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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MISSING YOU



4월

김지원

: 아고물










"딸기 좋아해?"

"......."

"...싫어하나?"

"아, 미안. 아냐. 나 딸기 좋아해."



그럼 딸기빙수 하나 주세요. 동혁이는 얇고 예쁜 목소리로 직원에게 주문을 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싸인도 하고 영수증을 받아 자리에 앉을 때까지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고딩, 딸기 좋아해?'

'네! 엄청. 아저씨도 좋아해요?'

'별로.'

'그럼 아저씨는 뭐 제일 좋아하는데요?'

'너?'


동혁이가 "딸기 좋아해?" 한 마디 했다고 아저씨가 생각날 줄이야. 저 때는 그게 뭐냐고 하면서도 좋다고 실실 웃었었는데, 지금은 생각만 해도 힘든 기억이 됐다.






김지원.


세 글자만으로 충분히 머리가 복잡해지게 하는 사람. 내가 졸졸 쫓아다니고 투우 마냥 들이밀어서 성취해 낸 첫 연애 상대였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첫 연애는 아저씨를 좋아했던 만큼 힘들었다.


회사 일이라면 나와 한 약속은 고민없이 미뤄버렸고, 일주일 내내 바람 맞히기도 다반사였다. 내가 가끔씩 일이 나보다 먼저 같다고 서운함을 토로할 때면, 아직 어려서 모른다는 말만 돌아왔다. 더 좋아하면 지는 거라고, 이런 것도 이해를 못 해주냐는 아저씨의 말에 이해하기 싫어도 이해하는 척을 했고, 아저씨와 말다툼이 일어날 때면 누가 잘못한 일이든 내가 먼저 사과했다. 이러다 아저씨랑 헤어지는 게 내 자존심 버리는 것 보다 싫었으니까.







물론 좋기도 좋았다. 나란히 카페에 앉아 죄다 '아저씨랑', '고딩이랑' 으로 시작하는 버킷리스트를 적고 뿌듯해하기도 하고, 커플 아이템 싫어하니까 기대도 말라던 아저씨가 먼저 커플 신발을 사오기도 했다.


나 때문에 안 하던 것들을 하는 아저씨를 볼 때마다 사랑받는 기분이 들었었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도 생각했었다. 아니었으면 헤어지고 일주일 내내 길에서 아저씨를 닮은 사람만 봐도, 아저씨랑 비슷한 목소리만 들어도 펑펑 울지는 않았겠지.








화장도 예쁘게 하고 옷도 고르고 골라 세팅을 마치자마자 회식이 있다는 카톡을 받고 또 바람을 맞은 날 밤에, 아저씨의 존재를 유일하게 알던 정찬우한테서 카톡이 왔었다.



[야 너네 아저씨] 오전 12:47

[혹시 바비 오피스텔에 사냐] 오전 12:47


너무 깜짝 깜짝 놀란 나는 oh oh oh oh oh 말고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았냐며 또 카톡을 보냈고, 숫자 1이 사라지고도 한참 답이 없던 정찬우가 짧은 카톡을 하나 보냈다.



[방금 어떤 여자랑 들어갔어] 오전 12:54



그 카톡을 보자마자 바로 아저씨한테 전화를 걸었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면서 난 아저씨를 믿는다는 말보다 아저씨를 의심하며 아저씨에게 전화를 먼저 한 걸 보면 내가 아무리 아저씨를 좋아했다고 해도, 그 때 이미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보세요?

"...이거 김지원씨 핸드폰 아닌가요?"

-네. 맞아요. 지원씨 지금 샤워하는데. 나오면 전화 왔었다고 전해줄까요?



낯선 여자 목소리가 들려 당황하기도 잠시, 여자의 다음 말에 할 말을 못 찾고 더듬거리며 아니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에 아저씨에게는 헤어지자는 문자를 남겼고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 내내 울었다. 그 동안 한 번만이라도 와주면 안되냐는 말에 들은 척도 안 하던 아저씨의 차가 하교시간에 맞춰 교문 앞에 와 있었고, 난 정찬우에게 부탁해 아저씨를 보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미안."

