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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니/이진기] 원더풀 데이즈 | 인스티즈

 

 

 

 

 

기억해?

 

 

 

 

 

 

입을 벌렸다. 입 안을 가득히 메우는 겨울 공기에는 입자 하나하나 깊숙한 데마다 제법 큰 눈송이를 담고 있는 듯 시린 기가 생경히 남겨져 있었다. 붉게 언 손 끝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제법 눈이 쌓여 하얗게 서리가 진 듯 늘어진 골목 사이를 지나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 걷는 둥 마는 둥, 가늘고 길게 이어지던 발걸음은 저만치 먼 곳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듣고서는 아예 멈추어버렸다. 밑창이 나가떨어질 듯 낡은 운동화 사이로 눈이라도 새어들어온건지 벌써부터 발이 시려운 것 같았다.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멈추어 서 움직일 생각을 않던 더 이상 발을 딛지 않고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누렇게 때가 탄 검은 색 운동화 아래로 거무스레한 흙더미가 섞인 눈길이 시야에 또렷히 맺혔다. 언제부터 눈이 내렸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만약 눈이 내리던 날에 내가 이 곳에 있었더라면 부러 눈이 내린 길 바깥으로만 둘러 다녔을 지도 모르겠다. 하얀 눈이 내 발자국에 더러워지고 뭉개지지 않도록.

 

아침에 채 다 말리지도 못한 양말을 신고 온 탓인지 물기가 선연한 양말 너머로 꽝꽝 언 공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날을 세워 바짝 깎아낸 손톱 끝을 들여다보다 코트 주머니에 그 것을 집어넣고 눈밭 위로 살살 발을 움직였다. 얕게 쌓인 눈더미를 바닥이 드러나도록 파헤치고, 또 다시 덮기를 반복하는 행동을 수차례나 반복하고 얼마나 되었을까. 점차 동작이 커짐에 따라 살풋 열리는 주머니 탓에 조금 따뜻해졌나 싶던 손등이 도로 부르텄다는 것을 깨닫고선 아차 싶어 입을 벌린 채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원더풀 데이즈

 

 

 

 

 

 

" 7번, 오백 두 잔! "

아. 나를 부르는 듯 또렷하게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잠시 상념에 빠져 있었는지 사진 너머를 들여다보던 눈의 초점이 한참이나 갈 곳을 잃고 허공을 유유히 떠다녔다. 어벙벙한 머리를 애써 차곡차곡 정리하고, 영화 속에서나 보던 것처럼 무뎌졌던 바깥의 소리들이 생생히 살갗 위로 달라붙어옴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서둘러 사진을 구겨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버리곤 그 길로 갓길을 빠져나와 식당 쪽으로 직행하기 시작했다.

서울은 벌써 겨울이 찾아오고도 며칠이 지나있었다. 본격적인 겨울의 초입을 알리듯 훤한 대낮부터 눈이 내렸는데, 그 때 막 거리로 떨어져내리던 눈송이들은 제법 크기가 있어 얼마 못가 전문업체 직원들을 불러 가게 앞을 치워야 할 정도의 높이를 만들어냈었다. 가게와 가게가 엎어지면 코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마주서고 있는 이 동네의 골목은 유난히 통로가 좁고 또 미끄러웠다. 특히나 우리 가게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해물탕 전문집이 있었던 터라 매번 이슬이 맺히는 새벽이나 재료가 떨어져갈 저녁 즈음이 되면 통로에 물이 흥건해져 손님들이 애를 먹고는 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나는 서빙 할 테이블이 비면 바깥으로 나가 통로의 물을 바깥으로 흘려보내는 일까지 떠맡게 되었다.

쉬워보여도 나름 바가지로 물을 한데 모아 흘려보내는 것이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었기에 다른 일반 알바생들에 비해선 일의 양이 확연히 늘어났지만, 인심 좋은 우리 배불뚝이 사장님께서는 어린 대학생을 두고 이렇게 힘든 일을 시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라며 월급을 거의 두 배 가까이로 올려주셨다. 덕분에 나는 일년이 지난 아직도 제법 건사한 몸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문을 열고, 또 복도를 지나 마지막으로 빛무리가 흩어지는 천막을 걷어내자 마침내 주방이 드러났다. 여기저기 때가 타고, 불에 탄 흔적이 만연한 주방은 그 동안의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받아들였는지 곳곳에 실수의 흔적들이 남겨져 있었다. 물기가 가신 타일바닥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나를 찾았다는 듯 여기저기서 원성이 터져나와 귓전을 때렸다. 냉장고 바깥 쪽에서부터 들려오는 익숙한 12인치 짜리 텔레비전 소리가 지저귀는 소리는 늘 그렇듯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 어디 갔다 왔어요, 언니. "

