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음악 넣는 걸 까먹었어요...8ㅁ8 죄송함다
7년 사귄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 中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나 봐
일어났더니 얼굴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지우지도 못한 화장은 번져서 미친 사람처럼 보였고, 울어서 잔 탓에 눈은 팅팅 부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침대 위에 있는 시계 속 작은 시곗바늘은 11을 가리키고 있었다. 참고로 내가 신청한 강의는 11시에 시작한다. 진짜 기분 뭐 같다. 얼굴과 더불어 난장판이 된 머리카락을 넘기며 생각했다. 시계를 한 번 보고 거울을 보다 화장실로 가기 위해 일어섰다. 일단 이 괴물 같은 얼굴부터 지우기 위함이었다. 세면대 앞에 서서 수도꼭지를 틀자 차가운 물이 손가락 감각부터 감싸왔다. 화장은 클렌징 오일이고 뭐고 그냥 마구 폼클렌징으로 문질렀다. 피부가 벗겨질 만큼 얼굴을 세게 문질렀지만 느껴오는 느낌은 없었다. 너 없는 난 시체 같았다. 아, 눈에 폼클렌징 들어갔다. 얼굴에 묻은 하얀 폼클렌징을 물로 지웠다. 눈가가 시렸다.
나름대로 정신을 차린 것 같다. 괜히 어제 본 서세은이 생각 나 화장을 평소보다 더 진하게 했다. 난 화장을 진하게 하는 건 안 어울리나 봐. 진하게 화장을 한 모습이 마치 엄마 화장대에서 갖고 온 화장품으로 몰래 화장을 하는 어린 아이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지금 지웠다가 다시 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쳐다봤다. 역시 어울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바닥에 내려 둔 가방을 든 채로 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만나는 애마다 내 눈을 한 번씩 놀란 표정을 짓고 지나갔다. 이유는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첫 번째는 새벽에 심하게 운 탓에 부은 눈, 두 번째는 어울리지 않은 진한 화장일 거다. 내 생각에는 전자인 것 같았다. 안경이라도 끼고 올 걸, 이라는 후회가 극심하게 밀려오기 시작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 했다. 벤치 옆을 지나다가 마주친 이은지에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이은지는 딱히 별다른 걸 묻지는 않았다. 어제 술 마신 거 속은 괜찮냐고, 거기 집 닭발이 맛있다는 등 일상과 같은 얘기를 나누고, 웃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이었다.
은지는 강의가 있어 먼저 가 보겠다며 올라갔다. 카페에 앉아 자몽 에이드를 한 잔 시키고 앉아 있었다. 빨대로 자몽 에이드를 휘젓자 빨간색이 점점 진해졌다. 휘젓는 걸 멈추고 자몽 에이드를 마시자 입안에 달콤한 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달콤한 맛은 오래 가지 못하고 이내 자몽의 쓴맛이 점점 올라왔다. 달콤했다가 서서히 써지는 게 마치 너와 나 같았다. 아, 이런 일상에서도 나는 우리를 떠올린다. 괜한 손가락만 괴롭혔다. 더 카페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끝은 계속 너였다. 이런 사소한 데까지 와서 나를 괴롭히면, 어쩌자는 거야. 김재환.
오히려 카페에 조용히 앉아 있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카페에서 나가고 나서 바로 마주친 게 서세은일 줄은 누가 알았을까. 서세은은 멀리서부터 나를 알아본 듯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반가운 듯 살갑게 뛰어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름 선배!"
"아… 안녕."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웃는 순백의 표정이 얄미웠지만, 저 아이는 나보다 한참이나 예쁘고 귀여웠다. 너에게 다가갈 자신감이 더 없어지는 기분이다.
"어제 한신에서 선배 봤는데 인사를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냐, 괜찮아."
"근데, 제가 어제 재환 선배랑 같이 있었는데, 죄송해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고 해야 할 거다. 서세은이 왜 김재환과 같이 있었다는 거에 대해 사과를 하는 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멍하니 서세은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서세은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한 번 더 말했을 때는 표정을 완전히 굳힐 수밖에 없었다.
"아 맞다, 선배 재환 오빠랑 헤어지셨죠?"
제가 말실수했나요? 아, 죄송합니다... 뒤에 덧붙여지는 말까지 들었을 때는 입에서 말이 나오지도 않았다. 뭐라 말을 하고 심지어 소리라도 치면서 화를 내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었다. 김재환과 나는 헤어졌고, 헤어졌냐는 물음에 나는 화를 낼 수 없었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세은을 쳐다봤다. 조금 말려 올라간 입꼬리가 예쁘다고 생각이 들지 않고, 비열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분명 고의로 그런 것을 바보가 아니고서야 모를 리 없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있던 어딘가를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뒤를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누구일지 눈에 보였다.