"뭘 자꾸 미안하대. 어! 나왔나 보다."



울리는 진동벨을 들고는 "내가 가져올게!" 하며 벌떡 일어나는 김동혁이다. 동혁이는 맛있겠다, 를 연발하면서 나에게 숟가락을 쥐어주고는 생글생글 웃었다. 확실히 내가 좋다고 졸졸 쫓아다니기에는 아까운 얼굴인데. 웃을 때 눈이 살짝 휘고 보조개가 쏙 들어간 게 여자인 나보다 예뻐보였다.





"근데, 동혁아."

"응."

"너 웃는 거 되게 예쁜 것 같아."

"...어?"

"앞으로 자주 웃고 다녀. 진짜 예뻐."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몰랐는지 동혁이는 갑자기 왠 칭찬이냐며 당황한 얼굴이었다. 싫지는 않은지 입꼬리가 슬슬 올라갔다. 그리고 그 입꼬리를 따라 올라가면 빙수 얼음 꼭대기에 얹혀진 딸기처럼 빨개진 귀가 보였다.




"남자한테 예쁘다는 건 칭찬이 아니라던데."

"그래?"


응. 근데 그래도 좋다. 여전히 귀는 새빨개져서 좋다고 웃으며 말하는 동혁이다. 내가 아직 철벽치는 아저씨를 좋다고 쫓아다녔을 때, 아저씨는 동혁이 같이 내 또래를 만나야 한다고 했었다.







'아저씨 은근히 귀여운 거 알아요?'

'나한테 귀엽다는 건 칭찬이 아닌데.'

'..난 칭찬이었는데.'

'알아.'

'.......'

'그래서 좋아.'






...아저씨는 틀렸다.










*        *        *









쉬는 시간. 시끄러운 교실에서 혼자 구석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 댔다. 학교에서 매일 아침마다 핸드폰을 걷지만 오늘은 왠지 내기 싫어 집에 놓고왔다고 거짓말을 해버렸다.





"뭐하냐."

"보면 몰라?"



누가 내 옆에 앉는 인기척이 느껴져 보면 정찬우가 앉아있다. 말없이 내 얼굴만 빤히 쳐다만 보길래 "할 말 있으면 빨리 하든가." 하니까 대뜸 입을 여는 정찬우다.




"김동혁 너 좋아해."

"나도 동혁이 좋아해."

"지금 그게 아니잖아."

"그거 맞는데."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고 정찬우를 보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친구 말고 이성으로. 널 여자로 봐주는 사람이 있다고. 잘 나가다 마지막 말에 정찬우를 한 번 쭉 째려보니 어깨만 으쓱한다.





"나도 알아. 김동혁이 티 다 내고 다녀서."

"근데 뭐가 문제야."

"김동혁이 아니라 내가 문제지."

"왜. 김지원 때문에?"

"뒤질래?"



정찬우는 정색해서 말하는 나에게도 그저 눈을 한번 찡긋하고는 "그래도 동혁이한테 잘해줘. 혹시 알아? 정이 들면서 감정도 생길지." 하며 내 어깨를 툭 치고 갔다. 정찬우의 뒷모습을 보다 한숨이 나왔다. 그럴 일은 없을 거란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분명 정찬우도 알고 있었다.


왜 항상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날 좋아하지 않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좋지 않을까. 서로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나는 기적은 정말 세상에 없는걸까. 사랑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판타지야. 언젠가 칭얼이던 나에게 말했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그 이후로 귀에 수업이 들어오지를 않아서 남은 교시 내내 아프다고 하고 엎드려서 잤다. 나를 보자마자 아프다며, 하고 걱정해주신 담임 선생님 덕에 야자도 빼고 친구들의 걱정도 받으며 학교를 나왔다.


도착한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방만 풀고 입은 교복 그대로 침대로 뛰어들었다. 한참을 뒤척이며 복잡했던 머리는 눈꺼풀이 감기면서 생각을 멈추고 잠에 들었다.






