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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 몬스타엑스 강동원 이준혁 엑소
mimingro 전체글ll조회 677l 3

 

 

너와 내가 직선 위에 서 있다.

이 선 밖의 세상은 시끄럽지만

선 위에 선 우리는 고요하기까지 하다.

우리를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들 사이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지만

나는 너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나는 이탈을 선택했다.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니 원수가 따로 없었다. 골이 깨질 듯 아프고 식도가 타는 듯 쓰라렸다. 혀는 딱딱하게 굳어지고 유리 잔을 든 오른 손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마른 안주가 담긴 접시를 내 앞으로 밀어준다. 속 버린다, 먹어라. 고개를 끄덕이고 손에 집히는 안주 몇개를 입에 들이부었다. 쓴 맛이 베어버린 입 안에 달짝지근한 건어물이 걸린다. 쩝쩝이는 소리가 참 궁상맞았다.

 

하얀 카드를 본다. 신랑 이름 정윤호, 신부 이름 ……… 예쁜 사랑을 하려고 합니다. 축복해주세요. 나는 너만 모르는 너의 뻔뻔함이 참 두렵다. 너는 내가 너의 발목을 잡을 용기도 없고 그럴 주제도 못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걸까. 그래서 나를 놀리려는 걸까.

 

은은하게 빛나는 그 종이 재질이 너무나도 싫다. 찢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가식일지라도 하하호호 잘만 웃고 있는 동창들 앞에서 내 불행만 광고하듯, 뒷소문이나 더럽게 날 그런 행동들은 할래야 할 수가 없다.

 

그래. 네 예상대로 난 이깟 종이 하나 시원하게 찢지도 못한다.

 

그게 너무 분해서 자꾸 목을 타고 술이 흘러온다. 마셔도 마셔도 이 세상에 술은 너무나도 많아서 자꾸만 자꾸만 잔이 채워진다. 위에 구멍이라도 났나. 배 부른 걸 모른다.

 

“임마, 이혼한 게 대수냐. ” 

 

아무것도 모르는 한 놈이 위로랍시고 말을 건내온다. 입 안이 텁텁해진다. 그래. 이혼한 건 절대 대수가 아니었다. 그녀와의 사별이 법적으로 완전히 끝났던 그 날 나는 와인과 함께 아껴두었던 영화를 보았다.

 

“해보고 말해.”

 

하지만 굳이 부정하지는 않았다. 위에 구멍나듯 술을 들이키기에는 참 좋은 구실이었다.

 

“그래도…… 윤호랑 너 맨날 같이 다녔잖아. 사내새끼들이 징그럽게…”

“그랬지, 뭐. 근데. 그래서 어쩌라고.”

“어쩌긴 뭘 어째. 윤호 결혼식, 그거. 갈거지?”

 

놈이 어깨를 툭치며 은근하게 물어본다. 나는 말 대신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조금 웃어주기도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네 결혼식에……이거야말로 막장 코미디가 아니던가. 아니, 삼류보다 더 하류인 퀴어영화. 영상미도, 내용도, 알맹이도 뭣도 없는 그런 쓰레기 필름. 너와 내가 그런 쓰레기 필름의 주인공 격이 되어버렸는데…… 그 거지같은 시나리오를 이어갈 이유가 있을까.

 

 

“배 아파서 안가.”

“하여간, 심창민……”

“말이나 잘 전해줘. 잘 살라고.”

 

 

그냥 여기까지가 적당하다. 진심이고, 진심인 앙심도 조금 있는.

 

 

앉은 상태로 목을 움직이니 뚜둑하고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몇번 더 크게 고개를 돌리자 이음새가 얼얼한 기분이다. 어깨도 몇번 두드려가면서 다시 술병을 손에 잡았다. 그리고 잔에 채웠다. 투명하고 또 투명하다. 오늘은 이 곳에서 밤을 새울 작정이다.

 

아아. 조금 슬프다.

