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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열] 시간을 달리는 소녀. - 01화

 


지금은 21세기.


초등학생때, 나는 조선시대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혀를 차며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겠지만,
그날 난 정말로 그곳에 다녀왔다.


학원을 막 끝내고 지친 몸으로 침대에 쓰러지듯이 몸을 던지고
잠을 청하면 어느새 난 시간을 달리고 있었다. 단언컨데 꿈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느낀 고통과 생각들이 너무나도 현실적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도 난 과거 속으로 달리고 있었다.

 


+

 


악- 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땅에 박아버린 내 엉덩이를 문지르며 천천히
일어서니 지금껏 내가 오던 조선시대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곳에 와있었다.


몇달전에 조선에 한 야산에 떨어져 장장 하루동안 야산을 헤매다가 도적을
만나 체감상 몇시간은 도망치다 무심코 손목을 바라봤더니 숫자가 0이 됐고 순간
나는 21세기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온 21세기의 시간은 전혀 흐르지 않았다.

 


+

 


" 살려주십시오. 제발.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


이곳은 비명과 총성이 난무했고, 조금 익숙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들이 들려왔다. 여기가 어딘지 추측은 되었지만 내가 생각한
그 시대가 아니었으면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에 혼란스러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


" 아가씨!! 뭐하는거야! "


한 남자가 '이런곳에 혼자 있으면 위험해!'라며 내 손목을 잡고 끌며
소리쳤다. 남자는 매우 놀란듯 보였고 나는 남자의 힘에 끌려 따라갔다.


" 아저씨. 지금이 몇년도에요? "


" 뭐? 무슨 그런걸. 지금은 1933년도란다. "

 


이럴수가. 불길한 예감은 항상 빗나가질 않고 딱 맞아 떨어졌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말이 사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 아니. 어쨌든 학생인것 같은데 이름이 뭐야? "


" 김여주요. "


" 왜 위험하게 혼자 다니고 있어. 부모님은? "


" ... 저 혼자에요. 부모님은 안계세요. 집도 없어요. "


" 아이고, 일단 아저씨 본부로 갈래? "


" 네. "

 


단언컨데 나는 정말 아저씨가 잘생겨서 따라가는게 아니다.
마음에 들어서 따라가는게 정말로 아니다.

 


+

 


몇십분을 걸었을까. 힘들어 지칠때쯤 본부라는 곳에 도착했다.
아저씨가 본부 문을 여니, 거실이 보였고 그곳의 바닥은 삐걱거리는
나무판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구 몇개가 켜져있었으며 거실
한가운데에 둥그런 식탁과 의자 몇개, 소파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그 의자에는 몇몇의 남자들이 앉아 있었고, 한 남자는 긴 기럭지를
자랑하며 소파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내가 그곳에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있던 남자들이 일제히
나와 아저씨쪽으로 눈을 돌렸고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눈이 큰 남자가 물었다.


" 뭐야. 그 여자애는? "


" 설마 납치해온거야?! "


한 남자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장난스럽게
물어보자 아저씨가 발끈하며 말했다.


" 야. 변백현. 납치가 뭐야. 납치가. "


그러더니 눈이 큰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 백현이가 원래 좀 철이 없잖아."


다짜고짜 걱정스러운 눈으로 납치 드립을 하던 남자의
이름이 백현인가 생각하던 도중 손목을 보니 14.

아직 많이 남아 있다.


" 이름이 뭐야? "


백현이라고 하는 남자가 가까이 다가와 웃으면서 물어봤다.
한발자국 뒤로 물러가 거리를 유지한후 대답했다.


" 김여주요. "


" 나이는? "


옆에서 아저씨는 아- 하고 탄식을 내뱉으며
'나이를 안물어봤네.'라며 내가 대답하기만을 기다렸다.


" 18살이요. "


" 내가 소개할게. 내 이름은 김준면이야.27살이고 방금 너한테 말건애가 변백현.
저기 의자에 앉아있는 눈큰애는 도경수. 소파에서 자는 쟤는 박찬열이고. "


" 네. "


" 아, 그리고 얘네들은 다 25살이야. 더 어린 애도 있는데 걔는
오세훈. 21살이고.얼굴보고 소개해줘야 하는데 아직 안들어왔네. "


뭐야. 말투로 봐선 30대는 될 줄 알았는데 이 남자들 알고보니
다들 꽤 어렸다. 왠지 아저씨라 부르기 미안했는데 나를 데려온
사람은 화를 안내는거 보니까 아저씨라 불리는게 익숙한듯 싶었다.


나는 더 자세히 방안을 둘러보자 내 어깨만한 수납장 위에
권총 여러개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 여기서 무슨일 하시는 거에요? ... 보니까 총도.. 있는데? "


내가 묻자 변백현이라는 남자가 대답했다.


