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 전정국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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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과 짝이 된지 일주일이 다 되어갔다. 내가 전정국에 대한 사소한 오해를 하고, 전정국이 내게 변명아닌 변명을 한 이후에 전정국과 딱히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나는 나대로, 전정국은 전정국대로 각자 할 일을 하기 바빴다. 전정국이 축구부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다시 생각해보니 그가 점심시간마다 사라졌던 이유는 축구부 연습 때문이란걸 깨달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전정국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당연히 그가 담배를 피우러 가거나, 학교 밖으로 나갔으리라고 생각했으니까.
중간고사가 3주 앞으로 다가왔다. 고3이 되고 처음 보는 시험이었고, 까딱 잘못하면 성적이 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 이였다. 덕분에 내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고등학교 입학 후 줄곧 좋은 성적을 유지 해 왔던 탓에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내게 거는 기대는 무척 컸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만 했다. 나는 평소 학원에 다니기 때문에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학원 사정으로 하루 쉬게 되어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하기로 했다. 도서관이나 독서실에 갈 수 도 있었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조용하고 적막감이 감도는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기엔 너무 답답했다. 학교가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일 수 있었다.
수업과 방과후 보충이 모두 끝난 후 점심 급식이 부실했던 탓인지 배가 몹시 고팠던 나는 석식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급식실로 향했다. 정신없이 석식을 먹은 뒤, 운동장으로 나오자 오후 연습을 하는 축구부 아이들이 보였다. 예전같았으면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을 광경이지만, 일주일 전 전정국의 말을 듣고 난 후 축구부 아이들이 연습하는 모습만 보이면 나도 모르게 눈으로 전정국을 찾고 있었다. 지원이와 나는 부른 배를 소화시킬 겸, 운동장 주변 트랙을 산책삼아 돌기로 했다.
"거기, 공 좀 차줄래?"
지원이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고 있는데, 내 쪽으로 축구공이 굴러왔다. 연습하던 공이 빗겨나간 모양이었다. 하얗게 생긴 축구부 아이가 공을 차 달라며 부탁을 했고, 운동과는 거리가 먼 나였지만 그 하얀 아이와 전정국을 포함한 열댓명 가량의 축구부 아이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힘껏 공에 발을 내딛었다.
'철푸덕-'
하지만 공이 아닌 허공에 발길질을 하였고, 나는 보기 좋게 넘어졌다. 온 몸에 아려오는 고통이 꽤 컸지만, 그 순간 나는 아픔보다 창피함이 먼저 들었고 잽싸게 일어서 빠른 걸음으로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야"
얼굴이 화끈거려 손부채질을 하며 걷고 있는데, 뒤에서 손부채질을 하는 내 손목을 누군가 잡았다.
"괜찮아?"
전정국이었다. 나는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전정국의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전정국은 내가 헛발질을 하는 것 부터 넘어지는 것 까지 모조리 봤을 것이 뻔했기에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괜찮아.."
"진짜 괜찮아? 꽤 크게 넘어졌던데"
"진짜 괜찮다니까..? 얼른 가서 연습이나 해"
하지만 전정국은 계속해서 내 상태가 괜찮은지 물었고, 두 눈으로 내 온 몸을 살폈다. 쪽팔렸다. 나는 전정국을 다시 등떠밀어 보냈고, 뒤돌아 볼세도 없이 야자실로 들어왔다. 의자에 앉아 방금 전의 일을 곱씹으니, 잊고 있었던 통증이 느껴졌다. 잔디가 아닌 딱딱한 바닥에 그대로 넘어져서 그런지 무릎은 까져있었고, 넘어지면서 발을 삐끗했는지 발목이 퉁퉁 부어 올랐다. 곧 가라앉겠지, 하는 심정으로 방금 전의 일도 잊을 겸 문제집을 폈다.
계속에서 문제를 풀다보니 점점 발목의 통증은 커졌고, 수학 문제가 눈에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이미 분침은 숫자 9를 넘어섰고, 이 시간에 양호실이 열려있을리는 만무했다. 결국 집에 가는 것을 택했고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정상적인 다리로 걸을 때는 몰랐는데, 절뚝거리며 걷다보니 새삼 학교가 정말 크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느릿느릿 교문으로 향했고,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하나 하고 생각했다.
