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아인
"아 뭐야 너야?"
양복을 비서에게 벗어던지며 자리에 털썩 앉는 저 사람은 곧 내가 결혼할 상대다.
물론 둘 다 원하는 결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장난아니게 무례한듯 싶은데.
처음 본 사람한테 반말이라니.
"무례하네요. 그래도 앞으로 매일 얼굴 볼 사람이고 처음 보는 사인데."
"무례..무례라.
그래. 그렇게 느낄 수 있겠네."
무슨 말이 하고싶은건지, 날 한참 뚫어지게 쳐다본다.
"우리 약속 하나만 하고 시작하자.
공식적인 자릴 제외하고, 서로 사생활 일절 터치 않기로.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오케이?"
-
재수없어.
진짜 재수없는놈이다.
살다살다 저렇게 재수없는놈은 난 또 처음이네.
그리고 며칠 후.
저 사람은 진짜 정말 세상에서 제일 재수없는놈이란걸 확신했다.
정식적인 상견례 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빨리 도착해서 약속 장소 주변을 둘러보던 난 봐버렸다.
그 미이 다른 여잘 끼고 놀고있는걸.
"어 안녕?
빨리 왔네?"
"빨리 들어가요."
"말했잖아, 서로 사생활 터치 하지 말자고.
상관 없는거 아닌.."
"상관 있거든요.
지금 부모님들 오고 계셔요. 들어가요."
"아 진짜 까칠하네."
"안가요?"
"갈게 가."
그렇게 그 미을 끌고 약속장소로 들어가는데, 오지게 말도 많다.
"야 너 왜 그렇게 까칠하냐?
난 까칠한 여자는 별론데.
음 그래도.."
"옆에서 계속 쫑알쫑알거리는거 신경쓰이는데요.
조용히 좀 해주시죠."
"매력있어."
"네?"
"너 매력있다."
어이없는새끼.
-
식사 자리가 끝나고 왜인지 모르게 그 사람이 날 쫓아온다.
"야."
"야!"
"김게녀!"
"아 왜요!"
"너 되게 내 취향이다"
"까칠한 여잔 싫다면서요."
"좋아졌어."
"저번에 그 쪽이 말 하지 않았나?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취소하면 되지."
"원래 그렇게 제멋대로예요?"
"응. 그런ㄷ.."
"왜 나한테 반말써요? 처음 봤을때부터?
그 쪽이 나보다 한 살 어리거든요?"
"그럼 너도 반말 써"
"네?"
"반말 쓰라고."
.답이 없다 답이.
-
주말이고, 오랜만에 쉬어볼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전화벨이 울린다.
수신자는 유아인.
아 받아야되나.
그래 받아야겠지.
"왜요?"
"한시간 뒤, 너네 집 앞."
"뭐요?"
"나와."
"뭐요? 야!!"
"이제야 말 놓네. 계속 그렇게 말 놓아~"
진짜..답없다.
-
한시간 뒤, 간신히 준비를 끝내고 집 앞으로 나갔다.
나가지 말까 생각도 해봤지만 안나가면 쟤가 우리 집에 쳐들어올거고, 부모님은 무조건 문을 열어주겠지.
"역시 예뻐. 매력있어."
"뭐가? 빨리 출발이나 해."
"오..웬일로 반말."
"네가 아까 말 놓으라며. 나 차에 탔다. 빨리 출발 해."
"말 놓는거 빠르네..좋다."
"진짜 이상한놈이다."
"왜 네가 얘기하니까 칭찬으로 들리냐."
이상한놈이야 정말.
-
그렇게 차를 타고 한참 가는데 얘가 대뜸 묻는다.
"넌 내가 왜 싫어?"
"읊어줘?"
"음. 한 세가지만."
"나 보자마자 반말했고, 무례했고, 말이 안통해서."
"와. 촌철살인.
좀 서운하네?"
"뭐가"
또 뭔 이상한 를 하려고.
"솔직히 나정도면 괜찮지.
돈 많고, 잘생겼고.
안그래?"
"그럼 너 좋다는 딴여자한테 가던가.
