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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 몬스타엑스 강동원 이준혁 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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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이름 변경 적용




박지민은 내가 싫다고 말했다


*BGM 재생해주세용*












아직 더위가 다 가시지 않은 9월의 서울, 해가 다 져버린 저녁의 시간에는 늘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시끄러운 도로 옆 도보를 따라 느릿하게 걷고 있으면 머릿결 새로 스며 오는 바람은 꽤나 선선했다. 붉게 물들었던 노을은 이미 자취를 감췄고 어느덧 어둑해진 밤거리를 지나 가로등 불빛이 가득한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자 느껴지는공기는 제법 차가웠다. 주머니에서 웅웅하고 울리는 진동이 느껴지면 나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노란 가로등 아래 조그맣게 웅크리고 앉아있는 박지민이 보일때면 겉옷을 벗고 더 빠르게 달렸다. 그렇게 달려 내 손에 그의 어깨가 잡힐정도로 거리가 좁혀지고 나서는 그에게 겉옷을 덮어주고서 나도 덩달아 옆에 자리했다.








“ ….”






가로등의 불빛이 깜빡였고,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간혹 피식하고 바람빠지는 웃음을 나누기도 했다. 마냥 좋았다. 박지민의 눈가에 번진 멍은 푸르고 탁한 색이었고, 입가에 앉은 피딱지는 검붉은색이었다. 노란 가로등의 아래에서도 나는 박지민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그의 입가에 앉은 피딱지를 조심스레 만지면 박지민은 한쪽 눈을 찡그렸고, 눈가에 번진 멍에 살짝 손을 가져다 대면 그는 눈물을 흘렸다. 아파-. 하면서.






“ 아파?”
“ 응, 정말 아파.”





그렇게 말하며 박지민은 제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눈물을 훔쳤다. 눈가를 벅벅 문지르며 말이다. 투박한 그의 손을 밀어내고 내가 살짝 눈물에 손을 가져다 대면 박지민은 고개를 휙 돌렸다. 한참을 그렇게 소리 죽여 울다 나오지않는 목소리로 꾸역꾸역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 이럴 땐 차라리 네가 날 미워했음 좋겠어.”






박지민이 내게 그렇게 말하면 나는 그의 고개를 돌려 입을 맞추었다. 입술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눈물의 맛은 짰다. 내가 잠시 입술을 떼면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내 눈물은 안 짠데. 네 눈물은 되게 짜네.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음을 지었다. 새벽이 가까워지는 밤 속에서 우리는 꽤나 행복했다.










01.



박지민의 슬픔을 덜어 내가 다 들쳐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항상 쓸쓸했다. 그 쓸쓸함이 싫어 이어폰을 끼고 박지민이 좋아하던 노래를 들었다. 잔잔하게 귓가에 깔리는노래가 왠지 슬펐다. 그렇게 한참을 듣다가도 이어폰 사이로 새어 나오는 노래가 더욱쓸쓸함을 고조시키는 것처럼 느껴질 때면짜증스럽게 이어폰을 빼냈다. 별생각 없이걷다가 더는 견딜 수가 없게 되었을 때즈음, 나는 그 거리를 미친 듯이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집에 도착하면, 나는 서둘러 침대에 누웠다. 잠이 쉬이 오지 않는 바람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누워 눈을 꼭 감았다. 그러나 꼭 박지민을 만나고 돌아온 날밤이면 항상 그렇게 잠드는 것마저 쉽지 않았고, 나는 그 하룻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였다.






창밖으로 환한 빛이 새어들어올때면 퀭한눈을 하고 자연스레 이불을 발로 차낸 뒤 방문을 열었다. 둥근 식탁에는 이미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비어있는 자리에 앉자 그제야 쏟아지는 질문들은 역겹기 그지없었다.





“ 어제 또 늦게 들어오는 것 같더니-.”
“ …얼굴은 또 왜그러냐.”
“ 그래서, 뭘하다 그 늦은 시간에 들어온 거야?”
“ ….태형이.”
“ ….”
“ 태형이 만났어.”





내가 그렇게 대답하면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는 그제야 다시 수저를 들었다.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옥죄어 오던 긴장감이 사라졌다. 그러나 긴장감이 사라진 그 빈자리에는 아무것도 다시 들어차지 않았다. 어제 하루는 어땠는지, 밤엔 어떤꿈을 꾸었는지, 가족이라면 당연히 나눌 법한 그런 류의 대화마저 일체 없었다. 허무함을 느낀 나는 대충 밥을 뒤적이다 자리에서일어났다.





“ 잘 먹었습니다.”










02.



학교에서 만나는 박지민은 그 무렵의 박지민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얼굴에 덕지덕지 밴드를 붙이고도 맑게 웃었다. 나와는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그러나 절대 그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고해서 속상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가만히 앉아 책을 읽는 척하며 그의 목소리를 듣다가 몰래 혼자 웃음을 지어도, 그게 그냥 좋았다. 박지민이 제일 뒷자리에 앉아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은 듯 나누는게 마냥 우스웠다.





