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았던 날을 떠오르라면 내 기억에는
내가 싫어하던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그 날의 기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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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하는 얘들은 밥먹으러 가고 그럼 이상"
'이상'이라는 선생님의 말을 끝으로 아이들은 하나 둘 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아서 야자를 하는 아이들은 자습실로.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뭐, 집으로 가겠지.
나 역시도 야자를 하지 않아서 집으로 가기위해 자리에 일어나 가방을 메고 의자를 자리에 넣는데
"여주야 쌤이 교무실로오라는데?"
이건 또 무슨소리람 그 인간은 또 어떤 잔소리를 할려고 학교가 끝난 이시간에 나를 부르는거야.
잔뜩 짜증 섞이 표정을 지으며 왜? 라고 같은반 친구에게 묻자
"그거야 나도 모르지 나 문 잠가야해"
라며 어서 나가라는 말을 새롭게 하는 애다.
나는 짧게 알겠어 라는 대답을 마치고 교실에서 나와 교무실로 향했다.
아 빨리 집에 갈려고했는데.
"쌤"
"어. 왔네"
교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담임선생님의 뒷모습에 다가가 선생님이라고 부르자 하고 있던 업무를 내려놓고선 무언가를 찾기시작한다.
그러고 '여깄다!'라는 말과 함께 나에게 종이 하나를 건내는데
"이거 작성해"
"네?"
그 위에 보이는건 떡하니 적혀있는 야간자율학습신청서
"이걸 왜요? 저 야자 할 생각없는데"
"이제 고3이니까 열심히 해될거아냐"
"그니까요 내가 왜요 저 지금까지 저 혼자 열심히 잘 했는데요"
"얼씨구? 열심히 잘~해? 그게 잘한거라니 참 놀랄 놀자다. 그리고 너 집에가면 아무도 없고 할 것도 없잖아 그냥 남아서 자습이나 하는게 괜찮지"
"아니? 전혀. 괜찮긴 뭐가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거든"
"점점 말이 짧아진다?"
나도 모르게 모르게 평상시에 편하게 쓰던 반말을 툭 하고 앞에 계신 선생님은 종이를 돌돌 말아 툭하고 머리를 친다.
"아!"
"어쨋든 이거 내가 작성하고 넘길거야. 그렇게 알고 이제 가만"
"아니..! 쌤!"
"어? 오늘부터 하고싶다고?"
결국 불만이란 불만은 다 얘기해봤지 전혀 통하지 않던 담임이다.
그래 그깟 야자 따위 내가 안가면 그만이지. 라고 다짐했지만
나는
"안 가니?"
담임이랑 같은 집에서 살고있는
담임의 나약한 동생일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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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오늘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나보다. 아까부터 비가 올 것 같더라니 언제부터 비가 내린건지 그칠것 같지 않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까 오빠한테 안 잡히고 바로 집에 갔더라면 비 안맞는건데.
우산도 없고 그렇다고 오빠한테 우산있냐고 물어보기엔 오빠가 너무 짜증나고
"아.. 진짜 되는일없다"
이게다 공지철 때문이야.
한참을 고민하고 서있다 여기있으면 괜히 담임이라는 오빠랑 마주칠 것 같아.
결국 앞에 있는 편의점 까지 뛰어가기로 결정했다.
아 비 맞는건 진짜 싫은데.
"어서오세요"
결국 우산을 사러 편의점까지 달려왔다. 끈적거리는 살과 다 젖은 교복 그리고 축축하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보니 진심으로 짜증이 밀려왔다.
어쩔수없이 탈탈 물기를 털어내며 우산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어? 우산 이게 다에요?"
"그거 아니면 우산없어요."
4500원 하는 비닐우산은 다른 학생들이 벌써 후다닥 사간모양인지 매대에는 15000짜리 우산이 잔뜩이였고.
내 지갑을 열어 돈이 얼마나 있나 보니
단돈 6000원.
아 짤짤이 까지 다 털어서
고작 6400원.
우산을 사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에 씨발. 라며 욕이 입밖으로 나왔다.
이거 진짜 공지철때문이야. 교무실로 부르지만 않았도 후다닥하고 집으로 갔을텐데 말이야.
"안녕히계세요.."
진짜 이건 무조건 다 공지철때문이야.
비오는 것도 다 공지철 때문이라고.
"진짜 존나 싫다"
"좆같아"
어쩔수 있나 이 비가 멈출때 까지 기다리던가 아니면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우리 집을 뛰어가야되는데.
그렇기엔 이 비는 멈출 것 같지 않고,
나는 뛰어갈 자신이 없다.
