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안 급해. 그러니까 천천히 말해. 걔가 뭐라고 말했어 너한테”
그때 아마 새벽 3시였나.. 그랬음. 내 하소연 다 들어주고 집 가면 엄마한테 혼난다고 자기 집에서 재웠다. 소주 루팡 한 거 엄마한테 들키긴 했지만.. 짝남이랑 이동혁이랑 원래 친했는데 저 일 있고 같이 안 다니더라. 근데 조금 거지 같은 건 나 지금 구짝남이랑 같은 반이라는 거?ㅎ 여튼 이때 이후로 뭔가 얘만 보면 쪽팔리고 그런 거임. 얼굴도 못 쳐다보겠고.. 처음엔 그냥 창피해서 그런 줄 알았지. 근데 점점 내가 얘 좋아하나???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거야(착잡)
"어제 이동혁이 말 걸었는데 쪽팔려서 씹고 나왔다? 요즘 눈 마주치기도 쪽팔려서 걔네 집도 못 가.."
"그건 쪽팔린 게 아니라 니가 걔 좋아해서고요.. 지만 몰라"
현실 부정하니까 신준희가 확인사살 시켜줘서 그때부터 눈물을 머금고 인정함.. 내가 이동혁을 좋아하다니.. 감히 지가 뭔데..(?) ㅜㅜ이게 고2 때 일이니까 1년 좀 넘게 지났다. 그러니까 2년째 혼자 삽질하고 있다 이 말입니다. 썸? 그게 모야ㅋ 그딴 거 하나도 없고 전이랑 다른 바 없이 지내고 있음. 학교 애들이 남매라고 알고 있을 정도로 맨날 붙어서 티격태격. 괜히 나 혼자 치댔다가 까이면 뭣도 아닌 사이가 되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관계에서 벗어나지 말자는 게 나 혼자 한 약속임.
2. 체육복 사건의 전말
이동혁은 이과고 난 문과임. 과학 지지리도 싫어하면서 왜 갔나 몰라. 맨날 화학 싫어어 전과하고 싶어어 하면서 찡찡; 아무튼 반이 다르다 이 말임. 우리 학년은 문과가 한 반 더 많아서 내가 5반이고 이동혁이 6반이라 서로 옆반인데 그래도 점심시간 등하교 시간 말고는 마주칠 일이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걔한테 체육복 빌리러 다닌다.. 참고로 걔랑 나랑 키 20cm 차이. 입으면 왠지 곡괭이 들어야 될 것 같고 영감 따라 밭 매야 할 것 같은 그런 핏? 내 멀쩡한 체육복 사물함에 두고 맨날 그 짓을 했다 이거예요.
아무튼 오늘 체육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자면, 체육시간에 늦어서 이동혁 체육복 입고 치타폰 헐레벌떡폰쿨 뛰어가다가 이동혁이랑 마주친 거임. 괜히 또 신나가지고 달려가서 딱콩 때렸다. 왜 때렸냐고? 왜 좋아하면 걍 좀 시비 걸고 싶고 그렇잖아요. 때튀하려고 하는데 이동혁이 못 가게 어깨동무를 하는 거임. 아니.. 헤드락에 더 가까웠던 듯.
"체육복 빌려준 은혜도 모르고 서방님 머리를 때려?"
"사람 잘못 봤네요, 죄송합니다"
“어허 서방님 두고 어딜 가려고-”
“누가 내 서방인데; 지랄 좀”
이거 봐. 이렇게 끼를 부려요, 얘가. 서방님이래. 하ㅎㅎ어이없고 좋아서 웃음이 다 난다ㅎㅎ근데 얘기하다가 이동혁이 말 더듬는 거임. 진짜 뜬금없이. 그때 무슨 얘기 중이었더라.. 막 오늘 보충 째고 배그 하러 가자 뭐 이런 얘기 했던 것 같은데.
"야 너 춥다고 했지"
"아니? 그런 적 없는데"
"아니? 그런 적 있는데. 이거 가지고 좀 떨어져"
생뚱맞게 지 나이키 후드집업 나한테 걸쳐준다. 그냥 들고 다니기 귀찮았다고 해; 자기 할 말 다하고 내 말 씹고 가는데 와 진짜 싸가지 어디 갔냐. 내가 너 그렇게 키웠냐?ㅠㅠ 나 못지않게 이동혁도 프로 시비꾼이라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갔음. 여름이라 쪄죽겠는데 웬 후드집업. 아무튼 신준희랑 나랑 나란히 체육수업 늦어서 벌로 운동장 뛰고 있는데 걸치고 있던 이동혁 옷이 떨어진 거임.
