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 도화 ②
ㅣ 새 봄, 복숭아 꽃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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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BGM. 알리- 상처








*


" 평범한 자제의 도령들에겐 모르나,왕족에게도 사냥감 제한이 있는 줄은 내 꿈에도 몰랐군. "


" ......... "

" 니 말대로 호랑이를 놓아준 짐이 얻는 것은 무엇이냐? "

" 호랑이를 놓아준 것은 너니, "
" 너라도 나를 따라갈테냐? "






비틀린 웃음이 입매가 굳어지면서 사라졌다. 현은 활을 쥐고 사냥을 하는 사람같지 않게 곱다란 제 손을 뻗으며 명령하듯 하문했다.

호랑이 대신 니가 나를 따라 오겠느냐고.








여주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었다는 사실에 입을 꾹 깨물었다.


현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다. 황족의 사냥을 방해한 한낱 계집애의 목숨은 이제 저 고약한 성질에 달렸으니.















* 시들어버린 꽃
















자신의 뒤를 따르는 여주를 전혀 배려해주지 않는 걸음으로 산을 내려 온 그는 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를 발견하고 멈출 줄 모르던 걸음을 멈추었다.

호랑이의 뒤를 따라 뛰느라 한바탕 체력소모를 한 여주는 그제서야 숨을 고르면서 눈치를 살폈다.거역할 수 없는 말에 따라오긴 했지만 자신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그 작고 반짝이던 눈에는 두려움과 걱정이 베여 있었다.










" 현, 저 아이는 누구야? "









이제보니 남자에게 말을 걸고 있는 또 다른이도 왕족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고 있었다. 황제에게 황자가 둘이라고 듣긴 했는 데...여기서 둘 중 한명은 귀인 태생인 서자였다. 여주는 눈 앞의 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한편으론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성질머리가 고약하다고 소문난 황자대신 서자 신분의 황자가 눈 앞의 사람이길 바랬다. 그래야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여주의 바램과는 다르게 현은 황후 태생의 친황자 였다. 어미를 잃은 이후에 그 착하던 아이가 날을 세우면서 살아왔으니 성질이 고약하다는 소문도 일부 사실이기도 했고.


현은 훈의 물음에 빙그레 웃으면서 들뜬 목소리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 백호랑이 대신 잡아온 사냥감. 어떠느냐 내 이 아이를 궁으로 데려갈터인데. 어머니께서 심심하다 하셨으니 말동무로 쓰면 딱일 것 같아 데려왔다 "













현이 말하는 어머니는 정귀인, 즉 자신의 친모인데 어머니는 황제가 유일하게 남겨둔 귀인이였기에 궁에서 늘 혼자였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깍듯이 존함을 붙이는 궁인들과도 놀수도 없고. 훈은 현의 마음이 이해가 가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여자아이에게 시선이 갔다.

초라한 옷차림엔 다치기라도 한 건지 핏자국이 여기 저기 묻어있고 얼굴에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으며, 하루 아침에 왕족을 잘못 만나 궁으로 간다는 말에는 사색이 되어있는 게 눈에 다 보일 지경이였다.













" 어머니께서 저리 어린아이를 부모에게서 떼어 놓았다하면 좋아하지 않으실거야. 차라리 동이를 구하자. "









훈의 제안에 현은 흠, 하며 휙 뒤돌아 여주를 바라봤다.











" 억지로가 아니라면? "

" ....뭐...? "

" 저 계집이 내가 다 잡은 사냥감을 놓아주었고 그 대신에 자신이 나를 따르겠다고 했다. 자의적인 선택이니, 어머니께서 그런 걱정을 하실 필욘 없어. "

" ........ "











" 안그러느냐? "













돌연 저를 향해 날아온 질문에 여주의 얼굴이 멍청히 굳어갔다. 왕족의 사냥감을 제 멋대로 놓아준 건 사실이지만 그를 따라 궁으로 가는 것은 절대 저의 선택이 아니였다. 어떤 대답도 못하고 있는 여주를 보던 현의 얼굴이 한층 더 차기 식어가면서 다시 한번 입을 떼려는 데...












여주야-!


저 멀리서 애타는 부름과 함께 달음질 해 달려 온 여인이 여주를 꽈악 안았다.

여주는 웅얼거리듯 그녀의 품에 안겨 고갤 묻었고 그에 훈은 저 여인이 계집의 어미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어디...다친것이야? 여기 팔은 왜그러느냐? "











품에 엉겨붙는 여주를 떼어내곤 이리저리 연신 살피는 모양새에 훈의 마음은 더 가라앉았다. 역시. 현의 말은 거짓이였다. 저리 어미가 나타나는 순간부터 꼿꼿히 버티던 아이가 순식간에 애처럼 달라붙는 걸 보니 현이 통보하듯 아일 데려온 게 분명했다. 훈은 이만 가자고 , 저 아일 대신 할 동이를 저가 구하겠다 그리 말하려는 데 그보다 현의 입이 먼저 열렸다.







" 그대가 이 계집의 어미인가. "








좀전까지는 생글거렸던 목소리가 착 가라앉은 것이 현의 기분이 아까와는 다른게 느껴졌다. 훈은 알 수 없는 눈길로 현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그제서야 눈앞에 왕족을 맞이한 여인이 고갤 땅에 박으며 대답하였다.









