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캐붕주의 8ㅅ8
무슨 상황인지 이해안감주의.... 저도 뭔지 이해가 안가네여.....ㅎㅅㅎ
온전한 채로 반투명 창 그 위에 드리워진 짙은 회색빛의 커텐이 저 멀리 붉은 점처럼 남은 태양의 흔적과 뒤섞였다. 누더기 기운 오후의 햇살을 덮어쓰고 오랜기간 사람의 손길이 타지 않아 먼지가 잔뜩 묻은 커튼은 외로이 혼자 뒤채고 있다. 마치 사실대상에 속하는 동민처럼 창틈 새의 숱은 비바람에도 견고하고 덤덤하기까지 했으니, 아마 폐부 깊숙히까지 다치었다 결론 내리지 못했을 거다. 무엇인가 확실한 주기의 존재가 밖으로 모습을 확연히 나타냈음에도.
빛바랜 기억, 꺾여버린 마음. 그런 아쉽고 그리운 것들만 가득 차 있던 터라 괜히 그 발화 물질들을 자극할만한 불쏘시개들을 모두 피해야 했다. 보고 싶은 사람일수록 보지 않고, 가고 싶은 곳일수록 가지 않고, 새로운 일일수록 하지 않고, 그저 엇갈려 있는 팔을 풀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민은 앞으로도 계속 제가 그래야 할 것들이라 작은 탄식을 쏟으며 이불을 머리 위까지 푸욱 덮었다.
잘 살고 있겠지. 잘, 사는 가 보다. 점점이 무디어져가는 감정 속에서 동민이 끝내 붙잡고 있었던 것은 홍진호의 잔상이었고 단단한 어깨였다. 너무나 안쓰럽고 위태로워 쉬이 넘기기엔, 무던히 이겨보려 노력하기엔 그 속의 동민은 몹시 가여웠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여러 개의 술병과 옅지만 너른 공간에 알싸하게 퍼지는 내음은 제대로 아물지 않은 상처 그대로 현재에 투영되어 오늘날을 지배했다. 그를 그물망에 건져다 놓고 왜, 어째서, 하는 흐름의 주체와 감정선에 불을 지핀 대상에 대한 분개는 시간이 지나자 흡사 울음의 형태를 띄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스스로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비웃듯 퍽이나, 진호는 여즉 동민의 눈이 빨개지고 부풀게 만들었다.
“형.”
촤악. 시원스레 커텐이 쳐지자 창 밖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점멸등이 하나 둘 켜지며 도로 위로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스믈스믈, 살짝 열어 놓은 틈을 비집고 집 안으로 넘어오는 어둠이 침묵과 손을 잡은 듯 했다.
“먹을 게, 하나도 없어?”
무심히 바닥에 끌리는 슬리퍼 소리와 문을 열자 조금 더 크게 울리는 냉장고 진동음이 맞물려 한참 간의 침묵을 깨뜨린다. 휑한 내부, 피부 위로 와닿는 차가운 기운. 그 속에서 조금의 온도도 묻어나지 않는 진호의 목소리가 뚜렷이 제 존재를 나타냈다. 제발 신경 쓰게 좀- 목 끝에 정박한 가시 세운 호흡을 애써 가다듬으며 진호는 여전히 냉장고 근처에 서성인 채로 저를 등지고 누워있는 동민을 재차 부른다. 지겨울 만큼 반복된 상황에 부드러운 음성은 여전히 조금의 화기 조차 품지 않는다.
형, 대답 안 해? 재촉성 말투에 마지 못해 느릿느릿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키는 그 일련의 동작에 아무렇지 않은 척 굳은 표정을 유지한 동민이 진호와 눈을 맞추었다. 미지근한 흐름의 간극이 속눈썹에 늘어질 때 즈음, 진호의 네 번째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영롱함에 동민이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잠깐 마주한 것만으로도 금세 손바닥 위로 피어오르는 뜨거움이 불편해 주름진 하의 손바닥을 슥슥 닦아내보지만 종내 잔잔히 물결치던 갈비뼈가 느리게 부풀어 오른다. 들썩이는 명치 윗께가 뾰족한 무언가로 콕콕 찔리는 것만 같다. 눈 언저리에도 따끔, 통증이 일었다.
착각. 너무도 큰 착각과 희망고문. 밑바닥까지 내달린 감정이 까맣게 타고 남은 화전으로 내쫓겨도, 한숨도 나지 않게 꽉 틀어막혀 범람하는 파도에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바스라져도 아직도- 진호가 제 옆에 함께 해 주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 지금처럼 이렇게 일말의 관심 반의 반토막이라도 내어준다는 것에 여전히 가슴이 달음박질 친다. 그에 좋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프다. 차라리 눈멀은 해후 찾아 떠나 흩어지고 찢어져 다시는 마주하지 않았으면, 하면서 내심 계속 바라는 진심이 내포된 마음이 부피를 늘려와 동민의 귓등이 발갛게 달아오르게 만든다.
“...왜. 왔어.”
올연하리만치 혀끝에서 한참이나 궁글리다 뱉은 제 말에 진호가 어떠한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안 봐도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졌다. 일순 아래턱이 부득, 낮게 갈리는 소리가 났다. 이 짧은 순간에도 감정의 선은 곧다. 흐트러지는 감정의 방향을 힘겹게 붙잡아 괜찮아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떨어져 나가는 살 한점 한점의 현실에 균형을 맞추기까지 얼마나 격렬한 암전을 전시해야 하는지. 그 무게에 어깨가 짓눌려도 나, 이렇게 살고 있노라고. 제자리에 머물러 흠 없이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그렇게 여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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