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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유 전체글ll조회 1383l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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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모임 시간, 공지된 교실에 들어선 나는 구남친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 학교 정말 외모지상주의라곤 없는 곳이구나. 홍보대사라고 모인 애들 중에 어째 튀는 애가 없었다. 기대감에 전전긍긍 거울을 들여보다 와서 그런지 더 허탈했다. 주머니에서 틴트를 고르던 손을 고쳐 립밤을 꺼냈다.


- 어, 나도 립밤 빌려주라. 성이름?

불쑥 나타난 얼굴이 내 학생증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불쑥 나타난 잘생긴 얼굴이.
뭐가 신난 건지 빛나는 눈을 보자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포기는 아직 이른 거 같다고.




 
초면에 여자애한테 립밤을 빌려달라는 얘의 정체는,

- 아 끼 작작 부리고 다녀.

나재민. 통칭 어장남이었다.

이 어장남이란 별명은 알고 보니 거의 공식이었는데, 이유는 나재민에게 여자친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학교에. 여친은 다른 데 두고 어장 친다 이거지. 상습적이라 친한 애들은 익숙한 듯했다.

- 미안. 얘가 원래 좀 이래.

그렇다 해도 다른 애한테 이런 말 듣는 건 짜증난다. 지가 뭔데 대신 사과냐고. 속으로 ‘어쩌라고 ㅎㅎ’ 하며 나재민에게 립밤을 내밀었다. 일단 친해져 둬야 한다. 잘생겼으니까.

- 아냐. 써도 돼.
- 이름아 고마워~

역시. 보기 좋다.





나재민을 알게 된 건 수확이었다. 여기서 본 애들 중에 이렇게 꽂히는 얼굴은 없었다. 나재민을 알고부터는 내가 왜 쟤를 두고 얘를? 하는 심정이었으니까. 남자친구가 있을 때는 다른 애들 얼굴은 그냥 너그럽게 보았고, 깨지고 한 명씩 진지하게 뜯어보니 다 그보다 못한 거 같아 힘이 빠졌다. 추억보정 때문인진 몰라도 날 설레게 할 인물이 없었단 말이다. 나재민을 보기 전까진.


아참. 나재민은 나랑 같은 1학년이었다. 그렇다면야 여친 있건 말건 더 상관없다. 나도 그렇게 사귀고 깨졌으니까. 어장남이라는 건 오히려 가벼운 맘으로 생각하면 친해지기 쉽다는 뜻이다. 우리 반 교실을 한 번 둘러보자. 순정을 구할 얼굴이 저런 수준이라면 차라리 그놈의 어장을 당해도 나재민이 나았다.

나재민이 뿌리는 잘생긴 다정은 그만큼 넉넉했다. 아무리 과장이고 농담이래도 그렇지 별명이 어장남이려면 하는 짓이 보통일 수 없었다. 나재민과 한 프레임에 담겨본 애들이라면 한 명도 안 빼놓고 제일 친한 남자애로 나재민을 떠올릴 거다. 차마 지우지는 못하고 비공개로 돌려둔 게시글과 사진도 나재민의 존재에 힘입어 벌써 3차 삭제를 마쳤다. 



이제 꽃이 피고 있었다. 구남친한테도 여자친구가 생긴 모양이었다. 자존심 상해서 친구도 못 끊고 있다가 못 볼 걸 봤더니 뒤통수가 얼얼했다. 나도 나재민과 꽤 친해지기는 했지만 일대일 썸은 아니었다. 버티는 거 괜찮을 줄 알았다. 실제로 괜찮았고. 근데 걔한테 여친이 생겼다니 조금 찝찝할 뿐이던 핑크빛 풍경이 사나워 보였다. 무심코 창밖을 내다봤다간 데미지가 상당했다. 

그 어장이란 데서 미래가 막연한 애정을 받아먹는 건 평화로웠다. 근데 꽃을 보면 맞다, 나 지금 얘가 깨지길 기다리는 거지? 하고 내 상황을 정확히 깨닫게 되는 거다. 그래 그렇게 버텨서 나재민이 솔로가 되면? 그때 벌어질 눈치게임은?