 

전해지는 일거리 하나 해결하고 도로 주방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빈 쟁반을 든 채로 냉장고 속의 주류를 꺼내던 후배와 마주친 나는 들어오기 무섭게 들어닥치는 일거리에 당황해 눈꺼풀을 꿈벅일 수 밖에 없었다. 어쩐지 얼굴빛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싶더라니. 아마도 그 것은 선배를 만난 것에 대한 단순한 반가움이나 친숙함에서 비롯된 일이 아닌, 노동을 대신해줄 사람을 발견해서 그런 것이 분명했다. 어디 공장에서 기계적으로 찍어내었을 마크 따위가 군데 군데 붙여진 소주병 다발을 받아든 나는 등을 떠미는 익숙한 손길을 따라 마지못해 발을 떼었다.

방학을 한 뒤로 제법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는 생각에 일을 늘린 탓인지 벌써부터 허리가 뻐근해져오는 것 같았다. 머리부터 시작해 발 끝까지.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는 생각에 정말 이러다 과로로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의 마음이 불쑥 들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통장 잔고를 생각하니 머릿 속에서 싹 가시는 것이 역시 돈의 힘이 대단하다 싶었다.

 

" 저기요, 김치찌개 주문했는데 몇 십분째 나오질 않네요. "

 

소주병과 함께 막 따개를 꺼내 가져다놓으려던 참이었다. 서 있던 곳 도처에 앉아있던 손님 하나가 번쩍 손을 들더니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조금 찌푸려진 미간 사이로 익숙하게 비춰져오는 불쾌함에 당황한 듯 입만 뻥긋이던 나는 마침 주워들려던 따개를 들고 쟁반에 올려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정된 테이블 쪽으로 가는 김에 다가가 양해를 구하려했는데, 워낙 가게 내부가 시끄러워서 그런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역으로 손님의 표정만 더욱 구겨지는 것 같았다. 결국 목소리를 높여 주방이 너무 바빠서 그러는 것 같으니 금방 알아봐드리겠다고 계속해 이야기하니 번지르르하게 왁스칠 된 머리가 동그란 뒷통수를 보이며 작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

 

곧바로 테이블을 지나쳐 예정된 자리로 가 쟁반을 무릎에 받쳐두고 사람 수에 맞추어 소주병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제법 무게가 나가는 탓에 쟁반서부터 들어 내려놓을 때마다 팔근육이 아파오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차마 서비스직에 인상을 찌푸리고선 이야기할 수 없는터라 입꼬리를 당겨 활짝 웃어보였다. 창가 쪽으로 길게 늘어선 테이블을 메운 사람들은 근처 회사 사람들인 듯 제법 그럴싸한 양복을 입은 채 하하호호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 맛있게 드세요. "

 

형식적인 웃음과 함께 꾸벅 고개를 숙이며 굽혔던 허리를 펴냈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말초신경부터 시작해 온 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러대는 것 같았다. 은은히 반짝이는 백열등을 바라보며 눈을 꿈벅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려는 일행들을 위해 조금 자리를 비켜주고 뻐근한 허리를 주물렀다. 쉰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이리 힘든 건지 도통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화장실 좀 갔다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게 바로 몇 분 전 일인데도 몸은 제 것이 아닌 듯 곳곳이 노곤함에 피로를 호소하고 있었다.

변명도 좀 그럴 싸해야지, 이래서 원 혈기왕성한 새 알바생들한테 밀려 그나마의 자리도 잃게 생겼다. 제법 급수가 높은 곳인데 잘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일은 치루지도 않았는데 가슴 가득히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뻐근한 어깨를 움직여 뭉친 근육을 풀어대던 것도 순간. 걱정 사서하면 팍팍 늙는다며 제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던 손길이 생각나자 멍울이 진 듯 맹맹하기만 하던 정신이 도로 돌아왔다.

그 길로 도로 테이블을 벗어나 부엌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좀 전의 손님 쪽을 향해 홀깃 돌아보니 여전히 원하던 메뉴가 나오지 않았는지 미간에 힘을 주고 마주 선 사람들에게 무언가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주방 중턱에 우두커니 서서 내부의 상황을 지그시 관망하고 있는 익숙한 얼굴을 향해 다가가 입질을 주니 금새 잊었었다는 듯 동그랗게 뜨여진 눈동자가 산만히 허공을 노닌다.

