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
: 11
조심스럽게 빨간 대문을 두드렸더니 앞지마를 멘 박지민이 문을 열어준다. 일찍 왔네? 내게 말을 건네는 박지민을 따라 집에 들어서니 아무도 없는 건지 작은 인기척조차 들리지 않는다.
“ 아, 엄마는 없어 ”
“ .. ”
“ 치료받으러 갔거든 ”
저번달 월급 받아서, 이제야 치료 시작했어. 말을 끝으로 곧장 부엌으로 향한 박지민은 분주하게 몸을 움직인다. 거실에 덩그러니 서 있던 나는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아 앉는다. 티브이에는 이터널 션샤인이 나오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꽤 집중하고 있는데 그런 나를 힐끔 보던 박지민이 말했다.
“ 나 사실 이터널 션샤인이 내가 본 첫 영화다? ”
“ 응? ”
“ 우연히 구한 DVD가 이터널 션샤인이라, 그래서 보게 된 거야 ”
박지민은 멋쩍게 한번 웃는다.
“ 그래도 난 내 첫 영화와 마지막 영화가 이터널 션샤인이라 좋아 ”
“ 응. 좋은 영화니까 ”
“ 네가 이터널 션샤인을 보고 나한테 좋아하는 장면을 말해줄 때, 진짜 감동이었는데 ”
이터널 션샤인은 내게 영화가 사람에게 있어 얼마나 큰 감정을 전해주는 건지 경험하게 해준 좋은 영화였기에 꽤 쓸쓸하게 유일하게 본 영화라 말한 그 애였지만 하나도 불쌍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애의 말처럼 처음과 마지막의 영화가 이터널 션샤인이라는 게 멋져 보이기까지 했다. 곧이어 내 앞에 놓인 여러 개의 음식들은 겉보기에도 훌륭했다. 열심히 공부하던 것들이 모두 담겨있는 것 같아 한입 먹기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가 먹어도 돼? 터무니없는 내 물음에 박지민은 웃으며 물론이지, 다 니꺼야. 라 답했다. 꽤 감동한 나는 잔뜩 기대하고선 음식을 입에 넣었다.
“ 아, 맛있다 ”
“ 정말? ”
“ 응. 크리스마스가 녹아있는 것 같애 ”
과장되었지만, 진심이었다.
“ 그게 뭐야 ㅋㅋㅋㅋㅋ ”
“ 너 소질 있는 것 같아 ”
격한 내 반응에 박지민은 뿌듯하게 웃어 보인다.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한참이나 보던 박지민도 거들었기에 음식은 그릇이 깨끗할 정도로 싹싹 비워졌다. 맛있게 먹었어, 설거지는 내가 할게. 두 팔을 걷고 나서는 나를 말리던 박지민도 기어코 하겠노라는 나의 의지에 꺾여 결국 거실에서 쉬기로 했다. 달그락, 달그락. 고요히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와 이터널 션샤인 대사만 들린다.
“ Please, let me keep this memory, just this moment ”
내가 이토록 따스한 크리스마스를 보낸 적이 있었던가. 저의 집에서도 잘 안 하는 설거지를 남의 집에서 하더라도, 나는 행복하다.
다했어. 내 목소리를 못 들은 것인지 거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의아한 마음에 부엌을 서둘러 정리하고선 거실에 나가보니 언제부터 인지 테이블에 옆으로 엎드려 자는 박지민이 보였다. 새근새근, 자세히 들으니 그 숨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많이 피곤했구나. 하긴, 박지민이 내게 만들어준 요리들은 꽤 양이 많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주변을 살펴보다 담요를 찾아 박지민에게 덮어주고서는 그 옆에 똑같이 앉아 옆으로 엎드렸다. 교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엎드려서 서로 마주 보는 모양이 되어 있다. 세상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는 그 애와, 그런 그 애를 바라보고 있는 나. 속눈썹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게 신기해서 무심코 손을 뻗었으나 금방 정신을 차리곤 접는다. 그러다 눈이 마주 .. 마주친다 ?!
“ 자는 거 아니었어? ”
“ 응 ”
뒤로 박지민은 조용히 나를 본다.
“ 오늘 와줘서 고마워 ”
“ 나야말로 ”
행복했어, 너무. 닿지 않을 내 진심.
“ 메리 크리스마스 김여주 ”
“ 응 박지민도 ”
어쩌면, 정말 어쩌면 나는 이렇게 살포시 웃는 너를
“ 예전에 내가 행복이 뭐냐고 물었었잖아 ”
“ 응 ”
조근 조근 속삭이듯 말하는 너를
“ 조금 알 것 같아 ”
그런, 너를
“ 행복이란건, 따뜻한 거구나 ”
내 모든 걸 바쳐서라도 더 큰 행복을 안겨주고 싶은 너를,
좋아하는게 아닐까.
눈치 없는 심장이 큰소리를 내며 쿵쿵 뛴다.
“ 박지민 ”
저의 말에 이어 제 이름을 부르는 나를 끔뻑거리는 눈으로 보는 너
“ 내게 손내밀어 줘서 ”
그런 너를 보는 나
“ 고마워 ”
내 말을 들은 박지민은 조금 뜸들이다 입을 뗀다.
“ 그날 유독 네가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
“ .. ”
“ 그런 너를 보니까 내 본 모습을 들킨 것 같아 겁이 났어 ”
“ .. ”
“ 덜컥, 네가 죽으면 어쩌지? 생각에 무섭고 ”
너는 나긋나긋하면서도 꽤 단호히 말한다
“ 그런 것들이 나를 보는 것 같다는 .. 그런 하찮고 이기적인 마음이었어 ”
“ .. ”
“ 그러니까 난 네가 생각하는 좋은 애가 아닐지도 몰라 ”
“ .. ”
“ 근데 웃긴 게 뭐냐면, 이런 나를 알게 돼서 네가 떠나갈까 봐 걱정돼 ”
“ .. ”
“ 나는 정말 .. 널 구해주기 위해 다가간, 그런 좋은 애가 아닌데 ”
“ .. ”
“ 사실 기댈 사람이 필요했거든 나 .. 점점 니가 나한테 .. 어 ”
숨죽여 눈시울을 붉히는 박지민의 눈을 살포시 내 손으로 가린다.
“ 괜찮아 ”
“ .. ”
“ 그런 건 상관없어 ”
“ .. ”
“ 네가 어디에 있던 내가 ”
“ .. ”
“ 내가 찾아낼게, 구해줄게 ”
이기적인 마음으로 내민 손을 불순한 마음으로 잡은 나니까, 그러니까 그런 건 더이상 상관없어.
그러니 네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이기적인 마음으로 네게 손을 내밀게
너는 어떤 마음이든지 상관없으니 언제든 그 손을 잡아
“ 응 ”
작게 대답하는 박지민의 미처 내 손으로 다 가리지 못한 뺨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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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
다름 아니라, 오늘은 독자 분들의 암호닉을 받는 날 ! 로 정했습니다 꺄
사실 암호닉 처음 신청 받는 거라 긴장되고, 이렇게 하는게 맞는가 싶지만 .. ?
단 한분이라도 좋으니 제 글이 마음에 드신다면, 언제든 찾아주실 예정이라면 댓글에 신청해주세요
그 암호닉이 헛되이지 않게 매번 기억하고, 읽어드릴게요 !
아 참참 , 깊은 구석까지 보여주기 시작한 여주와 짐니가 보이시나요 .. 헤
그리고 피로는 .. 조금 더 재정비의 시간을 갖고 다시 찾아뵐게요 !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