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온도
" 이리게이션. "
" ······. "
" 이리게이션. "
" ··· 에? "
" 정여주, 정신 안 차려? "
* 이리게이션 : 세척
인상을 팍 쓰고 수술실에서 나가라고 하는 강선생에게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하다 말한 뒤 빠져나왔다. 정신 안 차리냐, 정여주? 머리를 잔뜩 흐트러트리고 자판기 앞에 앉아 한숨을 푹 쉬었다. 병원 사람들이 자판기 앞에 주저 앉아 머리를 쥐어 박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힘내라며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아직 세상은 살 만한가 봐, 엄마. 나보고 힘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하루 종일을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판 사람처럼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면서 보냈다. 드디어 미쳤나, 정여주. 연애 한 번을 제대로 못 해보고 미치면 인생이 아깝지 않겠니? 평소에도 미치긴 했었지만 오늘은 좀 더, 아니 조금 많이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내가 미친 이유는 아무래도···
" 저 진짜 죄송한데요, 선배. "
" 어? "
" 애인··· 있으세요? "
" 뭐? "
" 사귀는 분, 계신가 해서요. "
" ··· 쓸데없는 소리 말고 따라 오기나 해. "
인턴 주제에 제 심장을 쥐고 흔든 이 녀석 때문임이 틀림 없었다.
.
.
.
" 이번 주 오프 때 영화 보기로 한 거 안 잊었지? "
" ··· 어? "
" 오프 때 영화, 너 보고 싶다고 했던 거 있잖아. "
" 아, 맞다. 몇 시에 볼까? "
" 저녁 먹고, 여덟 시쯤에 보면 될 것 같은데. "
식당에서 멍 때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 종현이가 내 옆에 자리를 잡고는 얼굴 앞에서 박수를 치며 내가 정신을 차리게 해주었다. 생각해 보면 나랑 김종현은 의대 시절부터 쭉 붙어 다녔던 것 같다. 성적도 수석, 차석을 번갈아서 할 만큼 비슷했고, 성격도, 취향도 비슷해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물론 직장도 같은 곳으로 가지게 될 줄은 몰랐지만··· 김종현은 대학교 시절부터 흉부외과 쪽에 관심이 많다고 했었다. 김종현네 아버지께서 심장병으로 꽤나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김종현은 흉부외과, 난 신경외과로 진로를 정했다.
같은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오프 겹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와 김종현은 같이 영화를 보거나, 맛집을 가거나 하곤 했다. 일종의 문화 생활이랄까. 일주일에 운 좋으면 6일, 운 나쁘면 7일을 꼬박 병원에서 보내는 우리였기에 간간이 찾아오는 오프는 정말 소중했다. 진짜 정말 소중한데···
" 정여주. "
" ··· 네? "
" 수술실에서 그 난리를 치고 오프 나갈 생각하는 건 아니지? "
" ······. "
" 당직. 불만 있으면 얘기해. "
" 아닙니다··· "
" 마시면서 하세요, 선배. "
" 어··· 고마워. "
인턴, 아니 박우진은 여전히 남아있는 사투리 억양으로 캔커피를 내게 건네더니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 얘도 당직인가··· 하긴 나도 인턴 때는 한 달 내내 당직이었으니까. 괜히 불편해지는 맘에 목을 한 번 가다듬고는 마저 차트를 뒤적거렸다. 옆을 슬쩍 보니 불편한 건 박우진도 마찬가지인지 눈알을 굴리며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좀 귀엽네, 보니까 아직 젖살도 있는 것 같고··· 그렇게 힐끔거리면서 박우진의 모습을 훔쳐 보다가 갑자기 눈이 마주쳤다.
" 선배. "
" ··· 어? "
" 김종현 선배랑 사겨요? "
" ······ 뭐?! "
쳐다 보지 않은 척 고개를 돌리려고 다시 차트에 눈을 돌리려는데 갑자기 박우진이 말을 걸어 왔다. 순간 놀라 목소리가 커져 조용했던 응급실 안이 세게 울렸다. 김종현이랑 사귀냐고? 누가? 내가? 내가 아는 그 김종현이랑 내가?
" 대학교 때부터 김종현 선배랑 사귄다고 소문 자자했었는데, 몰랐어요? "
" 너 우리 대학 나왔··· 어, 몰랐는데? "
" 아무튼요. 김종현 선배랑 사귀세요? "
" 절대 아니야. 사귀긴 뭘 사겨. 우리 친구야, 친구. "
" 진짜요? "
" 진짜. "
살다 살다 김종현이랑 사귀냐는 말을 다 듣네, 내가. 절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는 날 보더니 박우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얘, 진짜 뭐지···? 괜히 뻘쭘해져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차트에 손을 대려는데 박우진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 ··· 다행이다. "
귀가 빨개져서 중얼거리는 박우진을 보다 고개를 드니 응급실 반대쪽으로 걸어가는 강선생의 뒷모습이 보였다. 강선생이 응급실엔 왜··· 잘못 봤나?
. . .
1. 우진이를 신경 쓰는 여주
2. 오프 때마다 여주랑 시간 보내는 종현이
3. 오프 때마다 여주가 종현이랑 시간 못 보내게 하는 다녤
4. a. k. a. 질투쟁이
5. 여주가 종현이와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다녤 !!
6. 우진이 분량 폭 봘 !! ( •ॢ◡-ॢ)-♡
7. 암호닉은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
[] ← 괄호 안에 넣어서 신청해주세유 !!!
8. 평일엔 연재가 뜸할 수도 있는 점 유의해주세요 !! (´°̥̥̥̥̥̥̥̥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