 

" 내 정신 좀 봐. 먼저 주문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다음에 주문한 사람이었나봐…. "

 

서둘러 가스를 키고 뚝배기 그릇을 가져다 양념장을 푸는 뒷모습에 대고 나지막히 숨을 돌리던 때였다. 갑작스레 가게 앞쪽에서부터 무언가 부산스럽게 흩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짤막한 비명소리가 명쾌하게 뇌리를 뚫고 귓전에 박혔다. 순간의 비명에 쥐죽은 듯 조용해진 가게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한 곳을 바라보고,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 곳을 돌아보았을 때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돌아앉아 누군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 죄송합니다, 차장님.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아…. "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난감하다는 듯 찌푸려진 눈썹이었다. 당황스러움에 치마를 입었다는 사실마저도 까먹은 건지 바닥에 주저앉은 여자가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휴지를 덧붙여 눅눅해진 양말을 닦아내고 있었다. 멀리서보아도 떨고 있는 것이 한 눈에 보일 정도로 바짓가랑이를 붙든 허여멀건한 손이 허공에서 달달 떨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녀를 둘러싸고 앉은 사원들은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난히 얼굴이 익숙하다 했더니 방금 전에 서빙을 하고 온 곳이었는지 제법 눈에 익은 옷들이 시야에 동그라니 맺혀오고 있었다.

 

" 신입, 조심해야지. "

" 이걸 어떡해. 이 구두, 거래처 브랜드에서 새로 런칭한 거잖아. "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탄성과 함께 여사원의 눈에도 점차 어두운 기가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쯧쯧,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지 모를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인 여자는 어쩔 줄 몰라하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싱크대에 반쯤 몸을 기댄 채 그 작은 등을 내려다보는 내 입장에서도 여자의 상황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취직은 꿈도 못 꾸고, 집안 빚을 갚기에 여념이 없는 맥주 가게의 알바생이 할 만한 감상은 아니었다지만. 보아하니 입사하고서 처음 갖는 회식자리인 것 같은데…. 운도 지지리도 없는 사람이다 싶어 괜시리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 ...참. "

 

입맛을 다시며 입을 다물었다. 일전까지만 해도 아주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 사이를 샅샅이 살피던 사람들의 눈길은 늘 그래왔듯 금새 흥미를 잃고 허공을 배회했고, 바닥에 주저 앉은 여사원은 더 작아진 등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닦고 있었다. 이 일련의 모든 과정이 예정된 일 마냥 자연스러웠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다보면 그리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밝은 달빛이 저를 더 감상적이게 만든 것인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 사람도 제법 잘 하겠다고 회사에 들어간 걸 텐데. 얼마나 애석할까. 괜히 기분만 더 뒤숭숭해지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려 부엌 안으로 향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 뒷모습만은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을 듯 단단히 둥지를 틀고 있었다. 갈 곳 없는 병을 든 채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흔한 립스틱 하나조차 바르지 않은 색없는 입술을 가만히 베어무는 내 얼굴 위로 누리끼리한 백열등의 빛이 드리웠다.

 

 

 

 

-

 

 

 

 

가게 문이 단단히 잠겼음을 확인한 뒤, 열쇠를 패딩 주머니 안쪽 깊숙한 데에 넣어둔 나는 그 상태 그대로 셔터를 내려버렸다. 드르륵. 고요한 밤거리에 내려앉은 촉촉한 겨울 공기가 살갗에 닿을 때마다 버석,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것 같았다. 완전히 셔터가 닫히고, 계단 턱에 반쯤 몸을 기댄 채 웅크린 나는 불편한 자세로 꾸물거리며 조그마한 열쇠구멍을 찾아 마저 잠구었다. 제대로 된 장갑조차도 끼지 못해 하얗게 언 손 끝은 계산대 즈음에 걸쳐져 있던 이 열쇠가 차라리 더 따뜻하리라고 느껴지게 할 만큼이나 찼다.

구겨져있던 몸을 도로 빳빳이 펴내며 나지막히 한숨을 뱉었다. 차디 찬 밤공기를 가르고 뜨끈하게 퍼져나오는 입김이 허옇게 길을 냈다. 이 입김만큼이라도 손이 따뜻하면 좋을련만. 근처 시장에서 헐값으로 한 패딩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주머니가 야상 마냥 메말라 있어 손을 집어넣어도 따뜻해지지를 않았다.

