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40초 쯤에 잠깐 이상한 소리 들려요. 미리 주의.)
벚꽃
화장한 날이었다. 아래서부터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날이 지날수록 밤은 짧아져갔다. 그때 너를 만났다. 처음 마주한 너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잡히지 않은 소년의 모습이었다. 너는 말이 없었고, 밝게 인사하던 아이에게도 어색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던 너는 표현이 서투른 아이였다. 그런 너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다가가기조차 꺼려하던 아이들도 많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냥.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도 모르겠다. 내가 그때의 너에게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4월 9일이었다. 전학 간 학교에서의 첫 등교였고, 너를 처음 만났던 날이었다. 어려서부터 사람들은 내게 다가오기를 싫어했다. 싫어했다기보다는 꺼려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말이 없던 나는 사람들의 외면과 오해, 그리고 내 눈치를 보던 친구들의 당황한 시선이 익숙해져만 갔고.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나를 따라다녔다. 그때의 나는 고작 17살이었다. 경멸 어린 시선들에 익숙해져 가는 내가 싫어서 전학을 갔고 거기서 너를 만났다. 피하기 바쁘던 사람들과는 달리 너는 먼저 내게 다가와 주었다. 너는 달랐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너는 남들과는 달랐다. 어쩌면 너의 그 모습이 신기해서…… 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Prologue
우리 반에 전학생이 온다고 교실이 떠들썩했다. 강제전학은 아닌데, 소문에 의하면 전학생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살인자의 아들, 그게 전학생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전학생이 교실로 들어오는 순간 떠들썩했던 교실이 조용해졌다. 반 아이들은 저들끼리 시선을 주고받으며 눈짓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였다. 전학생 아빠가 살인자라며? 라는 어느 한 남학생의 말을 시작으로 조용했던 교실은 점점 소란스러워졌다. 반 아이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며 그 문장 끝엔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말이 자리했다.
"민형이는 저기 앉으면 되겠다."
"네."
항상 비어있던 내 옆자리. 그 빈자리에 주인이 생겼다. 전학생이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모든 학생의 시선이 전학생을 향했다. '살인자의 아들' 꽤나 큰 목소리. 들었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표정 없이 내 옆자리에 앉은 전학생, 아니 이민형이었다.
"안녕?"
"…"
나는 짝이 생겨서 좋은데. 나름 밝게 건넨 인사에도 불구하고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고개만 살짝 끄덕거렸다. 친해질 수 있을까?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질문만 계속 한 것 같다. 어디서 왔어? 집은 어디야? 아까처럼 대답도 안 하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그런 내 걱정을 알아챈 것처럼 짧은 대답이지만, 입을 열어주었다.
"서울, 집은 한솔아파트."
"어? 나도 거기 사는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딱 그 표정을 짓고 쳐다보고 있었다. 이민형은.
"같은 반이니까 친해질 겸 같이 가면 좋지 않을… 까?"
빤히 쳐다보는 이민형의 시선에 괜히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입을 열었다. 주위를 감도는 어색함에 말꼬리를 흐렸다. 한동안 말이 없어서 무시를 당한 건가, 씹힌 건가 했는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옆에서 이민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라고 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슬쩍 쳐다보니 이민형은 어색하게 뒷목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게 부끄러울 때 나타나는 이민형의 습관이라는 건 조금 지난 뒤 알게 되었다. 바람에 흩날려 커튼이 팔랑거린다. 창문을 통해 내리쬐는 볕이 따갑지 않았다.
‘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어니언입니다. 사실 이런 잔잔한 글을 못 쓰지만 쓰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분위기의 글이기도 하고요. 독자님들은 어떻게 읽으실까 많이 두근두근 떨리고 그러네요(심호흡)… 혹시 궁금한 점이나 이해가 어렵다 하시는 부분들은 댓글로 질문해주세요. 사실 봄, 새 학기 분위기도 더하고 싶어서 제목을 '벚꽃'으로 지었어요. 나중에는 꽃말에 따라 글도 한 번 써보려고 생각 중입니다. 지금까지 생각해둔 게 해바라기인데. 꽃말은 아니지만 '꽃이 항상 해를 향한다.' 라는 뜻을 갖고 있는 만큼 짝사랑의 이야기를 쓸 예정입니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진행하지 않을까…… (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