" 그..그렇습니다. 혹 저의 딸이 무슨 잘못..이라도... "







여주를 꼭 빼다박은 맑은 눈이 정처없이 흔들렸다.현은 그런 여인을 한껏 아래로 해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어 말했다.







" 내 사냥감을 멋대로 풀어주어 대신 궁에 가기로 했다. "









여인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질 말을.




















***



" 한..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저 아이가 뭘 모르고 그런 것일것입니다. 절..절대 ..."

" 안타깝지만 저 아이는, 내게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말을 하며 나를 막고 짐승을 풀어주었다. 또한, 이미 내게 약조를 한 터인데 어찌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 "










현의 냉담한 반응에 여주와 여주 엄마의 몸은 더 없이 굳어졌다. 이미 약조를 한 제 딸아이는 분명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그리하였을텐데.....꽉 깨물린 입술에 어쩔줄을 모르는 마음이 고였다. 여주는 궁으로 가면 안된다. 신의의 능력이 있다는 게 밝혀지면 아이는 분명 음모와 배후의 몰려 가혹한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사랑도, 배려도 없는 곳에서 아이는 피눈물을 쏟으며 너덜너덜해질터인데 그녀는 절대 그 꼴을 볼 수 없었다.








" 동이가 필요하신거라면 제가..대신 가겠습니다. 저 아이는 아직 성년이 된 아이도 아니고 궁인으로 올리기에도 미천한 신분이옵니다. 제발... "








여인의 간절한 외침에도 현은 꿈쩍도 안했다. 훈은 , 갑작스러운 그의 차가운 태도에 이해할 수 없어 하며 한발짝 나섰다.







" 그만하면 되었다. 오늘 일로 앞으로는 왕족에 대한 예의를 똑똑히 가르쳐야 할 것이다. 계집이 성년이 되지 않았다면 당연히 궁에 올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하여 넘어가겠, "






훈의 말에 눈물을 흘리던 여주의 어머니가 감사합니다..를 연신 되뇌이고 있을 때였다.







" 그럼 저 계집이 성년이 되면 데려가겠다. "






현은 여주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듯 훈의 뒷말을 잘라내었고 또 다시 현을 제외한 이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 현, 고집 좀 그만 부려. 이건 한번 넘어가 줄 수도 있는 문제잖아. 동이는 내가 구할, "

" 거기까지 해 훈, 내가 결정하는 것에 토를 다는 것도 거기까지만 해. "







무심한 얼굴로 훈의 말머리를 또 다시 잘라 낸 현은 여주를 빤히 바라봤다.


왕족은 본래부터 누군가와 교류하며 살아오는 게 현저히 적었다. 어려서부터 넓은 곳에 갇혀 살아야 했고 그때문에 어린 왕족은 쉽게 누군가를 의지하고 정을 준다. 그런 왕족의 약함을 이용하기 위해 권력에 눈이 먼 자들은 자신의 어린 딸아이나 아들을 동무, 동이로 보내어 왕족을 이용하려 들었고 선대 황제부터 성년이 되지 않는 아이들을 궁으로 들이는 걸 반대하는 명을 내렸다. 여주의 나이는 현과 같은 16살. 앞으로 2년 후 성년이 될 터였고.


사실 현은 훈의 말대로 여주를 그냥 풀어줄까 싶었다. 신의라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비참한 모습으로 궁을 나서는 지 책을 통해 어려서부터 끝도 없이 봐왔다. 특출한 능력을 가졌기에 더욱 중요하지만 그만큼 더욱 이용당하고 배후에 말리기 쉬운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게 그들의 운명. 여주가 궁에 들어오게 된다면 언젠가는 그 능력도 드러날터인데. 처음에는 호기심과 삐뚤어진 마음으로 계집을 겁주고 뻐겨보았다. 하지만...


달려오자마자 눈 앞에 자신들은 보이지 않는 지 아이을 안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그 어미를 본 순간 현의 안에 있던 일말의 감정이 사라졌다. 다정한 모녀의 사이를 보고 있자니 꼴 보기 싫었고 그래서 놓아주려던 마음을 고쳐버리는 못된 심보가 울컥 올라왔다.








" 내 그대의 딸이 성년이 되면 궁으로 데려갈 터이다. 이게 바로 내가 해줄 수 있는 배려이다. "











현의 말에 여주와 여주 엄마의 얼굴은 생기를 잃었다. 결국, 여주를 궁에 데려가겠다고 말하는 왕족이 미웠고, 눈물이 나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입술을 꾹 닫고 고갤 깊이 숙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일단 집에 가자며 멍한 여주를 잡아끌어 돌아섰을 때였다.













" 그러려면 계집에게 내 표식을 남겨 둬야겠지. "









아직 끝나지 않은 현의 말이 그녀는 무너지듯 주저 앉았다.





















***


훈이 다시한번 그건 아니라는 듯 나서려 할 때였다. 현은 지금 지나치게 감정적이였다.기껏해야 우리 또래로 보이는 계집에게 표식을 남기겠다니... 그의 얼굴은 말없이 일그러졌다.