“ 쟤 멘탈은 강철이래?”





옆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뒤에서 해맑게 웃는 박지민을 예의주시하던 김태형이 내게 그렇게 말할 때면 나는 그러게-. 하며 대충얼버무리고 말았다. 박지민이 누군가에 의해 폄하되는 것은 죽도록 싫었지만 (행여 그게 김태형에 의해서 일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걸 표현할 수는 없었다. 내 운명이 그랬다. 하찮고 좆같은 우리의 운명이 딱 그랬다.






“ 너희 집안 믿고 다 가진 듯…,”
“ 태형아.”

[박지민/김태형] 박지민은 내가 싫다고 말했다 01 | 인스티즈

“ 어?”
“ 나 좀 잘게. 나중에 좀 깨워주라.”
“ …어, 안 괴롭힐게.”





김태형의 말은 일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매번 똑같았다. 제 아버지와 우리 집안만을 믿고 다 가진 듯 잘난 체하던 박지민을 생각하면 아직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고,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더 크다고. 전혀 듣고 싶지도 않고, 나로서는 공감해줄 수도 없는 말들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김태형은 박지민을 모른다, 김태형은 박지민을 모른다 속으로 되뇌며 느리게 눈을 감을 뿐이었다.






전날 한숨도 자지 못해서인지 오늘은 그렇게 한참을 눈을 감고 있다 어느새 잠에 든 모양이었다. 방금 잠에서 깨어 살짝 몽롱한 기분이 들었고, 고요한 교실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익숙하지 않은 정적에 의문을 느낀 내가 고개를 살짝 들었을 때 그 넓은 교실을가득 메웠던 인파는 사라지고 없었고, 어느덧 나의 옆에 자리한 박지민만이 오롯이 존재했다. 이제 일어난 거냐며 답지 않은 다정함으로 내게 물었다. 내가 아무 대꾸도 하지않자, 박지민은 피식 웃으며 시계를 가리켰다. 어느덧 12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 이렇게 있는 거 되게 꿈같다, 그치.”






꿈이어도 좋다며 박지민이 활짝 웃자 그의 얼굴 위에 피로 물든 밴드가 안쓰럽게 구겨졌다. 그 모습을 본 내가 주머니에서 새로운 밴드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네자 순간 둘 사이의 공기가 훅 차게 식어 버렸다. 조심스레 밴드를 받아든 박지민의 얼굴에는 방금까지 그를 가득 채우던 웃음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박지민은 잠시 밴드를 만지작 거리다 한숨을 크게 내뱉고는 나를 빤히 바라 보았다. 내가 그런 그의 시선을 피하자 그는 탄소야, 김탄소. 하며 슬프게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물었다.





“ 너는 왜 나를 미워하지 않아?”









03.



우리가 겨우 10살이 되던 해였던가, 그러니까 박지민의 열번째 생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서 처음으로 두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박지민과 맛있는 저녁을 함께 먹는다는 생각에 들떠서 그의 맞은 편에 앉았지만 그 이후로 이어지던 가족간의 대화는 꽤나 공적인 것이었다.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박지민과 나는 철저히 뒷전이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흥미를 잃은 내가 앞에 놓인 수프를 수저로 휘휘 젓고만 있자 박지민의 옆에 앉아 호호 하고 가식적인 웃음만 연신 내보이던 그의 엄마가 분위기를 살피다 여전히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달고서 내게 물었다.








“ 탄소는 지민이가 좋아? 어때?”









순간 고요해진 분위기에 꽤나 긴장했던 나는 그녀의 물음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로 박지민을 바라 보았다. 그는 뚱한 표정을 하고 의자에 축 처지듯 앉아서는 한손에 포크를 쥐고 접시를 툭툭 두드리며 째려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내가 한참을 대답없이 그렇게 박지민을 바라만 보고 있자 당황하신 박지민과 나의 부모님들은 웃으며 빠르게 상황을 무마시키려 애썼다. 그렇게 어렸던 내가 느끼기에도 단숨에 다시 그 공간을 가득 메우는 가식적인 목소리들이 역겹기 그지 없었는지 나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크게 소리치고서 그곳에서 도망치듯 달려나왔었다.









나의 명치께까지 오던 세면대의 앞에 서서 낑낑대며 대충 손을 씻고는 하얀 드레스의 위로 물기를 다 닦아내며 터벅터벅 걸어 나오던 발걸음이 멈춰선 이유는 저 멀리에서 울며 달려 나오던 박지민 때문이었다.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달려서는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박지민이 의문스러웠던 나는 자연스레 그의 뒤를 따랐다. 계단 한 켠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이 우습게 느껴져 몰래 웃음을 한 번 짓고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아무렇지 않은 듯 앉았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왜 그렇게 우느냐고 물었고, 아마 박지민은 그때 내게 처음으로 내가 싫다고 말했을 것이다. 제 부모가 제게 했던 말을 들먹이며 내가 아닌 유민이라는 아이와 결혼하고 싶다며 웅크리고 앉아 엉엉 우는 모습만을 보였다.










