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꽃집에, 어서오세요!
01
글 튜브
익숙해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제와 같이 향긋한 꽃냄새가 나를 반긴다. 작은 꽃집 겸 카페를 운영하는 나는, 매일 아침 꽃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말라붙은 잎은 없는지, 부러진 줄기는 없는지. 모든 꽃을 하나하나 다 살펴보고 나서야 안쪽의 카페로 들어가 커피를 내린다.
카페 의자에 앉아있으면,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과 가게 안의 꽃들이 함께 보인다. 책을 꺼내 읽고 싶어지는 이런 나른함이 하루 중 가장 좋은 순간이다. 커피를 다 마실때 쯤, 언제부턴가 단골이 된 손님이 문에 달린 종을 딸랑거리며 활기차게 들어온다.
"또 오셨네요."
"네! 사장님 덕분에 점점 마음을 여는 것 같아요!"
"다행이에요."
"꽃이 점점 예뻐진대요! 꽃에 대해서 얘기한 건 처음이라 그 자리에서 울 뻔 했다니까요?"
항상 무덤덤한 나와 다르게, 이 남자손님은 굉장히 활발하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큰 실수를 저질러서, 매일 꽃과 함께 사과한지 벌써 삼주째. 처음 왔을 때에는 우물쭈물하며 어쩔 줄 몰라하더니, 하루하루 지나면서 표정이 밝아지고 당당해졌다. 내 꽃들이 제 역할을 해준 것 같아 나까지 뿌듯해진다.
"오늘은 더 좋은 말 듣고 올게요! 내일 봐요!"
어제보다 더 신경써서 꽃다발을 만들어 주었다. 매일같이 싼 값도 아닌 꽃다발을 사가는 걸 보면, 이 정도의 돈은 쓰는 게 망설여지지 않을 정도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겠지 싶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꽃은 아직까지 일상적인 것 보다 기념의 의미가 더 커서 오는 손님마다 각자의 이야기들이 있다. 조용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 된다.
"빨리 들어와!"
"아 형!"
"어허. 반항하지 말고."
"어서오세요."
조용하던 가게가 남자 둘이 들어와 시끌시끌해진다. 둘중 한 명인 석진씨는 꽤 자주 오던 사람인데, 같이 들어온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다. 석진씨가 조향사라고 했으니 같이 온 사람도 조향사인가. 하얀 가운을 입고 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요새 일이 좀 바빠서. 하하. 아, 얘 좀 교육시키려구요."
"네?"
석진씨가 같이 온 남자의 어깨에 손을 턱, 올리며 말한다. 교육? 정작 교육 받을 사람은 전혀 의지가 없어보이는데. 교육이라는 말에 또 투닥대기 시작한 두 남자를 그저 무표정으로 바라봤다. 한참을 투닥거리더니 그제서야 내 시선을 눈치챈건지 헛기침을 하며 다시 자세를 잡는다.
"이름씨, 부탁합니다!"
"..뭘.."
석진씨가 이번엔 다짜고짜 부탁한다며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다. 대체 뭘 부탁하려고 저렇게 비장하게 인사를 하는걸까. 무엇을 부탁하든 거의 다 거절할 사람인데, 나는. 게다가 같이 온 사람은 아직도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얘도 향기 만드는 일 하는데, 꽃 향기는 싫대요."
"아.."
"꽃 향기에 대해서 무지하더라구요, 얘가. 꽃 향기를 많이 알게 되면 만들 수 있는 향도 훨씬 많아질텐데 말이죠."
"필요없다니까."
"..저 분은 마음이 없는 것 같은데요."
석진씨에게 꽃에 대해서 물을 때마다 자세히 답해줬더니 그것에 감명받아 나에게 교육을 부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꽃을 알려줄 생각 추호도 없다. 커피를 내려놓고 같이 온 남자를 바라봤다.
"아, 김태형! 형 말 좀 들어라, 어? 널 위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아 싫다니까."
"그럼 저도 거절할게요."
부탁하는 사람이 무안해질 정도로 거부하는 남자의 모습에 나까지 기분이 나빠졌다. 꽃집하는 사람 앞에서 저렇게 기분나쁜 티를 내고싶은건가. 어쨌든 할 말은 다했으니, 어제 주문 들어온 꽃다발을 만들려고 꽃을 한 송이씩 꺼냈다. 안개꽃 꽃다발 둘, 목화솜 꽃다발 하나에 장미꽃 꽃다발 하나. 시간이 꽤 빠듯할 것 같아 손을 서둘러 움직였다.
"이름씨 죄송해요. 얘는 제가 내일까지 정신교육 시켜서 데려올게요!"
"아니요."
"..."
"본인 의지로 직접 오는 거 아니면, 안 할게요."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그제서야 나를 바라보는 남자다. 차갑게도 생겼다. 쿡 찔러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올만큼. 하지만 꽃다발 만드는 걸로도 충분히 바빠 금세 시선을 떼고 사각사각 잎을 정리했다. 참 웃긴다. 사과도 왜 석진씨가 대신하는지. 대변인인가.
"내일 꼭 정신개조 시켜서 보낼게요!"
"안녕히가세요."
마지막까지 석진씨에게 끌려나간다. 저절로 고개가 절레절레 좌우로 움직여지는게, 나와 정말 안 맞는 사람일 듯 싶다.
*
어제 두 남자가 찾아왔단 생각을 까맣게 잊은 채, 오늘도 향긋한 향기를 맡으며 출근했다.
꽃 살펴보기를 막 끝내고 커피를 내리려 할때, 종소리를 울리며 뜻밖의 사람이 찾아왔다.
"..."
심통난 표정의, 어제 그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