"딸, 얼른 일어나. 밥은 먹어야지!"

"...졸린데.."

"밥 먹고 자! 안그래도 너네 선생님이 너 아파서 조퇴했다고 하시던데, 그럴수록 먹어야 돼."



이불에서 겨우 나와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밥을 떴다. 이제야 내 꼴을 본 엄마께서 옷도 안 갈아입고 잤던 거냐며 타박 아닌 타박을 해오셨다. 느리게 눈만 꿈벅이는데 갑자기 양손을 짝 부딪치면서 "아!" 하시더니 아까 보다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이번에는 진짜 타박을 했다.





"어제 빨래하다 너 바지 뒷주머니에서 종이 쪼가리 나왔어. 앞으로는 좀 그런 거 빼고 내놔!"

"...아."

"어쩐지 저번 빨래 때 휴지 조각 같은 게 자꾸 나오더라! 참, 그리고 그 종이는 너 책상에 올려뒀어."




엄마는 대답없이 대충 고개를 끄덕이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내 밥그릇에 반찬을 이것저것 올려주셨고, 주시는 대로 받아먹으니 밥을 금새 다 먹었다. 빈 그릇을 싱크대에 넣고 방에 들어왔다.


다시 자려다가 '옷은 갈아입고 자!' 하는 귀신같은 엄마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 다시 일어나 옷장을 열었다. 옷장을 둘러보다 시선이 책상 위에 있는 종이에 멈췄다.



...처음 보는 건데?


이게 진짜 내 바지에서 나온 거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낯선 종이였다. 아닌가? 빤히 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했다. 어디서 봤더라. 종이를 펼쳐보고 정말 세탁기에 한 번 돈 건지 번진 잉크를 빤히 보고 나서야 답이 생각났다.







고딩이랑 심야 영화보기. 야한 거 말고. 니가 좋아하는 로맨스로.

고딩이랑 대형마트 가서 시식코너 돌기. 근데 애가 돼지가 쫓겨날 수도 있을 듯.

고딩이랑 벚꽃놀이 가기. 예쁜 날 예쁜 배경으로 예쁜 사진 많이 찍자.





아저씨랑 눈만 마주쳐도 좋았을 때. 서로 좋아 죽었을 때 서로 썼었던 버킷리스트였다. 곁눈질로 내가 쓴 건 다 읽어 놓고서는 자기가 쓴 건 꽁꽁 숨기더니 내 옷에 넣었었나 보다.


내가 쓰자고 했을 땐 이런 걸 왜 쓰냐고 투덜대더니. 쓰기도 많이 썼다. 잉크가 번진 곳은 눈에 바싹 대고 고대 문자를 해석하듯 하나씩 찬찬히 읽어나갔다. 아저씨는 이런 게 하고 싶었었구나. 꾸역꾸역 버티며 읽어내리다, 마지막 말에 결국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아가랑 1년이 되는 날, 그 날만큼은 하루종일 같이 있자. 항상 못해줘서 미안해. 나한테 고딩이 두번째인 것 같이 느끼게 해서 미안해.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어. 대신 소중한만큼 너한테 매달리다가는 나중에 너 떠나면 못 견딜 것 같아서 그랬어. 미안. 아저씨가 표현이 서툴어서. 그래도 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싫다. 진짜 싫다, 김지원. 왜 이걸 이제야 보여주는 건데. 왜 이걸 내 옷에다 숨겨놓은 건데. 이제는 벚꽃도 다 지고, 같이 영화관을 갈 일도, 손 잡고 마트를 갈 일도 없는데.



눈물이 났다. 방에 들어와 나를 보고 놀란 엄마께는 아파서 그렇다고 둘러대고는 이불 덮고 펑펑 울었다. 아저씨랑 헤어지고 나서 길 걷다가도 울고, 학교에서도 울고, 아침부터 밤까지 울었던 게 모두 없었던 일처럼 홍수라도 난 듯이 끊임없이 눈물이 났다. 왜 그렇게 무뚝뚝하냐고 다그치던 나를 보면 넌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아저씨를 미워하던 마음들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 날 꿈에서는 아저씨가 나왔다. 아저씨랑 하루종일 있는 꿈이었다. 새벽에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울었다. 버킷리스트를 발견한 다음 날, 바로 그 새벽이 바로 종이에 써있던 '1년이 되는 날' 이었다.