표식은, 절대 도망가서는 안되는 범죄자에게만 내려지는 형벌이였다. 불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진 집행관을 데려와서 눈에 잘 보이는 이마나 손목 등에 불로 문양을 새기는 것인데.....건장한 성인 남자들도 그걸 버티지 못해 까무러치고 고통스런 신음을 내지른다. 그런 표식을... 훈은 말문이 터억 막혀와 그 말을 들은 여주와 그 어미를 내려다 봤다. 안타깝게도 그들또한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한 것인지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공포에 질려 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 사냥감을 놓아 준 그대의 딸아이는 범죄자가 맞다. 하지만, 내 적당한 호의를 베풀어서 계집이 성년이 될 때까지 기다려주겠다는 말도 했는 데 그대들이 나와의 약조를 지키리라 어찌 확신하지? "

" 지금 당장 찬열을 불러. "










현의 명령에 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한마디만 더 하면 제 아무리 형제라 하더라도 봐주지 않겠단 듯 쏘아보는 현의 눈길에 훈은 결국 머리를 감싸고 대기 중인 호위무사에게 다가갔다. 계집에게 표식을 새길 집행관 찬열을 데려오라고.

찬열이 올 때까지 여주의 엄마인 혜선은 여주를 품에 꼭 안고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그 사이 여주와 혜선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 찾아 온 여주의 아버지 주완은 여주에게 내려진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아 땅바닥에 풀썩 앉아버렸다. 표식이라니...중범죄의 범죄자들에게도 망설여지는 그 벌을...고작 사냥감을 풀어줬단 이유로....주완의 잎이 캄캄해졌다. 어느새 울음이 길어진 혜선과 말없이 떨고 있는 여주를 제 품에 당겨 안은 주완은 그렇게 울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보다 더한 상황에 피가 바짝 마르는 것 같지만 꾸역꾸역 버텨내면서.




여주네 가족이 절망하듯 주저앉아 있는 걸 보면서도 현은 끝끝내 자신의 결정을 물리지 않았다. 일단 현의 부름이니 달려오긴 했다만 찬열은 자신이 문양을 새길 상대가 또래의 계집이란 것에 충격을 먹고 커다란 눈으로 현을 바라봤다.







" 저...저... "









차마 이어지지 못한 찬열의 뒷말은 현에게 묻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저 계집에게 표식을 새겨야하냐는 그런 물음. 현은 그런 찬열을 한번 바라보다 턱짓으로 여주를 가리켰다. 더는 말하지 말고 그거나 하라. 그 거만한 명령에 찬열은 저가 더 괴로운 듯 고개를 떨구었다.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문양이 새겨질때면 그 악독한 짓을 했다는 범죄자들도 보기 힘들정도로 괴로워했다. 그래서 찬열은 문양 하나하나를 새길때마다 죄책감과 함께 자신의 능력이 왜 이것인 지 탓해왔는 데...여주에게 그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도망치고 싶을만큼 괴로운 순간이라 찬열은 한참을 머뭇대며 가까이 다가갔다. 도대체 이 애가 무슨 잘못을 그리 크게 한것인지....찬열은 현의 차가운 시선을 기억하며 여주를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있는것도 아니였다. 차라리 훈이라도 나서서 말려줬음 싶지만 훈도 포기 했다는 듯 뒤에 가만히 서 있는 걸 보니 그에게 기대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찬열이 다가서자 아이의 엄마가 더 흠칫 떨었다.




' 죄송합니다. 아주머니.... '



울다가 지친 눈으로 저를 보는 여주의 눈동자와 두려움이 가득한 그 엄마의 눈동자를 마주하면서 찬열은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오늘로 인해, 자신이 집행관이란 것에 전과는 비교 할 수 없는 회의감을 느낄것같았다.


찬열이 다가서자 그 어미는 아이를 못 내놓을 것 처럼 꽉 감싸안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약해졌던 마음이 사라지고 뜨뜻하게 달아오르던 피가 차게 식었다. 현은 , 빨리 하라는 듯 발을 한번 굴러 보였고 찬열은 저와 모녀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조심스레 물었다.






" 소..손목에다가... "








문양을 손목에다가 새기겠다는 말에 현의 눈썹끝이 삐죽 올라갔다.







" 아니. 목덜미에 하라. "








여주의 축 늘어진 시선이 올라가서 현을 마주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저들의 기분에 따라 놀아나야하는 제 처지가, 그리고 인정사정없는 그의 태도가 참으로 한심하고 미운 순간이였다.






















***


여주는 찬열이 문양을 새기는 동안 , 몇번이나 까무러쳤다. 그도 그럴것이 단순히 불에 데이는 수준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을만큼 지지는 그런 벌을 그 어린 몸이 버텨낼리가 없기 때문이였다. 여주가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질때면 그 어미의 울음은 점점 더 애달프게 커져갔고 그 모습을 차마 보기 힘든 훈이 제일 먼저 그 자리를 벗어났다. 찬열은 마치 저가 그 아픔을 삼키기라도 한 듯 끙끙 대며 앓았다.