네가 얘기 했었잖아. 사생활 터치 하지 말자고.
뭐 전에 보니까 여자도 많은거같던데."
"아니야. 싫어. 그리고 나 여자 안많아."
"왜"
"말했잖아, 너 너무 매력있다고.
아무래도 네가 좀 많이 좋아진거 같아서 말이야.
걔네 싹 정리 해버렸거든. 너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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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서준
"김게녀씨?"
"네?"
"반가워요. 박서준입니다."
"아..네."
뭐, 잘생기긴 했네.
그래도 정략결혼이란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마음에 걸리죠? 별로 끌리지도 않고."
뭐야 독심술하나.
"아..뭐 그렇죠."
"그건 저도 마찬가지니까, 잘 해보죠."
"네? 뭘.."
"연기요. 잘 부탁합니다."
"무슨..?"
"오늘부터 우린 각자 부모님 앞에서만 결혼할사이고, 이외의 장소에선 남인거예요. 그럼 이만."
어이없어.
-
다신 안 만났음 했다.
그런데 어떻게 다음날 바로 마주치냐.
그것도 이렇게 곤란한 상황에서.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러 한껏 빼입고 나왔는데, 하필 전남친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왜 나를 찼느냐며, 그래서 지금 만나는 놈은 누구냐며 한참을 침을 튀기면서 캐묻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앞엔 그 남자가 지나가는중.
눈짓을 아무리 보내봐도 쳐다보지도 않네.
어쩔 수 없지.
"서준씨!!!"
내가 자기 이름을 부르자마자 흠칫 놀란다.
"예..예에..?"
"인사해 나랑 결혼할 남자야. 잘생겼지? 집에 돈도 많아."
"김게녀씨 이게 무ㅅ..악!"
"흣스리 흐즈 므요. 즌늠츤으느끄."
( 하지 마요. 전남친이니까)
어떻게 사람 얼굴에 심리상태가 다 나타나냐.
얼굴에 거지같다 뭐같다 다 써있네.
뭐 그래도 이 사람 덕분에 전남친 퇴치는 성공했지만.
"끝입니까?"
"아..미안해요. 밖에선 남인것처럼 해달라고.."
"끝이면 잠깐 나랑 좀 가죠."
"네? 어딜..? 저 약속있는ㄷ"
"저도 김게녀씨 도와줬으니까, 김게녀씨도 나 도와줘야죠."
말은 또 잘해요.
그렇게 약속은 취소하고 박서준(씨)을 따라 나섰다.
-
"무슨 일인데요?"
"전 여자친구 정리하러요."
"왜 정리해요? 사생활 각자 신경쓰는거 아니였나"
"바람폈어요."
"네?"
"딴놈이랑 바람펴서 나도 똑같이 보여주려고 하는거니까, 그냥 가서 조용히만 있어요."
어쩔 수 없지.
-
"야 너 저 여자 뭐야?"
"새 여자친구."
"너 어이없다."
듣자듣자하니까 내가 다 화나네.
그리고 저 사람은 나한텐 말 따박따박 잘하면서 왜 저 여자한텐 꼼짝도 못한대?
"지가 먼저 바람폈으면서 이래."
아.
답답해서 속으로 생각한다는게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뭐라고요? 지금 그 쪽 뭐라고.."
"맞잖아 네가 먼저 바람핀거.
다 봤으니까 발뺌할 생각은 말고."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아 빡쳐.
그냥 지른거 끝까지 지르자.
"너무한건 그쪽이구요.
그쪽이 새사랑 찾아 나섰으니까 서준씨도 새사랑 찾아 나서야죠.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이기적이에요?
가자 서준씨."
.그렇게 박서준을 이끌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
"미안해요. 내가 또 뭐 잘못한거 아닌가.."
"아니요."
"그럼 다행..이고. 아무튼 오늘 미안해요."
"멋있던데."
"네?"
"게녀씨 멋있던데요.
난 그런 말 할줄도 모르고 못했을텐데.
좀 달라보이네."
돌려까는건가.
"아니에요. 그럼 이만.."
