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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 세대(Beat Generation)
1950년대 미국의 경제적 풍요 속에서 획일화, 동질화의 양상으로 개개인이 거대한 사회조직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항하여, 
민속음악(재즈)을 즐기며 인간정신에 대한 신뢰, 낙천주의적인 사고를 중요시하였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1920년대의 '상실세대(Lost Generation)'처럼 기성 세대의 주류 가치관을 거부 하였다.
그들은 자기들만 통하는 은어를 사용하고 제임스 딘이나 말론 브란도 같은 '반항적인 배우들'을 숭배하였다. 
또, 사회에서 성공하려는 사람들을 '인습적인 사람들'이라고 경멸하였다.
-위키백과

비트세대 prologue.
 
A.
"한빈아"
 
한참을 뜨길 기다렸을까, 그믐달이 희미하게 운에 가려 제 눈에 수줍게 드러낼 때가 되어서야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 쌀쌀한 밤을 인쇄소에서 지새운 것인지 그의 몸에서는 진한 잉크의 향기가 묻어나왔다.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그믐 달빛에 젖은 한빈이의 모습은 정신을 아찔하게 하기 충분했기에, 나는 잠시 눈을 꾹 감았다 뜨고 그 이름을 불렀다.
 
"오늘은 조금 늦었네"
 
한빈이는 신발장에서 조금 낡아 코의 광이 사라진 구두 한짝을 벗으며 아무말 없이 저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는 금새 시선을 돌렸지만 그 잠깐이 어찌나 어둡던지, 저는 얼른 다가가 그의 옆에 서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글은 잘 썼어?"
 
한빈이는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정리를 했다.
손목에 찬 낡고 금이간 시계를 보는가 싶더니 코트를 벗어 작은 방 안 구석 옷걸이에 걸고 옆에 놓인 라디오를 틀었다.
피곤한지 왁스로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를 손으로 헝클이자 그의 머리는 곧 이상한 모양으로 뻗쳐 나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살짝 매만졌다.
 
"한빈아, 피곤해?"
 
한빈이는 방의 반을 차지하는 매트리스에 앉아 지루하게 흘러나오는 새벽 노인들의 방송을 듣고있었다.
나는 그가 그 라디오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빈아, 제발.. 나 한번만이라도, 봐주면 안될까"
 
그는 한번도 내게 입을 떼거나 행위를 취한 적이 없었다.
그 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며 '꺼져'라고 말을 하기 전까지는.
 
 
B.
"구준회?"
 
훤칠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남자다운 생김새에 위로 날리듯 올려진 금발의 머리, 그가 맞았다.
놀란 듯 나를 보는 그 눈빛에는 반가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나한테 무슨 볼일인가, 하는 지극히 비지니스 적인 궁금증이었다.
 
"표정이 뭐 그러냐, 영화 잘 봤다. 나 따라하는것 치고는 제법이던데"
 
데뷔한지 고작 1년, 영화 2편의 커리어치고 그는 꽤나 영향력있었다.
젊은 층에서 독보적인 저의 인기에는 조그마한 흠집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그를 따르는 사람도 꽤나 있었다.
'지랄하네' 한마디 내뱉고 손가락에 걸쳐진 담배를 입에 무는 그에 저도 담배 한개피를 꺼내 불을 붙였다.
 
"요즘은 어때, 뭐 좋은거 안들어오냐?"
 
매캐한 연기가 제 폐를 적셨다 나오며 이미 탁한 공기위로 연하게 퍼져나갔다.
'다 고리타분한 노인네들 취향이지 뭐'
그는 인상을 찌푸리고 반쯤 타들어간 담배를 지져 끄며 말했다.
 
"좋은거 있음 뺐으려 했더니, 너때문에 내 밥줄도 끊겼어 새꺄" 
 
입꼬리만 올려 살짝 웃은 그는 구두 코로 울퉁불퉁한 바닥을 툭툭 치고 있었다.
잠시 둘 사이를 침묵이 통치하다 괜히 큼큼 목을 가다듬고 후드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었다.
 
"넴부탈 뭐 그런거 좋아하냐"
 
구준회와 공중에서 시선이 맞물렸고 주머니에서는 코카인이 든 작은 병이 잡혔다.
'존나 좋아하지' 입꼬리를 올리며 벌써부터 코를 킁킁거리는 그에 저도 따라 웃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코카인 : 코카나무 잎에서 추출하는 알칼로이드로 마약의 일종.
 