마침내 아무 표정없이 이 모든 걸 보고 있는 현을 제외하고 괴로운 시간이 끝났다. 여주의 목에서 쇄골로 이어지는 부근에는 현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졌고 그 주위는 온통 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평생을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안은 딸을 아주 소중히, 정말 깨지기라도 할까 소중히 안아든 주완은 현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빠르게 그에게서 벗어나고자 했다. 온 몸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앉은 찬열과 멀리서 괴로운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훈이 다가와서 현의 얼굴을 살폈다. 현은 망설임없이 저에게서 등을 돌려 사라지려는 여주의 가족을 바라보다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18살이 되면, 짐은 그대를 귀인으로 삼겠습니다. 도망가려는 생각은 마세요. 도망가다 잡히면 제 손으로 그댈 죽일테니까요. "









한없이 차분하고 다정한 그 말은 정신을 잃은 여주에게 하는 말 같았지만 그녀의 부모에게 전하는 경고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당신의 딸을 내 눈을 피해 데리고 사라질 생각을 하지말라는 경고.



입 안이 까끌해질만큼 불쾌힌 기분은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고 말했는데도 사라지지 않았다.한시라도 빨리 멀어지고 싶어 걸음을 놀리던 여주의 가족들이 한점이 될때가 되서야 현도 걸음을 돌려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향했다. 훈은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지만 오늘 현의 태도가 못마땅했는 지 가는 길 내내 입을 떼지 않았다. 이게...여주가 기억하는 , 현이 기억하는 그들의 첫만남이였다.


























* 2년 후








" 어머니! "








18살, 이제는 시집을 가야 할 나이가 되었다며 동네 사람들이 짖궂게 여주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면 여주는 그런 이들에게 어떻게 잘라내야하는 지 이제는 도가 튼 수준이였다. 수줍게 웃으면서, 아직은 불효녀라서 부모님 곁에 있고 싶다 애교스레 말하면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면서 여주를 놓아주었다.





현에게서 표식을 받던 그 날, 여주의 부모님은 현의 경고를 기어코 어기고 여주를 데리고 더 깊은 산속으로 도망을 쳤다.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산속으로.대략 여주네를 포함한 14명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이 곳이 마을이자 전국을 이십사도로 나눈 한곳이였다. 2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주는 처음엔 궁으로 가겠다고 했다고 울며불며 안된다고 막아서는 엄마를 보고 단념했다. 혜선은 절대, 절대 안된다면서 황제의 눈에 절대 안 띄이게 살거라면서 반대를 했고 여주는 그제서야 끝끝내 자신의 의견을 접고 부모님의 말을 따라 산속으로 왔다. 원래부터 산을 좋아했던 소녀에게 더 깊은 산속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날의 기억을 덮어주고 달래주었다면 모를까. 여주는 금방 이 산에 모든 것에 적응을 했고 어렴풋이 생긴 왕족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을 떨치며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런 여주와 함께 자란 문양은 어느새 표식, 흉터가 아닌 여주를 빛내는 것으로 조심스레 자리 잡았고. 분명 빛나지 않는 빛모양의 문양이 여주의 흰 목덜미 위에서 빛났다. 아주 예쁜 장식마냥.










" 여주야. "

" 오라버니! "









백호랑이를 고쳐주고 나서 현으로 부터 그 일을 겪었지만 여주는 여전히 다친 동물을 지니치지 못했다. 그래서 이곳에 오자마자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아픈 동물을 마주하면 주저없이 손을 뻗어 그들을 치료해주고 돌봐주었다. 경수와 가까워진 계기도 그러했다. 경수는 이곳에 나고 자란 순간부터 산의 짐승들과 함께 지내왔고 그래서 어느 동물이든 거리낌없이 돌봐주고 함께해왔다. 어느날은 산 아래로 내려와 울부짖는 어미늑대를 따라 산으로 갔더니 아기 늑대가 떨어지는 바위에 부딫힌건지 허리 부근에서 가는 피를 흘린 채 낑낑거리고 있었다. 서둘러 그 짐승을 품에 안고 산을 내려오던 중, 여주를 만났고 여주는 경수에게 들키던 말던 고운 손을 뻗어 늑대를 치료해주었다.

그런 여주에게 경수가 한눈에 마음을 뺏긴 건 뻔한 얘기였다 . 저와 같이 짐승을 보고서도 도망치기는 커녕 다가오는 여인이라, 또 그 여인은 소수의 사람들과 접히며 살아 온 경수에게 매일매일을 신기함과 특별함을 선물해주었다. 산에서 지낸 시간은 경수가 더 길었지만 여주가 지낸 꽃동산은 그야말로 산 생명들의 집합소였기 때문에 여주는 산에 대한 지식이 경수보다 탁월했다. 여주와 함께 다니는 산은 경수에게 데이트 코스였고 여주에 대한 마음이 서서히 자신도 모르게 흠뻑 젖어갔다. 여주또한 다정하고 세심한 경수를 잘 따르며 이따끔 볼을 붉히기도 했으니, 둘은 서로에게 안정과 설렘을 주며 가까워져 갔다.










" 오늘 어머니 생신이시잖아. 내가 장에가서 선물을 사왔다. 같이 가자. "








때마침 산에서 내려 온 여주도 집에 들어가려 어머니를 부르던 차였기에 여주는 환하게 웃으면서 경수의 손을 잡았다.