" 아, 우리는 간단하게 말하면 독립군이라고 해야하나. "


" 독립투사? "


" 아 맞아. 도경수 역시 똑똑해. 독립투사야. 엄청 멋있지? "


" 네. 엄청 멋있네요. "


웃으며 대답하자, 백현이란 남자가 더욱더 어깨를 으쓱대며
웃었다. 그러자 준면 아저씨가 나에게 물었다.


" 근데 여주야. 너 당장 생활할 집이 없으면 여기서 생활하는거 어때? "


" 네? "


" 여기 좀 누추해도 위층에 올라가면 꽤 깨끗해. 여기는 찬열이 혼자
사는 곳이자 우리 아지트니까 그나마 덜 불편하지 않을까싶은데. 어때? "


" 정말 그래도 돼요? "


이제 개고생할 일이 굳었다. 집나가면 개고생이라
매번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는데 이번에는 일이 쉽게 풀렸다.
나중에도 과거에 올 때 이곳에 떨어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잘된 일이었다.


" 물론이지. "


" 감사합니다! "


" 그럼 여주야. 위층에 올라가 있을래? 맨 끝에 방 비어있을거야. "


" 네. 그럴게요. "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계단을 오르며 생각했다.
다 좋은 사람인것 같아. 찬열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아마 좋은 사람이겠지.


올라오니 방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맨 끝 받으로 들어가니
옷장과 수납장, 그리고 책상 하나가 있었고 이불이 쌓여 있었다.
이불에 꽤 먼지가 있어 빨래를 하고자 계단을 내려가려 하자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 ... 여자애를 데려왔다고? "


' 그래. 근데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찬열이 친동생이랑 꽤 닮았어. "


' 정말이야? 찬열이 형은 걔 봤어? '


' 아니. 아직 소파에서 자고 있어. 어제 꽤 무리를한 모양이야. 그래서 안깨웠지. "


엿들을 생각은 없었는데 어쩔줄몰랐다. 그냥 지금 내려가서
아무것도 못들은 척 할까. 아니면 다시 낑낑거리며 방으로 들어갈까
수십번을 고민했다. 근데 그순간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 여주야? "


" 으아! 네! "


" 빨래하려고 이불 들고 온거야? "


" 아, 네. "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자 준면 아저씨가 작게 미소지으며
앞에 있는 남자를 소개시켜줬다. 들킨걸까. 내가 엿들었다는걸.


" 아까 말했던 오세훈. 21살이야. 아, 그리고 이 여학생은 김여주. 18살. "


" 아, 네. 안녕하세요. "


" 아마 나이가 비슷해서 둘이 제일 잘통할거야. "


어색하게 고새를 숙여 인사하자 오세훈이라는 남자가 빙그레
웃으며 손인사를 했다. 왜 심장이 터질듯이 떨리는건데..


" 여주야. 우리 이제 가야되는데 찬열이형이랑 있어도 괜찮지? "


" 네. 괜찮아요. "


" 찬열이형 착하긴 하지만 처음이라 좀 어색할거야. 찬열이형
요리 잘하니까 배고프면 맛있는거 해달라해! 나중에 와서 놀아줄게. "


그리고는 준면 아저씨가 소파에서 자던 남자를 흔들어 깨우며
이런저런 간단한 설명을 하고 다른 남자들과 대문을 나서며 말했다.


" 절대로 밖에 마음대로 돌아다니면 안돼. 알았지? "


" 네. "


준면 아저씨와 새끼 손가락까지 걸어가며 약속을 하고난 후,
문이 닫히고 정적이 흘렀다. 아직 비몽사몽한 찬열이라는 남자는
하품을 하고는 고개를 숙이며 천천히 욕실에 들어가버렸다.


내가 뭘 하고 있는건지 생각하다 10여분 정도가 흘렀고
찬열이란 남자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에게 물었다.


" 이름이 김여주. 나이는 18살? "


" 네? 네! "


일부러 어색함을 풀기 위해서 어색한 티가 팍팍 날 정도로
밝게 대답하자 남자는 크게 웃으며 '긴장하지마. 뭐먹을래?'라며
물어왔고 나는 뭐든 잘먹는다고 대답했고 찬열이라는 남자는
알겠다고 기다리라며 나를 의자에 앉혔다.


기다리는 도중에 다시 한번 손목을 확인하니 10이라고 쓰여 있었다.


찬열이라는 남자가 볶음밥을 가져 왔고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시간이 흐르는줄도 모르고 즐겁게
대화하다보니 어색함도 풀리고 어느새 친해져있었다.


" 너 진짜 내 친동생이랑 닮은 것 같아. "


" 그래요? 어디가 닮았는데요? "


" 얼굴은 그다지 안닮았어. 근데 딱 너를 보다보면 내 동생이 생각나. "


" 동생분 보고싶다. 어디 있는데요? "


" 나도 몰라. "


당황스러운 대답에 네?하고 다시 묻자 오빠는 눈을 피하며
말했다. '나도 알고싶어. 정말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라고.


" 괜한거 물었네요. 죄송해요. 저때문에.. "


" 죄송할 필요는 없어. 몰랐던거잖아. "


이내 다시 정적이 흘렀고 손목을 확인해보니 8이라고 적혀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걸까. 정말 시간가는 줄 몰랐다.


