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없다는 이유로 조별모둠에서 쫓겨난 적이 있었다. 그런 날에는 집으로 가는 골목에서 불꺼진 집을 등 뒤로 두고 한참을 울었다. 겨울에는 5시만 되도 어둑어둑해져서 온 가족이 살던 집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같았다. 내가 선택한 게 아닌데 날 따라다니는 편부모라는 편견어린 시선은 늘 땅을 바라보게 만드는 위압감이 있었다. 서러움만큼 벌려진 입 때문에 꺼슬한 입술이 터져 피가 나고, 찬 바람에 뜨거운 볼이 건조하게 식어가는데 멈출 줄을 모르고 쭈그려 앉은 채 일어나지 못했다. 나에게 엄마가 떠난 이후 모든 계절은 그런식이었다. 엄마가 필요했던 모든 순간들을 아닌 척 괜찮다고 넘겨왔지만 비교의 대상이 생기고, 부러움이 이는 순간은 어쩔 수 없이 서러웠다. 학부모 참관 수업은 그다지 특별할 거 없는 하루. 학예회, 운동회. 모르는 척 왁자지껄한 가운데 나만 고요하게 은박지에 싸인 김밥을 먹었다. 체육복 주머니는 찢어진 채로 기우질 못해서 오백원 짜리 하나 넣지를 못해 체육대회로 운동장을 채운 수두룩빽빽한 간식거리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소풍가는 날마다 부시럭거리며 꺼내던 김밥집 봉투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싶었던 날도 있었다. 내가 제일 불쌍해. 초등학생이라고 머리가 좀 큰 내가 매일 하던 생각. 병원에서 탄 감기약이며 이것저것 모아 손에 쏟아붓고 책상 앞에 앉아 울던 날. 나는 고작 12살이었고 하루에 12번은 죽고 싶었다. 내 잘못이었을까. 내가 착하지 않아서, 예쁘지 않아서, 뭔가 잘못된 애라서 엄마가 날 그렇게 두고 갔을까? 큰 걸 바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집에 왔을 때 날 반겨주는 불 켜진 집, 따뜻한 밥이면 됐었는데. 다른 애들처럼 학원을 보내주지 않아도 난 반에서 1등을 했고, 예쁨받고 싶어서 인사성이 밝은 아이로 상장도 받았는데. 난 노력했는데 그 대견함을 손으로 머리를 감싸 쓰다듬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앉은 밥상에서 식칼을 손에 들고 또 울었다. 교복을 입고 한 겨울에 보일러가 고장난 집 안에서 쌀을 씻고 있다 문득 창 밖을 보니 눈이 왔다. 손 끝이 새빨갛다 몰해 시퍼렇게 질릴 때쯤 쌀을 씻던 물에서 손을 꺼냈다. 얼얼하게 감각이 없는 손목에 칼을 대고 그었다. 아파서 또 울었다. 무서워서 죽지도 못하는 내 인생이 억울해서 한참을 울었다. 피가 흐르는 손목을 감싸고 창문 앞에 주저앉아 내리는 눈을 멍하니 쳐다봤다. 현실감각이 무뎌지는 기분이었다. 이 모든 것은 어디서 잘못되었고, 그 누구의 잘못이었는지 헤아릴 수 없는 온갖 의문들은 결국 나의 근간에서 비롯되었나 싶은 생각이 들면 또 모든 것이 미워졌다. 엄마는 그래서 도망갔을까? 골목길 너머로 점이 되던 긴생머리의 여자. 엄마를 부르지도 못하고 맨발로 조용히 따라가다 피투성이가 된 발로 돌아와 현관 앞에 쭈그려앉아 울었던 내 나이 5살. 나이가 먹어도 난 여전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엄마 왜 그랬어? 나는 묻지도 못했다. 벙어리고 병x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