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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가 하늘 위로 솟았다. 이젠 담배도 눈치를 봐가면서 펴야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1400년전의 안압지는 사료로써나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호수의 색은 영롱하다 못해 눈이 부실만큼 환했고, 구름은 새하얬으며, 모든 세상이 높은 건물 하나 없이 탁 트여있고, 천공은 파랬다.
 이제는 이 비단옷도 얼추 익숙해진 듯 했다. 그의 몸이 7세기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다 태우기도 전에 누군가가 올세라 재빨리 입에서 떼고는 호수 위로 힘껏 던져버렸다. 잠시 물결이 일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공주가 떠올랐다. 기꺼이 제 동업자가 되실, 벙어리 공주님이.

 "그 차림새는 무어냐?"

 멀리서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형의 시선이 그곳으로 따라갔다. 황제 앞에서 공주가 웬 비단옷을 양손으로 받힌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는 흥미롭다는 듯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화가 잔뜩 담긴 목소리였다.
 처음 공주를 마주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은, 팀원들은 물론이고 그의 오너까지 연지공주를 나이가 지극히 들은 노령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지금 지켜보고 있는 저 여인은 어떠한가. 노숙하긴 커녕 중국의 황태자가 구혼을 하러 와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미모가 뛰어나다. 자태에 기품이 넘치면서도 잠옷바람으로 혼자 산책을 나오는 것이 도리어 매력적이다. 호기심이 자꾸만 샘솟았다. 연못을 거닐 땐 무슨 생각을 하며 왜, 언제부터 말을 못하게 되었는지.
 황제가 한바탕 혼을 내자 공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궁녀들이 제각기 공주에게 인사를 올리고선 뒤돌아 어디론가 발걸음을 급히 옮기는 황제의 뒤를 따랐다. 태형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에 따라 바람이 일었다. 공주가 태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표정이다. 늘상 짓고 있는, 어딘가 꼭 구해주고 싶게 만드는 표정.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한동안 맞닿아 있었다.

 

 

 

 

 

 

[방탄소년단/김태형] 소낙비 (驟雨) 02 | 인스티즈

 

소낙비 (驟雨)

미래에서 온 김태형 X 목소리 잃은 인어공주

 

 

 

 


 접대연이 진행될 동안 그가 내내 역관을 옆에 끼고 있는 것이 우스웠다. 억양이 조금 다르긴 해도 신라말을 그토록 잘하면서. 마치 감춰야 할 이유라도 있는 사람처럼.
 기녀들의 무용이 다분히 길게도 이어졌다. 그들의 춤사위는 대금 연주와 같이 매번 똑같다. 연회랍시고 나오는 상차림도, 황제께서 사신이 올 때면 보이는 인자한 미소도 같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번엔 그가 있다는 사실뿐. 무엇 하나 같지 않은 것이 없다.
 악무가 끝나자 취우가 박수를 쳤다. 황제께서 흡족스런 표정을 지으시더니 역관에게 잘 보았는지 물으라 이르셨다. 분명 그도 알아들었음직한데, 그는 꼬박꼬박 역관에게서 말을 전달받았다.

 "신라의 춤이 참으로 아름답다 하옵니다."

 그 대답을 듣고선 기뻐하는 폐하의 용안을 봬니 왠지 모르게 우스웠다. 저 새파랗게 어린 사신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내 부모와 형제를 모두 죽인 위대한 황제께서 저깟 미숙한 연기에 한치의 의심도 없이 속고 있다.
 이런 나의 건방진 속내가 어렴풋이 보였는지 그가 나를 한번 흘긋 쳐다보았다. 조소를 띠며 잔을 입에 털어넣고 있었다. 이름있는 가문의 고위 관리들과도 몇번의 시덥잖은 이야기가 오고가고, 황제께서 먼저 어침에 들겠다 하시니 연회가 별 내용도 없이 끝났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께 예의를 차린 후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 최 대사가 제 사람들과 함께 내게 다가와 먼저 인사를 올렸다. 폐하께서 용상에 앉으시자 가장 먼저 황태자, 나의 이복오라비를 즉시 매달 것을 주장한 인물이었다. 나는 그 노인에게 대꾸하지도 않은 채 오른손을 들어 소하를 찾았다.

 "공주마마, 혼기가 다 차지 않으셨사옵니까?"

 최 대사가 입가에 미소를 품고선 물어왔다. 암만 기다려도 오지 않는 소하에 눈길로 사방을 찾으니 연회장에서 궁녀들을 도와 뒷정리를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홀로 그의 앞에 서있단 생각에 입술이 바싹 말랐으나 나는 도리어 태연한 척 노인을 향해 비웃었다. 그러나 그는 나보다 훨씬 더 이러한 상황에 능숙했다. 나의 무례한 태도에도 결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럴수록 더욱 예의를 갖추었다.

 "곧 공주마마의 혼과 관련하여 폐하께 상소가 올라갈 것이온대, 천예되는 자가 제 조카이옵니다. 총명하기는 이를 데 없고 인물도 수려하니 마마께서도 분명 맘에 드실 것입니다."