“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너랑 내가 나중에 결혼하게 될 거래.”
“ ….”
“ 근데 있지, 나는 네가 싫어. 난 유민이랑 결혼하고싶어.”
“ …미안해.”









멍청했던 나는 영문도 모른 채로 내것보다 조금 더 작았던 박지민의 손을 꼭 잡으며 그에게 사과했다. 눈물을 얼마나 닦아낸 건지 그 작은 손이 눈물로 온통 젖어있었다. 내가 싫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흘린 눈물로 젖은 그 손을 잡고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박지민을 이해한다. 나는 박지민을 이해한다. 나는 박지민을 이해한다. 어렸던 나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박지민의 옆에 앉아 어른인 척 했다. 나를 미워해도 괜찮다고 했다. 그 하얗던 드레스가 다 얼룩져 가는 것도 모르고.








“ 내가 나중에 우리 아빠 설득해볼게!”










어떤 짓을 해도 멎질 않던 울음에 고민하던 내가 고심 끝에 씩씩하게 내뱉은 그 한마디에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들어 보이는 박지민이 그 순간만큼은 나도 정말 미웠다. 아침부터 예쁜 구두와 예쁜 드레스차림으로 박지민과 그의 가족을 만난다며 신나했던 나의 모습은 다 사라지고 없었다. 그제야 고개를 들며 꼭이다? 하고 물어오는 박지민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응! 내가 부탁하면 우리 아빠는 꼭 들어주실 거야.”








부모님은 언제나 바쁘셨기에 대화조차 제대로 해본 기억이 없던 어린 내가 당당한 목소리로 그에게 약속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사랑받고 자란 티가 잔뜩 나는 박지민에게 사랑받지 못한 채로 자라온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알게되면 박지민이 나를 더 미워하게 될 것만 같아 그게 못내 두려웠다.












04.





“ 미워했음 좋겠어?”










무거워진 분위기를 깨보려 일부러 미소를 지어 보이며 되묻자 박지민은 잠시 나를 슬프게 바라보다 내게 다시 밴드를 건넸다. 붙여줘야지- 하면서. 내가 그런 박지민을 바라보며 무의식 중에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었을 때 그는 이미 제 얼굴에 붙어있던 밴드를 떼어내고 있었다. 상처가 난 부위가 아린 듯 표정을 한껏 찌푸리고는 주먹을 꽉 쥐는 모습이 우스웠다. 웃음을 꾹 참고 새것을 상처 위에 올리자 그는 내 표정을 잠시 살피다 다시 입을 열었다.










“ 미안해, 탄소야.”
“ 뭐가?”
“ 나 때문에 다 어긋나 버렸잖아.”
“ 아냐…, 누가 그래.”
“ …좋아해, 많이.”









머뭇거리다 내뱉은 그의 서툰 고백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더 간지럽고 달았다.












05.



점심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박지민의 말대로 꿈 같은 시간이었다. 그 짧은 점심시간이 다 지나고 나면 나와 박지민은 다시 남이 되어야했다. 그래도 박지민은 항상 웃었다. 아니 어쩌면 나와 함께일 때보다 더 많이 웃었던 듯 싶다. 나는 그런 그의 웃음소리를 거짓말처럼 알아 차렸다. 나는 박지민의 마냥 웃기고 행복해서 짓는 웃음과 그렇지 않은 웃음을 구별할 수 있었다. 수업이 시작된 이후에도 다를 건 없었다. 박지민과 그의 옆에 앉은 정호석이 몰래 키득대며 웃는 소리가 마냥 행복하게 느껴져 나도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박지민/김태형] 박지민은 내가 싫다고 말했다 01 | 인스티즈

“ ….”






가로등의 불빛이 깜빡였고,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간혹 피식하고 바람빠지는 웃음을 나누기도 했다. 마냥 좋았다. 박지민의 눈가에 번진 멍은 푸르고 탁한 색이었고, 입가에 앉은 피딱지는 검붉은색이었다. 노란 가로등의 아래에서도 나는 박지민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그의 입가에 앉은 피딱지를 조심스레 만지면 박지민은 한쪽 눈을 찡그렸고, 눈가에 번진 멍에 살짝 손을 가져다 대면 그는 눈물을 흘렸다. 아파-. 하면서.






“ 아파?”
“ 응, 정말 아파.”





그렇게 말하며 박지민은 제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눈물을 훔쳤다. 눈가를 벅벅 문지르며 말이다. 투박한 그의 손을 밀어내고 내가 살짝 눈물에 손을 가져다 대면 박지민은 고개를 휙 돌렸다. 한참을 그렇게 소리 죽여 울다 나오지않는 목소리로 꾸역꾸역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 이럴 땐 차라리 네가 날 미워했음 좋겠어.”






박지민이 내게 그렇게 말하면 나는 그의 고개를 돌려 입을 맞추었다. 입술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눈물의 맛은 짰다. 내가 잠시 입술을 떼면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내 눈물은 안 짠데. 네 눈물은 되게 짜네.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음을 지었다. 새벽이 가까워지는 밤 속에서 우리는 꽤나 행복했다.