진짜 오늘 내 인생에서 정말 최악이야.
"비가 많이오네"
그때 옆에서 들리는 남자 목소리에 뭔가 싶어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측면으로 보이는 남자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한 손을 쭉 내밀어 비를 톡톡 만지고있었다.
"우산이 없나봐요"
"네?"
그러다 눈이 마주친 남자가 나에게 우산이 없냐고 뜬금없이 물어온다.
"아니 그냥 서 있길래"
"아..네 그래서 그냥 기다릴려고요"
"오늘 새벽까지 온데요"
"아..미친..뛰어가야되나.."
진짜 생각만해도 싫다 저 비속을 뛰어가는거 말야. 어쩔수 없이 오빠한테 전화를 해야되나,,
한숨이 퍽퍽하고 계속 나와 고개를 숙이고있는데
"나는 우산이 있어서"
...? 아니 누가 물어본사람..? 궁금한사람..?이사람 나한테 자기 우산 있다고 자랑할려고 여기 계속 서 있는건가?
우산있으시면 그거 쓰시고 볼일 보러 가면 되겠구만 지금 누구 놀리나 싶어 짜증이 난다.
"...아.. 축하드려요.."
근데 나는 웃긴게 또 뭘 축하드린건지 우산 있다는 사실을 축하하고 있다.
그것도 박수 까지 치면서.
그냥 이 옆에 있는 남자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이거"
"..?"
갑자기 자랑하며 보이던 우산을 나에게 건네는 남자다.
당황스럽게 내 손에 들려있는 우산을 바라보다 어쩌라는 듯 남자를 쳐다보자.
"아 그거 쓰고가요 나는 뭐 바로 여기 앞이라서 뛰어가면 되거든"
"네?"
"설마 진짜 내가 자랑하자고 보여줬겠어요"
"아니 근데 이거 어떻게 돌려줘요"
"돌려 줄 필요없어요. 정말 비 그칠때까지 여기 앞에 서 있을 거 같아서 주는거니까"
"아니 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그 쪽은 비 다맞고가는데"
"괜찮아요. 나 비 맞는거 좋아해."
라더니 진짜 비 속으로 뛰어가더니 금세 눈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상한 그 남자는 나에게 이름도 전화번호도 주소도 어떤것 알려주지 않은채.
주인없는 우산만이 내 손에 남을 뿐이였다.
-
/김진환
"어서오세요"
"레종 블랙이요"
"어? 우산 이게 다에요?"
내 담배를 찾던 알바생은 우산을 찾는 학생의 물음에 없다고 대답하고선 내 담배를 꺼내 카운터에 두었다.
"4500원 입ㄴ,,"
"씨발"
이라는 짧게 욕을 내뱉는 여학생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여학생을 바라봤다.
그 학생은 금세 구겨진 표정을 풀고선 안녕히계세요라는 말만 남기곤 밖으로 나가버렸다.
돈이 없는 모양인지 매대에는 아직 가득 담긴 우산을 사가지 않고
비가 오는 하늘아래 천막 밑 비를 바라보며 서있을 뿐이다.
"저기.. 4500원인데요.."
여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있는 모양인지 나를 툭툭 건들며 어서 빨리 계산해 주길 원하는 표정으로 알바생이 나를 바라보고있다.
"아 죄송합니다. 여기.."
"근데 우산은 얼마죠?"
*
"진짜 존나 싫다.. 좆같애"
생각보다 입이 험한 여학생은 밖에 나와서 비를 바라보며 욕을 내뱉고 있다.
내 손에 들린 우산을 바라보고 있잖니. 이걸 왜 샀나싶고 정말 오지랖도 오지랖인가 싶다.
내가 원래 이렇게 남생각 하는 그런 사람이였나.
'"비가 많이오네"
여학생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니 진짜 비가 많이 오고있다. 아까 담배사러 나왔을때는 이렇게 까지 많이 오지 않아서 금세 뛰어왔는데 이젠 뛰어가기에도 벅찰 정도로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그러다 내리는 비를 몇 번 톡톡하고 만지고 있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생각나 여학생을 쳐다보자.
그 순간 눈이 마주친 바람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나를 왜 보고 있던거지
"우산이없나봐요"
당황하지 않은 척 여학생에게 말을 거는데 아, 내가 이렇게 말을 잘 걸던 사람이였나.
내가 알던 나는 남생각도 따위는 안 하는 그런 사람 이였던 거 같은데
웬일로 이렇게 오지랖을 부리는건지 나도 모르겠다. 귀찮은건 딱 질색인 나인데
아, 그냥 나도 어른인 척 하고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