응. 오라버니는 무슨 선물을 샀어?
그건 비밀이지. 주인공은 어미닌데. 어찌하여 니가 더 궁금해하는 것 같네.
내 생일은 기억하고 있지? 나 기대하고 있는다?





해맑은 얼굴로 제 생일을 스리슬쩍 언급하는 여주의 모습에 경수는 결국 웃고 말았다. 다정하게 손을 흔들면서 집으로 들어가려는 데...


















***


" 안..돼...! "










혜선이 뛰어나오면서 소리쳤다.







"..... 엄마...? "






여주의 세상이 다시 캄캄해졌다. 방에서 급하게 나온 혜선이 말을 다 잇기도 전에 기다란 화살이 날아와 다리에 박혔다. 미친듯이 달려가서 엄마를 안아든 여주가 울부짖자 경수 또한 달려가서 여주와 혜선을 등돌려 막았다.








" 아주머니...이게... "








차마 말을 있지 못하고 삼키는 경수의 손을 붙든 여주의 엄마가 헐떡이며 말했다.

도망가야한다고..여주를..데리고 도망가야한다고....

여주는 망설임없이 두눈을 꾹 감고 능력을 쓰려는 순간이였다. 순식간에 다가온 누군가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여주와 여주 엄마를 보고 있는 경수를 걷어차고 여주를 끌어당겼다.








" 악!!!이거놔!!!!"








미친듯이 발을 구르면서 여주가 악을 쓰자 경수가 재빨리 일어나서 남자에게 주먹을 날렸다. 거친 질감을 옷을 두른 이가 벌러덩 뒤로 나자빠지고 그의 입에서 욕이 새어나왔다. 평화롭던 산 마을을 발견한 도적들이 무작정 침입해온 것이였다.


여주는 다시 빠르게 엄마 옆으로 달려가서 엄마의 손을 잡았지만 다른 누군가가 더 빨랐다. 휙 머리채를 잡아 당기는 악력에 여주가 뒤로 질질 끌려갔다. 경수가 서둘러 뛰어 와서 남자에게 달려들었지민 그사이 일어난 사내가 욕을 읖조리며 경수를 걷어찼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였다. 혜선의 얼굴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일그러져 가쁜 숨을 쉬며 울고 있었고 보통 성인 남성들보닥 건장한 도적 두명이 경수를 에워싼채 발길질을 시작했으며 여주는 또 다른 산적에게 붙들려 끌려갔다. 처음엔 혜선을 노리고 왔지만 여주를 보자 딸년이라도 데려가자 마음을 바꾼 도적들은 여주를 거칠게 당겨 데려가려 했다.







" 악!!"








끌려가는 힘에 버텨보려고 버둥치던 여주가 도적의 팔을 꽈악 물었다. 그에 도적이 자신을 놓치자 여주는 다시 엄마 앞으로 달려갔다.

눈앞에는 경수도 당하고 있는 상태라 여주의 눈에는 뿌옇게 눈물이 차올랐다. 안돼...어떡해
..그 말만을 연발하면서 경수 쪽으로 다가가서 울며불며 도적들의 발을 때려대자 그들이 짜증스레 여주를 향해 발을 쳐들었다.


빠르게 여주를 감싸안은 경수가 등 뒤로 눌려오는 힘을 다 받아냈다. 입가에 고인 피는 터져서 길게 흐른 지 오래였고, 어깨를 집중적으로 밟아 댄 탓에 어깨가 빠질듯이 아팠지만 온 몸으로 여주에게 오는 발들을 막아냈다. 울음과 악이 난무하는 건 여주네 집 뿐만이 아니였다.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비명과 울음, 고함 그리고 잔인한 소리들.

힘겹게 버티던 경수의 한쪽어깨가 땅에 쳐박히듯 내려 앉을 때,

뒤늦게서야 집에 온 주완의 고함이 귀를 때렸다 .












" 여보!!! 여주야!!!!!! "









수컷 늑대의 울음과도 같은 울부짖음을 내지르며 달려 온 주완은 거침없이 여주와 경수를 에워싼이들에게 주먹과 발을 날렸다. 겁을 주려고 들고 있는 도적들의 손에서 거친칼을 뺏어든 주완이 미친듯이 칼을 휘두르며 그들을 몰아내고 있을 때 여주는 경수의 어깨를 안고 울었다.
















***


으으..오라버니...

피를 울컥 뱉으면서 아주머니를 가르켜 보이는 경수에 여주가 으으..괴로운 울음을 터뜨리다가 엄마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가 엄마의 상처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딸의 능력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혜선이 여주의 손을 꼬옥 붙들었다. 도망가라고. 경수랑..아빠랑 도망가라는 야속한 말만하는 엄마의 모습에 여주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안된다는 말이 마구 터져나왔다. 제발...이것만 치료하면 엄마도 같이 도망갈 수 있어 ..제발... 하지만 혜선은 끝끝내 손을 붙들고서 막았다. 여주의 능력이 밝혀지면 저 검은 도적들은 분명히 여주를 끌고 갈텐데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여주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자 혜선은 고갤 돌려 경수를 불렀다. 제발...도망가 경수야..여주를 데리고 제발 도망가.. 힘겹게 새어나오는 그 말에 여주는 안된다고 악을 쓰고 서너명을 상대하던 주완도 헉헉 거리면서 말했다. 아빠가 엄마 데리고 갈게. 제발 경수 따라서 먼저 가 여주야. 딸아...