01.



박지민의 슬픔을 덜어 내가 다 들쳐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항상 쓸쓸했다. 그 쓸쓸함이 싫어 이어폰을 끼고 박지민이 좋아하던 노래를 들었다. 잔잔하게 귓가에 깔리는노래가 왠지 슬펐다. 그렇게 한참을 듣다가도 이어폰 사이로 새어 나오는 노래가 더욱쓸쓸함을 고조시키는 것처럼 느껴질 때면짜증스럽게 이어폰을 빼냈다. 별생각 없이걷다가 더는 견딜 수가 없게 되었을 때즈음, 나는 그 거리를 미친 듯이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집에 도착하면, 나는 서둘러 침대에 누웠다. 잠이 쉬이 오지 않는 바람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누워 눈을 꼭 감았다. 그러나 꼭 박지민을 만나고 돌아온 날밤이면 항상 그렇게 잠드는 것마저 쉽지 않았고, 나는 그 하룻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였다.






창밖으로 환한 빛이 새어들어올때면 퀭한눈을 하고 자연스레 이불을 발로 차낸 뒤 방문을 열었다. 둥근 식탁에는 이미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비어있는 자리에 앉자 그제야 쏟아지는 질문들은 역겹기 그지없었다.





“ 어제 또 늦게 들어오는 것 같더니-.”
“ …얼굴은 또 왜그러냐.”
“ 그래서, 뭘하다 그 늦은 시간에 들어온 거야?”
“ ….태형이.”
“ ….”
“ 태형이 만났어.”





내가 그렇게 대답하면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는 그제야 다시 수저를 들었다.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옥죄어 오던 긴장감이 사라졌다. 그러나 긴장감이 사라진 그 빈자리에는 아무것도 다시 들어차지 않았다. 어제 하루는 어땠는지, 밤엔 어떤꿈을 꾸었는지, 가족이라면 당연히 나눌 법한 그런 류의 대화마저 일체 없었다. 허무함을 느낀 나는 대충 밥을 뒤적이다 자리에서일어났다.





“ 잘 먹었습니다.”










02.



학교에서 만나는 박지민은 그 무렵의 박지민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얼굴에 덕지덕지 밴드를 붙이고도 맑게 웃었다. 나와는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그러나 절대 그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고해서 속상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가만히 앉아 책을 읽는 척하며 그의 목소리를 듣다가 몰래 혼자 웃음을 지어도, 그게 그냥 좋았다. 박지민이 제일 뒷자리에 앉아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은 듯 나누는게 마냥 우스웠다.





“ 쟤 멘탈은 강철이래?”





옆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뒤에서 해맑게 웃는 박지민을 예의주시하던 김태형이 내게 그렇게 말할 때면 나는 그러게-. 하며 대충얼버무리고 말았다. 박지민이 누군가에 의해 폄하되는 것은 죽도록 싫었지만 (행여 그게 김태형에 의해서 일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걸 표현할 수는 없었다. 내 운명이 그랬다. 하찮고 좆같은 우리의 운명이 딱 그랬다.






“ 너희 집안 믿고 다 가진 듯…,”
“ 태형아.”

[박지민/김태형] 박지민은 내가 싫다고 말했다 01 | 인스티즈

“ 어?”
“ 나 좀 잘게. 나중에 좀 깨워주라.”
“ …어, 안 괴롭힐게.”





김태형의 말은 일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매번 똑같았다. 제 아버지와 우리 집안만을 믿고 다 가진 듯 잘난 체하던 박지민을 생각하면 아직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고,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더 크다고. 전혀 듣고 싶지도 않고, 나로서는 공감해줄 수도 없는 말들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김태형은 박지민을 모른다, 김태형은 박지민을 모른다 속으로 되뇌며 느리게 눈을 감을 뿐이었다.






전날 한숨도 자지 못해서인지 오늘은 그렇게 한참을 눈을 감고 있다 어느새 잠에 든 모양이었다. 방금 잠에서 깨어 살짝 몽롱한 기분이 들었고, 고요한 교실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익숙하지 않은 정적에 의문을 느낀 내가 고개를 살짝 들었을 때 그 넓은 교실을가득 메웠던 인파는 사라지고 없었고, 어느덧 나의 옆에 자리한 박지민만이 오롯이 존재했다. 이제 일어난 거냐며 답지 않은 다정함으로 내게 물었다. 내가 아무 대꾸도 하지않자, 박지민은 피식 웃으며 시계를 가리켰다. 어느덧 12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 이렇게 있는 거 되게 꿈같다, 그치.”






꿈이어도 좋다며 박지민이 활짝 웃자 그의 얼굴 위에 피로 물든 밴드가 안쓰럽게 구겨졌다. 그 모습을 본 내가 주머니에서 새로운 밴드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네자 순간 둘 사이의 공기가 훅 차게 식어 버렸다. 조심스레 밴드를 받아든 박지민의 얼굴에는 방금까지 그를 가득 채우던 웃음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박지민은 잠시 밴드를 만지작 거리다 한숨을 크게 내뱉고는 나를 빤히 바라 보았다. 내가 그런 그의 시선을 피하자 그는 탄소야, 김탄소. 하며 슬프게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물었다.