"재환 오빠! 집 잘 들어가셨어요? 사실 톡 보냈는데 답장이 없어서 조오금, 걱정했어요."
친근하게 말을 거는 거와 내 사정을 다 알면서도 앞에서 당당히 떠드는 게 재수 없어서 평소 같으면 욕이라도 했을 텐데, 아까 전의 충격의 너무 큰 탓일까, 입도 뻥긋 못 했다. 나는 너의 입에서 저 아이의 말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설령 그 답이 저 아이에게 좋지 않은 답이라도 나는 그냥 네가 저 아이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 욕심인 걸까, 나는 속으로 빌었다. 제발, 제발 답하지 마라.
"... 어."
펑, 하고 내 세계 안쪽의 무언가가 무너지는 게 느껴졌다. 나의 작은 세계에서 뭐가 터지기라도 한 걸까. 김재환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서세은을 지나쳐 갔다. 도저히 너의 옆은 지나갈 수 없었다. 아직 팅팅 부은 눈을 너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간신히 숨을 붙잡고 있던 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다. 자존심은 숨을 쉬었다, 내쉬었다. 일생 중 마지막 숨이었다. 삐- 소리가 났다. 너에 대한 내 자존심은, 완전히 다 사라졌다. 무너졌다.
*
며칠 전 마주한 김재환이 내 최근 기억 속 마지막 모습이다. 전보다 더 심하게 너를 피해 다녔다. 도저히 나는 너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이제는 더더욱 그러지도 못한다. 은지는 날 보며 말했다. 언제까지 그럴 거야, 답답해.
나의 집은 너의 집과 가까웠다. 내가 자취를 한다고 했을 때,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탓에 서로 친하셨던 김재환과 나의 부모님은 입 모아 말씀하셨다. 재환이 집 근처에서 사는 건 어때? 나 역시 밤길은 무서웠다. 중학생 시절 밤과 새벽 사이쯤에 편의점에 갔다가 납치를 당할 뻔한 기억이 하나 있었다. 다행히도 편의점 근처를 지나가던 김재환이 나를 마주해 납치를 면하기는 했지만, 그 후 몇 년 간은 밤에 돌아다니는 것에 트라우마가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은 많이 없어진 편이지만, 당시 나는 부모님의 물음에 당연히 오케이를 외쳤다. 그렇게 돼서 나의 집은 너의 집 맞은편 대각선에 위치하고 있었다.
과제가 하나 있어 카페에서 계속 노트북만 만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핸드폰 시계는 벌써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로등은 오래된 탓에 깜빡거렸고, 어두운 골목길은 달빛 하나가 밝혀주고 있을 뿐이었다. 쌀쌀한 날씨에 몸을 웅크리고 걷다, 어지러움을 느꼈다. 세상이 도는 듯한 통증에 잠시 벽을 잡고 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노트북을 본 탓이 아닐까, 해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발을 뻗는 순간 시야가 어두워지고, 몸이 차가운 땅에 닿았다.
감았던 눈을 떴다. 어지러워서 눈앞이 흐릿한데 인형 하나가 보였다. 누워 있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게 마치 너의 모습 같은데, 너는 내 옆에 있을 수가 없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꿈이겠지, 다시 눈을 감았다. 이게 꿈이라면 차라리 깨는 게 낫지 않을까.
눈을 떠 보니 익숙한 방 천장이 아닌 새하얀 천장이었다. 몸을 일으키는데 찌뿌둥한 느낌이 들어서 기지개를 하고 있자 간호사 선생님 한 분이 들어와 말하셨다. 새벽에 고열로 쓰러지셔서 보호자 분이 데리고 오셨어요. 지금은 몸 괜찮으세요?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자 간호사 선생님은 링겔 빼 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라며 말씀을 하시곤 움직이셨다. 부모님은 다른 지역에 계셔서 쓰러진 걸 아실 리도 없고, 은지도 따로 연락을 안 했으니 당연히 모르고, 모르는 사람이 데리고 와 주신 건가라고 생각을 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다시 오시고 나는 조심히 물었다.
"혹시 누가 저 데리고 오셨는지 아세요?"
"아, 잘 모르는데... 아마도 남자 분이셨을 거예요."