새삼스레 실감되는 제 처지에 웃음이 나왔다. 돈을 번다고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기는 한데 이게 잘 하고 있는 일인지도 잘 모르겠고, 일은 손에 안 잡히고. 돈은 들어오는 대로 고향으로 부쳐버리니 얹혀살고 있다시피한 하숙집 월세 외에는 돈이 없었다. 기다랗게 이어지는 가로등길을 따라 걸으며 골목을 포근히 감싸안은 네온 불빛을 따라 새하얗게 부서지는 풍경을 응시했다. 가방을 막 한쪽으로 고쳐매며 묵묵히 걷고 또 걸었다. 막차까지는 아직 여유가 남아있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 …. "

 

막 골목길을 지나 큰 길로 들어서려던 참이었다. 다른 방향으로 난 골목길 끄트머리에서부터 들려오는 인기척에 놀라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모습들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한 명은 거의 쓰러지다시피 반쯤 몸을 벽면에 기댄 채였고, 다른 한 명은 나머지 사람들을 부축하며 난처하다는 듯이 희끄무레한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좀 시기를 잘못 잡은 취객이거니 하고 넘어갈 일이었다만, 앞에서 말했듯 그 날의 나는 유난히 감성적이었고 또 괜시리 마음 한 구석이 시렸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높은 하늘엔 달빛이 훤하고, 네온불빛이 자그맣게 부서지는 골목 위는 반짝거리고. 날은 춥고 마음은 쓸쓸하니 평소에는 제 앞가림 하기에 바빠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던 씀씀이에 불이 붙기에 딱 좋은 날이었던 것이다. 미처 지나치지 못하고 마지못해 방향을 틀어 다가가려던 차, 내 발걸음 소리를 들었는지 퍼뜩 고개를 돌린 정장차림의 남자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 …. "

" …. "

 

정적이 흘렀다. 어디서부터 불어왔을지 모를 말간 발바람이 살갗을 간지럽혔다. 빳빳한 목도리 사이로 반쯤 얼굴을 파묻으며 슬쩍 눈을 내리깔았던 나는 익숙한 듯 텅 빈 공기를 타고 흘러오는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다 쓰러져가는 골목길. 낡은 벽돌들로 올려져 바스러질 듯 불빛에 일렁이는 주택들. 네온사인의 불빛. 그리고 유난히 연탄 내가 짙었던 그 공기.

 

" ...어? "

 

마주한 눈동자에서 일전에 찾아볼 수 없던 감정을 읽어낸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황스러움에서 놀라움으로, 또 거기서 반가움으로 탈바꿈한 눈두덩이 서서히 접히고 휘어진 눈가가 나를 비췄다. 가로등빛이 정면으로 비추는 말갛고 하얗던 그 얼굴. 내가 결코 잊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 얼굴이.

 

" …. "

 

온 몸의 세포들이 바싹 털을 세운 듯 예민했다. 미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조우한 이 관계가 기묘하다는 생각에 괜시리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기도 했다. 간지러운 깃털 따위가 콧잔등을 간지럽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동시에 무서우리만치 까맣게 가라앉은 마음이 심장을 한 손에 쥐고 흔들어대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긴장감에 건조한 입술이 바싹 말라왔다. 의구심과 함께 목구멍을 타고 넘어온 갈증은 입 안을 불태웠고, 그 자리에서 할 말을 잃은 듯 서 있기만 하던 나는 가방을 한쪽으로 고쳐매며 그 이름을 도로 떠올리기 위해 입술을 달싹이기 시작했다.

 

" ...이진기? "

 

내 입에서 나온 이름 석자에 상대편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지는 것 같았다.

 

 

 

 

 

 

 

 

 

 

 

 

[샤이니/이진기] 원더풀 데이즈 | 인스티즈

 

 

 

 내가 기억하는 이진기는, 그런 아이였다. 밝고, 또 명랑했다. 그러니까 그 나이 또래의 바람직한 남아상 정도. 사실 그에 대해서 표현하자면 달리 붙일 말이 그 것 밖에 없기도 했다. 아마 그 것은 나와 이진기 사이에 별 다른 접점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점심시간. 급식실이나 학교 뒷편, 저마다의 자리를 되찾아간 아이들 탓에 텅 빈 교실은 노을빛을 받아 유난히 쓸쓸했었다. 차라리 복도를 지나다니는 인기척이라도 들렸으면 좋았을련만. 종이 치고 얼마 간은 텅 비워지는 학교의 특성 탓에 우리가 공부하던 층의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 뿐이었다.

그렇게 혼자 남겨질 적마다 나는 가방 안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노트를 꺼내 간략한 글을 써내려갔다. 한적하고 고요한 교실은 유난히 사람들을 감성적이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글의 내용은 두서없었고, 하루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에 들었던 생각들을 마구 털어내는 방책에 불과했다. 오늘 아침 가게일로 바쁜 어머니를 뒤로 하고 등교했던 일. 아버지의 눈길을 피해 몰래 아침밥을 거른 이야기. 제대로 된 반찬 하나없이 콩밥으로 가득한 도시락이 부끄러워 아이들이 꺼낼 수 없었던 일전의 나. 하루의 중턱에 서 꼭 하루를 마무리짓는 마냥 써내려간 일기 답지 않은 일기는 나를 울적하게 만들었다.

