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E
- 열아홉 끝자락, 그곳엔 우리가 있었다.
“박지민 애는 왜 학교를 안 나와.”
벌써 이주째, 지민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나 자퇴했어. 찾아오지 마' 라는 문자만 남기고 지민이는 그렇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런 지민이를 태형이는 많이 걱정되는지 괜히 애꿎은 나무만 퍽퍽 발로 찬다.
걱정되는건 나도 마찬 가지다. 곧 봄이 올 것 같은데, 함께 벚꽃을 보러 가자고 약속한 지민이는 대체 무슨 이유로 학교를 자퇴한 걸까.
“지민이 아빠 때문에 안 나오는 거 아냐?”
“아냐, 걔 아빠가 자퇴 안 하면 죽여버린다고 협박해도 계속 학교 나온 애야, 분명 다른 이유가 있어.”
“…태형아”
“어?”
“너 지민이 집 어디인지 알지?”
***
다행히 지민을 집을 알고 있는 태형 덕분에 우리는 결국 학교를 마치고 지민의 집으로 향했다.
지민의 집으로 가는 길, 태형과 나 사이에선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띠링
그때 태형의 폰이 울렸고 문자를 확인한 태형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야, 나 어쩌지 같이 알바하는 여자애가 지금 대타 좀 뛰어주라는데”
“…그럼 나 혼자 갈게”
“아, 그래줄 수 있겠어? 미안해 진짜”
변변치 않는 태형의 집안 사정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내 손을 잡고 정말 미안한지 어쩔 줄 몰라 하던 태형이는 지민이의 집을 알려주고선 지민이를 만나고 나서 꼭 자기에게 연락을 취하라하고 가던 길을 되돌아갔다.
멀어져 가는 태형이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 이내 나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
“…지민아”
지민이의 집 앞. 차마 현관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엉거주춤 문 앞에 서있었다. 지민아… 안에 있어? 용기 내서 문을 두드리며 애타게 불러봤지만 정말 집에 아무도 없는 건지 없는척하는 건지 굳게 닫힌 문은 열릴 생각을 안 했다.
어쩌면 좋지, 지민이의 번호를 눌러 봤지만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이후 하아, 한숨을 쉬며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지민아, 어디 간 거야…
“김탄소?”
“…지민아!”
“네가 여긴 웬일이야”
지민의 집 앞에 쭈그려 앉아있기 30분째,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쪽을 쳐다봤다.
지민이었다.
안본 사이, 지민이는 많이 핼쑥해져 있었다. 지민아, 너‥ 내가 찾아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지 지민이는 처음엔 많이 당황스러워 보였는데 그것도 잠시 지민이는 날 무시하고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얘기 좀 하자.”
“…”
“제발”
지민의 팔을 잡고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들어와”
***
지민이의 집에 들어가자 여기저기 나뒹구는 술병. 담뱃갑이 눈에 띄었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앉아. 좀 누추하지만.”
거실 소파 앞, 나뒹구는 술병을 한쪽으로 치우고 바닥을 툭툭 두드리며 지민의 말에 옆에 앉았고 뒤이어 지민이도 내 옆에 앉았다.
지민과 나 사이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곁눈질로 지민을 쳐다보니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보였다.
“저, 지민아…”
“왜 자퇴했어?”
“…”
“무슨 일 있는 거야?”
“탄소야”
“응?”
“내 얘기 좀, 들어줄래?”
“…그래”
“우리 아빠, 알코올 중독자야.”
“아빠가 젊었을 때부터 했던 사업이 좀 휘청 였는데 IMF로 아예 망하셨나 봐. 그러다가 나까지 낳아버려서 우리 집안 많이 힘들었대. ”
“…”
“그 무렵, 아빠가 술에 손을 댔어. 지옥 같던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을 선택했겠지. 술을 마시고 취하는 그 순간은 잠시나마 어깨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까. 근데, 문제는 아빤 술을 마시면 항상 나와 엄마에게 손찌검을 했어. 엄마는 날 지켜주기 위해 항상 날 꼭 껴안아서, 엄마가 나 대신 맞아주셨어. 그러다 못 참겠는지 엄마가 집을 나가버렸어.”
“…지민아”
“막아야 했는데 그럴 수 없었어. 새벽에, 엄만… 내 손에 꼬깃꼬깃한 오천원을 쥐어주시고 한참을 내 얼굴을 쓰다듬다가 나가셨어.
있지, 나는 그날의 엄마의 손길을 기억해. 너무 따뜻했어. 나는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
“‥”
“그날 이후 나는 아빠를 증오하기 시작했어. 근데, 완벽하게 미워하긴 힘들더라. 밉긴 미운데 학교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거실에 누워있던 아빠의 어깨가 너무 작아 보여서. ”
“나도 아빠 곁을 떠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어. 나마저 떠나버리면 아빠 옆엔 아무도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참았는데…
아빠가 쓰러지셨어.”
“…뭐?”
“아침에 밥 차리고 아빠 깨웠는데 아무런 인기척이 안 나길래 봤는데…”
“거의 가망이 없대…”
흐느끼는 지민을 아무 말 없이 안아줬다.
***
“나는, 별이 되고 싶어”
한참을 내 품에서 울던 지민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늘에 있는 별? 응. 왜?
“하늘에서, 빛나면, 언젠가 엄마도 날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별. 좋다.”
“탄소야”
“몇 개월 동안 내 곁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웠어”
“갑자기 뭐야…”
“네가 있어 잠시나마 행복했었어.”
“탄소야”
“내가 죽을 때도 이렇게 와줄 거야?”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민이가 내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내 심장을 찔렀다. 결국 지민이의 물음에 아무런 말을 해주지 못하고 그대로 집을 나와버렸다. 나가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던 지민이의 표정은 어땠을까. 아마, 아마, 지민이는.
털썩
지민이를 위로해주고 싶었는데, 그랬는데. 길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엉엉 울어버렸다.
***
띠링띠링
밤 열한시. 폰이 울렸다. 잠에서 깼다. 발신인, 김태형.
아, 그러고 보니 내가 태형이한테 연락을 안 했구나.
“여보세요? 태형아 미안해 나, 깜빡하고…”
- 탄소야
“…뭐야, 김태형 너 울어?”
- 탄소야, 나…
“태형아?”
- 잡아, 잡아야 했는데…그랬는데… 결국 놓쳐버렸어…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 김태형.”
-지민이가…
…다리에서 떨어졌어
[암호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