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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 이준혁 몬스타엑스 강동원 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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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버논X정한] 무릎과 무릎 사이 上

 

 

 


찌르르 울리는 통증에 잠에서 깼다. 거의 매일 밤마다 찾아오는 고통이지만 쉬이 익숙해지기가 어렵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반대쪽 다리를 세우고 앉았다. 약이 어디 있더라. 침대 옆 콘솔 위에 준비해뒀을 진통제를 향해 팔을 뻗었다.

 

“깼어?”

 

나보다 먼저 약을 찾아낸 건 한솔이었다. 방금 깬 주제에 나보다 더 잘 찾는다. 한솔이가 건넨 약을 두 알 삼키는 동안, 한솔이는 졸린 눈을 하고서도 익숙한 듯 아픈 쪽 무릎을 감싸고 약하게 주물거린다. 자주 마사지를 하고, 찜질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는 내 무릎을 한솔이는 지치지도 않는지 늘 꾸준하다. 3년 병간호에 효자 없다는데, 우리 한솔이는 참 착하기도 하지. 서서히 저리던 무릎이 조금씩 나아지는 기분이다.

 

“응. 이제 안 아파. 괜찮아. 더 자.”
“좀만 더 하고.”

 

주물주물.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손이 찬 한솔이의 정성어린 손길이 좋아서 내버려둔다. 아마 한솔이는 내게 작은 죄책감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내가 자기 때문에 다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려나.

 

 

 

내가 무릎을 다친 건 고2, 18살의 여름 방학이었다. 우리 아버지와 한솔이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한 동네서 자라 막역한 사이였다. 그러다 우리 아버지는 서울로 취직이 되어 올라오셨고, 한솔이네 어머니는 한솔이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미국으로 건너갔다. 한솔이가 12살이 되던 해에 다같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솔이 아버지 직장 근처에 집을 구하고 이사를 오던 날, 퇴근하던 아버지는 10년도 전에 헤어진 한솔이 어머니를 한 눈에 알아봤다. 우리는 집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으로 그분들의 어린 시절처럼 가깝게 지냈다. 매년 휴가도 함께 가고, 서로의 집에서 잠도 자고, 놀기도 함께 놀며 그렇게. 그 해도 아마 그렇게 휴가를 갔을 거다. 날짜를 맞추고, 펜션같은 것도 빌려다가. 그런데 하필 그 때 우리가 휴가를 간 계곡에는 비가 많이 내려서 우리는 물놀이도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며칠을 숙소에 꼼짝없이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한솔이가 없어졌다. 아직 한국말이 많이 서투르던 그 때. 비도 억수같이 내리는데 애가 없어졌으니 어른들은 모두 놀라 찾으러 나섰고, 동생들과 나는 숙소에 남아있었다. 그 쪼끄만 게 어딜 갔을까. 걱정도 되고, 무섭기도 하고. 엄마를 부르다 지쳐 잠든 동생들을 토닥이며 어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바깥에서 희미하게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다. 첨엔 빗소린가 싶다가도 끊어질 듯 사람 말소리가 같은 게 가냘프게 이어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창가 쪽으로 다가가 섰다.

 

“...형...아...”

 

틀림없는 한솔이였다. 한솔이 목소리다! 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솔아! 최한솔!”

 

우산을 챙기지 않아서 문밖을 나서자마자 푹 젖어버린 몸은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 어린애가 얼마나 추울까. 무서울까. 거센 빗줄기에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 산길을 몇 번이나 미끄러져가며 한솔이의 목소리를 찾았다.

 

“형아?”