"있잖아요, 나 되게 당당하고 자기 할 말 할 줄 아는 여자 좋아해요."
"아 예.."
"그 쪽 처음엔 아닌줄알았는데 되게 똑부러지네."
예..감사합니다.
"아 예...그럼 전 이만."
"우리 연기는 그냥 관두고 진짜 연애나 할래요?
그 쪽, 생각보다 맘에 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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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강동원
"그 쪽이 김게녀씨?"
"아 네 안녕하세요."
첫인상은 솔직히 무서웠다.
키 완전 크고 얼굴 완전 작고.
저런 사람이 나랑 결혼이라니.
"뭐. 반갑습니다.
우리 관계 어떻게 되는건진 게녀씨도 아실 것 같고.
뭐 어떡하실래요?"
"네? 뭘.."
"엎죠."
"네?"
"엎자구요. 이 결혼."
오죽 내가 마음에 안들었으면 저럴까.
-
뭐 얘길 들어보니 이해는 갔다.
정략결혼은싫다.
한다면 연애결혼을 하겠다.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그게 내 맘대로 되냐고.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게 제 마음대로.."
"게녀씨는 이렇게 억지로 하는 결혼이 좋나봐요?
취향인가?"
"아니 말이 좀 심하신거 같은데요."
"전 분명 엎자고 했습니다.
먼저 가볼게요."
망했네. 망했어.
-
다시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다.
누군 하고싶어서 하는 결혼인줄아냐고.
나도 하기 싫고 남자친구도 있었는데 부모님때문에 하는건데 왜 자기만 유난인지 원.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어이가 없네.
친구랑 카톡으로 잔뜩 씹어야지...라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켰는데 그 사람으로부터 문자가 와있다.
[제가 다 알아서 덮겠습니다.
결혼 엎죠. 제발.]
끈질기다 진짜.
저번에 부모님도 같이 만났을땐 따로 불러내서 내 의사 묻더니.
어디까지 가려고 이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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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답장은 안했고, 신경은 쓰이지만 뭐, 아무리 자기가 덮는대도 덮어질 문제가 아니니까.
그래도 고민되는건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한참 고민하고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발신인에 뜨는 이름은 강동원.
그 사람.
"여보세요? 또 엎자고 하려고 전화했어요?"
"아닙니다 그런거.
잠깐 보죠."
-
잠깐 보쟤서 진짜 후리하게 하고 나갔는데 이 사람은 츄리닝을 입어도 왜 간지가 나는가.
"왜 불렀어요?"
"안엎었어요. 결혼."
"아 안타깝네요. 그럼 이만...
잠시만. 안엎었다고요? 못엎은게아니라?"
"그렇게 됐네요."
"어이없네. 먼저 엎자고 한건 그 쪽 아니에요?"
"그런데요?"
"엎자고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이제와서 안엎겠다?"
"그거 말곤 할 말 없어요?"
"할 말이야 많죠.
왜 그 난리를 쳤냐부터 시작해서 어째서 안깼냐까지.
솔직히 한 두시간쯤은 말 할 수 있을거같은데."
"게녀씨랑 나랑 몇 번 만났는지 아세요?"
"지금이 세번째네요."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 게녀씨가 좋아졌다면 믿을래요?"
"미쳤어요?"
"웃기긴 한데, 솔직히 내 생각엔 좀 운명같거든요.
이렇게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 사람이 좋아진건 처음이라.
뭐, 내가 운명론자인것도 있고."
"아니 그럼 왜 볼때마다 엎자고.."
"글쎄요. 게녀씨 좋아하는걸 나도 자각하지 못했나보죠.
근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까 내가 게녀씨 좋아하더라고.
아니, 다시 생각하니까 자각 했었던거같네.
근데 인정하기 싫어서 계속 반복했던거고."
"지금 내 상식으론 좀 이해가 안되는데요.
아니 지금 뭘.. 원래 그렇게 제멋대로예요?"
"뭐, 제멋대로라고 해두죠.
정략결혼 싫었는데 그 쪽이랑 하면 괜찮을것같기도 하고.
아님 그 쪽이랑 연애하고 결혼하는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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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