간호사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답을 하시고 이내 말했다. 바늘 빼겠습니다. 손목에서 바늘이 빠져나가고 손등엔 밴드가 붙여졌다. 남자라면, 누굴까. 링겔을 빼고 나가시려는 간호사 선생님께 고개를 한 번 꾸벅였다.
"링겔 한 번 맞으시고 푹 주무시면 낫는 정도의 감기이셨는데, 혹시라도 몸 더 안 좋아지시면 병원으로 가 보세요."
"아, 네...!"
간호사 선생님이 나가신 후 한참이나 손등의 주사 자국을 막은 동그란 밴드를 쳐다 보았다. ... 누구였을까. 괜한 상상은, 하지 않도록 하겠다.
*
학교는 며칠 동안 자체휴강을 했다. 아직은 움직이기에 머리가 어지러운 탓이었다. 하지만 계속 학교를 안 나갈 수는 없는 탓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학교를 나갔다. 며칠 안 나간 건데, 분위기가 무언가가 어수선했다. 강의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옆에 앉아 있는 은지에게 무어라 묻기도 전에 인사를 몇 번 나눠 본 익숙한 얼굴의 아이가 나에게 와서 말을 걸었다. 야 이름아, 너 김재환이랑 서세은 사귀는 거 들었어? 아 못 들었으려나... 그게 소문이 있는데, 멍한 표정으로 그 아이가 하는 말만 듣고 있는데 이은지가 말하는 아이의 입을 급하게 막았다.
"야, 좀 닥쳐."
"맞다, 쟤네 사귀었다가 헤어졌지?"
씨발 진짜, 눈치 뒤졌냐? 은지가 옆에서 뭐라고 말하는지는 들리지도 않았다. 멍하게 허공만 보는데 아이가 자리로 돌아가고 교수님이 들어오신 것 같다. 아, 모든 게 움직이는데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에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듣고 싶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이 듣게 된다. 항상 내가 원하지 않는 것만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재환아, 나는 이제 어떻게 하라고 그러는 걸까.
그 뒤에는 내가 수업을 제대로 들은 건지 한 구멍으로 흘린 건지 구별도 할 수 없었다. 나에게 말을 걸려는 은지를 나는 자꾸만 피했다. 두려웠다. 굳이 확인 사살당하고 싶지 않았다. 몸이 다시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애써 나았는데, 너 때문에 나는 다시 아프다.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다. 모든 것은 내가 원인이다. 나는 내가 다시금 멍청한 짓을 한 거라 깨닫는다. 너를 이렇게 그리워할 줄 알았다면, 그딴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나는 내가, 너가 후회스럽고, 원망스럽다. 가슴이 찢겨 갈기갈기 사라져 버리는 것도 이보다는 덜 아플 텐데, 나는, 나는... 아직도 네가 정말로 보고 싶다. 이것이 나의 최종적인 결론이다.
나는 길을 잃었다. 길을 잃은 상태에서 나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제자리에 있으면, 엄마가 찾아와 줄 거라 믿었던 한없이 어린 아이처럼 너를 기다렸다. 몇 분이 지나고, 몇 시간, 며칠이 지나도 너는 나를 찾아와 주지 않았다. 연애를 하던 시절, 너는 항상 내가 1순위였다. 싸워도 사과하는 건 너가 먼저, 기쁜 일이 생기면 나한테 먼저 정하는 등 너는 내가 '먼저' 였지만 나는 네가 '나중' 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뒤를 돌아봐도 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안심을 하고 있었다. 너가 나를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맞다, 나는 멍청했다.
그리움의 끝에서 나는 너를 만났다. 너를 만나서 껴안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 끝에 서 있던 네가 허망 된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지금 너를 보고 있는 건 현실이 아니었다. 나는 네가 아직 그립다. 너와 손을 잡고 싶고, 포옹하고 싶고, 입을 맞추고 싶다. 나는 미로에서 빠져 나갈 생각으로 이젠 무릎을 턴다. 다시 길을 잃을까 두렵지만, 나는 용기 내 길을 찾을 것이다. 그 길의 끝에는 허망이 아니라 진실된 네가 서 있지 않을까. 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너를 1순위로 하고 길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너를 만나 말할 것이다. 나는, 멍청했어. 미안해. 사랑해. 보고 싶었어.
소낙비 |
암호닉 |
♥호두 님♥ |
+계속 알림 가게 해서 죄송합니다ㅜㅜ 컴퓨터로 볼 때는 몰랐는데 폰으로 보니까 글씨체가 너무 크게 나와서 수정 좀 했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