 

이번에는 견과류 몇 알을 집어먹고 있는데 다시 청접장에 시선이 간다. 요즘 청접장은 사진도 붙여져나오네. 참 낮뜨겁다. 웨딩사진인가. 화보가 따로 없는 그 사진을 한참이나 응시했다. 여자도 예뻤다. 너에게 잘 어울렸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가 얼마나 구질구질 해보일 지 알 것 같다. 근심 걱정 없이, 유명했던 피로회복제 광고 표어처럼 마냥 환하게만 웃고 있는 너를 보며 분노 그 이상의 것이 마음을 짓누른다. 아마 난 물기를 머금은 종이처럼 쭈글쭈글하게 울상을 짓고 잇을 것이다.

 

그나저나 너, 정말 환하게 웃는구나. 얼마만에 보는 네 웃음일까. 여자가 입은 하얀 드레스보다 네 웃음이 더 눈부시다. 

 

그래. 넌, 어렸을 때는 곧 잘 이렇게 환하게 웃었다.

 

너와 처음 만났던 날, 그 날은 고등학교 입학식이었다. 봄이라는게 무색할만큼 바람은 칼처럼 매섭기만 했다. 나는 입학생 대표로 조례를 읊었고 너는 맨 앞줄에서 서 있었다. 그러면서도 너는 고개를 깜빡거리며 선 채로 졸고 있었는데 그 괘씸한 모습에 나는 마이크를 든 채로 네 이름을 불렀다. 거기, 1행 12열 학생. 잠에서 좀 깨세요. 내 말대로 잠에서 깬 너는 나를 째려보았고 나는 그 째릿한 시선에 씨익 웃으며 응답했다.

 

우리는 다른 반이 되었지만 우연이 짙어서, 혹은 운명보단 약한 그 무엇이 너무나도 강해서 복도에서든가 운동장에서든가 몇번씩이나 마주쳤다. 그럴때마다 너는 나를 사이코라고 불러댔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얼마지나지않아 사이코라는 호칭은 내 이름으로 변했고 시간이 더 지나자 창돌이라는 낮간지러운 별명으로 바뀌기까지 했다.

 

계집애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너와 친해져서, 붙어다니며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 받을 때 즈음에 너는 멍한 얼굴로 이런 질문을 해왔다. 누나 있냐, 동생은 있냐. 사촌누나는 있냐. 있다고 하면 너는 매번 같은 질문을 덧붙였다. 너 닮았냐?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울상이 되었다.

 

 

그때 빼고는, 또 그 날 빼고는 넌 늘 웃고 있었다. 호구처럼.

사실은 내가 너보다 더 한 호구인데.

 

 

“야. 윤호한테 문자왔어.”

 

이번에는 마주앉은 놈이 나를 흘깃 쳐다보며 말한다. 왜 다들 나를 못 갈궈서 안달인걸까.

 

“어쩌라고?”

“지금 여기 근처라는데.”

“……그래서 뭐.”

“너 있냐고 물어보는데?”

 

 

새삼스럽게 어쩌라는건지 모르겠다. 있다고 해. 그런데 입 밖으로 그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멀쩡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바닥까지 내려간 속이 조금이라도 시원해 질 줄 알았지만 그대로다.

 

나 없다고 해.

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은 너와 마주치기 싫다. 이 쓰잘데기없는 동창회가 열릴 때마다 너의 출석을 묻던 내 수고가 헛짓이 되는 것도 싫다. 정윤호도 온다고? 야, 근데 생각해보니 나 요새 좀 속이…… 아니, 우리 엄마가 속이 좀 안좋아…… 아니, 뭐. 그렇게 아프신 건 아니고 입원정도? 근데 간호를 내가 해줘야하는 상황? 그 정도? 아, 미안하네. 가고 싶었는데. 그래, 내가 다음에는 꼭 갈게. 미안하다.

 

그렇게 전화를 끊으면 눈물이 주르륵 나왔다. 제어장치가 없었다.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모르는 전화는 받지도 않았다. 등록된 전화번호도 상대방이 말을 하기 전까지, 먼저 말을 걸지않았다. 혹시라도 너일까봐.

그 염병날 일을 너와 헤어지고나서부터 해왔다.