 
C.
"김한빈.. 진짜야?"
 
쿵쿵대는 심장을 끌어안고 달려온 터라 턱턱 막혀오는 숨을 가쁘게 내쉬며 짐을 싸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응' 이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그가 그렇게 아끼던 「데카메론」을 조심히 상자에 넣는 것을 보고 나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한참을 그가 짐을 챙기는 것을 보다가 심통이 난 채로 다가가 비어있는 상자를 집어들었다.
 
"왜 그렇게 말했어"
 
김한빈, 이 멍청한 자식은 힘들게 들어온 이 대학에서 쫒겨날 위기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웃어보인다.
'형은 안되니까, 내가 허락 못해'
그의 말에 케케묵은 담뱃재를 집어 삼키는 기분이었다.
 
"너 가면 나도 가"
 
드디어 팔 안에 가득 안겨있는, 결국 돌려주지 않은 난잡한 금서들을 내려놓은 그가 나를 쳐다봤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마. 내가 누구때문에 가는데'
무관심이 묻어나는 얼굴을 한번 흝어보고는 내 책상위에 널브러진 원고부터 상자에 너저분히 챙겨넣었다.
 
"왜 그 누구때문에 너 혼자 가냐고"
 

어제 밤까지 휘갈기던 원고를 상자에 담아넣다보니 괜히 미묘함이 저를 건드려왔다.
'너는 여기서 글 써, 사고치지 말고. 넌 좀 더 배워야 봐줄만 하겠더라'
제 얼굴을 부여잡고 씩 웃으며 말하는 김한빈에 결국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그를 뿌리칠 수 밖에 없었다.
 
 
D.
"누구세요"
 

내 무미건조한 음성에도 진지한 표정으로 저를 위 아래로 흝는 별난 남성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곧 '네가 신입중에서 글을 그렇게 잘 쓴다며'라고 물어오는 그에 살짝 뒷걸음질 치며 어..하는 얼빠진 소리만 냈다.
벌써 소문이 난건가, 제 실력을 믿어의심치 않는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신데요"
 

아까보다 누그러진 나의 말투에 그는 웃음을 띄고 저를 빤히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왠지 호기롭게 생겨서 저도 모르게 그의 눈을 한동안 마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Lady chatterley's love는 읽어 본거야?'
 

"누구시냐고요"
 

그의 질문에는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독실한 카톨릭 가문에서 자라온 터라 금서에는 치를 떨었다.
대답해 달라며 자리를 지키는 그에 기분 나쁜 티를 숨기지 않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급한 일 아니면 가보겠습니다"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명문대에서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었다.
혹시 우리 학교 학생이 맞기는 할걸까 골똘히 고민하며 가는데 저의 뒤에서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또 얘기하자, 신입.내 이름은 외워둬'
 
 


E.
"저기..송윤형 맞아요?"

 

기숙사 자리 없다고 쫒아낼 때는 언제고, 입학 후 한달이 지나서야 자리가 났다며 얼른 들어가라는 말에 덜컥 알겠다고 한 것이 괜히 후회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우등생과 함께 쓴다는 소문에 정계진출까지 꿈꾸며 찬란한 미래가 펼쳐지나 했더니,
방 안에는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채 자욱한 담배연기 사이에서도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는 잘생기긴 오지게 잘생긴 사람이 침대에 앉아있었다.

 
"저, 새로 여기 살게된 김동혁이라고 하는데요"

 
별 반응 없이 저를 보는 그 남자에 속으로 첫 인사가 저게 뭐야, 라며 자책하고 있을 무렵, 그가 담배를 앞 탁자에 비벼 껐다.
탁자 위에 잔뜩 쌓인 담배꽁초들에 꼴초인가, 방 잘못 잡았네. 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내가 이렇게 송윤형 물이 들 지는 몰랐지.

 
"켁, 저. 창문 좀 열어도 돼요?"