" 이제 치울까? 떠들다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네. "


" 제가 치울게요. 먹은 값은 해야죠. "


오빠가 '됐어. 학생은 공부나 하세요.' 라며 장난스레 웃으니
어색하고 정적이 흐르던 분위기는 다시 밝아졌다. 생각했던것보다도
훨씬더 다정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멋진 사람이기도 했다.

 


+

 


밤이 되자 21세기의 도시와는 다르게 이곳은 굉장히 어두웠고 조용했다.
21세기에 그 흔한 전광판 하나 빛나지 않았다. 아니. 그런것조차 없었다.
이불을 빤후, 마당으로가 이불을 널고 다시 방에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았다.


손목의 숫자를 확인해보니 어느새 숫자는 5로 적혀있었다.


이제 잠에 들어 5시간이 지나면 다시 21세기로 돌아가겠지.
그런 생각으로 엎드려 잠을 청하자 왠지 나도 모르게 잠이 안왔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책상을 둘러보니 연필이 꽂힌 조그마한
다이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연갈색의 예쁜 다이어리였다.


무슨 내용이 적혀 있을까 대충 넘겨 봤지만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지금까지 조선시대에만 가서 기록할 것이 많았는데도 붓이나
종이를 사는게 여의치 않았다. 나에게는 땡전 한푼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이어리에 오늘의 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미래로 돌아갈 때에 이것을 챙겨야지.
이러면 먼 훗날 내가 이 다이어리를 보았을 때 꽤
재미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래저래 쓰다보니 손목의 숫자는 4를 가리켰고, 난 마지막
한 줄을 쓰고는 다이어리를 덮고 잠을 청했다.

 


'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인것 같다. 특히 찬열오빠. '

 


+

 


빛이 들어와 눈을 찌푸리며 일어나니 내가 잠든 그 방, 그 책상, 다이어리
모든게 다 그대로였다. 뭐지? 처음 겪어보는 일에 당황한 나는 나의 손목을
확인해보니 0을 가리키고 있었다.


뭐야. 왜 현재로 돌아가지 않았지? 손목의 숫자는 분명 0인데.


조선시대에만 떨어지던 내가 일제강점기 시대로 떨어진 것도
그렇고 나를 둘러싸던 것들이 갑자기 뒤바뀌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움 감추지 못하던 그때 누군가가 노크를 했고
문을 열자 찬열오빠가 서있었다.


" 깨어있었네? 잘 잤어? "


" 아, 네... "


" 준면이 형이랑 애들 다 1층에 와있어. 씻고 밥먹어. "


" 네.. "

 


+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손목의 숫자가 0인데도 전혀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애써 불안한 내색을 하지 않으며 오빠들과의 생활에
적응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시내 구경을 가자고 했다.


" 여주야. 우리 본부에 온 뒤로 시내 나온거 처음이지? "


" 네. "


" 사고 싶은거 있으면 준면이 형한테 말해. 저 형 부자야. "


" 아 정말요? "


변백현에 장난에 경수오빠는 '애한테 참 좋은거 가르친다.'며
눈을 흘겼지만 갑자기 '근데 사실 부자는 맞아.'라며 웃음을
지어보였고 덩달아 나도 같이 웃었다.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시내에 도착했다.
내가 살던 21세기와는 풍경만 달랐지. 느낌만은 우리나라의
서울이었다. 완전히 못알아볼정도로 변하진 않은 듯 싶었다.


나름대로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도중에 갑자기
머리를 울릴정도로 큰 소리의 총성이 들려왔다.


" 여주야! "


찬열오빠가 날 끌어당겼고 우리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일까.


" 여주야! 뛰어! "


갑작스러운 총성에 놀란 나는 찬열오빠가 이끄는대로
따라가다 밀려오는 사람들에 의해서 찬열오빠와의 손을
놓치고 헤어지고 말았다.


살기위해 정신없이 뛰었다. 찬열오빠와 다른 오빠들이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얼마나
달린걸까. 머리가 핑 돌면서 난 그자리에서 쓰러졌다.


흐려져가는 시야 앞으로 군복을 입은 남자가 나를 보고는
나를 향해 뛰어오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난 눈을 감았다.

 

 

 

 

/비지엠틀고보세용/다음화는언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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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와 다음화 너무 기다려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기다릴께요 ㅠㅠ
7년 전
근엄큐티
넹!
7년 전
독자2
헐헐 다음화 ㅠㅠㅠ 여주 어떻게되는거죠ㅠㅠㅠㅠ
7년 전
독자3
신알신 하고가요!
7년 전
독자4
헉 오랜만에 글잡들어왔는데 이게 웬 횡재... 엑소글잡이 뭔가 다시 번영할 수 있을것같은...!!!! ㅠㅠㅠㅠ신알신 하고갑니다!!!!
7년 전
근엄큐티
감사해요!!헛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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