“ 너는 왜 나를 미워하지 않아?”









03.



우리가 겨우 10살이 되던 해였던가, 그러니까 박지민의 열번째 생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서 처음으로 두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박지민과 맛있는 저녁을 함께 먹는다는 생각에 들떠서 그의 맞은 편에 앉았지만 그 이후로 이어지던 가족간의 대화는 꽤나 공적인 것이었다.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박지민과 나는 철저히 뒷전이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흥미를 잃은 내가 앞에 놓인 수프를 수저로 휘휘 젓고만 있자 박지민의 옆에 앉아 호호 하고 가식적인 웃음만 연신 내보이던 그의 엄마가 분위기를 살피다 여전히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달고서 내게 물었다.








“ 탄소는 지민이가 좋아? 어때?”









순간 고요해진 분위기에 꽤나 긴장했던 나는 그녀의 물음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로 박지민을 바라 보았다. 그는 뚱한 표정을 하고 의자에 축 처지듯 앉아서는 한손에 포크를 쥐고 접시를 툭툭 두드리며 째려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내가 한참을 대답없이 그렇게 박지민을 바라만 보고 있자 당황하신 박지민과 나의 부모님들은 웃으며 빠르게 상황을 무마시키려 애썼다. 그렇게 어렸던 내가 느끼기에도 단숨에 다시 그 공간을 가득 메우는 가식적인 목소리들이 역겹기 그지 없었는지 나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크게 소리치고서 그곳에서 도망치듯 달려나왔었다.









나의 명치께까지 오던 세면대의 앞에 서서 낑낑대며 대충 손을 씻고는 하얀 드레스의 위로 물기를 다 닦아내며 터벅터벅 걸어 나오던 발걸음이 멈춰선 이유는 저 멀리에서 울며 달려 나오던 박지민 때문이었다.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달려서는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박지민이 의문스러웠던 나는 자연스레 그의 뒤를 따랐다. 계단 한 켠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이 우습게 느껴져 몰래 웃음을 한 번 짓고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아무렇지 않은 듯 앉았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왜 그렇게 우느냐고 물었고, 아마 박지민은 그때 내게 처음으로 내가 싫다고 말했을 것이다. 제 부모가 제게 했던 말을 들먹이며 내가 아닌 유민이라는 아이와 결혼하고 싶다며 웅크리고 앉아 엉엉 우는 모습만을 보였다.










“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너랑 내가 나중에 결혼하게 될 거래.”
“ ….”
“ 근데 있지, 나는 네가 싫어. 난 유민이랑 결혼하고싶어.”
“ …미안해.”









멍청했던 나는 영문도 모른 채로 내것보다 조금 더 작았던 박지민의 손을 꼭 잡으며 그에게 사과했다. 눈물을 얼마나 닦아낸 건지 그 작은 손이 눈물로 온통 젖어있었다. 내가 싫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흘린 눈물로 젖은 그 손을 잡고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박지민을 이해한다. 나는 박지민을 이해한다. 나는 박지민을 이해한다. 어렸던 나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박지민의 옆에 앉아 어른인 척 했다. 나를 미워해도 괜찮다고 했다. 그 하얗던 드레스가 다 얼룩져 가는 것도 모르고.








“ 내가 나중에 우리 아빠 설득해볼게!”










어떤 짓을 해도 멎질 않던 울음에 고민하던 내가 고심 끝에 씩씩하게 내뱉은 그 한마디에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들어 보이는 박지민이 그 순간만큼은 나도 정말 미웠다. 아침부터 예쁜 구두와 예쁜 드레스차림으로 박지민과 그의 가족을 만난다며 신나했던 나의 모습은 다 사라지고 없었다. 그제야 고개를 들며 꼭이다? 하고 물어오는 박지민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응! 내가 부탁하면 우리 아빠는 꼭 들어주실 거야.”








부모님은 언제나 바쁘셨기에 대화조차 제대로 해본 기억이 없던 어린 내가 당당한 목소리로 그에게 약속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사랑받고 자란 티가 잔뜩 나는 박지민에게 사랑받지 못한 채로 자라온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알게되면 박지민이 나를 더 미워하게 될 것만 같아 그게 못내 두려웠다.












04.





“ 미워했음 좋겠어?”










무거워진 분위기를 깨보려 일부러 미소를 지어 보이며 되묻자 박지민은 잠시 나를 슬프게 바라보다 내게 다시 밴드를 건넸다. 붙여줘야지- 하면서. 내가 그런 박지민을 바라보며 무의식 중에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었을 때 그는 이미 제 얼굴에 붙어있던 밴드를 떼어내고 있었다. 상처가 난 부위가 아린 듯 표정을 한껏 찌푸리고는 주먹을 꽉 쥐는 모습이 우스웠다. 웃음을 꾹 참고 새것을 상처 위에 올리자 그는 내 표정을 잠시 살피다 다시 입을 열었다.