텁텁한 날이 벌써 며칠째였다. 화면 속의 재수 없는 얼굴은 속 좋게 히죽 웃고 있었다. 그냥 다 탈퇴해? 이런 찌질한 후퇴가 내 일이 될 줄은 몰랐다. 딱 그러고 있을 때 나재민에게 친구 신청이 왔다. 기분 묘했다. 그러고 카톡까지.

[ 이름( • ̀ω•́ ) 나 친신 걸었당 빨리 받아줭( •◡-)✧˖°♡ ]

잠시 나재민의 카톡 프사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은 나는, 아예 인스타 팔로잉을 걸었다.

[ 인스타 받으면 받아주지롱 ]

할 수 있다, 존버.





지우는 알고 보니 웬 귀인이었다. 나재민이 SNS를 다 비공개로 해둬서 전엔 몰랐는데, 나재민과 ‘함께 아는 친구’에 지우가 있었던 거다. 이거 대놓고 말해도 되나 원래는 이미지 걱정에 입을 좀 더 닫고 있으려 했는데, 주말 내내 나재민 페북이며 인스타를 파도타기 하다 보니 어디에라도 말하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특히 댓글도 없이 태그로만 존재하는 여친이 너무 궁금했다.


- 지우야 나재민 알아?
- 왜? 중학교 같이 나왔어.
- ... 걔 여친도 알아?
- 응...? 알긴 아는데... 관심 있어?
- 응.
- 표정 왜 이렇게 비장해...

정곡을 찔렸다고 하나. 또 한 번 깨달음의 현타가 왔다. 지우의 당황스러운 표정은 내가 뭘 하는 건지 단박에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 나 진지해.
- 아이고... 어떻게 할 건 아니지?
- 그런 건 못 하지...
- 걔 여친... 그냥 귀여워. 천천히 생각해. 여자친구 있으니까. 근데 어떻게 알아?
- 홍보단. 너 나재민이랑 친해?
- 아니? 그냥 CA...

그래 일단 여친도 있고. 지우 말대로 천천히 생각해야지 별 수 없었다. 
아 적응 안 된다. 나재민에겐 여친이 있는데 나에겐 남친이 없다. 


- 성이름 어딨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나를 찾는 소리에 보니 문가에 나재민이 서 있었다. 귀여운 애랑 사귄다는...

- 이름아! 나 사회책 빌려주라. 어, 내 친구들끼리 친구네? 지우 잘 지냈어?
- 아... 안녕..

방금 지우는 분명히 안 친하댔는데. 그냥 인사도 아니고 다정하게 친구란다. 말 그대로 동공에서 지진이 이는 지우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나재민은 이래서 안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재민에겐 가까운 사람일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 나재민 깨졌대.

뎅- 뎅- 뎅-. 
왔어요 왔어. 그날이 왔어. 별것도 없던 인스타 피드를 싹 밀어버린 게 의심스러워서 어제 지우에게 알아봐달라고 한 참이었다. 분명 기다리던 일인데 또 아니기도 했다. 무서웠다.

- 진짜 깨진 거야?
- 응.

여자친구 있단 것도 괜찮았던 건 이래서였나? 차라리 속 편하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꼬셔야’ 하는구나. 뭐를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경쟁자가 아무리 많아도 당장 사귀자 할 수는 없잖아. 아니 애초에 그런 건 절대 못한다. 아, 누굴 좋아하는 것도 잘해야 한다니. 이제 와선 쓸데없지만 내가 전 남자친구랑 오래 사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나 어떡해?
- 어..... 너도 책 빌려달라고 해봐.
- 뭐?


듣자마자는 말한 지우도 나도 그냥 웃었는데. 더 좋은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서 결국 발을 옮겼다. 나재민은 들어가자마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문 바로 앞에 앉아있었거든. 다행히도 혼자. 나재민이 깨졌단 건 다들 얼마나 알까?


- 성이름~ 나 보러 왔어?
- 응... 나 책 좀 빌려줘.
- 어떤 거?
- 그거, 영어책.
- 이거..?
- 아.