 

진기는 언제나 그렇듯 밝았고, 또 명랑했으며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단정하고 정갈한 옷매무새. 웃을 때마다 근사하게 휘어지는 상냥한 눈가. 우수한 성적에 좋은 친구들. 그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여기는 바람직한 고등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진기는 모두에게 상냥했고, 공평했다. 자신에게 먼저 화를 낸다고 해도 섣불리 판단해 나서는 일이 없었고, 제 일을 미루려는 친구들을 뒤에서 몰래 타이르기도 했다. 급식에 나오는 느타리버섯과 생선 한 점에게까지도 공평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진기이지 않았을까, 하고 이제 와 막연히 생각해본다.

 

내가 이진기를 처음 본 날은 유난히 또렷한 햇빛이 도드라지던 날이었다. 겨울에 끝자락, 봄의 초입에 걸쳐진 하루는 햇볕은 따사로웠지만 살갗을 에는 바람은 여전히 칼자루 마냥 차가웠다. 교문 앞에는 입학을 축하한다는 형식적인 문구의 플래카드가 걸려있었고, 입학생들은 차마 교복 위에 목도리나 겉옷을 걸칠 생각도 하지 못한 상태로 추위에 떨고 있었다. 어느 학교에나 그렇듯 성미가 급한 얼굴의 학부모들은 운동자 뒷편 너머에 줄지어 서 고개를 삐죽여 제 아이를 찾았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아이들은 서로의 모습이 낯설다는 듯 어색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그 행렬 중 한 사람이었다. 같은 교복을 입고, 별반 다를 바 없이 어색하기에 짝이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사이에서도 소외감을 느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커져오는 압박감에 조금 더 크게 맞춘 교복 밑단 아래로 비죽이 튀어나온 손 끝을 놀려 소매를 늘렸다 도로 마이 아래로 집어넣는 비능률적인 일을 반복할 뿐이었다. 같은 지역에서 왔을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타지역에서 유입되어온 인구였고, 아는 얼굴이 없었음은 물론이며 심지어는 숫기도 모자라 먼저 말을 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서로가 서로를 낯설어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도 완벽히 배제된, 타인이었다는 말이다.

 

입학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다 잊어버렸는지 나는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기에 바빴다. 그동안 중학교에서 방송부에 있었던 터라 몇 번이나 입학식을 담당하고 또 보아왔었는데, 막상 그 주인공이 되어버리니 머리가 백지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왼쪽 가슴에 손을 얹은 채 푸르르지도 그렇다고 먹먹하지도 않은 하얀 하늘을 배경으로 펄럭이는 국기를 올려다보고. 흘러나오는 반주에 따라 난생 처음 들어보는 교가를 흥얼거리는 등의 움직임들은 모두 빳빳히 얼어있던 내 마음을 더 꽝꽝 얼려버리는 매개체가 되어 나를 더 궁지 속으로 몰아넣었다.

다소 산만했던 분위기가 도로 고요해지고, 입학생 대표 선서가 있겠다는 목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한 데 집중되었다. 계단을 밟는 단정한 운동화와 누구나 그렇듯 겉옷 하나 걸치지 못한 채 붉게 언 귀언저리. 발갛게 달아오른 손 끝에 쥐여진 파랗고 네모난 물체는 만지면 부들거릴 듯 유난히 따뜻해보였다.

 

" …임을 선서합니다. "

 

모두가 숨죽인 운동장 너머로 올라선 아이의 내리 깐 눈이 좋았다. 구령대를 둘러싼 녹슨 철거물 따위가 아린 볕에 반짝였고, 날선 듯 곤두세워져있던 분위기가 꿀물에 흘러내리는 듯 붉은 쇳물로 변해 내 마음 가운데에 원을 그렸다. 뚝. 뚝. 진득하고, 만진다면 뜨거울 겨울의 온도가 혀 끝에 맺힌 듯 했다. 입술을 다문 채 가만히 소매를 정리하던 몸을 가지런히 했다. 마이크를 통해 넓다란 운동장을 따라 울리는 그 목소리에 마음 한 군데가 뜨겁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울리고, 마지막 한 마디까지 흔들림없이 곧게 뱉어낸 그는 묵묵히 종이를 내려다보던 고개를 올려 제 앞에 선 교장선생님과 눈을 맞추었다. 허여멀건한 얼굴이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 짧은 찰나 입술을 베어물었지만, 순간일 뿐이었다. 아이가 입을 열고, 침묵에 휩싸인 운동장 전체에 그 아이의 이름 석자가 울리자 추위에 붉어진 코 끝이 따뜻한 볕에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나를 감쌌다.

