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tic
: an incurable romantic
: 기약없는 로맨티스트
*Prologue*
이변은 없었다. 김남준이 학생회장에 지원한다고 할 때부터, 학생회장 자리는 김남준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남준은 어렸을 때부터 제가 마음 먹은 것은 뭐든 해냈다. 나는 때때로 그런 김남준이 너무 싫었고 너무 좋았고. 또 동경했다.
**
우리의 첫 만남은 남준이네 아줌마가 우리 집에 들어오시면서 시작됐다. 그때의 우리는 네 살이었다. 나는 대한민국 탑스타 부부의 하나 뿐인 딸이었고, 사람들의 부러움을 가득 받으며 자라왔다. 하지만 나의 엄마와 아빠는 대외적인, 쉽게 말하자면 쇼윈도 부부였다. 어릴 적의 나는 단순히 엄마 아빠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만 어림짐작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마음으로 엮인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암묵적으로 그럴지도 모른다고 줄곧 생각했기에. 그래도 사춘기 때는 조금 힘들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쟤가 걔래. 라는 소리를 수없이 듣기도 했고, 나는 내 부모님만큼 잘나지 않았기때문에 자격지심도 장난 아니었다. 새학기를 맞을 때면 아이들은 나를 보러 다른 반에서 오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김남준은 제 반에서 내 반까지 긴다리를 휘적이며 와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장난 섞인 말을 건네왔다. 그리고 내 주변의 아이들까지 순식간에 제 편으로 만들어버리고는 했다. 어렸을 때부터 말을 잘하기는 했는데. 이렇게까지 잘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로.
김남준은 가정부 아주머니의 아들이었다. 좀 유치하기는 하지만 저 말만으로도 우리의 차이는 보인다. 나는 많은 것을 지니고 태어났고, 김남준은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 남준이는 한 번도 그것에 불평한 적이 없다. 심지어 초등학교 때는 아이들이 우리가 같은 집에 산다면서 놀렸는데, 남준이가 대뜸 나서서 말했다. '우리 엄마가 탄소네 집에서 일해서 그래. 너네도 알잖아. 탄소네 엄마아빠 바쁘신 거. 그래서 우리 엄마가 가정부로 일하는 거야.' 사실 그때 놀라지 않은 척 했는데, 나 엄청 놀랐었다. 보통 그 나이면 그런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지 않나. 그런데 김남준은 그런 거 하나없이 말을 꺼냈다. 나는 그래도 걔 입장 생각해서 비밀로 했는데. 나한테 엄청난 비밀이었던 사실은 정작 비밀의 주인공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상한 녀석이었다. 특별한 것도 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잘 얻고, 무리의 중심에 있고. 많은 이들에게 친절하고. 어쩌면 그런 성격은 과한 시선을 받아내야 하는 내게 주어져야 하는 건데, 나는 남준이의 뒤에 숨어 다니기 급급했다. 열아홉의 내가 아직까지도 김남준에게 의지하는 건, 김남준 탓도 있다. 몰라. 그렇다.
**
당선 소감을 마친 김남준이 교실로 왔다. 교실 내 화면으로 보던 김남준이 순식간에 내 옆으로 와 풀썩 앉으며 물었다. 나 떠는 거 티났어? 나는 김남준을 밉지 않게 흘기고는 답했다. 퍽이나. 남준이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 듯, 제 특유의 보조개를 보이며 웃었다. 얄미워 죽겠어. 남준이가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 아이들이 우리 근처로 모여들었다. 정확하게는 김남준 근처로. 나는 몰려드는 아이들에 고개를 숙였다가, 교복 셔츠 뒷덜미를 잡는 약한 손길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김남준이었다. 김남준은 어느 순간부터 내가 숨을 기세가 보이면, 나를 방해했다. 예전에는 제 뒤에 숨어도 아무 말도 안 했으면서. 나는 결국 고개를 든 채로, 김남준을 향한 축하 인사를 듣고 있어야 했다. 짜증나. 진짜.
**
"말 걸지마."
"아직 안 걸었는데?"
"야!"
하교를 하는 중에도 김남준을 잡는 손길이 몇 번이었는지, 모른다. 결국 김남준을 지나쳐 혼자 걸어가던 나는 어느새 뒤따라온 녀석의 손길에 멈춰섰다. 오늘 성격 많이 긁네. 김남준. 나는 나보다 한참이나 큰 아이를 노려다보다 능글 맞은 눈빛이 싫어,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그러자 김남준 역시 나를 따라 고개를 새침하게 돌리고는 내가 제게 했던 말을 얄밉게 따라했다. 말 걸지마!
"미안."
김남준은 굳어가는 내 표정을 보고는 금세 두 손을 붙이며, 사과했다. 미안. 얘는 맨날 이런 식이었다. 자기가 잘못하고 내가 화 좀 내려고 하면, 대뜸 사과하고. 다른 친구들 앞에서는 안 그러면서, 내 앞에서는 사람 놀리는 데에 도가 튼 아이였다. 나는 친구가 몇 없어서, 김남준이 이럴 때마다 너무 서운한데. 그런 내 속을 모르는 김남준은 유치한 장난을 치고는 어른스럽게 사과하고.
"내 마음 알지?"
"모른다."
"뭘 몰라."
아무렇지 않게, 내 어깨에 제 큰 손을 턱하니 올리고는 나를 제 품에 끌어당겼다. 나는 그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김남준이 밉다가 어깨 위의 손이 좋다가, 나 혼자 일렁이는 마음에 어지러웠다. 지금도 내가 제 마음을 모른다고 답하니, 뭘 모르냐며 또 상처 받은 척.
"... 나는 친구도 없어... 친구가 내 마음도 몰라..."
**
안녕하세요. 겨울입니다. 신작으로는 정말 오랜만이에요! 사실 수능이 끝나면 업데이트 할 예정이었는데, 불가피하게 수능이 연기 되는 바람에 먼저 올려요. 독자 여러분 중에 수험생분들이 많이 계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음. 제가 감히 어떻게 지금 마음을 알겠어요 ㅠ_ㅠ 제가 수험생이라면 당연하게 이해하면서도 마음 풀 곳이 없어 답답하기도 할 것 같아요. 어찌됐든 여러분 남은 일주일도 몸과 마음 건강하게 챙기시기를, 꼭꼭! 바랄게요.
신작의 주인공은 우리의 RM. 듣자마자 로맨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그 단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ㅎㅎ 기약없는 로맨티스트. 너무 근사한 사람이잖아요! 우리 이번 겨울을 겨울이와 함께 로맨틱하게... 보내 보아요. 여러분. 맨날 맨날 고맙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