경수는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이대로 자꾸만 눈이 감길 것 같았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켜 여주의 앞으로 기어갔다. 가자...여주야..아저씨가 아주머니랑 온대..너 여기 있으면 아저씨가 싸울 수가 없어..어머니를 지켜줄 수 없어....


크고 깊은 경수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여주가 힘겹게 고갤 떨구었다. 온 몸이 마디마디로 잘려나갈 것 같은 고통이 경수를 매 초마다 덮쳐왔지만 경수는 겨우겨우 일어나 여주의 손을 끌었다. 억지로 떼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기는 여주와 여주를 데려가려는 경수를 본 도적들이 더 거세게 주완에게 달려들었다.









도망가!!!








날카로운 것들이 부딫히고 악이 난무하는 와중에 주완의 고함이 여주와 경수의 귀에 박혀들어왔다.



그게 마지막이였다.


















***


가장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던 외삼촌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아버지는 가장 약한 군주였다. 어쩌면 엄마의 죽음 이후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을지도. 순식간에 아버지의 피를 묻힌 칼을 들고나온 외삼촌의 명령에 따라 나와 훈은 걸을 수 없을만큼 많이 맞고 나서야 감옥으로 옮겨졌다. 친황자에게 자신이 황제가 되는 걸 인정받아야 해서 나를 살려둔다 쳐도 훈을 살려둔 이유를 짐작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도화전에 있을 양어머니가 생각났다. 우리 엄마를 사랑했지만 우리 엄마는 다른 사내를 사랑했듯이 정귀인을 사랑했지만 정귀인은 아버지를 사랑했다. 그래서 11년 만에 어머니를 궁에 들이셨을 때 어머니는 곁에 있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더 바랄 게 없다면서 웃으셨었지.훈도 현과 같은 생각을 한건지 어머니께 손 끝하나라도 닿았다간 죽여버리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끝끝내 아들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해도 한평생 마음에 새긴 지아비에게 정조를 지키기 위해 거부하던 양어머니는 우리보다 더 망가진 꼴로 옆 감옥에 갇혔다...






어머니!!!!!!!!!!!!!!!!!!!







훈과 현의 괴로운 고함이 그 안을 울렸다.










양어머니는 손을 들어 우리에게 뻗고 싶어했지만 난도질 된 손은 꿈쩍도 않았다. 신경이 끊어진듯이 팔목 아래로 움직이지 못하고 축 늘어진 두 손목을 바라보던 현의 얼굴이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분노와 괴로움으로 일그러졌다.


현의 분노가 용암처럼 솟구치던 그 날, 끊긴 줄 알았던 왕족의 능력이 각성했고 현은 정신을 잃었다.


저를 이용 해 즉위식에 오르려던 외삼촌의 탐욕을 봐주던 현은 즉위식 날 발현된 능력으로 그의 목을 졸랐다. 눈이 부실만큼 밝은 빛이 살갗에 닿자 괴로워하던 외삼촌이 뒤늦게서야 훈과 정귀인을 데리고 협박하려했지만 그보다 현이 더 빨랐다. 밤 사이, 훈을 통해 정귀인을 몰래 빼돌린 뒤 그를 반역죄를 물어 죽일 준비를 다해놓은 것이였다.



아비의 뒤를 따라야 했지만 아비처럼 되기 싫었던 현은, 결국 황제가 되기로 결심했다. 태어난 순간부터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은 저 자리에 있어야 했다. 그게 현의 운명이였다. 현이 내뿜는 능력으로 주위가 차마 서있을 수 없을 만큼 밝은 빛으로 가득했다.








원기 34년, 선대황제가 반역자의 손에 암살 당한 후 27대 황제가 즉위 했다. 그의 이름은 변백현이였다.


























***


백현은 황제가 되자마자 가장 먼저 여주를 찾았다. 잊고 있었는 데 이미 여주가 궁으로 올 나이는 다 찬 상태였고 어머니의 손목 상태를 보자마자 신의의 능력을 가지 그아이가 퍼뜩 떠올랐다. 발현 된 지 얼마 안되어 많은 능력을 쓴 백현에게도 타격이 컸다. 몇배는 예민한 감각이 밤새 뒤척이는 바람에 한숨도 못 자게 만들었고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믿었건만, 알아서 오리라 그리 믿었건만 여주는 자신의 손을 피해 도망갔다. 떠난지 꽤 되었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에 헛웃음을 키며 그 아이를 못 찾으면 그대들의 목숨을 가져갈꺼라는 엄포를 놓았다. 공포에 물든 얼굴로 허둥지둥 뛰어나간 근위병들을 노려봤다.










"그게...도적떼들이 들이닥쳐 닥치는대로 잡아가서 승상나리들께 팔려 갔다ㄱ..."