[iKON/김지원] 월간 아이콘 : 4월호 | 인스티즈












"..진짜 못생겼다."

"왜, 귀여운데."


붕어눈이 돼서 온 나를 본 정찬우의 첫 마디였다. 후자는 김동혁이고. 정찬우는 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관자놀이 옆에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미쳤어?" 해도 김동혁은 마냥 웃었다. 내가 예쁘다고 했던 말을 기억이라도 하는 것처럼.




"울었어?"

"아니."

"맞다고 니 얼굴이 말해주는데."

"맞고 싶냐고 내 주먹이 묻는데."




김동혁, 넌 대체 얘 어디가 좋아서 그렇게 쫓아다니냐?


직설적인 정찬우의 말에 김동혁이나 나나 눈이 커졌다. 얘가 왜 이래. 동혁이는 잠시 놀란 표정이더니 다시 웃으면서 "갑자기 뭐라는 거야,", 하고 웃었다. 정찬우는 넌 싱거워서 안 된다고 혀를 끌끌 차면서 김동혁을 멀리 보냈다.




"너 어젯밤에 운 거 맞지."

"알면서 왜 물어."

"왜 울었는데?"

"......."

"..김지원?"


가끔씩은 누구보다 날 잘 알아서 누구보다 잘 챙겨주는 정찬우가 고맙지만, 가끔은 날 너무 잘 아는 정찬우가 짜증날 때가 있다. 지금처럼. 또 대답 못하고 가만 있으니까 허탈한 표정으로 허, 하고 코웃음을 뱉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 설마 뭐. 진짜 김지원? 그럼 가짜 김지원이겠어? 결국 인정하듯 아저씨 이름을 말하자 정찬우는 질린다는 얼굴로 '김동혁도 김동혁이지만, 진짜 너 미쳤구나.' 했다. 맞는 말이라 대답은 웃음으로 때웠다.





"요즘은 좀 멀쩡한 것 같더니, 왜 또."

"나도 몰라."

"눈 보니까 엄청 울었겠는데. 아침에도 또 울었다에 한 표."

"..너 내 방에 CCTV 달았어?"

"아 진짜 미쳤어? 그딴 걸 내가 왜 달아."



확 짜증을 내며 말하는 정찬우에 쫄아서 주눅든 채로 "알겠어.. 미안..." 하자 정찬우는 머리를 한 번 털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불쌍해서 그런다. 남자 하나 못 잊어서 이러고 있는 니가 불쌍해서."

"너한테 불쌍하단 말 들으니까 되게 기분나쁘네."

"차라리 남자가 벤츠면 몰라. 아무리 봐도 니가 아까운데."

"벤츠 맞거든."

"와, 이와중에 김지원 편 드는 것 봐. 제정신 아냐, 진짜."

"욕만 할 거면 꺼져줄래?"



서로 태클 걸고 시비 걸며 티격태격 하는데 갑자기 정찬우가 "안 되겠다," 하며 내 머리에 손을 턱 얹었다.




"어제 상태가 안 좋길래 안 건드리려고 했는데, 너 그냥 오늘 애들 노는데 껴서 놀아."

"뭐?"

"밖에도 좀 돌아다니고 북적거리는 곳에도 껴보고. 김동혁 얼굴이라도 보든가, 정 싫음 나랑만이라도 있든가."



누가봐도 걱정하는 얼굴로 말하는 정찬우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니 이따 끝나고 반으로 갈테니까 꼼짝 말고 있으라며 손인사를 하고는 사라졌다. 말은 틱틱대면서 내 걱정 해주는 정찬우가 고마웠다.