 
스모그도 아니고, 목 끝까지 괴롭히는 담배연기에 숨이 막혀 저만 멍하니 보고있는 그에게 말만 내뱉고 허락없이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찬바람이 한번에 몰려 들어와 탁자위에 널린 담배꽁초를 쓸어가 버리자 그의 아, 하는 탄식이 들렸다.
'미안, 생각할 게 좀 있어서. 편하게 있어'

 
"아..네"
어떻게 편하게 있으라는 걸까, 이 난장판인 방에서. 지금보니 글자가 빼곡한 원고들이 바닥에 널리고 침대 한복판에는 타자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담배를 하나 더 꼬나물고 타자기를 두드리는 그가 '신입, 이거 하나해' 라며 던져주는 대마초를 받아들지 말았어야 했다.

 
 
F.
" 혹은 연옥처럼 변한 몸뚱이들 밤마다 계속되는 꿈으로 인해 마약으로 깨어있는 악몽으로...씨발"

 
손님없는 인쇄소에서 몇시간째 타자기를 두드리다 결국은 막바지에 이르러 막혀 버렸다.
마침 타자기 옆에 놔뒀던 물을 집어 들었더니 몇방울만이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컵을 책상에 탕 놓고는 옆에 널부러진 원고들을 대충 모아 정리해 탁자 아래 서랍에 넣었다

 
"오늘은 이만하면 가야지"

 
혼자 작게 중얼거리고는 찌뿌둥한 몸에 기지개를 키며 타자기 옆에 놓여있는 재떨이에 담배를 쓰레기통에 털어 넣었다.
'형, 있어요?'
갑작스레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피곤함을 숨기고 뒤를 돌았다.

 
"이 시간에 웬 일이야, 윤형이 형은?'

 
술을 마신 듯 발그레한 동혁의 얼굴에 피식 웃으며 저에게 안겨오는 그를 받아주었다.
'형, 이렇게 와 줬는데 윤형이 형만 찾기에요?'라며 제 가슴에 얼굴을 부벼오는 그에 한참만에 얼굴의 근육을 당겨 웃어보였다.
제 품의 동혁에게선 그가 좋아하는 알싸한 담배냄새가 연하게 풍겨왔다.

 
"학교는 사고 안치고 다니지? 글은 어때?"
오랜만에 보는지라 궁금한게 많았다. 그에 대해서도, 글에 대해서도.
그의 재능은 가히 잠재적이었다. 모 아니면 도. 내 감이 병신이거나, 신이 병신이거나.
*첫 문장, 앨런 긴즈버그의 Howl and other poems에서 인용

 
G.
"이런 영화 안 좋아하죠"
 
오랜만에 온 시네마에서는 안타깝게도 진부하디 진부한, 노인네들의 영화밖에 나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영화보단 사람에 관심있었던지라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던 눈을 영화 중간에서야 와서 제 옆에 앉은 남자에게로 돌렸다.
인상을 쓴 표정 때문인지 성질이 더러워 보이는 그를 관찰하다 곧 그가 영화에 관심이 없음을 깨달았다.

 
"왜 왔어요?"
 
시네마에서는 별별 사람을 다 만날 수 있다. 나는 배우로서, 이 별난 취미를 참 즐겼다.
특히 오늘같이 '김진환 보러요'라는 대답을 한 남자와 같은 묘한 사람을 만날때면 늙어서 시네마나 지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도 빠진다.
평소 과묵하면 과묵했지, 시끄럽다 소리는 못 들어봤던 제가 유일하게 말이 많아지는 곳이기도 했다.

 
"김진환..저 배우 좋아해요? 좋은 배우 아닌데"

 
나의 도발섞인 발언에 제게 관심없던 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저를 잠깐 쳐다보았다.
히죽 웃으며 저도 담배를 꺼내 지포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그의 앞에 내밀었다.
친절하게도 저를 아니꼽게 바라보며 불을 나누는 그에 담배를 살짝 들어보여 고마움을 표했다.

 
"뭐 하는 사람이예요? 학생?"

 
담배를 한번 깊게 들이키고 의자에 등을 대로 편하게 앉아 고개만 돌리고 물었다.
들뜨는 기분에 주머니를 뒤져보지만 아까 들어오기 전에 다 들이킨 코카인 빈 병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점점 아득해지는 기분에 고개를 뒤로 젖히고 숨을 크게 들이키는 사이 '글 써요'라는 그의 단편적인 말에 그가 돌아가기 전에 정신을 차리길 바랬다.

 


웰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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