아. 망했다. 영어는 책이 다르잖아. 
나재민은 아무 반응도 없이 그냥 일어나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내 등에 손을 얹고 날 데리고 나왔다. 그러곤 또 아무렇지 않게 날 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 매점 갈래?

왜 더 안 물어봐... 나 다 들킨 거야?





고백을 안 했는데도 고백을 한 기분. 무슨 반응이 돌아올지 몰라 두근거렸다. 
깨진 게 정확히 언제지? 별명이 대놓고 어장남이었는데 카톡에서도 아무도 안 놀리고. 그럼 어제? 오늘? 이거 안 되잖아... 역시 일주일은 짜져 있어야 했나. 아니 그냥 다 모르는 척해야 하나. 모르겠다. 난 그냥 너무 순진해서 티가 난 거야. 그렇잖아? 아니 뭐가 그렇잖아야. 순진한 애가 여자친구 있는 애를 좋아하냐고. 으!!!


- 나 너 원래 알고 있었다?
- 어, 어?
- 이동혁 우리 반이잖아.
- 아... 걔가 뭐래?

3년 사귄 남친 있다고 했겠지. 

- 3년 사귄 남친 있다고.

진짜 죽여버려...

- 깨졌어.
- 아하....
- 이동혁이 그건 말 안 했나 보네.

이거 근데 왜 얘기하는 걸까. 남친 있으면서 왜? 그런 뜻? 지우가 나 보고 비장하다고 한 게 정말이었나보다. 얼마나 진지해 보였으면 책 핑계로 한 번 보러 왔다고 이렇게 돼. 평소에도 티가 났나본데 다행인 건지 아직 모르겠다.

- 괜찮아. 나도 깨졌어.
- 아하.
- 아 이건 아닌가. 미안.
- 됐어.

나도 팩트 체크 완료. 서로가 솔로란 것도 그걸 안다는 것도 확인됐으니, 이제부터가 진짜인가. 더 떨린다.

- 근데 왜 헤어진 거야?
- 차여서 몰라. 넌?
- 나도.

차인 거면 아직도 걔를 좋아할까. 그건 너무... 부럽다. 처음으로 나재민의 여자친구였던 걔가 부러워졌다. 그러네. 다른 애들이 아니라 우선 걔부터 이겨야 하는구나. 

미리 들킨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처음엔 그저 절망이었는데 어차피 티낼 계획이었으니까. 저절로 티가 났다니 한 단계 나간 모양인지도 몰랐다. 나재민이 그 여자친구를 더 좋아하는 계기가 되지만 않으면 된다. 그렇게만 안 되면.... 나재민의 시선을 피해 눈을 밖으로 돌렸다. 그렇게 피하던 꽃나무를 나재민이랑 서서 보고 있었다.



 

학교에 꽃이 다 피자 홍보단은 달력과 소책자에 넣을 사진을 찍는다고 본관 앞에 모였다. 소품으로 쓸 영어책까지 챙겨서. 들어와서 처음으로 맡은 임무가 너무 공식적인지라 약간 긴장됐다.


- 1학년 아직도 내외해? 남자애들 얼마 되지도 않는데 뭉쳐있지 말고 좀 흩어져.재민이 잘하네. 재민이 맞지?
- 네!

재민이? 그 말에 고개를 쭉 빼고 둘러봤다. 정말 나재민을 뺀 나머지 남자애들은 뒤편에 자기들끼리 서 있었다. 나재민은, 내 옆에 있는데. 그걸 깨닫고 나니 온통 신경이 쏠려서 카메라를 의식할 때보다도 뻣뻣해졌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어학실로 옮겨가서는 회화 수업을 듣는 양 연출해야 했다. 이번에도 나재민은 맞은편에 와 앉으면서 까불었다.

- 아까 우리 같이 찍으니까 칭찬받았잖아.
- ... 너만 받은 거거든?
- 그림이 좋아서 받은 거야.

전에도 이런 말을 했던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재민이 솔로가 되고서 말하는 ‘우리’는 느낌이 달랐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것도 알 텐데.


- 우리 진짜로 같이 수업 들으면 좋겠다.

... 또 ‘우리’래. 