*        *        *







"아프다고 중간에 빠지지 마."

"알겠어."

"힘들다고 먼저 집에 가지 마라."

"알겠다고. 귀 먹었어?"

"아니."



능글맞게 웃으며 슬쩍 어깨동무 하는 정찬우를 한 번 째려봤다. 어깨에 얹혀진 손을 찰싹 때리자 아프다고 엄살을 피며 울상을 짓는다. 다른 때라면 칭얼거리는 소리에도 한 번 더 짜증을 냈겠지만, 노래방 특성상 말소리가 잘 안 들리는 덕분에 정찬우의 목소리는 옹알이 같았다.



여자 셋, 정찬우 김동혁 포함 남자 넷이서 온 노래방의 첫 선곡은 내 친구랑 한 남자애가 고른 듀엣곡이었다. 시시하다며 냉큼 취소를 해버린 정찬우는 신나는 노래가 최고라며 빅뱅의 빵야빵야빵야를 틀었다. 자신이 자칭 타칭 춤신춤왕이라며 나서는 틈을 타서 얼른 짐을 챙겨 방을 나왔다.


정찬우가 걱정해 준 것도 고맙고, 정찬우에게 약속한 건 미안했지만, 오늘은 정말 혼자 있고 싶었다. ...그리고 왜 하필 친구는 아저씨랑 내 애창곡이었던 노래를 틀어서.






"어디 가?"

"..어?"

"오늘은 먼저 안 간다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동혁이가 서 있었다. 오늘 내내 말도 잘 안 걸고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나한테 신경 안 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당황해서 '생각해보니까 집에 일이 있었다'고 둘러댔더니 김동혁은 의외로 단호한 얼굴로 무슨 일? 하고 물었다.




"부모님이 늦게 오신대서.. 동생 봐주는 일?"

"동생?"

"응. 동생 혼자 있어야 해서."

"거짓말. 너 동생 없잖아."



살살 거짓말을 하며 대답하다 김동혁의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내가 전에 외동이라고 말했던가.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그런 나를 귀신같이 알고 김동혁이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런 것도 모를까봐? 요즘따라 나를 귀신같이 아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어색하게 웃어 보이니까 김동혁이 가까이 와서는 내 손목을 붙잡았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잘 웃던 동혁이였는데, 왠지 표정이 좋지가 않았다. 더불어 불길한 예감도 같이 드는 기분이었다.





"어디 가는데."

"......."

"가지 마."

"........"

"...안 가면 안 돼?"



가만히 말없이 있다가 동혁이 손을 떼어냈다. 힘을 주고 있지는 않았는지 손이 금방 툭, 하고 떨어졌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가려는데, 동혁이가 급하게 말을 가로챘다.




"그 사람 때문이지, 김지원."

"......."

"...이제야 나랑 눈을 마주치네."



동혁이가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허무하다는 표정으로 동혁이는 힘없이 웃었다. 김지원 맞나보네. 그렇게 말하는 동혁이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뭘, 그 아저씨? 김지원?"


김동혁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김동혁은 차마 내 얼굴을 못 보겠는지 바닥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알게 된 지는 좀 됐어.

처음 본 건 그.. 그 분이 학교 운동장에 찾아왔을 때였어. 보자마자 네가 울고 정찬우는 짜증을 내더라고. 그때부터 저 사람이 누구길래 저러나 궁금했는데 전에 너랑 만나서 밥 먹고 놀다 집에 데려다 준 날, 너희 집 앞에 또 그 사람이 서 있더라고. 나랑 눈이 마주치니까 놀라서 뒤돌길래 따라 가서 붙잡고 내가 물었었어. 너 아냐고. 무슨 사이냐고.




처음에는 그게 누구냐고, 모른다고 말하더니 내가 그 쪽에 찾아온 거 봤다고, 그래서 너 울었다고 말하니까 결국 '고딩이 울었어요?' 하고 묻더라. 그러면서 자기 이상하게 볼 거 알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다고 어딘가에는 말하고 싶다면서 나한테 다 말해줬어.