 

아랫 입술이 움찔거리며 떨린다. 그냥 나 없다고 해. 그리고 오지도 말라고 해.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그 말도 차마 할 수가 없다. 있으나마나한 입은 그냥 금붕어처럼 뻥긋거린다.

 

 

목 끝까지, 턱 밑까지 차오른 그 어떤 게 있었다면 시원하게 내뱉기라도 할텐데. 속 안에만 응어리져서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할 말이 없다.

 

 

“아, 지금 바로 앞이래.”

 

 

어차피 달라질 것도 없다.

때가 온 것 같다.

 

 

“……야, 윤호 온다니까?”

“……”

“이 참에 잘 됐어. 애도 아니고 이제 화해할 때도 됐잖아?”

“뭐?”

“뭐 때문에 싸운지 몰라도, 니네 그냥 이제 좀 그만해라. 아니, 심창민. 좀 그냥 네가 봐줘라.”

 

봐주고 말고 할 게 어딨어. 그냥 헤어진건데. 그냥 내가 정윤호 버린건데.

 

최대한 붙잡고 있던 술 기운이 깬다. 정신이 그 어느때보다 또렷하다. 곧 있으면 딸랑이는 종소리와 함께 네가 등장할거고 너는 이 테이블에 앉을거고 어줍잖은 인사를 하면서 나에게…… 말을 걸겠지.

 

 

아, 정말 싫다.

너 보는거 무섭다.

 

 

그리고 소리가 난다. 유리문이 힘차게 열어진다. 네가 보였다.

 

 

 

“이야, 새신랑 납셨네.”

“요새 재미 좋다? 안색이 좋아졌네, 이 새끼.”

“식이 다음주 토요일이었나? 일단 좀 앉아.”

 

너의 등장을 반기며 소란스러워지는 동창들에게 너는 입꼬리를 들어 웃어보인다. 나에게는 시선조차 없다. 괜히 걱정한걸까. 나는, 네가 나한테 가식이든 뭐든 잘 지내냐고 인사 한마디 할 줄 알았어. 근데 날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가 있는 테이블 쪽으로 걸어온다. 나에게 부리는 심보인걸까.

 

검은 정장을 입은 너는 예전보다 더 멋있어졌다. 풋내기가 아닌 어엿한 남자가 되었다. 너도, 나도. 아, 계속해서 내가 있는 테이블 쪽으로 온다.

 

 

“심창민, 나와.”

 

 

잘 지내냐고……

인사할 줄 알았는데.

멱살을 잡는다.

 

 

 

 

사정없이 구겨진 옷 보다도. 목이 조여져 숨이 막힌 것 보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눈이 신경쓰인다. 물런 너에게는 안중에도 없다.

 

나를 이끌고 자리에서 벗어난다.

 

“야, 야! 정윤호!”

“쟤내 진짜 애도 아니고……”

 

말리는 손길도 혀를 차는 소리도 나에게는 비수처럼 박히는데 너에게는 물방울같이 가볍다. 너는 끝끝내 나를 이끌고 밖으로 데려간다.

 

 

밖은 밤이었다.

어두웠고, 네가 몰아쉬는 숨이 하얗게 보였다. 꽤 추운 날이다.

 

너는 나를 밀치듯 세워놓았다. 그리고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서 내 셔츠를 잡은 손에는 힘이 풀렸다. 하지만 나를 보는 네 눈은 핏줄이 터질 것 처럼 강렬하다. 나는 쓰라린 목을 매만질 새도 없이 그 시선을 받아내야만 했다. 네 위에는 검은 밤하늘이 있었는데 네 눈은 그 보다도 너 검었다. 너무 짙어서 읽어낼수도 없는 감정들이 떠다녔다.

 

괴로움, 고통, 비난, 저주, 증오 …‥

 

드디어 벌을 받을 때가 왔나보다. 언젠가는 예상은 했지만, 최대한 늦게 맞고 싶었던 그 매가 이제서야 시작되나보다.

나에게 꽂히는 그 무거운 감정들을 보며 나는 한숨을 쉰다.

무릎을 꿇으려고 한다.

이 순간을 그린 숱한 상상에서 나온, 내 나름의 순서였다. 하지만 너는 나를 일으켜세운다.