 

 

 

 

 

-

 

 

 

 

 

' 이진기 '

고작 고속방지턱을 하나 넘었을 뿐인데도 낡은 버스는 유난히 큰 소음을 내며 흔들렸다. 뿌옇게 손자국이 남은 액정 위로 뜬 익숙한 이름에 볼때기로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입술을 채 다 가리지 못한 목도리를 힘주어 들어올리며 그 사이로 얼굴을 파묻은 나는 마치 앞에 그 아이가 서 있는 것처럼 느껴져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익숙한 이름. 언제나와 그렇듯 상냥하던 그 얼굴. 이게 얼마만의 만남이던가.

 

' 꼭 연락해. 이렇게 만났는데 금방 헤어져야 되서 아쉽다. '

 

나중에 밥이라도 한 번 먹자. 나를 향해 다정하게 웃던 그 얼굴을 떠올렸다. 바로 방금 전에 헤어진 듯 머릿 속 도화지 위에 그려지는 얼굴이 무척이나 또렷했다. 길바닥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난다면 어느 누구에게나 그런 말을 했을테지만. 왠지 그 아이의 말은 나로 하여금 기분을 들뜨게 만들고, 그 다음을 기대하게끔 했다. '혹시' 라는 마음이 들도록. 그렇게, 또.

비포장도로로 차가 들어서자 손잡이와 의자들이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일제히 한 방향으로 흔들렸다. 울퉁불퉁한 자갈길 위로 느껴지는 진동에 잠시 휴대폰을 내려 둔 채 창 너머를 바라본다. 산에서부터 넘어온 땅거미가 까맣게 내려앉은 밤은 그 사이에 촘촘히 박힌 별빛들을 따라 길을 내고 있었다. 경직되어있었던 몸의 힘을 푼 채 의자에 반쯤 상체를 뉘운 나는 멍하니 눈을 꿈벅였다. 잠시 잊혀지는 듯 했던 하루치의 피로가 한 번에 다 밀려오기라도 하는지, 벌써부터 따뜻하게 열이 오른 손바닥이 화끈거렸다.

 

 

 

 

-

 

 

 

 

 

눈을 떴다. 아니, 언젠가 감기라도 했었나. 뜨여진 눈꺼풀 사이로 비춰진 세상은 안개가 오른 듯 모든 것이 다 뿌옇고 흐릿했다. 꿈 속 아득한 곳 너머를 따라 걷듯이, 살갗 위로 달라붙어오는 감각 역시도 물에 적셔진 솜 마냥 무거웠다. 가득히 들어찬 안개가 차차 걷어지고 그 새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어두운 가운데 끊임없이 회전하는 나무테였다. 언젠가 보았던 유명한 화가의 그림 마냥 짙은 나무색으로 제 흔적을 남기며 나아가던 별빛들은 시야 끝에서 맺히고, 또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귓전을 튕겨나가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소리가 도로 제 방향을 찾고 들려올 즈음에야 머리 통을 받친 두 팔이 느껴지고, 한껏 굽힌 허리에서부터 찌르르한 고통이 올라왔다.

더불어 얼굴로 느껴지는 차가운 책상의 감촉도.

 

" 점심 안 먹어? "

 

익숙한 풍경에 점심시간이려니, 하고 넘기려던 찰나였다. 갑작스레 옆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드니 익숙한 얼굴이 옆책상에 반쯤 허리를 굽힌 채 기대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간 얼굴과 시야에 선명하게 맺히는 짙은 색의 눈썹, 그 아래에 자리잡은 날카롭게 찢어진 두 눈. 정갈하게 떨어지는 콧등. 언제 보아도 잊을 수 없으리라 막연히 짐작해오던, 그 눈이 오롯이 나만을 담고 있었다.

 

 

" 어? "

" 지금 점심시간…인데. "

" 아…. "

 

 

등 뒤로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허리가 울려오는 듯해 허리를 빳빳이 세우던 것도 멈춘 채 나는 어쩔 줄 몰라 눈동자만 굴려댔다. 점심시간인 건 잘 알았지만. 점심을 먹지 안 느냐고 물어오는 그 얼굴에 대고 차마 도시락이 형편없이 초라해 꺼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모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기껏 할 수 있는 말이 그런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새삼 제 처지가 실감났다.

