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났을 때 얼른 쓰지 않으면 또 까먹을 것 같네요.
숫자로 나가면 애매할 것 같아 그냥 상, 중, 하로 나누어 쓰겠습니다.
한 마디로 다음 편이 A Time to Love 마지막 조각이 되겠네요. 아직도 카테고리를 여기에 둬야 하는지 혼란이...
악토버 - Time to Love
부제 넷. 도서실.
민윤기는 생각보다 공부에 성실했다. 전교권에서 노는 성적은 아니더라도 여느 운동부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실제로 그만큼의 성적이 나오는 편이었다. 시험기간이 되어 학생회일도 느슨해진터라 나도 덩달아 공부에 매진하느라 종종 늦잠을 자 민윤기와의 등교도 조금 띄엄띄엄 해질 때, 민윤기에게서 카톡이 왔다.
[토요일에 학교 도서실 언제까지 여냐.]
카톡에서 온점을 찍어내리는 것까지 민윤기다웠다. 내가 도서부냐는 투덜거림을 보낸 뒤 도서부쪽 친구에게 물어 답을 알려주니 고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공부하려고요? 응. 이 대화를 끝으로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같이 공부할래? 그런 물음이 없다는 게 내심 섭했다. 전혀 서운해 할 것도 아닌데, 마음이 그랬다.
동아리 활동의 대부분을 학생회실에서 보내는 터라 아예 공부할 문제집과 책을 챙기고 학생회실에 앉았다. 동아리 시간이 끝날 때까지 문제를 풀다가 간간히 들어오는 학생회 애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에어컨을 틀지 않아 조금씩 더워지는 통에 창문을 열었지만 스며들어오는 바람도 열기를 품었다가 안에 풀어놓기 시작할 즈음 닫아버렸다. 하복 셔츠의 옷깃을 잡아 펄럭이며 옅은 바람을 만들다가 시간을 확인한 뒤에 짐을 챙겨 교실로 돌아갔다. 슬슬 청소를 할 시간이었다.
"아까 누가 너 찾아왔어."
"누가?"
"글쎄. 학생회 사람 아니였을까?"
바닥을 빗자루로 쓰는데 옆에 대걸레를 빨아온 정호석이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말했다. 누가 날 찾지. 요즘 하도 이래저래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서 누군지 쉽게 가늠이 안 간다. 정호석에서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보려다 말았다. 급한 용무도 또 알아서 날 찾아오겠지. 청소를 얼추 끝냈을즈음 담임이 들어와 종례를 했다. 다들 이야기는 듣기나 하는건지 벌써부터 뛰쳐나가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리는게 훤했다. 출석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에 종례가 끝났다. 담임이 교실 밖으로 나가고 금방 떠들썩한 소음이 울렸다. 책상과 의자가 바닥에 긁혀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유독 컸다. 몇 명은 바로 무리를 지어서 나가고, 몇 명은 뒤늦게 주섬주섬 가방을 싼다. 교실의 군데군데는 서너명이 모여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는 것이 절로 눈에 담겼다.
학생회실에 들려 몇가지 좀 챙기고 나와 도서실로 향했다. 토요일의 도서실은 도서부조차 종종 없는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었다. 애초에 학교에서 독서를 크게 권장하는 건 아닌지 구석에 박혀있어 아마 도서실 위치도 잘 모르고 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분명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가방을 들고 아직 토요일 종례의 떠들썩함이 남아있는 복도를 지나 조금씩 한가해지는 옆 건물로 들어갔다. 미술실과 도서실, 자습실 등등. 비교적 조용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은 3학년 건물에 모여있었다. 배려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위치도 1, 2학년 건물 뒷쪽이라 건물 하나 건너왔을 뿐인데 벌써 아예 다른 곳에 들어온 것 마냥 복도는 한적했다.
"도서실 문 닫았어?"
"어? 학생회장님이 여기에는 무슨 일이에요?"
"그냥, 공부하러. 도서관은 오늘 꽤 복잡할 것 같아서."
"지금 사람 거의 없어요. 그래서 몰래 가려고 했는데. 모르는 척 해줄거죠?"
"넌 그게 내 앞에서 할 소리냐. 그리고 너 부장이잖아."
저번 도서부 부장이 2학년한테 자리를 넘겨주려다가 그 2학년이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가버리는 바람에 차장이었던 1학년이 부장을 맡고 있다고는 전해들은 바가 있다. 도리어 차장이 2학년인 유일한 부서여서 더 기억에 남는다. 학생회실에서 자주 마주쳤던지라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잘됐다며 제게 짤랑거리며 열쇠를 건네준다.