 

 

너에게 진 죄가 너무나도 커서,

너는 사죄조차 받아주질 않는다.

 

네가 마른 세수를 한다. 믿기지않는 다는 듯, 내 턱을 더듬는 손길이…… 떨린다. 처량맞다.

 

 

“……야.”

 

예전에도 그랬지만, 너는 웃고 있지 않으면 특유의 냉철한 분위기가 있었다. 너는 지금 웃고있지않았다. 그래서 그 분위기가 너를, 나를. 그리고 주변을 감쌌다. 그런 주제에 너는 물기를 가득 머금었고 불안한 목소리를 낸다.

 

“……”

“8년동안 너 뭐했어.”

“……”

“왜 사람 말려죽여.”

“……”

“네가 그렇게 잘났냐?”

“……”

“아니면 내가……”

 

손목을 잡아온다. 있으나 마나한 양심이 그래도 있긴 있나본지 난 차마 뿌리치지는 못한다. 너는 힘을 준다. 뼈가 아리다.

 

 

“야. 손 좀 놓고……”

“…그렇게 싫었냐?”

 

 

급기야 너는 눈물을 흘린다.

 

 

“……미안하다.”

“말해봐. 내가, 내가 그렇게 싫었어?”

“아닌 거 알잖아.”

“아니면 왜 그랬어. 왜 날 떠났어. 왜, 아무런 연락도…… 안되고, 왜. 아무것도 안돼. 왜……”

“……”

 

세공된 강철처럼 틈 하나 없을 것 네가, 풋풋함을 잃고 어른이 다 되어버린 네가.

다리에 힘을 잃고 휘청거린다. 내 죄는 너를 좀먹어버렸는데 그런데도 너는 나한테 무릎을 꿇을 것 같다. 나는 예전에도 컸고 지금도 큰 네 몸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데. 나는 네가 나에게 했던 것 처럼 일으켜주지 못하는데.

 

 

“왜,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미안하지만 변명거리는, 아니. 변명이 아닌 사실은 굉장히 많다.

 

 

 

19살이 아닌, 27살의 내가 이제서야 대답한다.

 

 

나는 어리지않았고 어리석었다.

 

19살…… 문득 내가 어리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나를 사랑스럽게 보는 너도 어려보였고, 이 모든 게 장난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장난에 맞춰주는 건 내가 어려서라고.

 

그냥 너와 내가 어려서, 그래서 너와 입을 맞추고 밤을 보내는거라고 나 혼자 그렇게 믿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랑이 있지만 내가 너에게 꿈꾸는 사랑은 어른의 전유물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지금 풋내나는 놀이를 하고 있다고. 너와 나는 애틋함이라는 게 없다고. 우리는 사랑이 아니라고.

 

애틋한 마음이 다 무엇일까. 그게 사랑의 정의인걸까. 아니. 사랑은 그 자체로 사랑이었다. 나는 어리석었기에 알 수 없었다. 네 얼굴을 보면 작은 날벌레가 가슴 속을 휘젓는 것처럼, 그렇게 간지러웠다. 네가 내 이름을 부를 때면 괜히 앞머리를 매만졌다. 창가에 기대 자고 있는 너를 보며  혹여라도 네가 감기라도 걸릴까봐 마음을 졸이던 그 모든게…… 사실은 애틋하기만 했었는데.

 

그래도 너를 보면 행복했기에 그만 둘 마음은 없었다. 황홀한 그 마음에 현실이 비집어오기 전까지는.

 

두려웠다.

 

나는 이 곳에서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이 땅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삶은 상상해본 적도, 바라본 적도 없다고. 하지만 이 땅에서 너와 함께 살아가기는… 너무나도 두렵다고.

 

우리는 함께했던 3년 동안 서로만 아는 관계였다. 아무에게도 꺼내지 못했고 혹여라도 누군가가 너와 나의 비밀을 알까봐 매번 가슴을 졸였다. 눈만 바라봐도 웃음이 나는 우리는 손 한번 함부로 잡지 못했고 사랑한다는 말 조차도 조용히 소근거려야만 했다.