내가 당황한 듯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뻥긋거리자, 그 것이 자신 때문이리라 짐작했는지 나를 따라 굽혔던 허리를 빳빳이 세운 이진기는 민망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너도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을텐데. 너처럼 반듯한 교복도 입지 못하고 변변치 못한 집안 형편에 헐렁한 소매 끝이 뜯어져도 대충 가리고 마는 제 모습을 조금만 더 유심히 보았더라면. 나는 갑자기 말을 걸어 놀랐느냐고 사과하는 이진기의 뒷편을 바라다보며 생각했다. 이진기가 이런 내 모습을 몰라서 다행인걸까, 하고.

참으로 형편없는 생각이었다.

 

 

 

 

-

 

 

 

 

진짜 오랜만이다, 어떻게 거기서 만날 수 있지? 나를 향해 반갑다는 듯 환하게 웃어오는 그 얼굴은 여전히 소년다웠다. 비어진 술잔을 도로 채우는 제법 능숙한 손길이라거나, 교복이 아닌 반듯한 정장을 입었다는 사실은 그 때와 달랐지만, 적어도 이 웃어보이는 얼굴 만큼은 그 때와 달라진 것이 조금도 없어보였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눈꼬리. 윗입술보다 조금 더 도톰한 아랫입술이 설핏 가늘어지며 위를 향할 때. 언젠가 그 웃음을 볼 때마다 새로이 봄이 왔노라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장소에 도착해 홀로 앉아 머리를 긁적이던 것도 잠시. 약속했던 시각이 거의 다 되어갈 즈음, 가게 안으로 들어온 진기는 먼저 앉아있던 내가 의외라고 생각했던지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응시하다 이내 늦어서 미안하다며 웃어보였다. 가게 내부는 술에 취한 사람들의 고성방가로 시끄러웠지만, 나지막히 웃으며 내게 악수를 청하는 그 목소리만은 또렷히 되살아나 귓전을 타고 부드럽게 울려왔다. 그가 내민 손을 잡기 위해 의자에서 조금 엉덩이를 떼어내 손을 붙잡았다. 수년이 지나도 여전히 뭉툭하고 부드러워보이는 손이었다.

 

 

" 네가 날 기억할 줄은 몰랐는데. "

" ...나도. 네가 내 이름을 다 기억하고. 의외더라. "

 

 

농담 섞인 내 말투에 환히 웃으며 마저 술을 넘긴 진기가 설핏 웃어보였다. 진기가 걸친 정장 코트에서는 여전히 추운 겨울 냄새가 베여있는 듯 했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어느 정도 뺨에 열이 오르는 듯 했다가도, 진기의 모습에서 예전과 달라진 모습을 깨달을 때마다 술이 깬 듯 몽롱해졌던 머리가 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이나 값 비싼 브랜드의 정장을 입은 모습이. 어릴 때와 달리 머리를 넘겨 드러난 시원한 이마가 지금껏 진기가 걸어왔을 시간들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다 낡아 떨어져가는 야상에, 멋도, 실용성도 없는 거적때기 같은 크로스백을 메고 다니는 나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몇 차례 술잔이 오가고, 취기가 도는 듯 추위에 얼었던 눈두덩이 조금 풀렸다 느꼈을 즈음. 테이블 위에 올려진 진기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어렸을 때도 그랬었나. 뭉툭하고 짤막한 손가락에 비해 제법 얇은 손목 위로 채워진 시계가 백열등 아래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비록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언젠가 어릴 때의 그는 학생들이 차고 다닐 법한 저렴한 시계를 차고 다녔던 것 같다. 어릴 적의 회상에 반쯤 발을 담가둔 채 멍하니 그의 손목께를 응시하다 생각해보니, 이제와 이런 것까지 기억하는 내 자신이 우스워보여 새삼 기가 찼다.

빈병에 절반쯤 남겨져 있던 술을 꺾어 비우고, 안주삼아 주문했던 찌개에 숟가락을 푸욱 담가 떠먹었다. 텁텁하고 바싹 말라있던 목구멍으로 매콤한 국물이 들어가니 목이 나아지기는 커녕 괜시리 목구멍이 욱씬거리며 아려오는 것 같아 불쾌했다. 익숙한 고급 브랜드의 로고가 보란듯이 찍혀져 있는 시계 액정을 바라다보던 나는 입맛을 다시며 도로 고개를 들어 진기와 눈을 마주했다. 자신에게는 그저 눈이 아파 그런 것이리라 어줍잖은 명분을 가져다댄 채 취한 행동이었지만, 어찌보면 이런 내 시선을 진기가 알아챌까 두려워 서둘러 시선을 거두어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이유일지도 몰랐다.

