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T] 도화원(桃花園) 二장 - 인스티즈(instiz) 픽션 카테고리

도화원(桃花園)

바스락,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제노의 모습이 사라졌다. 재민이 뒤늦게 뒤를 돌았지만 그를 반기는 것은 흔들리는 도화뿐,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제노는 보이지 않았다. 제노는 순식간에 도화원의 가장 깊은 동굴 속으로 몸을 숨겼다. 도화원의 주인인 재현조차 어두침침하다 하여 꺼리는 그곳은 알을 품기엔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제노가 소중히 알을 품에 안은 채 자리에 앉았다. 반짝이는 작은 알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가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제노가 손을 뻗어 동굴의 입구에 푸른 장막을 쳤다. 누구라도 이 장막을 건드린다면 노한 흑룡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것이었다. 제 생명을 기반으로 하는 장막. 제노의 숨이 꺼질 때까지 장막은 영원히 제노와 알을 든든하게 지켜줄 버팀목이었다. 결계를 치자 동굴이 완전한 암흑으로 물들였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알에서 뿜어져 나오는 약간의 반짝임뿐,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제 예상이 맞다면, 이것은 분명히 용의 알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제 본능은 이 알을 품어야만 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제노가 알이 혹여 깨질세라 세심하게 움직이며 품에 안았다. 검푸른 도포가 알을 포근하게 감쌌고, 제노가 알에 얼굴을 기대었다. 이 알이 태어나려면 딱 일만 년이 필요했다. 그때까지 제노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군가를 만나지도 못한 채 이 자세 그대로 동굴 벽에서 흘러나오는 약간의 물줄기에 기대어 일만 년을 기다려야 했다. 혹여 알을 놓치거나, 태용에게 들키는 그 순간에는 저나 이 알이나 살아남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제노가 알의 표면에 얼굴을 비볐다. 부드럽고 따뜻한 촉감이 볼에서 느껴졌다. 제 소중한 이들이 뭍혔던 그 곳에서 나타난 이 알.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라고 할 수 있으랴. 제노가 눈을 감았다. 아가야, 어서 나와 나의 세상을 밝혀주렴. 알을 제노의 말에 화답하듯 더욱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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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민은 갑자기 사라진 제노의 행방에 어이가 없어 죽을 지경이였다.

"아니, 사라진 건 둘째치고. 왜 연락 하나 없냐고."

저에게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 제노에게 서운했지만 그보다 더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제노가 이렇게 갑자기 사라지고, 얼마동안 연락이 안됬었던 적이 딱 한번, 약 2만 년 전에 있었다. 그때 제노는 도화원에서 홀연히 사라져 이틀 후에 나타났는데, 다시 나타난 그의 얼굴은 살아있는 사람이라곤 할 수 없는 몰골이었다. 무심한 듯 반짝였던 흑색 눈동자는 공허하게 텅 비어 초점조차 맞추지 못했고, 피부는 하얗다 못해 창백해질 정도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사실 몰랐다면 송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재민은 손을 말아쥐었다. 그때 그 모습을, 절대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런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아야 했다. 재민의 금색 머리 위로 두 귀가 불쑥 솟아오르고, 그의 등 뒤로 살랑이는 9개의 꼬리가 생겼다. 재민이 크게 도약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재민은 제노를 찾아야 했다. 재민이 도화원을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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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가 눈을 서서히 감았다 떴다. 눈을 뜬 지 오래되어 뻑뻑한 눈가에 여러 번 눈꺼풀을 움직이고 나서야 정상적으로 눈을 깜빡일 수 있었다. 눈이 해결되고 나니 이번엔 목이 텁텁함이 느껴졌다. 아,아아-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잠겨버린 목이었다. 제노가 물이 흐르는 벽에 머리를 기대었다. 차가운 물이 그의 혀끝을 적시고, 목 뒤로 넘어가고 나서야 그를 애태우던 갈증이 잠재워짐이 느껴졌다. 몇 년이 흘렀는지, 아니면 몇천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몸 위로 하얗게 앉은 먼지와 목 뒤에 오던 짧은 머리카락이 자라나 그의 허리께에서 움직여지는 것을 보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대략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제노가 가만히 반짝이는 알을 응시하다 곧 무언가 떠오른 듯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맞다 나재민. 그러고 보니 재민에게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갑자기 사라졌으니. 들리지 않아야 할 재민의 잔소리가 제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제노가 조심스레 한 손을 뻗어 허공에 원을 그리자 까마귀 한마리가 튀어나와 제노의 어깨에 포르르 날아 앉았다. 제노가 까마귀의 가슴팍에 자신은 잘 있으며, 걱정말고 네 할 것이나 열심히 하라는 둥의 글자를 새겼다. 제노가 손을 떼자 까마귀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제노가 손을 휘두르자 장막을 통과해 날아갔다. 제노가 오랫동안 움직여 아픈 팔을 조금씩 움직이며 그동안 굳어있었던 다리를 살짝씩 움직였다. 굳어있던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듯 우드득-하는 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퍼졌다. 그러다 제노가 뻐근한 목을 움직이려는 찰나, 알에서 투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노가 목을 돌리러던 자세 그대로 행동을 멈추곤 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엄지손톱만하던 금이 어느새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제노가 당황함을 숨기지 못하며 알을 고쳐들었다. 저도 알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정말 태어나기만 했을 뿐, 알이 태어날 때 어떻게 태어나는지는 몰랐다. 제노가 갈팡지팡하는 사이, 알의 균열을 더욱더 커져 걸국 알이 반으로 갈라졌다. 제노의 눈이 커졌다. 알이 갈라지고,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아기가 양수에 푹 젖어 숨을 헐떡거리며 울고 있었다. 제노가 손을 덜덜 떨며 아기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리곤 제 법력을 사용해 양수를 닦아내고, 하얀 포대기로 아이를 천천히 감쌌다. 아이는 그제야 숨을 크게 쉬며 호흡을 안정시켰다.