너랑 사귀다가 얼마 전에 헤어졌다고. 운동장에 찾아온 그 날에. 너한테 미안하다고 빌기라도 하고 싶었는데, 그동안 자기가 너한테 못 해준 것들이 생각나서 다시 사귄다고 해도 니가 더 힘들어질까 봐 못 그러겠더라고.


그러더니 나한테 너 좋아하냐고 물으시더라. 그렇다고 하니까 웃으면서 잘 해주라고 하시면서 너 좋아하는 거라든지, 니가 싫어하는 거 말해주시고, 많이 좋아해주라고 하시더라. 자기가 많이 힘들게 했다고.






그 이후로 몇 번 더 만난 적이 있었어. 아, 약속을 잡고 만난 건 아니고, 가끔 마주치면 얘기 하는 정도? 이 동네 계속 맴돌고 계시는 것 같더라. 시간 날 때마다 여기 도는 것 같았어. 그렇게 마주치면 나한테 니 안부를 묻기도 하고. 너랑 있었던 일을 얘기 해주시기도 하고. 너한테 미안하다고, 후회한다는 말도 많이 하시고.


내가 봐도 만날 때마다 갈수록 수척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힘들어 하시는 게 보이더라. 근데 나도 참 나쁜 게, 그래도 이상하게 너한테는 그 분 만나는 걸 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분 보면 니가 다시 흔들릴까봐.





하루는 얼굴에 생채기가 나고 꼴이 엉망진창이 돼서 나타났었어. 무슨 일이냐고 여쭤보니까 싸움이 좀 있었다고 얼버무리시더라고. 심상치 않은 느낌이라 자꾸 캐물으니까 끝끝내 말해주시더라.


회사에 한 여직원이 네 욕을 해서 자기도 모르게 발끈 하고 여직원 멱살을 잡았다가 상사한테 엄청 깨지고 회사에서 쓰레기로 찍혔다고. 나야 그 여자가 널 어떻게 아는 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 분께서 계속 일도 제대로 못하고 밥도 잘 못먹고 하니까 왜 그딴 애 때문에 고생하냐는 식으로? 말했나봐.


그런데 그 얘기를 하면서도 '그렇게 불쌍하다는 눈으로 안 쳐다봐도 돼요. 아마 저보다 고딩이 더 마음 고생 했을 거에요.' 하시더라. 끝까지 너 걱정만 했어. 진짜 너 걱정만. 그리고 그저께 들었어. ...오늘이 1년이라며. 안그래도 혹시나 너 기억하고 또 힘들어하면 어쩌나 걱정하시더라. 










"이제야 말해서 미안."

"......."

"...울지 마.. 그렇게 울면 나 그 분 얼굴 못 봐... 응?"



대충 눈을 비볐다. 눈이 따가웠다. 동혁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고만 있다 그 자리에서 나왔다. 눈 앞에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겨우 몸만 지탱하면서 계속 눈만 비볐다. 얼굴이 눈물 범벅으로 축축하고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이렇게 길에서 우는 건 헤어지고 일주일이 전부일 줄 알았는데. 아저씨는 끝까지 나를 괴롭혔다. 왜 그렇게 미련하게 사는데. 정작 옆에 있을 때 차갑게 굴던 건 아저씨였으면서. 일도 못하고 밥도 못 먹는 것 같더던 동혁이의 말이 한 번 더 떠올랐다. 왜 그렇게 멍청하게 사는데, 아저씨는.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끅끅 대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계속 아저씨만 불렀다. 엄마 찾는 애 마냥 계속 아저씨를 찾았다. 아직 회사에 있을 시간이고, 아저씨는 없다는 걸 알아도 그냥 계속 찾았다.






"...아저씨.."

"......."

"아, 끅, 아저씨..."

"......."

"아저...씨...."

"...왜."


하냥 울고 있는데 바로 앞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온갖 물로 젖어서 추할 내 얼굴은 생각도 못하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내가 그렇게 찾던 얼굴이 있었다.