“ 미안해, 탄소야.”
“ 뭐가?”
“ 나 때문에 다 어긋나 버렸잖아.”
“ 아냐…, 누가 그래.”
“ …좋아해, 많이.”









머뭇거리다 내뱉은 그의 서툰 고백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더 간지럽고 달았다.












05.



점심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박지민의 말대로 꿈 같은 시간이었다. 그 짧은 점심시간이 다 지나고 나면 나와 박지민은 다시 남이 되어야했다. 그래도 박지민은 항상 웃었다. 아니 어쩌면 나와 함께일 때보다 더 많이 웃었던 듯 싶다. 나는 그런 그의 웃음소리를 거짓말처럼 알아 차렸다. 나는 박지민의 마냥 웃기고 행복해서 짓는 웃음과 그렇지 않은 웃음을 구별할 수 있었다. 수업이 시작된 이후에도 다를 건 없었다. 박지민과 그의 옆에 앉은 정호석이 몰래 키득대며 웃는 소리가 마냥 행복하게 느껴져 나도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박지민/김태형] 박지민은 내가 싫다고 말했다 01 | 인스티즈

“ ….”






가로등의 불빛이 깜빡였고,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간혹 피식하고 바람빠지는 웃음을 나누기도 했다. 마냥 좋았다. 박지민의 눈가에 번진 멍은 푸르고 탁한 색이었고, 입가에 앉은 피딱지는 검붉은색이었다. 노란 가로등의 아래에서도 나는 박지민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그의 입가에 앉은 피딱지를 조심스레 만지면 박지민은 한쪽 눈을 찡그렸고, 눈가에 번진 멍에 살짝 손을 가져다 대면 그는 눈물을 흘렸다. 아파-. 하면서.






“ 아파?”
“ 응, 정말 아파.”





그렇게 말하며 박지민은 제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눈물을 훔쳤다. 눈가를 벅벅 문지르며 말이다. 투박한 그의 손을 밀어내고 내가 살짝 눈물에 손을 가져다 대면 박지민은 고개를 휙 돌렸다. 한참을 그렇게 소리 죽여 울다 나오지않는 목소리로 꾸역꾸역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 이럴 땐 차라리 네가 날 미워했음 좋겠어.”






박지민이 내게 그렇게 말하면 나는 그의 고개를 돌려 입을 맞추었다. 입술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눈물의 맛은 짰다. 내가 잠시 입술을 떼면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내 눈물은 안 짠데. 네 눈물은 되게 짜네.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음을 지었다. 새벽이 가까워지는 밤 속에서 우리는 꽤나 행복했다.










01.



박지민의 슬픔을 덜어 내가 다 들쳐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항상 쓸쓸했다. 그 쓸쓸함이 싫어 이어폰을 끼고 박지민이 좋아하던 노래를 들었다. 잔잔하게 귓가에 깔리는노래가 왠지 슬펐다. 그렇게 한참을 듣다가도 이어폰 사이로 새어 나오는 노래가 더욱쓸쓸함을 고조시키는 것처럼 느껴질 때면짜증스럽게 이어폰을 빼냈다. 별생각 없이걷다가 더는 견딜 수가 없게 되었을 때즈음, 나는 그 거리를 미친 듯이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집에 도착하면, 나는 서둘러 침대에 누웠다. 잠이 쉬이 오지 않는 바람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누워 눈을 꼭 감았다. 그러나 꼭 박지민을 만나고 돌아온 날밤이면 항상 그렇게 잠드는 것마저 쉽지 않았고, 나는 그 하룻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였다.






창밖으로 환한 빛이 새어들어올때면 퀭한눈을 하고 자연스레 이불을 발로 차낸 뒤 방문을 열었다. 둥근 식탁에는 이미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비어있는 자리에 앉자 그제야 쏟아지는 질문들은 역겹기 그지없었다.





“ 어제 또 늦게 들어오는 것 같더니-.”
“ …얼굴은 또 왜그러냐.”
“ 그래서, 뭘하다 그 늦은 시간에 들어온 거야?”
“ ….태형이.”
“ ….”
“ 태형이 만났어.”





내가 그렇게 대답하면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는 그제야 다시 수저를 들었다.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옥죄어 오던 긴장감이 사라졌다. 그러나 긴장감이 사라진 그 빈자리에는 아무것도 다시 들어차지 않았다. 어제 하루는 어땠는지, 밤엔 어떤꿈을 꾸었는지, 가족이라면 당연히 나눌 법한 그런 류의 대화마저 일체 없었다. 허무함을 느낀 나는 대충 밥을 뒤적이다 자리에서일어났다.





“ 잘 먹었습니다.”










02.



학교에서 만나는 박지민은 그 무렵의 박지민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얼굴에 덕지덕지 밴드를 붙이고도 맑게 웃었다. 나와는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그러나 절대 그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고해서 속상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가만히 앉아 책을 읽는 척하며 그의 목소리를 듣다가 몰래 혼자 웃음을 지어도, 그게 그냥 좋았다. 박지민이 제일 뒷자리에 앉아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은 듯 나누는게 마냥 우스웠다.





