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하신 스파이시 해물 크림파스타랑 블루베리에이드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주문하신 새우 필라프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주문하신 안심 스테이크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
"...형 뭐해요?"
"암만 생각해도 이렇게 똑같은 패턴의 일을 매번 한다는게 이해가 안가네. 노동자 입장에선 억울하지 않냐?
자고로 알바생이라 함은 근무시간 중에 이렇게 서부영화 주인공처럼 총싸움도 하고
막 악당이랑 싸워도 보고 예를들면 저기 민사장같은 악덕....아!"
정확히 태형이형의 뒤통수를 겨눈 병뚜껑이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명중한 뒤 땅바닥으로 굴렀다.
바로 뒤에 사장님이 있는데 꼭 주방 안에서 그런 말을 해야 하는지 원.
내 가게 알바생 간 보지 말라는 사장님의 위협적인 으르렁거림에도 개의치 않고 씩 웃더니 음흉하게 다가온다.
"왜이래요 형, 소름 끼치니까 그런얼굴 하지마요."
"그냥 이번 기회에 너 나랑 같이 갈래? 잘해줄께! 열정페이 없고 좀 더 잘생기고 친절한 사장 밑에서 일해보고 싶지 않니?"
"형 제발 양심좀...."
"거 참 요즘따라 얼굴이 인생 초 친 표정이길래 이 형님이 농담 한번 해봤다 왜!"
"내가요?"
"그래 임마. 일은 하는데 똥꼬발랄이 없어 애가. 너무 정상적이길래 난 또 민형이 월급 삥땅친줄 알았지."
육두문자를 씹으며 사장님이 힘주어 던진 병뚜껑을 슉 피한 태형이형이 승리의 미소를 헹 지어보였다.
덕분에 그 뚜껑은 애꿏은 내 관자놀이에 강렬한 붉은자국을 남기고는 데굴데굴 세리모니를 하다가 이내 카운터 아래로 쏙 들어가 버렸지만.
평소라면 아픈 티 팍팍 내며 손해배상 청구하라는 나였다고 하지만(장본인은 인정하지 않는 사실이다. 난 그런 찌질한 사람이 아니다.)
그것마저 잊은 채 미적미적 카운터 아래로 들어가는 나의 모습이 신기했는지 태형이형도 사장님도 하던 일을 멈추고 이쪽을 쳐다본다.
그도 그런것이 그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부터 뇌 한구석에 언제부터 자리잡은 그녀 생각이 이제는 너무 많은 지분을 차지해 버려 일상생활에 차질이 생길 정도이다.
술 먹고 나를 태형이형으로 착각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꾸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의구심이 올라왔다.
설마 기억하는건 아니겠지, 만약에 그러면 얼굴은 어떻게 보지, 목도리 돌려받아야 하는데 등등.
이성과의 입술 접촉이라고는 엄마의 애정어린 뽀뽀세례밖에 없는 나에게 그날의 일은 정말이지 답없는 질문의 연속이었다.
모쏠인 것도 서러운데. 남이 받아야 할 키스를 억지로 받았다는 생각에 조금은 억울하기도 했다.
그나저나 이 뚜껑 어디까지 굴러간거야....
"어서오세...어? 언니! 웬일이에요?"
"엉, 누구 좀 찾으러."
찾았다.
"뭘, 또. 보나마나 김태형 보러왔겠지."
"넌 시끄럽고. 말고 혹시 여기 그 사람 있어? 정호석이라는..."
...어?
-
머리보다 몸이 더 빨랐다. 그녀의 목소리가 정확히 내 이름 석 자를 불렀을 때 무조건반사 수준으로 튕겨나간 무릎과 허리가 용수철마냥 위로 솟아올랐고,
덕분에 수직으로 냅다꽂은 정수리의 충격을 그대로 받아들인 카운터에 누군가 위태롭게 놓아둔 쇠수저통이 숟가락 젓가락들과 함께 사이좋게 나뒹굴었다.
와장창, 쨍그랑!!! 앙칼진 금속성의 마찰음에 가게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물론 손님들의 이목까지 집중시켰다.
"...너...뭐하냐?"
말없이 스윽 일어나니 정적이 감도는 가게 속 모든 눈빛이 이쪽으로 향하는 것이 직통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 목도리를 든 채 얼어있는 그녀도 보았다.
"어...음....총싸움...?"
"야 너 머리 괜찮...?"
"그러니까...자고로 알바생이라 함은 이렇게 근무시간에 막 서부영화 주인공도 해보고 좋잖....아요....하하....? "
"오빠..울어?"
"헐 야 울어?! 어떡해 얘 머리 많이 아픈가봐. 형님 저거 빨리 병원 보내야,"
"아, 아니 나 괜찮아요! 진짜 괜찮은데...진짜..."
하하.
시발.
그냥 뛰어내릴가...?
+
"여기 목도리."
"아, 감사합ㄴ..."
"내꺼는요?"
"? 없는데요."
"아니, 그쪽 목도리랑 내 목도리랑 바뀐거 아니었어요? 그럼 내 껀??"
"전 그쪽 목도리 본 적도 없는걸요. 그쪽이 일방적으로 제 목도리 하고 나가버렸거든요?"
"거짓말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요. 아무리 그 목도리가 좀 좋아 보이긴 해도 도둑질은 안돼지, 이 사람 큰일날 사람이네!"
"도둑...그러는 그쪽이야말로 그 날 기억 안나요? 술 진탕 퍼마시고 집까지 나르는걸 내가했...읍!"
"술 마시고 필름이 끊겼는데 그걸 어떻게 기억해요! 하~나도 기억 안나거든요. 뭐야, 혹시 그쪽 이상한짓 했어요??"
홧김에 기억이 안 나냐고 물어버리긴 했지만 정말로 기억에 남은게 없나보다.
이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개고생해가며 난동부리는 그녀를 집까지 업어다가 주었건만 고마워하기는 커녕 배은망덕하게도 변태취급까지 한다.
"됐고, 휴대폰 줘 봐요."
"왜요?"
"왜긴! 내 목도리 돌려받아야 할거 아니에요. 아무래도 그쪽도 술 마셔서 기억이 잘 안나는것 같은데.
꼭 돌려줘야 해요."
"안훔쳤다니까요."
"됐고. 나보다 어리다고 했지? 말 놓는다. 목도리 꼭 찾아오고. 나 간다!"
하고는 순식간에 가게 밖으로 사라져버린다.
얌전하단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지나치게 직진이다.
[세계최강여배우민아영님]
11자리의 낮선 숫자 위에 힘차게도 적어놓았다.
휴대폰 뺏어서 적는다는게 기껏 저런거라니,
뭐지, 이 여자
진짜 재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