" 김여주 너 끈보인다"
"어?? 뭐야"
신준희가 내 브라끈 잡아 늘어뜨리고 뗀다. 챡!! 찰진 소리 나고. 신준희 말은 그니까... 내가 이동혁한테 오늘 브라 무슨 색 입었는지 알려줬다, 내 브라끈을 자랑했다 이 말인 거잖아. 어쩐지 목이 훤하더라. 그래, 뭐 입은 게 부끄러운 건 아닌데 하 뭔 느낌인지 아시잖아요... 아까 이동혁 표정이랑 이동혁 행동 오버랩되고 창피해서 소리 지름. 아앆!! 눈치 어디 갔냐 김여주.. 이 날 피구했는데 넋 나가서 집중 1도 안됨.. 피구 같은 편 황인준한테 엄청 혼났음.. 종이 인형 주제에
"아 김여주 뭐 해애!! 나재민 상대편인데 쟤한테 공을 왜 줘!!!"
"미안.. 쟤가 막 간절하게 달라고 하잖아.."
"야 김여주!!! 나 너랑 같은 팀이라고!! 나를 왜 맞추냐고!!! 존나 카이저소제냐?"
"니가 싹수없어서 맞추고 싶은걸 어떡해?"
황인준이랑 싸우느라 우리 팀이고 뭐고 공 던지고 피구 개판되고.. 체육 끝날 때까지 싸워서 반에서 2차전 했는데 황인준이 내 와이셔츠에 초코우유 흘려서 게임 끝 김여주 승. 황인준 하루 동안 김여주 노예계약 맺음.
“빡빡 닦아 인준아. 초코우유 흔적이라도 남으면 넌 우리반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니까”
“죄송합니다, 여주님.."
"김여주 나 문학책 좀"
황인준 무릎 꿇리고 혼내고 있는데 이동혁이 갑자기 우리 반 찾아옴. 안 그래도 아까 끈밍아웃해서 얼굴 보기 조금 그런데. 사물함에 있으니까 니가 꺼내가렴. 말하고 황급히 교실 나갔음. 이동혁 나가는 모습 보고 다시 들어갔는데 황인준이 이번 시간 문학이라네?ㅎ
" 김여주 우리 이번 시간 문학인데?"
"어? 야 그걸 왜 지금 알려줘"
"니가 말하고 바로 나갔잖아"
"그럼 이동혁 가져갈 때 책 안 뺏고 뭐 했냐;"
"뭐래.. 아, 그리고 이동혁이 너보고 체육복 가져간다고 말해달래"
"체육복? 나 지금 입고 있는데 뭔 소리야"
“몰라 난 사실을 말했을 뿐”
뭔 소리야.. 선풍기 바람에 체육복 소매 팔랑거리는 거 보다가 갑자기 생각난다. 아 맞다.. 사물함에 내 체육복 있었지. 사물함 우당탕탕 달려가서 보니까 내 체육복 없네. 어디 갔냐. 그거 이동혁이 가져갔다니까? 알아 ㅅㅂ. 그니까 망했다고. 내 체육복 누가 훔쳐 갈까 봐 목 부근에 ' 김여주대' 문짝만 하게 써놨는데.. 뭐 어쩌겠어요, 다음 문학 시간인데 책 안 가져왔다고 수행평가 점수 깎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아주 당당하게 이동혁 반에 찾아갔다. 들어가지는 않고..
문 앞에서 뭐라고 말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아 모르겠다 하고 문 열었는데, 바로 앞에 이동혁 있을지 누가 알았겠냐고요. 문학 책이랑 체육복 들고 무표정으로 내려다보는데 무서워서 심장 멎는 줄. 이동혁 뭐라고 말하려고 입 떼길래 문학 책만 뺏어서 후딱 튀어버림. 이동혁 붕어처럼 입 뻐끔거린다. 덕분에 얻은 오늘의 교훈은 꼬리가 길면 반드시 밟히는 법! 아하하.. 앞으로 이동혁 얼굴 어떻게 볼지 심각하게 고민이다..
녀러분 오랜만이에요;ㅁ; 글이 날아가서 당황했지만 다행히 메모장에 옮겨놔서.. 바로 올리려다 현생에 치여서 지금 올리네요 죄송합니다ㅜㅜ 다음 편은 내일 쯤 올릴 것 같구요 동시연재중이니 표절이라고 오해 안하셔도 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