나를 줄곧 내려다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치 못했는데, 순간 마주친 눈동자에 놀라 고개를 든 것이 저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움찔 떨었다. 딸꾹. 거기다가 설상가상 딸꾹질까지 나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있을까 싶었다. 고요한 테이블은 시끄러운 주위 소리에 파묻히기에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딸꾹. 딸꾹. 좀처럼 딸꾹질이 멈추질 않아 애를 먹다 물잔을 만들어 입에 부어대던 나는 문득 나를 바라보던 진기의 눈동자에 웃음기가 스며드는 것을 읽고는 어쩔 줄 몰라 곧바로 눈을 피해버렸다.

 

 

" 놀랐어? 미안해. "

" 아냐, 아냐. 네가 미안해할 게 뭐 있다고. "

 

 

손사래를 치며 마저 물잔을 비웠다. 어느 정도 자제하면서 마신다고는 했는데. 둔기로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얼얼한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눈을 부릅 뜨며 마주 보려고는 하는데 앞의 진기는 자꾸만 흐려지고, 속은 울렁거리니 말 하나를 하려고 해도 몸이 성치를 못해 제대로 뱉을 수가 없었다. 이러다간 정말 진기 앞에서 흉한 꼴이라도 보이겠다 싶어 마저 물잔을 하나 더 만들기 위해 손을 뻗는데, 손에 잡히는 것은 차가운 물병도 벽면도 아닌 뭉툭하고 부드러운 손바닥이었다.

 

 

" 괜찮아? "

" …음. "

" 이만 하자. 너 취한 것 같아. "

 

 

내가 손에 쥐려고 했던 것 대신 다른 잔을 쥐어주는 손길에 이어 휘청이는 몸을 지탱하는 단단한 손아귀가 느껴졌다. 우리 너무 마셨나봐. 집에 갈 수는 있겠어? 걱정스럽다는 듯 물어오는 목소리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언젠가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짧은 찰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숙여진 고개 사이로 가려진 머릿 속은 그동안의 모든 과거를 송두리채 부여잡힌 채 휘몰아치고 있었다.
계산을 하는 둥 마는 둥 몇 번이나 넘어질 위기를 넘기고, 겨우 바깥으로 나왔을 때 정말 안 데려다줘도 괜찮겠냐고 물어오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몇 번이나 거듭 거절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진기의 차는 나이에 맞지 않게 고급졌고, 진기는 그 차의 주인다운 행색을 하고 있었다. 그래.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번지는 거리의 불빛 너머로 나는 얼핏 그 날의 환상을 보았던 것 같기도 했다.

 

 

" 네 몸 하나 못 가누면서 어떻게 가려고, "

" 괜찮아. 그렇게 멀지도 않아. "

 

 

그렇게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는데도 심성 약한 이진기는 좀처럼 마음이 편해지질 않는 듯 눈썹이 팔자를 그리고 있었다. 고작 나 하나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니 동창이라는 게 뭔가 싶기도 했다. 동창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지 않았더라면 평생 말이나 한번 섞어볼까 싶은 신분차인데. 하루 하루 시급에 매달려 살면서도 집에 돈은 부치겠다며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다니는 휴학생과, 일찍이 졸업과정을 마치고 중견 로펌에서 일하고 있는 변호사라니. 온도차가 확연한 사이였다. 우리는.

게다가 저렇게 광택나고 넓다란 차는 우리 집 앞의 좁다란 골목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사람 서너명이 다니면 다 찰까 싶을 정도로 좁다란 길인데. 그런 골목길에 저런 차가 들어갈 리가 만무했다. 그리고 저렇게 잘 살고 있는 이진기한테. 하다못해 따뜻한 주택가 방 한칸도 아닌, 겨울엔 난방도 잘 들지 않는 반월세 옥탑방을 보여주기엔 하찮은 내 자존심이 허락을 해주질 않았다. 그러니까, 차마 그 얼굴에 대고 덥썩 데려다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할 자신이 없었다는 말이다.

 

 

 

 

 

 

 

 

 

 

 

 

과연 이어쓸 수 있을까.. 구상해둔 내용은 있는데 너무 길어져서 더 쓰다가는 한 편 분량이 역대급이 될까 싶고, 더 이상 써지지는 않아서 지금 올립니다.

 

 +) 어, 뭐지. 올리고 보니까 그렇게 안 기네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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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우와!우연히 둘러보다가 좋은 글 발견했네요 감사합니다!
8년 전
독자2
와너무좋네요 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필력이진짜 대박이신거같아요....!!
8년 전
독자3
오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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