"괜찮긴 개뿔"
별안간 내 앞을 누군가 막아섰다. 또 전정국이었다. 방금 연습이 끝난건지, 상의는 교복 셔츠였고 하의는 축구부 아이들이 입는 체육복 바지였다. 가방은 어디다가 냅뒀는지 축구화가 든 신발 주머니만을 들고 삐딱하게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
"..여기서 뭐 해?"
"발목 삔거야?"
"그런 가봐"
전정국은 내 물음에는 답도 하지 않은 채 내 발목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괜시리 부끄러워 얼른 교문을 빠져나가려 했건만, 내 팔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좀, 놔줄래?"
"집은"
"뭐?"
"집은 어떻게 가"
평소엔 학교를 마치자마자 학원에 가야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하교를 했지만, 사실 학교에서 집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였다.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고, 오늘 같이 학원에 가지 않게 된 날에는 걸어서 하교를 하곤 했다.
"걸어서"
"그 다리로?"
전정국은 다시 한 번 내 발목을 훑었고, 계속해서 내 다리에 대해 묻는 전정국이 귀찮아져 짜증스레 그를 쳐다보며 말 했다.
"니가 신경 쓸 일 아니잖아"
"..."
"갈게"
나는 서둘러 교문을 빠져나왔다. 아무래도 버스를 타고 가야할 것 같아, 교통카드를 찾으려 가방을 뒤적거렸다.
"기다려"
"..?"
전정국은 어느새 나를 따라와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고,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내 가방을 뺏어 제 등에 메었다.
"야, 가방 내놔"
"..."
"내 놓으라니까?"
"좀 기다려"
안그래도 예민한 기분 탓에, 내 가방을 가져가 주지 않는 전정국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전정국에게 큰 소리를 치려던 찰나 웬 택시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그리고 전정국은 택시 안에 나를 밀어넣었고, 뒤따라 저도 내 옆 자리에 탔다.
"ㅁ..뭐야 이거, 내려 줘!"
"집 주소"
"뭐?"
"너네 집 주소 어디냐고"
콜택시를 부른듯 했다. 다짜고짜 우리 집 주소를 물어오는 전정국과 내게 얼른 목적지를 말하라는 듯한 택시기사님의 눈빛에 집 주소를 댈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집으로 향하는 내내 택시 안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전정국은 휴대폰에 코를 박고 누군가와 카톡에 열중 해 있었고, 택시 기사님은 말 없이 운전에만 집중하셨다. 나는 마침 휴대폰 배터리가 다 나간 탓에 나는 멍하니 창 밖만 보고 있었다.
"3,600원 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기본 요금보다 조금 더 나왔고, 나는 지갑을 열어 천원짜리 네 장을 꺼내들었다.
"여기요"
내가 지갑을 도로 가방에 집어 넣는 사이, 전정국은 기사님께 만원짜리 한 장을 건냈다.
"야! 왜 네가 내, 얼른 치워 내가 낼게"
전정국의 손을 제지했지만, 나보다 훨씬 힘이 센 전정국은 쉽게 밀리지 않았고 결국 기사님은 전정국에게 6,400원을 거슬러 주었다. 나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전정국에게 아까 꺼내들었던 천원짜리 네 장을 건냈다.
"400원은 그냥 너 가져. 택시 잡아준거 그 걸로 퉁쳐"
전정국은 돈을 건내는 내 손을 한 번 바라보더니 먼저 제 갈길을 떠났다.
"야!!"
"됐어"
빠른 전정국의 걸음을 따라잡지 못 해 크게 소리를 질렀지만 전정국은 됐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나를 등진 채 걸어가는 전정국의 뒷 모습을 보며, 전정국이 코너를 돌아 사라질 때 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에게 내 다리 상태를 보여줬고, 아무래도 심하게 삔 것 같으니 붕대를 감고 있으라는 엄마의 말에 내 발목에는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겼다.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워 오늘 일을 떠올렸다. 내가 넘어지자마자 내게 달려온 전정국, 교문에서 마주친 전정국, 택시를 잡아준 전정국, 택시비를 제 돈으로 지불한 전정국, 내가 건낸 돈을 받지 않고 그대로 멀어져버린 전정국.
하나하나 곱씹어보니, 전정국에게 매우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어쩌면 전정국은 내가 알고 있던 모습보다 더 착하고 괜찮은 아이 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계속해서 머릿속에 전정국을 그리다, 내 머리 속을 가득 채운 전정국의 모습에 혼자 부끄러워 발을 동동 구르다 밀려오는 통증에 그만두고 그대로 잠에 들었다.