“ 쟤 멘탈은 강철이래?”





옆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뒤에서 해맑게 웃는 박지민을 예의주시하던 김태형이 내게 그렇게 말할 때면 나는 그러게-. 하며 대충얼버무리고 말았다. 박지민이 누군가에 의해 폄하되는 것은 죽도록 싫었지만 (행여 그게 김태형에 의해서 일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걸 표현할 수는 없었다. 내 운명이 그랬다. 하찮고 좆같은 우리의 운명이 딱 그랬다.






“ 너희 집안 믿고 다 가진 듯…,”
“ 태형아.”

[박지민/김태형] 박지민은 내가 싫다고 말했다 01 | 인스티즈

“ 어?”
“ 나 좀 잘게. 나중에 좀 깨워주라.”
“ …어, 안 괴롭힐게.”





김태형의 말은 일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매번 똑같았다. 제 아버지와 우리 집안만을 믿고 다 가진 듯 잘난 체하던 박지민을 생각하면 아직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고,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더 크다고. 전혀 듣고 싶지도 않고, 나로서는 공감해줄 수도 없는 말들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김태형은 박지민을 모른다, 김태형은 박지민을 모른다 속으로 되뇌며 느리게 눈을 감을 뿐이었다.






전날 한숨도 자지 못해서인지 오늘은 그렇게 한참을 눈을 감고 있다 어느새 잠에 든 모양이었다. 방금 잠에서 깨어 살짝 몽롱한 기분이 들었고, 고요한 교실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익숙하지 않은 정적에 의문을 느낀 내가 고개를 살짝 들었을 때 그 넓은 교실을가득 메웠던 인파는 사라지고 없었고, 어느덧 나의 옆에 자리한 박지민만이 오롯이 존재했다. 이제 일어난 거냐며 답지 않은 다정함으로 내게 물었다. 내가 아무 대꾸도 하지않자, 박지민은 피식 웃으며 시계를 가리켰다. 어느덧 12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 이렇게 있는 거 되게 꿈같다, 그치.”






꿈이어도 좋다며 박지민이 활짝 웃자 그의 얼굴 위에 피로 물든 밴드가 안쓰럽게 구겨졌다. 그 모습을 본 내가 주머니에서 새로운 밴드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네자 순간 둘 사이의 공기가 훅 차게 식어 버렸다. 조심스레 밴드를 받아든 박지민의 얼굴에는 방금까지 그를 가득 채우던 웃음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박지민은 잠시 밴드를 만지작 거리다 한숨을 크게 내뱉고는 나를 빤히 바라 보았다. 내가 그런 그의 시선을 피하자 그는 탄소야, 김탄소. 하며 슬프게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물었다.





“ 너는 왜 나를 미워하지 않아?”









03.



우리가 겨우 10살이 되던 해였던가, 그러니까 박지민의 열번째 생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서 처음으로 두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박지민과 맛있는 저녁을 함께 먹는다는 생각에 들떠서 그의 맞은 편에 앉았지만 그 이후로 이어지던 가족간의 대화는 꽤나 공적인 것이었다.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박지민과 나는 철저히 뒷전이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흥미를 잃은 내가 앞에 놓인 수프를 수저로 휘휘 젓고만 있자 박지민의 옆에 앉아 호호 하고 가식적인 웃음만 연신 내보이던 그의 엄마가 분위기를 살피다 여전히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달고서 내게 물었다.








“ 탄소는 지민이가 좋아? 어때?”









순간 고요해진 분위기에 꽤나 긴장했던 나는 그녀의 물음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로 박지민을 바라 보았다. 그는 뚱한 표정을 하고 의자에 축 처지듯 앉아서는 한손에 포크를 쥐고 접시를 툭툭 두드리며 째려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내가 한참을 대답없이 그렇게 박지민을 바라만 보고 있자 당황하신 박지민과 나의 부모님들은 웃으며 빠르게 상황을 무마시키려 애썼다. 그렇게 어렸던 내가 느끼기에도 단숨에 다시 그 공간을 가득 메우는 가식적인 목소리들이 역겹기 그지 없었는지 나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크게 소리치고서 그곳에서 도망치듯 달려나왔었다.









나의 명치께까지 오던 세면대의 앞에 서서 낑낑대며 대충 손을 씻고는 하얀 드레스의 위로 물기를 다 닦아내며 터벅터벅 걸어 나오던 발걸음이 멈춰선 이유는 저 멀리에서 울며 달려 나오던 박지민 때문이었다.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달려서는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박지민이 의문스러웠던 나는 자연스레 그의 뒤를 따랐다. 계단 한 켠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이 우습게 느껴져 몰래 웃음을 한 번 짓고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아무렇지 않은 듯 앉았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왜 그렇게 우느냐고 물었고, 아마 박지민은 그때 내게 처음으로 내가 싫다고 말했을 것이다. 제 부모가 제게 했던 말을 들먹이며 내가 아닌 유민이라는 아이와 결혼하고 싶다며 웅크리고 앉아 엉엉 우는 모습만을 보였다.