 

왜 남들의 눈을 피해야할까. 그것은 죄라서 그렇다. 어린 나는 생각했다. 어린 나는 너를 사랑하면서도 그게 죄라고 믿었다. 너무나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 죄를 묵인할 만큼, 나는 너를 사랑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미래의 내 옆에는 네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너를 버렸다. 어차피 끝을 알고 시작한 게 아니냐고, 나 스스로는 썩 괜찮은 척, 별 일 아닌 척 너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하자.

그게 무슨소리야?

그냥…… 친구하자고.

뭐?

솔직히 우리 많이 버텼는데. 이제 너도 나도 대학가고, 취업하고…… 또 결혼도 해야지.

그게, 지금. 무슨소리야?

 

 

당혹감으로 물드는 네 얼굴을 보며 묘한 쾌감까지 일었다. 아, 넌 날 이렇게 좋아하는구나. 이렇게 온 몸으로 나와의 이별을 거부하고 있구나. 나, 이렇게 너한테 사랑받고 있구나.

 

 

어차피 언젠가는 꼭 해야할 말이잖아. 아무튼…… 너도 잘 알아들을거라고 생각하고, 나 너무 원망하지마. 이제 너도 나도 애는 아니니까.

……

어차피 끝이 보였잖아. 설마 영원할거라고 생각해?

……

너도 그렇고 나도 첫째인데 토끼같은 자식은 몰라도 여우같은 마누라는……

 

너는 그때도 울었다.

나는 봇물처럼 터진 말을 멈추고, 너의 어깨를 토닥였다.

 

뭐가 그리도 잘났는지. 너에게 조언까지 했다.

 

 

다 괜찮아져. 다 잊을 수 있을거야.

 

 

그래. 나 주제에.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혀 괜찮지않고, 그저 생생하기만 한 내가 너에게 조언을 했다. 너는 결국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내 말을 인정하는 듯이 울기만 하는 너를 보고 난 안쓰러운 얼굴을 하며 말을 이었다. 윤호야, 괜찮아. 너도 나처럼 괜찮아질거야.

 

그래서 너도 나처럼 괜찮지 않니.

내가 지금 그러거든.

너도 나처럼, 정말 그래?

 

 

너는 그때도 지금도 이렇게나 마음이 여렸었다.

 

 

 

두려움에, 오만에, 그렇게 너를 버린 나는 대학에 입학했고 취업을 하고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결국 이혼은 했지만…… 그런대로 내가 그렇게 바라왔던 만족할 만한 삶 근처까지 따라갔다. 애만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게도 아내는 불임이었다. 난 그것을 보며 또 멍청하게, 네 저주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댓가라고 생각했다.

 

 

 

넌 나에게 엽서를 보냈다. 너와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한달 뒤 부터 하루에 한번씩 엽서가 왔다. 나는 네가 나를 협박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너와 내가 입을 맞추고 밤을 보내던 그 시간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협박하는 거라고. 그런데 그 엽서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었다. 보내는 이도 없고, 그저 받는 사람의 주소만 적혀있었다. 뒷면에는 사진이 있었는데, 예쁜 꽃, 강아지, 하늘, 머그잔…… 네가 좋아하던 것들이었다.

 

 

 

넌 나에게 연락조차 하지못했다. 그래서 기뻤었다. 왜 그랬던 걸까. 너는 왜 그랬고, 나는 왜 그랬을까. 

시간은 흘러서 네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넌 내 앞에 단 한번도 나타나지않았다.

바뀐 내 전화번호는 물어물어 금방이라도 알 수 있을텐데, 어쩌면 이미 내 번호가 네 휴대폰에 등록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너는 단 한번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저 간청하듯 누군가를 대신해 말을 걸어왔다.

 

창민아, 만나자.

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

너와 할얘기가 있다.

반드시 할 얘기가 있다.

 

 

제발 만나줘.

 

난 그것마저도 외면했다.

 

네가 그럴수록 난 내 죄를 확인해갔다. 그건 고통이였다. 

 

 

 

그래. 윤호야.

미안하다.

 

 

나는 네 앞에서 울 수도 없어.

