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
재상의 무녀 독남 외동아들.
자신을 보석같이 아끼는 아버지의 덕으로 어릴 적부터 왕궁의 문턱을 넘나드는 건 먹을 가는 것보다 쉬웠으며 왕의 아들을 만나는 것은 일상이라 칭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넘나드는 왕궁의 문턱이라 왕의 두 아들과 친목이 쌓이게 된 건 당연한 순서였다.
아마 그게 경수의 아버지가 세우신 계획이 아니었을까 어른이 되어 까마득한 옛날을 돌이킨 경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이용을 당했으리라고.
"어디 가?"
"태자 전하를 뵈러."
"넌 늘 형만 찾는구나."
이 왕궁의 둘째 왕자. 변백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내길에 돌다리를 놓아주고 내 뒤를 따라오는 악을 제 빛으로 명하게 하는 자. 그러나 내 옆의 자리만큼은 차지하지 못하는 그는 늘 나에게 보이지도 않는 구애를 한다. 바삐 걸음을 움직이는 나에게 행여나 방해가 될까 옆에 서진 못하고 뒤에서 걸음을 맞추려는 그에게 안쓰러운 미소를 아니 보낼 수 없었다. 하지만 경수의 입에서 '태자 전하'라는 단어가 나오자 내 뒤를 맞혀오던 발걸음의 소리는 귀에서 멎어갔다. 넌 늘 형만 찾는구나. 애처로운 목소리가 탁한 전역 소리를 이어 들려온다.
왕이 될 몸인 첫째 왕자 변박현과의 혼인. 이것이 아버지의 계획이었다.
'경수야, 내가 널 우성 오메가로 낳은 보답은 해야 된다.'
아버지는 나에게 자장가를 들려주어야 할 나이에 저 말씀을 하셨다. 잠들기 전에도. 아침에 일어날 때도. 심지어 나의 생일상 위에서도.
아마 경수는 아버지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서 가 아닌 저 문장이 듣기 싫어서 악착같이 버티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이럴 거야?"
"....."
" 넌 형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잖아..."
목소리만큼이나 따뜻한 손이 내 손을 감싸왔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런데...백현이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있는 손이 너무 따뜻해서 놓을 수가 없었다.
"넌 안돼."
"....."
"넌 왕이 될 수 없잖아."
백현아, 너는 참 아깝다. 왕이 될 수 있다면 내 몸은 이미 네 것이 되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