저 어제 조금 소름 돋았어요.. 뮤비 1500만 뷰 돌파 기념 영상 하나 나왔잖아요? 거기서 종인이 향수가.. 어디서 많이 본 건가 싶었는데 역시나더라구요.
바로 요 향수!
제가 시즌 원부터 꾸준히 종인이 향수로 밀던 요 향수더라구요.. 기막힌 우연이죠.. 그 많은 향수들 중 어떻게 저게.. (말을 잇지 못하는)
큽.. 사담은 여기서 마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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