 

한솔이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고 생각한 순간. 나는 벼랑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리고 기억이 없다. 내가 깨어난 건 사흘 뒤였고, 내 옆에는 한솔이가 여기저기 긁힌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벼랑 아래 떨어져 장대비를 맞으며 덜덜 떨고 있었고, 바로 위를 지나가던 부모님을 용케 알아채고 한솔이가 죽을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고, 그 덕분에 우리는 목숨을 건졌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한 시간만 더 비를 맞았더라면 나는 그렇다쳐도 어린 한솔이는 저체온증으로 죽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난리통에 다친 내 무릎은, 미끄러져 내리면서 꺾이고 뒤틀린 채로 아예 고장이 나버렸고, 그 결과 나는 평생 오른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내가 부주의해서 일어난 사고였고, 내가 좀 더 재빠르게 굴었더라면 한솔이도 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나를 끌어안고 엉엉 우는 어린 얼굴을 내려다보며 나는 어른들이 그 애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솔이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해줬다. 눈물범벅이 된 어린 아이의 얼굴이 예쁘다고도 생각했다.

 

 

 

그 날 이후로 나를 좀 무서워하는 편이었던 한솔이는 내가 다 나을 때까지, 라는 단서를 달며 나를 졸졸 쫓아다녔고, 내가 다 낫고 나서도 여전히 그랬다. 나보다 다섯 살 어린 애가 날 부축한답시고 겨드랑이 아래에 머리를 끼워놓고 끙끙거리는 게 어른들이 보기에도, 내 친구들이 보기에도 웃기고 기특했나보다. 가족들은 더 끈끈해졌고, 한솔이와 나도 하루가 다르게 가까워졌다.

 

 

 

대학에 진학하고서 통학하는 문제 때문에 골치를 좀 썩던 나는, 나를 따라서 내 학교 근처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는 한솔이와 함께 첫 독립을 하게 되었다. 어쩐지 한솔이와 함께라는 게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그랬다. 이상한 감정이지만 그랬다. 나와 함께 살면서 한솔이는 공부하기도 바쁠텐데 굳이 내 식사를 꼬박꼬박 챙겼고, 더러는 공부를 봐달라며 일찍 들어올 것을 종용했다. 나는 한솔이 덕에 팔자에도 없는 바른 생활을 하게 됐고, 작년과는 달라진 생활 탓에 애가 생겼다는 루머가 학과에 돌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솔이와 사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밤에 푹 잘 수 있게 된 것도 그 중 하나이다. 다리를 다치고서 늘 신경통을 달고 사는 터라 잠들기가 어렵기도 하고 아예 잠을 못 이루는 날도 적지 않았는데, 한솔이와 살면서 이상하게 잠은 꼬박꼬박 들 수 있었다. 물론 중간에 아파서 종종 깨긴 했지만 한숨이라도 잘 수 있게 되어 좋았다.

 

 

 

“형은 연애 안 해?”

 

과 후배인 민규가 오징어를 씹다 말고 물었다. 올해 같은 수업을 들어서 팀 프로젝트를 같이 하게 되었는데, 괜히 같이 했나 하는 생각이 천 번도 더 든다.

 

“연애는 나 혼자 하냐.”
“그러니까. 할 만한 사람 없어? 나 여태 형 연애하는 걸 못 봤네.”
“내가 연애를 하든 말든 신경 끄시고요. 하던 거나 마저 하세요.”

 

저거랑 오늘 밤새서 이거 다 해야 되는데. 벌써 농땡이 치려는 수작을 부리는 게, 오늘도 글렀다 싶다.

 

“형. 근데 형네 집 꼬맹이랑은 무슨 사이야?”
“뭐가 무슨 사이야, 미친놈아. 동네에서 같이 자란 애기라니까.”
“수상해.”
“개소리마라.”
“동네 꼬마가 무슨 사람을 그리 씹어 삼킬 듯 쳐다보냐? 걔 언젠가 사고칠 거다.”
“무슨 사고를 쳐. 세상사람 다 너같은 줄 아냐? 아오. 비오려니까 무릎 쑤신다. 먼저 들어감.”

 

저건 지 연애나 잘 할 것이지. 전원우 맨날 우는 소리 내고 돌아다는 거 모르는 줄 아나. 궁시렁대며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한솔이가 데리러 나왔겠지만 오늘 과제 때문에 늦거나 안 들어온다고 말해놨었다. 우리 한솔이 깜짝 놀라겠네. 큭큭 웃으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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