“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너랑 내가 나중에 결혼하게 될 거래.”
“ ….”
“ 근데 있지, 나는 네가 싫어. 난 유민이랑 결혼하고싶어.”
“ …미안해.”









멍청했던 나는 영문도 모른 채로 내것보다 조금 더 작았던 박지민의 손을 꼭 잡으며 그에게 사과했다. 눈물을 얼마나 닦아낸 건지 그 작은 손이 눈물로 온통 젖어있었다. 내가 싫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흘린 눈물로 젖은 그 손을 잡고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박지민을 이해한다. 나는 박지민을 이해한다. 나는 박지민을 이해한다. 어렸던 나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박지민의 옆에 앉아 어른인 척 했다. 나를 미워해도 괜찮다고 했다. 그 하얗던 드레스가 다 얼룩져 가는 것도 모르고.








“ 내가 나중에 우리 아빠 설득해볼게!”










어떤 짓을 해도 멎질 않던 울음에 고민하던 내가 고심 끝에 씩씩하게 내뱉은 그 한마디에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들어 보이는 박지민이 그 순간만큼은 나도 정말 미웠다. 아침부터 예쁜 구두와 예쁜 드레스차림으로 박지민과 그의 가족을 만난다며 신나했던 나의 모습은 다 사라지고 없었다. 그제야 고개를 들며 꼭이다? 하고 물어오는 박지민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응! 내가 부탁하면 우리 아빠는 꼭 들어주실 거야.”








부모님은 언제나 바쁘셨기에 대화조차 제대로 해본 기억이 없던 어린 내가 당당한 목소리로 그에게 약속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사랑받고 자란 티가 잔뜩 나는 박지민에게 사랑받지 못한 채로 자라온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알게되면 박지민이 나를 더 미워하게 될 것만 같아 그게 못내 두려웠다.












04.





“ 미워했음 좋겠어?”










무거워진 분위기를 깨보려 일부러 미소를 지어 보이며 되묻자 박지민은 잠시 나를 슬프게 바라보다 내게 다시 밴드를 건넸다. 붙여줘야지- 하면서. 내가 그런 박지민을 바라보며 무의식 중에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었을 때 그는 이미 제 얼굴에 붙어있던 밴드를 떼어내고 있었다. 상처가 난 부위가 아린 듯 표정을 한껏 찌푸리고는 주먹을 꽉 쥐는 모습이 우스웠다. 웃음을 꾹 참고 새것을 상처 위에 올리자 그는 내 표정을 잠시 살피다 다시 입을 열었다.










“ 미안해, 탄소야.”
“ 뭐가?”
“ 나 때문에 다 어긋나 버렸잖아.”
“ 아냐…, 누가 그래.”
“ …좋아해, 많이.”









머뭇거리다 내뱉은 그의 서툰 고백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더 간지럽고 달았다.












05.



점심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박지민의 말대로 꿈 같은 시간이었다. 그 짧은 점심시간이 다 지나고 나면 나와 박지민은 다시 남이 되어야했다. 그래도 박지민은 항상 웃었다. 아니 어쩌면 나와 함께일 때보다 더 많이 웃었던 듯 싶다. 나는 그런 그의 웃음소리를 거짓말처럼 알아 차렸다. 나는 박지민의 마냥 웃기고 행복해서 짓는 웃음과 그렇지 않은 웃음을 구별할 수 있었다. 수업이 시작된 이후에도 다를 건 없었다. 박지민과 그의 옆에 앉은 정호석이 몰래 키득대며 웃는 소리가 마냥 행복하게 느껴져 나도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박지민/김태형] 박지민은 내가 싫다고 말했다 01 | 인스티즈비디오 태그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입니다

“ …야.”
“ 왜.”










턱을 괴고 종이 위에다 까맣게 색칠을 하며 더 크게 미소를 짓자 김태형은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작게 나를 불렀다. 색칠하던 것을 멈추고 그에게 시선을 맞추자 김태형은 나와 똑같이 턱을 괴고는 말을 이었다.









“ 오늘 저녁 우리집에서 먹자.”
“ 갑자기?”
“ 우리 아빠가 제안하신 거야.”
“ ….”
“ 어때?”








김태형의 말에 나는 무의식 중에 살짝 고개를 돌려 박지민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러나 나의 시야에는 박지민의 눈치를 보며 눈알을 굴리는 정호석만이 들어찰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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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웅아ㅠㅜㅠㅠ 글 너무 재밌어요ㅠㅠㅠ 지민이가 여주 싫어하다가 좋아하게 된 것도 그렇고 뭐가 어긋나버렸는지도 궁금해여ㅠㅠㅠㅠ 신알신 하구 갑니다!!!
5년 전
독자2
완전 재미써요!!ㅠㅠ
5년 전
독자3
다음 편 궁금해요 ㅠㅠㅠㅠ
5년 전
비회원55.18
완전 재밌어여 ㅠㅠ
5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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