 오라버니는 책봉 이전부터 정인이 있었다. 진골 출신은 아니었으나 황태자비로서 무엇 하나 모자랄 것이 없는 여인이었다. 당시 나의 아버지께선 혼사에 큰 뜻을 두지 않으셨으므로 오라버니의 뜻에 따라 최 대사네 여식과의 정혼을 거절했는데, 이것이 오라비의 목을 벨 명분이 되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이전의 기억이 떠올라 어떤 역한 것이 차올랐다. 오라버니의 목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쓸모도 없는 내 목숨마저 앗아가려 하고 있다. 나는 어떻게든 여길 벗어나보고자 신고 있던 한쪽 신을 소하에게로 힘껏 던졌다. 주변을 서성이던 관리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단단히 미쳤군. 하는 눈길과 함께.
 신이 저 멀리 날아가 연회장 마루에 쿵 하고 떨어지자, 소하가 화들짝 놀라서는 곧장 내게 뛰어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 숨결이 많이 거칠어져 있었다.

 "마마! 괜찮으십니까?"

 최 대사가 한껏 미소를 띤 얼굴로 내게 고개를 숙이더니 물러났다. 폐하를 졸졸 따라다니는 궁녀들마냥 그 옆에 있던 관리들도 최 대사의 뒤를 따랐다. 해가 저물어 바람이 찼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소하에게 손을 내저어 보였다. 시끄럽던 것들이 전부 사라진 빈 들판 위에 풀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저… 마마… 신이…"

 소하가 내 발 등 위를 내려다보며 말끝을 흐렸다. 신을 저 멀리 던져버린 바람에 한쪽 발이 덧신 차림이 된 것이다. 소하는 곧 저가 신고 있던 신을 내주더니 말을 이었다.

 "금방 찾아올 테니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셔요."

 나는 알았다는 표시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들판을 내려가 연회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소하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꾹 참고 있던 감정이 마구 벅차올랐다. 눈물이 차마 흐르기도 전에 누군가 볼세라 몸을 돌려 모습을 감추었다. 이깟 것에 무너지는 것이 얼마나 나약한가. 점점 마음을 추스리기가 힘들었다. 이유 모를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소매로 닦고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눈물이었다.
 그때 나의 앞으로 바람이 불었다. 어떠한 향과 함께였다. 나는 즉시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눈물을 한껏 머금은 채로 고개를 들었다.

 "왜 울고 계십니까."

 말을 할 때엔 손에서 담배란 것을 떼고, 말이 끝나면 다시 그것을 문다. 그 사이사이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가 조금씩 다가왔다. 담배향이 짙어졌다.

 "접대연이 끝났으니 채비를 마치면 곧 돌아갈 것입니다. 이르면 보름쯤."

 그 말을 들었을 때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것을 보니 나는 무언가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나를 구해줄 것. 혹은 그 이상까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는 계속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관모를 벗으니 이목구비가 훨씬 뚜렷해보였다. 난데없는 의심이 솟아올랐다. 정말 이 세상 사람일까, 내가 미치다 못해 환각이 보이는 것이 아닐까하는. 하여 나도 모르게 그 위로 손을 대보다가, 그에게로 팔을 뻗어 뺨에 살포시 올려보았다. 그가 놀란 눈치로 나를 흘긋 돌아보았다. 그러나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잠자코 나와 눈을 마주한 채로, 한동안 서있었다.
 어마마마께서 죽기 직전까지도 염려하시던 것은 내가 언제든 목이 달릴 수 있는 계집이라는 것과, 내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마마마께선 오히려 화번공주마냥 다른 나라로 출가하기를 바라셨다. 궁을 떠나, 이 신라를 떠나 자유로이 살으라고. 당신마냥 궁의 괴물들을 위한 목숨이 아닌 진짜 사람들을 위한 인생이 돼라고.

 사람…
 어머니, 보시지요. 이제서야 사람을 얻었사옵니다.

 목청을 다듬는 것이 얼마만인지도 모를 만큼 낯설었다. 또한 정말 말을 잃어버리기라도 했는지 혀를 굴리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렇게 단 몇 자를 내뱉기까지, 그가 과연 믿을만한 사람인가를 수십번 생각해보았다. 내 삶에 너무나 갑작스레 찾아온 인물이지 않은가 싶으면서도 모순적이게 그 연유로 도리어 믿음이 갔다.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그가 담배를 재빨리 내던져버렸다. 땅 위로 시선을 떨구고는 담뱃불을 짓눌러 비벼대는 그에게, 내가 나지막이 말했다.

 "…날."
 "……."
 "데려가다오."

 그의 발짓이 멈추었다. 그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사뭇 놀란듯한 얼굴.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꼴이 어딘가 재밌어서 살풋 웃었다. 달디 단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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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251.68
땅위입니다!! 핫... 여주가 혼인을 하게된다면 이야기가 끝이날거같네요... 그러니 태형이가 여주를 대려갔으면 하네요ㅠㅠ
7년 전
독자1
여주가 궁에서 너무 힘들게사네요 힘도없기도 하고 얼마나 살아있는게 고통일지.. 태형이가 좋은 영향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암호닉 신청가능한가요??
7년 전
비회원208.139
헉 이런 재밌는 글을 이제 봤네요
잘 보고 갑니다!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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