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자 이 새X야
03
"팀장님 어디 아프세요?"
"아뇨 저는 병문안 때문에"
"아아..."
"어디 가시나 봐요"
평소랑 다른 민 팀장이다. 집에 들렀다가 오는 길인지 맨날 보던 정장이 아닌 니트에 검은색 진.
"저 어... 그 아이스크림 사러..."
"저랑 같이 가죠"
"네? 아 그,그럼 그럴까요?"
인생 살면서 최고 떨린다. 설렌다 그래. 맞다 나도 여잔데 옆에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있으면 설레지 그럼 안 설레냐? 어? 앞장서서 턱턱 걸어가던 민 팀장이 멈춰 서는 돌아본다.
"안 오세요?"
"네! ㄱ,가요!"
같이 걷는다, 나란히 걷는 게 왜 이렇게 어색한지. 분명 아이스크림 가게가 가까웠던 거 같은데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오빠 병문안 왔나 보죠?"
"네? 어떻게 아셨어요?"
"저도 병문안 왔으니까요"
"네?"
"저도 걔 병문안 왔어요"
민 팀장이 오빠 친구야?? 처음 알았는데? 전혀 처음 알았는데? 완전 처음 안 사실인데?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오빠놈한테 이런 번듯한 친구가 있다고? 말도 안 되는데?
"언제부터 친구..."
"중학교 때부터요"
"저는 한 번도 못 봤는데요!"
"..."
"..."
너무 크게 말했어, 완전 따지는 것처럼 물어봤잖아... 왜 이러냐고 나...
"창피해서 숨어있었어요"
"네?"
"그땐 키도 작고, 멋있지도 않았고"
"..."
"좋아하는 여자한테 말 걸 정도로 대담한 놈이 아니었으니까요"
지금 엄청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심각하게 엄청난 말을 들은 거 같은데...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지금 뭐라ㄱ"
"아이스크림 가게 저기 있네요"
내가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로 멀쩡한 민 팀장이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내가 잘못 들었나? 아닌데 잘 들었는데?
"뭐 좋아해요?"
"ㄴ,네? 아 그 오빠는 그"
"아니 걔는 됐고, 탄소 씨 뭐 좋아하냐고요"
"저는 민트.."
뭔데 저렇게 담담한데, 지금은 내가 어? 아 젠장. 나 지금 머리 질끈 묶은 슬리퍼구나... 창피해 너무 창피해...
"뭐 해요?"
"아니에요..."
다시 병원으로 가는 길이 아주 멀구나. 젠장... 엄청 멀구나 그냥...
"머리 묶은 거요"
"이상하죠. 알아요 이상해요"
"예쁘네요"
미X 신이시여. 심장이 멈출 뻔했어. 진짜로 농담 아니고... 아니야 나는 유부녀야 내 옆에 남자가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어...라?"
"..."
"..."
도착한 병실 앞엔 전정국이 서있었다. 아주 안 좋은 표정으로.
"늦게 끝날 거 같다더니 일찍 왔네?"
"늦게 끝나길 바랐나 봐?
귀가 꿈틀꿈틀, 나 화났어요 아주 광고 중이다. 이 부분이 대체 어디가 화날 부분이야 어? 늦게 끝난다고 말해놓고 일찍 왔으니까 물어본 건데 어?
"그냥 가볍게 말한 거 가지고 되게 날카롭네"
"형님이랑 아직도 친한가 봐요"
내가 뭐라고 하려던 참에 갑자기 민 팀장님이 끼어들었다. 그것도 아주 차가운 표정으로 날카롭게. 전정국 역시 아주 날카로운 말투로 대답했다.
"그런 편이지, 너는 친하지도 않는데 그냥 막 불쑥불쑥 오시나 봐요"
"저는 제 아내 챙기러 왔는데요"
"탄소 씨가 아직 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어떡하나 몰라요"
전정국이 입을 꽉 다물고 연신 귀만 꿈틀 거린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갈 생각이었는데 상황을 보니 전정국과 집에 가야 할 거 같다.
"왜 이렇게 끼어드세요"
"말은 바로 해야죠 전 팀장님, 누가 끼어들었는데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말려야 할 거 같은데 무서워서 끼어들지도 못하겠고 괜히 아이스크림이 든 팩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전정국의 원동력이 시기 질투인 건 아직까지도 여전하네"
"옛날 얘기 바라지 않는데요"
"누가 자기한테 손해되는 얘기 듣고 싶겠어요, 이번엔 네가 빠질 차례 아닌가?"
"김탄소, 가자"
"전에는 네 말 믿고 내가 넘어졌으니까, 이번엔 네가 넘어질 차례야"
"김탄소 얼른 형님한테 인사드리고 와. 집에 가게"
"탄소 씨, 오빠 오랜만에 보는데 벌써 가려고?"
전정국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눈으로 많은 걸 말하는 듯 하지만 바로 옆에서 날 보고 있는 민 팀장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다.
"인사하고 나올게, 쉬다가 가세요 팀장님"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오빠가 바로 문 앞에 있다.
"아씨 깜짝아 안 그래도 지금"
"너 여기 있다가 가라"
"뭐? 왜"
"할 말 있어 있다가 가"
"무슨 할 말.. 나중에 해 나 지금 가야 돼"
오빠 표정이 꽤나 진지하다, 아니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밖에서는 전정국이 진지하고 여기선 오빠가 진지하고... 사랑이냐 가족이냐 이거냐?
"나중에 얘기하자 응? 내가 내일 다시 올게"
"나 진지해"
"..."
제발, 신이시여...
"전정국"
"여기 남겠다는 말 하지 마"
"뭐래, 가자"
"어?"
"집에 가자고, 가자며 아까"
"...형님이 여기 있으라고 안 했어?"
"안 했어. 넌 우리 오빠가 나한테 여기 남으라고 할 거 같냐? 눈에 보이면 침부터 뱉는데?"
내 말에 어두웠던 표정이 탁 풀리더니 애처럼 웃는다. 가자ㅎㅎㅎ 하며 내 가방을 탁 가져가더니 폴짝폴짝 먼저 앞장서 간다.
"바본가 진짜.."
'오빠'
'여기 있다가 가'
'나 안 멍청해. 지금 오빠가 뭐 원하는지 알아'
'...'
'그래서 나는 오빠 말을 못 들어주겠어. 지금 가야 돼'
'넌 전정국이 그렇게 소중하냐? 걔가 어떤 앤 줄은 알아?'
'전정국이 어떤지 안 궁금해'
'걔 진짜 못된 새X야'
'나 갈게, 나중에 전정국이랑 다시 올게'
전정국한테는 물어봐도 안 알려주겠지. 민 팀장님이랑 사이도 안 말해주겠지... 나 빼고 민 팀장이랑 정국이랑 오빠랑 다 아는 사이였나... 왜 나는 몰랐지?
"자기야"
"응?"
"오늘 치킨 먹을까?"
"콜"
필요 없는 얘기니까 전정국이 나한테 얘기 안 했겠지? 그렇다고 생각할래. 그렇지 않아도 그렇다고 생각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