아기를 바라보는 제노의 눈동자가 놀라움, 슬픔, 그리움, 기쁨- 과 같은 감정들을 담아내었다. 이 모습은... 용 중에서도 흑룡과 마찬가지로 귀중한 존재인, 백룡이었기 때문이었다. 흰 머리카락과 달빛을 머금은 듯 반짝이는 하얀 피부. 제노가 멍하니 아기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제노의 품속에서 아기가 꿈틀거리다, 서서히 눈을 떴다. 제노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세상 어딜 가도 볼 수 없는 색. 구중천에서 가장 아름답다던 망각천의 색깔 역시 이 아기의 눈동자 색 앞에서는 빛을 잃을 것이 분명했다. 푸른 바다를 꼭 빼닮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닮은 색. 푸른색. 아기가 눈을 몇 번 꿈뻑거리다 눈동자를 굴려 제노를 쳐다보았다. 제노가 아기 앞에서 잠시 멈칫하다 떨리는 손을 들어 아기의 작은 손에 살며시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아기가 그 작은 손으로 제노의 손가락 하나를 꽉 쥐었다. 제노가 놀랄 틈도 없이, 아기는 활짝 웃었다. 아기는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제노의 손가락을 이리저리 흔들며 환히 웃었다. 제노는 아기의 웃음에 결국 웃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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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창틀을 두드리기 전, 재민은 서책을 읽고 있었다. 호족의 후계자 수업의 일부분이였다. 그러다 갑자기 창문을 두드리는 까마귀의 모습에 놀랐고, 그 뒤 까마귀가 전한 말에 뒷목을 붙잡을 수 밖에 없었다. 팔천 년동안 도화원을 발바닥이 닳아 피가 날 정도로 돌아다녔지만 제노의 흔적은 머리카락 한 올 조차 찾을 수 없었는데, 이제 와 까마귀로 잘 있다고 안부를 전한다? 재민이 책상을 쾅 내리쳤다. 그에 깜짝 놀란 까마귀가 날개를 펄럭이며 창문 밖으로 후다닥 날아갔다.

"참 잘하는 짓이다. 나이를 얼마나 먹어놓곤..."

살벌한 말투와 달리 재민의 입꼬리는 이미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가 있었다. 그래도 제 하나뿐인 형이 멀쩡해 보였으니, 그걸로 되었다. 재민이 아까 흥분하느라 어느새 튀어나온 귀와 꼬리를 갈무리하며 숨기며 아까 읽던 서책을 정리했다. 도화원엔 언제 오려나. 재민이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거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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