"너, 임마. 야, 박지민."
"한 번만. 아이, 진짜 딱 한 번만. 네? 형. 제가 사랑하는 거 알죠? 어차피 공부할거라면서요."
급한 약속이 있는데 갑자기 오늘 담당인 애가 마음대로 내빼서 자신이 대타로 있던 상황이라고 한다. 두 손을 합장을 해 저를 보며 애교있게 배실배실 웃는 얼굴에 어차피 늦게까지 있다 갈 것 같아 상관은 없겠지 싶어 이번만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저보고 최고라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절 한 번 꽉 껴안고 바로 다음에 매점 한 번 쏘겠다며 바쁘게 뛰어간다. 태형아! 나 지금 가는 중! 아, 야야, 기다려라, 좀. 그 사이 전화를 걸어 들뜬 목소리가 빈 복도를 잔뜩 울렸다.
도서실 문을 열자 작년즈음에 공사를 한 번 했다더니 아직 다 빠지지 못한 새 가구의 냄새가 먼저 풍겨왔다. 방금 에어컨을 껐는지 선선한 기운도 조금, 그리고 잔뜩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온기가 조금. 미적지근한 온도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몇 걸음 옮겨 안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책내음이 물씬 풍겼다. 도서실 한 쪽에 있는 널찍한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생각보다 넓은 도서실을 다시 천천히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여기는 무슨 책이 있고, 여기에는 무슨 책이 있고. 조금 더운 책장 틈에서 나오면 살짝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야."
목소리보다 숨소리가 조금 더 섞인 작은 소리가 들렸다. 도서실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더 놀라 어깨를 퍼득이자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민윤기가 서 있었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을 못하니까 왜 그러냐는 듯 제 어깨를 톡 건들이고는 들고 있던 책을 책장에 다시 집어넣는다. 와, 엄청...
"안 어울려."
"뭐?"
"아, 아니에요. 여기에는 왜 있어요?"
"... 내가 못 올데라도 왔냐. 여기 4시까지 연다며. 그래서, 공부하러."
"기말고사?"
"어. 난 정시는 글러먹었어."
"수시는 괜찮고요?"
"정시보다는."
근데 수학이 아주 뭣같아. 사탐이랑. 사람이 거의 없는 도서실이라고 해서 쉽게 떠들 수 있는 느슨함을 주는 건 아니었다. 절로 작아진 목소리로 소근소근거리는 대화보다, 그 작아진 목소리가 더 간지러웠다. 내 가방을 챙겨 민윤기가 앉아있던 책상으로 다가가 맞은 편에 앉았다. 뒤에 커튼을 쳐놔서 그런지 적당히 은은한 햇빛이 민윤기의 어깨로 쏟아져내렸다. 별빛만 쏟아진다는 법은 없구나. 그 모습은 잘 어울렸다.
"야. 너 선행학습 좀 하냐."
"고3 수학은 아직 안 해요."
"미친. 네가 내 희망이었는데."
한참 공부하다가 비문학 문제집을 덮어버리고 영어 문제집을 펴는데 민윤기가 소근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딱 찍어서 수학은 모른다고 했더니 결국 책상에 볼을 대고 엎드리는 폼이 어지간히 수학이 싫은가보다. 슬쩍 바라봐도 역시나 저도 썩 달가워하지 않는 공식과 숫자의 나열이 빼곡했다. 아, 모르겠다. 나는 영어나 할거야.
종이가 팔락거리고, 간간히 바람이 조금 강하게 불어와 커튼을 한껏 부풀렸다가 사라지고, 햇빛이 조금씩 물들어가면서 운동장에서의 소음이 얼핏 들리는 시간들이었다. 샤프가 종이에 사각거리고, 다시 종이가 팔락거리며 넘어갔다. 평소 자주 끼던 이어폰도 끼지 않은 채 집중을 한터라 기분좋게 오늘 해야했던 분량을 끝내고 문제집을 덮었다. 두터운 수학 문제집을 가져오면서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고개를 들자, 샤프를 손 끝에 달랑거리며 턱을 괸 채 잠에 들어있는 민윤기가 보였다.
가만히 감겨있는 눈, 살짝 벌려진 입술, 고른 숨소리. 용케 저렇게 허리를 세우고 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집을 슬쩍 내려보니 하기 싫다며 끄적인 낙서와 몇 개의 공식이 보였다. 뭐야, 이거 귀여워. 작게 소리를 죽여 웃다가 바람이 불어와 뒤의 커튼을 펄럭이는 게 보였다. 민윤기의 하복셔츠 소매가 남은 여분만큼 팔락였다. 풀어진 단추, 그 안에 보이는 받쳐입은 하얀 티셔츠. 최대한 조용히 일어나 뒤의 창문을 닫았다. 나름 조심한다고 했는데 그 소리에 깼는지 민윤기가 눈을 부비면서 샤프를 툭, 떨어뜨렸다. 문제집 위로 샤프가 도르르 굴러갔다.