그냥 의미부여 할게.

- 맞아. 왜 중국어과 갔어.
- 넌 왜 영어과 갔냐.
- ... 이렇게 될지 몰랐지.
- ... 나도.


죽을 것 같다.





이제 곧 5월이라 홍보단으로 참여하는 첫 입시설명회가 코앞이었다. 다른 조와 서로 방문객 역할을 해주며 교내 탐방 리허설도 하고, 학생 상담도 준비했다. 마침내 설명회 당일, 1조가 먼저 교내 탐방을 도는 동안 우리 조는 상담 부스를 진행했다.


- 또 궁금한 거 있어요?
- 그... 연애 하면 벌점 받아요?
- 네. 40점. 50점이면 기숙사 퇴사.

선생님이 이런 거 물어보는 애들 꼭 있다고 했는데. 너구나. 나도 연애할 생각이지만 그렇게 말할 순 없지. 


- 안 걸리면 되지.

탐방이 끝났는지 나타난 나재민이 내 눈을 보면서 말했다. 갑자기 나타난 오빠가 그런 소릴 하자 중학생들이 자지러졌다.

- 야... 선생님한테 혼나.
- 그럼 안 할 거야?
- 어?
- 안 할 거냐고.

나재민이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중학생들을 조용히 시켰다. 애들은 그야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었다. 물론 나도.

- 할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설명회가 끝나 방문객 퇴장을 마무리할 때까지도 자꾸 그 생각이 났다. 본의 아니게 긴장은 풀렸네. 집중력까지 나갔지만. 중학생 애들이 난리가 났던 건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해서겠지? 그러니까 그거... 고백 같잖아.
  
정신이 없다.


끝나고는 우리 기수끼리 첫 설명회 기념사진을 찍는다길래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등장한 나재민이 내 옆에 와서 섰다.


- 이름아, 연애 할 거야?
- 조용히 해 제발..

하... 뭔데 자꾸. 놀리냐고. 싫은 건 아닌데... 뭐라고 해야 할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쪽팔려...

- ㅋㅋㅋㅋ 아깐 한다며.
- 놀리지 마.
- 누구랑 할 건데?
- 몰라.
- 왜 몰라.


나재민은 이번엔 내 귀에 대고 말했다.

- 나랑 사귀자.
- .....
- 벌점 안 받게 해줄게.
- 뭐?
- ㅋㅋㅋ 앞에 봐.


기장 언니가 이제 찍는다고 하나 둘 셋, 셀 때, 손을 잡았다. 

만지작대는 엄지손가락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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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작가님... 이쯤이면 외전으로 체대편 풀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ㅠㅠㅠ 외고에 체대라니 여주랑 재민이가 쓸어먹었으면 좋겠네여ㅠㅠㅜㅜ
5년 전
김유유
다른 커플 에피 안에 넣어보려구요..! ㅋㅋㅋㅋ 어떻게 쓸어먹을까요 ㅋㅋㅋㅋ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5년 전
비회원95.15
자까님 너무 외고생ㅠㅠㅠㅠㅠㅠㅠ 더 설레요ㅠㅠ 체대할 때 페북 형식 올라오면 더 좋을 거 같아요ㅠㅠㅠ 영일과 최고 영중과 최고 이렇게 배사 바꾸고 하는 거용ㅠㅠㅠㅠㅠㅠㅠ
5년 전
김유유
현실반영 갠찬나요?ㅋㅋㅋ 페북형식은 ㅋㅋㅋ 제가 혼자 해보고 괜찮으면 덤으로 넣을게요...(자신없음)
5년 전
독자2
아 대박 체대 내용 풀어주실거죠....? 풀어주시리라 믿습니다 ㅠ 저 외고 안나왔지만 외고 나온것만 같고.... 저런 남친 없었지만 왠지 있었던 것 같고,, 이게 기억조작인가요
5년 전
김유유
체육대회 에피소드는 등장인물이 다 나왔으면 해서 계속 생각 중이에요.. 올리면 여기다 다시 댓글 달게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민이 학교 다녔으면 홍보대사 잘어울렸을 거 같져ㅋㅋㅋ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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