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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5년 전 (2020/3/16) 게시물이에요


거울 너머로 | 인스티즈




  어느 날부턴가 엄마는 거울을 들여다봤다. 좋은 시절 다 지나갔네. 하는 말과 함께 당신의 화장기 없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아침잠이 많은 나를 깨우기 위해 내 방에 들어오다가도 문득 그렇게 한 번씩 거울을 봤다. 그리고 잠이 든 내 얼굴을 다정한 손길로 쓸며 말했다. 내 새끼는 좋겠네. 내 새끼는 젊어서 좋겠네. 어쩌면 거울보다도 더 자주 들여다본 내 얼굴을 엄마는 한참을 쓰다듬었다. 엄마는 종종 내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 품을 떠나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고. 언젠간 그렇게 떠나서 영영 그리울 것만 같다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열린 문틈 사이로 밥 짓는 냄새가 비집고 들어왔다. 잠투정을 부리느라 찌푸려진 미간을 엄마는 손가락으로 펴줬다. 주름지지 말아라. 너는 엄마처럼 늙지 말아라. 하면서.


  사람은 떠날 적에 많은 것을 가져가 버린다. 그래서 여기엔 더 이상 아침마다 열린 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아침밥 냄새도, 내 미간 주름을 펴주는 손길도, 이따금씩 거울 앞에 서 있는 엄마도 없다. 엄마가 홀연히 떠나버린 그 날 이후로 나는 안방 문을 도저히 열 수가 없었다. 한번 열 때마다 남은 엄마의 향기마저 떠나는 것만 같아서였다. 어디선가 후각은 기억의 매개체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어릴 적에 향이 좋아 온종일 코를 박고 있었던 해바라기 모양 이불. 안방에는 온통 그 해바라기 모양 이불의 향기가 가득했다. 엄마가 떠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향은 전부 엄마의 향이었다. 엄마. 엄마.


  누군가 잡아끄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달그락거리는 냄비는 성을 내듯 김을 내뿜고, 뚜껑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벌어진 틈으로 거품을 내뱉고 있었다. 서둘러 가스 불을 잠그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엄마가 남기고 간 된장국을 끓이다가 밀려온 피로감에 깜빡 졸아버린 탓에 하마터면 곧바로 엄마를 만나러 갈 뻔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단 한 번도 하지 않던 실수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불은 위험하니 가까이 가지 말라던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이 위험한 세상에 나를 두고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너 어쩌려고 그렇게 울어. 엄마 속상하게.


  들릴 리 없는 엄마 목소리가 귓전에 웅웅 거리며 맴도는 것만 같았다. 꾹 죄어오는 애꿎은 가슴만 주먹 쥔 손으로 내리치며 주저앉았다. 눈물범벅, 침 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줄 사람은 없다. 검게 타버려 먹을 수 없게 되어버린 된장국을 다시 끓여줄 사람도 없다. 아침마다 나를 깨워주는 손길도 없고,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사랑스러운 것을 보는 듯한 눈빛도 없다. 그러니까, 엄마는 더이상 없다는 소리다. 저린 다리를 이끌고 힘겹게 안방으로 향했다. 아까워서 열기 싫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문을 닫고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날 꿈에는 엄마가 나왔다. 해바라기밭에서 나를 꼭 끌어안은 채로 우는 엄마가.


  또다시 누군가 잡아끄는 느낌에 놀라 잠에서 깼다. 한참을 멍하니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엄마가 자주 들여다보던 거울 앞에 섰다. 엄마가 남기고 간 엄마 얼굴이 내게서 보였다. 그렇게 안 보이더니. 아무리 남겨두려 해도 사라져가기만 하더니. 나는 한참을 거울을 끌어안고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처럼 울었다. 엄마는 갔다. 거울 너머로. 젊음을 되돌아보다가, 거울 속으로.


  여기에 엄마를 두고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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