"잘 잤어요?"
"놀리냐."
"설마요."
"근데 꿀잠 잔 거 인정."
"이만 갈래요? 슬슬 여기 문 닫을 시간인데."
아까 도서실을 둘러보면서 사람이 없는 건 확인했다. 원래 닫을 시간이 4시라지만 지금은 4시 55분이었고, 열쇠는 내 손에 있기에 언제까지 있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게다가 정 이 곳에서 쫓겨난다고 해도 학생회실에 가면 그만이었다. 학생회실에 대한 관리 전반은 내 몫이었으니까, 이런 식으로 쓰는 것도 학생회장만의 몇 안 되는 특권이라 들었다.
민윤기는 어제 보내준 도서실의 열람시간에 대한 것은 까맣게 잊었는지 핸드폰으로 시간을 한 번 확인하고는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 그리고 느릿한 손길로 문제집을 덮어 샤프가 가운데에 낀 그 상태 그대로 가방에 넣었다. 참 성의가 없는 손길이었다. 그것도 민윤기다웠지만. 예전에 얼핏 들었던대로 창문을 모두 닫고 커튼을 쳤다. 이정도만 해도 되나? 안 되면 그 책임은 박지민의 몫이겠지. 그런 생각으로 도서실을 나오는데 민윤기가 여전히 소근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잠긴 목소리가 색달라서 더 집중이 되었다.
"아까, 까먹어서 못 물어봤는데..."
"네."
"그, 도서부 애랑 친해?"
"뭐... 부장이랑 차장정도는 알죠. 이래뵈도 학생회장이잖아요."
"복도에서 대화하는 거 안에까지 울리더라."
"바로 앞에서 대화해서 그런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아까 받았던 열쇠를 찾는데 원하던 대답을 듣지 못 했는지 살짝 미간을 찡그리는 민윤기가 보였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설명한다. 그 말을 자세히 듣다보니, 박지민이 맞는 것 같아 그 애랑은 좀 친하다고 답해주었다. 아, 열쇠 여기있다. 하복바지 주머니 깊게 빠진 열쇠를 겨우 손 끝에 걸치고 끌어올리면서 아무 생각없이 나도 질문을 던졌다.
"그건 왜요?"
"어?"
"왜, 궁금해하나 해서요."
"... 나 화장실 들렸다올게."
"나 저기 앞에 있을게요. 다녀와요."
민윤기가 급하게 발걸음을 돌려 화장실이 있는 쪽으로 갔다. 열쇠를 꺼내 도서실 문을 잠그면서 조용히 웃음을 뱉어내었다. 와중에 혼자 간다는 말도 없이, 들렸다가 '온다'는 민윤기가 귀여웠다. 어지간히 말을 돌리는 것도 못하는 것도 귀여웠다. 딱히 같이 가자고 말을 하지 않아도 아마 나가면 자연스럽게 저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오늘은 분식이 땡긴다. 민윤기가 좋아하는 떡볶이나 먹으러 가자고 해야지.
계속 웃음이 나와서 민윤기가 나올 때까지 멈추느라 혼났다.
--
부제 다섯. 방학
방학이 되자 민윤기와의 연락이 뚝 끊겼다. 정말 말 그대로 뚝. 하기야 매일 아침마다 만나서 등교를 하고, 학교에서 급식실에서 만나면 인사를 나누는 정도, 돌아갈 때 시간이 맞으면 같이 돌아가는. 아니면 아닌. 그런 정도였으니 새삼스럽게 연락을 주고받기도 이상했다. 나는 보충을 다니고, 바로 학원으로 가서 학원수업이 끝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 잠깐의 보충 수업과 관련한 잔업무를 뒤늦게 처리하는 방학을 보내느라 먼저 연락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핑계마냥 생각했다.
여름방학의 끝자락에, 학교에서 내준 의미없는 방학숙제도 얼추 끝내놓았을 무렵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땡겨 슬리퍼를 신고 아파트 입구 쪽 편의점으로 향했다. 무슨 놈의 행사가 그렇게 많은지 투 플러스 원 상품들을 또 따로 보면서 고르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음료수까지 몇 개 챙겨 부모님께 받아온 포인트 카드로 적립을 하고 만원짜리를 내민 뒤에 봉투를 받아들었다. 남은 거스름돈은 반바지 주머니에 대충 우겨넣고 서늘한 편의점을 나오자 다시 훅 끼쳐오는 더운 여름바람에 얼른 아이스크림 하나를 까 입에 물었다. 몸을 돌려 직직, 슬리퍼를 끌며 걸어갔다.