 

 

 

 

 

“윤호야.”

“……”

“대답해줘.”

“……”

“내가 네 결혼식 갔으면 좋겠니.”

“……”

“네가 가라고 하면 갈게.”

“……오고 싶어?”

“축복해주고 싶어.”

 

 

 

 

그래. 축복해주고싶어. 내 마음 중 어딘가에 있는 진심 중 하나야. 그저 하나에 불과하지만…… 

 

 

“……와서 축복해줘. 창민아.”

 

 

용서를 했다. 너는.

 

 

 

너는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을 닦는다. 그리고 웃어보인다. 예전의 너보다도 더, 풋풋했던 너보다도 더. 진회색의 양복을 걸치고 사회의 빌딩숲을 지나가는 너는 아이처럼 웃는다. 날카로운 눈매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정말로 용서한거니.

8년을.

그 애닳음을.

 

 

 

 

 

 

미안하다. 윤호야.

정말 진심으로 미안해.

 

 

 

 

 

 

 

 

 

너와 내가 직선 위에 서 있다.

이 선 밖의 세상은 시끄럽지만

선 위에 선 우리는 고요하기까지 하다.

우리를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들 사이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지만

나는 너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나는 이탈을 선택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epilogue

 

 

 

 

 

윤호에게.

 

 

결혼을 하고 네 소식을 들었어. 자살이라니. 다시는 그런 소식 듣지 않았으면 좋겠어. 뭐 어쨌든 네가 알다시피 난 이혼했어. 네 소식 듣고 알았거든. 내 어리석음을, 오만을. 깨닫는게 참 늦었어. 아직도 내가 너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는 것 보다 인정하는 게 더 힘들었지만 아무튼. 뭐. 이제는 오지않는 엽서를 그리며 하루에도 우편함을 몇번씩 열어보니까.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더라.

 

난 나 하나 편해보겠다고 나도 아프고 너도 아프게 해버렸는데. 사실은 하나도 편하지않아. 결혼은 해서 예쁜 와이프는 얻었는데, 애는 못 얻는다네. 아내가 불임이래. 그래, 그걸 듣고 조금 후회했었어. 어차피 아이를 가질 수 없다면, 너였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는 했어. 이런 내가 미쳤다고 생각해? 비난해? 그래. 나도 그래. 그냥, 미쳤다고. 미쳤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어.

 

도대체 내가 널 버리고 선택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귀신에 홀렸다고 할 수 밖에……

내 어리석음은 나로서도 설명이 안된다.

 

근데 말이야……

지금 네 앞에서 간절히 하고싶은 말이 있다. 턱 밑까지, 아니 당장 입술 안쪽에 튀어나갈 것 처럼 자리잡은 말들이 있다.

나 말이야. 시간을 돌리고 싶어.

 

어리면 어린 대로, 마음 가는대로. 그냥 행복한 대로 너랑 있고 싶었던 그때로 돌아가서 그냥 그대로 있고싶어.

지금도 영원은 믿지 않지만 너라면 그 비슷하게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해.

다 부질 없는데.

 

8년이란 시간 동안 난 그저 인정한 것 밖에는 없는데 너는 많이 변했더라.

그게 내 죄책감을 조금 덜어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날 아프게 하기도 해.

8년 동안 넌 다른 사람까지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까지 하다니.

네 와이프 몇 년 전 결혼식장에 딱 한번 본 게 다인데도 아직도 얼굴이 기억나. 정말 예쁘더라.

아들인지 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임신 정말 축하한다고 전해줘.

 

뭐. 그래서 말을 못했어. 난 네가 사랑이라고. 넌 내가 그저 아픈 추억일 뿐일텐데. 

그래서 영원히 말 할 생각이 없어.

하지만 여기서는 말하고 싶다.

그냥 적어보기라도 하고 싶어.

사랑한다. 윤호야.

아직도 너무 사랑한다.

 

너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

내가 선택했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을 잘 할수 있을거야.

 

행복해.

나로 아팠던 네 8년, 그리고 앞으로의 내 몫까지.

 

너를 진심으로 축복하는 창민이가.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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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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