" 누구라 하더냐. 데려간 그 놈이. "

" 그...그..게... "

" 앞으로 두시간내에 알아내라. 그 자가 누군지. 아니면 나는 니 사정을 봐주지 않겠다. "









현의 차가운 말에 근위대장이 고갤 푹 숙이더니 서둘러 궁을 벗어났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모든 게 다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냥 너무 끔찍한 악몽을 꾼 것이여서 엄마가 이런 나를 부드럽게 타박하며 안아줬으면, 경수 오라버니가 따스하게 웃으면서 다독여줬으면, 아빠가 여전히 나랑 오라버니를 보고 짖궂게 놀리셨으면 좋겠다 싶었다. 눈을 안뜨면 내가 겪은 게 꿈이 될까 억지로 두눈을 꾹 감고 있는 데....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주야..여주야...제발 눈 좀 떠봐..여주야... 이 모든 게 악몽이 아닌 현실임을 절절히 보여주는 경수오라버니의 메마른 목소리가...귀를 괴롭혔다.







" 여주야...제발.. 눈 좀 떠봐.. "





제 볼을 감싸고 눈물을 떨구면서 내뱉을 것 같은 안쓰러운 목소리만이 귀에 닿아와서 여주는 힘겹게 눈을 떴다. 깜깜한 공간 안에 두 손이 결박된 경수 오라버니의 모습이 시야에 가득 찼다. 오라버니... 튕겨지듯 당겨오는 몸을 일으키는 데 오라버니 뿐 아니라 저도 두 손이 옥죄인 상태인 걸 안 여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여기서 나가야 해... "

" ....."

" 너 여기 있으면 무슨 꼴을 당할 지 몰라.. 내가 어떻게든.. "

" 오라버니.. "

"...... "

" 차라리 궁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요. "

"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곳으로 도망쳐 오지 않았을테고...오라버니도 두분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텐데.. "

" 아니..."

" 처음부터 그 사람을 안 만났더라면... "

" 더 좋았을텐데..... "












바스라진 여주의 후회와 독백이 경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


마지막 순간에 결국 보고야 말았다. 자신과 여주를 도망치게 한 아저씨의 마지막을. 그리고 끝끝내 도망가지 못했다. 그들에게서.




다시 눈을 떳을 때, 여주와 자신을 잡아 온 이와 또 다른 이가 거래하는 얘기를 들었다. 계집은 승상나리께 바치고 자신은 어디든 버려질꺼란 얘기를 .


당장 눈 앞에 닥친 자신의 미래보다 여주의 앞으로가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안돼. 여주를 그렇게 둘 순 없다. 너무 소중해서. 너무 좋아해서 자신도 마음을 아끼고 있는 상대였다. 여주의 옆에 있는 게 자신이 아니더라도 이 아이에겐 늘 햇살같은 웃음과 따뜻한 사랑스러움이 가득하길 바랬다. 진붉은 색으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이 나라를 닮은 꽃, 복사꽃처럼.


경수는 칼칼한 목을 신경도 않고 여주를 불렀다. 축 늘어진 여주를 끌어 안고 머릴 넘겨주고 싶었는 데 꽉 묶인 손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조심스레 여주를 불렀다. 여주야..여주야...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해져가는 마음에 더 애타게 불렀는 데...여주가 천천히 눈을 뜨더니 나를 보고 운다. 그만큼 많이 울었는데, 새빨개진 눈을 하고서 괴롭다는 듯 얼굴을 구기고 운다. 주르륵 하고 떨어지는 눈물에 심장이 베이는 것만 같았다.








울지말라는 말이 목 앞에 터억 걸려서 나오질 못할만큼 여주는 아프게 울었다. 보는 사람이 아프게..그렇게 울었다.






































***


대승상의 집에 새로운 계집이 들어왔..






근위대장의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백현은 황룡포를 벗고 도포를 걸쳤다.







카이.






마치 한 풍경처럼 서있던 호위 무사를 불러 흑마를 데려오라 명한 백현의 눈은 곧 달아난 여주를 마주할 생각때문인지 냉랭하게 굳어있었다.






" 나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군. "












백현은 비틀린 입매로 웃으면서 궁을 나섰다. 잃어버린 꽃은 지금 뭘하고 있을 지, 저를 보면 무슨 말을 할지 기대된다는 듯 그 한마디를 중얼거리면서.






























***


" 나으리께서 곱게 곱게 모셔오라 하셨으니 곱게 가시죠. "













날카로운 눈을 가진 여인이 그 말을 하며 고갯짓을 하자 다가선 하인들이 여주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경수는 안된다면서 그 앞을 막아섰지만 두 손이 묶인 상태에다가 많이 다친 상태라 하인이 밀쳐내는 대로 밀려났다. 늙은인간의 욕심으로 사 들여온 계집, 그 계집의 쓰임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경수가 안된다면서 자꾸 막아서자 여인의 눈이 더 세모꼴로 올라가더니 이내 남자 하인이 들고 있던 무언갈로 경수를 내리쳤다.









" 하지마!!! 오라버니!!!! "









여주가 버둥대면서 경수에게 가려 할때였다. 놀린 여주가 빳빳히 굳어버린 틈을 타 하인들이 기어코 그녀를 갇혀 있던 곳에서 밖으로 끌어냈다. 여주의 시야에서 경수가 보이지 않게 그 앞에선 하인이 경수를 상대하는 사이 여인은 여주의 앞으로 가 턱을 거세게 쥐곤 말했다.