[iKON/김지원] 월간 아이콘 : 4월호 | 인스티즈



"그렇게 나 부르면서 서럽게 울면 어떡해."

"아저씨? 진짜... 아저씨?"

"응, 아가."

"...나 또 꿈 꾸나 봐. 자꾸 아저씨가 보여."


내 앞으로 바짝 다가온 아저씨가 내 볼을 손으로 닦아주며 "이거 꿈 아닌데." 하고 웃었다. 정말 그리웠던 목소리와, 그리웠던 손과, 그리웠던 아저씨였다.




"근데 왜 아저씨가 내 앞에 있어요?"

"잊었어? 약속했잖아."

"......."

"오늘 하루종일 같이 있자고."

"......."


내 볼을 잡고 있는 아저씨의 손 위로 내 손을 겹쳤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진짜 김지원이네. 혼잣말처럼 한 내 말에 아저씨는 눈을 휘게 웃으면서 "응. 진짜 김지원이야." 하고 내 손을 잡았다.





"근데, 나 없는 동안 내 꿈 꿨어?"

"...네?"

"또 꿈 꾸나 봐, 그랬잖아. 고딩이."

"ㄱ, 그건! 어제만! 그랬어요.. 어젯밤만... 말고는 한 번도 아저씨 꿈 안 꿨다, 뭐."




놀라서 순간 목소리를 높였다가 민망한 기분에 말꼬리를 흐렸다. 아저씨는 우물쭈물 말하는 나를 보다 눈을 굴리며 웃더니 검지 손가락으로 내 볼을 툭, 치고는 평소보다 살짝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좀 서운한데?

난 매일 밤마다 고딩 꿈 꿨는데.


















작가의 말

아직 열 두시 아니다!!!!!! 4월 맞다!!!!!!!!

시간 넘나 빠른 것ㅠㅠ 사실 4월 31일까지 있겠지? 하고 빈둥대던 작가 멍충이..;ㅅ;

4월호 지원이 잘 읽으셨나요..♡ 약간 또 찌통..이져...ㅎㅎ? 제 안에 숨겨진 변태가 있나봐요...!

그럼 모두들 오늘은 지원이 꿈 꾸시길 바라며 좋은 밤 되세여!! 사랑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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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씨
이씨... 시간 조절 실패했어...ㅠㅠㅠㅠㅠ
7년 전
독자1
세상에... 맙소사...
7년 전
구모씨
세상에... 비록 제가 답글은 늦었지만 어떻게 이리 빨리 오셨어요..! 늘 감사해요 ❤
7년 전
독자2
헐 이렇게 끝나다니ㅠㅠㅠㅠ역시 나이스 타이밍!!! 찌통이긴하지만 넘나 좋은 거.. 저런 아저씨 어디 없나 ㅋㅋㅋㅋㅋ 진짜 너뮤 좋다ㅠㅠㅠㅠ 작가님 좋은 작퓸 감사해요 다음거도 기대할게요♡♡
7년 전
구모씨
저런 아저씨 있으면 밧줄로 묶고 제기 납치해가져^^! 제가 더 감사해요❤!
7년 전
독자3
5월에 읽는 거지만 ㅠㅠㅠㅠ 그래도 좋다 ㅠㅠㅠㅠㅠㅠㅠㅠ 왜 둘은 엇갈려서는 ㅠㅠㅠㅠㅠㅠ 표현 좀 해주지 ㅠㅠㅠㅠㅠㅠ
아무래도 현실에 부딪혀 힘들었었겠지만 ㅠㅠㅠㅠ그래도 둘이 다시 만난건 너무 좋다 ㅠㅠㅠㅠ동혁이가 좀 불쌍하기는 하지만 ㅠㅠㅠㅠ

7년 전
구모씨
ㅠㅠ 울지마요.. 둘의 재회 참 좋져ㅎㅎ! 동혁이는 이제 더 예쁜 여자(..?) 만날 거니까 너무 아쉬워 마셔요! ♡
7년 전
독자4
잘 읽었습니다!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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