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가장 가깝고 서로 속사정까지 다 아는 친구가 한 명 있어 그 친구도 나를 가장 친한 친구로 생각해.
우리 둘 다 여자고 나는 헤테로, 그 애는 바이야.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 나왔고 대학은 둘 다 수도권이지만 만나려면 대중교통 타고 한 시간 반은 이동해야 함.
나는 성격 자체가 좀 시니컬해서 웬만하면 누굴 보고싶다는 생각도 잘 안 들고 그냥 누가 만나자고 하면 만나고 아니면 마는 스타일임.
반면 그 친구는 나 보고싶으면 편도 한 시간 반 거리를 이동해서 나를 보러 와. 그 친구 말로는 내가 정신적 지주 같대. 그 애가 성취욕이 강해서 이것저것 일을 많이 벌려놓는데 그걸 다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주 번아웃이 오고 불안 증세가 오거든. 반년에 한 번정도는 멘탈 다 갈린 채로 울면서 나를 찾아옴. 같이 있으면 마음이 너무 편하고 내가 자기 얘기를 듣고만 있어도 다 괜찮아진대. 잠도 못 잔다는 애가 우리집 오면 잠도 너무 잘 자고 밥도 잘 먹음.
여기까지 들으면 오해할 수 있겠지만 그 애는 날 친구로만 생각해. 절대 짝사랑 그런 거 아님. 그리고 감정 쓰레기통 그런 거 아니니까 괜한 걱정은 안 했으면 좋겠어.
내 고민은 여기부터야.
얘가 만난지 1년 좀 안 된 여자친구가 있는데 얘의 정신 한구석에 내가 있으니까 그게 질투가 나나봐. 둘이 있을 때 내 얘기도 자주 하고(가장 가까운 사이니까 자기 얘기하다보면 내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나봐) 걔가 나를 의지하는 걸 그 사람도 알아. 문제는 보통은 그게 질투나면 내 앞에서 걔 얘기를 안 했으면 좋겠다든지 둘이 있을 때는 내 존재를 지우려고 하잖아. 근데 둘이 다투다가도 내 친구가 좀 억지부리면 여자친구 분이 나한테 디엠해서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말려달라고 하거나, 싸우면 둘 다 나한테 와서 고민 상담을 하거나 내 의견을 물어.
심지어는 헤어졌을 때 여자친구 분이 (이하 언니라고 부를게) 나한테 이거 놓아줘야 하는 상황이냐고 묻길래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지. 일단 당장은 거리를 두고 둘 다 자기 자신한테 집중하는 삶을 좀 사는 게 좋아보이긴 한다고 얘기했어. 내 친구 얘기를 들어보면 자기는 없고 내 친구만 있는 연애를 하고 계신 거 같아 보였거든. 내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언니가 행복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얘기를 한 거야. 그러고 며칠 지나서 다시 만난다길래 그려 잘 해결됐네~하고 말았는데 친구가 이야기 하기를, 헤어지고나서 언니가 나한테 디엠을 보낸 이유가 내가 내 친구한테 언니 붙잡으라고 하면 내 말대로 다시 붙잡아 줄 거 같아서였다는 거야.
내 생각에는 두 사람의 연애인데 거기에 자꾸 내 의견이 들어가는 건 좀 아니라고 보거든? 이게 무슨 다자연애도 아니고 둘이 사귀는데 내 의견이 왜 필요해.
그래서 한 번은 내 친구한테 얘기를 했어. 둘이 있을 때 내 얘기도 자제하고 싸우고 둘 다 나한테 와서 고민 상담하는 것도 하지 말라고. 귀찮아서가 아니라 둘이 하는 연애에 자꾸 내 의견이 들어가니까 별로 보기 안 좋아서 그런다고. 두어번정도 그렇게 얘기하니까 걔도 이해를 했고 언니가 나한테 직접 디엠으로 고민 얘기하는 것도 없어졌어.
언니랑은 이제 가끔 인스스 답장으로 안부를 묻거나 언제 한 번 만나서 셋이 밥 먹자는 이야기만 함. 그리고 언니가 케이팝, 뮤지컬 덕후인데 내가 아이돌 덕질을 오래해서 티켓팅을 잘하니까 나한테 용병 부탁하는 정도? 그래서 난 우리 사이가 이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음.
근데 가끔씩 내 친구로부터 들려오는 말 중에 언니가 나한테 잘 보여야 한다고 자기 얘기 이상한 거 하지 말라고 하거나 뭐 점수 따야된다는 식으로 나를 신경쓰는 듯 한 뉘앙스가 들려올 때가 있어. 그냥 애인의 가장 친한 친구니까 잘 보여서 나쁠 거 없으니 하는 말이겠지 싶긴 한데 또 질투는 하는지 내 친구 카톡, 문자 즐찾에서 나를 몰래 빼놓는다거나 나랑 둘이 있을 때 삐져있다거나 함… 나 말고는 언니가 이렇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대
얘랑 둘이 만나면 뮤지컬도 보러 가고 목욕탕에 때도 밀러가거든…?(고딩 때 기숙사 쓰면서 샤워를 자주 같이 해서 이런 거에 거리낌이 없어) 나는 동성을 좋아해본 적이 없으니까 내가 너무 무심하게 가깝게 지내나 싶다가도 이 친구 말고는 딱히 공연 같이 보러 가고 어딜 시간 내서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기도 해
동성연애하는 익들이 봤을 때 내가 너무 무례해 보이니…? 이성사친이 내 애인이랑 이렇게 지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근데 나는 동성친구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지켜야 하는 선인지를 모르겠음… 나는 가장 친구니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인데…
쓰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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