" 저 사람이 살아있길 바란다면 협조 하세요. "











여주의 눈에서 분노가 쏟아져 나와 여인에게로 향했다. 퉤. 침을 뱉는 여주의 행동에 여인의 입매가 더 굳어지더니 버릇이 없다면서 턱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더 가했다. 잘 손질된 손톱이 볼을 찔러오자 눈이 따끔함에 절로 감겼다.










" 온순하게 굴어야 오래 사랑받는 다는 걸 오늘 알길 바라겠다. "











여인은 여주를 향해 비웃으면서 속삭였다. 말 잘들으면 예쁨 많이 받을 상이니.


그 속삭임이 악마의 중얼거림과 같아서 여주는 볼을 파고드는 손톱이 아프게 닿아오든 말든 몸부림쳤다. 절대..절대 그렇게는 안될거라면서.


억지로 끌려와서 방에 던져진 여주는 너저분한 겉옷도 벗겨진채로 방안에 갇혔다. 얇은 옷 사이로 방안의 온도가 적당히 따뜻함에도 불구하고 한기가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미친듯이 문을 두드리면서 이거 열으라고 악을 쓰던 와중에 저 멀리서부터 인사를 올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주는 방문에서 멀찍이 떨어져 손에 들 무언가를 찾았지만, 넓은 방에는 이부자리만 깔려있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배게라도 두 손에 꽉 쥐고 벽에 기대 서있는 데...


문이 열리면서 쥐를 닮은 늙은 노인이 들어왔다.























***


" 일단 앉는 게 어떠느냐. "







다정한 척 말을 건네는 대승상을 노려보던 여주가 들은 척도 않고 걸음을 더 뒤로 물렸다.
웃으면서 술을 한번 들이킨 대승상이 재미있다는 듯 입가를 닦아내며 눈을 빛냈다. 산적놈들의 호언장담에 기대를 하고 오진 않았지만 눈 앞의 계집은 예쁘장했다. 자신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굳게 닫힌 방문이 열릴꺼라 믿는 지 슬금슬금 걸음을 옮기면서 저를 노려보는 여주의 모습에 승상은 손을 문지르며 천천히 일어났다. 점점 다가오는 자신에게 베개를 휘두르는 여주를 바라보다 가까이 온 베개를 확 당겼더니 당기는 힘에 끌려 여주가 넘어졌다. 벌떡 일어나서 방문 앞으로 내달리는 여주를 보다가 그도 걸음을 빨리 해 그 어깨를 확 낚아챘을 때였다. 문을 두드리려 손을 뻗는 여주의 앞에서 순식간에 문이 열리고 덕분에 여주가 중심을 잃고 앞으로 와락 넘어졌다.

얼굴이 딱딱한 바닥과 마주칠꺼라 생각했는 데 바람을 머금은 따뜻한 품이 느껴졌다. 게다가 엉겁결에 안긴 자신의 허리를 휙 당겨 더 품에 안아 넣은 이가 피식 웃는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 내 것을 찾으러 왔습니다. 대승상. "


기억속에 바래진 그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


카이만 데리고서 정신없이 달려 승상의 집에 도착한 백현이 문을 걷어차자 짜증스레 문을 열던 하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런 하인을 밀쳐내고 들어서니 구석에서 남자를 때리고 있는 또 다른 하인이 보였다. 대강 턱짓으로 남자 쪽을 가리키니 그림자처럼 붙어있던 카이가 그곳으로 발을 놀렸다.


백현은 성큼 더 안으로 들어서며 자신을 보자마자 파드득 떠는 하인들에게 다가갔다.











" 대승상에게 전해라. 황제가 왔다고. "










벙어리처럼 입민 꿈뻑 대던 하인이 주춤거리면서 달려갔다. 물론, 그 때까지 기다려줄 여유가 없는 백현은 느긋히 그 뒤를 따랐고.



승상이 있는 곳에 가까워질수록 불쾌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실랑이를 하는 목소리 사이에서 여주의 것 같은 목소리가 들리자 그의 눈이 한층 더 가라앉았다. 마침내 방 문 앞에 다다라 하인이 덜덜떨면서 승상을 부르려는 데 그보다 백현이 더 빨랐다. 그는 문을 당겨 열었고 그 덕에 나오려고 앞으로 나오던 여주가 백현의 품에 폭 안겼다.

작은 몸이 흠칫 떨면서 떨어지려 했지만 백현은 단호히 그 허리를 감싸 당기면서 고요히 한마디를 던졌다.






내것을 찾으러 왔다고.






그 말에 승상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건 당연한 말이였다.

























백현이 대승상을 마주하는 사이, 백현에 의해 밖으로 밀려난 여주는 정신없이 달려 경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여주야!!!












여주를 발견한 경수가 먼저 여주에게로 달려왔다. 조심스레 여주의 어깨를 잡고 이리저리 살피는 경수의 모습에 그제야 무서움이 터진 여주가 경수의 품에 와락 안겼다.












" 괜찮아...괜찮아. "










토닥토닥 일정한 간격으로 다정하게 어깨를 두드려주는 경수에게 안겨 여주가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이가 슬쩍 백현이 있는 곳을 응시했다. 그와 동시에
밖으로 나오던 백현의 걸음이 멈추더니 둘을 응시했다.



















자신이 덮어준 도포자락을 걸치고서 어떤이에게 안겨있는 여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