"여름은 미쳤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고개를 까닥이며 얼마나 걸었다고 벌써 옅게 땀이 맺힌 이마를 쓸어올리면서 투덜거렸다. 얼른 집에 돌아가자마자 에어컨을 키고 그 앞에서 시원한 바람을 쐴 생각만 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아파트 단지 가운데에 있는 놀이터를 지나 내가 사는 동으로 들어가려는데 구석에서 퉁, 퉁 거리며 익숙한 소음이 들렸다. 이런 소리만 들어도 민윤기가 생각이 나다니 어지간히 중증이구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휙 날라오는 공에 놀라 얼른 고개를 숙여 스쳐지나가는 공을 멀뚱히 바라봤다. 공의 주인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죄송합니다. 괜찮... 어?"
"아, 네. 괜찮아요. 어... 안녕하세요, 윤기 형."
"어, 어. 응. 안녕."
"이 더운 날에도 농구해요?"
"방금 전까지 미적분이랑 싸우다 머리 식히러."
말 끝을 제대로 마무리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건 민윤기의 습관이었다. 그 습관은 똑같은 말도 조금씩 늘리는 말투와 어울려 종종 술에 취한거냐며 놀린다는 말을 민윤기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참, 늘어지는 말투인데 이상하게 이 무더운 밤에 답답하게 들리지 않았다.
민윤기가 뱉어내는 말의 의미는 항상 뒤늦게 이해가 되곤 했다. 아, 그러고보니 한참 수시 쓰고 그럴 때구나. 그거때문에 학교 전체 분위기가 붕 뜨긴 했지. 보충 마지막 날에 이제는 너네가 고3이라는 생각으로 공부하라는 담임의 말에 우울해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내일이 개학이라니. 생각이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두다가 굴러간 공을 가져온 민윤기가 제 입의 아이스크림을 빤히 보는 것이 느껴져 막대를 빼고 들이밀어줬다. 더럽다는 듯이 미간을 팍 구긴다. 그 표정이 종이를 구겨놓은 것마냥 꾸깃해서 키득이면서 봉지를 뒤적여 민윤기가 자주 마시는 이온 음료를 건네줬다.
"고마워."
"뭘요."
목이 말랐는지 바로 받아들어 한 번에 고개를 젖혀 들이킨다. 훤히 드러난 목덜미와 음료를 삼킬 때마다 울렁이는 목울대와, 목선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려 젖어가는 티셔츠 끝과 목선이 야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제가 한 생각에 놀라 오랜만에 만난 민윤기에게 제대로 인사 하나 못하고 뛰어가다시피 집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올라가는 층수를 멍하니 보다가 제 가슴을 부여잡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가 그제야 손에 쥐고 있던 봉투가 눈에 보여 아이스크림 하나를 다시 집어올렸다. 아, 녹아버렸다. 냉장고로 얼른 향하고 아이스크림을 집어넣고 사온 음료수 캔도 냉장실에 넣은 뒤 냉장고 문을 닫았다. 주머니에 넣은 핸드폰이 지이잉 진동을 울렸다. 꺼내서 보니 잠금화면에 카톡 알림이 떴다. 보낸 사람이, 민윤기였다.
[내일 같이 가.]
새삼스러운 내용이었는데 유독 간질거려 손을 들어 가슴팍을 벅벅 긁어댔다. 미치겠다. 내일 어떻게 얼굴을 보지. 아직 눈 앞에 땀에 젖어 울렁이던 하얀 목덜미라 아른거려 고개만 열심히 흔들어 생각을 떨치려 노력했다. 한참 뒤에 알겠다고 답을 했다. 역시 답은 안 오겠지,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 책상 위에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선풍기 코드를 꽂자마자 다시 드르륵 거리며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확인하니 민윤기에게 답이 와 있었다.
[숙제는 다 했냐.]
이 형의 자판에는 물음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걸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서늘한 침대 위에 엎드려 톡톡 자판을 두드렸다. 그렇게 민윤기와 한참 카톡을 하다가 잘 자라는 인사로 대화가 끊기고, 또 한참이 지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그 전까지 계속 민윤기와의 카톡 대화를 읽고, 또 읽었다. 짧고 뭉툭한 말만 써져있는 대화들이 왜 그렇게 미치게 제 가슴을 뛰게 만들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좋았다.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