*
"세상에, 괜찮아? 어제 넘어진 것 때문에 그래?"
출근하는 아빠 차를 얻어타고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내게 괜찮냐고 물어오는 지원이에 괜찮다고 대충 답을 해 준뒤 자리에 앉았다. 무의식적으로 옆 자리를 보니 전정국은 아직 오지 않은 듯 했다.
"정말 괜찮아? 병원은 가 봤어?"
"아니, 오늘 학교 끝나고 가려ㄱ.."
"탄소야!!!"
정호석이 김지원보다 더 호들갑을 떨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다리 왜 그래, 어제 넘어져서 그런거야?"
정호석도 전정국과 함께 축구부 였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어제 나의 모습을 정호석도 보았다고 생각하니, 여간 창피한 일이 아니였다.
"..어"
"심하게 다친거야? 삐었어? 붕대는 왜 감은거야, 병원은? 안가봤지?"
큰 목소리로 유난을 떨며 말하는 정호석에 부끄러움은 배가 되었다.
"제발.."
"응? 뭐라고?"
"제발 조용히 좀 해.."
정호석은 내 말을 듣고, 그제서야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 쪽으로 집중된 것을 본 정호석은,
"야 뭘 봐, 다들 눈 안 돌려? 재밌냐?"
전정국과 처음 짝이 된 날, 전정국이 내게 그랬던 것 처럼 아이들에게 뭘 보냐며 시비조로 명령하듯 말 했다. 정호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내게 돌렸던 눈을 돌려 제 할일을 하기 시작했다. 정호석은 그 모습을 보곤 뿌듯하단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정호석의 그런 모습이 너무 싫었다. 또 한가지 잊고 있었던 것이 있다. 정호석은 한낱 양아치였고, 정호석의 친근한 모습과 태도에 현혹되어 잠시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정호석"
"응?"
"네가 그렇게 대단해?"
"..?"
"네가 뭐라도 돼? 네가 왕이야? 왜 친구들을 그따구로 대해?"
"뭐라는ㄱ.."
"너 같은 애는 딱 질색이야."
"뭐?"
"너 같은 애들이 제일 싫어. 앞으로 나한테 말 걸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너 같은 애랑 엮이는거 싫으니까."
"말 다했냐?"
"다 했으면 어쩔건데? 내 말 안들려? 이제 네 자리로 돌아가지 그래?"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진짜,"
아이들의 시선은 다시 우리 쪽으로 돌려졌고, 지원이는 내 곁에 서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발발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내 말에 화가 난듯한 정호석은 나를 때리기라도 하려는 건지 손을 들어 올렸고,
"뭐 하는 거야"
그 순간 정호석의 팔을 전정국이 낚아채었다.
* * *
으아아 독자님들ㅠㅡㅠ 제가 하루 늦었죠ㅜㅜ!! 어제 갑자기 중요한 약속이 생기는 바람에, 이제서야 찾아오게 되었네요ㅠㅡㅠ
이번 편에는 공부 스트레스로 예민한 탄소와, 양..양아치 본연의 모습의 호석이, 그리고 조금은 다정해진 정국이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제가 똥을 싸질렀군요..!!
늦게 온것도 모자라 이따위 글을 싸질러놓고 가다니..!! 저를 치셔도 좋습니다ㅜㅜㅜㅜㅜ 참고로 이번 화에는 숨겨진 힌트(?) 같은 것들이 숨어있답니다!
그리고 답글 하나하나 못 달아드려서 죄송해요ㅠㅠ 그래도 댓글 달리는 거 하나하나 꼼꼼히, 꾸준히 읽고 있답니다ㅠㅠ 다들 너무 감사드려요! 응원 해주시는 댓글, 재밌다는 댓글 볼 때 마다 힘이 팍팍 난답니다..!!
마지막으로,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오늘도 감사하고 좋은 밤 보내세요♥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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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은 가장 최근에 업데이트 된 글의 댓글만 보고 작성하기 때문에 누락 될 수 있어요ㅠㅡㅠ 3편에서 제가 미처 확인하지 못해 쓰지 못한 내사랑들 미안해요ㅜㅜ! 혹시 신청했는데 누락됐다! 하시는 분들 있으면 꼭 댓글 남겨주세요!
암호닉 신청은 가장 최근 화에 부탁드려요! 참고로 암호닉 신청은 곧 마감됩니다! 그러니 신청하실 분들은 서두르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